녹색평론선집 Ⅰ  김종철 엮음  녹색평론사 1993

머리말
 

  이 책은 창간호부터 통권 제6호까지 일년 동안 격월간 <녹색평론>에 수록되었던 여러 형태의 글 가운데서 일부를 추려서 한 권의 선집으로 엮어본 것이다. <녹색평론>은 1991년 11월에 환경-생태학에 관련된 주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국내의 유일한 인문교양잡지로서 출발하여 현재까지 통권 제9호가 발간되었다. 처음 출발하였을 때오 마찬가지로 이 잡지는 매호 160면 정도의 분량을 유지해 왔는데, 이러한 작은 책을 고수해 온 것은 물론 아직까지 넉넉한 필진을 확보하지 못한 까닭도 있지만, 무엇보다 지금과 같은 상업주의와 거대주의가 판치는 상황에서 생명의 편에 서서 발언하고자 한다면 이 가공할 파괴와 낭비의 문화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비록 작다고는 하나 한해 동안의 작업이 모인 결과는 결코 적은 분량이 아니었고, 따라서 선집편찬을 위해 글을 선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당초 우리는 이런 종류의 책 발간이 내키지 않았지만, 그러나 주로 정기 구독자들의 지원으로 발간되고 있는 이 잡지가 호를 거듭함에 따라 조금씩 널리 알려지면서 새로운 독자들이 꾸준히 증가하였고, 그 과정에서 창간호를 비롯하여 이미 절판이 된 지난호들을 찾는 새 독자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구상한 것이 바로 이 선집이었다. 영인본을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조언해 준 일부 독자들의 뜻을 어기면서 이런 단행본을 발간하기로 한 결정에 따라, 이번에도 너무 부피가 큰 것을 피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에 글의 선택에 고심하였고, 그 결과 많은 중요한 글을 재편집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제외하였다. 그러니까 이 선집은 지난 일년 동안의 <녹색평론>의 충실한 성과를 보여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이 잡지의 의도와 지향을 전체적으로 균형있게 어느 정도 예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각도에서 편집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금은 엄청난 생명파괴와 비인간화가 구조화, 일상화되어 있는 시대이다. 이러한 생명파괴의 문명이 언제까지나 계속된다는 것은 물론 불가능하지만, 이 추세가 시급히 꺾여지지 않으면 결국은 인간과 모든 생명체들이 조만간 엄청난 재앙에 직면하리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우리가 <녹색평론>을 시작한 것은 사태를 이 지경으로 몰고 온 근원을 살피고, 이제야말로 자연과 생명의 질서에 순응하는 새로운 삶의 논리를 책임 있는 태도로 모색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지만, 이러한 의도가 얼마나 구체적인 작업 속에 실천될 수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보잘 것 없는 작업이었지만 이 잡지의 출현과 지속적인 발간으로 인해 우리 사회 속에 잠재되어 있는 어떤 창조적 갈망이 표현되고, 민감한 정신들끼리 상호 교감할 수 있는 기회가 미약하게나마 주어질 수 있었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 동안 <녹색평론>은 해외의 녹색운동의 이론과 실천적 작업도 눈여겨보면서, 그런 실천의 성과로서 태어난 지적, 정신적 업적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정도로 번역에 비중을 두어왔다. 번역물은 물론 점차로 줄여나가는 것이 바람직하겠으나 아직까지 녹색운동이 일천한 우리 사회에서 전통적인 문화 및 정치논리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을 달리하는 녹색의 논리를 선양하는 데 해외의 성과를 주목한다는 것은 필요한 일일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리 역사가 깊다고는 할 수 없으나 어떻든 서구와 북미 혹은 일본이나 인도의 사회과학계에서는 단순한 환경경제학을 넘어 이제는 심지어 생명경제학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대두되어 비교적 정밀한 체계를 갖추어 나가기 시작했음에 반해 아직 국내 사회과학계의 이 방면에 대한 공식적 관심은 거의 한심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 광란적인 낭비적 생산과 소비생활의 고삐를 잡지 못하는 한 파멸은 불가피하다고 할 때,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생태계의 질서와 인간영혼의 요구에 대한 완전한 무지와 몰각에 기초해 온 종래의 경제학의 근본가정이 전면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일 것이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상관없이 지금까지 경제학을 지배해 온 성장경제 논리가 순환경제의 논리로 전환할 수 있어야만 우리가 생태적, 사회적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고, 이른바 지속가능한 사회로 들어갈 수 있으리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환경제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깨달음을 암시하는 학문적, 지적 노력이 아직도 지극히 미미하다는 사실은 우리의 학문이나 지성적 노력에 내재한 어떤 형태의 뿌리깊은 종속적, 식민주의적 경향에 부분적으로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은 아마도 우리들 대부분이 그 동안의 경제개발 혹은 산업화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을 행할만한 심리적, 정신적 조건을 갖추지 못한 점에 있는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서, 순환경제를 받아들이자면 무엇보다도 우리가 이 지구상에서 혼자만이 아니라 여럿이서, 다른 생명체들과의 공동체적 연대를 통해서만 생존할 수 있다는 자각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의 영성적인 문화의 결핍-이것이 아마 산업문화가 단 한시도 생명에 대한 부당한 폭력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야만성으로 점철되어 있는 궁극적 요인일 것이다. 일찍이 간디는 서구식 산업주의가 언젠가 인류 모두에게 가장 큰 저주가 될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한 바 있지만, 우리는 지금 도처에서 매순간 간디의 예언이 맞아떨어지고 있음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 모두에게 지금 과해진 가장 큰 책임은 결국 비폭력적 삶의 방식을 회복하는데 어떻게 이바지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찾아보는 일일 것이다. 경쟁이 아니라 공생의 관계를 실질적으로 우리의 사회적 삶 뿐만 아니라 생명공동체 전체 속에서 확보하고, 넓혀가는 일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각자의 내면적인 자유와 성숙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우주생명은 하나이면 만물은 형제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없이는 안되는 것이다.

  <녹색평론>이 창간된 이후 국내의 환경운동은 전에 못 보던 수준으로 활발해졌다. 이것은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우리의 환경위기가 나날이 더 심화되어 왔다는 점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이것은 유감스럽지만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다.

  환경운동이 활발해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대세를 이루는 것은 기술주의적 접근이며, 경제성장 논리를 흔들림 없는 가치로 놓고 보는 공리주의적 환경론일 뿐이다. 이런 사정은 단적으로 농업과 농촌공동체의 중요성이 환경위기와 유기적인 관련 속에서 파악되는 경우가 드물다는 데 잘 드러나 있다. 순환경제는 농업공동체를 근간으로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런 기초적인 문제를 도외시하고는 어떠한 환경론도 초점에서 빗나간 노력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농업이니 땅이니 흙이니 하는 것들을 떠나서 살 수 있고, 그런 삶이 진보적이라고 믿는 망상에서 해방되는 것이 급선무인 것이다.

  그러한 미망에 사로잡힌 인간의 자기중심적 물질적 탐욕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생명중심, 생태중심의 가치와 세계관이 우리 개개인의 일상적, 문화적, 사회적 활동들의 기본틀을 지배해야만 비로소 우리에게 희망적인 전망이 열릴 것이 분명하다. 이제, 그러한 희망을 위한 작은 노력의 하나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녹색평론선집I>을 내놓는다. 덧붙여서, 잡지의 형식으로는 충분한 객관적인 검증을 받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이처럼 단행본으로 출판되면 어떻든 서평의 대상이 될 수 있고, 그런 성실한 비평을 통해서 그 동안의 우리의 작업의 의미가 좀더 엄정하게 객관적으로 검증될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이 선집을 엮어내는 하나의 동기가 되었음을 밝히고 싶다. 독자 여러분의 기탄 없는, 그러나 구경꾼이 아니라 안으로부터의 매서운 비판을 부탁드린다.

1993년 3월    
김종철    


 <녹색평론선집Ⅰ>은 격월간 《녹색평론》초기 1년간 실렸던 주목할 만한 글을 따로 묶어낸 책으로, 우리가 어째서 고르게 가난한 삶을 선택해야 하는가 하는 《녹색평론》의 근본 메시지가 응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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