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 - 무위당 장일순을 기리는 생명의 이야기
'무위당을 기리는 모임' 엮음, 녹색평론사 2004

책머리에

 

우리 시대 생명사상의 큰 스승이신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남겨주신 생명의 뜻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닌 듯합니다. 아주 사소한 생활 속에서부터 함께 일하고 더불어 나누며 서로를 모시는 일, 그것이 바로 생명사상의 요체인 듯합니다. 세상 살기가 아무리 험악하고 먹고 살기가 아무리 척박해도 무차별 경쟁과 죽임이 아니라, 자연과 나누고 사람과 함께 하면서 사람다운 삶의 터전을 조금씩 넓혀가는 길이 바로 생명사상의 실천이며 구현일 것입니다.

그렇게 쉬운 일을 우리는 잊고 살고 있습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이거늘, 그런 이치만 안다면 서로를 모시는 일이 어려울 것 없다는 것이 무위당 선생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치는 굳이 말로 표현될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의 마음이 바로 그런 이치의 원천입니다. 무위당 선생은 어머니를 기리는 작품을 여럿 남기셨습니다. 그 작품은 단순히 글과 그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시려거든 어머니의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을 강조한 것일 겁니다. 그래서 모심은 어머니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모든 이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듯이 어머니의 자비심은 우리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자비와 사랑의 기운 역시 도처에 있는 것입니다. 그 힘이 바로 생명의 힘이며 그 힘이 바로 예수나 부처의 기운이기도 하다는 것을 무위당 선생은 항상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천지를 모시는 일은 바로 일상적인 사랑을 확인하는 일이며 신을 모시는 일이기도 합니다.

무위당 선생은 그 모심이 마음으로만 그쳐서는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 속에서 항상 스스로를 낮추어 서로에게 어울리는 사회적 실천이 따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실천의 삶은 한살림운동으로 나타났고, 교육운동의 일환이었던 대성학교 설립 등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선생의 연대기로만 보면 사회운동 다음에 나중에서야 생명운동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선생의 삶에서 사회의 실천운동과 마음의 도덕수양이라는 두 삶의 길은 항상 하나로 만났던 것입니다. 이러한 두 갈래의 길이 둘이 아니라 원래 하나임을 아는 일, 바로 그것이 무위당 생명사상의 뿌리를 체득하는 지름길입니다. 이는 무위당 선생과 깊은 인연을 갖고 계신 김지하 시인이 항상 강조한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 후학들은 항상 깊이 그 뜻을 새겨들을 것입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께서 이 땅을 떠나신 지 어느새 10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선생께서 남겨주신 발자취는 여전히 우리들 마음속에 살아있습니다. 선생의 삶과 가르침을 기리는 마음은 있으나, 그분의 뜻을 아직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선생을 기린다고 해서 선생에 대한 화려하고 요란스러운 행사치레는 필요없습니다. 오히려 선생의 가르침과 뜻을 받드는 분들이 제각각 자기의 삶터에서 삶의 도리를 묵묵히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 추모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작은 염려가 있습니다. 선생이 말씀하신 무위의 길이 자칫 지나친 신중함과 수동적 삶의 형태로 비추어질까 걱정되는 것입니다. 선생의 큰 뜻이 미래 세대와 후학들에게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자칫 선생의 큰 발자취 자체가 잊히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좀더 적극적으로 선생의 삶의 자취와 가르침을 알릴 수 있고, 후학들이 선생의 뜻을 받들어 실천하는 삶을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성찰할 수 있는 어떤 정신적 부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위당 선생의 삶이 새로운 시대, 새로운 역사 속에서 다시 구현될 수 있도록 우리 삶의 방식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구차한 변명을 달아서 이 책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부끄럽습니다.

2004년 5월  
무위당을 기리는 모임  


필자 및 대담자 소개

고제순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대학 철학박사. 상지대 외래교수

김성동    작가. 저서 《만다라》 《생명기행》 《천자문》 등

김영주    ‘무위당을 기리는 모임’ 회장

김종철    영남대 영문과 교수. 《녹색평론》 발행인. 저서 《간디의 물레》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등

김지하    시인. 저서 《오적》 《황토》 《남녘땅 뱃노래》 《탈춤의 민족미학》 등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 저서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분단을 넘어서》 등

박재일    전 천주교 원주교구 사회개발위원회 부장. 현 환경농업단체연합회 상임대표 및 (사)한살림 회장

변홍철    《녹색평론》 편집장

원유일    원주가톨릭종합사회복지관 홍보후원팀장

윤형근    ‘모심과살림 연구소’ 사무국장. 역서 《공생의 사회, 생명의 경제》 등

이경국    전 신용협동조합중앙회 사무총장. 현 지학순 주교 기념사업회 원주지부장

이긍래    전 석탄광업소 노동자. 현 원주한살림 이사장

이반(최성현)    농민. 번역가. 역서 《짚 한 오라기의 혁명》 《여기에 사는 즐거움》, 저서 《좁쌀 한알》 등

이병철    전국귀농운동본부 본부장 및 녹색연합 공동대표. 지리산생명평화결사 운영위원장

이철수    화가. 판화작가. ‘마른 풀의 노래’ 등 국내외 전시회 다수 개최. 작품집 《소리하나》 《배꽃 하얗게 지던 밤에》 등

이현주    작가. 목사. 저서 《장자산책》 《중용 읽기》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 등

임재경    전 한겨레신문사 편집인. 《창작과비평》 《디지털 사상계》 편집자문 위원.
              저서 《상황과 비판정신》 《반핵》(공편), 역서 《아랍의 거부》 등

주요섭    전 ‘생명민회’ 활동가. <정읍통문> 발간 및 생명문화교육연대 사무국장

최종덕   상지대 교수. 저서 《함께하는 환경철학》 《인문학―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등

무위당을 기리는 모임    원주시 중앙동 122 밝음신협 4층 4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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