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인가 평화인가  오다 마코토 (小田 實)/ 이규태, 양현혜 옮김  녹색평론사 2004

책머리에
 

  2001년 9월 11일 뉴욕과 워싱턴에서 발생한 테러를 빌미로 ― 실은 이 테러는 이미 그 훨씬 이전부터 미국의 지배권력 심장부에서 계획되어왔던〈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를 구체적인 실행으로 옮기는 데 계기가 되었을 뿐이지만 ― 세계의 힘없는 국가와 민중에 대하여 미국이 전개하고 있는 노골적인 침략과 살육행위로 인한 악몽과 같은 현실 속에서 오늘날 '전쟁과 평화'의 문제는 다시 한번 인류사회의 가장 다급한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더욱이,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북핵문제를 둘러싼 긴장과 갈등이 쉽사리 미국에 의한 군사적 행동의 빌미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고, 따라서 전쟁을 어떻게 회피하고, 평화를 확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아마도 휴전체제 50년의 역사에서 어느 때보다도 지금 가장 절박한 과제가 되어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사회에서 전쟁과 평화에 관한 담론이 꽤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최근의 상황은 이러한 절박한 사태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힘이 곧 정의"가 되어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어떠한 정신적 자세와 태도를 유지하느냐 하는 것일 것이다. 실제로, 냉전체제가 붕괴된 이후 세계의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이 추구해오고 있는 제국주의적 지배는 오늘날 난공불락의 위세를 과시하고 있고, 따라서 전쟁이냐 평화냐 하는 것은 오로지 미국의 지배권력의 결심 여하에 달려있을 뿐, 유엔이나 세계 전역의 NGO를 포함하여, 그 어떤 세력도 지금은 미국에 의한 침략행위를 실지로 저지할 수단과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현실에 직면하여 사람이 절망을 느끼고, 좌절하고, 주저앉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 결과, 비록 선의의 인간이라 하더라도 한번 체념하기 시작하면, 아무리 야만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현실도 받아들일 만한 것이 되고, 따라서 남들이야 어떻게 되든, 나는 강자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사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에 도달하기 쉽다. 나아가서는, 그렇게 해서 살아남는 방식에 동조함으로써 사람들은 민족과 국가라는 이름으로 운위되는 집단적인 생존과 방위를 위한 가장 해묵은 전략, 이른바 '현실주의적'인 노선에 협력하는 것이다.

  시민사회로부터의 강력한 반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자주적 외교'의 실천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한국의 새 정부는 결국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여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고, 국회의 동의를 얻는 데 성공했다. 그래도 국회의원들 중에는 살아있는 양심 때문인지, 정치적인 계산 때문인지, 파병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이 문제에 대한 표결이 한때 미루어지기는 했지만, 절대다수의 국회의원들은 일찌감치 정부보다 앞장서서 파병을 지지해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국회에서 파병동의안이 부결될 가능성은 처음부터 희박했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국익'을 위해서는 미국의 지배층을 추종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논리는 오늘날 여전히 강력한 지배의 언어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관건은 '국익'이라는 개념이다. 과연 국익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국익이라는 것이 실제로 있기는 있는 것인가? 혹시, 국익이라는 말은 사회의 일부 특정집단이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 확대하기 위한 방편으로 써먹는 편의주의적인 용어가 아닐까? 그래서, 그것은 풀뿌리 민중을 현혹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민중이 자신의 이익에 반하여 행동하도록 설득하기 위한 오래된, 그러나 아직도 유효성을 잃지 않고 있는 ―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있는 ― 정치적인 술책이 아닌가? 온갖 교육기관과 언론매체들이 끊임없이 '국익'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상황에서 실지로 우리가 이러한 의심을 마음속에 품어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냉전논리가 지배해온 야만적인 시대의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서, 이제 우리가 정말 사람다운 삶이 어떤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려고 한다면, 무엇보다도 '국익'이라는 말 앞에서 더이상 주눅들 게 아니라, 그 말의 진의가 무엇인지, 그것이 과연 우리의 인간다운 삶의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말인지, 한번 깊이있게 따져보아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그러한 물음을 제기해볼 수 있는 비판적 상상력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게 아닐까.

 

  오다 마코토(小田 實) 선생의《전쟁인가 평화인가》는 이런 면에서 우리에게 큰 가르침과 중요한 시사를 제공해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저자가 부제에서 명확히 밝히고 있듯이, '9·11 테러 이후의 세계'라는 절박한 상황에 직면하여, 2003년 3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개시되기 직전에 집필된 책으로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나온 많은 양심적 지식인들의 반전-평화론과 정신적으로 궤(軌)를 같이하고 있는 저작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평화와 전쟁의 문제를 포함한 이 시대의 암울한 인간상황에 관련한 그의 핵심적인 논의가 기본적으로 '국민' 대 '시민'이라는 개념의 대조에 기초해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인간다운 정치적 공간의 실현을 위해서는 우리가 왜 '국민'이 아니라 '시민'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해야 하는지를 저자 자신의 풍부한 체험을 통해 설득력 있게 여러 각도에서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다른 여러 저술들에 비해 개성이 뚜렷하며, 그런 만큼 매우 계몽적이고, 또 흥미롭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가 '시민'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그의 평화사상을 논의하고 있다고 할 때, 그것은 역사적 산물로서의 '국민국가'의 존재에 대한 어떠한 이론적·사변적 접근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저자 자신이 실제로 몸으로 겪은 체험과 실천적 행동을 통해서 도달한 결론이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의 여러 부분에서 언급되고 있듯이, 오다 마코토는 태평양전쟁 말기 그가 중학 1년생이었을 때, 미군에 의한 일본본토 공격, 특히 당시 상공업의 중심지였던 오사카 지방에 대한 공습과 그로 인한 아비규환의 상황을 바로 그 공습의 현장에서 온몸으로 생생하게 경험하였고, 이때 그가 겪은 '공습을 하는 자'가 아니라 '공습을 당하는 자'로서의 체험은 그의 내면에 강력하게 각인되어 결코 지울 수 없는 원체험으로 남아, 이후 그의 사상세계의 구축에 근원적인 토대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다 마코토는 아마도 20세기 후반 동아시아의 가장 중요한 평화 및 민주주의 사상가-활동가 중 한사람으로 기억될 생애를 살아온 지식인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그러한 그의 저술과 사회적 실천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은 늘 그가 사물을 대할 때 권력을 가진 자, 권위를 누리고 있는 자, 즉 '높은사람'이 아니라, 그 반대로 아무런 특권을 갖고 있지 않은 '보통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려는 자세를 일관되게 견지해왔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그의 흔들림 없는 민주주의 사상과, 이른바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개념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그의 단호한 평화사상이 유래한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그리고, 이러한 '보통사람들'의 운명과 존재에 대한 일관된 관심은, 말할 것도 없이, 그의 내면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1945년의 저 오사카 공습의 체험에 연결되어 있음이 틀림없겠지만, 그와 동시에 그가 현대 일본문학을 대표하는 주요 작가로서, 또 무엇보다 평화운동가로서, 단순히 이론적인 작업에 골몰하는 사변적 지식인으로 남기보다는 사회적 모순의 현실을 좀더 적극적으로 타개하기 위해 거리로 나와 직접 행동하는 실천적 지식인의 면모를 끊임없이 보여온 점과도 긴밀히 관련되어 있으리라고 추론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의 적극적인 행동주의는 이미 20대 후반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미국 하버드대학에 유학했을 때부터 그 맹아가 드러난 것 같다. 약 1년간의 유학생활이 끝나고, 귀국하게 되었을 때, 가난하고, 열정적이었던 이 일본유학생은 비행기 삯 이외에 가진 돈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으로 곧장 돌아오지 않고, 유럽과 중동지방, 그리고 인도를 거쳐 돌아오는 노선을 택하였고, 그 여정 가운데 비행기 경유지를 따라 낯선 외국도시들에서 세계의 '보통사람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들에 직접 대면하는 경험을 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식사는 오로지 비행기에서 제공받는 기내식만으로 해결하고, 비행기 바깥에 있는 동안에는 며칠이라도 굶주리면서, 잠자리도 없이, 가난한 제3세계의 빈민들과 같이 노숙을 하면서 지내곤 하였다. 그렇게 해서, 그는 이 세계 대다수 민중의 삶의 실상에 일찍부터 눈을 뜬 것으로 보인다.

  그 여행의 결산으로, 일본으로 돌아온 직후 그가 쓴 책《뭐든지 봐두자》는 삽시간에 독서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이로 인해 비교적 젊은 나이에 그는 널리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고, 이 작품의 성공은 이후 그가 어떠한 제도적인 기관에도 얽매이지 않는 독립적인 작가, 저술가로서의 생애를 영위하면서 수많은 작품과 평론을 집필, 발표할 수 있었던 주요한 밑천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대부분의 작가, 저술가들의 경우와는 달리 그의 왕성한 지적 호기심과 정력적인 활동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70 고령인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오다 마코토가 현대 일본작가로서 구체적으로 어떤 문학적 업적을 쌓아왔고, 그 결과 그의 문학이 정확히 어떻게 평가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예를 들어,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있는 그의 작품《임진왜란》이나, 최근 영어로 번역된 소설《옥쇄》같은 작품의 경향으로 미루어볼 때, 그의 활동적인 생애에서와 마찬가지로 반전-평화 및 민주주의의 옹호, 그리고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려는 본능적인 충동은 늘 그의 픽션의 세계에서도 가장 근원적인 심리적·정신적 에너지로 작용해왔음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창작활동 못지않게 크게 돋보이는 것은, 전후 일본사회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양심적 지식인의 상(像)을 보여주었다고 할 만한 그 자신의 생애의 발자취이다. 예를 들어, 1960년대부터 74년의 미군패퇴에 이르기까지 그가 중심이 되어 활동했던 일본 지식인 사회 속의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은, 미군병사에 대한 전쟁참가 거부를 독려·지원하는 활발한 사업 등을 통해서 새로운 형태의 시민적 불복종운동의 한 전형을 창조한 것으로 평가되어왔다. 뿐만 아니라, 1995년 고베 및 인근지역에 들이닥친 대지진으로 인한 재해 앞에서 재난구제에서 국가가 드러낸 무책임과 무능의 실상에 직면하여, 이러한 속수무책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오다 마코토가 생각해낸 것이 바로 시민=의원 입법운동이라는, 풀뿌리 시민의 자주적인 이니셔티브에 의한 새로운 차원의 입법 방식, 그리고 이를 통한 실질적인 민주적 자치·자활 방식이었다.

  이와 같이 그가 주도해온 시민적 운동의 몇몇 예를 통해서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오다 마코토의 지적·사회적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의 하나는, 흔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거대담론에 탐닉하여, 고답적이고 정치(精緻)한 사회이론의 세련화에 골몰하고 있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혁명적'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수많은 '진보적' 지식인들의 경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입장, 즉 가능한 한 긴밀히 현실에 밀착하여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지혜와 행동에 의해서 조금이라도 더 평화와 민주주의의 구조를 수호하고, 확대해나가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그의 일관된 실천적 자세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 자신이 스스로를 언제나 리얼리스트로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해야겠지만, 그러나 그의 리얼리즘은 현실순응주의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어디까지나 평생에 걸쳐 평화롭고 차별 없는 세상을 끊임없이 꿈꾸어 온 한 '몽상가'의 견고한 현실인식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은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오다 선생의 생애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그는 일찍이 5·16 군사쿠데타 직후 그 쿠데타의 주역들에 의해 초빙되어 환대를 받은 외국 저널리스트들 가운데 한사람이었다. 그러나, 일본으로 돌아가서 그가 쓴 글은 그를 초빙하여 환대를 베풀었던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었다. 그는 그의 원칙에 따라 그 자신이 실제로 본 대로 한국의 상황을 묘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이후 오랫동안 군사정권이 종식될 때까지 오다 마코토는 한국정부에 의해 입국이 허가되지 않았다. 그러나, 일찍이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했던 일본 침략의 역사를 근본적으로 반성하지 않으면 진정한 평화와 민주주의 시대를 열지 못한다는 그의 확고한 신념에 의해서든, 혹은 남다른 개인적인 이유가 있어서든, 오다 선생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늘 각별했다. 1970년대 이후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관련하여 일본의 지식인 사회의 일부에서 보여준 우호적인 협력은 여러 의미에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지식인 연대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대부분의 경우 오다 선생은 늘 이러한 협력운동에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는 한국의 인간과 풍습, 혹은 한국의 역사를 다룬 창작도 적지않다. 앞서 언급한《임진왜란》은 물론이고, 태평양전쟁 말기 남양군도의 어느 섬에 잔류한 일본 패잔병들의 비극적 운명을 그린 소설《옥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의 하나는 조선인 청년이다. 그리고, 제주도의 매장풍습을 아름답게 묘사한 그의 작품《어머니》는 일제 때 일본으로 건너와 부부가 되었던 제주도 출신 해녀와 뱃사공의 후예들로서, 일본과 남북한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아온 한 가족에 관한 이야기인데, 흥미로운 것은 작가 자신이 실제로 이 가족의 일원으로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내가 아는 한, 이 작품은 그가 자신의 삶의 동반자라고 부르는 그의 아내 현순혜(玄順惠) 여사의 가족의 일화에 토대를 둔 이야기이다.

 

  내가《전쟁인가 평화인가》를 저자에게서 직접 선물로 받은 것은 작년 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막 시작되었던 때였다. 그 전 겨울방학 때 우연한 기회에 나는 일본의 오사카와 고베 사이에 있는 니시노미야(西宮)의 오다 선생 댁에 초대를 받아 저녁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오사카 만(灣)이 바로 창 너머로 펼쳐져 있고, 다른 창으로는 육갑산(六甲山)의 아름다운 밤 풍경이 눈에 훤히 들어오는 아파트 거실에서 오다 선생은 여러 시간에 걸쳐 내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일본에 관한 여러 문제에 대해서 무척 친절하게, 정열적으로 설명해주었다. 그때 내가 내심 놀란 것은 고령의 이 작가가 보여주는 끝없는 호기심과 지칠 줄 모르는 정열이었다. 실제로, 내가 이름으로만 알고 있었던 이 일본의 노작가를 직접 만나게 된 것은,《식견교류(識見交流)》라는 일본의 한 잡지에 내가 글을 기고한 것이 계기가 되었던 것인데, 한·일 지식인의 교류와 연대를 목적으로 발간된 이 잡지는 원래 오다 선생의 발의에 의해서 창간호가 이미 나왔고, 이제 제2호가 나올 예정이었다.(아직 이 잡지의 제2호는 나오지 않았는데, 아마도 재정문제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듯하다.) 그런데,《식견교류》에 보낸 내 원고는 근대화 속의 농업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오다 선생은 그동안 공식적인 저술활동 속에서 농업이나 식량 혹은 환경문제를 주된 테마로 삼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나를 보자, 이미 내 관심사가 어디에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모양으로, 그 자신의 평소의 주된 관심사 이외에 일본의 환경 및 유기농업 운동에 대해서, 특히 오랫동안 나리타(成田)공항 건설 반대운동을 끈질기게 계속해오고 있는 저 유명한 산리츠카(三里塚) 농민들에 관해서 자상한 설명을 하면서 그들을 언제 한번 만나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그밖에 그날 저녁 내가 오다 선생에게서 배운 것은 많다. 특히 재미있었다고 기억되는 것은 소위 현대 일본의 국민작가로 추앙받고 있는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의 '변모'에 관한 예리한 설명이었다. 오다 선생에 의하면, 적어도 시바는 1970년대까지는 비교적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각을 갖고 있었지만, 그 이후는 "오사카 상인 가계 출신답게" 일본사회의 경제적 번영이라는 상황에 순응하면서 전반적인 우경화의 시류에 동조하여 민족중심적 시각을 은밀히 전파해왔다는 것이었다. 그 한 예로, 임진왜란에 대한 기록을 검토하는 자리에서 시바는 당시 일본군에 의한 조선인 학살을 증언하고 있는 옛 기록에서 고의적으로 문장의 일부를 잘라버리고, 나머지만 인용함으로써 학살의 참혹한 진상을 교묘하게 은폐하는, 지적 불성실을 행하고 있다는 점을 그는 지적하였다.

  작년 3월 드디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현실로 되자, 나는 내가 재직하고 있는 영남대의 몇몇 동료들과 함께 이 침략전쟁에 대한 항거의 표시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다가, '미국과 세계평화'라는 이름으로 심포지엄을 열기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해외로부터의 연사로 오다 선생과 지금 오키나와에서 평화운동을 하고 있는 미국인 정치학자 더글러스 러미스 씨를 초청하기로 하였다. 다행히, 두 분 모두 우리의 초청에 응해주었고, 작년 5월 영남대 인문관 강당에서 열린 평화포럼은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부인 현순혜 여사의 통역으로 진행된 오다 선생의 "아메리카와 지금 어떻게 사귈 것인가"라는 매우 흥미로운 제목의 연설은 오랜 세월에 걸친 평화운동가의 경험과 지혜를 담고 있었지만,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심포지엄의 맺음말로 그가 행한 발언이었다. "지금 이 세계를 전쟁으로 이끌고 가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빈번히 회동하고 있다. 그러나, 평화를 지향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은 대개 따로따로 고립해서 일해왔고, 지금도 그런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전쟁을 막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서로 자주 만나 연대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그날의 결론이었다.

 

  나는 무엇보다 그러한 만남, 연대의 표시로서《전쟁인가 평화인가》의 한국어판이 의미있다고 생각했고, 서둘러 이 책을 발간하고자 했다. 그러나, 전주의 양현혜 씨 내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번역작업이 일단 완성되고도, 또《녹색평론》지면을 통하여 출간을 알리는 예고가 나간 후에도, 여러 사정으로 한참 꾸물거리다가 이제야 인쇄에 부치게 되었다. 이 책의 발간을 오래 기다려주신 저자 내외분에게, 그리고 독자 여러분에게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2004년 3월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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