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  타까기 진자부로오/ 김원식 옮김  녹색평론사 2001

옮긴이의 말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은 타까기 진자부로오(高木仁三郞)의 유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일본에서 2000년 8월 1일자로 출간되었는데, 며칠 뒤 자필 서명된 책이 나에게 우송되어 왔다. 그가 말기 암으로 병원에 입원한 것이 7월 초였으니 이 무렵 그는 병상에 누워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2000년 10월 8일, 그는 영면했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나는 한구절 한구절, 그와 대담하는 것 같은 심정으로 일을 했다. 타까기 박사는 '원자력자료정보실'을 창설해 - 금년은 창설 25주년이 되는 해이다 - 원자력과 싸워왔다. 그가 말하는 '시민과학자'로서 일생을 바쳐온 것이다.

  여기에,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를 유족의 승락을 얻어 싣는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의 유언적 저서인 이 책을 더욱 빛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타까기 진자부로오가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

  친구에게

  "죽음이 가까이 왔다"고 각오했을 때 생각한 것 중의 하나는, 될 수 있는 한 많은 메시지를 다양한 모양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남겨야 하겠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동안 적지않은 책을 썼으며, 또 미완인 채로 남겨두게 되었습니다.

  미완으로 남겨두면 안되는 것 중의 하나가 지금 쓰고 있는 메시지인데, 그것은 가령 '추억의 모임을 위해서 미리 쓰는 메시지'라고 제목을 단 메시지입니다.

  나는 성대한 장례식 따위는 안해줬으면 하고 생각하며, 만일 여러분에게 그런 마음이 있거든 '추억의 모임'을 적당한 시기에 열어달라고 유언을 해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모임에 보내는 나의 최소한의 메시지도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여러분 정말 오랫동안 고마웠습니다. 체제 내에서, 아주 표준적인 하나의 과학자로 일생을 바쳐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인간을 많은 분들이 따뜻한 손을 내밀어서 나를 단련시키고 다시 사람답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런 대로 '반원전의 시민과학자'로 일생을 관철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반원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고통도 있었습니다만 전국, 전세계의 진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것, 그리고 역사의 큰길[大道]을 따라 걷는다는 확신에서 오는 기쁨은 작은 어려움들을 훌훌 뛰어넘는 힘이 되어 언제나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었습니다. 나는 '바른생활상'을 비롯해 몇가지 상의 혜택을 받았습니다만, 그러한 것들은 되풀이해서 말한대로, 뜻을 같이한 많은 분들과 서로 나눠야 할 상이었습니다.

  애석하게도 나는 '원자력 최후의 날'을 살아서 보지 못하고 먼저 가지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만, 최소한 '플루토늄 최후의 날'은 살아서 보고싶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이제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이미 모든 현실이 우리의 주장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낙관만 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말기증상 속에서 거대사고와 부정(不正)이 원자력의 세계를 엄습할 위험성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JOC 사고에서 러시아 원자력잠수함 사고에 이르는 지난 1년간을 생각할때, 원자력시대의 말기증상에 의한 대사고의 위험성과, 이러다가는 방사성 폐기물이 허술하게 처리되지 않을까 하는 위구심(危懼心)이 이제 먼저가는 인간의 마음을 가장 괴롭힙니다.

  뒤에 남는 사람들이 역사를 꿰뚫어보는 투철한 지혜와 대담하게 현실에 맞서는 활발한 행동력을 가지고 일각이라도 빨리 원자력시대에 종지부를 찍기를 바랍니다. 나는 어딘가에서 반드시 여러분의 활동을 지켜보고 있을 것입니다.

  내가 한가지만 여러분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부디 오늘을 서글픈 날로 하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울음소리나 우는 얼굴은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늘은 탈원전, 반원전, 그리고 더욱 평화스럽고 지속적인 미래를 지향하는 새로운 맹세의 날, 출발의 날로 모두가 함께 즐기는 날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타까기 진자부로오라는 바보 같은 놈도 있었지"하고 잠깐 생각도 하면서, 핵 없는 사회를 향한 여러분의 꿈을 얘기하는 그러한 날로 합시다.

영원히 여러분과 함께    
타까기 진자부로오(高木仁三郞)    
세기말에 즈음해서 새로운 시대를 바라보면서    

 


  이 책은, 그동안 원자력 반대투쟁을 끈질기게 이어온 한국의 반원전 운동진영에서 금년 9월 중순 개최할 제8회 '아시아 반핵포럼'에 맞추어 출간하는 것이다. '타산지석'이라는 말도 있지만, 핵문제는 국경이 없는 인류공통의 문제이므로 타까기 박사와 일본 반핵그룹의 승리의 발자취에서 우리는 많은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이 책의 출판을 서둘렀다.

  끝으로 《시민과학자로 살다》에 이어 이 책의 출간을 기꺼이 허락한 녹색평론 김종철 발행인과 편집실 식구들, 그리고 원고를 자세히 읽고 다듬어준 장위중학교 남희정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인사를 올린다.

2001년 8월    
김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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