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뿌리  서 숙  녹색평론사 2003

책 머리에

나무들

 

  그 봄날, 어리둥절 신입생이던 나에게 어린 가지를 흔들며 반겨주던 나무가 이제는 아름드리로 자라 가르쳐준다.

  나무는 나에게 위를 올려다볼 때와 아래를 내려다볼 때가 따로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사시사철 나무는 새싹과 녹음과 단풍이 되어 위를 쳐다보게 하고, 떨어져 쌓이는 낙엽이 되어 아래를 보게 한다. 땅속에서 숨쉬는 보이지 않는 뿌리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나무는 나에게 위로 올라가는 것과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별개의 것이 아님을 알려주고 무엇보다도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아래 있는 것이 위에 있는 것을 살려주고 키워준다는, 이 단순한 그러나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진실을 일깨워준다.

  이 겨울, 나무는 빈 몸으로 높게 서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으며 모든 것은 순환하는 것이라고, 마른 가지에서 무성한 여름을 느낄 수 있느냐고, 묻는 듯 확인하는 듯 흔들리고 있다.

 


  서 숙

  1946년 경남 함양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부 교수
  산문집으로《돌아오는 길》《아, 순간들》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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