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의 선택  박병상 지음  녹색평론사 2000

머리말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운동 시절이 생각난다. 당시 텔레비젼 드라마에서 책임감 있는 가장(家長)이나 실력 있는 교수 역을 도맡다시피 하던 인상좋은 탤런트를 동원하여 "더이상 늦출 수 없습니다!" 하는, 협박에 가까운 광고로 국민들을 현혹시키고 위기의식을 조장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만나 핵폐기장 건설 반대에 함께 나서자고 권유하면 "이 지역이 아니라도 어딘가에 반드시 있어야 할 시설이 아닌가", "내 지역이라서 반대한다면 나는 지역이기주의자가 되는데", "핵폐기장이 없으면 핵발전소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데, 전기가 끊어지면 산업은 마비되고 우리나라는 후진국으로 전락할 것이 아닌가. 핵발전에 대한 대안이라도 있다는 겐가", "우린 자네를 믿지만 그렇다고 가난하게 살 수야 없는 노릇 아닌가" 하고 이어지는 반응에 답답해 했었다.

  모유 성분을 가진 젖소, 비타민C를 함유하는 황금쌀, 공해 잡아먹는 나무, 백혈병 치료제를 생산하는 흑염소, 초록색 장미, 소아마비 백신을 대신한 바나나, 가물치만한 미꾸라지, 우유를 3배나 많이 생산하는 젖소, 멸종위기종의 복제, 장기이식용 동물 개발에서 맞춤 장기에 이르기까지, 생명공학이 그리는 그림은 가히 휘황찬란하다. "굴뚝 없는 산업인 생명공학이 가져다줄 21세기의 부가가치는 어느 정도나 되는지 아십니까? 자그마치 7천억불이라구요, 7천억불!" "선진국은 생명공학에 얼마나 투자하는지 알기나 합니까? 여기서 따라가지 못하면 우리는 영원히 후진국을 면치 못할 겁니다." 모든 국민이 어려서부터 '후진국 노이로제'에 빠진 사회, 여기에서 생명공학을 반대하는 자는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불순분자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화학공식이나 설비공정 등이 상당히 까다롭지만 핵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들도 핵산업의 반대논리를 펼 수 있다. "당신이 핵에 대해 도대체 뭘 아시오?" 하고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운동 당시의 토론회장에서 도전을 받았을 때, "우리는 핵으로 인한 환경피해를 논하는 겁니다. 그러는 당신은 환경에 대해 좀 아십니까? 우리는 환경에 미치는 핵의 폐해에 대해 좀 압니다만" 하고 되받아칠 수 있었다.
  "당신들은 생명공학에 대해 뭘 아십니까?" 하고 물으면 같은 맥락에서 대응할 수 있어야 하는데, 왠지 대개 막막해 한다. "우리는 생명공학으로 인한 환경피해를 논하고 있는 겁니다" 라고 말하지도 못한다. 생명공학으로 인한 환경피해가 아직 미미한만큼 생명공학에 대한 경각심도 약하기 때문일까. 후손을 기준으로 볼 때, 핵산업 문제보다 결코 느긋할 수 없지만, 일반시민은 물론 시민운동가들조차 그다지 절박해 보이지 않는다. 생명공학으로 인해 자신의 존재 가치가 부정되고 있는 종교계마저 조용하기만 하다.

  생명공학의 진행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빠르지만, 그에 대한 문제제기는 저만치 처지고 있다. 이 책의 원고가 출간을 위해 녹색평론사에 넘어간 이후에도 새로운 사건들은 신문지상을 어지럽힌다. 기회있을 때마다 배아복제의 사회적 합의를 주장하던 우리나라의 한 생명공학 전문가는 무엇이 조급했는지 36세의 남성의 체세포를 배반포 단계까지 복제, 15개국에 특허출원을 했다. 방법에 특허를 인전하는 생명공학을 연구하려면 과정 과정마다 적지않은 로열티를 물어야 한다. 이번에 출원한 특허가 인정되면 우리도 로열티를 받는 '선지 대열'에 입성하는 것인가. "수정 후 14일 이전까지의 배아는 생명이라 하지 말자", "세포 덩어리라고 규정하자"는 의견은, 배아 연구에 군침을 흘리는 연구자 집단에서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 생명윤리학자가 포함된 사회적 합의가 마련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후손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시민사회의 폭넓은 논의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자신이 포함된 연구자 집단에서조차 합의가 안된 상황에서 배아복제를 서두른 그 생명공학자에게는 무슨 말못할 사연이 있었을까. 사회적 합의는 비록 없었지만 "인체를 복제하려는 것이 아닌만큼 불치병·난치병 치료를 위한 연구자의 '충정'으로 이해해달라"며 스스로 자신의 '충정'에 방점을 찍었지만 그는 윤리의 정언명령를 어겼다. 또한 스스로 외치는 충정은 공허한 법, 세상에 충정을 내세우지 않고 연구하는 연구자가 있다던가.
  최근 인간복제 회사인 '클로나이드'사에서 드디어 인체복제에 나서겠다고 호언했다. 한 명을 복제하는 데 20만불, 복제를 위해 수정란을 냉동보관하는 데 5만불을 각각 책정해놓은 그 회사가 내세우는 '충정'은 어떤 것일까. 문제의 그 생명공학자가 방점을 찍은 충정과 다르다고 과연 단정할 수 있을까.

  식품으로 인한 시민들의 안전을 지켜야 할 우리의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유전자조작 콩을 개발한 다국적기업 몬산토의 손을 들어주었다. 안전성 조사를 의뢰하며 몬산토가 제출한 자료만을 검토한 우리의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문제의 콩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체에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다국적기업에게 시민들의 안전을 내맡긴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안전 불감증을 규탄하는 시민단체의 성명서가 발표되고 나서, 풀무원은 자사 제품에 유전자조작 콩을 넣지 않겠다고 천명하고 나섰다. 그나마 다행일지 모른다. 그러나 유럽, 일본, 동남아시아에서는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취급하지 않겠다고 앞다투며 선언했던 다국적식품회사들이, 시민단체의 강력한 촉구에도 불구하고 유독 우리나라에서만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콩, 콩나물콩, 옥수수는 내년(2001년) 3월부터, 감자는 내후년(2002년) 3월부터 유전자조작 표시를 법적으로 실시하고, 비의도 혼입률을 3%로 규제하겠다는 농림부의 느슨한 안(案)과, 콩과 옥수수를 재료로 사용한 식품의 유전자조작 표시를 내년 7월부터 실시토록 하겠다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허술한 안이 집행된다면, 다국적 식품회사들은 합법적으로 표시할 따름이라고 뻣뻣한 자세를 고수할 것이다. 어쩌면 그 다국적기업들은 우리의 식품의약품안전청을 자기네 '우군'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1999년, '마이애미 그룹'이라 칭하는 미국 중심의 유전자조작 농산물 수출국들의 방해로 협약체결이 무산되었던 카르타헤나 '생명공학안전성의정서'가 올해 초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우여곡절 끝에 1년 만에 통과되었다. 1999년 말, 미국 시애틀에서 있었던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밀레니엄 라운드)에서 보여준 세계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의사표시에 마이애미 그룹의 방해공작이 주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세간의 중론이다. 유전자조작 농산물의 국제적 이동에 대한 규제조치의 국제법적 근거가 마련되었고, 협약에 가입한 우리도 그 후속조치를 마련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를 반영했을까. 생명공학의 안전과 윤리에 관한 제도를 정비하라고 빗발치게 요구했던 시민단체의 의견을 이제까지 애써 모르는 척해왔던 우리의 관련 부처에서 갑자기 법안을 마련하기 위해 법석을 떨고 있다. 하지만, 부처간 이기주의나 예산을 둘러싼 힘의 논리는 제도의 근본 취지를 크게 위축시키고 있다. 생명안전과 윤리를 위한 제도를 하위에 놓이도록 규정하는 악성 조항까지 포함하고 있는 산업자원부의 법안은 '생명공학안전성의정서'의 취지가 무색할 만큼 개발 위주의 논리로 일관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시민단체는 물론, 다른 관련 부처와의 대화도 거부한 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그와 같은 악법이 만약 국회를 통과한다면, 우리는 일차적으로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겠지만, 그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 법으로 인해 우리 시민과 후손의 안전을 전혀 확신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정작 문제는 생명윤리다. '생명공학안전성의정서'가 통과된 이후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유전자조작 생물체의 이동 및 사용으로 인한 생명안전에 관한 제도는 어떻게든 마련되겠지만, 생명윤리에 관한 논의는 '클로나이드'같은 기업체에서 인체복제를 선언하는 상황에서도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제도 마련은 요원한 실정이다.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에서 생명윤리에 관한 법안 마련을 위해 공청회와 토론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고, 최근 과학기술부에서 국가생명안전위원회를 구성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생명복제 연구가 앞서나가는 데 비하여 굼뜨기 그지없는 것이 사실이다. 불순한 의도를 가진 생명공학자가 '충정'을 선언하고 우리나라에서 인체 또는 배아복제에 나설지도 모른다는 우려 속에서, 이미 그 불길한 징후는 속속 나타나고 있다.

  필자는, 눈으로 구별하기 어려운 한국의 기름종개(잉어과의 민물고기)속 어류의 유전자를 분석하여 그들 사이의 유전적 유사도와 종(種) 분화연대를 추정하는 연구로 학위논문을 썼다. 유전자를 분석하여 유사 생물종의 진화를 밝히는 논문이었다. 진화학을 공부한 덕분에 생명공학에 대한 문제를 직시할 수 있었다. 그래서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글을 써야 했다. 글을 쓰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운동도 병행해야 했다. 생명공학계가 장밋빛으로 치장한 유전자조작 농산물, 유전자조작 식품, 배아복제, 인체복제, 동물복제의 어두은 실상을 알려야 했다. 토론회에 나가 발언해야 했고, 환경단체에서 발간하는 잡지 등에 투고해야 했다. 환경문제에 천착하다보니 인문·사회 분야의 공부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에 어렵사리 입학하여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그 과정중에 제출한 두 편의 리포트 주제는 생명공학이 초래하는 개인감시와 성차별이었다. 덕분에 스스로 생명공학에 대한 경각심을 더욱 높일 수 있었다. 그렇게 한편 한편의 글들이 모였다.
  생명공학은 단편적인 현상만으로 문제를 제대로 읽을 수 없다. 생명공학이 광고하는 '혜택'들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눈을 감아버릴 때에라야 비로소 가능한 것들이다. 이 책의 글들은, 나름대로 생명공학의 문제점을 근본적인 맥락에서 고찰하고자 노력하며 쓴 것들이다. 그러다 보니 생명공학에 대한 기초적인 설명은 생략하고 있다. 물론 쉬운 내용이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생물학이나 생명공학 전공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전문적인 글은 결코 아니다. '상식'을 가진 시민이라면 누구라고 읽을 수 있는 정도의 글들이다.
  다만 독자들에게 죄송스러운 것은, 이 글들이 한권의 책을 내기 위해 체계적으로 쓴 글이 아니기 때문에 중복된 내용이 적지않다는 점이다. 또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생명공학계의 속성상 지금 보아 진부한 내용도 간혹 눈에 띌 것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매번 다급한 마음에 허겁지겁 써 내려간 글들이라 매끄럽지 못한 문장과 표현도 눈에 띄고, 간혹 지나치게 과격하거나 냉소적인 문구도 있을지 모른다. 민망하지만, 절실한 마음에서 저지른 미욱함이라고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필자가 사무국장으로 있는 '생명안전·윤리 연대모임'의 간사들에게 감사드린다. 어려운 여건에서 함께 노력해온 그들의 헌신적인 희생이 없었다면 이 책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녹색평론사에 감사드린다. 녹색평론사의 관심이 없었다면 이 글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야 했을 것이다.
  무능한 서생이 한권의 책으로 생명공학의 다양한 문제를 전부 담아낼 수는 없다.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은 무척이나 많다. 필요하다면 글도 계속 써야 하겠지만, 함께 하는 운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더 많은 시민들이 생명공학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실천에 나서는 데 이 책이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2000년 9월    
박병상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생명안전·윤리 연대보임 사무국장. 성공회대,인하대 강사

    

  지금 인류사회는 전면적인 사회적 해체, 생태적 붕괴라는 전대미문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우리는 대부분 실제 내용도 모르면서 첨단 과학기술이 이러한 위기를 해결해줄 구세주가 되리라는 막연한 환상을 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기술이 구세주이긴커녕 실은 인간존재와 그 세계를 근원적으로 파괴하는 '악마의 기술'로 드러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무엇보다 우리는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생명조작 기술에 관련하여 근본적인 각도에서 깊이 묻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오늘날 가속도로 진전되고 있는 많은 형태의 생명조작 기술은 그것이 지구의 생명권과 인간의 운명에 어떤 파국적인 영향을 미칠지 본질적으로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과학기술자들의 무조건적인 지식 욕망과 윤리적 무감각과 무책임성에다가 기업의 끝없는 탐욕, 그리고 경쟁력 제일주의의 신화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국가권력의 맹목적 성장주의가 결합하여 생명조작 기술은 무작정 권장되고 있을 뿐이다.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고 고양시킬 뿐만 아니라 그것을 다음 세대들에게도 이어주기 위해서 우리는 생명조작 기술에 관한 주류 언론과 권력의 일방적 선전만을 소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무엇보다 '사전예방 원칙'이라는 이성적인 원리에 입각하여, 우리의 존재와 삶에 가해지는 위협에 맞서 싸우는 용기와 지혜가 지금처럼 절실히 필요한 때가 없었다.

  박병상 박사는 지금 이땅의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침묵과 무관심으로 수수방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가장 치열하게 또 가장 집요하게 이 문제에 맞서 싸우고 있는 대표적인 과학적 지성이다. 나는 과학기술 문제에 관련하여 실로 한심할 만큼 지적, 도덕적인 불모의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오늘날 한국의 현실에서 박병상 박사와 같은 양심의 지성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가 마땅히 감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가 지난 몇해 동안 생명공학의 위험과 비윤리성의 문제에 관해 발표해온 글을 모은 이 책을 읽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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