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더글러스 러미스, 김종철/이반 옮김, 녹색평론사 2002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제목을 보고 마음에 들어 읽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미선이, 효순이가 미국 군대의 장갑차에 깔려 죽은 것이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알 수 있었다. 홉스가 개인이나 집단의 다툼을 국가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강하게 말한 이후에, 지금 세계에는 180개가 넘는 국가들이 생겨났다. 최근 100년 동안에 죽은 사람이 2억명이 넘는다. 그들의 대부분은 자국민이다. 자기 나라의 인민을 보호한다고 만들어진 국가가, 이제는 자국민을 학살하는 폭력집단으로 변한 것이다. 특히 각 나라들은 살인 무기를 가진 군인과 경찰들을 만들어, 전쟁을 치를 때는 물론이요, 정권을 빼앗거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람도 서슴없이 죽인다. 한국 전쟁에서는 무기를 든 군인보다 무장하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이 죽었다.

  1949년에 미국의 대통령이 된 트루먼은,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나라들을 개발한다는 명분으로 자본과 기술을 수출한다. 미국은 자기 나라에서 만든 물건을 쉽게 팔 수 있는 시장을 만들려 한다.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에 자본주의 나라을 건설하고 그것을 원하지 않는 나라들은 폭력을 통해서 해결한다. 이렇게 해서 생긴 국가들의 통치자들은 미국 정치 입안자들의 하수인 노릇을 하며 군대와 경찰을 이용하여 정권을 유지한다. 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주겠다는 사탕발림에 넘어가서, 미국식 자본주의를 택했던 많은 나라들이 삶의 벼랑에서 겨우겨우 살아가는 것이다. 미국은, 소련과 동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사회주의 정책을 포기한 이후, 세계의 경찰 노릇을 자임하며 공공연한 폭력을 서슴치 않고 있다. 세계 도처에는 미군이 없는 곳이 없고, 그들은 그곳에서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른다. 결국 우리나라에서는 미군이 운전하는 탱크 같은 궤도차량에, 어린 영혼이 깔려 죽어도 아무도 처벌받지 않는다. 곧 미국은 이라크를 폭격한다고 한다. 미국인이 만든 물건을 사가지 않는 나라, 미국인이 원하는 석유를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나라들을 폭격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큰 폭력 집단이 되었다. 사람에게 별반 필요없는 많은 물건을 만들고, 그것을 팔아 먹을 시장을 찾기 위해 다른 나라들을 무차별 폭격한다. 때로는 그런 미국식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살인정권을 도와주기도 한다.

  콜럼버스가, 카리브해 섬에 도착하여 그곳 원주민을 보고 에덴동산에 온 것 같다고 했다. 그곳 사람들은 자연농법을 통해 편하게 살며, 일은 하루에 서너시간 밖에 안하고 주로 노래하거나 춤을 추며 놀았다. 원주민들은 뛰어난 이야기꾼들이었고 머리장식, 목걸이, 귀걸이 등을 만들며 삶을 즐겼다. 콜럼버스가 이런 사람들에게 하루 10시간 이상씩 일을 시켰으나, 그들은 말을 듣지 않았고, 결국 총칼을 사용해서야 일을 시킬 수 있었다. 그 원주민들은 저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슬퍼하여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았다. 결국 그 원주민들이 모두 죽고나서 그 종족은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그후, 콜럼버스는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사다가 일을 시키기 시작했다. 이것이 유럽의 여러나라들이 자신들이 만든 물건을 파는 시장을 개척하는 과정이다. 미국도 인디언을 총칼로 죽이고 자신의 나라를, 야만의 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 그러면 이렇게 만들어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또 다른 자본을 수출하기 위해 자기 보다 더 힘이 없거나 임금이 싼 사람들을 고용하여 착취하고 죽이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외국인 노동자들을 노예 다루듯이 일을 시키고 부려 먹는 것이다. 지구의 한쪽, 미국이나 유럽, 일본, 물론 한국도 포함하여 일부 부르조아 계급들은 너무 잘 먹어 병이 되고, 수많은 나라들과 잘 산다고 하는 나라들의 빈곤 계급들은 제대로 먹지 못해 죽거나 병이 든다. 사람들은 보잉기가 한대 떨어지면 신문과 방송에 연일 보도가 되고 관심거리가 되지만, 매일 보잉기 30대 분의 어린아이가 굶주림과 병으로, 어른들이 만든 전쟁으로 죽어가도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사실이 사람들의 머리 속에 현실로 다가오지 않거나 교묘한 제국주의 언론 공작으로 은폐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식 자본주의를 원할히 따르지 않는 많은 나라들의 아이들이 죽음으로부터 방치되어 있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를 지은 더글러스 러미스는 '대항발전'을 외친다. 대항발전이란 무엇일까. 바로 '제로성장'이다. 이제는 폭력을 키우는 기계문명을 거부하고, 그 폭력으로 만들어진 국가체제를 거부해서 진정으로 풍요로운 사회를 만드는 성장을 하자는 것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자본가 계급을 없애버리고 노동자 권력을 세우면 세상이 다 평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토양이, 바다가 없다면, 숨을 쉴 수 있는 숲이 없다면 어느곳에 노동자 권력을 세우겠는가. 중국이나 구소련도 사회주의 체제를 세우면서 최소한의 먹을거리를 보장하기위해 물질문명과 경제성장을 외쳤다. 그러나 보라. 체르노빌 사건으로 수 만명이 죽었고 수십만명이 불구의 몸이 되었다. 중국의 환경오염은 북경거리를 하루만 다녀도 숨이 막히고 시커먼 분진이 몸을 집어 삼킨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미국이 인디언의 문화를 보호하고 그대로 놔두었다면, 구소련과 중국이 경제개발 보다 친환경농법으로 인민들을 다스렸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더글러스 러미스의 '대항발전'은 이것을 꿈꾸는 것이다. 더이상 사람이 살아가는데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은 것은, 이제 그만 만들고 그만 쓰자는 운동이다.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자는 것이다. 기계문명에 의존하는 삶이 인간을 갈수록 피폐하게 만들고 착취와 억압, 폭력의 문화를 만드니 이제는 그만두자는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를 보라. 10여년 전부터 비료를 쓰지 않는 유기농법으로 인민들을 살찌게 하고 있다. 비록 미국의 거센 압력이 있고 인민들이 조금 불편하고 가난의 삶을 살더라도 풍요롭지 않은가. 노래와 춤이 있고 노동의 신성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어떤 사람은 무혈 선거혁명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자본가 권력의 또다른 정권창출 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 모두 미군에게 깔려죽은 어여쁜 두 영혼을 위해 영하의 날씨에도 촛불을 들고 기도하고 저항했다. 물질 . 기계문명이 낳은 미국식 군사문화를 깨부수기 위해 분노했다. 노동자 계급의 해방도, 인류의 평화도, 우리가 사는 이곳, 땅과 하늘과 바다와 산이 온전히 있어야 가능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자손들이, 아니 우리가 사는 동안에 인류는 종말을 맞을 지도 모른다. 지금은 늦었다고 말하는 환경운동가들도 있지만 다시 한번 인류의 안위를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더글러스 러미스가 말하는 '방사능이 있는 유토피아' 일 지라도 이제는 부분별한 기계문명에 의존하는 삶이 아닌 조금 아껴 쓰고 조금 나눠 가지며 인간 태고의 원시성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쿠바처럼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어 땅의 기운을 되찾아야 한다.

  미국이 이라크를 폭격하지 않도록 투쟁하자. 미국이 북녘 땅을 유린하지 않도록 힘을 모으자. 인류 공동의 적인 미국식 자본주의가 더이상 이 세상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깨우쳐야 할 때이다.

  '방사능이 있는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해 자동차를 버리고 자전거를 타고, 살아 숨 쉬는 흙을 덮은 아스팔트와 시멘트를 걷어 버리자. 최소한 지금 부터라도 산에 있는 절을, 자동차로 편하게 가기 위해 땅을 시멘트로 뒤 덮는 일은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흙이 살아 숨쉬도록, 이 지구의 어린이들이 맑은 공기를 마시고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김종철, 이반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 일독을 권한다. 다시 한번 이 땅의 군사 문화로 숨을 거둔 꽃다운 두 영혼 앞에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삼키며 고개를 숙인다. 부디 고이 잠드소서.

2003년 1월 9일 오전 9시 39분 아침이 훤희 밝은 날, 풀무질 일꾼 은 종 복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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