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의 논리  장택희 지음  녹색평론사 2000

책 머리에
 

  언젠가 내가 쓰지도 않은 책(《다시 만나야 한다》)에 이름을 빌려준 일이 있었다. 당시 글쓴이가 함부로 이름을 밝힐 처지가 아니라 하여, 술자리에서 의기투합하여 그리한 것인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경솔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책은 2000부만 찍고 절판되었다. 당시 숨어있어야 했다던 글쓴이는 지금 나름의 분야에서 이름을 얻으셨으니 고마운 일이요, 지나간 시절에 쓰셨던 책들도 정리하실 것으로 기대한다. 그 책은, 주로 원불교 교단의 몇몇 분들이 내 책으로 알고 읽으셨을 텐데, 이제야 저간의 사정을 설명드릴 수 있게 되어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다는 심정이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말씀으로 깊이 사과드린다.

  살림의 뜻을 나름으로 깨달은 지 10여년이 되었고,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 원불교에 입교(1992년)하여 스스로 '살림운동'이라 이름붙인 활동을 시작한 지는 10년이 다 되어간다. 살림운동은 세상의 환경운동을 보완한 운동이요, 이것으로 지구적 환경문제를 본질적인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자신감은 이제 소멸된 지 오래다. 대신 내 생활에서도 내가 주장하는 바가 제대로 실천되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고, 어떤 일들은 생각에 그칠 뿐, 현재로서는 실천할 방도가 좀처럼 잡히지 않아 이 길이 과연 옳은 길인지조차 자신할 수 없을 때도 있었다. 결혼 이후 아내에게마저 이해받지 못할 때나 직장을 얻은 후에 하찮은 일에 지나치게 신경쓴다는 듯한, 대범한(?) 이들의 무언의 멸시와 질타를 받을 때는 오히려 "대붕의 뜻을 참새가 어이 알리오" 하는 오기어린 자위로 견딜 수 있었다. 그런 비척걸음중에도 살림을 향한 내 염원이 꺾이지는 않았는데, 근본적으로 내 생각에 동의하고 실제적인 실천의 노력을 보여준 아내의 지원과 격려가 내 살림운동을 지탱해준 바탕이었음은, 나의 소심함을 생각한다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제 책을 내면서 몇가지 기억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하나, 강남에서 학원강사를 하던 시절(1994년)이었다. 강의에 앞서서 저녁을 먹는데, 젊은 부부가 6개월이나 되었음직한 아기와 단란한 저녁을 먹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철판에 밥을 볶는 음식을 먹고 있었고 그들은 빵류의 음식을 먹는 것 같았는데, 그것부터 내 맘에는 좋지 않았다. 아기는 부모가 주는 대로 우유도 빨고 무언가도 오물오물 먹고는 하였다. 일일이 간섭할 일은 아니기에 내 밥을 먹다가 보는데, 엄마가 아기에게 콜라를 주는 것이었다. 나는 하마터면 일어설 뻔했다. "저런 한심한, 애 잡을 일 있나?" 그러나 콜라 한모금으로 애가 죽을 일도 아니고, 더군다나 한 가족의 단란함을 깨어버릴 권리가 나에게 없음을 깨달았다. 나는 자리에 눌러앉아서 내가 죽을 때까지 살림운동을 할 근거를 확인하였다. 또한 콜라가 이를 녹여버린다는 정보만으로, 이가 하나도 없을 어린애가 콜라를 한모금 마신다고 얼마나 문제가 되겠느냐고 다그치면(이를테면 콜라회사 연구원이), 뭐라고 말할 것인가를 생각하니 마냥 쉬운 일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지나갔다. 어떻게 '초보 부모들'에게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먹을 것에 대한 조심스러움을 전달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지나갔다. 이 책은 그런 고민을 담고 있는 책이니 그때의 부모에게 직접 말해주지 못한 빚을 이제는 내려놓고 싶다.
  둘, 1997년쯤 강의차 부산에서 어디론가 새마을호 기차를 타고 가고 있었다. 옆에는 젊은 엄마가 애를 데리고 앉았다. 애는 왔다갔다 하면서 엄마가 주는 것을 먹고 있었다. 그러는 중에 조그만 소시지를 벗겨 주는 것이었다. 바로 얘기하기가 어려워 일단 책을 펴들고 강의준비를 하다가, 학구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 후 말을 걸었다. 요는 소시지에 아질산나트륨이라는 발색제가 들어있는 것을 아느냐는 것이었다. 젊은 엄마는 나름대로 가려 먹이려고 애는 쓰지만 그것은 모른다고 답한다. 책을 보여주며 아질산나트륨의 문제점을 설명해주었다. 이야기는 살림으로 번지고 살림하는 주부의 고충이 터져나왔다. 남편은 직장동료였는데,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둔 게 다소 후회된다고 하였다. 살림은 실제로는 직장다니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데 남편이 알아주기는 고사하고, 자격지심인지 돈 못 벌어온다고 눈치마저 주는 것 같다고 하소연하였다. 두고봐서 다시 직장을 다니고 싶다고도 하였다. 살림에 대한 내 설명과 주장을 듣고는, 선생님 같은 분의 주장이 책으로 나와서 많은 사람들이 읽게 된다면 좋겠다고도 하였다. 나도 그럴 생각이라고 기약없는 포부를 폈고, 이름모를 젊은 엄마는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고 격려해주었다. 이 책은 그때의 포부를 모두 담지는 못하였지만, 이름모를 젊은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는 첫걸음이니 이 뜻이 그분에게 반가이 전해지기를 기원한다.
  셋, 지금 여덟살인 내 큰딸 서진이가 두살 때니까 1994년인가 보다. 지하철에서 신문을 읽다가 충청남도에선가 서진이 동갑의 여자 어린애가 오염된 지하수를 마시고 청색증으로 죽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당시 오염된 수돗물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보니 애 엄마가 수돗물이 걱정스러워 지하수를 먹인 것인데, 그만 질소비료에 오염된 물을 먹였다는 것이다. 서진이와 같은 어린애가 몸이 푸른색으로 변하며 죽어가는 영상을 떠올리고는 알 수 없는 분노에 몸을 떨었다. 우리 서진이가 안 죽었으니 안심해도 되는 것인지, 나 역시 이름모를 어린애를 죽인 데 동참한 것은 아닌지 ― 지하수를 개발한다고 멀쩡한 땅 여기저기를 쑤셔놓고는 그대로 사라져버리는 나쁜 어른들, 그들 중의 누군가가 생산했을 '맑은 물'을 사먹은 적이 있는 내가 과연 관계가 없을까? ― 하는 혼란을 겪었다. 어쨌든 살림운동의 길을 그만둘 수는 없으리라고 다짐했다. 이제 그 첫 결실을 세상에 내놓는 셈이다.
  넷, 1992년부터 이름없는 강사로서 주로 원불교 교당을 중심으로 하여, 주부단체, 대학생, 초 . 중 . 고등학생, 직장동료들을 대상으로 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느덧 100회가 넘는 '강의경력'을 갖게 되었다. 세상에서 인정하는 학문도 아니고 알아듣기 쉽게 정리가 잘된 분야도 아닌 이야기를 들어주신 많은 분들, 많지는 않았지만 재미있다고 격려해주신 분들, 언젠가 책을 내면 좋겠다고 추켜주시던 분들에게, 그 분위기에 고무되어 그렇게 하겠다고 했던 허공의 약속들이 뭉쳐져 이제 책이 되어 나온다니, 고마움을 조금이라도 갚는 것 같아 벅찬 심정을 감추기 어렵다.

  본문에서 자주 되풀이되는 살림 얘기를 책머리에 다시 늘어놓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단지 내가 살림운동을 시작하면서 의식했던 대상은 주부(主婦와 극소수의 主夫)였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분들이 정작 힘들고 고귀한 일을 하고 있건만 세상이 알아주지 못하다보니 힘이 빠지고 정성이 적어지고 마침내 많은 사람들이 살림을, 어쩔 수 없이 하는 일로 천덕꾸러기 대접을 하는 오늘에 이르렀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살림이야말로 본질적이고 귀한 일이라고 외치고, 그들의 지친 어깨를 주무르고 힘이 닿는 데까지 위로해주고 싶었다. 나 혼자라도 살림꾼의 대열에 합세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내 집 살림의 어려움 때문에 직장을 갖게 되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면서 곳곳에서 본질과 말단이, 선과 후가 뒤집혀진 것을 보았다. 우리사회는 지금 분명히 본질적으로 중요한 일을 우습게 보고, 겉으로 화려하게 드러나고 세상이 박수쳐주는 일에 지나칠 정도로 쏠려가고 있다. 나 역시 이러저러한 일로 힘들 때마다 그러한 박수를 받았으면 하는 간절한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박수갈채에 대한 갈망을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취사선택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절감하게 된다.

  원불교인이 되어 처음으로 참여한 대외적인 일이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의 환경분과위원으로서 '환경윤리 종교인 선언대회'를 준비하고 자료집을 발간하는 일이었다. 그 일의 성과에 대한 평가야 내가 상관할 일이 못되지만, 그때 6개 종교(기독교, 불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천주교)의 환경위원들이 수차례의 모임을 가졌던 일은 나로서는 다시 갖기 어려운 소중한 경험으로 간직하고 있다. 대체로 비슷한 연배들의 모임이었기 때문인지 우리는 서로의 종교에 대해 애정을 갖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때로는 비판도 아끼지 않았는데, 서로 수용하려고 애썼던 기억은 흐뭇하고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막내종교'의 대표(?)로서 거대교단을 향해 비판과 호기어린 장담을 했던 것 같다. 당시 통계에 따라 종교인의 수가 우리나라 인구수를 넘기도 하고 인구의 반이 된다고도 하는 자료에 근거하여, 거대교단은 더이상 포교에 힘쓸 것이 아니라 이미 보유한 교도(신자, 신도, 교인)의 교육과 훈련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환경문제, 정치적 부패와 경제적 불평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가 만연할 때 교도수가 많은 종교인들은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하염없이 부끄러운 심정으로 참회해야 한다고 기염을 토했고, 적지 않은 동의를 얻기도 한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참된 원불교인'의 수가 인구의 3.5%(바닷물 속의 염분의 농도)에 이르면 그 인구집단이 이루는 사회에 분명히 무언가 달라지는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데, '참된 원불교인' 대신 '진정한 종교인'으로 치환해도 이 말이 성립해야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지금 우리사회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도, 종교인의 수가 인구의 반이라느니 인구수를 넘는다느니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종교인'이라고 인정할 만한 사람이 전체 종교인의 10분의 1도 채 안된다는 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살림운동의 대상에 종교인을 포함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6개 종교의 환경위원들이 원만히 협력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이가 비슷하다는 이유만이 아닐 것 같다. 환경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대원칙에 이견을 가진 교단이 없었고, 저마다 자신이 받아들이고 있는 종교의 가르침이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나름대로의 근거와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때 나는 그들의 종교인으로서의 신앙심을 환경문제의 해결에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 일이 옳은 일이라면, 그들이 받아들인 교리를 근거로 각색한 가르침을 그들이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종교인을 막론하고 일상생활을 영위해나갈 것이므로 그 일상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리적 근거 ― 모든 일은 연결되어 있다거나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나 내 안에 한울님이 있다거나 등등 ― 를 발견하고, 그 실천에서 기쁨을 경험할 수 있다면 살림운동이 분명히 열매를 맺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일은 내가 시작한 일이 아니요 이미 많은 선지자들에 의해 오래 전부터 시작된 일이며, 나는 스스로 기쁨에 겨워 그 대열에 내 방식으로 합류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원불교인을 대상으로 쓴 글을 중심으로 엮어진 것이지만, 그 글을 쓰는 동안 내 마음속에는 '원불교인'을 '종교인'으로 바꾸어도 내 글이 유효하다는 인식이 떠나지 않았다. 녹색평론사가 이 책을 내는 것도 그러한 내 생각이 터무니없지는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니, 이제 남은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사족처럼 덧붙인다면 나는 종교인의 종교인됨이 일주일에 한번 또는 사정에 따라 종교의식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일상생활과 자신의 방식을 통해 세상의 정화(淨化)나 공익(公益)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그는 더이상 종교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나 이렇게 글로 쓰거나 마구 떠벌일 만큼 스스로에게 당당한 것은 아닌데, 종교인으로서 종교인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말로 이해해주기 바란다.

  주부와 종교인을 살림운동의 대상과 동지로 삼는다는 말은 참으로 큰 욕심이라고, 또는 약았다거나 비현실적이라는 질타를 받을 수도 있지만, 살림운동이 지향하는 바를 받아들인다면 그렇게 안할 수도 없으니 양해를 구하는 바다. 또한 스스로 실천에 힘쓰기를 10년이 넘었지만 무엇을 했다고 할 만한 것이 없고, 그렇다고 별스런 재미가 있는 일도 아니어서, 지금까지 묵묵히 그 일을 감당해온 주부와, 종교의 종류를 막론하고 희생의 가르침을 받아왔을 종교인을 빼고서 어찌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면 주부와 종교인이라는 범주는 살림운동의 주요한 두 집단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이러한 생각에 많은 종교인들이 동의하고 먼저 자신의 교인들에 대한 교육과 훈련, 스스로의 실천에 애써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래서 어느 종교인들이든지 식당에서, 옷차림에서, 주거생활에서, 자녀교육의 측면에서 무언가 비종교인들과는 다르더라는 말을 듣는 '선의의 경쟁'을 하자.
  이를테면 언젠가 환경운동가들이 대전의 가톨릭 농민회관에서 2박3일의 훈련을 한 적이 있는데, 밥을 먹는 시간에 내가 가톨릭 농민회관의 식사방식과 남은 음식이 적은 것에 대해 칭찬하는 말을 했더니, 마주앉은 젊은 여자분이 여기도 훌륭하지만 원불교의 '삼동원'이라는 훈련원만은 못하다고 하는 것이었다. 원불교인이냐는 내 질문에 자신이 원불교인은 아니지만 삼동원에서 훈련을 한번 받았는데, 그때 200명 가까운 교무님들이 함께 훈련중이었는데도 잔반그릇의 바닥이 깨끗하게 보이더라는 인상적인 경험을 전해주는 것이었다. 어느 종교든 이에 못지않은 훈련방식과 실천을 해내는 집단이 있을 것이다. 살림운동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은 아니라지만 필요하다면 서로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서로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어서 세상의 잘못된 부분을 치유할 일이다. 이 시대는 한없이 자기를 감추는 겸양만이 미덕이 아니다. 아니, 무엇이나 되는 듯이 한사코 감추려는 것은 오히려 오만일 수도 있다.

  살림에 관해 한가지 말해놓고 싶은 것은, 나의 살림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은 전혀 에둘러 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밥을 잘 먹으려는 노력이 세상을 살려놓을 것이라고 나는 믿고 아직 까마득히 부족하더라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 '잘 먹으려는 노력'은 그야말로 끝이 없는 폭과 깊이를 갖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먹고, 마시고, 숨쉬고, 잠자고, 생각하고, 웃고, 울고, 말하고, 듣고, 대소변 보고 그것을 처리하는 일 등등 많은 이들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던 일 ― 그러나 없을 수 없고, 없어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것들(공기며 물, 해와 달, 강과 바다, 산과 들, 갯벌과 연안 등)에 대해 인류가 보다 겸허하고 조심스러운 자세로,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임을 하루라도 빨리 깨닫고 받아들여야 한다. 자동차다 컴퓨터다 인터넷이다 생명공학이다 나노테크놀로지다 하는 소위 첨단기술이 살림의 본질에서 볼 때, 무엇을 얼마나, 인류를 포함한 전생령들을 얼마나 평화롭게 해줄 것인가에 대해 나는 한없이 걱정스럽고 의심스러운 눈길을 거둘 수 없다. 알고 하면 살림이요, 아무리 비슷하게 흉내를 낸다 하더라도 모르면 죽임이 될 수 있음을, 그렇게 지금 우리 눈앞에 이미 모르고 저지르는 죽임이 만연하고 있음을 나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나 역시 10년이 다 되도록 개론을 되풀이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어쩌면 수많은 각론은 내가 감당할 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원리에 공감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생활에서 반복연습하는 실천노력을 통해 가장 적절한 살림의 방법들을 터득하고 전파해야 할 일이 아닐까? 물론 내 몫이 있다면 기꺼이 맡을 것이다. 그것이 앞으로의 나의 삶속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하고 다짐할 뿐이다.

  이쯤에서 독자들에게 미리 말씀드릴 일은, 이 책의 글들이 한권의 단행본으로 일관성있게 쓰여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살림에 대한 개론적 설명부분이 몇편의 글에서 반복되고, 살림이라는 용어에서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많은 분야 중 설명하지 못한 부분도 나타나는 등의 미완성 작품임을 인정한다. 본래 꼼꼼한 성격이 못되는 데다 오래 전부터 간직했던 "나이 40에는 한권의 책을 가지고 싶다"는 소망을 이룰 것이라는 부푼 마음에 그대로 책을 내자는 제의를 받아들였다. 이 책이 단지 시작일 뿐이라는 무책임한 변명과, 언제라고 완성품임을 자신있게 인정할 날이 오겠느냐는 생각도 있었다. 여기저기에 발표한 난잡한 원고뭉치를 검토하여 이 정도로 정리해준 녹색평론사의 식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흔히들 하는 인사말로 생각했지만 정말로 이 정도의 작품이 된 것은 녹색평론사의 덕분이요, 글 중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글쓴이의 잘못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 정도라도 다양한 주제의 글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외면으로 드러난 것이 없던 무명의 글쓴이를 발굴하고 글쓰는 기회를 준 월간 원광사(圓光社)의 덕분이다. 특히 3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귀한 지면을 맡겨주시고, 흔히 생각하는 환경문제의 범주를 내멋대로 넘나들며 쓴 글을 그대로 실어주고 인내해주신 편집진의 배려에는 말씀으로 다 못 드릴 은혜를 느끼고 있다. 그러는 중에 조금씩이나마 살림론의 윤곽이 드러나게 되고, 덕분에 교단내의 학회에 글을 발표하거나 원불교의 울타리를 넘어서 원고청탁을 받게도 되고 마침내 적지 않은 생각의 결과물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녹색평론사에서 책을 낼 기회가 생겼다는 말씀에 흔쾌히 원고를 넘겨주신 것에도 원광사에 깊이 감사를 드린다. 입교한 지 얼마 안되어 교당 행사에서 김밥이 남겨지는 것을 보며 이래서 되겠느냐는 안타까움을 열띠게 토로하던 초입교도를 강단에 세워주신 무타원 문국선 교무님이, 글쓴이를 지금의 살림운동가로 이끌어주신 첫 스승님이었다. 이어서 여기까지 오도록 이끌어주신 스승님들과 동지들을 다 거명하지 못함을 용서해 주시리라 믿는다.

  아무리 폼을 잡아보아야 나는 결국 말꾼인 셈이다. 살림으로 나를 낳고 길러주시고도 외로움 속에 돌아가신 어머님, 결혼 후 처남네와 교당 등 주위로부터 김치를 얻어먹으며 두 생명을 셋방을 전전하며 키워낸 아내, 그리고 그렇게 잘 자라준 두딸에게 하염없는 죄책감과 갚을 길 없는 고마움을 전할 뿐이다. 또 그렇게 수없는 고통 속에서도 묵묵히 살림을 도맡아온 세상의 수많은 어머니와 아내들에게 이 책이 위로가 되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불과 40년을 살았지만 진실하고 간절한 염원은 이루어지는 것 같다는 몇가지 경험을 하였다. 살림의 세상을 기다리는 내 염원이 진실하고 간절한 것이라면 적지 않은 동지를 얻을 것이요, 그렇게 살림의 세상은 이루어지고야 말 것으로 믿는다.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내 염원이 멋만 부린 껍질이거나 정성이 간절하지 못한 때문일 것임을 나는 믿는다.

2000년 12월     
장택희     


  장택희

  공학박사. 원불교 환경연구회 회원. 한국철도차량주식회사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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