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 내 발바닥  김곰치 르포·산문집  녹색평론사 2005

책 머리에

발바닥으로 글쓰기
 

  이 책의 알짜는 제1부에 실린 4편의 르포이다. 르포란 어떤 글일까. 발바닥으로 쓰는 글이 르포겠지. 일반적으로 르포라는 글이 시효가 오래 가기 힘든 형식의 글이라는 것을 안다. 그것은 글쓰기에 대한 이상한 패배감을 안겨준다. 나는 4편의 글을 쓸 때 르포를 쓴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순수한 글’이라고 생각하려 애썼다.

  편마다 내 글쓰기의 몰입은 최고 수준에 달했다. 새만금 갯벌과 서울 북한산, 그리고 강원도 사북. 총 4번의 취재 현장에서 나는 언제나 울어야 했다. 태백석탄박물관의 어두운 실내에서 내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었던 것을 특히 잊지 못하겠다. 내가 작가라는 자의식을, 소설을 쓸 때보다 4번의 취재에서 더 격렬하게 만날 수 있었다. 글의 성취도를 떠나 순수한 열성과 집념의 면에서 오직 작가만이, 아니 나만이 쓸 수 있었던 글이라고 나는 지금도 믿고 있다. 눈물, 아니 울음이 나를 그렇게 믿게 한다.

  4편의 글이 진리와 제대로 손을 잡았다고는 물론 자신하지 못한다. 사실의 누락과 오해도 꽤 있고, 무엇보다 공학적이고 실용적인 지식에 나는 배타적일 때가 많았다. 글을 쓰면서 누군가의 편을 들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사실을 잘 의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편든 것은 다른 누구가 아니었다. 내가 편든 것은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 

  민중의 삶은 주류 지식에서 비껴있기 마련이고, 주류 지식을 민중은 불신하면서도 그 파괴력을 무서워한다. 내 글도 그렇다. 나는, 예를 들어, 고속철도공단이나 새만금사업단 사람들과 인간적으로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가 잘 있지 않았고, 나 스스로 만남에의 노력을 별로 행하지 않기도 했다. 즉 불신과 두려움 때문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빈한하게 된 것이 그렇다고 크게 아쉽지는 않다. 다시 말하건대 내가 만난 진실은 내게 커다란 자신감을 주었고, 한없이 진실에 충실하고 싶었고, 불신과 두려움을 직접 맞닥뜨리지 않고도 가차없이 던져버릴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이것이 내 글의 약점이면서 진정한 강점이 되는지 모른다.

  글을 쓴 시점과 비교할 때 현장마다 이런저런 변화가 생겼지만, 글에 담은 나의 울음 섞인 노래만은 이 세상의 아픈 누군가에게 연대와 격려가 되리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나 자신의 진실부터 다시 한번 무조건 믿고 싶다. 보다 완전한 몰입으로 취재하고 계속 오직 나만의 글을 쓰고 싶다. 그것이 내게 붙은 내 발바닥의 복된 쓰임새일 것이다.

  발바닥으로 쓰지 말고 온몸으로 쓰라고? 발바닥은 몸 아래의 가장 밑바닥이므로 사실 위의 모든 것을 짊어진 글쓰기다. 발바닥으로 쓴다는 것은 곧장 온몸으로 쓴다는 것이다. 손으로 머리로 엉덩이로 글을 쓴다고 착각하고 살았지만, 발바닥이 쓰는 글이 최고의 글쓰기라는 것을 새삼 알겠는 기분이다.

  눈물은 머리의 것, 울음은 온몸의 것이다. 

 

 《녹색평론》과 또 다른 지면에 낸 글도 함께 엮었는데, 내 한몸 한마음에서 나왔기에 책을 엮은 뜻에서 어긋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계간지에 발표한 단편 <우주소년 철진>도 그러하다고 믿는다. 지금 출판계의 상식과는 맞지 않는, 여러 장르의 글이 모인 이상한 책이 되었지만, 나는 그럴싸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녹색평론 편집실 식구들이 그럴싸한 책이라고 나보다 먼저 생각하여 주었다. 고맙습니다.

  김종철 선생이 처음 내게 새만금 갯벌 취재를 권하며 하신 말씀이 있었다. “한국문학의 어리석은 관습에 매달려 계간지나 독자들 꽁무니나 쫓아다니지 말고, 김곰치 씨만이라도 이 땅의 산과 바다, 강, 나무한테 사랑받는 작가가 되지 그래요.” 선생과의 복된 만남이 이 책을 낳았다. 고맙습니다.  

 

  책이 손에 쥐어지면, 나는 기뻐하고 또 슬퍼할 것이다.

2005년 6월  
김곰치  


  김곰치

  1970년 경남 김해 출생.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199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푸른 제설차의 꿈>이 당선되어 등단.
  1999년 장편소설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로 제4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


  오랫동안 우리의 역사적, 사회적 현실에 관계하여 사람들의 의식을 날카롭게 하는 데 무엇보다도 크게 기여해온 것은 문학이었다. 그 문학이 언제부터인지 하찮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 결과 문학은 이제 기껏해야 동호인들끼리의 취미활동으로 떨어져버린 게 아닌가, 나는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다.

  문학이 자기 본연의 역할, 즉 가장 근원적인 정치적 발언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삶의 밑바닥으로 들어가서 거기서 보고 들은 것을 정직하게, 비타협적으로 얘기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인도 국가와 엘리트들에 의해 사랑받는 작가가 아니라, 인도의 강과 계곡의 기억 속에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당돌한 선언과 함께 분별없는 개발과 전쟁을 끝없이 부추기고 합리화하는 ‘세계화’의 지배논리를 뿌리로부터 거부하는 예리한 정치적 에세이를 계속해서 발표해온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의 경우는 새로운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전범이 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의 소설가 김곰치에게서 나는 여러 해 동안 로이의 경우에 못지않은 가능성을 보아왔다. 그는 예민하고, 섬세한 감수성의 소유자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산하와 거기에 기대어 살아온 풀뿌리 삶이 걷잡을 수 없이 허물어지는 사태 앞에서 깊이 마음 아파하고 슬퍼해왔다. 그러나 그는 자폐적인 슬픔에 갇혀있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발품을 팔아 현장으로 달려가 몸소 그 파괴를 실감하고, 그러면서 그 파괴의 한가운데서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있는 강렬한 생명의 기운을 발견해왔다. 그러한 발견과 탐색의 기록으로서, 김곰치의 이 르포-산문집은  탐욕으로 일그러진 이 어리석은 시대에 대한 가장 정직한 문학적 증언의 하나가 될 것임을 나는 의심치 않는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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