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  홍기빈 지음  녹색평론사 2006

서문
 

  한미 FTA 자체의 위험성, 그리고 이것을 현재 추진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행태와 방법 등에 대해 뜻있는 많은 이들이 말과 글로써 지적하고, 또 우리사회에 널리 알리고자 노력해 왔다. 그런 분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지금 한국사회는 뜬금없이 등장해 마치 눈먼 탱크처럼 폭주하고 있는 한미 FTA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와 저항의 움직임들로 가득 차 있다.

  FTA 전반에 대한 비판과 분석의 자료들을 찾는 것은 더이상 어렵지 않다. 하지만 한미 FTA는 단지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다. 금융에서 농업, 서비스를 거쳐 숱한 부문에서 무수한 쟁점들과 난제들이 득실대는, 그야말로 빈대와 벼룩으로 가득 찬 초가집이다. 꼼짝없이 그 초가집에서 대대손손 삶을 펼쳐야 하는 우리들은, 그래서 한미 FTA가 이대로 체결되면 빈대와 벼룩과 온갖 흉측한 벌레들이 창궐하여 사방에서 물어뜯기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당연히 느끼게 된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을 진정한 부조리극으로 만드는 것은 따로 있다. 이 모든 빈대와 벼룩을 하나하나 잡아내는 대신, 초가지붕 위에 석유를 흠뻑 끼얹고 ‘조속한 한미 FTA 체결’이라는 성냥불을 당겨, 사람이고 벼룩이고 한번에 다 태워버리자는, 그렇게 하면 초가집 전체는 물론 그 안의 사람도 벼룩도 모두 경쟁력 있는 존재로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고 외쳐대는 정부와 관변 지식인들의 태도이다. 과연 초가집 안의 우리들이 그 불길 속에서 경쟁력을 담금질하여 미국 시장으로, 세계 시장으로 훨훨 날아가는 불새로 거듭나게 될까?

  우리는 이미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거의 10년의 시간을 겪어오면서, 이러한 종류의 단순무식한 신화 속에 숨어있는 단맛, 쓴맛을 실컷 보아왔다. 그때 이후 지금까지 “지구적 시장경제 시대와 경쟁력 강화”라는 거대 담론을 앞세워 모두 다 허리띠 졸라매고 불새로 거듭나면 된다는 전도사들의 주장은 나라 전체에 넘쳐났고, 또 모든 정책도 제도도 그들의 책임 하에 만들어지고 강행되었다.

  하지만 ‘IMF 위기’는 갈수록 더 깊이 우리의 삶 속으로 파고들고 있으며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그런데도 “지구적 시장경제 시대와 경쟁력 강화”를 외쳐댔던 이들 중 아무도 책임을 지거나 지적인 반성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속한 한미 FTA 체결을 통한 업그레이드”라는 또하나의 ‘불새 프로젝트’가 등장한 것이다. 

  지난 수년간 우리는 금융권을 필두로 하여 주요한 기간산업 부문과 수익성 높은 자산들이 대거 외국 자본의 손으로 넘어가는 것을 지켜본 바 있다. 불새는커녕 괜히 ‘불닭’이 되어 누군가의 주안상에 오르게 되지나 않을까 두렵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한미 FTA라는 신종 ‘불새 프로젝트’에 대해 대단히 조심스럽고 또 우려하고 있다. 섣불리 그에 대한 찬반을 논하기 전에, 다시 우리가 사는 초가집 지붕을 자세히 살피면서 한미 FTA라는 거대한 ‘딜’의 ‘패키지’에 도대체 어떠한 내용이 들어있는지 꼼꼼히 따져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 책은 그 ‘패키지’ 중에서도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라는 치명적인 독소조항의 문제점을 집중해서 지적하고자 한다.

  이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한미 FTA 협상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폭로되어 몇몇 지식인들이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였다. 정부의 본분은 이렇게 민간에서 제기되는 비판과 문제의식을 수렴하고 공론화하여 국민적 합의를 위한 토론의 장을 열어가는 것이리라. 하지만 한국의 외교통상부와 재정경제부는, 이 책 제7장에서 보겠지만, 그러한 공론의 장을 준비하기는커녕, 그러한 비판은 완전한 무지의 소치이거나 불순한 의도에서 나온 선동에 불과하다고 매도하였다. 게다가 한미 FTA에 포함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우리 모두의 번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고 우기면서 국민들을 ‘계몽’하려는 완강한 자세를 취해왔다.

  이 책은 그러한 한국 정부의 ‘계몽’에 대한 ‘반계몽’을 위해 씌어졌다. 이러한 일방적인 ‘계몽’의 논리는 피계몽자뿐만 아니라 계몽자 자신도 매한가지로 희생시킨다. 일방적 논리를 휘두르고 또 거기에 휘둘리기 이전에, 가급적 폭넓은 정보를 바탕으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에 대해 냉철하게 살펴보자는 것이 이 책의 의도이다.

  이 책에서는 단순히 몇개의 사례를 들고 나서, 그로부터 도출된 주장을 목소리 높여 외치지는 않는다. 그 대신 좀 따분하더라도 차근차근 문제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순서대로 엮어나가는 방법을 취하였다. 그래서 서장에 해당하는 제1장 다음의 제2, 3, 4장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역사적 기원과 진화, 그 성격의 정치적?제도적 분석 등과 같은 이론적 논의로 이루어져 있다. 만약 제2장부터 제4장까지의 ‘이론적 논의’가 얼른 와 닿지 않거나 지루하다면, 그리고 좀더 실천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고자 한다면,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실제’에 해당하는 부분인 제5, 6, 7장부터 먼저 읽고 나서 제2장으로 돌아오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설령 제5, 6, 7장만 읽는다고 하더라도, 지금 한미 FTA와 관련하여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문제점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와 시사점을 얻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19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공개적으로 동료 시민들에게 어떤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의 견해와 논지를 간략하게 담은 팜플렛을 자비로 출판하는 문화가 있었다. 그러한 팜플렛의 전통은 책 출간의 홍수와 인터넷의 등장, 그밖의 온갖 매체의 출현으로 이어진 20세기를 거치면서 아쉽게도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물론 정식 출판물의 형식과 분량을 갖추고 있지만, 그 의도는 19세기까지의 ‘팜플렛 정신’을 닮고자 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충분한 학식을 갖춘 저자가 권위 있는 견해를 제시하는 학술서적이나, 어떤 분야 혹은 사안에 관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모아 엮은 실용서 같은 ‘책’이라기보다는, 한 시민이 다른 동료 시민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의도로 자신의 지식과 견해를 나름대로 조리있게 정리하여 전달하려는 ‘팜플렛’으로 읽혀지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한미 FTA에 찬성하건 반대하건, 또는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에 대해 찬성하건 반대하건, 반드시 자신의 견해를 벼려 이 문제에 대한 공공의 토론을 일으키는 데에 일조하게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2006년 10월  
   홍기빈  


  홍기빈

  1968년 서울 출생.
  서울고,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및 외교학과 대학원 졸업.
  현재 캐나다 요크대학 박사 과정 중. <한겨레>. 《말》, <프레시안>, <대자보> 국제정치경제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저서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역서《다수 문명에 대한 사유》, 《권력 자본론: 정치와 경제의 이분법을 넘어》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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