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  홍기빈 지음, 녹색평론사 2006

  

한미 FTA는 어떻게 나라를 죽이는가

이병천

 

  대한민국에 한미 FTA라는 ‘괴물’이 나타났다. 이 괴물의 속도는 매우 빠르다. 우리는 지금 미친듯이 질주하고 있는 이 낯선 괴물을 막아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우고 있는 중이다. 영화가 아니라 생생한 현실이다. 막 광복 60주년을 지난 시점, 근대화 이중 혁명이라 불리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격변의 역사가 모두 합쳐 약 50년이 되는 시점, 민주화만으로 보면 곧 20년을 맞이할 시점, 그리고 1997년 IMF 위기 이후 거의 10년이 되는 시점에서 말이다. 한미 FTA라는 괴물과의 싸움 판도에 따라 대한민국의 미래, 그리고 이 땅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판이하게 달라질 것이다.

  이제야 사람들은 꿈에서 깨어나 민주화의 시대가 참으로 얄궂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즉 그 얼굴의 왼쪽편은 군부독재를 청산하고 정치적 민주화로 이행하는 밝은 빛을 보이고 있으나 그 오른쪽은 경제적 자유화라는 어두운 빛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민주와 공공과 생태와 평화를 억압하는, 그리하여 ‘모두를 위한 나라’를 죽이는 야만적 시장-자본사회로 가는 대전환 시대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이제 1987년 6월에서 시작된 민주주의의 한 순환은 종말을 고했다. 오늘의 6월은 더이상 20년 전 그날의 6월이 아니다. 지금 여기서 다시 우리시대 진보를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민주화 시대가 보여주는 이같은 양면 분열증, 한편으로 권위주의를 역사의 저편으로 몰아낸 정치적 민주화, 다른 한편으로 야만적 시장사회를 불러들이면서 민주, 공공, 생태, 평화를 억압하는 경제적 자유화(liberalization against democracy, commons and publicness)를 확실히 준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진보, 새로운 6월의 시대는 반(反)신자유주의 운동의 본격적 시작으로 개막되고 있다.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위한 노력도 이 운동과의 결합 위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자유화하는 시장과 자본의 보수혁명은 일찍이 폴라니가 말한 바, 나라 안에서 사회적 규제력으로부터 탈착근(disembedded)될 뿐만 아니라, 국민국가의 공적 규제력으로부터도 해방된다. 따라서 그것은 이중적으로 탈착근, 탈공공화된다. 이대로 간다면 한미 FTA는 자본의 세계화 시대 시장사회로 가는 한국적 길에서, 1997년 위기와 구조조정에 이어 제2차 신자유주의 보수혁명의 성격을 가지게 될 것이다. 참여정부는 자진해서 자기 손발을 옭아매는 길, 나라의 주권과 공적 규제력을 양도하고 공동화하는 위험천만한 길로 들어섬으로써 대한민국을 국제 자본의 무책임이 극에 달할, 그들의 정복과 잔치 마당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이 길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길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한미 FTA를 통과함으로써 이제까지 우리의 역사에서 한번도 민주주의, 민주적?생태적 공공성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 본 적이 없는 한국의 자본주의는 이제 민주화=자유화의 시대에 유례없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 즉 ‘국제 투기자본-재벌-한국 정부’의 삼각 지배 복합체가 주도하는 자신의 특권적 무책임의 역사의 새 장을 쓰게 될 것이다.

  반면에 대다수 보통 사람들은 이 삼각 지배 복합체 아래서 이른바 ‘자유 무역’, ‘투자자 보호’, ‘공정 경쟁’, ‘투자’, ‘수용’, ‘국제 중재절차’, ‘기업하기 좋은 나라’ 등등의 말이 과연 뭘 말하는지, 무엇보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라는 말이 뭘 말하는지, 그 아주 쓰디쓴 맛을 보게 될 것이다. 한국의 포스트-개발독재, 본격적 시장사회로의 이행은 그래도 이 땅에서 애착을 갖고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선량한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 삶을 무책임한 자본권력의 온갖 횡포와 시장경쟁의 정글 속으로 밀어넣으면서 그 삶의 틀을 송두리째 뒤집어놓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전환은 사회?경제적 전환을 넘어 정치적 민주화의 진전에도 족쇄를 물리는 역습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나아가 대북 관계, 정치외교관계에서도 남한사회의 주권적 운신 능력에 단단히 고삐를 죌 것이다. 그러면 뒤늦게야 사람들은 그 대척점에 있는 나라의 주권, 공공성, 민주주의라는 말이 정말 무엇을 말하는지 뼈저리게 통감하게 될 것인데, 그때는 이미 늦었다.

  언젠가부터 그런 생각을 갖고 공부를 해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다시 요동치는 대전환의 소용돌이 속에 살면서 새롭게 그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즉 보편적인 것, 영원한 것을 추구하되 구체적인 때와 장소에 상응되게, 동료 시민들과 함께 길을 걸으며 더불어 소통하면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큰 것, 높은 것, 원대한 것, 저 우주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되, 아니 오히려 그것를 위해서라도 작은 것, 낮은 것, 미약한 것, 원자적인 것, 보이지 않는 것, 들리지 않는 것, 소멸한 것, 패배한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들이 연출하는 상호의존적인, 상관적 그물망의 숨결과 교감하고, 사랑하고, 애도할 줄 아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옛것, 고전, 선각, 대가, 그리고 외래적인 것으로부터 늘 배우고 익히되, 거기에 갇히고 그것을 물신숭배하면 위태로우며, 반성적으로 사유하고 무소의 뿔처럼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판잣집이라 해도 자기 집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뿐만 아니라 한 나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오죽 좋을까.

 

  홍기빈 형이 참 솜씨 좋게, 제 때에, 정말 좋은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 나의 발문은 한낱 군더더기에 불과함을 금방 알아챌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팜플렛’으로 읽혀지기 바란다고 쓰고 있다. 독자들은 ‘팜플렛’ 하면 무슨 생각을 떠올릴까. 나는 이 책이 한미 FTA라는 괴물의 정체를 밝히는 시민을 위한 일급의 비판적 계몽서, 살아있는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주는 책, 나아가 보편적인 것을 추구하되 시간과 장소에 알맞게 동료 시민들과 소통하는 글쓰기, 매우 작은 것에 아주 큰 것을 담아넣을 줄 아는 글쓰기, 그리고 옛것에서 배우되 굳건히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훌륭한 글쓰기의 정신에 딱 맞는 바로 그런 책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와 함께 팜플렛 정신, 팜플렛 문화를 살리는 운동을 시작해야겠구나 하는 마음까지도 생긴다.

  누가 날더러 왜 한미 FTA를 반대하는가, 왜 한미 FTA가 문제인가 딱 한 가지만 말해 보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바로 이 책의 주제인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꼽을 것이다. 이 제도야말로 한미 FTA를 통해 국제자본의 활동이 얼마나, 어디까지 무책임해질 수 있는지, 그 무책임과 특권과 횡포가 한 나라의 주권과 민주적?공공적 규제력을 어떻게 철저히 파괴하고 짓밟고 무력화시키는지, 그리하여 어떻게 일반 대중의 삶을 위기에 빠트리게 되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기본적 내용은 이미 잘 알려져 있고 선행 연구도 있다. 그러나 이 책만큼 그 정체를 적확하고 생생하게, 다면적으로, 깊이있게, 대중적으로, 재미있게 파헤친 연구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혹시 당신은 한미 FTA라는 ‘낯선 괴물’의 정체를 알고 싶은가. 당신은 한미 FTA가 얼마나 위험한지, 왜 한미 FTA가 나라를 죽이는지 알고 싶은가. 당신은 한미 FTA를 반대하는 이유를 알고 싶은가. 당신은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대해 알고 싶은가. 한미 FTA가 우리나라를 ‘선진화’시키고 업그레이드시킨다고? 한미 FTA가 동반성장의 길이라고? 한미 FTA를 통한 무분별한 개방만이 살 길이며 한미 FTA를 반대하는 자들은 나라를 망하게 할 쇄국주의자라고?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글로벌 스탠더드이고 그래서 한국이 이를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고?

  당신은 이같은 정부의 말이 얼마나 텅 빈 거짓말인지 알고 싶은가. 만약 그렇다면 나는 당신에게 가장 먼저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그렇지만 당신 혼자만 읽지 말고, 부디 당신의 친구, 그 친구의 친구와 더불어 이 책을 읽는 재미를 함께 하시기 바란다. 한미 FTA의 심장을 향해 쏘는 화살이라고 해도 좋을, 이 아담하지만 날카롭고 날렵한 팜플렛을 말이다. 그러면 당신은 한미 FTA 추진에 반대하는 시민 ‘12014277+1’명 서명운동에 동참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날 것이다.

 


  이병천 ― 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참여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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