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우석훈 지음, 녹색평론사 2006

  

'괴물'로부터 가족과 이웃을 지키려면

노주희

 

  사실 이 책의 제목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라니, 도대체 누가 이런 재미없는 제목을 붙였단 말인가? ‘한미’도 ‘FTA’도 ‘폭주’도 다 건조한 단어일뿐더러, 제목에서부터 노골적으로 “나 는 한미FTA를 반대한다”는 냄새를 팍팍 풍기며 독자층을 좁히고 있다는 점이 못마땅했다.

  이미《낯선 식민지, 한미FTA》(이해영 저, 메이데이),《한미FTA 국민보고서》(범국본 편, 그린비),《한미FTA, 이미 실패한 미래》(사회진보연대 외 저, 사회운동) 같은 좋은 책들이 나와 있지 않은가. 지금 한미FTA와 관련해 우리사회에 새로 추가돼야 할 책은 한미FTA를 신격화하다시피 하는 정부의 장밋빛 홍보물도 아니요, 그렇다고 한미FTA라면 무조건 반대하는 것 같은 인상을 풍기는 반(反)FTA 출판물도 아닐 터였다.

  내가 기대했던 책은 “도대체 FTA가 뭣이다냐”며 고개를 갸우뚱하셨던 우리 어머니나 “한미FTA가 나 먹고사는 거랑 무슨 상관이람” 하며 손사래를 치던 이웃집 아저씨가 읽을 만한, 말하자면 “한미FTA, 이 한권이면 끝난다” 류의 ‘대중적인’ 책이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한미FTA 폭주를 멈춰라》가 바로 그런 책이었다. 이 책 속에는 연봉, 종사업종, 가족수, 주택소유 여부 등 국민들 각각이 처한 상황에 따라, 자신의 삶을 한미FTA와 연결해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하는 단초들이 제공되고 있다. 내가 연봉 3,000만원을 버는 4인 가족의 세대주라면? 판교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상태라면? 동네에서 미장원을 운영하고 있다면?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9급 공무원이라면?…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대입시켜 볼 수 있는 ‘한미FTA 대비서’가 바로 여기 짠하고 나타난 것이다. 이미 이 책은 한미FTA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4인 가족 기준) 연소득 6,000만원 이하의 대한민국 국민은 이제 이민가야 한다더라, 그것도 원화 가치가 떨어지기 전에 가능한 한 빨리”라는 과격한 내용을 담은, 재밌지만 섬뜩한 책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출현을 반가워해야 할 사람은 한미FTA 시대를 대비해 먹고살 길을 궁리해야 하는 일반 국민들뿐만은 결코 아니다. 우리사회에서 한미FTA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찬성하는 사람이든 반대하는 사람이든, 혹은 ‘침묵의 담론’을 형성하는 사람까지 포함해―누구나 읽어야 될 책이다. 저자인 우석훈 박사가 이 책을 통해 정말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한미FTA라는 ‘한강의 괴물’이 우리사회의 구석구석을 어슬렁거리게 된 그 ‘배경’에 있기 때문이다.

 

  ‘87년 체제’와 정부의 역할

  저자는 노무현 정부가 경제적 효과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채 “세상에서 가장 황당한 FTA”를 미국에 제안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한국정부는 미국시장은커녕 한국시장도 제대로 모른다. 미국과 FTA를 체결하면 업그레이드될 것이라고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서비스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이렇게 ‘무식할’ 수밖에 없는 데는 나름의 사정이 있다. 1990년대 문민정부의 등장과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정부는 국민경제 조정자로서의 역할, 즉 경제의 모든 주체들이 최대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산업구조를 만들어 국민경제가 골고루 살찔 수 있도록 한정된 자원이 배분되도록 돕는 역할을 사실상 포기했다.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은 ‘갈수록 더 높은 수준의 개방’이었고, 이런 ‘정부의 부재’ 상태는 고용 없는 성장과 경제 양극화의 심화로 나타나 우리 국민들을 고통스럽게 했다.

 

  결정적으로 한국의 실물경제 파악능력은 IMF 이후 ‘작은 정부’를 향한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위험수위를 넘어버린다. 예를 들어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산업 같은 부문은 박정희에서 김영삼 시대까지 1개의 전담과가 있었던 덩치 큰 3대 산업이었다. 그런데 IMF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정부에서도 개편이 생겨나 기초소재산업과라는 한 과가 이 모든 실물경제를 담당하게 됐다. 과거에 한 과에서 수행하던 업무를 이제는 담당관 한명이 담당하는 체계로 바뀐 것이다.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자조한 노무현 정부 들어 정부는 ‘작은 정부’ 수준을 넘어 국민이 정부에게 맡긴 권력까지 내팽개쳐가며 정부로서 응당 해야 할 일마저 하지 않는 ‘정부이기를 포기한 정부’로 변질돼 갔다. “한미FTA라는 쇼크 효과를 통해 성장 정체의 위기에 놓인 우리 경제를 구출해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은 정부가 담당해야 할 산업정책 입안자?실행자?검토자로서의 역할을 미국경제와 초국적기업들에 맡기자는 주장과 다름없다.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는 주장인 것이다.

  정부가 유일하게 아는 것이라곤 “연봉이 6,000만원 이하인 사람들, 즉 이민을 가는 것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인 사람들이 그래봐야 이민 갈 배짱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부가 우리 국민을 이토록 철저히 무시하며 한미FTA 협상을 강행할 수 있는 이유다.

  저자는 국민의 지지를 업고 등장한 노무현 정부가 이런 독선에 빠져든 정치적 배경으로 ‘87년 체제’를 든다. 1987년 민주화 과정에서 우리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선사했던 ‘큰 권력’이 이제는 대통령이 전횡을 휘둘러도 견제하기 힘든 부메랑이 되어 우리 국민에게 되돌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정부는 1987년 우리가 정부에게 건네준 ‘큰’ 권력을 우리의 허락도 받지 않고 자본에게 넘기려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행정에서 국민들의 의견은 글자 그대로 ‘마이너리티 리포트(소수 의견)’일 뿐이다. 국민들은 대통령을 뽑는 것 외에 국정의 중요사안에 대해 결정적 영향을 주지 못하게 되어있다. 이는 흔히 ‘87년 체제’라고 부르는 한국의 헌법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이 시스템은 군부독재 시스템을 없애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어서, 대통령에게 상당히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그래서 외교권을 포함해 국민투표의 ‘부의권’마저도 모두 대통령에게 집중시켜 놓았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한미FTA는 이러한 ‘87년 체제’가 가지고 있는 약점을 그대로 노출시킨 셈이다.

 

  한미FTA라는 부조리극, 경제학과 철학의 분리가 낳은 비극

  하지만 이 땅에서 ‘한미FTA 협상의 졸속 추진’이라는 부조리극이 벌어지고 있는 보다 근본적인 배경에는 근대에 들어와 시작된 “경제학(수단)과 철학(목적)의 별거 생활”이 놓여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19세기에 철학에서 분리돼 나온 경제학은 우리가 어떤 사회와 경제를 지향할 것인가, 무엇이 참된 발전이고 참된 선진국인가, 잘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등과 같은 질문에 답을 하지 않으며,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오롯이 철학의 몫이다. 경제학은 철학이 어떤 목표를 설정해 주면 그런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 가장 바람직하고 효율적인지를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경제학자들이 “미국형 경제가 우리의 살 길”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월권(越權)에 해당한다. 하물며 정부 관료들이 나서서 “미국형이 정답”이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러한 ‘목적’과 ‘수단’의 분리는 20세기 경제학을 세워준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는 했지만, 그 때문에 사실상 현대 경제학의 위기를 만들어낸 측면도 있다. 그러므로 늘 철학과 경제학을 분리하는 것은 옳지 않을 수 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경제적 논의에서 두가지 다른 층위의 주장이 적절하게 구분되지 않으면, 수단에 관한 질문에는 철학으로 답변하고, 철학에 관한 질문에는 수단으로 답변하는 묘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실제로 한미FTA를 밀어붙이고 있는 재정경제부와 외교통상부의 고위관료들은 한미FTA의 배경에 깔린 철학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을 당하면 “경제 논리로 말하지 않고 반미주의, 쇄국주의 논리로 말한다”고 비난한다. 동시에 그들의 경제적 논리에 문제가 있다고 논박하면 “일본과 중국 사이에 낀 이 상태에서 다른 대안은 없다”는 철학적 논리를 펴기 시작한다. 경제학과 철학의 별거 상태를 영리하게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이 이런 농간을 부릴 수 있는 이유는 우리사회에 ‘경제학자’는 넘치고 ‘철학자’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하는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고민하는 철학자의 역할은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뿐 아니라 이 사회에 일단 태어난 사람―철학이라면 질색하는 정통 경제학자들을 포함해―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진 역할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사회에서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우리자신이 아니라 국경을 넘나들며 몸집을 불리고 있는 자본과 이 자본의 힘과 논리에 경도돼 자신의 손발을 묶는 것과 다름없는 ‘투자자-정부 제소제’가 포함된 한미FTA를 추진하고 있는 정부 고위관료들이다.

 

  어떻게 폭주를 멈추게 할 것인가

  그렇다면 저자가 생각하는 대안은 무엇일까? 그는 지금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정부가 위험하기 짝이 없는 한미FTA를 맺을 바에야 차라리 미국의 52번째 주가 되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내린다. 분에 못 이겨 내지르는 막말 같지만 저자가 이런 결론을 내리기 위해 동원한 도구는 경제학자들이 사랑해마지 않는 ‘게임이론’이다.

  한미FTA를 둘러싼 게임에서 미국의 52번째 주가 되는 것과 비슷한 선택은 한미FTA를 체결하면서 제한적이나마 ‘노동의 이동’이 가능할 수 있게 하는 장치를 도입하는 것이다. 세계은행조차 미국식 FTA를 “세계에서 가장 참혹한 FTA”라고 부르는 까닭은 상품과 자본에는 날개를 달아주면서 정작 노동자는 자국에 묶어두는 미국식 FTA의 특성 때문이다. 한미FTA 협정문에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과 관련된 조항을 단 한줄이라도 삽입할 수 있다면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FTA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런 면에서 한국의 극히 일부에서 주장하는 바, “어설프게 한미FTA를 추진할 것이라면 차라리 미국의 52번째 주가 되는 새로운 협상을 추진하라”는 주장이 게임이론이라는 시각에서는 아주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만약 한미FTA에 하나의 옵션, ‘노동자의 자유로운 취업을 보장’하는 장치를 집어넣는다면, 역설적이지만 지나치게 강력한 한미FTA를 통해서 한국 경제와 주권이 회복 불가능하게 붕괴되는 것을 제어하는 안전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필요한 것은 마치 빅브라더처럼 “한미FTA를 따르라”며 호령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으로 하여금 우리가 원하는 사회가 무엇인지 경청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저자에 따르면 현재로선 국민투표가 최선이다. 헌법 제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장 국민투표를 할 여건이 안되면 정부가 2007년 3월 안에 끝내자고 주장하는 한미FTA의 체결을 조금만 뒤로 미뤄 내년 말 대선과 동시에 국민투표를 하자는 것이 저자의 실천적인 제안이다.

 

  한미FTA를 몰라도 행복한 사회

  저자가 한미FTA를 ‘폭주’라고 부르는 것은 결코 한미FTA에 대한 감정적인 비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저자는 전세계를 관통하고 있는 무역자유화의 흐름, ‘87년 체제’의 약점을 노출하고 있는 한국의 정치경제 등 국내외 정치·경제·사회의 구석구석을 헤집으며 때로는 경제학자의 눈으로, 때로는 국제협상에 여러차례 참여했던 실무자의 입으로 한미FTA가 폭주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준다.

 

  한미FTA의 경우는 ‘87년 체제’에서 한번도 등장하지 않은 시스템 오류이다. 대통령의 폭주가 문제가 아니라―87년 체제는 5년 이내의 단기적인 대통령 개인의 폭주는 허용한다―다음 호민관이 지난 시스템의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일종의 ‘디버깅’ 메커니즘을 작동시킬 수 없기 때문에 문제가 어마어마한 것이다. 다음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바로 재협상을 하기도 곤란하고 또한 향후 10년간 어지간한 부작용이 드러나기 전에는 현실적으로 재협상을 추진하기가 어렵다는 점.

 

  우석훈 박사는 책 말미에서 “투기를 하지 않은 사람들과 자신의 노동력만으로 성실히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몰락하는 경제는 어떤 미사여구를 가져다 붙여도 ‘지옥’일 뿐”이라고 말한다. 동감한다. 나는 이렇게 바꿔 말하고 싶다. “한미FTA가 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남들 사는 대로 비슷하게 살아가도 별 탈 없이 행복할 수 있는 경제가 바로 ‘천국’”이라고 말이다. 그런 천국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한미FTA라는 지옥에 대해 죽도록 공부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다행히《한미FTA 폭주를 멈춰라》가 친절한 참고서가 돼줄 것이다. 천국에 동행하고 싶은 이웃이 있거든 이 책을 선물하는 것도 좋겠다.


  노주희 ― 〈프레시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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