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김종철/김태언 옮김  녹색평론사 1996

서 문
 

  왜 세상은 하나의 위기에서 또 하나의 위기로 비틀거리며 나아가고 있는가? 항상 이러했는가? 과거에는 더 나빴던가? 아니면 더 좋았던가?

  티베트 고원 위의 오래된 문화의 나라 라다크에서 16년 이상의 경험이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을 극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나는 우리의 산업문화를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었다.

  라다크에 가기 전에 나는〈진보〉의 방향은 어쨌든 불가피한 것이고 의문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결과로 공원 한가운데를 질러가는 새 도로나 200년 된 교회가 서있던 자리에 철골과 유리로 된 은행이 들어서는 것이나, 길모퉁이의 가게집 대신에 수퍼마켓이 생기는 것이나 우리 삶이 나날이 더 힘들고 빠르게 느껴지는 사실을 모두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라다크가 나에게 미래로 가는 길은 하나뿐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시켜주었고 커다란 힘과 희망을 나에게 주었다.

  라다크에서 나는 보다 건전한 또하나의 삶의 방식을 경험하고 나 자신과 문화를 밖에서부터 바라보는 특권을 가졌다. 나는 근본적으로 다른 원칙에 기초를 두고 있는 사회에서 살았고 현대세계가 그 문화에 끼치는 충격을 목격했다. 내가 몇십년만에 처음으로 온 외부인으로서 그곳에 도착했을 때 라다크는 아직 본질적으로 서구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변화는 빠르게 왔다. 두 문화의 충돌은 특히 극적이었고 강력하고 생생한 비교를 보여주었다. 나는 우리의 산업화된 사회를 지지해주는 심리, 가치기준, 사회구조와 기술구조에 대하여 알게 되었고 고대의, 자연에 기초한 사회를 지지하는 것들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의 사회 경제 체제를 더 근본적인 또하나의 존재양식, 인간과 자연의 공진화에 기초를 둔 양식과 비교해보는 드문 기회였다.

  라다크를 통해서 나는 파괴적인 변화 앞에서의 나의 수동성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내가 자연과 문화를 혼동한 데에 기인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내가 본 많은 부정적인 경향이 우리의 통제력 너머에 있는 어떤 자연적인 진화의 힘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이 속한 산업문화의 결과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나는 또 정말로 생각해보지도 않고 인간은 본질적으로 경쟁하고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이기적인 존재라고 생각했고, 이보다 더 협동적인 사회는 유토피아적인 꿈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내가 그런 식으로 생각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여러 나라에서 살아보았지만 모두가 산업문화의 나라였다. 덜〈개발된〉나라들로 꽤 광범위한 여행을 했지만 내부로부터의 관점을 제공하기에 충분한 것이 아니었다. 올더스 헉슬리나 에릭 프롬의 글을 읽는 것과 같은 지적 여행이 한 두개의 문을 열어주기는 했지만 나는 본질적으로 산업사회의 산물이었고, 모든 문화가 자신을 영속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눈가리개를 한 채 교육을 받은 것이다. 나의 가치기준, 역사에 대한 이해, 사고의 양식이 모두 산업적 인간의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었다.

  아담 스미스로부터 프로이드와 오늘날의 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주류 사상가들은 실제로 서구의 경험이거나 산업사회의 경험인 것을 일반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드러내놓거나 또는 암시적으로 그들은 그들이 묘사하는 성향이 산업문화의 산물이기보다 인간본성의 표현으로 여긴다. 서구문화가 유럽과 북아메리카로부터 뻗어나와 지상의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침에 따라 서구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경향은 거의 불가피하게 되었다.

  모든 사회는 자신을 우주의 중심에 두고 자신의 채색된 렌즈를 통해 다른 문화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서구문화의 두드러진 점은 그것이 너무나 광범위하게 퍼져있고 또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자신을 비교해볼〈타자〉가 없다. 모든 사람이 우리와 같거나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고 여겨지고 있다.

  대부분의 서구인들은 무지와 질병과 끊임없는 노역이 산업화 이전 사회의 운명이었다고 믿게 되었다. 그리고 개발도상국들에서 우리가 보는 가난과 질병과 굶주림이 처음 보기에 그러한 가정을 입증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오늘날 제삼세계의 문제들은 그 대부분은 아닐지 몰라도 많은 문제들이 상당한 정도로 식민주의와 잘못된 개발의 결과이다.

  지난 몇십년 동안에 알라스카에서 오스트레일리아에 이르는 많은 다양한 문화가 산업적인 단일문화의 침략을 받았다. 오늘날의 정복자들은〈개발〉, 광고, 대중매체 그리고 관광사업이다. 전세계의 가정에〈달라스〉가 방영되고 있고 가는 줄무늬 옷이 유행이다. 올해에 나는 거의 똑같은 장난감 가게가 라다크와 스페인의 산골마을에 생겨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모두 푸른 눈에 금발을 한 바비인형과 기관총을 든 람보를 팔고 있었다.

  산업적인 단일문화의 확산은 대단히 심각한 비극이다. 하나하나의 문화의 파괴와 함께 우리는 수세기 동안 누적된 지식을 말살하는 것이고, 다양한 인종집단이 그들의 정체성이 위협받는다고 느낌에 따라 거의 불가피하게 갈등과 사회의 붕괴가 뒤따른다.

  점점 더 서구문화가 정상적인 것으로, 유일한 길로 간주되게 되었다. 그리고 전세계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경쟁적이고 탐욕스럽고 자기중심적으로 되어감에 따라 이러한 성향들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되게 되었다. 그렇지 않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있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서구사회의 주된 생각은 오랫동안 우리가 본래 공격적이고 끊임없는 다윈주의적 투쟁에 갇혀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사회를 조직하는 방식에서 이러한 관점이 내포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가 내재하는 선이나 악을 믿든 믿지 않든간에 인간본성에 대한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정치적 이념의 밑에 깔려있고 따라서 우리의 삶을 다스리는 제도의 모습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주류문화 속에서는〈개발〉이나〈진보〉라는 이름의 구조적 변화에 우리 자신이 어떻게 개입했는가는 무시하고 우리의 문제들을 인간에 내재하는 감정 탓으로 돌린다. 기술 발전은 진화의 한 부분으로 생각된다. 인간이 수천년간 진화해온 것 ?? 두발로 걷기 시작하고 언어를 사용하고 도구를 사용하면서 진화해온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원자폭탄과 생명공학을 발명했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는 유럽이 산업화에 의해 변화되는 동안 세계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다른 원칙과 다른 가치 기준에 따라 계속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진화와 산업혁명이 초래한 변화를 구별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서구인들이 전통적인 민족들보다 더욱 진화했다고 말한다.

  우리는 기술의 변화를 변화하는 날씨보다도 더 자연스러운 것으로 취급하고, 그것이 어디든 과학적 발명이 가는 곳으로 우리는 따라가야 된다는 믿음에 갇혀있다. 인간성에는 어두운 면이 있다는 것이나 개발의 과정이 이익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라다크는 나에게 이 과정이 파괴의 잠재력을 크게 증가시킨 한편 탐욕과 경쟁과 공격성을 더욱 심하게 만들었음을 보여주었다. 전에는, 우리가 오늘날 하고 있는 것과 같은 속도로 기후에 영향을 미치고 바다에 독을 집어넣거나 숲과 생물의 종과 문화들을 말살시킨 일이 없었다. 우리의 파괴력의 규모와 속도가 이렇게 컸던 적은 없었다. 역사상의 전례가 없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유일한 것이고 시간은 우리편이 아니다.

  대규모 환경파괴, 인플레이션, 실업 등은 우파나 좌파 정치학과는 별 상관이 없는 기술경제학적 변천의 결과이다. 근본적으로 세계는 한가지 유형의 과학과 기술에 기초를 둔 한가지의 개발 모델만을 경험하였다. 그에 따른 전문화와 중앙집중화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보다 더 심각한 차이를 압도하는 극적인 삶의 변화를 초래했다.

  라다크에서 나는 낭비도 오염도 없는 사회, 범죄는 거의 존재하지 않고 공동체는 건강하고 튼튼하며 10대의 소년이 어머니나 할머니에게 유순하고 다정스럽게 대하는 것을 어색해 하지 않는 사회를 알게 되었다. 그 사회가 근대화의 압력 밑에서 붕괴되기 시작하는 지금 그것이 주는 교훈은 라다크보다 훨씬 넓은 범위에 관련된 것이다.

  티베트 고원의〈원시적인〉문화가 우리 산업사회에 가르쳐줄 것이 있다는 사실이 터무니없는 일로 보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복잡한 문화를 더 잘 이해할 기준선이 필요하다. 라다크에서 나는 진보가 사람을 땅에서 갈라놓고, 서로서로 갈라놓고 그리고는 결국 자기 자신들로부터 갈라놓는 것을 보았다. 나는 원래 행복했던 사람들이 서구적 규범에 따라 살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평온함을 잃어버리는 것을 보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문화가 개인을 형성하는 데 훨씬 더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점점 더 좁은 관점이 많은 우리의 문제의 뿌리를 보지 못하게 하고 있다. 우리는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하고 있다. 서구문화는, 보다 넓은, 장기적인 관점을 잃어버리고 점점 더 전문화되고 당장 눈앞의 것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전문가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경제세력들은 점점 더 심한 전문화와 중앙집중화 그리고 자본집약적, 에너지 집약적 생활양식으로 이 세계를 빠르게 끌고가고 있다.

  우리는 긴급히 존속 가능한 균형 -도시와 농촌, 남성과 여성, 문화와 자연 사이의 균형- 을 향해 방향을 돌려야 한다. 라다크는 우리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상호관련된 세력들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줌으로써 길을 보여줄 수 있다. 이러한 보다 넓은 견해가 우리 자신과 지구를 치유하는 방법을 배우는 필수적인 단계라고 나는 믿는다.

(녹색평론 제18호 1994년 9-10월호)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Helena Norberg-Hodge)

  스웨덴 출신 언어학자이자 녹색운동가. 1975년에 처음 인도 북부의 라다크지방을 방문한 이래 17년만에 Ancient Futures -Learning from Ladakh(1992)라는 책을 써냈다. 이 책은 근본적으로 건강한 한 토착문화에 깊이 매료된 서구지식인의 깊이있는 여행기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 온 세계를 휩쓸고 있는 서구식 산업문화를 근원적으로 재평가하는 데 필요한 뛰어난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어서, 출판직후부터 세계의 녹색운동가들 사이에 크게 주목되어왔다. 헬레나는 개방과 근대화 과정이 본래 생태 및 인간적으로 건강하였던 라다크 사회를 어떻게 오염,왜곡시켜왔는가를 직접 목격자의 처지에서 증언하면서, 새로운 대안으로서 비산업주의적 사회발전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 책의 개요는 本誌 제5호(1992년 7-8월호)에 이미 실렸는데, 이 흥미로운 책의 좀더 자상한 내용을 소개하기 위하여 여기에 序文을 우리말로 옮겨 싣는다.

  2000년판 새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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