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곡리 반딧불이  유소림 산문집  녹색평론사 2008

책머리에
곳간에 쌓아두지 않아도

  더위에 쫓겨 밭을 둘러볼 수 없던 며칠 사이에 바랭이들이 열무 포기만큼씩이나 벌어졌다. 퇴비 한 톨 뿌려준 적 없건만 텃밭에서건 꽃밭에서건 더위에도 가뭄에도 까딱하지 않고 오로지 번성, 번성하는 이 풀은 어디에서 이런 생명력을 얻는 걸까. 밭의 푸성귀들이 바랭이만 같다면야 농꾼들 죄 오뉴월 개팔자 되어 나무 그늘에서 낮잠만 자도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런 바람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것이다. 유전공학이니 생명공학이니 하는 최신 ‘공학’들이 우리들에게 그 비슷한 꿈을 꾸게 하고 있긴 해도 말이다. 바랭이가 그처럼 왕성한 생명력을 지닌 비결을 제가 만들어낸 것을 모두 제 몸 유지와 자손 퍼뜨리기에만 쓸 뿐, 인간들에게 나누어줄 맛있는 잎사귀나 달콤한 열매, 토실토실한 뿌리 따위에는 쓰지 않기 때문이니 사실 무슨 거창한 학문을 동원해서 밝혀내려고 기를 써야 하는 대단한 비결도 아닌 것이다.

  풀들이 만든 것에 의지해 사는 우리 사람들은 풀들이 제 몸을 유지하고 자손을 번성시킨 위에 인간에게도 나누어줄 수 있는 무언가를 더 만들 수 있도록 그만큼 공을 들이고 애써야 한다. 그 공들임에는 조금의 술수(우리는 ‘술수’라는 말 대신 효율을 높인다는 표현을 쓰고 있긴 하지만)도 통하지 않는다. 서로 서로 맞물려 기대고 부축해 돌아가는 이 세계의 둥근 고리 어느 틈새에서 ‘공것’이 그냥 불쑥 생겨날 수 있겠는가 말이다. 풀먹이짐승에게 우격다짐으로 육식을 시킨다면 우선은 빨리 자라고 살이 많이 쪄 전에 없던 공것이 생기는 듯해도 이 세계의 질서에 어긋난 그 공것은 우리 인간이 감히 짚어볼 수 없는 경로, 우리가 그 대응 방법을 모르니 재앙일 수밖에 없는 그런 경로를 통하여 고스란히 회수되고 만다.

  올해는 날씨가 좋지 않았다. 퇴곡리의 날씨도 이십여년 전 부모가 모두 살아있던 시절과 많이 달라졌다. 봄부터 비가 한번도 흡족하게 내리지 않았고 영동지방의 봄을 괴롭히는 거센 바람도 보통은 오월 말쯤이면 잦아드는 법인데 올해엔 여름까지 시시때때로 불어댔다. 그 위에 시원찮은 장맛비가 그치더니 갑자기 폭염이 몰려와 해가 떠있는 동안은 밭에 나가보기도 무서울 지경이었다.

  그런데 텃밭 농사는 ‘풍년’이다. 호박은 한두 개 달린다 싶더니 금방 정신없이 생겨나 주위 사람들에게 잡숴주세요를 빌어야 하고 쑥갓이나 상추는 아무리 따먹어도 다음날이면 더 무성해져 있다. 가지, 열무, 고추, 깻잎, 토마토 등등도 질세라 반찬을 쏟아내고 하지가 지나고부터는 감자와 강낭콩까지 가세해 도무지 무엇부터 먹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텃밭 반찬들은 무척 맛이 있다. 그 중에서도 올해 처음 심어본 오이는 놀랄 만큼 향기롭다. 그 오이는 종묘상에서 묘를 사온 게 아니라 아랫집 형님이 예전부터 심어온 토종 오이씨를 얻어 기른 것이다. 텃밭 가꾸기 책에 조금 어렵다고 표기된 오이를 처음 심어본 터라 과연 몇개나 달릴까 은근히 걱정이었는데 첫 오이를 조금 잘라 먹어본 순간 아, 바로 이 맛이야, 하는 탄성이 절로 터졌다. 기억 속에 아련히 남아있는 ‘옛날’ 오이의 바로 그 맛, 첫맛이 어딘가 설핏 떫은 듯하다가 이내 향기로 변하고 고소한 뒷맛을 남기는 그 오이! 마트에서 팔고 있는 오이의 절반 크기인 이 귀여운 꼬마 오이는 노균병이니 진딧물이니 하며 속썩이는 일도 없이 쉴새없이 조랑조랑 달린다. 오이 뱃속에 빼곡하게 들어찬 씨 중에서 딱 한 알이 이렇게도 많은 오이를 낳으니 이 지구별은 얼마나 풍요로운 곳인가. 나는 매일 아침 텃밭가에 서서 이 지구별에 사는 목숨붙이들은 모두 곳간에 쌓아두지 아니해도 일용할 양식을 얻는 저 마태복음의 새들임을 실감한다. 그런데 이 풍요로운 세계에서 사람은 어쩌다가 온갖 사악한 방법을 짜내어 가축과 가금의 살을 찢어내고 갖가지 우악스런 짓으로 열매와 잎사귀를 뽑아내는, 그야말로 말세적인 생존 방법을 택하게 된 것일까.

  장맛비가 그친 사이 하늘이 끝없이 푸르다. 그 푸르름 속에서 잠자리들이 날개를 반짝인다. 아름답다. 우리의 세계가 우리 가슴에 아름답게 느껴오는 까닭은 이 터전이 우리 사람의 머리만으로 가늠해볼 도리가 없는 깊고 깊은 신묘함에 싸여있기 때문일 게다. 만약 인간의 뜻대로 요리되고 조종될 수 있는 세계가 있다면 그곳은 기껏해야 컴퓨터 게임기 정도밖에 되지 못하는 지루하고 처참한 곳이지 않겠는가.

  퇴곡리에서 세번째 여름을 맞고 있다. 퇴곡리를 나의 거처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나이 마흔이 넘어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나서였다. 늙은 부모가 있는 퇴곡리는 직장 다니랴 아이들 기르랴 살림하랴 정신없이 살던 나에겐 샘터와 같은 곳이기도 했지만 그 퇴곡리의 의미가 진정으로 내 가슴에 스며온 것은 부모가 모두 떠난 후였다.

  어머니마저 떠나던 해 남편의 전근으로 동경에서 살고 있던 나는 가신 이에 대한 회한으로 《녹색평론》에 첫 투고를 했다. 그후 십오년이 지나 녹색평론사에서 퇴곡리의 이야기를 담은 산문집을 내도록 배려해 주셨으니 퇴곡리와 《녹색평론》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인연을 맺고 있었던 모양이다.

  반세기 이상이 흐른 내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결정은 아무래도 퇴곡리에 돌아온 일인 것 같다. 나는 날마다 퇴곡리 듬바우골 분교 세세골골에 계신 무수한 스승님들께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이곳을 떠나는 날까지 부디 이 배움에 게으름이 없도록 해주시기를 퇴곡리의 풀과 나무들에게 빌어본다.

 

  (제1부는 《녹색평론》에 연재되었던 퇴곡리 이야기이고 2부와 3부는 주간 〈내일신문〉에 연재하였던 글 중에서 선별하여 가필한 것이다. 4부 역시 주간 〈내일신문〉에 4회에 걸쳐 실렸던 기행문으로 《녹색평론》에 전재되면서 글을 좀더 보탠 것이다.)

22008년 여름      
뻐꾸기 울음 울려오는 퇴곡리에서      
두 손 모음      


목차

책머리에 | 곳간에 쌓아두지 않아도 

 

1  퇴곡리 듬바위골 분교

퇴곡리 듬바위골 분교 
벌들 죽어가는 날에 
뒤뜰의 순례자들 
겨우살이 
뱀 
나비 
뱀허물쌍살벌 
구름이에게 
머위를 따며 
퇴곡리 반딧불이 
메밀 수업記 
떠나는 나의 동무들에게
집 
알 수 없는 그이께서 

 

2  엄마의 수선화

꾸아리 
엄마의 수선화 
수국 꽃잎은 그리 푸르러 
들국화 
감나무 
그 여름의 쏙독새 
아버지의 꽃 
진주 

 

3  저 들녘 벼이삭

菊日閑人 
불행한 오리 새끼 
옛 무덤 지나는 길에 
발자국 
작은 젖먹이짐승을 그리워함 
산 것들, 죽은 것들 
‘약수터’ 가는 길 
벼룩이자리, 하얀 풀꽃 
아파트의 새 풀잎 
돼지가 전해준 패랭이꽃 
장미보다 아름다운 꽃 
하늘 나팔꽃 
눈보라 
당신 보시기 좋으신 계절 
싸리비 
저 들녘 벼이삭 
절 
포르노 국화 
태극기 
구름이 
등에 

 

4  캄보디아 여행기

캄보디아 여행기 


저자
유소림

시인. 1952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서강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여성민우회 편집실장, 주간 <내일신문> 여성부 팀장과 편집위원, 주간 <미즈엔> 편집위원 등을 역임했다.

양친이 말년을 보낸 강원도 강릉 퇴곡리에 내려가 2005년부터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저서로 《신쥬쿠의 시궁쥐 비둘기》, 《살아 키우시고 죽어 가르치시네》 등이 있다.


추천사

  유소림은 《녹색평론》을 통해 알게 된 시인이다. 그의 시나 산문이 실리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가 퇴곡리 시골로 가서 직접 농사지으며 쓴 글을 읽으면서는 형님이라고 부르고 싶은 친밀감마저 느꼈다. 그 집 마당에서 피고 지는 제비꽃, 도라지꽃, 나리, 구절초, 머위 등과 우리집 마당의 그것들과 남남이 아니듯이.

  나이는 내가 많을 성싶은데도 형님이라 부르고 싶은 것은 나는 흙을 이르집다가 굵은 지렁이만 나와도 뒤로 나자빠질 뻔하는데 그는 곧잘 뱀도 길들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둘이 다 흙 만지기를 좋아한다고는 하나 그는 먹을 것을 가꾸니까 농사이지만 나는 잔디나 꽃 가꾸기에만 매달려 있으니 흙장난에 불과한 것도 그보다 한수 아래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게 한다.

 《녹색평론》을 창간호부터 꾸준히 애독해 오면서 깨우치고 배운 것도 많다. 그 잡지의 일관된 논조는, 제어할 수 없는 욕망이 시키는 대로 달리는 이 무한경쟁의 시대를 향해 제발 자연과 이웃으로부터 덜 뺏고 덜 소비하고 덜 빠르게, 조금 더 불편하고 조금 더 가난하고, 단순소박하게 사는 게 더 행복한 삶이고, 지구와 인간이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삶이라고 외치는 데 있는 것 같다. 그 방면의 국내외의 연구자, 이론가들의 설득력 있는 글이나 연설문을 폭넓게 접한 것도 《녹색평론》 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글에 깊이 공감은 하지만 위로는 받지 못한다. 이대로 가다간 대재앙이 닥쳐와 지구가 멸망할 것 같은 공포감을 느낄 적도 있다. 같은 말을 하는데도 땅에 엎드려 노동하는 생활을 하는 유소림의 글은 그런 공포감을 서늘하게 비켜가면서 부드럽게 위로해준다. 단 몇 사람의 의인만 있어도 멸하지는 않겠다는 성경말씀도 있지 않은가. 

  ―박완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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