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하느님 (개정증보판)  권정생지음  녹색평론사 2008

개정증보판에 부쳐
 

  권정생 선생이 돌아가신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작년 5월 갑작스런 부음을 들었을 때, 나는 큰 슬픔과 함께, 이상하게도 어떤 설명할 수 없는 안도감을 순간적으로 느꼈다. 몇해 동안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나는 선생님이 평생의 병고(病苦)말고도, 갈수록 암울해지는 세상을 보며 심히 괴로운 심정으로 지내실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분이건만 이미 선생님의 마을에는 아이들이 사라진 지 오래일 뿐만 아니라, 조용하던 동네가 고속도로니 골프장이니 하는 것들로 산산이 망가지면서, 무엇보다도 선생님이 소음 때문에 괴로워하고 계신다는 얘기도 나는 전해 듣고 있었다. 선생님이 얼마나 더 사실지 모르지만, 이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지는 땅과 인심이 살아계신 동안 조금이라도 회복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게 분명했다. 언젠가 당신 자신이 말씀하셨듯이, 선생님은 이미 20대에 의사로부터 여명(餘命)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고도 70세가 되도록 어쨌든 목숨을 이어오셨던 것이다. 이제는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육신의 껍데기도 벗어버리고, 영원의 휴식 속으로 들어가실 때가 되신 것이다 ― 나는 아마 그러한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1주기를 맞으면서 나는 선생님이 더이상 우리들 곁에 계시지 않는 것이 새삼 말할 수 없이 허전하다. 물론 선생님이 많은 글을 남겨놓았다는 게 우리들에게 위안이 안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제 우리는 더는 저 조탑리의 작고 어두운 골방으로부터 나오는 유례없이 부드럽고 간곡한, 그러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무서운 목소리를 듣는 행복을 누릴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우리에게 선생님은 어쩔 수 없이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나는 유감스러운 것이다.

  이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녹색평론》 편집실에서 우리들이 생각해낸 것이 이 책, 즉 선생님의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의 개정증보판이다.

 《우리들의 하느님》은 1996년에 처음 나왔지만, 실제로 책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첫째, 저자가 이 책의 출간을 원치 않았다. 그는 무엇보다도 자기의 ‘하잘것없는’ 글들이 책으로 엮어져 출판될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책이 팔릴 가능성에 대해서 대단히 회의적이었다. 그래서 공연히 출판사를 곤경에 빠트릴 것이라고 염려하였다. 이것은 여느 저자들처럼 괜히 한번 해보는 소리가 아니었다. 실제, 선생님은 《녹색평론》 초창기부터 《녹색평론》을 지원하는 데 남달리 열성적이었다. 《녹색평론》이 지불하는 원고료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원고 속에 잡지제작에 보태라고 우편환을 동봉해 보내시곤 했다. 이런 일이 빈번하였다. 다른 잡지에 글을 쓰고 받은 고료를 그대로 《녹색평론》으로 보내주시곤 했던 것이다. 그런 분이기에, 행여 자신의 책 발간이 《녹색평론》에 부담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생각 때문에 더욱 자신의 산문집 출판을 내켜하시지 않았던 것이다.

  산문집 출판에 따르는 어려움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원래 이 산문집은 권정생 선생이 여러 해 동안 다양한 지면에 썼던 산문들을 모아서 묶기로 한 것이었는데, 이 글들을 수집하는 일이 실제로 지난하였다. 이 일은 시인 김용락 씨가 맡아서 해주기로 하고 시작하였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면서 발견한 것은 선생님이 자신이 써서 발표한 글들을 거의 아무것도 보관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디에 발표되었는지도 모르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김용락 씨로부터 이 얘기를 듣고 내심 무척 놀랐다. 왜냐하면 나는 자신이 써서 발표한 글에 대해서 애착을 갖지 않는 문인이 있으리라고 상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는 한, 문인들은 대개 자기애(自己愛)가 강한 사람들이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자기가 쓴 글을 보관하지는 못하더라도, 발표지면까지 대부분 잊어버리고 있는 문인이 있다는 사실은 경악할 일이었다.

  그래서 예상보다 훨씬더 많은 시간이 걸려서 김용락 씨가 고생 끝에 찾아낸 글들이 책 한권 분량이 되기를 기다려 만든 것이 《우리들의 하느님》 초판본이었다. 그러니까 아직 우리가 찾아내지 못한 권정생 선생의 산문은 여기저기 숨어있을 게 틀림없다. 그러니까 《우리들의 하느님》은 선생님이 쓰신 산문의 일부, 즉 산문선집이라고 해야 옳다. 이번에 개정증보판을 내면서 우리는 선생님의 글 가운데서 책으로 묶여지지 않은 산문을 더 찾아보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다만 《우리들의 하느님》이 나온 후에 《녹색평론》에 발표되었던 선생님의 글 몇편과 작년 《녹색평론》의 권정생 추모특집에 실렸던 두편의 글을 추가하여 증보판을 찍기로 하였다.

  원래, 결국 《녹색평론》 편집실의 간곡한 청을 받아들여 권정생 선생이 이 책의 출간에 동의하였을 때, 선생님이 제안한 책의 제목은 ‘태기네 암소 눈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생님의 뜻을 어기고 《우리들의 하느님》을 제목으로 결정했다. 선생님께 알리지도 않고 그렇게 했다. 아마도 다른 저자 같았으면 심히 불쾌감을 느꼈을 것인데, 선생님은 거기에 대해서 나에게도, 그 어느 누구에게도, 불만을 표시하지 않으셨다. 선생님은 대인(大人)이었다.

 

  권정생은 뛰어난 아동문학가임에 틀림없지만, 단순히 아동문학가라고 해서는 그 본질을 드러낼 수 없는 문인이자, 사상가이다. 지난 십여년쯤 전부터 미디어를 통해서 꽤 널리 알려지면서, 조탑리의 그의 오두막은 일종의 관광명소 비슷한 것으로 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끊임없이 찾아오는 내방객들로 인해 큰 괴로움을 겪었던 것이다. 권정생은 자신이 세상에서 명사(名士)가 되고,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그를 흠모하는 것을 조금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선생을 한번 뵙고자 찾아오는 사람들이 진실로 권정생과 그의 문학, 그의 사상을 이해하고 있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독한 가난과 병고(病苦) 속에서도 지극히 맑고 올곧은 정신을 드러내는, 이를테면 성자(聖者)의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고 싶어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권정생은, 내가 아는 한, 상투적인 성자의 이미지와는 매우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는 권력있는 자들과 그들의 세계에 대하여 거의 본능적인 위화감(違和感)을 느끼고 있었고, 그런 감정을 별로 숨기지 않았다. 그 대신 이 세상의 약자들 ―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을 포함한 ― 에 대한 그의 본능적인 연민 혹은 사랑은 측량할 수 없이 깊었다. 아마도 그것은 그 자신의 철저한 밑바닥 체험과 평생에 걸친 병고(病苦)와 관계가 없지 않을 것이다. 혹은 그의 기독교 신앙과도 관계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권정생은 이른바 교인다운 티를 조금도 내지 않았다. 그는 여하한 권력욕망도, 권력의 그림자와도 인연이 없는 철저히 소박한, 꾸밈없는 촌사람이었다. 그는 ‘산상수훈(山上垂訓)’의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믿은 기독교인이었다. 그가 자본주의 근대문명과 근원적으로 화합할 수 없는 ‘비근대인’으로서의 일관된 삶을 살아간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오늘날 이 나라의 독서계에서 권정생은 계속해서 읽히고,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러나 권정생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가 과연 얼마나 상투적인 수준을 벗어나 있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아마도 권정생의 문학과 사상에 대한 성숙한 이해와 연구는 지금부터 시작되어야 할 과제일 것이다.

  권정생은 ‘국익’이니 경제발전이니, ‘진보’니 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고, 자신의 문인으로서의 생애 전체를 통해서 ‘지사연(志士然)’하는 포즈를 취한 적이 한번도 없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약자들의 운명으로 향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약자들을 보는 그의 눈은 외부로부터가 아니라 안으로부터였다. 그러기에 그는 현실에서 끝없이 억압받고, 상처받는 약자들의 처지 때문에 분노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면서도, 동시에 풀뿌리 민중이 그러한 핍박 속에서도 서로 보살피고 상부상조하는 인간적인 유대 가운데서 삶의 근원적인 행복과 기쁨을 누리는 것을 주목할 수 있었다.

  한평생 병고에 시달린 권정생 자신의 삶도 그러한 행복과 기쁨이 있었기에 견딜 만한 것이었을 것이다. 선생이 돌아가신 직후 조탑리를 방문한 경험을 근거로 쓴 이계삼의 추모문에 그려져 있듯이, 권정생 선생의 생애에는 때때로 마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어울려 순진무구한 이야기와 웃음을 나누며 지냈던 시간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소박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삶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 데서 권정생의 사상의 깊이와 위대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2008년 4월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목차

책개정증보판에 부쳐 …… 김종철
책머리에 

유랑걸식 끝에 교회 문간방으로 
우리들의 하느님 
십자가 대신 똥짐을 
휴거를 기다렸던 사람들 
침묵하는 하느님 앞에서 
인간의 삶과 부활의 힘 
종교의 어머니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 
가정 파괴범 
물 한 그릇의 양심 
사람다운 사람으로 
팥빙수 한 그릇과 쌀 한되 
태기네 암소 눈물 
제 오줌이 대중합니다 
슬픈 양파농사 
유기농 실천회에 다녀와서 
녹색을 찾는 길 
편지 
세상은 죽기 아니면 살기인가 
사랑의 매 
쌀 한톨의 사랑 
효부상을 안 받겠다던 할머니 
영원히 부끄러울 전쟁 
꽃을 꽃으로만 볼 수 있는 세상이 
서태지와 아이들 
쥐주둥이 찧는 날 
새소리가 들리던 시골 오솔길의 아이들 
아이들이 알몸으로 멱감던 시절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슬픔마저도 
효선리 농부의 참된 농촌이야기 
‘비참한 사람들’의 삶 
세상살이의 고통과 자유 
죽을 먹어도 함께 살자 
분단 50년의 양심 
새야 새야 
제발 그만 죽이십시오 
백성들의 평화 
골프장 건설 반대 깃발이 내려지던 날 
승용차를 버려야 파병도 안할 수 있다 
아홉살 해방의 기억들 


애국자가 없는 세상 

동화
용구 삼촌 
오두막 할머니
할매하고 손잡고 

 

빌뱅이언덕 밑 오두막에 살면서 ― 권정생 선생 행장 …… 김용락 
이 땅 ‘마지막 한 사람’이었던 분 …… 이계삼

권정생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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