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  정혜진 녹색평론사 2007

  책머리에_  ‘태양도시’에서 ‘로컬퍼스트’로

 

  꼭 3년 전에 《태양도시: 에너지를 바꿔 삶을 바꾸다》라는 책을 냈다. ‘석유 고갈’과 ‘기후변화’라는 두가지 큰 위기에 처한 도시가 미래에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에너지 과소비 도시인 ‘화석도시’에서 벗어나 에너지 효율적인 도시인 ‘태양도시’로 과감하게 전환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 책에서 나는 태양도시가 단순히 재생가능 에너지를 많이 보급하는 차원을 넘어, 도시의 생활양식 자체가 바뀌는 도시라고 강조했다.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는 두 위기를 벗어나 미래에도 지속될 수 있는 태양도시로 가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많이 쓰는 도시의 현 체계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고 말이다. 석유 고갈과 기후변화는 단순히 에너지의 문제가 아니라 삶 자체의 문제라고.

 

  나의 두번째 책은 바로 이 지점에서 다시 출발한다. 화석 에너지를 재생가능 에너지로 대체해가고, 에너지를 덜 쓰고 효율적으로 쓰는 태양도시에서의 모든 활동은 화석도시에 비해 ‘지역사회’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화석 에너지는 지구의 극히 일부분에서만 구할 수 있는 데 비해, 태양·바람·바이오매스·지열 같은 재생가능 에너지는 어디에나 있는 지역 분산적 에너지이다. 대규모 화석 에너지 시설에 비해 재생가능 에너지 시설은 소규모이고 운송 거리가 짧아서 생산·보급·유통 등 모든 단계에서 화석 에너지를 쓸 때보다 훨씬더 지역사회 경제에 도움을 준다.

  또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거나 절약하는 행위는 지역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든다. 에너지를 덜 쓰려면 외곽에 있는 쇼핑몰보다 동네 슈퍼를 자주 이용하게 된다. 혼자 차를 운전하는 것보다 이웃 혹은 직장 동료와 카풀을 하면 에너지를 보다 효율적으로 쓰게 된다. 좀더 걷고 자동차를 덜 쓰면 자신의 건강을 챙기고 지역 상권이 활성화되고 지역사회 전체적으로는 공기가 더 맑아지며 교통 혼잡 비용이 줄어든다. 절약해서 남는 돈으로 여유 있는 생활을 즐기면 지역사회 전체 문화 수준도 올라간다.

  지구상의 모든 지역사회가 이렇게 움직인다면 온실가스 배출을 크게 줄이고 더 활기찬 지역사회를 만들면서 지구도 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역에 이로운 생활을 함으로써 에너지 효율적인 도시를 만들고, 에너지 효율적인 도시가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며, 결과적으로는 지구 기후변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나의 구호는 ‘태양도시(Solar City)’에서 ‘로컬퍼스트(Local First)’로 바뀌었다. 태양도시가 덜 중요해졌다는 것이 아니라(나의 화두는 여전히 태양도시다), 지역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행동이 결과적으로 태양도시를 만든다는 것이다. 에너지 효율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지역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됐다.

 

  내 생각이 여기에 미치기까지는 개인적으로 도시의 에너지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취재와 더불어 내가 일하고 있는 〈영남일보〉의 2007년 연중 기획물 “로컬퍼스트(지역이 먼저입니다)” 시리즈 영향이 컸다. 정치권 등 남 탓하지 말고 눈먼 애향심을 버리는 대신, 다른 문화와 생각을 수용하고 창의적 대안으로 우리가 사는 지역을 우리 힘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로컬로 만들자는 제안이 “로컬퍼스트”의 주된 내용이다.

  〈영남일보〉에서 이 기획을 시작할 당시 나는 ‘수도권 규제완화’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두 당위명제의 모순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수도권은 글로벌 경쟁력을 외치며 수도권 규제완화를 요구했고, 지역에서는 지역균형발전 속도를 높여나가야 할 마당에 왜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역신문 기자로서 나는 수도권 규제완화를 비판하는 기사를 많이 썼지만, 개인적으로 그 비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면 상대적으로 지역이 손해고, 지역균형발전 정책으로 수도권이 손해본다는 이분법에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한 국가의 발전은 제로섬(zero sum) 게임이 아니었다. 수도권은 수도권대로, 지역 도시는 지역 도시대로 발전의 길이 있다고 나는 믿었다. 지역 도시에 있어 그 길은 ‘로컬퍼스트’였다. 지역 주민들이 지역 문제에 애정을 갖고,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면 자연히 그 지역은 발전하게 되어 있다. 그렇다고 지역 이기주의를 부추기는 것은 아니다. ‘로컬퍼스트’는 오히려 막무가내 식 애향심을 철저히 배척했다. 중요한 것은 지역 주민들 스스로 창의적인 생각을 찾아내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운이 좋게도 나는 여러번의 해외 취재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서 앞서가고 있는 외국 도시들이 공통적으로 지역사회에 활기가 넘치고 지역자치가 발달했으며 지역 주민들의 자기 고장에 대한 애정도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매번 ‘로컬퍼스트〓살기 좋은 지역〓태양도시’ 공식은 정확하게 일치했다. 첫번째 책 서문에서도 썼지만, “도시의 에너지를 말하는 것이 사실은 도시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에너지 전문가도, 도시 전문가도 아니면서 덜컥 도시의 에너지 문제에 관한 첫 책을 낸 후 한편으로는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명제를 새삼 확인하고 뒤늦게 부끄러웠지만,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걱정하고 행동하는 이들이 대구는 물론 서울, 광주 등 전국 곳곳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있어서 기뻤다. 같은 도시에 살면서도 잘 몰랐던 사람들을 첫 책 덕분에 알게 되고 그들과 도시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즐거움도 얻었다. 나와 대화하기 위해 일부러 대구까지 온 이들과의 격의 없는 토론도 잊지 못한다.

  전문적 지식은 부족하지만 기자가 써서 그런지 읽기 쉬웠다는 그들의 격려에 나는 그동안의 취재 자료를 다시 모으고 내 생각을 정리해 “한번 더 무식해지자”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 ‘동지애’를 느끼게 해준 해외 취재원들, 기후변화 문제를 도시에서부터 해결하기 위해 일찌감치 실천의 길에 접어든 그들도 내게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내 사고의 폭을 넓게 해주고 궁극적으로 내가 사는 곳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해준 대구의 취재원들과 편집국 선후배,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빚이 크다.

 

  나는 시골도 좋아하지만 도시도 좋아한다. 엄청 분주한 대로가 있는가 하면 한적한 골목이 있고, 화려한 도시 스카인라인 뒤편으로 소박한 정경도 있는 게 도시다. 시끌벅적하게 놀 수도 있고, 조용하게 차 한잔 앞에 놓고 책 속에 파묻혀 놀 수도 있다. 극과 극을 달리는 다양한 도시의 얼굴, 그리고 낯선 타인들과의 사이에서 느껴지는 도시의 익명성을 나는 좋아한다. 게다가 현실적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도시에는 다양한 일자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골을 그리워하지만, 도시를 떠나 먹고사는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도시는 지구온난화 현상을 불러일으킨 주범이지만 지구 인구의 절반이 도시에 살고 있고, 앞으로도 도시화가 더 심해질지언정 완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의 주범’ 도시를 ‘문제 해결사’ 도시로 만드는 방법에 대한 나의 고민의 결과가 이 책이다. 모든 문제가 다 그렇지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앞에 두고 단박에 해결할 길을 찾지 못해 절망하기보다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고 이것을 점차 확대시키는 쪽을 택해야 문제 해결이 쉽다.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을 읽고 ‘로컬퍼스트’ 정신을 실천하는 ‘착한 도시’의 물결에 참가하게 된다면, 이 책을 만드느라 희생된 나무들에게, 저자로서 조금은 덜 미안하지 않을까 싶다.

 2007년 10월  
정혜진  


  저자

  정혜진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영남일보〉 기자로 일하고 있다. 한국언론재단과 영국 외무성 지원으로 British Chevening Scholarship을 받아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칼리지에서 문화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도시와 에너지 문제를 취재하다 도시와 기후변화, 지구와 지역사회 등으로 관심의 반경을 넓히고 있다. 지은 책으로 《태양도시 ─ 에너지를 바꿔 삶을 바꾸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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