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인간정신의 증언
이 책은 한 미국인 지식인이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근대세계의 ‘어둠’을 뚫고 걸어간 오디세우스적 여행의 궤적을 보여준다. 그의 여행은 미국, 라틴아메리카, 유럽, 인도 등 세계 각지에 걸쳐 이루어지지만,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이 아니라 이 지상에서 진정으로 ‘좋은 삶’을 실행할 수 있는 가능성의 근거를 찾아 끊임없이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순례자로 남으려고 노력한다.

목차

서문
1. 애국심을 찾아서
2. 일리노이에서의 새로운 시작
3. 변두리에서의 삶
4. 마지막 농장
5. 과학에서 시(詩)로
6. 말의 뿌리
7. ‘아니오’의 아름다움
8. 나 자신의 죽음을
9. 아동기(兒童期)라는 중독현상
10. 일자리 찾기
11. 멕시코의 별들
12. 비전의 경제
13. 또하나의 전쟁
역자 후기
저자 약력

추천의 말

옛 동방교회에서는 복음서의 가르침을 무조건 실행하려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에게는 두 가지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게 가능하였다. 즉, 수도사가 됨으로써 그리스도를 따르든가, 아니면 눈에 띄지 않게 ‘자발적인 바보’로서 살아가는 길이었다. 호이나키의 이야기는 독자에게 충격을 준다. 왜냐하면 그의 이야기는 우리 시대에도 그러한 바보의 지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반 일리치

‘좋은 삶’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답하는 책이다.
― 경향신문

이 책은 저자가, 갈수록 야만과 무지가 판치고 인간적인 가치들이 패퇴를 강요당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대응하며 살았는지를 시적인 문체로 보여준다. … 끊임없이 스스로를 성찰한 뒤 보다 좋은 삶과 나은 세상을 향해 가진 것들을 아낌없이 내려놓고 비틀거리면서도 끝없이 나아간다는 점에서 순례자를 연상케 한다. 그러면서 지금 여기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준엄하게 되묻는다.
― 문화일보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 선정 2008년 올해의 책

저자 소개

리 호이나키(Lee Hoinacki)는 1928년 미국 일리노이주 링컨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모는 그의 부친이 아이였을 적에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그는 링컨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닌 뒤 1946년에 해병대에 입대하여 중국에서 근무를 하였고, 제대 후에는 ‘제대군인 원호법’에 의거하여 장학금으로 대학을 다녔다. 대학시절 그는 트라피스트 수사였던 토머스 머턴의 자전적 기록 《칠층산》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았고, 아마도 이것이 그 후의 생애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스스로 회고하고 있다.
그는 1951년에 도미니크회 수도회에 들어가서, 1959년에는 맨해튼의 빈민구역에서 사목활동을 했다. 1960년에 그는 스페인어를 배우기 위해서 푸에르토리코로 갔고, 거기서 이반 일리치를 만났다. 일리치는 평생에 걸친 벗이 되었다. 2년 뒤 그는 칠레로 갔고, 그리고 다시 4년 뒤에는 멕시코로 가서 당시 일리치가 쿠에르나바카에서 운영하던 연구소에 합류했다.
1967년에 미국으로 돌아와서 결혼을 하고, 캘리포니아대학(로스앤젤레스) 대학원에 들어가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학위과정을 마치고 박사논문을 작성하는 도중에 베트남전쟁으로 대변되는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과 미국사회에 만연한 불의와 부도덕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가족과 함께 베네수엘라로 자발적인 망명을 하였으나, 거기서 여러 해를 지낸 다음, 다시 미국으로 되돌아와 일리노이주 생거먼대학이라는 새로 개설된 실험대학의 교단에 섰다.
그러나 7년 후 그 대학의 정년보장 교수가 된 직후에 그는 대학을 그만두고 시골로 가서 농부가 되었고, 거기서 “경제주의/화폐 중심 사회의 틀에서 얼마나 벗어나서 살 수 있는지”를 실험하였다. 그러는 과정에서도 그는 계속해서 일리치와 협력해서 일했다. 2002년 이반 일리치가 고인이 되기 직전 The Challenges of Ivan Illich(2002) 등의 책을 편집하였고, 계속해서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가르쳐왔다.
저서로는 El Camino:Walking to Santiago de Compostela(1996), Dying is not Death(2007) 등이 있다.

역자 소개

김종철(金鍾哲)
격월간 《녹색평론》 발행·편집인

소개의 말

《正義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는 한 미국인 지식인이 궁극적으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근대세계의 어둠을 뚫고 걸어간 오디세우스적 여행의 궤적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그의 여행은 미국, 라틴아메리카, 유럽, 인도 등등 세계 각지에 걸쳐 이루어지지만, 그는 그 자신의 인생행로의 어떤 지점에서도 단지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이 아니라 이 지상에서 진정으로 ‘좋은 삶’을 실행할 수 있는 가능성의 근거를 찾아서 끊임없이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순례자로 남으려고 노력한다. 오늘날 자본과 국가의 압도적인 논리에 갇혀 있는 근대적 세계는 개인으로 하여금 참된 의미에서의 ‘좋은 삶’, 다시 말하여 ‘덕행(德行)의 습관적인 실천’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체제이다. 지금 우리는 개인주의 문화 속에서 누구나 ‘자기몰두’에 빠져 있을 뿐만 아니라, 거의 예외 없이 ‘경제인간’으로 전락하여, 기껏해야 소비자 혹은 관광객으로서의 삶이라는 극히 천박한 행복을 추구하는 데 여념이 없다.
호이나키는 우리 시대가 참으로 ‘기묘한’ 시대라고 말한다. 엄청난 생산력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빈곤과 전쟁에서 헤어날 방법을 찾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진보’의 프로젝트들에 의해서 안락과 편의성이 증대하면 할수록 인간은 제도와 기술과 전문가의 노예가 되고 마는 역설적인 상황이 나날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을 진실로 인간답게 하는 근본적인 조건, 다시 말하여 자유로운 의지에서 나온 자기희생의 정신과 타자에의 능동적인 환대와 같은 오랜 세월 인류사회를 지탱해온 전통적인 덕행은 극히 낯선 것이 되어버렸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호이나키라고 해서 이 상황을 타개할 해답을 갖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그는 그 속에서 자신이 자라고, 교육받고, 살아온 서양의 정신적 전통 ― 특히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아퀴나스를 거쳐 전승되어온 서양의 오래된 윤리적·종교적 전통으로 되돌아가, 지극히 겸허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전체로서 하나의 목적을 가진 뜻있는 이야기로서 파악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문(自問)하고 자기성찰을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근대세계란 삶의 근원적인 무의미성을 부추기는 체제이다. 그러나 호이나키의 이야기는 그러한 불모의 세계 한가운데서도 우리가 개인이든 집단이든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망각하지 않고, 지극히 겸허한 마음을 가질 때 우리에게도 ‘품위 있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책 전체의 밑바닥을 관류하고 있는 이미지 ― ‘거룩한 바보’야말로 궁극적인 희망의 이미지로 나타나는 것이다.
‘거룩한 바보’는 따지고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된 사회라면 어디에서든 존재해온 인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어떠한 형태로든 ‘거룩한 바보’에 의한 저항이 계속되어 오지 않았다면, 이 세상은 벌써 끝났을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크든 작든 체제에 순응하기를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거룩한 바보’의 예들을 풍부히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 아마 이것이 호이나키라는 한 탁월한 이야기꾼의 이야기의 결론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