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제85호 2005년 11-12월호    

 

 "4공구를 터라"

  새만금 연안 어민들의 절규

  고은식

 

  답답합니다. 깜깜합니다.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해보고 싶습니다.

  달걀로 바위치기란 말을 새만금 간척사업을 막으려고 처음 나섰을 때부터 지금까지 듣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움직이고, 큰 힘이 모이는 것이 보였을 때에는 희망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때에는 “달걀로도 바위를 깰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화도의 주민들 역시 그런 희망을 가졌습니다. 희망을 가지면 길이 있고, 찾으려 하면 찾겠구나, 하며 희망을 찾고 만들고자 했습니다.

  바다밖에 모르는 우리가 서울 거리에서, 공원에서, 광장에서 목이 쉰 소리가 나도록 외쳐댔습니다. 어디든 우리가 희망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는 곳이라면 걸음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바다에 물이 쓰면(빠지면) 그레를 메고 생합을 잡으러 나가던 어머니들이 상복을 입고 해창산을 오르며 울부짖었습니다. 바다를 막는 일에 자신의 살점을 다 내어주고 죽음에 이른 해창산을 위로하며, 바다와 갯벌을 살려내라고 통곡했습니다. 또 정부종합청사 앞에서도 울었습니다. 포크레인 발통 밑에, 덤프트럭의 바퀴 밑에 몸을 누이기도 했습니다. 희망이 있어 보이면 주저 없이 온몸을 내던졌습니다. 바다와 갯벌을 다시 살려낼 수만 있다면, 우리의 삶의 터전을 지켜낼 수만 있다면, 작은 희망만 보이면 그것을 잡고자 온몸을 내던지곤 했습니다. 그렇게 계화도 주민들은 몇년을 몸부림치며 외쳐왔습니다.

  우리가 비록 작고 미천한 존재이지만, 우리가 힘을 합하여 온몸으로 저항하면, 새만금이라는 거대한 국책사업을 막아낼 수 있겠구나, 라며 서로 격려하고 용기를 내었습니다. 하지만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고 했지요. 우리의 이런 작은 몸짓이, 그 희망들이 지금 우리에겐 너무도 큰 절망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새만금 간척사업과 이를 반대하던 일련의 실천들을 돌아볼 때, 그 속에 외롭게 남겨져 절망에 몸서리쳐야 하는 현실이 우리들의 기운을 빼앗아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농림부는 오는 12월 16일 있을 고등법원의 판결과 상관없이 내년 3월이면 방조제 물막이 공사를 완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또 마지막 방조제 공사 때문에 공사구간 안쪽에 있는 배들을 강제로 뺀다고도 하고 있습니다. 새만금 간척공사 4공구가 막혔을 때 바다는 급속도로 황폐화되었고, 군산 쪽에 있는 내초도는 무기력하게 삶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머지않아 우리 계화도 주민들에게도 내초도와 같은 비극이 찾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곳 계화도를 비롯해서 새만금 연안의 모든 어민들이 긴장하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절벽을 바라보면서도 어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 남겨진 2.7km 구간은 마지막 남은 새만금 갯벌의 숨통입니다. 4공구가 막히고 급격하게 바다환경이 바뀌자 사람들은 그제야 새만금 사업이 가져올 위기들을 실제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새만금 방조제의 내수면 연안뿐만이 아닌 서천에서부터 위도와 변산에 이르는 새만금 방조제 외해의 어장들 역시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망해가고 있다는 것을 또렷이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수해로 인한 피해가 많아지면서 이 역시 새만금 방조제가 원활한 해수유통을 방해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들 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이러저러한 근거를 내세우며 새만금 사업으로 인해 전라북도가 황폐화된다고 했을 때 그저 그러려니 생각했던 것들이 정말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어민들은 4공구 방조제를 다시 열지 않으면 바다가 죽고 말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4공구의 물길을 열어주기는커녕 마지막 남은 2.7km의 남겨진 물길을 막아서 이 거대한 생명의 보고, 삶의 터전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리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참 많은 시간을 생각하고,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거대한 바위를 깨뜨리기 위해 우리가 던져야 할 달걀이 무엇인지를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저 멍하니 기다리다 죽음을 맞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다시 살릴 수 있다면 끝까지 최선을 다해 생명을 유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무엇 하나 또렷한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바다와 갯벌에 의지해 살아가던 우리가 국가를 상대로 싸우리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국가에 맞서 싸워야 희망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습니다. 매일 물때에 맞춰, 물이 빠지면 바다에 나가 백합을 채취하고, 물이 들어오면 자연스레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었습니다. 그렇게 바다와 갯벌에서 잡아온 것들로 자식들을 교육시키고, 생활을 유지하며, 저축을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었고 전부였습니다.

  우리들은 신문의 지면을 가득 메운 정치라든가 사회의 면면들을 잘 알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있어 세상 돌아가는 이치라는 것은 그저 바다에 물이 들고, 때가 되면 다시 물이 빠진다는 것. 그 이치가 우리를 먹여살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새만금 간척공사의 시작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그리고 33km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방조제가 막히고 나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공사가 처음 시작되던 90년대 초반에 우린 알지 못했습니다.

  새만금 간척사업을 시작하면서 정부는 보상이라는 달콤한 사탕을 우리에게 던졌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보상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선물인 양 마냥 좋아했습니다.

  그런 우리들이, 이 사업이 우리의 삶에 미칠 그 엄청난 영향에 대해 조금씩 깨달아갈 무렵 우리는 간척사업을 반대하는 여러 세력들과 함께 새만금 사업 반대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우리에게 삿대질을 하며 말했습니다. “너희들 보상받고 왜 이제 와서 반대하냐. 보상 더 받아먹으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 하는 말들을 했습니다.

  고작 두달 벌이밖에 되지 않는 보상을 우리들은 기쁜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그저 정부에서 하는 일이었고, “정부가 설마 우리들 다 죽이는 그런 짓을 하겠냐?”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힘든 싸움을 해야 할 것을 알았다면, 우리의 삶 자체가 풍비박산 나고, 생존마저 불안해질 것을 진작에 알았다면, 우린 그 돈 절대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상에 별 이유 없이 돈을 준다는데 싫다고 마다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좀 의아해 하면서도 국가에서 주는 것인데 잘못되기야 하겠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못 배우고 못난 어민들의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우린 보상을 받았고, 공무원들이 제시한 서류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해 일체 문제삼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류였습니다. 그러고도 몇년을 우리는 계속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왔습니다. 언제까지라도 바다는 우리의 것이고, 삶을 책임져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간척사업으로 바다가 죽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입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공사가 시작된 지 5년 정도 흐르니까 아주 조금씩 바다에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고기 어획량이 조금씩 줄어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 마음을 다급하게 하기 시작한 것은 공사 후 8년 정도가 지나면서입니다. 갯벌이 변화되고 어획량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들었습니다. 잘 잡히던 고기가 종자도 없이 아주 사라져버린 경우도 생겼습니다.

  이런 변화로 인해 우리의 삶의 방식도 상당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간척사업이 시작되기 전, 예전에 풍요로웠던 삶은 끝이 났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던 공동체에 이기주의가 극심하게 확산되어 갔습니다.

  예전엔, 백합을 잡는 사람들은 많이 잡으면 어느 곳에서 많이 잡았다고 자랑도 하고 다음날이면 이웃과 함께 그곳을 찾아 함께 백합을 채취하곤 했습니다. 이런 마음이 바다의 변화에 위기를 느껴서인지, 절대 많이 잡은 장소를 서로에게 알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백합잡이뿐 아니고 어업 전반이 똑같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고기잡이배들도 남보다 많이 잡기 위해 경쟁하게 되었고, 속도가 느린 배는 빨리 가기 위해 엔진을 고속으로 바꾸고, 비가 오나 안개가 끼거나 바람이 불어도 바다에 나갈 수 있도록 어군 탐지기 따위를 달기 시작했습니다. 또 무리하게 배의 크기를 늘려가게 되었습니다. 더이상 이웃을 돌볼 틈이 없어졌습니다. 남을 생각할 틈을 바다의 변화가 막아버려서 생겨난 현상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은행의 빚으로 해결되었고, 결국 끝없는 짐으로 자신들을 더욱 죄어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상 이야기를 하지만 우리들은 우리가 받은 보상금보다 훨씬 많은 돈과 삶의 따뜻함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때까지도 우리는 정부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참으면 좋은 무엇인가를 정부가 제시하겠지, 이런 기대감을 품고 기다렸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바다는 급속도로 황폐해지고 우리의 마음은 조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농림부와 국무조정실을 찾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우리는 위로는커녕 오히려 무너져내리는 가슴을 애써 보듬어야 했습니다. 그제서야 우리가 국가에게 속았고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매일 물때에 맞춰 바다에 나갔고, 국가가 시키면 하라는 대로 했던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너무 순진했던 것인가요? 우매한 민중이라고 정부가 우리를 일부러 곯려먹었던 것일까요? 그 이유가 무엇이든 정부와 개발세력들은 우리의 가슴에 철퇴를 휘둘러 커다란 멍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도 정부는 우리를 기만하고 사기친 것을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바다와 갯벌의 그 소중한 생명들을 먹이삼아, 우리 어민들의 생존권을 유린하면서, 전라북도의 개발환상을 교묘히 자극해가며 자신들의 배를 채우고 있습니다.

  벌써 5-6년 전의 일들입니다. 그때부터 우리들은 저 거대한 돌덩이에 달걀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먹기에도 아까운 그 달걀들을 수도 없이 던졌습니다. 그리고 잠깐이었지만 그 바위가 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여기까지 오고야 말았습니다. “저거 막으면 이제 다 죽는데…” 하는 상황까지 온 것입니다. 헌데 너무 조용합니다. 그동안 정말 열심히 했던 단체나 사람들도 어째 너무 조용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일입니다. 그래서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순덕 이모님께서 그러셨습니다. “청와대로 가자, 가서 우리가 1인 시위하자!” 그 말에 모두 응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들은 또 달걀을 던지고 있습니다. 물웅덩이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섭니다. 바위치기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마지막 달걀 하나를 아주 견고한 바위 중앙에 던지려 하는 것입니다.

  부서지고, 그렇지 않고는 의미가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라면 하는 것, 달걀을 던지는 것에 최대의 힘을 쏟아 던지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바위가 깨어졌으면 하는 것이 지금 가장 절실한 소망입니다. 갯벌과 바다가 다시 숨쉬고, 우리들의 공동체도 다시 숨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고은식 ―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도 계화리에서 백합을 채취하며 살고 있으며, 지난 10월 24일부터 ‘새만금 갯벌을 살리는 계화도 사람들’과 함께 청와대앞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33km의 방조제 구간 중 2.7km만을 남겨놓은 상태이며, 신시도 배수갑문의 공사가 완료되는 오는 12월부터 마지막 구간에 대한 전진공사를 시작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이 계획대로라면 내년 3월경 물막이 공사가 완료된다. 이후 신시배수갑문과 가력배수갑문 두 곳으로 새만금저류지의 물을 관리하게 되며, 해수유통이 차단되어, 아직까지 백합조개의 채취가 이루어지고 있는 계화도 역시 더이상 갯벌살림을 할 수 없는 생존의 위기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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