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85호 2005년 11-12월호    

 

  불소 ― 거대한 속임수 [연재 2회]

  맨해튼 프로젝트는 우리에게 어떻게 불소를 팔아먹었는가

  크리스토퍼 브라이슨

 

  편집자의 말

  지난호에 이어《불소―거대한 속임수》(The Fluoride Deception, New York:Seven Stories Press, 2004)의 연재 2회분을 싣는다. 미국의 탐사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퍼 브라이슨(Christopher Bryson)이 7년간에 걸친 치열한 노력 끝에 완성한 이 책은 ‘수돗물불소화’라는 전대미문의 ‘공중보건’ 프로그램이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시대 동안 미국의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와 어떻게 결합되어 시작되었는지, 그 역사와 배경을 치밀한 문헌검토, 현지조사, 관계자들의 증언 수집 등을 통해서 소상하게 밝히고 있는 ‘과학저널리즘’의 기념비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녹색평론사는 곧 이 책의 한국어본을 출판하기 위한 작업을 현재 진행중이다. 여기 소개하는 연재분은 이 책의 제6장 “How the Manhattan Project Sold Us Fluoride”를 옮긴 것이다.


  뉴버그, 하쇼, 그리고 짐 코넌트의 계략

  반세기에 걸친 미 공중보건원의 수돗물불소화에 대한 안전성 보장은 1945년의 ‘뉴버그-킹스턴 불소-충치 실험’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그것은 불소화된 뉴욕주 뉴버그시의 아이들의 건강을 불소화되지 않은 이웃 킹스턴시의 아이들과 10년 동안 비교한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기밀 해제된 문서들은 전시(戰時) 공중보건원이 갖고 있었던 불소에 대한 이해관계와 맨해튼 프로젝트를 결부시키고 있다. 그리고 로체스터대학의 원자탄 프로그램 과학자들이 어떻게 비밀리에 뉴버그 실험을 모니터하면서, 지역 시민들의 생물 표본을 연구했는지―그리고 불소의 치과 및 독성효과에 대한 적어도 또하나의 전시(戰時) 연구를 어떻게 조잡하게 조작했는지―를 보여주는 일련의 기록들은 뉴버그 역시 핵 산업국가의 이해를 위한 냉전시대의 또하나의 인간 실험에 불과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뉴욕주 뉴버그 시내 브로드웨이에 있는 오래된 소방서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엠파이어 스테이트(뉴욕주의 속칭:역자주)의 장엄한 경관들 중의 하나이다. 그 큰 가로수 길은 아래쪽 계곡에서 시의 중심을 향하여 직선 오르막으로 뻗어있다. 정월 바람의 채찍을 맞는 고독한 보행자는 동쪽으로 거대한 허드슨 강 너머로 저 멀리 코네티컷까지 펼쳐져 있는 완만한 구릉들을 볼 수 있다. 1945년 봄, 바람은 낡은 소방서 내의 무료 공중진료소를 향해 재잘재잘대며 가고 있는 들뜬 어린 학생들 수백명의 웃음을 실어날랐다. 의사들은 아이들을 검사하고 싶어했다. 뉴버그는 미국에서 두번째로 상수도에 인위적으로 불화물을 첨가한 도시가 되었다.

  “지난 주, 전 시민을 실험동물로 삼아 불소를 시험해볼 것이라는 소식이 들어왔다.” 1944년 4월,〈타임〉은 찬성조로 고지했다. 그 잡지는 불소가 천연적으로 지하수에서 발견되는 지역에서는 “치과의사들의 주된 업무란 시민들의 입을 열어 그들의 완벽한 치아를 보여주는 것”일 거라고 넌지시 비쳤다.

  과학자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단지 치아만이 아니었다. 공식 명칭으로 ‘뉴버그-킹스턴 불소-충치 실험’은, 미국에서 당시 계획되고 있었던 몇몇 불소 실험들 중에서 가장 광범위한 것으로 여겨졌다. 10년의 기간 동안 뉴욕주 보건국에서 파견된 한 조사단이 뉴버그 아이들에게 심리 종합검사 및 엑스선 검사를 실시하고 또한 그들의 혈액, 소변, 신장, 체중을 조사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자료는 이웃의 비불소화 도시 킹스턴 아이들의 데이터와 비교될 것이었다. 뉴버그가 그 실험지가 될 것이라는 뉴스는 지역 시민들을 흥분시켰다. 그 견실한 블루칼라층 산업도시는 남부로부터 이주해 온 아프리카계의 흑인들은 물론, 이태리계 이민자들이 주민 다수를 구성하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새로운 공중보건 시책의 초창기 수혜자가 된 것을 행운이라고 여겼다.

  “어린아이였던 나는 매우 들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일평생 뉴버그 주민이며 전임 시장인 오드리 케리는 1945년 당시 어린아이로서 브로드웨이 진료소에 정기적으로 다녔다. 케리는 자신의 부모가 가난했다고 설명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흑인으로는 겨우 두번째로 뉴버그 경찰이 되었었고, 가족은 딸의 무료 건강검진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했다.

  “앞쪽의 방에는 치과용 의자가 있어서 누군가가 우리의 치아를 검사했어요. 또 우리는 간호사를 만나곤 했습니다.” 케리는 회상했다. “키와 몸무게를 재고, 그들은 소변도 검사했어요. 나는 매우 오랫동안 그런 검사가 달마다 행해졌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검사들은 안전성에 대한 간단한 의문―그 화학물질이 ‘치과 외적인’ 건강문제를 일으키는가―에 답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당연히 지역 시민들에게는 이 의학적 의제가 공개되지 않았다.) “그렇게 낮은 농도로도 장기간 지속하여 섭취할 경우에…누적효과―유익성 여부에 관계없이 치아 외의 조직 및 기관에 미치는―가 한가지라도 있는가?” 이 문제에 관한 각종 학술출판 및 회의에서 그 과학자들은 동료들에게 그렇게 설명했다.

  전시(戰時)라는 긴박함 속에서 미국 내 가장 유력한 몇몇 목소리가 불소의 독성에 관하여 그와 비슷한 질문들을 제기하고 있었다. 1943년 초가을, 루즈벨트 대통령의 과학고문 제임스 코넌트는 ‘불소 대사에 관한 회의’를 기획했는데, 실은 맨해튼 프로젝트를 대신하여 소집한 것이었다.

  그 회의는 1944년 1월 6일 뉴욕시에서 개최되었다. 그 회의 의사록은 코넌트가 쓴 서신들과 함께 원자탄 프로그램이 수돗물불소화 및 공중보건원(PHS)과 연관되었다는 사실을 가리켜주는 최초의 문서들 중 하나였다. 무기 제조자들은 공중보건 서비스를 원자탄의 전시(戰時) 위장수단, 가리개로 이용하고자 했다. 1943년 9월 25일자 편지에서 코넌트는 산업 위생과 J.J. 타운젠드 과장에게 ‘고문’ 스태포드 워렌 박사가 문제의 회의 자금을 은밀히 조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고문은 물론 다름 아닌 맨해튼 프로젝트의 의학부장 스태포드 워렌 대령이었다.

  “공중보건원이 이 회의를 기꺼이 후원하고, 후원자들에게 직접 초대장을 보내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코넌트는 타운젠드에게 썼다. “발언자 선정과 같은 일체의 준비는 워렌 박사가 책임지고 맡을 것입니다. 이 편지의 목적은,” 코넌트는 덧붙였다. “당신에게 이 심포지움의 중요성과 전쟁 노력과 관련된 정보가 정말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신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임의 목적은 귀하에게만 알려드리는 것이며, 외부에는 이 모임의 관심은 오직 산업적 위험에만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게 바람직할 것입니다.”

  타운젠드 박사는 회의 의제와 ‘초대할 인사들의 개별 자격증명서’를 공중보건원이 검토할 수만 있다면, “…공중보건원장은 그와 같은 회의를 매우 기쁘게 소집할 것”이라고 답했다.

  1944년 1월 6일, 전시(戰時) 불소 산업계의 유력인사들에 대한 정보가 뉴욕의 펜실베이니아 호텔 방문들 사이로 건네졌다. 거기에는 육군을 비롯해 원자탄을 제조하고 있던 기업 및 대학(듀퐁, 유니온 카바이드, 콜롬비아, 존스홉킨스 등)의 고위 의학 책임자들이 섞여 있었다. 알코아의 수석 불소전문가 프랜시스 프라리, 광산국의 헬무스 슈랭크, 미네소타대학의 생화학자 월리스 암스트롱, 케터링연구소의 에드워드 J. 라전트도 참석할 것이었다.

  국립보건원의 폴 A. 닐 박사가 전시 경제에 있어 불소의 결정적인 중요성에 대해 개관했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건강상 영향에 대해 의사들이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강조했다. 알루미늄, 마그네슘, 냉매, 에어로졸 추진제, 살충제, 동물사료용 인산염, 불화수소 산(‘특히 석유 정제과정에서 촉매로 사용되는 경우’), 그리고 약 150,000여종의 불소용제 접착제들은 전쟁 노력에서 급증하고 있는 불소 사용처들 중에서 그저 몇가지에 불과하다고 닐은 보고했다. 그는 “불화물에 다년간 노출된 노동자들에 대한 신중하고 철저한 조사”가 “분명히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그런 조사는 이들 산업의 부적절한 생산 중단 없이는 실시될 수 없기 때문에, 전쟁이 끝날 때까지 연기되어 왔습니다.”

  그 회의의 주최자들은 초대 명단에 의외의 이름을 추가했다. 뉴욕주 보건국의 수석 치과 보건관 데이비드 B. 에스트 박사였다. 에스트 박사는 당시 아이들의 치아 건강을 개선한다는 공인된 목적으로 불화나트륨을 뉴욕주 뉴버그시 식수에 첨가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회담은 비밀리에 맨해튼 프로젝트―맨해튼 프로젝트의 산업 하청업자들은 폭탄 공장의 노동자들이 불소에 중독될까봐 염려했다―에 의하여 준비되긴 했지만 그 치과 연구자는 자신이 거기에 참석할 만한 사람임을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 회의에서 군 장교들과 기업가들은 불소가 사람에게 미치는 독성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동물실험들은 가치가 의심스럽다,” 그리고 “성인에게 유해성을 끼칠 수 있는” 양에 대하여 혼란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때 에스트 박사는 대담하게 자청해서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는 식수중의 불소가 사람들에게 해로운지 여부를 연구자들이 검토할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 화학물질이 공장 노동자들에게 위험한지를 알아내는 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 “식수중에 있는 불소의 적은 복용량이 초래하는 누적효과는 미국에서 연구[될 수] 있습니다…[그리고] 그 기간 동안의 불소섭취로 인한 영향에 대한 증거는 [명백할지 모릅니]다”라고 에스트는 회의에서 말했다.

  그러한 인간을 대상으로 한 불소연구들이 수행될 수 있기까지는, 그러나, 임시 작업장 기준이 정해질 필요가 있었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오전 회의에 이어 “함께 모여 그 기준을 정할 열명을 위한 오찬”을 준비했다. 그 열명에는 공중보건원의 H. 트렌들리 딘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는 미국 내 몇몇 지역의 물에서 발견된 천연의 불소가 타지역에 비해 적은 수의 충치와 연관되어 있다고 보고했었다. 그날 모인 열명의 남자들이 자신들이 먹은 점심 값을 맨해튼 프로젝트가 냈다는 사실을 알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해롤드 호지는 알았다. 바로 그가 원자탄 프로그램 자금으로 식사대금을 지불했기 때문이다. “해롤드 호지 박사가 현금을 준비하여 이곳으로 가져오시면 편리하겠습니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지휘자 페리가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오찬 팀은 전쟁 노동자들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결정했다. 바로 그날 오전에 듀퐁의 A. N. 베닝 박사가 대기중의 불화수소 1ppm이 2시간 이내에 유리를 부식시킨다는 것을 묘사해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점심 식사 팀은 전시(戰時) 공장 내부에서 흡입하게 될 공기중 불소의 기준을 6ppm으로 결정했다. 그것은 매주 6일, 매일 8시간의 작업시간에 대한 기준이었다. 그 점심 회담의 사회를 맡았던 로체스터대학의 칼 보그틀린 박사는, 몇몇 주(州)에서 기왕에 정해 놓았던 3ppm 역치 기준을 “어떤 구체적인 증거에도 근거하지 않은 임의의 수치”라고 진술했다. “우리는 기준을 너무 낮게 책정함으로써 공장 운영을 어렵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라고 보그틀린은 덧붙였다. “확실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생각한다.”

  미국의 대표적 알루미늄 회사 알코아의 프랜시스 프라리는 기준이 필요하기나 한 것인지조차 의심스럽다고 했다. 프라리는 “나는 인간의 경우에 숨쉬기에 편한 정도로 있는 공기중의 불화수소산은 아무런 손상을 입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하면서, “가장 좋은 지침은 개별적 반응이다”라고 했다.

  호지는 그 문제를 교묘하게 처리했다. 그는 “시시각각 공기상태가 변한다고 우리가 알고 있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차폐 방법을 통하여 보호되어야 한다고 우리는 말할 수도 있습니다”고 제안했다.

  이견(異見)을 말하는 한 외로운 목소리가 테이블 저쪽에서 나왔다. “나는 이 자극성 물질에 장기간 노출됨으로써 누군가가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밖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네소타대학의 월리스 암스트롱 박사가 참견했다.

  뉴욕 회담이 있은 후, 테네시주 오크리지의 처녀림 한복판에 가스를 뿜어내는 거대한 공장이 비밀리에 건립됨에 따라 뉴버그에서의 수돗물불소화 실험 프로그램 역시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뉴욕 보건국을 지도하기 위해 ‘기술고문위원회’가 선정되었다. 그 전문가 위원회의 의장직은 로체스터대학의 ‘약리학자’ 해롤드 호지 박사가 맡게 될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불소의 가능한 독성 영향들이 우선적으로 고려될 것이다”라고 고문 위원회는 선언했다.

  1945년 5월 2일, 이 허드슨 강을 끼고 있는 도시는 전세계에서 인공적으로 불소화되는 두번째 지역이 되었다. 다음 10년 동안 그 주민들은 뉴욕주 보건국에 의한 연구대상이 되었다. 비밀리에, 로체스터대학의 호지의 기밀 ‘F 프로그램’은 뉴욕주의 조사와 제휴하여 뉴버그 시민들이 혈액과 조직에 얼마나 많은 불소를 보유하고 있는지―원자탄 프로그램이 알아내려고 했던 핵심적 정보―를 측정하면서 그 나름대로 연구들을 수행했다. 보건국 인사과도 협력했는데, 그들은 혈액 및 태반 시료(試料)들을 로체스터 과학자들에게 수송해 보냈다. 그 샘플들은 뉴버그 연구에서 소아과 분야연구를 책임진 데이비드 B. 오버턴 박사에 의해 수집되었다.

  원자탄 프로그램과 연계되어 있으면서 뉴버그 실험과 관련된 과학자는 호지만이 아니었다. 전쟁 후에 ‘기술고문위원회’에 합류한 헨리 L. 바넷 박사는 소아과 의사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그도 역시 맨해튼 프로젝트의 의무장교를 지냈었고, 원자탄 투하 이후에는 ‘원폭피해조사위원회’의 한 주도적 멤버로서 일본에 파견된 경력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상수도에 불소가 첨가되지 않은 뉴욕주 로체스터 주민들로부터 혈액 대조군 샘플을 채취했던―뉴버그 시민의 혈중 불소 수준과 비교하기 위해서―조 하우랜드 박사는 특별히 훈련된 인간 실험자였다. 예를 들어, 1945년 4월 10일, 하우랜드 대위는 원자탄 프로그램 관련 물질들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정보를 탐색하는 맨해튼 프로젝트 의학 조사 책임자로서, 단지 불운하게도 오크리지 병원으로 오게 된 죄밖에 없는,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테네시 자동차 사고 피해자 에브 케이드의 팔에 플루토늄 주사바늘을 찔러넣었다.

  뉴욕 보건국의 데이비드 에스트 박사는 수돗물불소화가 불소의 인체 독성에 관한 유용한 정보를 산업계에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당시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으나―1943년 맨해튼 프로젝트의 ‘불소 대사에 관한 회의’에서 행한 그의 증언에 드러나듯이―오늘날 그는 뉴버그 실험에 맨해튼 프로젝트가 연루되었던 사실을 자신은 몰랐다고 주장한다. “만약 알았더라면 나는 왜 그런지, 그리고 그 관계가 무엇인지 틀림없이 조사했을 것입니다”라고 에스트 박사가 내게 말했다.

  미국치과의사협회지(JADA)에 1956년에 발표된 뉴버그 실험 프로젝트에 관한 최종 보고서는 미국 시민들에게 ‘저농도’의 불소가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생물학적 증거―“로체스터대학의 원자력 프로젝트에서 수행된 연구에 근거한”―는 호지 박사가 제공하였다.

  그 안전하다는 판결은 공개적으로는 수돗물불소화를 추진하는 연방정부의 노력을 밀어주었다. 그 데이터는 또한 은밀히 핵무기 산업에 도움이 되었다고 맨해튼 프로젝트의 제1의학부장 하이머 L. 프리델이 설명했다. 불소노출의 유해성을 주장하는 노동자들은 이제 정부나 정부의 사업에 관련된 산업체들을 고소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고 프리델은 진술했다. “불화물들에 대한 어떠한 주장에 대해서도 이제 ‘그건 아무런 영향도 없다는 증거가 여기 있다’―이렇게 된 것입니다.” 프리델은 말했다.

  “‘영향이 없다’는 증거자료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 중요한 정보로 여겨졌습니다.” 옛 로체스터 과학자이자 역사가인 J. 뉴웰 스태나드가 동의했다.

  하이머 프리델은 맨해튼 프로젝트 의학부가 뉴버그 실험에서 한 역할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그러나 원자탄 프로그램 과학자들이 연루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지는 않았다. “전혀 기록조차 없는 일들이 실행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라고 그가 인정했다.

  그러나 기록이 있었다. 맨해튼 프로젝트 의학부의 과거 한때의 기밀문서 보관소에는 뉴버그 관련 파일이 통째로 존재한다. 파일―미육군이 ‘G-10’이라고 암호를 붙인―속에는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이 폭로되어 있다. 그것은 후일 ‘불소화의 아버지’로 유명해진 남자, 미국 공중보건원의 최고위 불소 과학자 H. 트렌들리 딘 박사가 불소의 독성을 우려하여 뉴버그의 불소화 실험을 반대했다는 사실이다.

  딘의 반대는 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었다. 공중보건원의 불소 과학자가 뉴버그의 식수에 불소를 첨가하는 것을―독성을 이유로 ―반대한다는 뉴스는 틀림없이 뉴버그 시민들을 두려움에 잠기게 할 것이었고, 어쩌면 미국 전체의 수돗물불소화 프로그램을 송두리째 중단시킬지도 모르며, 그리고 종국에는 불소를 취급하는 일의 위험성을 핵무기 노동자들에게 일깨워 줄 것이었다.

  그러나 딘의 반대는 결코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다. 대신, 해롤드 호지는 오크리지의 스태포드 워렌 대령에게 이 불편한 소식을 전했다.

  “친애하는 스태프,” 1944년 9월 15일 호지는 썼다. “이것은 킹스턴-뉴버그 연구와 관련된 최신 파일의 사본입니다. 바라신다면 당신이 계신 곳으로 제가 내려가서 이 문제에 대해 의논할 용의가 있습니다. 해롤드 배상.” (그 편지에는 워렌의 필적으로 보이는 메모가 휘갈겨져 있다. “의학부 파일로 돌려보낼 것.”)

  호지의 편지에 동봉된 것은 뉴버그 실험의 계획 및 프로토콜을 상술하고 있는 주요 문서들이었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실로 수돗물불소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문서들에는 호지가 뉴버그 기획자들에게 추가적인 ‘골(骨)’ 연구―원자탄 프로그램이 찾던 핵심 정보―를 요청하는 편지들과 뉴버그 기술고문위원회의 의사일정―상단에는 ‘워렌’이라고 갈겨 씌어있다―이 포함되어 있다.

  G-10 파일 역시 딘의 수돗물불소화 반대를 기록하고 있다. 워렌 대령에게 보내진 고문위원회의 회의 의사록에 의하면, 뉴버그 기획자들과의 최후의 결전은 1944년 4월 24일 오후 2시 정각, 뉴욕시 80센터가(街)에 있는 보건국 사무소에서 있었다. 해롤드 호지 박사가 그 모임의 사회를 맡았다. 거의 곧바로 “누적 중독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것은 이 연구와 관련된 독성문제 전체의 핵심이다”라고 회의 의사록은 기록하고 있다.

  딘 박사가 발언했다. 이 공중보건원의 전문가는 지하수에 높은 수준의 불소(8ppm)가 있는 미국의 일부 지역 주민들에게서 ‘골(骨) 변화’, ‘백내장’ 등 ‘독성작용’이 나타나 있는 증거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한 작용이 어떤 수준에서 사라지는지 알아보기 위해 보다 낮은 농도에서 연구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위원회에 말했다. 딘은 불소가 중장년층에 특별히 위험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는 위원회에 뉴버그 시민들이 “중년 이후 누적된 독성작용의 영향”을 경험할 가능성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 전문가는 가령 신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중독될 위험이 더 큰데, 그것은 그들의 신체에는 더욱 많은 불소가 축적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술고문위원회의 회의 의사록에 따르면, 이 임박한 실험에 관련하여 대답해야 할 한가지 질문은 “초기 중독의 증거를 보기 위해서 무엇을 살펴볼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딘 박사는 아동과 중년 이상의 연령층이 모두 고려되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고령층에는 신장 장애가 흔하기 때문에 비록 아주 낮은 농도일지라도 불소의 섭취와 배설이 균형을 이루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호지와 그의 뉴버그 팀은 계획대로 진척시키기를 갈망했다. 벌써 그 계획된 실험에 대해 ‘많은 홍보’가 이루어진 상태였다고, 뉴욕 보건국의 에드워드 로저스 박사는 회상했다. 그와 비슷하게, 고문위원회의 또다른 구성원인 미시간대학의 필립 제이 박사도 “심리학적 견지에서 지금이 그런 연구를 하기에 적시라고 느꼈다.” 또다른 위원은 워싱턴의 정책 입안자들에 의한 압력을 넌지시 암시했다. 미국 노동부 아동국의 케서린 베인 박사는 “자신은 신중한 입장이었지만, 그 프로젝트는 아동국의 승인을 얻어놓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아동국은 뉴버그 실험의 자금을 대고 있었다.)

  호지 의장은 그 실험을 진행시킬 것인가의 여부를 놓고 오후 4시 15분, 최종적인 투표를 위해서 고문위원회를 소집했다. 딘은 유일한 반대 목소리를 냈다. “딘 박사는 공중보건의 견지에서 제안된 프로그램이 완벽하게 안전한 절차라고 생각하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라고 의사록은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원회는 뉴버그 수돗물을 불소화하는 실험을 찬성하기로 가결했다.

  얼마 뒤 1944년 여름, 전시(戰時)의 압박이 증대함에 따라 딘은 수돗물불소화의 적(敵)에서 친구로 일변하였다. 이 과정은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태도변화였다. 뉴버그 실험에 퇴짜를 놓은 지 고작 3개월 뒤에, 딘은 이제 자신은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의 공공 식수에 불소를 첨가하는 것을 찬성한다고 공표했다. 그는 주요 조사자의 일원으로서 인근의 비불소화 도시 머스케건과 아이들의 치아를 10년간 비교하게 될 것이었다. 6개월 뒤 1945년 1월 25일, 미국의 불소 대실험이 시작되었다. 불화나트륨 107배럴이 그랜드래피즈에 수송되었고, 시 기술자들은 오후 4시 정각 그것을 도시 식수원에 조심스럽게 투입하기 시작했다.

  전시중의 딘의 선회(旋回)는 크게 보상받았다. 1948년 그는 국립치학연구소(NIDR)의 초대 소장으로 임명되었고, 1953년에는 미국치과의사협회의 회장직을 맡았다. 뉴버그 실험에 대한 딘의 불찬성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공개되지 않았다. 정부는 수돗물불소화의 안전성에 대해 의혹을 품은 채 그것에 찬동한 정부 과학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고 오랫동안 단정해왔다.

  과학자이자 역사가인 뉴웰 스태나드는 한때 기밀로 분류되었던 호지와 그의 맨해튼 프로젝트 상관들 사이에 오갔던 뉴버그 관계 서신에 대해―수돗물불소화 실험에 군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들었을 때, 놀라기는 했지만 그 논리를 이해했다. “나는 [군부가] 수돗물불소화에 정말로 관심을 가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들이 불소와 불화물들의 독성에 관한 정보를 찾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뉴버그의 전(前)시장 안드레이 케리는 핵무기관련 기구의 과학자들이 냉전 시기 동안 그녀의 동료 시민들을 비밀리에 모니터하고 연구했었다는 사실을 듣고 경악했다. “혐오스럽군요. 충격적이고요. 그건 저 앨라배마에서 있었던 매독 실험(거기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정부 의사들의 연구 때문에, 자신들이 성병(性病)에 걸렸다는 사실을 통고받지 못했다:원주)을 연상시킵니다”라고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제 케리는 불소의 비밀의 역사와 뉴버그 불소화 실험에 대한 정부로부터의 해명을 바라고 있다. “나는 단호히 이것을 추적할 것입니다.” 그녀는 말했다. “어떤 종류의 실험이든, 연구든,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허락 없이 한다는 것은 소름끼치는 일입니다.”

  해롤드 호지와 로체스터 원자탄 과학자들이 뉴버그 연구로부터 도출된 인체 유해성에 관한 정보들을 은폐 또는 삭제했는가? 그들이 그랬다는 얼마간의 증거가 존재한다. 그러나,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냉전시대의 문서가 보관되어 있는 로체스터대학의 문서보관소에서 정보를 빼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994년의 대통령 직속의 한 위원회조차 좌절했다. (검열문제와 현재의 뉴버그의 건강문제에 대한 더 자세한 논의는 7장과 17장을 보라.)

  군부가 검열로 불소의 유해성에 대한 정보를 실제로 삭제했다는 증거는 로체스터 원자탄 프로그램 과학자들이 수행하여 미국치과의사협회지(JADA) 1948년 8월호에 발표된 또다른 연구에 나타난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의학 부문 파일들 속에서 의학 전문기자 조엘 그리피스가 찾아낸, 은밀히 감추어져 있던 미발표된 원본과 대조해보면, 냉전시대의 당국자들이 불소에 불리한 정보들을, 거의 희비극 수준으로, 검열 삭제한 방법들의 실례가 드러난다.

  이 파일들에는 로체스터대학의 맨해튼 프로젝트 소속 장교 피터 데일이 1943년 후반기에 2개의 ‘치과 조사’의 예비 결과를 보고한 문서가 들어있다. 그것은 콜롬비아대학의 불소 실험실 작업자들의 구강 상태에 대한 연구, 그리고 생산과정에서 묽은 무수(無水) 불화수소산에 노출된 노동자들의 치아 상태에 관한 연구였다.

  과학자들이 방위연구실험실(War Research Laboratories)에서 불소를 우라늄 농축에 사용하고 있었던 콜롬비아대학에서의 조사결과는, 실망스러운 정도를 넘어 우려스럽기까지 했다. 불소는 충치를 막는 것이 아니라고 데일은 말하고 있다. 조사된 실험실 노동자 95명 중 “충치로 인해 때워졌거나 썩은 치아표면의 총수가 불화수소산 증기에 노출된 결과로 유의미하게 변화된 것이 없었다”라고 데일은 보고했다. 오히려 불소가 해로운 효과를 유발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지도적인 불소 과학자 호머 프리스트 박사는 자신의 “치아가 빠른 속도로 악화되는 것 같다”고 보고했다. 프리스트 박사는 또한 자신의 잇몸에서 전보다 쉽게 피가 나며, “자신이 이 일을 수행하고 있는 동안 점점더 잘 낫지 않고, 아픈 정도는 점점 심해져왔다”고 의학부에 보고했다.

  그 콜롬비아 데이터는 과학문헌에 발표된 적이 없다. 그러나, 클리블랜드에 있는 하쇼 화학회사 노동자들에 대한 두번째 치과 연구 결과들은 불소가 충치를 감소시킨다는 주장의 중요한 하나의 ‘증거’가 되었다. 그 연구는 특히 예시적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하쇼 화학회사의 작업환경은 극악했다. 1945년에는 두명의 노동자가 불화물 산(酸)으로 죽었다. 불소와 우라늄이 공장으로부터 너무나 많이 새어나와 FBI가 달려올 지경이었다. 그리고 원자력위원회는 폐암 발병률을 조사하기 위해서 은밀하게 예전 노동자들을 추적했다. 그러나, 그중 아무것도 일반에 공개되지는 않았다. 하쇼 회사와 불소에 대해 의학계에 알려진 것이라고는 미국의사협회지(JAMA) 1948년호에 발표된 연구―“해롤드 C. 호지의 제안으로 로체스터대학의 맨해튼 프로젝트를 위해…수행된 작업에 근거한” 연구―뿐이었고, 그 연구는 조사된 남자들이 보다 양호한 치아를 보유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었다. 기밀로 되어온 원래의 연구결과와 발표된 연구결과를 모두 검토한 독성학자 필리스 멀레닉스에 의하면, 출판된 판본은 조잡한 검열 삭제 및 데이터의 왜곡을 드러내고 있다.

  기밀본은 거의 모든 남자들에게 치아가 전혀, 또는 거의 없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들은 “상당 부분 아예 이가 없거나 또는 거의 이가 없”었다. 이 정보는 그러나, 출판본에서는 제외되었다. 발표된 연구결과는 불소 노동자들이 불소에 노출되지 않은 노동자들에 비해 충치 개수가 적었다고만 기록하고 있다.

  출판본은 불소가 그 남자들의 치아를 실제로 해치고 있었다는 암시를 빼고 있다. “[불소 산(酸)]에 의해 [치아가] 부식되고 연마되었을 수 있다는 표시들이 다소간 있었다.” 그리고 “관찰되는 치아 마멸은 그 산(酸)에 치아가 노출됨으로써 가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기밀본은 진술하고 있다. 반면 공개판은 원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소견을 날조하고 있다. 그것은 “이상하게도, 무기산(無機酸)[불소]에 노출된 노동자들에게서 흔히 목격되는 에나멜 및 상아질의 치아 부식 또는 칼슘 손실 현상이 보이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출판본은 신체적 증거들을 무시하고 불소가 치아에 입혔을 수 있는 유해한 효과에 대한 정보를 생략해버렸다.

  “거짓말이에요”라고 멀레닉스가 논평했다. 출판본은 불소가 노동자들의 치아를 부식하고 소멸시켰을 수 있다는 원래의 의학적 소견을 단순히 반대로 뒤집어놓은 것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출판본은 방호용 마스크를 거부하고, 그 대신 “보호목적으로 담배나 껌을 씹는 것을 선호”한 노동자들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시사하고 있다. 원래의 연구에는 마스크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다. (그리고 나중에 오하이오의 한 연구는 노동자들에게 방호용 마스크를 지급하지 않았다고 하쇼 회사를 비판하고 있다.)

  출판된 연구는 “청결한 구강 상태의” 남자들은 훌륭한 치아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진술한다. “방치된 구강 상태의” 남자들은 “전치(前齒)의 에나멜 상당 부분을 덮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갈색의 이상한 침적물”을 보유하고 있었다. 기밀 원본은 그러나 그 남자들의 구강위생 상태에 차이를 두고 있지 않다. “남자들 전부가 집단적으로 구강을 돌보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발표된 연구는 불량한 또는 변색된 치아를 노동자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있다. “그 불결한 갈색 치아는 그들의 위생문제로 취급되어 버렸습니다.” 멀레닉스가 말했다. “다시 말하자면, [검열된 연구결과는] 구강을 청결하게 유지하지 못했다고 피해자에게 탓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출판된 하쇼 연구결과는 산업적 불소노출에 대한 전국에 걸친 의학 논쟁을 제거하는 데 일조했다. 1940년대 동안의 몇몇 연구들은 산업환경 내의 산(酸)이 노동자들의 치아를 손상시킨다는 것을 이미 밝혀준 바 있었다. 그리고 콜롬비아대학에서의 프리스트 박사의 경험은 전쟁 기간 동안의 불소 노동자들에게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했다. 그런데 이제, 그 발표된 연구결과는 치아를 부식시킨다고 불소를 비난하기는커녕 오히려 “영리한 편집 작업”의 도움을 받아 “미국 불소 노동자들을 매장하는” 프로파갠더가 되어버렸다고 필리스 멀레닉스는 말했다.

  “이걸로 저는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져버렸어요”라고 멀레닉스는 내게 말했다. “제가 과학자라는 사실이 몹시 부끄럽습니다.” 냉전 시대에 행해진 불소의 안전성에 관한 다른 연구들에 대해서 그녀가 물었다. “그것들도 다 이런 식으로 되어 있는가요?”

  최근, 클리블랜드에서 예전에 하쇼 회사에서 일했던 불소 노동자들에게 해롤드 호지의 검열 삭제된 치과 연구결과에 대해서 들려주었을 때, 방을 꽉 채운 생존자들에게서 음울한 웃음이 터져나왔다. 나는 앨런 허트에게 로체스터대학의 원자력위원회 소속 의사들이 분석한 오래 전 그의 소변 중 불소측정 기록을 보여주었다. 불소는 17.8mg/리터라는 비상하게 높은 수준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현재 그는 관절염으로 죽을 지경이라고 말한다. 그의 하쇼 친구들 중 많은 사람이 젊은 나이에 암으로 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트는 거의 없는 이를 드러내고 싱긋 웃으며 그 발표된 연구결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무언가 내놓기는 내놓아야 했을 테지요.”

(김정현 옮김)


  서문|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
  후기| 아비드 칼슨(2000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본문 연재 1회| 1.거울 속으로/ 2.포사이스의 불꽃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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