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84호 2005년 9-10월호    

 

  불소 ― 거대한 속임수 [연재 1회]

  크리스토퍼 브라이슨

 

  편집자의 말

  본지와 여러 시민단체, 지역활동가들이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법률개정을 통해서 수돗물불소화의 전국적 시행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또다시 이루어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불소화 추진기관이나 그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막론하고 과연 한국의 우리들이 얼마나 불소문제에 관해 알고 있는지 냉정히 점검해보아야 할 긴급한 필요를 느낀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또 독자 여러분의 이 문제에 관한 정확한 인식을 돕기 위해서, 우리는 여기에 미국의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퍼 브라이슨(Christopher Bryson)이 쓴 책 The Fluoride Deception (New York:Seven Stories Press, 2004)의 서문(“A Clear and Present Danger”)과 제1장, 그리고 이 책에 붙여진 스웨덴 약물학자 아비드 칼슨 박사의 후기를 번역 소개한다.

  이 책《불소―거대한 속임수》는 머지않아 과학탐사 저널리즘의 한 기념비적 노작으로 널리 알려질 가능성이 큰 책이라고 우리는 확신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의 군부와 산업계의 필요에 의해서 어떻게 맹독성 화학물질인 불소의 이미지가 “몸에 좋은 유익한 물질”로 탈바꿈하고, 그 과정에서 수돗물불소화가 어떻게 추진되고, 정당화되어왔는지, 그 경위를 집요한 자료추적과 광범위한 인터뷰를 통해서 탐색하고 그것을 뛰어나게 생생한 언어로 기록하고 있다. 녹색평론사에서 곧 이 책의 번역본이 출간될 예정이지만, 당장의 독자들의 필요를 위해서 우선 우리는 이 책의 주요 부분들을 여기에 연재하기로 했다. 참고로, 여기 게재하는 번역문에서는, 곧 나올 번역본과는 달리, 번거로움을 피하여 원저에 있는 각주를 생략하였다.

  크리스토퍼 브라이슨은 이미 여러차례 언론관계 상을 수상한 탐사기자(investigative reporter)이며 텔레비전 프로듀서이다. 그는 1980년대 후반에 BBC World Service, National Public Radio 등 미디어를 위해서 중앙아메리카에서의 과테말라 군부에 의한 인권유린 실태를 취재했고, 1988년에 조나단 크위트니와 함께 Public Television의 The Kwitny Report를 위한 탐사 취재활동으로 George Polk상을 받았으며, 1998년에는 ABC News Productions 팀의 일원으로 팬암103기의 폭격사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National Headliner 상을 받았다. 그리고 1999년에는 조엘 그리피스와 함께 미국 군부의 맨해튼 계획과 공공식수 불소화와의 연관성을 밝힌 기사로써 Project Censored 상을 받았다.


  1. 거울 속으로

  보스턴의 명망있는 치과 연구소 포사이스 센터의 어린이용 출입구에는《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한 장면이 청동벽화로 제작되어 있다. 그 벽화는 과학자 필리스 멀레닉스의 웃음을 자아낸다. 어느 봄날 아침, 포사이스 센터의 독물학부 수석 연구자로서 그녀는 화려하게 대리석으로 장식된 건물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앨리스가 그랬던 것처럼 거울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바로 그날, 포사이스 센터 내 자신의 실험실에서 멀레닉스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그리고 그녀는 거의 모든 사람이 예전같지 않게 보이고,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을 기상천외의 이상한 나라로 굴러떨어졌다.
 

  1982년 8월, 환한 햇빛 속에서 찰스 강변을 따라 차를 몰면서 보스턴의 포사이스 치과센터로 첫 출근을 하고 있던 독물학자 필리스 멀레닉스는 미소짓고 있었다. 그녀와 남편 릭은 최근에 둘째 딸아이를 얻었다. 그녀의 새 일자리는 안정적인 직장뿐만 아니라 과학자로서의 그녀의 꿈의 실현을 약속하였다.

  멀레닉스는 대학원 시절부터 소량의 화학물질 복용의 유해성을 조사하는 새로운 방법을 연구해왔다. 1982년에 이르러 멀레닉스는 뇌 및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미치는 화학물질의 양을 측정하는 신생 과학인 신경독성학 분야에서 국내 정상급이 되었다. 그녀와 일단(一團)의 연구자들은 그와 같은 힘든 작업을 과거 어느 때보다 정확하고 신속하게 수행할 수 있는 야심찬 신기술을 개발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 신기술은 패턴 인식 컴퓨터 시스템이라고 불렸다. 그 시스템은 미량의 독성화학물질을 투입한 실험동물들이 나타내는 행동 ‘패턴’의 변화를 카메라로 기록한 뒤, 거기서 얻어진 데이터들을 컴퓨터로 분석하였다. 과학자들은 실험동물들의 행동이 그에 준하는 대조군―독성물질을 투여하지 않은 동물들―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를 조사함으로써 특정의 화학물질이 그 동물의 중추신경계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를 측정, 또는 ‘정량’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화학물질의 독성 정도는 주관적인 추측에 의존하고 있었고, 그런 물질이 초래하는 행동상의 변화들을 정량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과 수고를 들여야 했다. 그러므로, 신속한 컴퓨터 처리능력과 카메라를 이용한 정확성을 보유한 멀레닉스 시스템은 독성화학물질 연구분야에 혁명을 일으킬 것이었다.

  1982년 여름날 아침, 찰스 강을 따라 차를 달리면서 멀레닉스는 그녀의 새 직장과 명망높은 포사이스 치과센터의 후원으로 드디어 이 새로운 시스템을 완성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포사이스 센터의 소장 존 잭 헤인의 눈에 멀레닉스가 띈 것은 몇년 전 일이었다. 그는 당시 멀레닉스가 정신의학과 교수진의 일원으로 있었던 하버드 의대에서 열린 그녀의 세미나에 참석했었다. 그는 감탄하며 청중석에 앉아있었다. 그의 마음은 바삐 달리고 있었다. 헤인은 이 혁명적인 신기술―신경독성학을 탈바꿈시킬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그 자신이 믿고 있는―에 대해 설명하던 ‘매우 총명한 여성’을 기억하고 있다. “멀레닉스는 세상을 손안에 쥐고 있었습니다”라고 헤인은 말했다. “새로운 방법론만큼 호기심을 일으키는 것도 없습니다.”

  잭 헤인은 멀레닉스가 그 신기술을 포사이스 센터로 가져와서 그곳에 현대적 독물학 실험실을 구축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면 포사이스는 미국 최초의 신기술 보유 독물학 센터가 될 것이었다. 치과에서는 수은, 고장력(高張力) 합성수지, 마취제, 충전용 아말감 등 많은 강력한 화학물질들이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헤인은 이러한 물질들 중 일부는 아직 그 유독성에 대한 조사가 행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포사이스 치과센터 소장의 소년과 같은 열정이 멀레닉스를 설복시켰다. “나는 헤인 박사에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말했다. “그는 사탕가게에 온 어린아이 같았습니다. 이 새로운 방법을 사용하여 치과의사들이 사용하는 몇몇 물질들을 시험해보자고 조바심을 냈습니다.”

  포사이스는 보스턴의 최고 의료센터 중 하나이다. ‘어린이를 위한 포사이스 치과병원’은 1910년, 보스턴의 빈곤가정 아동들에게 무료로 치과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82년, 멀레닉스 박사가 잭 헤인의 요청을 받아들였을 당시에는 ‘포사이스 치과센터’로 이름을 바꾸고 하버드 의대와 제휴하여 치과 연구에 관한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연구소 중 하나로 부상해 있었다.

  바로 그 지도부에 미국 치학 연구계에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인 잭 헤인이 소장으로 있었다. 헤인은 1950년대에 로체스터 대학을 다녔고, 그곳에서 불화물, 일불화인산염나트륨(MFP) 개발에 일조하였다. 콜게이트 사(社)는 곧바로 MFP를 치약에 첨가하였고, 잭 헤인은 1955년, 그 회사의 치과 주임이 되었다. 1962년 그가 포사이스로 왔을 때, 헤인은 많은 치과대학과 연구소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던 미국 치과계 개혁의 새로운 질서를 대표하는 사람의 하나였다. 잭 헤인을 포함한 이 새로운 지도자들 세대는 불소를 치과술에 사용하는 데 대하여 한결같이 지지하였다.

  포사이스 센터는 시대의 흐름을 잘 읽고 있었다. 포사이스의 전(前) 소장이었던 베이코 O. 허미가 상수도에 불소를 첨가하는 데 대한 노골적인 반대자였던 반면에, 그것에 대한 헤인의 지지는 포사이스에서의 새로운 시설과 불소연구를 위한 현금이 콜게이트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그 외의 사기업들과 연방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들로부터 추가적인 기금이 들어왔다. 1970년, 번쩍이는 새 연구동 별관이 완공되면서 포사이스 센터의 규모는 배로 확장되었다. 이것은 NIH와 워너 램버트, 콜게이트-팔모리브, 레버 브라더즈 사(社)와 같은 ‘주요 기증자’들의 기금으로 건립된 것이었다.

  잭 헤인이 포사이스 센터의 기금조성자로서 좋은 실적을 거두고, 또한 치과에서의 불소사용을 지지한 데에는, 한때 로체스터 대학에서 연구활동을 했던 사람들로 이루어진 비공식적인 과학자 동창회에 그가 소속되어 있었던 덕분이 컸다. 로체스터 대학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서 주도적인 불소연구 센터였으며, 많은 졸업생들이 미국 전역의 치과대학과 연구소에서 지도적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

  1983년, 필리스 멀레닉스가 포사이스에서 일한 지 1년이 되었을 때, 헤인 소장은 그녀를 한 노신사에게 소개시켰다. 그 남자는 약 30년 전 로체스터 대학에서 헤인을 가르쳤던 그의 스승이었다. 그 노인은 전국적인 명성을 가진 연구자이기도 했다. 그가 독물학회의 초대회장이었고, 수십편의 학술논문과 저서의 저자라는 사실을 멀레닉스는 알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해롤드 카펜터 호지였는데, 그 노인의 흠잡을 데 없는 매너와 정장 차림은 멀레닉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는 해롤드에게 감명받았습니다…그는 매우 신사다웠습니다. 그는 결코 부적절한 단어를 사용하는 법이 없었고, 언제나 하얀 실험실 가운을 입고 있었습니다.” 멀레닉스의 말이다.

  호지는 바로 얼마 전에 샌프란시스코 대학에서 은퇴한 참이었다. 잭 헤인은 멀레닉스의 신기술에 호지가 권위를 부여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또한 예전에 자신의 스승이기도 했던 이제 70대 중반에 접어든 노신사에 대한 존경심에서 그를 포사이스로 데려왔다고 말했다. “나는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헤인은 덧붙였다.

  멀레닉스는 호지가 좋아졌다. 그가 실험실로 느릿느릿 걸어들어와 그녀의 어린 자녀들이 옆에서 장난치는 것을 받아주며 이야기할 때에는 거의 아이들의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호지는 특히 이 새로운 화학적 독성 시험용 컴퓨터 시스템에 매혹되었다. 멀레닉스는 그가 그녀와 자신의 동료, 아이오와 주립대학 출신의 빌 커난에게 끝없이 질문을 던졌던 것을 기억한다. “그는 내 실험실에 조용히 찾아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왜 하는 거냐?’,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거냐?’ 등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면 빌[커난]은 쥐를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에게 모든 소소한 과학적 세부사실을 설명해주느라 무척 애를 쓰곤 했습니다.”

  1980년대 초, 잭 헤인의 포사이스 센터에 대한 비전은 단순한 치과분야 이상을 포함했다. 그 용의주도한 기금 조성자는 멀레닉스의 신기술이 포사이스에 또하나의 큰 돈벌이가 되어줄 것이라고 믿었다.―일반적으로 거액의 보상금이 걸려있는 유독물에 관한 소송사건에서 화학물질에 중독되었다는 노동자 및 지역주민들의 주장을 판별할 비장의 무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대단한 새로운 신경독성 연구방법이었습니다.” 나중에 포사이스 연구동 별관 4층의 넓은 사무실과 실험실을 멀레닉스에게 할당해준 잭 헤인의 말이었다.

  신경독성학은 아직 신생 과학이었다. 어떤 사람이 작업장에서 특정의 화학물질에 의해 상해를 입었다거나 오염사고에 노출되었다고 주장할 때, 그것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기업이 크게 보상해야 하는 재판결과는, 흔히 보수를 받고 증언하는 전문가의 주관적 의견이나,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배심원들의 감정에 따라 결정되어왔다고 멀레닉스는 말했다. “기업들은 그러한 현실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판결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느꼈습니다. 따라서 측정 시스템에서 조사자의 편견을 배제시킨다는 착상은 그들에게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시스템이 법정에서 [기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패턴 인식 컴퓨터 시스템은 곧바로 다른 과학자들과 기업, 언론의 주목을 삽시간에 끌었다.〈월스트리트저널〉은 멀레닉스의 기술을 ‘정밀’하고 ‘객관적’이라고 불렀다. 몇몇 미국의 대기업들이 지갑을 열었다. 미국 석유연구소(American Petroleum Institute)의 의료부장은 멀레닉스에게 개인적으로 7만달러를 주었다. 몬산토 사(社)는 2만5천달러를 내어놓았고, 아모코 앤 모빌 사(社)는 수천달러를 보태었다. 한편 디지털 설비회사(Digital Equipment Corporation)는 최고성능의 컴퓨터 설비를 기부하였다.

  “몬산토와 같은 몇몇 석유 및 화학회사들이 이 시스템 개발을 후원하고 있다”라고〈월스트리트저널〉은 보도하였다. “화학물질에 의해 유발되는 행동양태의 변화가 실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점점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포사이스 시스템은 우리의 화학물질들이 유발할지도 모를 영향을 우리가 좀더 잘 알 수 있게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라고 몬산토의 독물학자 조지 레빈스카스는〈월스트리트저널〉에 말하였다.

  한 추천서 속에서, 과거 모빌 석유회사의 독물학부 책임자였고, 당시 연방 독성물질 및 질병등록청(ATSDR, the Federal Agency for Toxic Substances and Disease Registry)에서 일하고 있던 마이런 A. 멜만은, 멀레닉스의 기술을 “소량의 화학물질에 노출되었을 때 유발되는 신경독성 영향을 측정하는 데 있어서 21세기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멀레닉스 교수의 연구가 포사이스 센터에 가져올 혜택은 엄청나고, 측정할 수 없다”라고 썼다.

  기업들은 필리스 멀레닉스를 신뢰하였다. 1970년대 이래 이 독물학자는 오염문제들, 그리고 대기청정법의 법적 요건에 대한 자문을 해주는 대가로 많은 보수를 받아왔다. 예를 들면, 미국 석유연구소에 고용되어 이 로비그룹을 위해,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새로 내놓은 오존 규제 기준안에 대하여 조언을 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그들은 전문적인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나를 불러내 춤추게 했습니다”라고 멀레닉스는 말한다. “EPA가 또다른 기준 데이터를 들고 나올 때마다 나는 거기서 오류를 찾곤 했습니다.”

  멀레닉스는 기업과 함께 춤을 춘 것에 대해 변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녀는 누구나 자신을 무도회장에 데려갈 수는 있는 것 아니냐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 자신을 공중보건 관계자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EPA가 그토록 엉터리 기준을 만들어놓는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습니다. 나는 그러한 기준이 최소한 사실에 입각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하버드 시절, 이와 같은 기업과의 관계 때문에 멀레닉스는 몇몇 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그녀는 그 비난이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다고 말한다. “정부든, 학계든, 또 기업이든 어떤 한 집단도 100% 옳을 수는 없습니다. 나는 과학이 꼭 하나의 특정 집단과 제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업도 한 측면에서는 옳을 수 있고, 또다른 점에서는 매우 틀릴 수 있습니다.”

  멀레닉스는 그 외에도 엑슨, 모빌, 3M, 보이즈 캐스캐이드 같은 회사들의 자문에 응했다. 듀퐁, 프록터 앤 갬블, 누트라스위트, 쉐브론, 콜게이트-팔모리브, 코닥 등 기업들은 모두 ‘행동장애 독성 감별 프로그램’이라는 제목으로 1987년에 멀레닉스가 개최한 한 학술회의를 지원하기 위해 수표를 썼다.

  다른 많은 혁명적 착상들이 그런 것처럼, 중추신경계 문제를 연구하기 위한 멀레닉스 기술의 바탕이 되는 개념은 단순했다. 그 영감의 불씨는 멀레닉스 박사의 대학원 지도교수였던 캔자스 대학 의료센터의 스테이터 노튼 박사에게서 왔다. 호리호리하고 온화한 음성의 노튼 박사는 미국 최초의 저명한 여성 독물학자들 중 한사람이었다. 그녀는 알코올 및 소량의 방사능이 태아에 미치는 독성에는 ‘역치’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전국적 인정을 받았다. 이제는 은퇴하여 캔자스 시골의 숲에 둘러싸인 여름별장에서 지내고 있는 노튼 박사는 옛 제자를 떠올리며 훤한 미소를 지었다. 대학원생들은 통상적으로 의료센터의 여러 실험실들을 순회하고 있었다. 그런데 필리스 멀레닉스에게는 좀 다른 데가 있었다. “필리스는 간단한 연구작업을 하기 위해서 내 실험실에 들어왔습니다.―그리고 떠나지 않았어요.” 노튼은 기억을 떠올리며, 웃는다.

  필리스는 자진해서 새로운 복잡한 문제를 붙들고 싸우는 별난 성격을 갖고 있었다고 노튼은 말했다. 그녀가 방사능이 쥐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었을 때, 멀레닉스는 방사선이 물리적으로 어떻게 쥐의 뇌를 변화시켰는지 알고 싶어했다. 노튼은 그런 연구는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학생은 밤늦게까지 실험실에 남아서 의학저널을 열심히 뒤지고 쥐의 뇌를 해부하며 방사능이 유발한 아주 작은 변화일지라도 그것을 찾아내려고 노력했던 것을 노튼은 기억한다. “그녀는 그런 일을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멀레닉스는 일에 착수하여 수행하는 것을 즐거워했습니다…”라고 노튼은 말했다.

  다른 점은 또 있었다. 노튼은 그녀의 학생이 일반적인 통념에 기꺼이 겁없이 도전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교수는 그것을 참신하다고 느꼈다. “무언가 좀 다른 일을 나서서 하는 데는 특별한 성격이 필요합니다. 과학사는 갈릴레오로부터 시작해서 그런 사례들로 가득 차있습니다”, “맞다거나 틀렸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나 자신도 그런 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필리스의 그런 성격을 나는 식별할 수 있었습니다.”

  1970년대 중반, 스테이터 노튼은 화학물질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창안해내면서 행동독성학이라는 신생 과학연구분야의 개척자가 되었다. 노튼은 처음에는 먹이 보상 방법을 통하여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훈련되거나 또는 ‘조건반사적’인 생쥐를 가지고 연구하였다. 어떤 과학자들은 이러한 ‘조건반사적’인 행동 속의 혼란을 연구함으로써 화학물질의 독성 영향을 정확히 측량할 수 있다고 믿었다.

  노튼은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먹이를 얻기 위해서 정확한 시간 간격으로 레버를 누르도록 훈련된 생쥐를 연구하고 있던 노튼은 문득 그 동물들이 언제 레버를 눌러야 되는지를 어떻게 알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실험상자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녀는 각각의 생쥐가 앉아있거나, 긁어대거나, 킁킁거리는 따위의 단순한 움직임의 ‘연속동작’, 또는 패턴을 취함으로써 시간을 재는 것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는 일종의 리듬이 있었습니다”, “생쥐들은 어떤 동작을 취함으로써 시간을 가늠하였습니다.” 노튼의 설명이다.

  노튼은 그녀 자신이 고안한 실험을 시작했다. 그녀는 급식 사이에 나타나는 이러한 ‘패턴화’된 행동의 리듬에 나타나는 변화를 연구함으로써―먹이를 얻기 위해 나타나는 조건반사적 행동 속의 혼란을 연구하는 것과는 반대로―화학물질의 독성을 보다 민감하게 측량할 수 있지 않을까 궁금했다. 노튼과 멀레닉스는 화학적 독극물을 투여한 쥐들의 사진을 수천장 찍어서 이것들과 비슷한 건강한 대조군 쥐들의 사진과 비교하였다. 그 결과 그들은 매우 적은 양의 화학 독극물에서도 쥐들의 행동 패턴에 발생하는 변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몹시 흥분했습니다.” 노튼의 말이다.

  스테이터 노튼 실험실의 자유롭고, 어떤 질문이든 제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필리스 멀레닉스의 영감의 출처였다. 그런데 그것은 멀레닉스의 성장환경이기도 했다. 그녀의 어머니, 올리브 멀레닉스는 미주리 주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그녀는 매일같이 16마일 떨어진 교실 한칸짜리 학교로 말을 타고 출근하였고, ‘자신의’ 돈은 노점에서 불꽃놀이 기구를 팔아서 마련하였다. 멀레닉스의 아버지 ‘쇼키’ 멀레닉스(그의 머리카락 한 다발(shock)이 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는 의사가 되려고 시골을 떠났었다. 그러나 자신의 세 자녀가 그 꿈을 실현해주기를 희망하면서 결국 미주리 주의 작은 도시 커크스빌에서 주유소 사업을 하면서 늘 일에 중독되어 살았다. 그의 아들은 연방정부 에너지부의 핵물리학자가 되었고, 딸은 워싱턴의 기업 고문변호사가 되었으며, 막내인 필리스는 하버드 대학의 독물학자였다.

  1970년대 말, EPA는 캔자스 대학 연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연방기관은 저수준의 화학물질 오염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측정할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다. EPA의 신경독성분과 책임자 로렌스 레이터가 스테이터 노튼의 실험실로 찾아왔다. 필리스 멀레닉스는 이 신기술의 성패는 각각의 사진 필름을 분석하는, 장시간이 소요되는 과정을 단축시키는 것이라고 그에게 말해주었다. 멀레닉스는 컴퓨터가 이 작업을 보다 신속하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EPA도 동의하였고, 그에 따라 멀레닉스는 아이오와 주 컴퓨터 전문가 빌 커난과 데이브 호퍼에게 지급된 정부 보조금 4백만달러 연구사업의 고문이 되었다. 커난은 예전에 국방성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국방성이 보유하고 있는 가장 섬세하고 정교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들 중 몇은 바로 그의 작품이다.

  “나는 물리학자를 교육하고, 물리학자는 컴퓨터를 훈련시키기로 되었습니다.” 멀레닉스는 말했다.

  멀레닉스의 기술, 패턴 인식 컴퓨터 시스템 개발에는 거의 30년이 소요되었다. 노튼 박사가 쥐 연구를 시작한 것은 1960년대였고, 멀레닉스에게 바톤을 넘겨준 1970년대의 컴퓨터는, 화학물질 중독 여부를 측정하기 위해 수집된 미묘한 행동변화의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작업을 간신히 수행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1980년대 중반, 보스턴의 멀레닉스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바쁘게 되었다. 이제 두명의 어린 딸이 있었고, 기업의 자문 일도 맡고 있었다. 남편 릭은 항공 관제사가 되기 위한 훈련과정을 마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멀레닉스의 아버지는 1천5백마일 떨어진 미주리 주 커크스빌 시에서 폐기종을 심하게 앓고 있었다.

  포사이스의 멀레닉스 실험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새 컴퓨터들이 전화선을 통하여 아이오와 주에 있는 거대한 데이터 처리 장치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1987년 말, 패턴 인식 컴퓨터 시스템은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포사이스 센터는 “일반시민들이 신경독극물에 불필요하게 노출되는 것을 예방하고, 기업들을 과장된 청구소송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것이라는 내용의 팜플렛을 제작하여, 이 시스템을 적극 홍보하였다. 그리고 곧이어 노동자와 지역주민들의 화학물질 노출에 대한 피해보상 청구소송을 우려하는 기업들에게 새로운 시대를 약속하면서 멀레닉스는 전국적으로 포사이스 센터를 알리는 인물이 되었다. “나는 이 컴퓨터 시스템이 기업이 처한 난국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 전국을 뛰어다니며 설명했습니다.” 멀레닉스는 말했다.

  잭 헤인 소장은 이 새로운 기계의 민감도를 보여주고 싶어서 조바심을 냈다. 그는 불소로부터 시작해볼 것을 멀레닉스에게 제안하였다. 소량을 쥐들에게 먹인 뒤 그 설비로 시험해 보자는 것이었다. 오랜 불소 지지자인 헤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시민들의 불소에 대한 이미지를 보강하기 위해서” 그 화학물질을 처음으로 시험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부정적 영향이 전혀 없다는 것을 정말로 증명하고 싶었습니다”라고 헤인은 말했다. “불소화 반대자들의 주장을 무효화시킬 좋은 방법 같았습니다.”

  멀레닉스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그녀는 불소에 별 관심이 없었다. 사실, 속으로는 불소를 시험하는 것은 시간낭비이고, 잭 헤인이 과잉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했다. “하버드의 법칙은 발표냐 아니면 파멸이냐(publish or perish) 입니다. 그런데 나는 그 실험에서 발표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하나라도 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멀레닉스는 말한다. “나는 본격적인 신경독극물, 가령, 경련억제제와 같은 약품, 방사능, 뇌를 완전히 뒤틀어놓는 환경을 연구하는 데 익숙해 있었습니다. 불소에 관해 들어본 것이라곤 치아에 유익하다는 텔레비전 광고뿐이었습니다.”

  헤인은 멀레닉스를 근래에 포사이스 센터로 옮겨온 또다른 젊은 치과 연구자 파멜라 덴베스튼에게 소개했다. 덴베스튼은 치아불소증이라고 알려진, 불소에 의해 유발되는 치아에나멜 상의 희고 누런 얼룩, 또는 반점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멀레닉스가 중추신경계에 대한 영향을 시험해보는 데 불소를 사용하자는 착상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인 반면, 덴베스튼은 좀더 호기심을 나타냈다. 그녀가 치아에나멜 연구를 위해 쥐에게 불소를 투입하였을 때, 그 동물들이 ‘정상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목격한 바 있기 때문이었다. 실험용 쥐를 집어드는 것은 대개 쉬운 일이지만, 불소를 먹인 쥐들은 “우리 밖으로 거의 튀어나오다시피 했습니다”라고 덴베스튼은 말했다.

  두 여성은 함께 잘 일해 나갔다. 필리스는 그녀의 두 딸을 직장에 자주 데려왔고, 4층 멀레닉스 실험실은 포사이스 센터의 남성지배적 분위기로부터 피난처가 되었다. 덴베스튼은 필리스 멀레닉스가 포사이스에 친구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른 많은 연구자들은 이 솔직하게 말하는 독물학자를 적대시했다. 덴베스튼은 그것을 ‘성차별적인 어떤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 한명의 포사이스 과학자 카렌 스냅 박사도 필리스 멀레닉스와 금방 친구가 되었다. “나는 필리스가 저 높은 4층 탑에 있는 머리가 돈 여자라고 항상 들어왔습니다.” 스냅은 말했다. “그런데 하루는 구내식당에서 그녀와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얘기하기 시작했고, 곧 밖으로 나가서 콜라를 함께 마셨습니다.” 스냅은 멀레닉스의 과학의 질과, 그녀의 숨김없는 태도 모두에서 상쾌함을 느꼈다. “그녀는 포사이스에 있는 권력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매우 위선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필리스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녀의 그런 점이 좋았습니다. 그녀는 매우 정직하고 매우 직설적이었기 때문에, 상대는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스냅의 설명이다.

  그녀는 또한 실험에 기하는 멀레닉스의 엄격함에 감명을 받았다. “멀레닉스는 굉장히 철저했습니다. 그녀는 때때로 실험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실험을 마쳤는데, 예상했던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에는 확인을 위해서 그 실험을 반복했습니다. 그래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오면 [예상밖의 데이터가 유효한 것으로 판명되면], 그때에는 처음 세운 가설 자체를 바꾼다는 식이었습니다.”

  필리스 멀레닉스가 불소의 중추신경계에 대한 영향을 시험하는 데 처음에 냉담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포사이스 센터의 아마도 ‘최고 선배’의 태도는 그렇지 않았다. 방금 다림질한 것 같은 실험가운 차림의 상냥한 노인, 해롤드 호지 박사는 멀레닉스의 불소연구에 당시 그녀가 보기에는 거의 집착 수준의 흥미를 보이면서 방법론에 대한 질문을 끝없이 퍼부어댔다.

  “호지는 내가 어떤 특정의 불소연구를 하도록 밀어붙이고 싶어했습니다. 이걸 해라, 저걸 해라 하고 나서는, 어떻게 도와줄까 하고 묻곤 했습니다.” 멀레닉스의 말이다.

 

  2. 포사이스의 불꽃놀이

  흰 실험복 차림의 과학자 두명이 깜짝 놀라 서로의 얼굴을 뚫어져라 마주보고 있었다. 보스턴 상공, 컴퓨터 터미널과 데이터 출력물들이 쌓여있는 현대식 독물학 실험실의 밝은 조명 밑에서 필리스 멀레닉스와 파멜라 덴베스튼은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우리 속의 흰색 쥐들만이 촐랑거리며 킁킁대고 움직였다. 새로운 정보가 천천히 인식되기 시작했다. 두 과학자는 같은 실험을 반복하였고, 또다시, 결과는 일치했다. 그들은 신경질적으로 웃었다.

  “이런, 젠장.” 필리스 멀레닉스 박사가 마침내 불쑥 내뱉었다. “우리가 전국의 모든 치과의사들을 열받게 만들겠군.”


  멀레닉스 팀은 1989년에 이르러 불소실험의 결과를 얻기 시작했다. 그들은 2년 동안 데이터를 수집해왔다. 쥐에게 불소를 소량 투여하고, 그 쥐들의 우리 안 모습을 모니터한 후, 그 자료들을 RAPID 컴퓨터 시스템(멀레닉스 신기술의 알려진 이름)으로 분석하였다. 그런데 뭔가가 잘못된 것 같았다. 결과가 이상해 보였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데이터가 계속해서 나왔습니다.” 멀레닉스는 말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멀레닉스는 쥐들에게 불소가 든 식수를 주었을 때 행동이나 중추신경계에 전혀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녀는 이 뜻밖의 결과가 나오는 것은 새 기계 자체의 문제가 아닌가 의심했다. 멀레닉스 팀은 일련의 철저한 대조실험에 착수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RAPID 컴퓨터들이 제대로 잘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었다. 모든 실험결과가 “놀라우리만치 일관성이 있었습니다.” 멀레닉스는 말했다.

  식수에 첨가된 불소는 그 쥐들에게 다양한 반응을 초래했다. 임신중이었던 쥐들은 ‘과잉행동’ 증세를 보이는 새끼를 낳았다. 갓난 쥐들에게 불소를 섭취시켰을 때에는 ‘인식력 결핍증’을 나타냈고 정신지체 행동을 보였다. 또한 성별에 따른 차이도 있었다. 수컷은 태내(胎內)에 있을 때 불소에 더 민감한 반면, 암컷은 젖을 막 뗀 뒤나 어린 시기에 불소에 노출될 때 좀더 큰 영향을 받았다.

  두 여성은 잭 헤인과 해롤드 호지에게 이 결과를 보고하였다. 두 남자는 이번에는 다른 쥐들로 같은 실험을 다시 할 것을 명령하였다. 멀레닉스 팀은 실험을 반복했다. 멀레닉스는 해롤드 호지가 당시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실험결과에 대해 줄곧 물어왔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메인 주에 있는 집에 가있었지만 전화로 계속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그는 매일같이 문의전화를 했다.

  1990년, 이제 실험결과는 명명백백했다. 두 여성 과학자는 500마리 이상의 쥐를 실험했다. “나는 마침내 통계학적으로 충분히 유효한 숫자의 동물들이 여기 있다고 말했습니다.” 멀레닉스는 말했다.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두 여성은 자신들의 실험결과에 대해 끝없이 토론했다. 멀레닉스는 불소연구에 관해서는 신참이었지만, 파멜라 덴베스튼은 과학자로서 생애 내내 이 화학물질을 연구해왔다. 그녀는 그들이 엄청난 발견을 했고, 특히 치과의사들이 그 정보를 중요하게 여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게 처음으로 든 생각은, 이건 정말로 보통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라고 덴베스튼은 말했다. 비록 포사이스의 쥐들에게는 사람들이 보통 식수로 마시는 것(1ppm)보다 높은 농도(5ppm)의 물을 먹였지만, 많은 미국인들이 불소에 일상적으로 그보다 높은 수준으로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 역시 덴베스튼은 알고 있었다. 예를 들면, 운동선수나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처럼 다량의 물을 마시는 사람, 불소수준이 높은 식품이나 쥬스를 섭취하는 사람, 치과의사로부터 불소보충제를 받아서 사용하고 있는 어린이, 또 작업장에서 불소에 노출되는 특정 공장노동자, 특정 환자들 모두 그보다 높은 수준으로 불소를 누적하여 섭취하게 된다. 그와 같은 불소섭취 수준은 포사이스의 쥐가 섭취한 수준에 육박하거나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초과할 수도 있다.

  “물을 많이 마시게 되는 요붕증(尿崩症)이나 신장질환처럼 불소의 체내 대사를 변동시킬 수 있는 질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모두, 그만큼 불소를 섭취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라고 덴베스튼은 말한다. 그녀는 이 포사이스 연구결과에 이어 일련의 추가적 연구들, 가령, 그보다 낮은 수준인 1ppm에서도 불소가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사하는 실험들이 즉각 뒤따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저절로 그렇게 될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크게 우려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잭 헤인도 역시 흥분했던 것을 멀레닉스는 기억하고 있다. (해롤드 호지는 멀레닉스가 최종결과를 보고하기 전에 사망했다.) 헤인은 멀레닉스에게 워싱턴의 국립치학연구소에 가서 그 연구결과를 발표하라고 말했다.

  소량의 불소에 대한 독성연구가 진행되려면 정부기관인 국립보건원과 미국 공중보건국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잭 헤인은 알고 있었다.


  워싱턴 DC의 바로 북쪽에 위치한 국립보건원 건물들은 아이비리그 대학의 교정과 같이 녹음이 우거지고 널찍한 터에 자리잡고 있었다. 흰 가운을 입은 과학자들과, 넥타이와 양복 차림의 정부 관료들이 사무실 건물과 실험실들을 연결하는 가로수 사이로 난 길들을 한가로이 오가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전국의 보건연구를 통합하기 위해 미국정부가 세운 기관의 본부였다. 이곳의 연간 예산은 234억달러에 달했는데, 그것은 미국의 납세자들로부터 긁어모은 돈이었다. 이 캠퍼스에는 국립암연구소 및 국립치학연구소(NIDR)와 같은 여러 국립보건원 소속 전문기관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1990년 10월 10일, 필리스 멀레닉스와 잭 헤인은 정부 고위 과학자들과 정책 결정자들에게 멀레닉스의 불소연구에 대하여 보고하기 위하여 국립보건원의 캠퍼스에 당도했다. 미국 최고의 민간 치과연구소 소장으로서 잭 헤인은 국립보건원에서 잘 알려져 있었으며 존경받고 있었다. 바로 그런 사람이 멀레닉스의 발표를 주선했던 것이다. 멀레닉스도 역시 공중보건 관리들에게 낯선 인물이 아니었다. 국립보건원의 가장 큰 기관 중 하나인 국립암연구소만 해도 바로 그 해에 합계 60만달러에 달하는 연구비를 그녀에게 수여했었다. 그 자금은 아동 백혈병 치료에 사용되는 몇가지 약품들과 치료법들의 중추신경계에 대한 영향을 조사하는 연구에 사용될 것이었다. 그러한 약품들과 방사선 치료법들 중 다수는 백혈병의 진행속도를 늦추기는 하지만, 너무나 강력해서 종종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미치고 어린이의 지능지체를 유발할 수 있었다. 정부는 멀레닉스가 그녀의 새로운 RAPID 컴퓨터 테크놀로지를 사용하여 이러한 약제들의 신경독성을 측정하기를 원했다.

  멀레닉스와 헤인은 불소실험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서 보스턴에서 비행기로 날아왔는데, 조금 일찍 도착했다. 헤인이 NIDR의 옛 친구들을 만나고 있는 동안, 멀레닉스는 세미나 시작까지 남은 시간을 보내느라고 어슬렁거리면서 베데스다 캠퍼스의 병원 본관으로 들어갔다. 그는 건물 복도에서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벽면에는 최근에 국립보건원 관리들이 만들어 붙인 화려한 포스터가 전시되어 있었다. 제목은 ‘불소의 기적’이었다.

  “나는 참 괴이쩍다고 생각했지요.” 멀레닉스는 회상했다. “때는 1990년이고, 그들은 불소의 기적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제 내가 그들에게 바로 그 불소가 암페타민(중추신경 자극 각성제)이나 방사능이 유발하는 것보다도 더 심한 신경독성을 끼친다고 말할 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포스터를 계속해서 읽어내려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멀레닉스가 워싱턴에 도착한 날은 미국 공중보건국이 수돗물불소화를 승인한 지 40주년이 되는 역사적 기념일이었다. 멀레닉스는 불소의 역사에 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항생제가 질병과 병균에 의한 감염을 격퇴하면서 의사들에게 마법의 탄환이 된 것과 유사하게, 이 화학물질도 한동안 검게 썩은 치아를 격파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오랫동안 국립치학연구소의 위대한 백색 희망이 되어있었다.

  산업혁명 이래 발전된 나라들에서는 충치가 만연해왔다. 예전 농업시대의 통곡식과 섬유질이 풍부한 식이가 정제된 탄수화물과 설탕 섭취의 증가와 같은 도시형 식사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충치는 구강 내 박테리아에 의해 그러한 설탕과 탄수화물이 발효될 때 생성되는 산(酸)이 치아의 에나멜을 공격하고 치아의 중심부까지 침투할 때 발생하게 된다. 썩은 치아에 대한 손쉽고 간단한 처방이 있다는 희망이 1930년대에 도래하였다. 공중보건국의 치과 연구자였던 H. 트렌들리 딘이 수원(水源)에 천연적으로 불소가 함유된 미국의 일부 지역에서 충치가 덜 발견된다고 보고하였다. 딘의 연구결과는 1940년대 및 1950년대부터 시작된 인공적 수돗물불소화의 과학적 토대가 되었다. 딘은 또한 국립치학연구소의 초대 소장이 되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이르러 충치율이 미국 전역에서 자유낙하하듯 감소하자 치과보건 관리들은 수돗물과 치약에 첨가된 불소를 자랑스럽게 가리켰다. 국립치학연구소 관리들은 H. 트렌들리 딘을 ‘불소화의 아버지’로 우러러 보았다.

  “그것은 연구소의 주요 발견물이었습니다”라고 잭 헤인은 말했다.

  그러나 시초부터 불소화에 대한 반대는 격렬했다. 발전된 선진국들에서 나타나는 전후(戰後) 충치율 감소는 식수에 불소가 첨가되지 ‘않은’ 지역에서도 역시 나타났으며, 게다가 어떤 경우에는 불소치약이 도래하기 전부터 시작된 현상이었다. 항생제의 광범한 사용, 영양섭취의 향상, 개선된 구강위생, 보다 많아진 치과진료 등도 또한 충치감소의 근거로 제시되었다. 그리고, 불소화에 대한 의학적?과학적 저항이 치열하고, 또 논리적인 타당성을 갖고 있는 반면에―불소화에 반대하는 풀뿌리 운동은 여러 점에서 오늘날 환경운동의 선구자였다―반불소화 운동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는 국립보건원의 포스터는 기묘하게 조소적인 어조를 띠고 있다고 멀레닉스는 느꼈다. “그들은 반불소화론자들이 모두 ‘테니스화를 신고 있는 작고 늙은 아주머니들’이라고 빈정대고 있었습니다.” 멀레닉스는 말했다. “그게 내 뇌리에 박혔지요.”

  딘의 시대 이후, 실험실 연구들은 불소의 작용원리에 대한 공식적인 사고에 획기적 변화를 초래해왔다. 초기 연구자들은 목구멍으로 넘어간 불소는 ‘전신적으로’ 아동의 구강 내에서 치아가 잇몸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에나멜 속으로 편입되어 부식에 강한 치아가 만들어진다고 추측했던 반면, 지금의 과학자들은 불소가 거의 전적으로 치아의 바깥쪽, 또는 ‘국소적으로’ 효력을 미친다고 믿고 있다. (그러한 ‘국소적’ 영향은 불소치약이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해 설명할 때 예전부터 얘기되어 왔다.) 이 새로운 연구는, 치아에나멜 층에서 발생하는, 치아를 썩기 쉬운 상태로 만들 수 있으므로 유해한, 칼슘과 인산염의 ‘탈미네랄화’ 속도를 저하시킴으로써 불소가 치아를 보호한다고 말한다. 불소는 또한 칼슘과 플루오라파티테(fluorapatite)라는 지속성을 가진 불소화합물의 새로운 층을 형성함으로써 에나멜에서 ‘재미네랄화’ 작용을 돕는다. 세번째 충치억제 효과는, 식품이 발효할 때 발생하는 산(酸)이 불소와 결합하여 불화수소(HF)를 형성하는데, 이에 따른 것이다. 이 강력한 화학물질은 세포막을 통과할 수 있고, 효소의 활동을 방해하고 나쁜 박테리아를 무력하게 만든다.

  “나는 불소가 효과가 있다고 아직도 믿고 있습니다.” 수돗물불소화에 대해 비판적으로 돌아선 캐나다 치학 연구자 하디 라임벡 박사는 말한다. “불소의 효과는 국소적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정보들이 이 오래된 논쟁을 종식시키지는 못했다. 지금 치과보건 관리들은 수돗물불소화가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평생에 걸쳐 유익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은 모든 치아를 불소화된 물 속에 매일 담금으로써 불소가 계속해서 모든 연령대 사람들의 치아에나멜을 보수하고, 보호한다는 것이다. 한편, 비판자들은 불화수소가 구강내 박테리아의 효소활동을 저해할 수 있다면, 불소를 삼켰을 때는 비의도적으로 체내의 유익한 효소들도 손상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1990년 가을, 국립보건원의 불소 포스터를 읽으며 연설을 준비하고 있던 필리스 멀레닉스는 불소를 둘러싼 논쟁의 역사에 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사자 우리로 막 걸어들어갈 참이었다. 국립보건원 강당에 들어섰을 때 멀레닉스는 매우 놀랐다. 청중석이 꽉 차있었다. 식품의약국(FDA)의 관리들도 와있었다. 그녀는 청중석에서 국립치학연구소 소장 하랄드 뢰 박사를 발견했으며, 공중보건국에서 온 제복 차림의 사람들도 알아보았다.

  조명이 어두워졌다. 멀레닉스는 그들에게 포사이스 센터의 새로운 RAPID 컴퓨터 테크놀로지에 대해 설명했다. 처음에 청중들은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불소실험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했다. 그녀는 쥐에서 나타나는 불소의 중추신경계에 대한 영향이, 강력한 항백혈병 약품을 투여하거나 방사선 치료를 받은 쥐에서 발견되는 상해들과 닮아있다고 설명했다. 불소가 쥐의 중추신경계에 미치는 영향의 패턴들은 “정확히 일치했다”고 멀레닉스는 진술했다.

  실내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녀는 농담을 시도해보았다. “나는 작고 늙은 아줌마일지는 몰라도 테니스화는 신고 있지 않습니다.” 그녀는 회상한다. “아무도 웃지 않았습니다. 실은, 그들은 험악하게 굴었습니다.”

  드디어 국립보건원의 거물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손들이 공중으로 치켜올려졌다. “그들은 질문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방법론에 대한 공격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들의 질문에 참을성있게 대답했으며, 마침내 들고 있는 손이 남지 않자 잭 헤인과 함께 택시에 올라 공항으로 향했다.

  잭 헤인은 이 오래 전의 일을 얘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 사건은 그의 경력에 지저분한 종지부를 찍었다. 헤인은 바로 그 다음해 1991년, 포사이스 센터에서 은퇴하였다. 그는 멀레닉스의 불소실험 결과가 인기가 없었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불소의 중추신경계 손상작용을 보여주는 데이터가 ‘활기차게’ 추적 조사되었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불소의 그러한 측면은 이전까지 한번도 조사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으니까요.” 그러나, 그는 불소에 대한 국립치학연구소와 정부의 입장을 바꾸게 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라고 믿고 있다. 많은 고위 공중보건 관리들은 불소를 지지하는 데 자신의 전문가로서의 경력을 송두리째 바쳐왔기 때문이다. “국립치학연구소는 불소가 효과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정말로 힘겹게 싸웠습니다.” 헤인은 말했다. “그것은 연구소의 주요 업적이었습니다. 그들은 불소를 장려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습니다.”

  헤인은 불소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마지막 시도를 했다. 그는 멀레닉스에게 불소가 함유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의 임원을 불러 회의를 개최할 작정이라고 말했다. 헤인도 멀레닉스와 마찬가지로 그의 경력을 통하여 여러 대기업과 유대관계를 맺어왔다. 그는 멀레닉스에게 포사이스 센터의 자기 사무실에서 열릴 예정인 비공식적인 ‘불소독성에 관한 회의’에 참가할 사람들의 명부를 보내왔다. 멀레닉스는 헤인의 말을 기억한다. “NIDR은 어리석게 굴었지만 기업들은 좀 나을 거요.”

  워싱턴의 세미나 사건이 있은 지 몇달 뒤, 필리스 멀레닉스는 세개의 세계 최대 제약회사―유니레버, 콜게이트-팔모리브, 스미스클라인 비첨 사(社) 대표자들과 함께 잭 헤인의 사무실 탁자 앞에 앉아있었다. 콜게이트-팔모리브 사(社)의 전세계 임상치과연구 총책임자인 앤서니 볼프, 비첨 사(社)의 구강보건연구 책임자인 살 마자노빌도 그 자리에 참석했다. 수석 과학자 조 커냅커는 거대 다국적기업인 유니레버 사(社)가 파견한 사람이었다.

  멀레닉스는 자신의 불소실험 결과의 윤곽을 설명했다. 그 남자들은 메모를 했다. 갑자기 유니레버의 조 커냅커가 격분한 표정으로 의자에 기대면서 질문했다. “그러니까 당신의 말은 요컨대 우리의 불소제품들이 아이들의 IQ를 저하시키고 있다는 겁니까?” 멀레닉스는 대답했다.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바로 그게 내 말입니다.” 그 남자들이 떠나면서 자신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던 것을 멀레닉스는 기억한다. “연락하겠습니다. 이 문제는 추적해보아야 합니다.”

  다음날 잭 헤인으로부터 그 기업인들의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가 멀레닉스에게 전달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정말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멀레닉스는 말했다. “그리고 또 전화했습니다. 몇주가 흐르고, 몇달이 흘렀습니다.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마침내 유니레버의 조 커냅커가 회답했던 것을 멀레닉스는 기억한다. 그는 말했다. “나는 상부에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지시를 못 받았습니다.”

  최근에 필자가 접촉한 조 커냅커는 포사이스 센터를 ‘여러 번’ 방문했지만 불소회의에 대한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한번이라도 그들의 제품들이 아이들의 지능에 해로울 가능성에 대해 우려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뇨, 나는 그 비슷한 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미안합니다.” 커냅커는 자신이 개심술(開心術)을 받아서 일시적으로 기억이 손상되었다고 해명하면서 첨언했다. “나는 멀레닉스라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첨 사(社)의 살 마자노빌은 그 회담을 기억한다. 그는 그날 제시된 데이터는 ‘모의’실험 결과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멀레닉스가 자신에게 연락을 취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자신은 그 데이터가 부정확했던 모양이라고 추측했다고 한다. “데이터가 확실했다면 당연히 더 많은 동물이나 사람을 대상으로 계속 연구를 진척시켰겠지요.” 마자노빌의 말이다. “건강상의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그 데이터는 암시하고 있었으니까요.”

  몇몇 불소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비첨 사(社)의 상품 책임자가 멀레닉스에게 직접 연락을 취하거나, 그녀의 실험결과가 발표되었는지 알아보기는 했습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담당자가 아니었습니다.” 마자노빌의 대답이었다. 그리고 담당자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멀레닉스 연구를 추적할 책임이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프록터 앤 갬블 사(社)는 멀레닉스의 경고에 따라 행동을 취했다. 그들은 신시내티 시에 있는 마이애미 밸리 실험동으로 그녀를 불렀다. 멀레닉스는 거기서 한 계약서와 불소가 아동의 지능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연구에 착수할 얼마간의 종잣돈을 받아서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철회하고 다시는 연락을 취해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멀레닉스는 말한다.

  1995년, 멀레닉스와 그 팀은 실험결과를 과학저널《신경독성학 및 기형학》에 발표하였다. 불소에 관하여 매우 많은 연구가 선행되어 왔지만, 그 중 뇌에 미치는 불소의 영향을 조사한 것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그 논문은 말하고 있었다. 또한 초기 불소연구에서는 불소가 중요한 뇌막의 장벽을 넘지 않으므로 중추신경계가 보호된다고 생각되었지만, 멀레닉스의 실험결과는 이제 “만성적 노출조건에서는 그런 불투과성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했다고 설명했다.

  새끼 쥐들이 불소가 첨가된 물을 마셨을 때, 과학자들은 뇌 속에서 불소수준이 증가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뇌 내의 불소증가는 어린 쥐들이 나타내는 ‘현저한 행동변화’와 관계가 있었으며, 이것은 ‘인식력 결손’ 증상과 유사하다고 과학자들은 보고했다. 또한 임신중의 쥐에게 섭취시켰을 때에는 불소가 태아의 뇌에까지 도달하여, 갓난 수컷에서 ‘과잉행동증’과 닮은 모습을 나타내었다고 설명하였다.

  멀레닉스의 연구는 마침내 중추신경계 문제를 연구하고 있던 보스턴의 다른 과학자 팀의 주의를 끌기에 이르렀다. 그 과학자들은 2000년, 그들의 표현을 빌면, 아이들의 ‘발달, 학습, 행동 장애라는 유행병’에 독성화학물질들이 기여했는지의 여부를 검토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 논문은 불소의 역할도 검토했는데, 특히 멀레닉스의 연구에 초점을 맞추었다. ‘사회적 책임을 위한 의사회 보스턴 광역지구 분회(Greater Boston Chapter of Physicians for Social Responsibility)’가 작성한〈위험한 길―아동 발달을 위협하는 독성물질들(In Harm’s Way:Toxic Threats to Child Development)〉에 의하면, 미국 내 1천2백만 아동(전체의 17%)이 하나 이상의 학습, 발달, 행동 장애로 고통받고 있다. 또한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장애(ADHD)는 모든 취학 아동의 3-6%에서 나타나며, 최신의 증거는 그보다도 많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음을 주목했다. 불소를 ADHD 또는 그밖의 건강상 문제들과 직접 결부시키기에는 그 화학물질에 대해 충분히 알려진 사실이 없다고 그 논문은 지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현존하는 불소에 관한 연구결과들과, 불소가 중추신경계에 미치는 영향은 ‘도발적’이며, 중요한 공중보건 문제라고 결론내리고 있었다.

  그 논문의 저자 중 한사람인 테드 쉐틀러 박사는 멀레닉스의 연구결과에 경악했다. 그는 그때까지 불소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불소는 내 레이더 스크린에 걸리지 않았습니다”라고 쉐틀러는 말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중추신경계에 대한 불소의 영향을 조사한 연구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쉐틀러는 그에 관한 논문을 겨우 2개 찾아내었는데, 모두 중국에서 수원(水源)에 들어있는 불소로 인하여 몇몇 마을에서 IQ 저하가 초래되었음을 시사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와 같은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용납될 수 있었는지 매우 이상합니다. 40년 동안 우리는 우리의 상수도에 불소를 집어넣어 왔습니다.―그런데 그것의 신경학상 및 발달상에 대한 영향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 얼마나 없는지…우리는 현재 알고 있는 것보다 불소에 대해 훨씬더 많이 반드시 알아야만 합니다.”

  멀레닉스의 연구가 아이들에 대해서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까?

  쉐틀러는 알지 못한다. 동물실험 결과를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불확실하다고 그는 설명하였다. 또한 그는 멀레닉스의 컴퓨터 시스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납이나 수은과 같은 다른 화학물질과 금속의 독성작용에 대해서 그는 우려한다. 적어도 그런 오염물질들에 한해서는 인간의 민감성이 동물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사람들 중에서는 성인보다 어린아이들이 훨씬 민감하다. 이러한 다른 화학물질이 발달단계의 뇌에 미치는 영향은 심각하며, 회복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멀레닉스의 연구는 의의가 있습니까?

  “모르겠습니다”라고 쉐틀러는 말했다. “그렇지만 내가 멀레닉스의 연구 및 다른 연구결과로부터 내린 결론은, 불소가 정상적인 뇌 발달을 방해할 가능성이 충분하며, 인간을 대상으로 조사하여 이 문제의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소의 신경독성작용을 조사해야 할 책임은, 반세기 동안 치과 역사에서 수돗물불소화의 역할을 선전해온 공중보건국에 있다. “공중보건 문제에 관여하려고 하는 개인이나 단체에는 항상 그와 관련된 새로운 과학적 발견들을 예의주시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그 공중보건 사업이 적용된 집단(지역)에 나타나는 변화도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러다가 ‘와, 이거 정말 흥미롭군.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건강상의 영향이 있구나’라고 말하는 새로운 정보가 등장하면, 그들이 내렸던 결정이 여전히 옳은지 확인하기 위해서 문제를 다시 검토해보아야 합니다”라고 쉐틀러는 말했다.

  필리스 멀레닉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데까지 했다고 말한다. 국립보건원에서의 세미나 이후, 국립치학연구소 책임자, 하랄드 뢰는 1990년 10월 23일자로 포사이스 소장 잭 헤인에게 감사편지를 보냈다. 그는 “이 방면의 연구의 잠재적 중요성을 확인”하며, 멀레닉스에게 추가의 기금을 요청하라고 썼다. “국립치학연구소는 보건문제에 있어서 다방면으로 잠재적 중요성을 가지는 그와 같은 혁신적 방법론의 개발을 지원할 수 있게 된다면 기쁘게 생각할 것입니다”라고 뢰는 썼다.

  “나는 매우 기뻤습니다.” 멀레닉스는 말했다. “나는 그 편지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게 막다른 골목에 부딪쳤습니다.” 멀레닉스는 이제 1990년의 문제의 편지는 잔인한 책략―국립치학연구소가 중추신경계에 불소가 미치는 영향을 아는 데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한 계략이었다고 믿고 있다. “그들은 편지에서 쓴 것을 실행할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나는 그같은 사실을 몇년이 지나서야 알아차렸습니다.”

  멀레닉스 박사의 연구비 요청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국립보건원의 과학적 심사?자문위원인 안토니오 노런하 박사는 과학자들로 구성된 동료심사집단이 그 요청을 거부했다고 말한다. 중추신경계에 관한 불소연구를 국립보건원이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멀레닉스의 주장은 ‘억지’라고 그는 말한다. “우리 국립보건원에서는 정치가 개입되지 않도록 매우 신경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멀레닉스가 워싱턴에서 세미나를 개최한 지 1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립보건원은 중추신경계에 대한 불소의 영향을 조사하는 어떠한 연구도 지원하지 않았으며, 현재 불소 및 중추신경계라는 주제를 주요 연구과제로서 취급하고 있지도 않다. “예, 물론 아닙니다.” 국립환경보건연구소(NIEHS)의 신경독성학 전문가인 아네트 커쉬너는 말한다. 커쉬너 박사는 비록 “독소의 영향 및 그 환경적 노출이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부작용을 조사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기는 하지만” 불소의 중추신경계에 대한 영향을 조사하는 연구에 연구비가 수여된 사례는 기억할 수 없다고 확인시켜 주었다. “과거에 불화나트륨 연구에 한두번 연구비가 지급된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근무하던 13년 6개월 동안은 ‘신경계’에 관한 연구를 지원한 일이 없습니다.”

  NIEHS는 그러한 연구를 앞으로 수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연구소도 그럴 의향이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커쉬너 박사의 이메일을 통한 대답이다.

  정부의 치과 전문가들 역시 불소의 중추신경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어느 때든 곧 연구할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 2002년 7월 19일자로 필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NIEHS의 로버트 H. 셀위츠 박사는 “추적연구에 대해 아는 바가 없고”, 중추신경계에 대한 불소의 잠재적 영향이라는 문제는 정부의 연구비 수여자들의 ‘주된 관심 주제’도 아니라고 썼다. 셀위츠 박사는 국립보건원의 ‘치학 및 안면두개 연구소’ 내 치과 공중보건부의 선임 치과유행병 학자이자 수련의(修鍊醫) 프로그램 책임자이다. 처음에 그는 멀레닉스의 쥐들이 “식수의 불소농도에 비해 많게는 175배의 불소를 섭취했다”고 말하면서, 그녀의 연구가 사람에게는 거의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의 말은 미묘하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표현이다. 쥐와 인간의 신진대사는 매우 다르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실험실에서는 이러한 차이들을 보정해야 한다. 중추신경계에 대한 영향을 조사할 경우, 중요한 수치는 실험동물에게 투여된 불소의 양이 아니라, 물을 마신 결과 혈액 중에 나타나게 되는 불소수준이다. 멀레닉스 쥐들의 혈액 중의 불소의 양, 즉 혈중농도는 사람이 약 5ppm 농도의 불소함유 물을 마셨을 때의 혈중농도와 동일한 것이다. 그런데 이 수준은 정부가 ‘적정수준’이라고 주장하는 불소화된 물의 농도, 즉 1ppm의 고작 5배이다. 그래서 필자는 셀위츠 박사에게 시민들이 불소화된 물을 마셔서 통상 섭취하게 되는 것보다 멀레닉스의 쥐가 ‘175배’ 많이 마셨다고 묘사하는 게 과연 온당한 것이냐고 질문했다.

  ‘혈청’을 측정하고 그것을 비교하는 것이 보다 의미가 있지 않습니까? 당신의 진술은, 고의는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오도하는 것 아닙니까?

  방금 멀레닉스의 연구가 사람의 경우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뜻을 넌지시 비추며 의학적 논의를 기각해버릴 참이었던 셀위츠 박사는, 이제 나의 질문에는 대답을 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당신이 최근 이메일을 통해서 제기한 질문은 불소의 생리학에 관계된 것인데, 그것은 나의 전문분야가 아닙니다”라고 국립치학연구소의 선임 치과유행병 학자는 썼다.


  멀레닉스의 불소연구는 새로운 과학연구 주제를 창출해 내기는커녕, 한때 전도유망했던 학자의 이력에 조종(弔鐘)을 울렸다. 1991년 6월 30일, 잭 헤인이 포사이스 센터에서 은퇴한 시점부터 필리스 멀레닉스의 근무환경은 크게 변모했다. 그녀는 1992년 2월 20일, 포사이스에서 세미나를 열었다. 실험결과를 설명하고, 파멜라 덴베스튼과 함께 불소독성에 관한 논문을 출판하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그게 화근이었습니다.” 멀레닉스는 말했다.

  덴베스튼은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다. 폴 디파올라 등, 포사이스 센터의 선임 연구자들은 1960년대 이래로 불소에 관해 호의적인 연구를 발표해왔기 때문이다. 그 세미나 자리는 ‘추악했다’고 멀레닉스는 말한다. 덴베스튼은 그 과학자들이 ‘노기를 띠고’, ‘빈정댔다’고 묘사한다. “멀레닉스가 국립보건원(NIH)에서 그들이 확보하고 있는 명성에 위협이 되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덴베스튼은 설명한다.

  카렌 스냅은 청중이 ‘적의를 가지고’ 멀레닉스를 추궁했다고 기억한다. “그들은 필리스의 연구를 위협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나라의 치과사업은 불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들은 멀레닉스 때문에 지원금이 끊어질 것이 걱정되었습니다. 불소가 유익하다고 주장해야만 하는데, 어떤 한사람이 나타나서 어쩌면 좋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그들의 옹졸한 소견에는 바로 그 점이 걱정거리였지요.”

  그 다음날, 포사이스 센터의 부소장, 돈 헤이가 멀레닉스에게 와서 말했다. “당신은 치과의사들과 모든 사람들이 50년 동안 발표해온, 불소가 안전하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반박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틀린 게 확실합니다”, “당신은 이 연구소 전체에 재정지원이 중단될 위험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이 연구결과를 발표하면 NIDR(국립치학연구소)은 포사이스의 어떤 연구도 더이상 지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카렌 스냅도 역시 돈 헤이가 그 논문의 발표를 반대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멀레닉스의 과학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연구결과를 신용하지 않았습니다.―그리고 그 논문의 내용이 외부로 나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스냅과 멀레닉스 둘다 논문의 출판을 돈 헤이가 어떤 식으로든 저지할까봐 걱정하였다. “우리는 그에 관해 농담을 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미국에는 출판의 자유, 언론의 자유라고 하는 게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라고 말하면서요.” 스냅은 회상한다.

  돈 헤이는 자신이 멀레닉스의 연구결과를 은폐할 생각을 했다는 주장은 ‘거짓’ 누명이라고 말한다. 그는 인터넷 잡지 Salon.com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염려했던 것은, 불소에 대한 연구업적이 전무한 멀레닉스 박사가, 지난 50년 동안 다수의 연구결과들과 다른 것처럼 보이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녀가 포사이스를 떠나기 전까지 그녀의 논문이 학술지에 게재되기로 채택되었는지도 전혀 몰랐습니다.”

  멀레닉스의 논문이 발표된《신경독성학 및 기형학》의 편집자인 도날드 E. 허칭스는 검열이나 압력을 받은 일은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멀레닉스의 연구는 우선 과학자들에 의한 ‘동료심사’ 과정을 거친 후, 개정되고 채택되었다. “‘만약 그 논문을 출판하면 너의 소득세 내역을 조사하겠다!’ 또는 ‘치마 차림의 J. 에드가 후버 사진을 보내겠다!’와 같은 협박을 받은 적이 있냐고요?” 허칭스는 말했다. “없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는 사실 포사이스의 연구자에게서 그와 같이 불소에 비판적인 논문을 받고 좀 어리벙벙했었다. 허칭스는 포사이스 센터가 오랫동안 불소 지지의 선봉에 서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증류주 공장에서 일하면서 태아알코올 증후군을 연구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들이 열심히 지원하려고 할 만한 일이 아니지요. 나는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내 경력이 위태로워지는 문제도 아니었으니까요. 나는 그와 같은 일을 한 멀레닉스가 참 용감하다고 생각했습니다.”

  1994년 5월 18일―문제의 논문이 채택된 지 불과 며칠 뒤―포사이스 센터는 멀레닉스를 해고했다. 계약종결 통지서에는 단지 그녀와의 계약이 연장되지 않을 것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불소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센터에는 새로운 체제 정비가 있었다. 독물학부는 폐쇄되었고, 새로운 감독위원회(Board of Overseers)가 개설되었다. 위원회의 임무는 ‘기업과 관련된 문제에 관하여 소장에게 조언하는 것’이었다.

  멀레닉스는 포사이스에서 보낸 마지막 두달은 그녀의 직업과학자로서의 생애에서 가장 사기가 저하된 때였다고 말한다. 국립암연구소로부터의 연구비도 고갈되었고, 그녀의 실험실 상태는 끔찍했다고 말한다. “천장의 물이 새서 실험장비들이 망가지고, 동물들도 엉망이 되었습니다. 1994년 7월, 내가 완전히 물리적으로 물러나오기 바로 직전, 그 당시가 최악이었습니다. 내게 말을 거는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 해 여름에 딸이 자주 전화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 애는 매우 속상해 했습니다”라고 올리브 멀레닉스는 말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딸이 혹시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 의아해 했다. 필리스는 자신의 불소연구가 인기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분개해보았자 아무 소용도 없었어요. 필리스는 자신의 발견에 대해 정직했던 것이고, 그들이 그것을 좋아하지 않은 것이니까요.”

  스테이터 노튼도 역시 그녀의 옛 학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노튼은 포사이스의 적대적 반응에 대해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정직한 실험결과가 추잡한 정치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기존의 데이터가 도전받는 것을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반론을 싫어합니다.” 노튼은 말했다.

  멀레닉스의 전(前) 동료인 과학자 카렌 스냅에 의하면, 멀레닉스 연구의 시사점들이 매장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현재 섭취하고 있는 불소의 중추신경계에 대한 영향을 모른다는 게 올바른 일입니까? 나는 필리스가 발견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방면으로 더 연구가 필요합니다”라고 스냅은 말했다.

  잭 헤인은 자신이 다른 식으로 접근했더라면 하고 생각한다. 그는 지난 50년 동안의 역사는 ‘불소논쟁에 휘말린’ 필리스 멀레닉스와 같은 ‘많은 사람들로 점철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헤인은 자신들이 불소문제를 다루기에 앞서, 치과에서 사용되는 다른 물질들을 시험해 보았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수은으로 실험해본 뒤에 불소를 취급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논쟁을 덜 일으켰을 텐데…”

  멀레닉스는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또 자신이 아닌 다른 과학자였더라도 매한가지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일류의 학위, 강력한 기업과의 인맥, 한 흔한 화학물질에 대한 확실한 과학적 데이터 모두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게 씁쓸한 점입니다.” 멀레닉스의 말이다. “당시 나는 내 배후에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과학자 대 과학자로서 논리가 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실험결과를 그저 매장하는 것 외에 달리 취할 수 있었던 길이 있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멀레닉스는 지금 더이상 연구과학자가 아니다. 10년 전 포사이스에서 불소연구를 한 이래로 그녀는 어떤 기금이나 연구 보조금도 받은 바가 없다. “나는 쥐를 연구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녀는 말한다. “아마 나는 평생 동안 동물을 연구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더이상 실험실에서 일하게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잭 헤인과 파멜라 덴베스튼은 아무리 명성을 쌓은 과학자라도 끌어내려 잡아챌 수 있는 불소의 기괴한 힘을 알고 있었고, 따라서 그들은 포사이스의 난파에 빠지지 않고 헤엄쳐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멀레닉스는 아무도 경고해주지 않은 물결에 휩쓸려 끌려갔다. “나는 그 깊이를 알지 못했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리고 내게 있어서, (과학자로서) 훈련과정에서 배운 바로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아야 합니다. 데이터는 데이터일 뿐이고 우리는 그것을 보고하고, 발표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멀레닉스는 동료 과학자들의 태도에 실망을 느낀다. 잭 헤인은 은퇴해 버렸으며, 대부분의 옛 동료들은 자신의 불소에 대한 연구진행 요청을 지원하기를 꺼렸다고 멀레닉스는 말한다. “과학적으로 한번더 조사해봐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대신, 모두 덤불 속으로 숨어들어가 나와의 접촉을 일절 피했습니다.” 올리브 멀레닉스는 딸을 그렇게 기르지 않았다. “이런 일을 그저 지나쳐버릴 수는 없습니다.” 필리스 멀레닉스는 말한다. “내 말은, 탈리도마이드가 틀렸고 그래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발견해야 했다는 겁니다. 왜 불소라고 예외입니까?”


  “으스스한 느낌”

  1995년 7월의 무더운 어느날 저녁, 전화벨이 울렸다. 필리스 멀레닉스 박사는 매사추세츠 주 앤도버에 있는 자기 집 2층 사무실에 있었다. 과학논문들이 어수선하게 널려 있었다. 그녀는 줄곧 의기소침해 있었다. 지난 여름 포사이스에서 해고된 것은 가족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딸들은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었고, 그녀와 남편 릭은 돈 문제로 계속 다투고 있었다.

  그녀는 수화기를 들었다. 뉴욕에서 걸었다는 굵은 저음의 목소리가 밤늦게 전화한 데 대해 사과했다. 멀레닉스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제일 좋아하는 흰 가죽 안락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조엘 그리피스는 맨해튼의 의료전문 기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부탁이 있다고 했다. 미국 정부 문서 보관소에서 자신이 발견해낸 오래된 문헌을 좀 검토해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 서류들은 세계 최초의 원자탄을 제조한, 한때 극비에 싸여있던 과학기구, 즉 ‘맨해튼 프로젝트’의 의학부문 파일에 있던 것이었다.

  멀레닉스는 생각했다. 밤늦은 시각이었고, 이제는 어엿한 항공 관제사인 릭이 옆방에서 잠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원자탄이라고! 그게 도대체 불소와 무슨 상관이람?

  그녀의 인내심도 한계에 도달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녀의 연구가 공개된 후로, 그녀는 불소화 반대 활동가들의 전화와 편지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들 중에는 1950년대부터 수돗물불소화 문제와 전쟁을 치러온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심야 라디오 토크쇼 프로그램들은 불소를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이 하버드 출신 과학자와 대담하고 싶다고 달려들었다. 그들은 미국 반대편, 또는 해외로부터 새벽 3, 4시에 전화를 하곤 했다. 그리고 보통, “사후 인사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다시는 연락이 없었습니다.”

  뉴욕의 기자가 깜짝 놀랄 말을 했다. 멀레닉스의 옛 실험실 동료인 해롤드 호지가 맨해튼 프로젝트의 불소에 관한 수석 의학전문가로 기록되어 있다고 그리피스는 말했다. 문헌에 의하면, 전쟁 동안 원자탄 제조 공장 인근의 노동자들과 가족들이 불소에 중독되었으며, 해롤드 호지가 그것을 조사했다는 것이다.

  멀레닉스는 갑자기 ‘으스스한’ 느낌을 받았다. 의자에 앉은 채 자세를 바꾸었다. 해롤드 호지는 이미 죽었지만 이 저널리스트가 이야기를 계속함에 따라 멀레닉스의 마음은 예전에 포사이스의 그녀 실험실에서 때때로 자신의 아이들과 놀아주던 할아버지같던 친절한 노신사를 떠올리고 있었다.

  “호지가 한 것이라고는 질문밖에 없습니다.” 멀레닉스는 그리피스에게 말했다. “그는 거기 앉아서 고개를 끄덕이며, ‘설마, 설마?’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맨해튼 프로젝트를 위해 일했던 것을 호지가 잠시 언급한 적이 한번 있다는 것을 멀레닉스는 기억해냈다. 그러나 그는 불소가 핵무기와 관계가 있다는 말―또는 불소가 원자탄 제조에 관련된 노동자들에게 끼친 독성영향을 조사한 적이 있다는 말―은 전혀 한 적이 없었다. “좋습니다.” 멀레닉스가 기자에게 말했다. “그 문서들을 보고 싶습니다.”

  며칠 뒤, 그리피스의 동료가 멀레닉스의 집에 도착했다. 클리포드 호니커는 두꺼운 서류 뭉치를 그녀에게 넘겨주었다. 호니커는 맨해튼 프로젝트와 미국 원자력위원회의 많은 잔인한 의학기밀들을 밝혀낸 소수의 연구자 및 저널리스트들 중 한사람이었다. 거기에는 냉전시대에 입원환자와 죄수, 임신부, 정신지체아 등을 대상으로 수행한 많은 충격적인 방사능 실험에 관한 세부사실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년간 언론은 호니커와 그의 동료들이 찾아내고 있던 인간실험에 대한 정보를 무시해 왔었다. 마침내, 1995년에 에일린 웰섬이라는 탐사기자가 원자탄 프로그램에 관계된 의사들이 어떻게 테네시와 뉴욕의 병원환자들에게 플루토늄을 주사했는지를 밝혀냄으로써 퓰리처상을 수상하였다. 그녀는 오래 전의 피해자들의 이름을 밝혀내었다. 문건들은 바로 해롤드 호지가 그런 실험들 다수를 계획하고 지휘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조사를 명령했다. 에너지부 장관 헤이즐 오리어리는 새로운 개방정책을 시작했다. 그래서 호니커와 그 동료들이 기밀에서 해금(解禁)된 냉전시대의 문서들―불소에 관한 많은 새로운 정보를 포함한―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날 밤, 호니커가 돌아간 뒤, 멀레닉스는 의자에 자리잡고 앉아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한 메모를 읽던 그녀의 얼굴에는 핏기가 싹 가셨다. 50년 전의 문서에는 해롤드 호지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었고, 불소의 뇌 및 중추신경계에 대한 영향이 논의되고 있었다. 바로 그녀가 포사이스 치과센터에서 수행했던 연구와 동일한 것이었다.

  “나는 하얗게 질렸습니다. 나는 격분했습니다.” 멀레닉스의 말이다. “나는 고함을 지르고 바닥을 찼습니다. 불소가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호지가 메모에 써놓았기 때문입니다!”

  중추신경계 메모―‘기밀’이라고 도장이 찍혀 있는―의 수취인은 맨해튼 프로젝트의 의학부문 책임자 스태포드 워렌 대령이었으며, 날짜는 1944년 4월 29일이었다. 그것은 불소의 중추신경계에 대한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서 동물실험을 요청하는 메모였다. 해롤드 호지 박사가 연구 제안서를 작성하였다.

  “임상 증거에 의하면, 우라늄 헥사플루오라이드가 중추신경계에 상당히 두드러진 영향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T[우라늄을 가리키는 암호]보다 F[불소를 지칭하는 암호] 성분이 원인요소인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멀레닉스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1996년 당시, 그녀는 아직도 워싱턴 DC의 국립보건원에 중추신경계에 미치는 불소의 영향에 관한 연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연구비를 요청하고 있었다. 국립보건원의 과학자 패널은 “불소는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하면서 이 신청을 거절했다. 멀레닉스는 자신이 해온 일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해롤드 호지와 정부는 이미 반세기 전에 사람의 중추신경계에 미치는 불소의 독성작용을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계속해서 읽어나갔다. 1944년 메모에는 불소가 중추신경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것이 미국의 전쟁노력에 왜 꼭 필요한지 설명되어 있었다. “이러한 화합물들로 작업하는 것을 피할 수 없으므로 이것에 노출된 후 발생할 수 있는 뇌작용에 대한 영향들을 미리 아는 것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뇌기능에 이상을 일으킨 노동자가 작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상해를 입히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불현듯 내게 떠올랐습니다.” 멀레닉스는 말했다. “내가 포사이스에서 했던 연구작업을 해롤드 호지는 과거 1940년대에 군부에 요청했던 것입니다…호지는 50년 전에 알고 있었습니다. 왜 그는 말하지 않았을까요? 왜 내게 ‘이 물질이라면 내가 알고 있다. 신경독극물이지’라고 말해주지 않았을까요? 그는 질문밖에 던지지 않았습니다. 거기 앉아서 고개를 끄덕거리며, ‘설마, 설마’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단 한번도 ‘불소는 신경독극물이다. 그것이 정신착란, 피로, 졸음을 유발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멀레닉스는 인간 방사능 실험을 수행했다고 해서 해롤드 호지를 ‘괴물’이라고 부른다. 그녀는 과거에 그와 실험실을 함께 사용한 것을 ‘영화관에서 보스턴 교살자(1960년대 미국의 연쇄살인범―역주)와 팝콘을 나누어 먹은 것’에 비유한다.

  두 로체스터 대학 동창생―잭 헤인과 해롤드 호지―이 독물학자 한사람을 조종해서 50년 전에 호지가 제안했었던 불소연구를 수행토록 만들었던 게 아닌가 하고 멀레닉스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호지가 미심쩍게 생각했던 것을 그녀가 실험으로 증명하자 혼자 추락하도록 내버려 둔 게 아닐까. 애초에 멀레닉스 자신은 불소연구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 기억났다. “불소를 검토하기 위해 치과 연구소에 신경독성학자가 초대되었다는 사실도 이상해 보입니다.” 멀레닉스는 말했다. “나는 그들에게 속았거나, 꾀임에 넘어갔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꼭두각시 인형처럼 이용당했다는 기분 말입니다.”

  멀레닉스는 잭 헤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헤인은 옛날 맨해튼 프로젝트 시절에 해롤드 호지가 불소의 신경독성에 대해 우려했었던 사실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부인했다. 대신, 그 엄청난 정보를 정부에 전달해주겠다고 제안하고 나섰다. “국립치학연구소에 보고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내가 그것을 주선해줄까요?” (그러나 헤인은 멀레닉스에게 인정한 것보다 훨씬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1997년 영국 텔레비전 프로그램, ‘채널 4’와의 인터뷰에서, 헤인은 맨해튼 프로젝트에 관여한 독물학자들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불소의 중추신경계에 대한 영향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다음날 멀레닉스 박사는 NIDR의 소장 해롤드 슬라브킨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미국의 최고 치과보건 관리가 전쟁 당시의 메모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매우 험하게 굴었습니다. 그는 나를 사실상 떼밀쳐 버렸습니다. 내가 미친 사람이기라도 한 것처럼요.” 그녀는 NIDR이 그 문서에 관심을 나타낼 것이며, 그것을 읽고 싶어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슬라브킨 박사는 자신을 ‘괴짜’ 취급을 했다는 것을 멀레닉스는 기억한다. 멀레닉스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소름끼치는 진상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것은 국립보건원에 있는 시민의 수호자라는 사람들―해롤드 호지와 같은―도 이중인격자라는 사실이었다. 그들도 역시 냉전상황 하의 국가안보에 관한 기밀의 파수꾼―핵산업 국가의 성문(城門)을 지키고 있는 문지기 관료들인 것 같았다.

(김정현 옮김)


  서문|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
  후기| 아비드 칼슨(2000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본문 연재 2회| 6. 맨해튼 프로젝트는 우리에게 어떻게 불소를 팔아먹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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