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제80호 2005년 1-2월호    

 

  경자유전의 원칙, 생명의 원칙
  농지법 개정에 대한 평가와 전망

   우석훈

 

  ‘경자유전’은 헌법상의 권리이며 사회적 약속이다

  왜정 시대에는 인구의 4%였던 지주들이 우리나라 농업을 지배하고 있었으며, 소작농 비율은 무려 65%에 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방을 맞은 이승만 정권에게는 두가지 숙제가 있었다. 어떻게 일제가 가지고 있던 귀속자산을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지주로부터 농민에게 땅을 돌려주는 농지개혁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라는 두가지가 1945년 해방을 맞은 한국사회에 던져진 숙제였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국가의 모습을 형성할 때 가지고 있던 두가지 ‘경제정의’의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무튼 1949년 6월 제정된 농지개혁법에 의하여 소작지 전부와 3정보를 넘는 자작농 소유지를 정부가 강제 매수하여 소작농 및 영세농에 대해서 정부가 3정보 한도 내에서 유상분배하게 되며, 이 농지개혁은 1950년 5월에 실시된다.1) 한국전쟁으로 시행이 중단되었던 농지개혁 사업은 61년의 ‘농지개혁사업정리요강’에 의하여 재개, 1964년에 종료하게 된다. 그리고 이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는 정신이 ‘경자유전(耕子有田)’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1948년의 제헌헌법은 다음과 같이 이 정신을 규정하고 있다.

제86조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하며 그 분배의 방법, 소유의 한도, 소유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써 정한다.)1)

  이러한 제헌헌법의 경자유전 체계는 1962년의 제5차 개정헌법에 조금더 강화되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113조  농지의 소작제도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금지된다.

  이렇게 우리나라 헌법상에서 흐르는 경자유전 사상은 1987년 개정된 개정헌법 하에서 명문화되어 헌법 조문으로 포함되게 된다.

제121조  ①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

② 농업생산성의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인정된다.

  헌법상으로 지금의 정치체제는 1987년 체제의 정신을 따르고 있으며, 농지의 합리적 이용 등 부득이한 사유가 아닌 한에서는 경자유전의 원칙을 달성할 수 있도록 ‘국가’가 ‘노력’하여야 한다는 것이 우리사회의 기본 원칙이다. 87년 체제는 대통령 5년 단임제와 함께 대통령 직선제를 규정한 헌법이며, 군사독재 체제에서 민정으로의 이양 등 현재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의 정신을 규정한 헌법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경자유전을 경제정의의 차원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2004년 12월 말 현재 국회에서 계류중인, 2005년 7월을 시행일로 하고 있는 지금의 농지법 개정안이 이 경자유전의 원칙을 깨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해서는, 조금은 맥락의 검토가 필요하다. 현재 정부가 10개년 로드맵으로 채택하고 있는 ‘농촌·농민 종합대책(2004년 2월)’의 맥락 속에서는 실제로 경자유전의 원칙은 깨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얼마나 농사를 잘 지을 수 있게 할 것인가의 고민 속에서 농지법 개정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효율적으로 농사에서 농민들을 ‘철수’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려 속에서 농지법 개정이 검토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과연 어떠한 사회적 맥락이 이 농지법 개정을 둘러싸고 있는 것인가 살펴보기로 하자.

 

  고 이경해 열사의 자결에서 농지법 개정까지 달려온 1년간

  2003년 9월 10일 멕시코 칸쿤에서 고 이경해 열사가 자결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이 사건은 농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잠시 며칠간 환기시키기는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농정은 이 사건에도 불구하고(오히려 이 사건을 계기로), ‘농업정책’을 ‘농사를 지었던 사람에 대한 정책’으로, 그리고 농촌, 즉 ‘농사를 지었던 곳에 대한 개발정책’으로 나아가는 일련의 흐름을 급속히 추진해 나간다. 

  9월 10일의 사건이 있고 한달이 조금 지났을 때 소위 ‘삶의 질 법’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새로운 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한다. 정확한 이름은 ‘농림어업인의 삶의 질 향상 및 농어촌지역개발 촉진에 관한 특별법’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법의 강조점은 농어업인의 ‘삶의 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농어촌지역의 ‘개발 촉진’에 맞추어져 있다.

  이 법의 핵심은 전국을 주거지역, 공업지역, 그리고 농업지역으로 구분하고, 이 가운데 농업지역―‘농산어촌’―에 해당하는 지역에 대한 개발을 농림부가 직접 수행할 수 있도록, 새로운 정부 개발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권한을 농림부에 주는 것이다. 농촌지역을 누가 ‘관리’할 것인가를 놓고 행정자치부와 농림부가 경쟁하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농림부가 농촌지역의 개발부서로 변신하게 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행정자치부는 ‘정주지 개발사업’이라는 사업틀을 가지고 있었고, 농림부는 일상적인 지역개발틀을 사용하는 전면적인 개발을 제시하고 있었다. 농업을 살려야 한다는 이경해 열사의 자결로 인하여 농업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던 이 시기에, 농림부는 ‘농업지역 개발부서’로 스스로를 다시 자리매김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었고, 이미 마련된 이 법안이 2003년 10월 18일 국무회의를 통과하게 된다.

  이때부터 농림부는 ‘균형발전특별회계’를 사용해서 농촌지역에 아파트를 짓고 도로를 놓을 수 있는 새로운 개발부서로 화려하게 재출발을 하게 되고, 전국의 모든 읍·면지역에 대해서는 농림부가 개발권을 가지며 개발실무는 농업기반공사가 맡도록 하는 숨가쁜 개편이 이 10월 중순에 이루어지게 된다. 물론 정주권(human-settlement)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던 행정자치부로서는 불만이 있었지만, “농민이 원하는 것은 들어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국무회의의 분위기에 눌렸던 것이고, 마침내 법안은 무난히 국무회의를 통과하게 된 것이다.

  개발부서로 스스로의 역할을 재조정한 농림부에게 2003년 11월과 12월은 ‘화려한 시기’였다. 그 어느 정부 부서도 이렇게 짧은 시간에 기본 정책의 골간을 흔들었던 전례가 없을 정도로, 전격적으로 농업을 포기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숨가쁘게 쏟아내게 된다.

  11월 5일, 농업을 그만두는 고령 농업인에 대해서 경영이양 직불제로 헥타르당 매월 24만원의 보조금을 70세까지 지불하는 새로운 제도를 발표한다. 우리나라 평균 농지보유가 3,500평 정도, 즉 1헥타르를 약간 상회하는 점을 고려하면, 25만원 정도의 보조금을 받게 되니까, 연간 300만원 정도의 직접 보조금을 받게 된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는 농업을 그만두게 만드는 최초의 전국적 정책이었고, 동일한 정신에 근거하여 한-칠레 FTA를 비롯한 각종 문제가 생길 때마다 농림부는 계속해서 폐농에 대하여 약간의 인센티브를 부여하며 적극적으로 농업으로부터의 ‘철수’를 주도하게 된다. 이 정책은 후에 ‘탈농재촌(脫農在村)’이라는 멋진 이름을 가지게 된다. 농업을 그만두게 하지만, 그 사람들이 농촌지역에 머물러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농림부가 가진 가장 큰 정책목표로 자리잡게 된다. 그러면서 실제로 2003년 11월쯤에 농림부에서는 농업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을 철수시켜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11월 중순까지, 농업에서 얼마나 성공적으로 철수할 것인가라는 농림부의 계획이 어느정도 윤곽을 그리게 되고, 이경해 열사 자결의 충격을 이제는 잊기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정책 홍보를 시작한다. 이때의 ‘마케팅 포인트’는 우리나라 농업의 기본 형태인 ‘가족형 소농’으로는 경쟁력을 갖출 수 없으므로, 대규모 기업농 그리고 전문 농업으로 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가족농업’이라는 단어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우리나라 농업이 왜 잘 안되는가를 그 어떤 이론보다도 효과적으로 선전하는 구실을 한다. 아니, 때가 어느 때인데 식구들끼리 농사를 지으면서 이 살벌한 경쟁시대에 살아남겠다는 거야? 도박에 빠져 빚을 진 아버지와 찌든 어머니, 가난한 아이들의 이미지가 ‘가족농’이라는 단어 속에서 연상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는 농업을 어쩔 수 없다는 대공세에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여기에다가 ‘규모화를 통한 기업농 수준의 농업’, 경쟁력, 그리고 효율화 같은 단어들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귀에는 쏙쏙 잘 들어오는 이미 익숙한 단어였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의 곡물상을 휘어잡고 있는 곡물 메이저 카길 정도까지는 안되더라도, 뭔가 이제는 우리 농업도 기업이(혹은 기업 식으로)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라는 사람들의 생각이 2003년 겨울, 무르익고 있었다.

  2003년 11월 중순, 지역 설명회를 계기로 윤곽이 잡힌 ‘농정 로드맵 10개년 계획’이 처음으로 구체적인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게 된다. 이경해 열사의 자결 이후 겨우 두달이 지났을 뿐인데, 상황은 그 이전보다 더욱 어렵게만 가고 있었다. 나중에 ‘농업·농촌 종합대책’이라는 이름을 달게 되는 이 10개년 로드맵은 ‘119조’라는 숫자와 ‘6헥타르’라는 숫자, 그리고 ‘7만’이라는 세가지의 숫자를 이마에 달고 세상에 나왔다.

  119조원은 10년간 앞으로 농업과 농촌지역에 어쨌든 정부에서 나오게 되는 예산에 관한 숫자이다. 이 당시의 농림부 보도자료의 헤드 타이틀은 ‘119조’와 ‘전업농’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YS 시절에 62조를 농업에 퍼부었는데, 새로운 정부에서는 더 확실하게 도와주겠다는 느낌을 주기에 이 119조라는 돈의 위력은 충분했다. 얼마나 많은 국민이 119조라는 돈을 머릿속에서 계산하고 그것이 어느정도 규모가 되는 돈인지 감을 잡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보도자료 속의 119조원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돈이라는 의미로, 정부가 가지고 있는 정책의 ‘진정성’을 설명하는 단어로서 사용되었다. 한마디로 ‘마케팅 포인트’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다.

  그렇다면 어디에? 이 로드맵의 마케팅 포인트는 ‘농사만을 전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만들고 이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하는 데 119조원을 투자하는 것으로 맞추어져 있다. 전부 거짓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 전업농이 어떻게 정의되는가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로드맵에서 전업농에 대한 정의는 두가지 숫자에 의해서 조합된다. 바로 ‘6헥타르’ 이상의 농사를 짓는 ‘7만 가구’라는 두가지 숫자이다. 마침 드라마틱한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던 ‘조류 독감’ 사태 때문에, 2003년 12월에 ‘6헥타르 이상의 7만 가구 전업농’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잘 해석되지 않고 그대로 넘어갔다. ‘헥타르’라는, 농업에서 주로 사용하는 이 단위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곰곰이 들여다보거나 혹은 그게 도대체 어느정도의 규모인지에 대해 해석하는 언론은 거의 없었고 또 깊이 생각해보는 학자도 없었다. 1헥타르는 3,000평이고, 우리나라 농가 평균경작지가 3,000평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니까, 6헥타르는 1만8천평, 즉 6개의 농가를 합쳐서 농가 하나를 남기는 수준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기계적으로 농가수만을 가지고 계산하면, 농가의 6분의 5는 농업에서 철수하거나, 아니면 정부의 주요정책 대상이 아닌, 그저 철수하지 못하고 남아있는 농민 정도로 간주되게 된다.

  6헥타르면 어느정도 규모일까? 현재 정부가 사활을 걸겠다는 골프장과 비교해 보자. 우리나라에서는 18홀 기준의 골프장이 108만㎡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약 100헥타르 정도가 큰 18홀짜리 골프장 하나라고 보면 된다. 골프장 하나에 정부가 목표로 하는 농가가 약 15개 정도 들어갈 수 있다고 보면 된다. 현재의 농가 규모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골프장은 평균적인 농가가 90개 정도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이다. 그렇다면 이 6헥타르, 즉 1만8천평은 어떤 계산에서 나오게 된 것일까?

  6헥타르를 계산하기 위해서 농림부가 동원한 지표는 세가지가 있다. ‘목표소득’과 ‘목표가격’ 그리고 ‘규모화를 통한 혁신률’이라는 세가지 변수가 필요하다. 먼저 목표소득으로는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으로 상정한 ‘5,000만원’이라는 숫자가 사용되었다. 5,000만원이라는 소득을 농업에서 올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여기에 다시 농업이 전면 개방되었을 때의 쌀 가격이라는 또다른 목표가격 변수가 필요하다. 농촌경제연구원에서 제시한 숫자는 가마당 10만원 정도에 생산할 수 있다면 쌀시장이 개방된 다음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추정이 들어가 있다. 문제는 어떻게 이 10만원 이하로 생산비를 낮출 것인가, 그리고 이 생산비와 판매비 사이의 차이, 즉 이익을 어느정도의 땅 면적에 대비하면 5,000만원이 나올 수 있을 것인가라는 계산에 의해서 6헥타르라는 숫자가 도출되었다(농업·농촌 종합대책 참고).

  여기에 계산을 위한 약간의 편법이 들어간다. 이 6헥타르의 전업농에는 나름대로의 기술개발이 있기 때문에 22%의 원가하락 요소가 생길 것이라는 가정이 들어간다. 이 22%를 구성하는 항목들은 종묘비(16.2%), 비료비(30%), 농약비(17%), 노력비(24.6%) 그리고 토지용역비의 하락 등이다. 물론 이런 가정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외국에서는 더이상의 기술개발이 없고, 규모화에도 불구하고 비료비와 농약비가 줄어들게 된다는, 기술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몇가지의 이론적 예외가 존재해야 한다.

  어쨌든 이렇게 6헥타르의 7만호라는 소위 정책의 핵심 간판이 생겨난 다음에 농림부로서는 남는 농민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약간은 골치 아픈 문제를 풀어야 하는 숙제와 함께, 이제 농업으로부터 풀려나오게 된 농업용지를 어떤 방식으로 개발할 것인가 하는 행복한 고민을 동시에 가지게 되었다. 농림부의 행보는 빨랐다. 이경해 열사의 자결 이후 불과 두달 만에, 농업으로부터 전면적으로 철수하는 계획에 대해서 사회적인 지지를 받은 마당에 더이상 시간을 끌 이유는 없었다. 분위기 좋을 때 마저 밀어붙이겠다는 듯이, 농지법을 개정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2004년 1월 14일이었다.

  준농림지역과 농림지역을 합치면 우리나라 국토 육지면적의 76.7%를 차지하고 있다. “보존할 곳은 확실히 보존하고, 활용할 곳은 잘 활용한다”는 새로운 정부의 기조대로 이 농림지역을 절대농지와 한계농지로 나누어 전면적인 개발을 할 수 있도록 이미 ‘삶의 질 법’에서 개발권을 농림부가 확보하고 있는데, 실제 개발행위를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농지법의 개정이 불가피하다. 1월의 발표 때에는 그래도 해방 이후 우리나라 농업체계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경자유전의 원칙은 지키겠다고 발표했었다. 그런데 이 경자유전의 원칙을 폐지하는 데 농림부는 그후 6개월 정도의 시간을 썼다. 2003년 9월 10일의 이경해 열사 자결사건을 최대한 활용해서 농지제도 개정 발표까지 넉달 만에 숨가쁘게 달려온 것에 비하면, 나름대로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또 적절한 시점을 잡는 데에 6개월이라는 시간을 들였으니 상대적으로 여기에는 ‘공’을 들인 셈이다.

  2004년 6월 ‘삶의 질 법’이 시행되었고, 그 분위기를 몰아 7월 22일에 예의 농지법 개정안이 입법 예고되었다. 이렇게 해서 농지와 농업을 둘러싼 농림부의 일련의 작업은 일단락 완수가 되었다. 이제 남은 일들은 소소한 일들이다. 2004년 연말로 예고된 농지법 개정은 어쨌든 국회의원들이 무난히 통과시켜줄 것이고, 도시인들도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농토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이제 그만 고단한 농사를 털고 농업에서 나가야 하는 농민들에게도 매력적인 조건이고, 마땅한 투기처를 찾지 못하는 도시의 투기자본에게도 매력적인 조건이다. 또한 농토에 그냥 공장을 지을 수 있는 상황이 벌어졌으니 기업들도 반대할 필요가 별로 없고, ‘좋은 분위기’에서 2004년 하반기는 그냥 지나갔다.

  남은 것은 농림부 산하 농업기반공사가 토지공사나 주택개발공사처럼 아파트도 짓고 도로도 내고 신도시도 만들 수 있고, 또 농공복합단지라고 이름붙여진 농촌지역의 공단도 지을 수 있도록 소소한 규정과 시행규칙을 만드는 일과 “그래도 농업만은 살려야 한다”면서 ‘대세’를 따라올 마음이 없는 ‘일부 세력들’의 힘이 빠지기를 기다리는 일이다. 농지법 개정안의 시행일자는 2005년 7월 1일로 되어있기 때문에, 농림부로서는 느긋하게 개발부처로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면서 소소한 규정들 정비만 하면 크게 걱정할 것이 없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그야말로 전광석화같이 1년 동안에 농업과 관련된 법제도와 정책환경이 완벽하게 변화된 상황이다. 이상의 과정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넘어가자.

 

2003년

7월 24일. 허상만 농림부 신임 장관 취임.
9월 10일. 이경해 열사 자결.
10월 28일. ‘농림어업인의 삶의 질 향상 및 농어촌지역개발 촉진에 관한 특별법’ (일명 ‘삶의 질 법’) 국무회의 통과.
11월 5일. 농업을 그만두는 고령농에 대한 경영이양 직불제 발표.
11월 25일. 119조원을 농업에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 ‘농업·농촌 종합계획(안)’에 대한 지역 토론회 개최.
12월 12일. 조류 독감 발생.
12월 15일. 농업·농촌 종합계획(안)에 대한 전국 시장·군수 토론회 개최.
12월 24일. 미국, 광우병 의심 소 발생.

 

2004년

1월 14일. 농지제도 개선 계획 발표. ‘경자유전’은 유지하겠다고 약속.
2월 24일. 농업·농촌 종합대책(일명 농정 10개년 로드맵) 대통령 보고 및 발표.
3월 31일. 한-칠레 FTA 발효.
6월 6일. 일명 ‘삶의 질 법’ 시행.
7월 22일. 농지법 개정안 입법 예고. ‘경자유전’ 원칙 포기. 2005년 7월 1일 시행 예정.
12월 현재. 농지법 개정안 국회 계류중.

 

  ‘생명농업 선언’은 이제 농업이 살 수 있는 마지막 길이다

  6헥타르 전업농과 가족형 소농은 이론적으로 전혀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 두 대척점이라고 할 수 있다. ‘생명’이라는 유기농의 관점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3,000평, 즉 1헥타르를 넘어서는 순간부터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기가 어렵다. 그리고 규모가 늘어남에 따라 제초제와 살충제의 의존도가 늘어날 수밖에 없으며, 국제적인 유기농 기준으로부터는 점차적으로 멀어지게 된다. 그리고 또한 특정 작물에 대한 특화도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의 농정개편은 규모농, 화학농, 특화농의 특징을 더욱 심화시키며, 동시에 기존의 준농림지역을 재편하여 ‘한계농’으로 규정하고, 점차적으로 이 한계농을 ‘개발가능지역’으로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반대점에 위치하는 것이 가족농, 친환경농업 그리고 다품종 등이다. 한마디로 농지를 농지로서 지키는 길이 자리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두가지의 흐름이 2005년 7월의 농지법 시행을 둘러싸고 정면으로 부딪히게 될 상황이 바로 현재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상황은 커피생산을 둘러싼 오래된 논쟁과 유사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상업농의 대표품목이었던 커피의 가격은 1967년부터 세번의 피크를 제외하면 지속적으로 안정되고, 이에 따라 커피농업의 비중을 늘렸던 국가들의 경제는 동반적으로 몰락하게 된다. 그리고 한때 농산물 수출 중 커피 수출의 비중이 65%까지 달했던 중남미를 비롯해 세계적 커피 주생산지들의 커피 수출 비중은 점차적으로 18%로 수렴하게 된다.

  이 예는 대규모 기업농(상업농) 중심의 정책이 국제 시장 메커니즘의 논리 속에서 어떻게 한 국가 전체의 농업 기반과 내부경제, 그리고 국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것은 쌀농사를 대규모 전업농, 기계농에 맡기겠다는 현 정부의 정책이 빚을 결과를 예측하는 데 참고가 된다. 가령 2010년에 가서 가마당 10만원으로 설정된 저지선이 만약 무너진다면, 현재의 농업 재편의 결과로 소농과 가족농만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소위 6헥타르 이상 전업농도 버텨낼 재간이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현재의 농지법 개정안은 도시자본이 농지를 구입하더라도 ‘5년 이상’ 농지를 농업생산자에게 임대해야만 농지소유를 전면적이고 무제한으로 허용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5년간의 유예’라는 것도 도시자본의 농지소유를 제어해주지는 못한다. 300조 이상으로 예견되는 길 잃은 대기 자금들이 농지로 몰려든다면 농지를 중심으로 한 기본제도들이 버텨낼 수가 없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농민 스스로가 ‘경자유전’의 틀 내에서 생존을 유지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어떠한 변화가 모색되어야 할 것인가? 그것은 바로 ‘생명’ 혹은 ‘생명농업’을 키워드로 하는 길이다. 3,000평 미만의 가족농이 ‘다품종 소량생산’을 통해 생명을 사회에 공급하는 것으로서 농업은 재정의되어야 한다. 이러한 방향전환을 위해, 지금 우리 농민들은 ‘생명농업 선언’을 해야 한다. 생명농업은 친환경농업과 가족농, 그리고 순환형 다작으로 규정할 수 있다. 물론 맥락에 따라 다양한 변화가 있을 수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6헥타르 이상 규모의 전업농에 반대되는 모든 것이 ‘생명’의 속성이며, 이러한 접근만이 새로운 사회적 절차를 열 수 있다.

  아울러 소비자들의 생명선언, 즉 생명농업을 적극 지원하고 보호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는 선언 또한 필요하다. 농민의 생명선언과 소비자의 생명선언은 지금까지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했던 종합대책과는 다른 새로운 사회적 정책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물론 그 핵심은 어떻게 농업과 농민을 지켜낼 것인가의 문제이다.

  현재 우리나라 농민의 평균 농지소유는 1헥타르에서 1.5헥타르 사이이다. ‘생명’ 논리로의 전환은 현재의 구조에서는 일단 어떻게 ‘친환경농업’으로 안전하게 전환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해될 수 있고, 쌀중심의 규모화된 전업농에서 ‘식품안전’을 주요하게 고려하는 유기농법에 의한 순환형 다작방식으로 어떻게 전환시킬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전환이 바로 낙농의 국가였던 덴마크가 유기농으로 걸어간 길이기도 하고, 우리나라에 수입되고 있는 고가의 유기농 생산지인 독일과 영국의 유기농이 걸어간 길이기도 하다. 그 길이 그렇게 어려운 길일까? 그렇지는 않다. 현재의 지원방식과 제도에 대한 세밀한 재검토와 변화만으로도 충분히 새로운 길을 열어나갈 수 있다.

  현재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종합계획은 소규모 농민은 무조건 죽고, 대규모 전업농은 조금 있다가 죽는 방식이다. 그리고 대단히 급박하게 ‘국토생태’의 안전판이 사라진 상태에서 전국이 동시에 죽는 방식이다. 이러한 죽임의 방식에서 생명의 길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한가. 그렇지는 않다. 생명의 길은 언제나 열려 있기 때문이다.


  경자유전의 원칙을 생명의 원칙으로 지켜야 한다

  생명농업인 유기농으로의 전환을 위해서 시급히 필요한 것은 지역에 기반을 둔 다양한 유기농업 관련 연구기능이다. 쿠바에서 유기농이 지금과 같은 성공을 거두게 된 요인 가운데 하나는, 정부가 유기농업에 관한 다양한 연구기반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지역의 특성에 적합한 유기농법은 지자체의 작은 예산으로도 주요한 기반을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다. 여기에다가 수십억원 규모 정도의 정부예산이 추가로 지원된다면 새로운 생명지식의 연구기반을 만드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유기농업은 지식 집약적이면서도, 그렇다고 수십조 규모의 투자를 요하는 연구사업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 생명농업에 대한 새로운 지원기반이 추가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일관된 추곡수매 방식이나 연령별로 일괄적으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 등이 아니라, 지역별로 그리고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다양하고 유연하게 지원방식 등을 디자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가령, 해오라기를 비롯한 보호조류가 서식할 수 있는 농지와 같은 경우는 우선적으로 ‘생태보조금’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지역별로 농지와 밭이 어떠한 생태적 기여를 하는가에 따라 다양한 평가제도를 만들어 장기적으로 농민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생태지원금 등 여러 형태의 지원제도를 갖출 수 있다. 이것은 WTO 체제 내에서 소농을 보호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이며 현실적인 방식이다.

  교과서적으로 말하면, 이러한 지원제도를 통한 농민에 대한 지원은, 지금까지 국토생태의 안전판을 지키는 데 기여해온 논과 밭의 친환경 기능을 사회가 무상으로 임차한 것에 대한 정당한 비용지출이다. ‘시장’ 자체가 성립하지 않아 지불되지 못하고 있던 사회적 기능에 대해서 시장이 자연스럽게 지불하게 되도록 하는 것이 교과서적인 해법이라고 한다면, 그 교과서적 해법이 지금 필요한 것이 우리나라의 농업이다. 생명농업에 대해서 사회가 지불하는 생태비용은 WTO 내에서 농민들에게 해줄 수 있는 소득보존의 가장 현실적인 방식이다. 또한 이것은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 전체와 사회구성원 모두의 생명과 경제적 혜택을 동시에 만족시켜줄 수 있는 해법이기도 하다.

  도시의 생활협동조합 등의 오랜 노력에 의해서, 그리고 최근 들어 학교급식 네트워크 운동 등의 경험을 통해, 우리사회는 이미 생명의 논리를 받아들이고 이를 ‘시장화’시키거나 혹은 사회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 상태이다.

  그렇다면 유기농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얼마일까? 학교급식을 비롯한 집단급식 그리고 중산층의 수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적어도 30% 이상의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수요를 우리사회는 가지고 있다. ‘유기(organic)’라는 국제적 기준이 아니더라도, 사회가 믿을 수 있는 ‘생명농업’은 소위 ‘믿음(trust)’이라는, 후기산업사회가 포디즘을 극복하면서 만들어낸 새로운 시장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믿음의 시장’을 통해 30% 이상의 유기농을 우리 농업이 공급하겠다는 커다란 약속 하나가 있으면, 제도적 기반과 경제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은 상황이다.

  헌법상의 ‘경자유전’은 우리사회에서 사회정의, 경제정의의 원칙이었다. 그런데 이제 농지법 개정을 통해 비농민의 농지소유를 실질적으로 허용하는 것은 정확히 얘기하면 이러한 사회정의, 경제정의에 역행하는 일이다. 지금이야말로 ‘생명의 원칙’을 중심으로, 생명농업으로의 대전환을 위한 길을 열어야 한다. 2005년은 그 첫걸음을 시작하는 해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대전환의 선언이 있지 않고서는, 1945년 이후 시행되었던 농지개혁의 기본틀은 무너져 다시 농지개혁 이전으로 돌아가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생명의 원칙으로써 경자유전의 원칙을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생명을 중심으로 농민과 시민, 농업과 환경이 손을 잡고 정부가 새로운 제도를 마련하는 소위 친환경 사회로의 길 속에서 지금의 농업이 비로소 사회적 존재의 기반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도시의 빈민들이 ‘토지’에서 다시 삶의 기반을 찾을 수 있는 생명의 길은 열려야 한다. 그리고 그 첫 단추는 농민들의 생명선언이다. 1만불 언저리에서 7년을 ‘주저앉아’ 있는 이 사회가 이제 갈 수 있는 행복의 길은 바로 생명농업을 중심으로 한 생명의 길이고, 이러한 생명의 길만이 농민만이 아니라 이 사회 전체도 행복으로 인도할 수 있다.

  이것은 이미 덴마크가 걸어간 길이고, 영국과 독일이 지금 걸어가는 길이다. 쿠바가 이미 걸었고, 몇개의 국가들이 이 새로운 길로 나아가고 있다. 지금 농지법 개정을 통해서 한국정부가 가려고 하는 길은, 한국형 개발방식을 선택한 베트남이 새로이 커피에 모든 사회적 여력을 털어넣고 있는 것과 같은, 전혀 답이 나오지 않는 길이다. 진정 농업을 살리고 싶다면, 사회와 경제를 살리고 싶다면 생명의 길을 걸어야 한다. 그 안에 답이 있다.


1) 이근영《한국사회와 경제정의》다산출판사.

 


  우석훈―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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