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제76호 2004년 5-6월호    

 

  종말과 희망 ― '펜타곤 보고서'에 대하여

   이필렬

 

  올 봄,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식과 우리 손자를 위해서 반드시 기억해두어야 할 두가지 경고가 있었다. 하나는 기상청에서 근대 기상관측 100주년을 맞아 한국의 평균기온이 지난 100년간 섭씨 1.5도 상승했다고 발표한 것이고, 또하나는 미 국방성에서 잿빛 예측으로 가득 찬 기후변화 보고서를 내놓은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아마 이 두가지 경고에 대해 무심하게 보아넘겼을 것이다. 또는 관심을 가지고 보았더라도 일상에 파묻혀 지내는 가운데 이미 잊어버렸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경고가 현재의 우리 일상생활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수십년 후에 어떤 무서운 일이 닥친다는 것 자체가 실감하기 어려운 일이고, 그 예측이 정말 맞을 것 같다 하더라도 먼 훗날의 일이기에 자기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보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초 단위로 주가가 바뀌고, 집값이 며칠 만에 수천만원 뛰어올랐다가 며칠 후 다시 수억원이 떨어지는 '단타매매'의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수십년 후에 세상의 종말이 닥친다는 이야기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하물며 수십년 후에 기온이 조금 올라가고 비가 좀더 많이 온다는 것이 무슨 관심을 끌 수 있으랴. 기상이변은 항상 있었던 것이고 그것이 조금 심해진다는 것일 뿐인데, 게다가 기온변동이 자연적인 현상이라는 설도 있고 아무리 걱정해본들 별 뾰족한 수도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렇다, 한국에서는 일반 시민은 말할 것도 없고 소위 '지도급 인사'들도 기후변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 중에는 "기후변화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 아니다, 그러니 믿을 만한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 저렇게 기후변화를 무시하는 게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2001년 부시가 교토협약을 무시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정부의 어떤 대책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 대다수가 부시를 두둔했다는 소문은 '지도급 인사'들의 불감증을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대한 이들의 '낙관'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무런 근거도 없다는 것이 거의 밝혀져 있다. 기후변화는 대부분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서 일어난다는 것이 일반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대책의 환경낙관주의를 대표하는 비외른 롬보르조차도 다른 환경 경고들은 부정했어도 기후변화는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물론 그는 엉뚱하게도 인류의 생존이 걸려 있는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들이는 것보다 그 돈을 저개발국가의 발전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인류 전체의 행복을 위해서 좋다는 이상한 논리를 전개함으로써, 기후변화라는 생존의 문제를 경제의 문제로 바꿔치기 하는 오류를 저지르기는 했지만.

  지구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사실 '낙관주의자'들이 믿고 싶어하듯이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가스만은 아니다. 태양의 활동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지구 기후 자체의 내재적인 부침도 영향을 준다. 그렇지만 최근의 가파른 평균기온 상승과 이로 인한 기상변동의 원인이 태양의 활동과 같은 자연적인 요인보다는 인간이 내뿜는 온실가스 때문이라는 것은 기상학자들 사이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500년 동안 가장 더운 해가 2003년이었다는 사실, 지난 1000년간의 가장 더웠던 10개의 해 중에서 8개가 1990년대에 들어있다는 사실은 태양의 활동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되고 오직 인간이 내놓은 온실가스만으로 설명된다는 것이 이들 기상학자의 거의 일치된 견해이다. 그렇다면 올 봄의 두가지 경고는 우리 자신의 행위와 직접 연관된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서 우리 자식과 손자가 커다란 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면, 우리는 그 경고를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기상청의 발표가 충격적인 이유는 100년간의 기온상승 속도가 지구 평균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이다. 지구 평균은 지난 100년간 섭씨 0.5도가량 상승했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기온상승 속도는 지구 평균보다 3배 정도 빠르게 진행되는 셈이다. IPCC(기후변화를 위한 정부간 패널)의 2001년 보고자료에 따르면 210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이 최소 섭씨 1.4도, 최대 5.8도 상승한다는데, 이것보다 3배 빠르다면 한반도의 평균기온은 최소 4도, 최대 15도 가량 상승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러한 기온상승 결과가 어떠하리라는 것에 대해서는 특별히 상상해볼 필요도 없다. 가장 적은 변화로서 단순하게 여름의 온도가 지금보다 3도 또는 12도 높아지는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3도 높아진다면 우리는 여름 최고 기온이 거의 매일 30도가 넘는 기후에서 살아가야 한다. 이에 더해서 장마, 홍수, 태풍이 지금과는 크게 다른 양태로 나타날 것이 분명한데, 이러한 상황에 적응하는 것 자체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펜타곤 보고서는 아주 구체적으로 기후변화가 가져올 결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보고서는 2010년에서 2020년 사이에 기후변화로 인해 전지구적인 혼란이 닥칠 것으로 전망한다. 2007년경에 유럽 해안에 몰아닥칠 엄청난 폭풍으로 네덜란드 해안의 둑이 무너져 헤이그를 비롯한 넓은 지역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고, 2010년부터 2020년 사이에 북부유럽과 북미에서 기후변화로 인해 평균기온이 섭씨 3.5도가량 떨어져서 영국이 시베리아와 비슷한 기후가 되며, 전쟁과 기아로 인해 수백만명이 목숨을 잃는다는 것이 이 보고서에서 예측하는 내용이다. 식량생산이 크게 줄어들고, 열대와 아열대 지역이 황폐화됨에 따라 그곳 사람들이 미국과 유럽으로 몰려들고, 이곳 국가는 이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요새화되고, 일본, 한국, 독일 등이 핵무기를 개발하며, 엄청난 인구와 식량 수요를 지닌 중국과 해수면에서 얼마 높지 않은 방글라데시가 특히 심각한 피해를 입으리라는 내용도 들어있다.

  펜타곤 보고서에서는 기후변화가 IPCC 예측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본다. 그 결과 2010년경에 벌써 거대한 폭풍과 이로 인한 혼란이 나타나리라는 전망을 하는 것이다. 보고서의 내용 중에서 영국의 기후가 시베리아와 비슷해진다는 것은 온도가 올라가더라도 지역에 따라서는 전혀 다른 형태로 기후가 바뀔 수 있음을 말해준다. 영국은 위도가 시베리아와 거의 비슷하다. 그렇다면 원래 추워야 한다. 그런데 겨울에도 눈이 거의 오지 않고 따뜻하다. 그 이유는 북대서양으로 따뜻한 난류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 난류가 유럽 북부에 에너지를 전해주고 그 영향으로 영국이나 스칸디나비아의 기온이 난류가 없을 때에 비해 평균 섭씨 10도가량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후변화로 영국의 기온이 크게 떨어지는 이유는 바로 적도로부터 영국 북해를 통과해서 스칸디나비아 반도로 흘러가는 난류가 약해지거나 끊어지기 때문이다. 북대서양에서 난류가 생기는 이유는 염분을 많이 품고 있는 적도 부근의 바닷물이 북극 가까이에 오면서 차가워지고 이에 따라 무거워져서 북극의 심해로 쏟아져내려오기 때문이다. 대서양의 염분 농도는 지구의 다른 어떤 바다보다도 높다. 그 이유는 대서양에서 파나마 지협을 통과하여 태평양으로 끊임없이 바람이 불기 때문이다. 이 바람이 대서양의 물을 증발시키기 때문에 대서양의 염분 농도가 올라간다. 염분농도가 높은 물은 그렇지 않은 물보다 무겁다. 이 물이 차가워지면 더 무거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북극 부근으로 올라간 대서양의 물이 바다 밑으로 쏟아져들어오는 것이다. 이 물은 양도 많거니와 아주 빠른 속도로 밑으로 내려온다. 이로 인해 바다 표면에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만들어지고, 표면의 물이 계속해서 아래로 끌려들어간다.

  바닷속으로 들어간 물은 적도 쪽에서 빨려들어온 물을 채워주기 위해 심해에서 적도 쪽으로 이동한다. 이러한 일이 연쇄적으로 일어나 바다로 들어간 물이 멕시코만 아래까지 가게 되고, 그 결과 거대한 심해 해류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데 지구 기온이 올라가면 북대서양에서 태평양 쪽으로 부는 바람의 방향이 바뀐다. 그리고 기온상승으로 적도 바다에서 더 많은 양의 물이 증발한다. 이렇게 증발한 물은 북대서양 쪽으로 이동하는데, 그곳에서 차가운 공기와 부딪치면서 비가 되어 다시 바다로 쏟아진다. 그 결과 북대서양 바다가 희석되어 바닷물의 염분 농도가 낮아진다. 기온이 상승했기 때문에 북대서양의 바닷물이 차가와지는 정도도 떨어진다. 결국 북대서양을 흐르는 난류가 약해지는 결과가 오고, 난류가 품고 있는 열을 공급받지 못하게 된 영국과 스칸디나비아가 추워지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일은 여러 차례 발생했다. 고(古)기후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지금부터 약 8000년 전과 13000년쯤 전에 대서양 난류가 끊어져서 북부유럽이 얼음으로 뒤덮이는 사태가 벌어졌다. 두 경우 모두 기온상승이 점차적으로 일어나다가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면서 그러한 일이 벌어졌다. 고기후 학자들은 그린랜드의 얼음을 파내어서 유럽의 옛 기후를 연구한다. 그린랜드의 얼음은 수십만년 동안 한번도 녹은 적이 없고, 매년 눈이 덮여서 조금씩 두꺼워진다. 그러니 밑으로 파들어갈수록 옛날에 쌓인 얼음을 구할 수 있고, 이 얼음을 분석하면 당시의 기후를 추측할 수 있다. 분석에 따르면 8000년 전에 지금과 마찬가지로 계속 따뜻해지다가 갑자기 추워졌다. 그린랜드의 연평균 기온이 섭씨 3도 이상 떨어졌고, 북대서양 전역에서 이러한 기온저하 현상이 발생했다. 겨울에 혹한이 밀어닥쳤고, 이로 인해 빙하가 이른 시기에 나타나고, 강이 얼고, 식량생산이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났다. 여러 과학적 정황으로 미루어볼 때 이러한 현상은 심해 해류순환의 붕괴에 의해서 발생했으리라는 것이 고기후 학자들의 추측이다.

  북부유럽이 이렇게 추워지면 그 지역은 사람 살기가 어려워질 것이고, 사람들은 남부유럽으로 몰려들 것이다. 이러한 대규모 인구이동 현상은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 전지역에서 일어난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지에서 가뭄과 홍수로 식량생산이 크게 줄어들면 사람들이 좀더 자원이 풍부한 곳으로 이동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주로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남부유럽이 이들의 목적지가 될 터인데, 이들 국가가 몰려오는 사람들을 그냥 들어오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도 분명하다. 미국은 다른 지역에 비해서 사정이 낫지만, 그렇다 해도 현상유지가 쉬운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밖에서 수많은 사람이 몰려든다면 현상유지가 불가능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대규모 혼란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펜타곤 보고서에서는 미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가 국가 둘레에 요새를 쌓으리라고 예측한다.

  기후변화의 전반적인 결과는 세계 전지역에서 물, 식량, 에너지의 수급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물은 계속된 가뭄으로 인해서, 식량은 가뭄과 기상이변으로 인해서, 그리고 에너지는 지금 이미 줄어들고 있지만 기후변화로 추위나 기상악화가 일어날 경우 채취 자체의 어려움으로 인해서 부족현상이 일어난다. 식량의 경우, 세계의 주요 곡창지대는 대여섯개(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아르헨티나, 러시아, 중국, 인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 중에서 만일 몇 지역에서 동시에 기상악화가 발생하면 세계 식량 수급에 커다란 혼란이 발생하리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로 인해서 입는 타격은 식량자급률이 낮은 나라일수록 커질 것이다.

  기후변화로 식량, 물, 에너지의 수급이 곤란해지면 각 나라는 생존에 필수적인 이같은 자원들을 차지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펼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전쟁이 벌어질 것이고, 전쟁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것이다. 펜타곤 보고서에서는 갑작스러운 기후변화가 국가안보에 미칠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농업 생산량 감소에 의한 식량부족, 홍수와 가뭄으로 인한 민물의 질과 양의 저하, 얼음과 폭풍들로 인한 전략적 광물 채취의 두절을 든다. 보고서에서는 돌발적인 기후변화 사태가 발생할 때, 식량, 물, 에너지 자원의 부족현상은 처음에는 '조약'이나 '통상정지'와 같은 경제적·정치적·외교적 방법으로 조절이 될 것으로 보지만,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서 땅과 물의 이용에 대한 갈등이 더욱 심화되고 폭력적인 방법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측한다. 국가들이 점점더 필사적으로 되어가면서 구체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압력이 증가하여 전쟁이 벌어지리라는 것이다. 많은 역사적인 사례 중에서 이스터섬의 경우는 자원부족이 한 문명을 어떻게 멸망으로 끌고가는지를 잘 보여준다. 숲이 파괴되어 황폐해진 이스터섬에서 부족들이 남은 나머지 숲을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다가 함께 멸망해간 역사적 사실이 갑작스러운 기후변화의 시대에도 되풀이될 수 있는 것이다.

 

  펜타곤 보고서에는 중국과 일본의 식량생산이나 에너지 확보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이 나온다. 대부분의 언급이 회색빛이다. 한국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지만 이웃의 두 나라와 마찬가지로 비관적인 전망 아닌 다른 전망이 나오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예측에 직면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펜타곤 보고서에서는 미국정부에 7가지 권고안을 제시한다. 권고안은 모두 적응과 관련된 것이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미국정부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기후변화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인지, 기후변화를 억제할 수 있는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근본적으로 앞으로 닥칠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내놓지 않는 것이다.

  미국은 부시가 교토협약을 무시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국가적 전략이 없다. 펜타곤 보고서에서도 해결 전략은 내놓지 않는다. 반면에 유럽연합 국가들은 기후변화를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사회 시스템과 생활양식의 변화를 통해 에너지와 물질 소비를 크게 줄이고, 재생가능 에너지를 확대하여 50년 안에 온실가스 방출량을 90% 줄이겠다는 시나리오를 짜고 이를 실행중이다. 우리는 유럽연합처럼 해결하기 위한 실행 전략을 짜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국처럼 적응을 위한 대비책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 정부나 국민 모두 거의 무대책으로 일관한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낙관에서인지 아무리 노력해야 소용없다는 허무주의에서인지 기후변화와 대결하려는 움직임을 찾기 어렵다. 물론 소수의 생태적으로 감수성 강한 사람들은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있다. 이들은 개인의 차원에서 마음을 다스리고, 좀더 소박하게 살아가려 노력하고, 농촌생활을 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가 전체를 기후변화에 대비하게 만들려는 큰 운동을 벌이지는 못한다. 끊임없는 물질성장 추구의 세상 속에서 그렇게 큰 기획을 할 힘을 모으기 어려운 탓도 있겠지만, 그럴 마음이 크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기후변화는 우리에게 대단히 큰 위기다. 그리고 동시에 커다란 기회이기도 하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우리 생활과 우리 사회가 화석연료에서 벗어나고, 물질과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자족적인 삶의 의미를 알아가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세상을 좀더 생태적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닥칠 기후변화를 막아내는 것, 또는 변화에 적응하는 것은 우리에게 닥친 커다란 과제이다. 막아내기 위해서는 에너지와 물질 소비를 크게 줄여야 하고 재생가능 에너지 사용을 크게 늘려야 한다.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도 기존의 생산과 소비 패턴을 크게 바꿔야 한다. 기후변화로 식량과 에너지를 수입하는 것이 어려워지면 소비를 줄여야 할 뿐만 아니라, 자기 주변에서 필요한 것을 대부분 얻어야 한다. 지금까지와 같이 미국이나 남미, 또는 중국에서 각종 식량을 수입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중동에서 석유나 가스를 들여오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생활의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해지는 것이다. 그래야만 적응해서 살아남을 수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과 기후변화 문제의 해결은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변화란 갑작스럽게 닥치면 극심한 혼란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서서히 진행되어야만 성과가 거두어질 수 있다. 적응을 위해서든 기후변화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든 차분하고 장기적인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준비를 위해서는 기획의 자세가 필요하다. 개개인의 마음의 변화, 생활의 변화도 필요하지만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룡천 폭발사고 수습에 많은 사람이 성금을 보내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고통에 대한 감수성은 꽤 남아있는 것 같다. 그런데 도우려는 마음과 함께 도움을 큰 연관, 기획 속에서 제공하려는 마음은 부족한 것 같다. 북한에게 당장 필요한 것이 먹을 것, 입을 것, 치료약품임은 분명하다. 식량과 의복과 의약품을 많이 보내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순간적으로 소비되어서 없어지는 것이지, 북한사회의 건설적인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에 당장 긴요한 것을 보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로 북한을 생태적인 곳으로 만들려 한다면 특정한 기획을 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 숲을 조성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북한의 생태계, 식량생산, 물 수급에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북한에 간단하게 관리할 수 있는 소규모의 태양광발전기와 풍력발전기를 보내주는 것은 앞으로 20년 이상 적은 양이나마 계속해서 에너지를 쓸 수 있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북한에서 숲이 널리 되살아나고 소형 재생가능 에너지 기기가 폭넓게 퍼진다면 북한은 생태적인 방향으로 상당히 나아간 셈이 된다. 이것이 지역 곳곳에서 삶의 기반으로 작용하여 여기저기에서 생태적으로 건전한 자발적인 움직임이 나타나면 북한도 자족적인 삶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북한도 남한과 똑같은 경로를 밟으며 나아가야 한다고 가정한다. 다른 길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해보지 않는다. 그 단적인 예가 북한에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려는 '케도 사업'이었다. 이 사업은 실패로 끝났고, 그로 인해서 북·미 위기가 닥쳤다. 그때 만일 원자력발전소가 아니라 풍력발전기나 태양광발전기로 전력 지원을 하려 했다면, 북·미 위기가 오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 꽤 큰 열매가 맺혔을 것이다. 북한 전역에서 필요한 최소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기반이 갖추어졌으리라는 것이다. 케도 사업에 들어갈 예정이었던 6조원은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는 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기획에 돈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남한은 이미 최고의 소비사회에 도달했다. 자족적이고 생태적인 삶으로 전환되기가 대단히 어려운 단계로 들어선 셈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상태가 마냥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후변화와 자원고갈로 언젠가는 이 상태가 중단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적응이든 해결이든 어느 쪽이든 변화는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생태적인 방향으로의 변화는 피할 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기후변화를 막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해서 적응을 선택한다 하더라도 생태적인 삶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생태적인 삶이란 넘지 못할 한계를 정해놓고 그 한계 속에서만 피곤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샴푸를 안 쓰고, 육식을 안하고, 이동할 때 자동차를 절대 안 타고, 멀리서 온 음식을 안 먹고, 일을 많이 안 만드는, 그러한 부정적인 생활이 아니다. 채식요리를 맛있게 만들어서 즐겁게 먹고, 바람을 가르며 기분 좋게 자전거를 타고, 대안적인 에너지생산과 식량생산에 참여하고,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여가를 즐기는 긍정적인 삶이 바로 생태적인 삶이다. 이러한 긍정적인 태도는 머릿속에서 또는 책상 앞에서는 형성되지 않는다. 구체적인 실천을 해나갈 때에만 형성되고 유지된다. 펜타곤 보고서의 회색빛 예측 앞에서 절망할 필요는 없다. 적응을 위한 실천과 대안적인 실천이라는 희망의 길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끝까지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희망은 바로 그러한 마지막 실천 속에서 싹트는 것이다.


  이필렬 ―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에너지대안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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