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제74호 2004년 1-2월호    

 

  특집| 핵폐기장과 에너지 정책 ― 각국의 경험과 교훈

   

 

  편집자의 말

  지난 12월 산업자원부 장관이 물러났다. 5개월여에 걸친 부안주민들의 핵폐기장 반대운동 앞에서 그토록 고압적이던 정부도 고개를 숙이고 만 것이다. 언젠가 텔레비전 토론에서 정부 관계자가 환경단체가 책임지라고 압박하면서 "우리는 잘못이 있으면 장관이 물러나는 것으로 책임진다"는 의미의 발언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말대로 된 셈이다. 부안에서 큰 사고가 나서 정권이 흔들리더라도 상관없다는 대통령의 '오기'도 전세계를 향해 매일 한마음으로 반원자력의 불을 밝힌 수천개의 촛불 앞에서 결국 꺾이고 말았다. 이제 그는 이런저런 자리에서 환경운동의 힘을 얕보았다거나 그래도 주민투표 3원칙을 지켜야 한다거나 하면서 자기 변명에 급급할 뿐이다.

  부안의 승리는 세가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는 자칫 커다란 피해를 초래할지도 모를 핵폐기장 건설 시도를 막았다는 것이다. 둘째는 핵폐기물과 원자력발전 문제를 전국민에게 알리고, 이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셋째는 정권 담당자나 일반 국민에게 원자력발전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 자체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15년 가까이 원전 반대운동이 이어져왔고 1990년과 1994년 두차례에 걸쳐 대규모 핵폐기장 반대운동이 있었지만, 이번과 같이 원자력과 핵폐기물이 전국민의 문제로 부각된 적은 없었고, 이번처럼 에너지 정책과 원자력의 대안에 대한 관심이 뚜렷한 형체를 드러낸 적도 없었다. 원전 반대와 대안운동이 함께 발을 맞추어야 궁극적으로 원자력을 몰아낼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우리나라의 원전 반대운동은 이제 바야흐로 시작인 셈이다. 그리고 부안주민은 수천, 수만개의 촛불로써 이 운동에 불을 붙인 것이다.

  정부나 원자력 관계자들은 핵폐기장 건설이 무산된 것이 부안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대운동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이들을 원망할지 모른다. 이번으로 안면도, 굴업도에 이어 세번째 시도까지 실패로 돌아갔으니 얼마나 분하랴! 그러나 이번의 실패는 예정된 것이었다. 정부에서 아무리 강하게 밀어붙인다고 해도 성공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 이유는 이번의 접근방식이 그 전과 거의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두번의 실패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이다. 조금 달랐던 점은 지자체의 자발적인 유치신청이라는 장치를 도입해서 주민을 분열시키려고 시도했던 것인데, 오히려 주민들이 더 뭉치는 결과를 낳았으니 정부는 크게 오판을 한 셈이다. 초기(7월 22일)에 강하게 진압해서 반대운동의 싹을 꺾어버리겠다는 전술도 조금 다른 것이었는데, 이것도 주민의 반대의지를 더 강하게 만드는 결과만 가져왔다.

  정부에서는 다음에는 어떤 방식으로 핵폐기장 건설을 추진할지 벌써부터 고민에 들어갔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고민한다 해도 핵폐기장 건설을 실현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정부에서 원자력발전을 확대하려는 방침을 조금도 바꾸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원자력발전소를 계속 건설하려 하는 한 핵폐기물은 지금보다 훨씬더 많이 쏟아져나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부로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핵폐기물 처분문제로 조급해질 수밖에 없고, 핵폐기장을 어떻게든 건설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렇게 어떻게든 건설해보겠다는 자세는 실패를 낳을 수밖에 없다. 그러한 자세는 생리적으로 얕은 꾀를 동원하게 되기 때문이다. 긴 시간표 속에서 다양한 의견을 참조하는 가운데 최선의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 아니라, 외딴 곳, 주민이 많지 않은 곳을 찾아 그곳 주민들을 여러 방법으로 구워삶아서 일을 성사시키려는 꾀를 부리면, 결국 자기 꾀에 빠져서 실패하게 마련이다. 1990년 안면도에서는 제2원자력연구소를 세운다고 주민들을 속였다가 실패했고, 1994-5년 굴업도에서는 10명도 안되는 주민만 설득하고 보상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가 덕적도와 인천 주민들의 저항 앞에서 무릎을 꿇었고, 이번에는 수억원의 현금보상설까지 흘려서 위도 주민들이 핵폐기장 유치찬성을 하게 만들었다가 부안군민들의 대대적인 반대 앞에서 두손을 든 것이 그간의 실패의 역사이다. 그동안 해외시찰과 향응 등을 통해서 기자들과 지역유지들을 꾸준히 길들이는 작업을 해왔어도, 그래서 주민들의 저항을 주류언론이 철저하게 외면하거나 오히려 비난하게 만들었어도 실패하고 말았다는 것은 얕은 꾀 가지고는 안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정부나 원자력 관계자들은 핵폐기장 건설을 시도할 때마다 "외국에서는 다 잘 하고 있는데 …"라는 이유를 대면서 한국도 어서 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왔다. 원자력발전을 하는 나라 중에서 한국과 몇 나라만 빼고는 모두 핵폐기장을 운영한다는 것이 그들이 핵폐기장 건설의 절박함을 설명하는 중요한 이유였다. 그리고 언론을 통해서 또는 사람들에게 직접 스웨덴, 일본, 영국, 프랑스 등의 핵폐기장을 보여주면서 핵폐기장이 안전하고 지역에도 도움을 준다는 선전을 해왔다. 그런데 그들이 주로 보여준 것은 핵폐기장 시설과 그곳의 책임자들이었다. 시설은 모두 겉으로 보기에 멀쩡했고, 책임자는 안전하게 잘 돌아간다는 말만 했기에, 보는 사람들은 적어도 그 자리에서는 괜찮다는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넘어갔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란, 그곳의 핵폐기장 건설이 어떻게 성사되었느냐는 과정과 관련된 것이다. 정부나 원자력 관계자들은 그 과정에 대해서는 한번도 알린 적이 없었고, 스스로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정부의 주장과 달리 전세계에서 안전하다고 평가받는 핵폐기장은 소수에 불과한데, 이 중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운영된다고 하는 스웨덴의 포스마크 핵폐기장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부, 의회, 원자력산업계 그리고 국민이 오랜 기간 동안 의논하고 협상하고 타협한 결과의 산물이다. 그것도 원자력을 확대하지 않는다는 국민적인 합의라는 바탕 위에서만 가능했다. 독일은 25년 가까이 모든 핵폐기물을 처분할 수 있는 핵폐기장 건설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끝에 원자력을 포기하기로 결정하고, 그러고 나서야 핵폐기장 건설을 원점에서 다시 시도하고 있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조급하게 시도한 것이 제대로 되지 않자 스웨덴처럼 긴 시간표와 민주적인 절차를 가장 중시하게 되었고, 원자력도 더이상 확대하지 않기로 했다. 미국은 사실상 원자력을 확대하지 않고 있지만, 아직까지 원자력의 미래에 대한 분명한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고 핵폐기장 건설과 관련해서도 특별한 성공전략이 없는 것 같다.

  한국은 민주적인 절차나 토론 또는 합의와 관련해서 미국보다도 못한 것 같다. 주민의사를 물어서 유치신청을 받겠다는 것은 이번에 극히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정부의 전략은 어떻든 밀어붙인다는 것이고, 그것이 실패를 낳았다. 그런데도 정부는 핵폐기장을 건설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원자력발전을 계속하려 한다. 주민투표법이 국회를 통과했으니 이번에는 주민투표를 통해서 핵폐기장 유치신청을 하는 지역을 찾아내서 건설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주민투표를 진정으로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하기 위해서 어떤 과정을 거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별로 하지 않을 것이다. 주민투표가 요식행위로 그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럴 경우 주민투표에서 다수가 찬성한다 해도 프랑스의 경우와 같이 반대하는 소수가 끝내 승복하지 않을 것이고, 이로 인해 핵폐기장 건설이 실패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정부에서 주민투표를 도입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것 자체로는 바람직한 일이다. 원자력문제에 접근하는 정부의 방식에 약간의 진전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민투표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것을 진정으로 의미있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이번 특집에서 우리는 바로 이와 관련해서 외국의 사례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그럼으로써 핵폐기장과 관련해서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객원편집자 이필렬]  


  독일의 핵폐기장 후보지 선정방식

   이필렬

 

  독일은 2000년 6월 원자력발전 포기를 최종적으로 선언했다. 포기선언의 내용은 원전의 가동연한을 32년으로 정하고, 이 연한이 끝나면 원전을 폐쇄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2021년에 마지막 원전이 폐쇄되고 원자력이 사라진다. 독일에서 원자력발전을 포기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핵폐기물 처분이 해결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원자력발전 포기의 주된 성과는 핵폐기물의 양을 한정함으로써 이 어려운 일을 좀더 수월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핵폐기물 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나와있는 핵폐기물의 양과 앞으로 발생할 양이 대단히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자력 포기는 해결의 단초는 제공한 셈이다. 전국민이 원자력발전 포기에 이어서 핵폐기물 처분이 그들의 과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러한 바탕 위에서 핵폐기장이 들어설 지역주민을 설득하기도 조금 쉬워졌기 때문이다.

  독일에는 운영중인 핵폐기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중저준위 핵폐기장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모두 폐쇄되거나 사용중단된 상태이다. 물론 고준위 핵폐기장도 없다. 독일정부에서는 수십년 동안 핵폐기장 건설을 추진했다. 그러나 지역주민과 일반시민의 강한 저항에 부딪쳐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독일은 또한 1990년대 말까지도 원자력 확대정책을 고수했기 때문에 저항은 더 클 수밖에 없었고, 정부와 주민 사이의 타협 가능성도 거의 없었다. 사민당-녹색당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야 이러한 상황이 바뀌는데, 이는 새 정부가 원자력발전을 포기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원자력 포기는 핵폐기장 건설 문제에서도 완전히 새로운 상황을 낳았다. 앞으로 처분할 핵폐기물의 양이 명확하게 계산되기 때문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실현가능한 컨셉트를 적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원자력 정책이 공격적인 것으로 바뀌는 계기는 1973년의 제1차 오일쇼크이다. 오일쇼크는 유럽 선진국에게 커다란 타격을 가했고, 사민당의 헬무트 슈미트 정부는 가능한 한 중동석유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원자력발전을 대대적으로 확대하는 정책을 폈다. 이 정책의 주요내용은 기존의 경수로 건설을 계속 확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고속증식로 건설을 통해서 원자력발전을 거의 영구히 계속하는 것이었다. 고속증식로는 플루토늄을 핵연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핵연료를 얻기 위해서는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해야 한다. 이에 따라 독일정부는 재처리시설을 세우기로 결정하는데, 이로써 독일은 경수로 가동, 경수로에서 나온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를 통한 플루토늄 생산, 플루토늄을 핵연료로 쓰는 고속증식로 가동이라는 원자력발전 프로그램을 확립하게 된다. 이 프로그램은 재처리시설이 들어서는 곳에다 핵폐기물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장을 집중시킴으로써 한 장소에서 재처리와 핵폐기물 처분을 해결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었다.

  이 계획의 실현을 위해 1977년 2월 22일 독일 중부의 니더작센 주지사는 암염광산이 있던 골레벤에 재처리시설, 핵연료공장, 핵폐기물 처분장을 포함하는 '핵처분 센터' 건설을 제안했고, 이때부터 독일에서는 그때까지 대체로 원자력발전과 재처리시설에 한정되어 있던 반대운동이 핵폐기물 처분장에 대한 반대운동까지 포괄하게 되고, 대대적인 저항이 벌어지게 된다. 저항이 계속해서 격렬하게 진행되자 니더작센 주지사는 1979년 애모리 로빈스를 비롯하여 찬성과 반대를 대변하는 여러 국내외 전문가를 초청하여 닷새에 걸친 열띤 토론회를 개최한 끝에, 1979년 5월 16일 '핵처분 센터'의 건설이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골레벤에 이 시설을 유치하려는 계획을 포기했다.

  니더작센 주지사의 포기선언으로 '핵처분 센터' 건설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핵폐기장은 연방정부 소관이었기 때문에 골레벤의 핵폐기물 영구처분장 건설계획은 계속 추진되었다. 이 결정은 주민의 의사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내린 것이었다. 이에 따라 1979년 골레벤 암염광산을 대상으로 적합성 조사가 시작되었고, 이 조사는 2000년 10월 1일에 가서야 중단되었다.(그 사이에 1983년 골레벤 근처에는 핵폐기물 중간저장시설이 건설되었고, 이곳에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수송된 고준위 핵폐기물이 저장되었다.) 그러나 이 조사와 독일정부의 핵폐기장 건설계획은 지역주민과 이들을 지원하는 시민들의 대단히 강한 저항에 부딪쳤는데,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1982년 슈미트의 뒤를 이어 정권을 잡은 보수당의 헬무트 콜 수상은 계획을 끝까지 철회하지 않았다.

  조사과정에서 골레벤 암염광산이 핵폐기장으로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결과도 나왔고 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대운동이 계속되었지만, 계획이 철회되지 않은 주된 이유는 보수당 정부가 원자력발전 확대정책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보수당 정부의 인식은 원자력발전을 계속하는 한 쏟아져나오는 핵폐기물을 처분할 곳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민들의 거센 반대가 있더라도 골레벤에 핵폐기장을 건설하겠다는 것이었다. 투명성과 주민참여를 핵심으로 하는 방식으로의 방향전환도 시도하지 않았는데, 이는 원자력을 고수하는 한은 실현되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독일정부에서 원자력발전을 계속하기로 하는 한 진정한 주민참여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독일의 핵폐기장 건설계획은 1998년 사민당-녹색당 연립정권이 들어서면서 커다란 전기를 맞게 된다. 사민당은 선거에서 이길 경우 원자력발전을 포기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고, 녹색당과 공동으로 정권을 잡은 후 약속을 실현하기 위한 절차를 밟아간다. 이 절차에는 원자력발전 포기뿐만 아니라 핵폐기장 건설과정의 재검토까지 대상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따라 1999년 2월 연방환경부에서는 핵폐기장과 관련하여 '핵폐기물 영구처분장 부지 선정방식위원회'(이하 아켄트)를 설립했고, 2000년 10월에는 2000년 6월에 이루어진 원자력발전 포기에 관한 최종 합의에 따라 골레벤에 대한 부지적합성 조사가 중단되었다. 이 중단은 최소 3년, 최대 10년 동안 지속되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다른 지역이 부지로 선정되면 골레벤에서의 조사는 더이상 재개되지 않을 것이었다. 원자력 포기 합의는 또한 2005년부터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금지하는 것과 발생하는 핵폐기물을 발전소 부지에 수십년간 보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는 핵폐기장을 장기간의 검토와 조사 끝에 건설하겠다는 독일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독일에서는 1960년대까지는 핵폐기물을 어떻게 처분한다는 컨셉트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1976년에야 원자력발전업자, 즉 유발자가 핵폐기물 '제거'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유발자원칙' 규정이 도입되었고, 이 책임을 완수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만 원전 가동허가가 나왔다. 독일정부에서는 이 책임의 방식으로 재처리와 직접적인 영구처분을 제시했는데, 당시에 재처리는 핵폐기물을 재사용하는 것으로 여겨졌고 독일정부에서도 재처리를 핵폐기물 제거방식으로 권장했기 때문에, 원자력업자들은 사용후 핵연료를 프랑스, 벨기에, 영국의 재처리시설로 보내서 재처리를 하게 하는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 이를 통해서 발전업자들은 사용후 핵연료를 '제거'할 수 있었고 발전소 가동허가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재처리에서도 많은 핵폐기물이 발생하고, 이것은 일정시간 후에 재처리 국가로부터 다시 독일로 되돌아오기 때문에, 재처리는 단지 핵폐기물 처분을 연기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밖의 중저준위 핵폐기물은 대부분 발전소 부지에 임시저장되거나 지금은 사용중지된 아쎄(Asse), 콘라트(Konrad), 모스레벤(Morsleben) 같은 몇개의 처분장에 영구처분되었다. 그런데 보수당에서 진보정당으로 정권이 바뀌고나서 재처리가 금지되고, 핵폐기물을 직접 영구처분해야 하며, 영구처분할 폐기물은 2030년 핵폐기장이 마련될 때까지 발전소 부지에 분산해서 임시저장한다는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핵폐기장 부지선정 방식에 대한 논의를 목적으로 설립된 아켄트는 보수당 정부의 핵폐기장에 대한 접근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방식을 개발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위원들의 구성방식부터 보수당 때와는 크게 달랐다. 보수당은 주로 과학기술자를 중심으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운영했지만, 이번에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위원으로 선발되었다. 이들은 모두 18명(나중에 14명)이었는데, 이들의 전문분야는 지질과학, 사회과학, 화학, 물리, 수학, 광산학, 폐기물처분, 토목공학, 대중홍보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었다. 아켄트는 4년에 걸친 연구기간 동안 연구와 더불어 세차례의 공개 워크숍, 의원들을 비롯한 각계 그룹들과의 16번에 걸친 대화, 두차례의 해외시찰(스웨덴과 스위스) 등을 통해서 얻은 결과를 정리하여 2002년 말에 최종 보고서를 제출했다. 독일에서는 환경부(정확하게는 환경보호·자연보호·원자로안전부)가 핵폐기물 처분을 주관하는데, 환경부는 이 보고서에서 권고하는 안에 따라 핵폐기장 부지를 선정하는 절차에 들어가게 될 예정이었다.

 

  아켄트 보고서에서 거듭해서 강조하는 것은 주민참여와 투명성이다. 보고서는 스웨덴과 스위스를 핵폐기장 건설절차를 가장 모범적으로 수행하는 나라로 평가하는데, 그 이유는 이들 국가가 핵폐기장 건설에서 주민참여와 투명성을 크게 보장한다는 것 때문이다. 그밖의 다른 나라의 핵폐기장 건설과정은 주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따라서 주민들이 선정방식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위원회의 판단이다. 스웨덴과 스위스에서는 핵폐기장 건설을 위한 단계 각각에 대해서 모두 주민들의 동의를 얻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이러한 방식만이 핵폐기장 건설의 성공을 가져온다는 것이 위원들의 기본적인 인식인 것이다. 아켄트에서 주민들의 참여방식으로 제시하는 것은 대화, 투명성, 공정한 권한부여, 감시로서의 주민참여, 지역의 미래상 결정에의 주민참여, 책임지는 것으로서의 주민참여 등이다.

  '대화'는 핵폐기장과 관련된 각종 의견과 지식의 소통을 의미하는데, 모든 형태의 참여는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투명성'이란 모든 정보가 처음부터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되는 것을 의미한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해서 정보제공이 무시되면 투명성이 달성되지 않는다. '공정한 권한부여'는 주민에게도 원자력 전문가에게 주어진 것과 같은 권한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부지 선정작업은 과학기술자들의 일이었고, 따라서 이들 전문가와 지역주민의 권한 사이에는 불균형이 있었다. 그런데 선정과정이 주민들에 의해서 정말 감시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으려면 참여주민(또는 주민대표)에게도 전문가들과 동등한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감시로서의 참여'는 주민들에게 모든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선정과정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모든 정보를 얻지 못할 경우에는 선정과정의 신뢰가 보장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의 미래상 결정에의 참여'는 핵폐기장이 들어왔을 때 그것이 지역에 미칠 긍정적·부정적 영향이나 기회와 위험에 대해서 주민들이 토론하고 논의함으로써, 핵폐기장이 들어선 자기 지역의 미래에 대한 구상에 주민들이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책임지는 것으로서의 참여'는 결정과정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책임도 일부 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지금까지 독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 핵폐기장 건설은 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실패했다. 그러므로 주민을 처음부터 동등하게 참여시키는 것은 그것이 번거롭고 어려운 일처럼 보인다 해도 핵폐기장을 실현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 위원회의 견해이다.

  아켄트에서는 핵폐기장 선정과정을 다섯단계로 나눈다. (한국의 경우 정부의 핵폐기장 건설계획에 의하면, 선정과정은 대략 세단계로 나뉜다. 우선 전국을 대상으로 미리 정부에서 적합하다고 판단한 지역 수백곳을 골라낸 후에, 그중에서 한곳을 선정하고, 지질조사를 통해 확정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거의 공개되지 않고, 따라서 투명성이나 신뢰가 조금도 보장되지 않는다. 어떤 근본 원칙에 의거해서 선정작업이 진행되는지도 지금까지 공개된 바 없다.) 독일의 경우 선정과정에서 가장 중시되는 원칙은 안전이다. 이에 따라서 우선 100만년 동안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격리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지역을 배제한다. 두번째 단계는 1단계에서 배제되지 않은 지역을 대상으로 좀더 적합한 지역을 5개 이상 골라내는 것이다. 세번째는 2단계에서 현지 지상조사(사회경제적인 분석 등)를 위한 후보지 3-5개를 확정하는 것이다. 네번째 단계는 3단계에서 확정된 후보지에 대한 지상조사를 실시하는 것이다. 다섯번째 단계는 4단계의 지상조사에서 적합으로 판정된 지역에 대해 지질조사를 실시하는 것이다. 여기서 적합판정이 나오면 연방의회에서 이 지역을 처분장 후보지로 최종 확정한다.

  아켄트는 위의 다섯단계의 각 단계가 결정될 때마다 주민들이 확실하게 참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100만년 동안 안전하게 핵폐기물을 격리할 수 있는 지질구조를 지니고 있을 가능성은 기존의 지질자료를 가지고 판단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지질자료를 주민들에게 광범위하게 공개하고 설명하고 결정과정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자기 지역이 후보지에서 배제되지 않고 최초의 후보지로 선정되었을 때 주민들이 수긍하게 된다는 것이다. 처음에 지질자료를 통해서 선정된 후보지 중에서 5개 정도를 고르는 두번째 단계 때에도 1단계와 똑같은 방식으로 정보공개, 주민감시, 설명 등이 시행되어야 한다. 세번째 단계에서는 지상조사 계획을 수립하고 사회경제적인 잠재성을 분석하는 등의 작업이 이루어지지만 이 단계의 핵심은 현지 지상조사를 직접 실시하는 4단계로 나아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주민들에게 묻는 것이다.

  현지 지상조사를 받아들이는 것은 최종 후보지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 주민들의 참여를 위해서는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 아켄트가 권고하는 주민참여의 중심요소는 시민포럼이다. 시민포럼에서는 그 지역 주민들이 지역의 지상조사 참가를 원하는가에 대한 조사, 지역의 발전 컨셉트를 만드는 일, 그밖의 부지선정 관련 문제에 관한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도록 조직하는 일을 담당한다. 시민포럼의 활동과 함께 다양한 형태의 토론회가 개최되고, 최종적으로 주민투표를 통해서 조사 허용여부가 결정된다. 그후 지방의회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단계 참가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린다. 네번째 단계의 주된 과제는 지상조사를 통해서 다섯번째 단계인 지질조사 대상지역을 최소한 2개 확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4단계의 지상조사에서 적합으로 나왔을 경우 또다시 주민들의 의사를 묻는 절차를 밟는다. 이번에는 지질조사를 허용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이때도 시민포럼, 다양한 형태의 토론, 주민투표 등이 실시된다. 주민투표를 통해서 주민들이 지질조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이 지역은 조사대상에서 제외한다. 마지막의 다섯번째 단계는 지질조사이고, 여기서 적합한 것으로 판정되면 핵폐기장 부지로 결정된다.

 

  독일정부에서는 2030년 핵폐기장 완공을 목표로 삼고 있다. 1979년부터 핵폐기장 건설을 추진했지만 20여년이 지나고 나서 이를 거의 백지화하고 다시 30년이란 시간을 핵폐기장 건설을 위해 쏟겠다는 것이다. 시간표를 이렇게 길게 잡은 이유는 독일정부가 주민들의 참여와 지질조사 과정에 긴 시간이 투입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아켄트는 다섯번째 단계의 지질조사가 10년 동안은 이루어져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고, 조사가 끝난 후 제출된 건설승인 서류에 대한 집중적인 검토기간으로 5년을 잡을 것을 요구한다. 승인이 나오고 나서야 핵폐기장 건설에 들어가는데, 아켄트에서는 건설기간으로 3-5년이 소요될 것으로 본다. 이 기간만 합쳐도 20년이 되니 각 단계마다 주민들의 동의를 얻는 데 걸릴 시간까지 고려하면 2030년까지 완공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독일에서는 핵폐기장 건설 다섯단계 계획에 따라 앞으로 여러 지역에서 여러번 주민투표가 실시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민투표는 원자력에 관한 국민투표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능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1998년의 총선에서 다수의 국민이 원자력을 반대하는 것이 드러났고, 이를 바탕으로 원자력을 포기하는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에 앞으로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도 전국적인 저항 때문에 독일의 핵폐기장 건설은 표류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정부는 핵폐기장 건설을 원점에서 시작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원래의 시간표는 바꿀 생각이 없는 것 같다. 2004년 초에 주민투표를 실시해서 유치를 원하는 지역이 나오면 바로 지질조사에 들어가고 그후 1-2년 후 적합판정이 내려지면 바로 건설을 시작하려는 것 같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몇차례 실패와 독일의 예는 이러한 접근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부에서 핵폐기장이라는 국가적 난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고 싶다면 먼저 원자력발전에 관한 모든 것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그래서 원자력 포기를 다수의 국민이 원한다면 포기 결정을 하고 대안을 찾아나가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그래야만 핵폐기물 해결의 실마리가 약간이라도 풀릴 것이다.


  이필렬 ―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에너지대안센터 대표.

녹색평론사  (02)738-0663, 0666  fax (02)737-6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