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제74호 2004년 1-2월호    

 

  풀뿌리 환경운동과 '전문가'의 권력

   김백주

 

  무관심 속에 파묻혀 있던 양서류. 이 책에다 어떤 것을 풀어놓아야 할지 고민하며 뜬눈으로 새벽을 맞곤 하던 수많은 날들이 눈앞에 흩어져 지나간다. … 그러나 지금 책을 마감하면서 한가지 바람이 더 생기는 것은 그저 욕심일까. 1차적인 정보전달을 뛰어넘어 개개인이 자연의 숨소리를 체감하면서 생명공동체에 눈뜨기를 바란다.

  위 글은 우리나라 양서류 연구의 권위자로 알려진 심재한 박사가 쓴《생명을 노래하는 개구리》서문에 나와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면 누구나 양서류가 생태적으로 중요하다는 것과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에 깊이 공감할 거라 믿는다. 또한 이런 학자라면 양서류가 위기에 처했을 때 보호하기 위해 함께 나설 거라고 믿을 것이다. 실제로 심재한 박사가 쓴 책을 보면 저자소개에 "양서·파충류를 대상으로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분으로, 이들을 위해서라면 어떤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라고 적혀 있다. 이렇듯 책을 통해 내가 만난 심재한 박사는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사는 '생명공동체'를 꿈꾸는 학자였다. 그런데 최근 청주시민들이 만나고 알게 된 심재한 박사는 이런 이미지와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청주의 한 마을이 택지 개발지로 지정되고 그곳에 있는 방죽에서 두꺼비가 발견되면서 청주시민들은 '두꺼비 살리기 운동'을 벌여왔다. 이 과정에서 양서류 학자인 심재한 박사는 두꺼비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시민들 편에 서기보다는 개발업자의 입장에 서서 행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자연생태계와 환경을 지키기 위한 운동에서 생태적 지식은 매우 중요하다. 생태적 지식을 통해 환경을 어떻게 살려나가야 하는지, 환경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는 학자들이 생태적인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어떤 태도와 관점을 가지고 있는가는 아주 중요하다. 만약 이들이 개발론자 입장에 선다면 이는 하나의 재앙이 될 것이다. 그들의 생태적 지식은 생태적 다양성이나 생명을 지켜내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결과적으로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개발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청주에서 진행되었던 '무심천 살리기 운동'이나 '문장대 용화온천 개발 저지운동', '수돗물불소화 반대운동' 등 지역 환경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왔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일상적인 나들이를 통해 대안적 생태교육과정을 만들고,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단지에서 관심있는 사람들과 생태학교를 진행하면서 생활 속 환경운동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원흥이 두꺼비 살리기 운동'도 우리반 아이들과 함께 두꺼비에 대해 공부하고, 서명운동에 참여했다. 또 원흥이 마을의 생태적인 유산에 대해서 조사활동을 벌였기 때문에 '두꺼비 살리기 운동' 전개과정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로 느낀 것이, 일부 전문가들이 말로는 '생명공동체'를 이야기하면서 실제 행동은 전혀 다르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생태적 지식이 그들에게 독점되고 지식이 권력의 원천이 되는 현재 상황을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가 함께 꿈꾸고 만들어갈 생명공동체와 지속가능한 삶을 실천하는 데 커다란 장애가 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청주의 두꺼비 살리기 운동

  청주 남쪽에는 '원흥이'라는 마을이 있다. 해발 163미터 정도 되는 구룡산이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여기는 작은 저수지(원흥이 방죽)가 하나 있는데, 매년 봄이면 수백만 마리의 두꺼비 새끼들이 알에서 부화해 산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중요한 두꺼비 집단 산란지이다. 그런데 1994년 원흥이 마을이 포함된 산남 3지구에 도시개발계획이 수립되고 최근 확정되면서, 두꺼비를 포함한 원흥이 방죽 일대 생태계가 파괴될 위기에 처했다.

  산남 3지구 개발계획에 의하면 원흥이 방죽 바로 뒤로 검찰청과 법원이 들어선다. 그 뒤에 구룡산 자락을 통과하는 6차선의 큰 도로가 나고, 방죽 왼쪽에는 도로와 18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구룡산의 7, 8부 능선까지 모두 파헤쳐진다. 이렇게 되면 두꺼비들의 서식처 및 동면지가 사라지게 되고, 두꺼비와 함께 생명 그물망을 만들고 있는 곤충과 청둥오리 같은 새들의 서식환경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엄청난 개발계획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청주시민들과 환경단체들은 그런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생태교육연구소 터'에서 자연안내자 모임을 하고 있는 이상현 씨의 노력으로 원흥이 방죽과 두꺼비 이야기가 청주시민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상현 씨는 당시 상황을 내게 이렇게 이야기해 주었다.

 

  제가 사는 아파트에서 원흥이 마을까지는 15분 정도의 거리인데, 우리 동네 사람들은 구룡산이나 원흥이 마을로 아침, 저녁 산책을 많이 가요. 저도 우리 아이들하고 늘 다녔지요. 근데, 제가 환경운동을 한다는 것을 알고 우리 앞집 사람이 그러는 거예요. 저수지에서 개구리를 양식하는 것 같다고. 가서 보니 두꺼비 새끼들이 바글바글 산으로 가고 있는 거예요. 전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두꺼비나 개구리를 가지고 늘 놀았어요. 그래서 그들의 생태를 잘 알지요.  

  … 처음에는 이렇게 큰 운동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저 많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지요. 우리 아들 다니는 병설유치원에도 직접 연락해서 내가 안내할 테니 오라고 부탁하고, 우리 환경단체 자연학교 아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주변에 있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신이 나서 전화했지요. 내가 다 안내할 테니 와서 보라고. 그렇게 했어요. 너무 신나고 즐거워서. 그저 봉사라고 생각했지요.

 

  이렇게 시작된 '두꺼비 살리기 운동'으로 인해 지역사회 여러 단체들이 참가한 '원흥이 두꺼비마을 생태문화보전 시민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또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두꺼비들은 청주시민들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청주시민 만명 이상이 원흥이 방죽을 찾았고, 10만명을 목표로 시작된 '두꺼비 살리기 서명운동'은 짧은 시간에 이미 4만명이 훌쩍 넘을 정도로 시민들의 폭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었다. 청주시내 많은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의 교사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을 찾아와 공부하고 어른들도 적극적으로 방문하면서, 이제 원흥이 방죽은 청주시민들에게 훌륭한 생태교육장으로 자리잡았다.

 

  '두꺼비 살리기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쟁점이 된 것은 두꺼비의 이동통로였다. 두꺼비 산란지인 저수지는 환경영향평가에서도 '보전'하는 것으로 되어있었기에 문제가 되지 않지만, 서식처와 산란지를 이어주는 약 200미터 넘는 길을 두꺼비들이 어떻게 이동할 수 있느냐가 핵심 쟁점이었다.

  대책위에서는 저수지를 포함한 그 일대 습지를 그대로 보전할 것을 주장하였고, 많은 청주시민들이 대책위 입장을 지지하자 토지공사가 두꺼비를 살릴 수 있다고 들고 나온 안이 지름이 약 1미터 정도 되는 지하관을 묻는 방안이었다. 이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는데, 원래 개발계획에 의하면 원흥이 방죽 북쪽 구룡산 자락에서 저수지까지 빗물 유입을 위해 지하관을 묻을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지하관을 통해 두꺼비들이 이동할 수 있다고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대책위가 전혀 받아들이지 않자 토지공사에서는 바로 철회하였고, 다시 내놓은 안이 지상으로 폭 2미터 정도의 '생태통로'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이 안에 대해서도 대책위는 당연히 반대했다. 날이 갈수록 '두꺼비 살리기 운동'이 확산되고 청주시민들 대다수가 관심을 갖는 중요한 의제로 등장하자, 궁지에 몰린 토지공사에서는 국내 양서류 연구의 권위자이며 "국내에서 실시하는 모든 종합학술조사에 양서·파충류 분야의 책임연구원으로 참가하고 있는" 심재한 박사에게 관련 용역을 맡기고 그 결과에 따라 공사를 진행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결국 심재한 박사가 연구용역을 맡게 되었는데, 대책위에서는 지역의 구체적인 상황과 시민들의 요구를 전달하고 두꺼비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함께 찾아보기 위해 계속 접촉을 시도했다. 그러나 심재한 박사는 대책위 관계자와 대화하기를 꺼리면서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이런 상황이 되자 대책위 일각에서 심재한 박사가 토지공사의 입장을 사실상 정당화해주는 용역결과를 내놓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심재한 박사의 모습은 한국교원대에서 동물학을 가르치는 한 교수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비되었다. 교원대 교수는 두꺼비 집단 서식지가 발견되었다는 대책위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달려와서 상황을 공유하고, 지역언론(KBS)에 보도를 주선해 주었고, 지금도 지속적인 관심을 표하며 자문에 성실히 응해주고 있다. 심재한 박사가 진정으로 양서류를 사랑한다면 소식을 듣자마자 지역에 내려와서 두꺼비가 처한 위기상황을 알아보고, 사회단체나 시민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어떻게 두꺼비들을 살리고 주변 생태계를 지킬 수 있을지 모색했을 것이다. 그리고 연구용역을 맡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지역 여론과 시민들의 뜻이 반영되도록 노력하지 않았을까?

 

  '두꺼비 살리기 대책 설명회'에서 벌어진 일

  대책위의 활동과 시민들의 강력한 저지로 토지공사에서는 일방적으로 공사를 진행할 수 없게 되자, 사회단체를 상대로 두번의 설명회를 개최하였다. 하나는 '원흥사 터' 추정지를 시굴조사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는 설명회였고, 또하나는 두꺼비 살리기 보전대책에 대한 용역결과 발표·설명회였다.

  원흥이 방죽 일대는 두꺼비 서식지일 뿐 아니라 고려시대 원흥사 터로 추정되는 곳으로, 여기저기에서 고려 초기 기와조각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지표조사보고에서는 그러한 사실이 보고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책위에서는 원흥사 터를 포함해서 시굴조사를 실시할 것을 요구하여 이를 관철시켰다. 시민들은 시굴조사 내내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과정을 묻고 제대로 된 시굴을 요구하며 감시하였고, 그로 인해 시굴조사 과정은 매우 긴장된 상태에서 진행되었다. 발표현장 역시 아주 긴장된 분위기였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조사자들은 사회단체의 요구에 따르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굴조사 결과 원흥이 마을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집터, 건물터, 토광묘·석곽묘 몇기, 고려·조선시대 건물터, 가마터, 그 외에 수혈이나 석렬 등이 나왔고, 2차 시굴조사와 발굴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발표가 끝난 다음에 한 시민이 질문을 하였다.

  "우리가 도시개발을 할 때 미래세대에게 가능한 한 풍부한 역사·문화 환경을 남겨주어야 하는데, 이는 유형문화재뿐만 아니라 마을의 노래, 이야기, 역사, 신앙 등 실제 사람들의 삶이 담겨있는 무형문화재 역시 중요합니다. 그런데 연구·조사된 것이 주로 유형문화재일 뿐 무형문화재에 대해서는 깊이있는 조사가 없는데, 이건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까?"

  "옳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저희가 한 것은 원흥사 터에 대한 시굴조사였기에 그것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았고, 지표조사보고서를 보면 무형문화재도 조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지표조사보고서를 봐도 마을주민 누구에게나 들을 수 있는 '큰 애기샴(샘)' 같은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 등 매우 형식적으로 진행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무성의하게 조사를 해도 되는 것인가요?"

  "그 조사가 94년쯤 이루어졌는데, 그 당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도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것까지 고려해서 조사하겠습니다."

  설명회를 통해서 조사자들과 대책위는 지속적인 추가 시굴조사와 발굴조사에 대해서 공감했기 때문에 토지공사에 이를 요구했고, 토지공사는 그렇게 하겠다고 그 자리에서 약속하였다. 이는 매우 획기적인 일인데, 이렇게 시민들의 힘으로 택지개발지역에서 시굴조사를 하게 된 것도 처음 있는 일이고 사회단체와 시민들을 상대로 한 설명회도 역시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10월 초, 심재한 박사의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자 대책위는 토지공사에 설명회를 열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첫번째 열려고 했던 설명회는 무산되었다. 사회단체를 대상으로 한 설명회라고 했는데, 토지공사에서 개발을 원하는 원흥이 주민들(주로 땅주인들)을 불러서, 자칫하다가는 시민들 사이에 갈등만 증폭시킬 수 있다고 보고 대책위가 퇴장했기 때문이다. 얼마 후에 토지공사는 사회단체를 상대로 한 설명회를 다시 열었다.

  먼저 심재한 박사와 최종권 교수의 설명이 있었다. 예상대로 그들은 폭 4미터 정도의 생태통로를 만들면 두꺼비를 살릴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가지고 나왔다.

  설명이 끝나자 시민들의 질문이 있었다.   

  "박사님이 개구리를 연구하는 학자이니까 당연히 자연을 소중히 아끼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박사님이 짜오신 안대로 방죽 뒤로 법원과 검찰청이 들어서도록 하는 것이 생태적인 것인가요? 아니면 방죽 뒤를 개발하지 않고 생태공원으로 만드는 것이 더 생태적인 것인가요?"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심재한 박사의 얼굴은 홍당무가 되었다.

  "아주 찔리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그러나 개발을 하기로 한 마당에 이 자리에서 답변할 말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자 시민들이 연달아 질문했다.

  "박사님도 잘 알다시피 두꺼비의 주 서식처가 산인데, 산과 저수지 사이에 아파트와 도로가 만들어지고, 거기에 생태통로를 만들어 두꺼비가 지나간다고 해도 그 끝은 산의 7, 8부 능선까지입니다. 그러면 그곳은 이미 산꼭대기인데, 과연 그런 곳에 두꺼비가 살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산 뒤쪽으로 넘어갈 수도 있으니까 괜찮습니다."

  "아니, 이미 구룡산 뒤쪽도 성화지구 택지개발로 여기와 똑같이 산이 7, 8부 능선까지 깎입니다. 모르셨습니까?"

  박사는 아무 말도 못했다. 토지공사로부터 그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참여한 시민들은 모두 황당한 기색이었는데, 두꺼비가 생존하기 위한 조건을 실제 조사하지 않고 책상 위에서 연구한 결과물이라는 것이 너무 분명한데다 용역 결과가 그가 주장해온 두꺼비 생존을 위한 서식환경과도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보통 두꺼비는 2킬로미터 정도의 범위 안에서 여름서식지와 산란지, 겨울 동면하는 장소를 오가며 사는 것이 특징"이라고 주장해왔고, 이날 설명회에서도 "계곡을 중심으로 산의 3, 4부 능선이 두꺼비가 사는 곳"이라고 했는데 왜 이런 연구결과가 나왔을까?

  박사의 설명을 납득할 수 없는 분노한 시민들이 연달아 항의했다.

  "박사님 말씀처럼 하고도 두꺼비가 살아있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어요."

  "박사님 안대로 방죽 주변 야산을 다 개발하고 생태통로를 만든 후, 두꺼비가 사라져버리는 결과를 초래한 책임은 토지공사에도 있지만, 박사님 역시 그 책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이렇게까지 비판의 목소리가 강할 것이라고 예상을 못했는지 애써 감정을 누르고 있었지만, 기분 나쁘고 억울하다는 표정이 역력하였다. 옆에 있던 공학교수는 한술 더 떠서 시민들에게 자신의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정말 불쾌합니다. 우리도 눈이 있는데, 이렇게 마주 보는 사람들의 표정, 행동 하나가 감정적으로 드러나는데, 우리가 무슨 죄가 있어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볼펜으로 책상을 탁탁거리는 것하며, 저렇게 한마디 할 때마다 수군대는 행동들(손가락으로 가리키며) … 정말 예의가 없는 행동들이고,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아마 다시는 이런 곳에 전문가들이 참여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우리 대학원생들도 같이 왔는데, 정말 이런 모습을 보여주어서 난감합니다."

  항상 전문가로서 권위를 누리면서 발언의 권리를 독점하다가 그러한 권리가 부정되는 것에 대한 충격이 매우 컸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미 설명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경험을 통해서 그들의 연구가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 피부로 느끼고 있었기에, 더욱 강력하게 그들의 태도를 비판하였고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전혀 인정하려 하지 않았지만, 설명회가 끝나고 난 다음에야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얼마 전 충청북도 도청과 토지공사에서는 건설교통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에 산남 3지구 택지개발 계획 심의를 요청했다.

  12월 5일 중앙도시계획위원회에서는 도와 토지공사가 요청한 개발계획에 대해 '심의 유보'를 결정하면서 몇가지 문제를 지적했다. 계획안대로라면 구룡산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밖에 없는데, 특히 녹지확보율이 16%정도로 낮음을 지적하고 표고 100미터 이상을 절대 보전할 것과 녹지확보를 최소 24% 수준으로 늘리라고 요구한 것이다. 또한 두꺼비 서식지 보존 대책이 미흡하므로 두꺼비 이동통로의 폭을 20-30미터로 넓힐 것을 주문하고 직선이 아닌 구룡산 계곡을 따라 자연스러운 길이 되게 할 것, 검찰청 쪽으로 생태통로를 추가할 것을 요구하였다. 물론 중앙도시계획위원회의 권고는 두꺼비의 생존을 보장하기에 충분한 것은 아니고 그래서 대책위는 생태공원을 만들기 위한 운동을 계속 해나가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어쨌든 중앙도시계획위원회의 권고는 심재한 박사가 도시계획 전문가들보다 생태적 지속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더 부족한 생태관련 전문가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지식의 민주성과 공공성

  이 글을 정리하면서 지역의 후배에게 초안을 보냈더니 그 날로 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어 보냈는데, 특히 다음과 같은 마지막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지식이라는 것이 어떻게 권력화되는가 …
사실, 원흥이 방죽에 관해서 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나들이를 하고,
그동안 경험을 공유하지 못했더라면,
토지공사는 심재한 박사의 이야기를 빌미로 공사를 강행했겠지요.
그런 일들이, 대부분 건설현장에서 일어날 것이라 생각하니,
참으로 암담하기까지 합니다.

 

  후배의 말처럼 이런 일들은 청주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새만금 개발'이나 '부안 핵폐기장' 문제에서 볼 수 있듯이 대형개발사업이 진행되는 어느 곳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다만 다른 곳에서는 그 실체가 잘 드러나지 않고, 원흥이에서는 드러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만들어져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원흥이 두꺼비 살리기 운동'이 진행된 과정을 평가해 보면, 여러가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일년여에 걸쳐서 시민들 다수가 참여하여 생태적 지속가능성과 생물학적 다양성을 보전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고, 두차례의 설명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지식권력에 대해 시민들이 아래로부터 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한 것도 의미있는 성과였다.

  청주에서 이러한 지역사회의 사회적·지적 성취가 가능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몇년 전 청주에서는 시 당국이 무심천에 하상 구조물을 설치하는 것을 반대해서 일년 이상 장기적인 싸움을 했었다. 그 싸움은 아주 비타협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충북사회발전연구소'를 중심으로 거의 매일 시청 앞에서 피케팅을 하였고, 포크레인을 동원해서 땅을 파헤치려고 할 때는 포크레인 밑으로 들어가서 저지하는 헌신적인 싸움을 벌여 승리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당시 청주시장이 선거에서 떨어졌는데, 그 때문에 개발세력들은 주요 환경현안에 대해서 막무가내로 밀어붙이지 못하고 사회단체와 시민들의 입장을 고려하도록 강제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 뒤에도 '문장대 용화온천 개발 저지운동', '불소화 반대운동' 등 개발세력에 타협하지 않고 시민들의 힘에 의거해서 싸우려고 했던 환경운동의 전통과 '생태교육연구소 터'처럼 생활 속의 환경운동을 계속적으로 만들어왔던 환경단체의 노력, 그리고 환경사안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측면까지 고려하면서 환경문제를 이끌려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제 환경운동은 인간해방, 사회해방, 자연과의 상생의 힘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러한 활동을 억압하고 방해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지식권력의 행태에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그 대처 방법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기준은 지식의 민주성과 공공성일 것이다. 대학이나 학회에 있는 사람들만 지식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풀뿌리 민중들이 지식생산의 주체로 서는 것이 지식의 민주화이다. 이번 두꺼비 살리기 운동은 지식의 민주성이 왜 중요한가를 증명해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시굴조사를 하였을 때 원흥이 마을 사람들은 거기에 대해서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이는 시굴조사지를 선정할 때 자신들과 논의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었다. 그러한 불만은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었는데, 유물이 출토되는 지역을 포함해서 주민들보다 더 마을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책위에서는 2차 시굴조사를 할 때에는 주민들이 요구하는 8곳을 조사할 것을 요구하였고, 중앙문화재 연구소는 이를 받아들였다. 또한 두꺼비의 존재와 생태를 알려준 것도 마을주민들이었다. 그러나 소위 전문가들은 그러한 풀뿌리 지식과 지혜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참된 지식의 민주화를 이루려면 주민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 속에서 형성된 지식을 믿고 표현할 수 있어야겠지만, 지식인들의 적극적인 지원 역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지식의 공공성 역시 중요하다. 생태적 지식은 사회 공공재로서 작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일부 사람들의 돈벌이나 이익을 위해서 사용된다면 그러한 지식은 진정한 의미의 생태적 지식이 될 수 없다. 지식의 공공성이야말로 앞으로 생태적인 지식을 형성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견지해야 할 중요한 원칙이 되어야 할 것이다.


  김백주 ― 청주 금천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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