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제74호 2004년 1-2월호    

 

  학교급식 - 시장의 논리를 넘어서

   천규석

 

  학교급식조례제정운동이 학부모단체들과 전교조, 농민단체와 시민단체들에 의해 거의 모든 광역자치단체마다 벌어지고 있다. 이미 조례제정이 끝난 곳도 있고, 제정중인 곳과 시작한 곳 등 진행의 차이는 있어도 이 운동을 하지 않는 지역은 한 군데도 없는 것 같다.

  학교급식조례제정의 의미는 크게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다음 세대를 책임질 아이들에게 보다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또하나는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쌀까지 포함해서 농축수산물의 완전한 수입개방 앞에서 무너져내리는 우리 농사와 소농들의 농촌공동체를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먼저 이런 조례제정운동을 하게 된 직접적 배경을 조금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현행의 학교급식에는 문제가 너무 많다. 첫째는 급식재료가 지나친 농약과 비료 과용, 유전자조작, 대형농기계 사용, 비닐하우스 설치 등의 상업적이고 지속불가능한 에너지고투입 관행농법에 의해 양산됨으로써 그 질이 형편없이 저질화되고 있다. 두번째는 이나마 어디서 어떻게 지어져 나온 것인지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다국적 수입 농축수산물이다. 세번째는 화학조미료, 식품첨가물 등이 지나치게 남용되는 무국적 조리법으로 학교급식의 식품오염과 영양불균형이 심각하다. 네번째는 이런 저질의 반생명적인 무국적 음식에 따른 아토피성 질환 등으로 아이들의 건강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다섯번째는 근본과 정체성 없는 먹거리에 따르는 아이들의 정서불안과 정체성의 혼란 문제다. 여섯번째는 납품업자들에 의한 급식재료의 속임수 문제가 다반사로 반복되고 있다. 젖소나 수입소고기를 국산한우로 둔갑시키는 것을 비롯하여 거의 모든 수입 농축수산물들을 국산으로 둔갑시킨다. 일곱번째는 공장식 대량조리와 집단급식에 따르는 비위생 문제와 그로 인한 집단 식중독 문제다. 여덟번째는 학교 당국과 재료 납품업자나 급식업자들의 사이에 얽힌 뇌물수수 등 비리 문제다. 아홉번째는 위와 같은 저질, 속임수, 비리 자체가 학생들에게 반인륜적이고 반교육적인 환경으로 작용한다는 문제 등이다.

  그런데 학교급식에 따른 위와 같은 문제들이 개선될 조짐은커녕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밥상 자체인 우리 농촌이 농축수산물의 전면 수입개방 앞에서 모두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의 학교급식 문제들이 시장개방으로 완전히 해체된 우리 농민, 농사, 농촌 문제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시민사회적 대응이 학교급식조례제정운동이다. 그래서 각 지역의 학교급식조례제정의 방향도 다음과 같이 크게 두가지로 압축되는 것 같다. 하나는 지역산 친환경농산물의 구입으로 급식재료의 질을 높임과 동시에 농산물 시장의 개방 앞에 내몰린 우리 농업도 살린다는 것이다. 또하나는 급식재료를 친환경농산물로 구입하는 데 따르는 급식비용의 증가분을 해당 지역의 지자체가 부담하도록 조례화하는 것이다.

  얼핏 보면 이것만으로도 지금의 질 낮은 학교급식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키고 무너지는 우리 농촌을 지키는 데 큰 몫을 할 것 같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학교급식조례라는 장치가 굳이 필요할 만큼 학교급식이 저질화되고 갖가지 속임수가 판을 치게 된 것이, 그리고 일만년 이상 계속된 우리 농촌공동체가 한순간에 무너져내린 원인이 학교급식재료에 친환경농산물을 사용하지 않고, 급식비용이 너무 낮기 때문만일까를 반문하면 곧 그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급식비를 대폭 올리고 그것으로 음식재료를 친환경농산물로 구입한다면 한시적이지만 학교급식은 상당히 개선될 것이다. 그것이 한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만으로는 우리의 모든 밥상을 안전하게 지켜줄 우리의 농촌공동체를 되살리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농촌공동체를 오염·파괴시키고 아이들의 학교급식뿐 아니라 우리의 밥상 전체를 오염과 불신으로 뒤엎은 주범은 무엇인가. 그것은 모두가 잘 알다시피 시장세계화와 무한경쟁이다.

  시장이 비료와 농약을 만들었고 대형농기계와 비닐을 만들어 판다. 이런 시장 상품들이 농민들을 헤어날 수 없는 채무자로 만들고 농촌공동체를 몰락시켰다. 시장의 가격경쟁과 물량경쟁이 소농들을 농촌공동체로부터 추방시키고 해체한 뒤 대농과 다국적기업 농축수산물을 몰고 들어온 것이다. 시장세계화는 우리 소농공동체와 그 농사는 물론 우리의 전통 지역시장과 골목시장까지 파국으로 내몬 것이다.

  세계시장 개방 이전의 우리 밥상은 흉풍에 따른 가격등락의 불안정은 어느 정도 있었지만, 지금과 같이 화학물질 남용에 따른 불안전과 속임수에 의한 불신은 이토록 깊지 않았다. 그런데 농산물의 유통은 여전히 시장에 맡겨둔 채 급식재료를 친환경농산물로 바꾼다고 죽어버린 밥상이 되살아나고 떠나버린 농민들이 되돌아올 수 있을까.

  시장은 지금의 관행 농산물들처럼 친환경농산물도 가격경쟁을 통해 값싸게 구매하여 값비싸게 팔기를 원한다. 그래서 친환경농산물도 값싼 저질화와 속임수의 시장경쟁에 이미 편입당했다. 시장경쟁과 그 개방의 확산이 원래 건강했던 우리 모두의 밥상을 오염·저질화시켰고 순환적인 우리의 토착농업과 농촌공동체를 초토화시킨 주범이다. 그런데 똑같은 시장을 통해 친환경농산물로 포장만 바꿔서 우리 먹거리의 안전성을 지키고 농민·농사를 다시 살리겠다면 그것은 자가당착이고 자기모순이 아닌가.

 

  학교급식 개선에도 학교-농촌 직거래가 대안이다

  그래서 나는 대구지역의 학교급식조례제정운동에는 학부모단체가 참여하는 학교직영, 농촌마을과 각 학교 간의 급식재료 직거래, 급식재료의 친환경농산물 사용이란 3대원칙을 꼭 반영할 것을 제안해두고 있다. 이 원칙을 적용한 학교급식조례를 제정하고 또 그것을 하나의 제도로 뿌리내리기에는 물론 수많은 문제들이 있을 것이다.

  그 중 가장 앞서는 문제는 그 많은 가짓수의 급식재료를 시장에서 구매하지 않고 어떻게 한 마을에서 모두 생산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더구나 요즘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음식이 밥과 된장·김치고, 가장 선호하는 음식이 돈까스와 햄버거 등의 육가공 식품인데, 이같은 아이들의 기호를 한 농촌마을이 어떻게 맞추어낼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물론 그런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직거래 농촌마을에서 생산 가능한 곡식과 채소, 과일 등에서부터 시작해서 꼭 필요한 품목이 있다면 마을에서 점진적으로, 예컨대 고기가 필요하면 가축들을 사육하게 하고 또 그것을 가공하게 하는 식으로 품목을 늘려가면 될 것이다.

  여기서 소비자들이 꼭 명심해 두어야 할 사실은 진정한 의미의 유기축산식품과 유기가공식품은 세계 어느 시장에도 현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두사육 산업축산 자체가 지속불가능한 반유기적 파괴행위다. 열사람 이상이 나눠 먹을 수 있는 곡물 에너지를 산업축산식품을 통해 한사람이 독식하는 육식행위 자체가 다른 생명에 대한 죄악이다. 그런데도 거기다 유기축산품까지 곁들인 건강하면서도 지속가능한 농사와 밥상을 한꺼번에 요구한다는 것은 나무에서 열매와 함께 생선도 따먹겠다는 실현 불가능한 몽상과 다르지 않다.

  모순이나 문제를 모두 구조의 잘못에 떠넘기려는 개인의 무책임함이 또 시장상업주의에 그 탓을 돌리겠지만 사실은 아이들의 잘못된 식습관도 전적으로 개개 어른들의 잘못이다. 그것이 누구 탓이든 아이들에게 잘못 길들여진 식습관이라면 그것을 바르게 고쳐가는 것이야말로 참교육이 아닐까. 그래도 그 요구가 현실이고 꼭 필요하다면 마을 농민들이 생산할 때까지 상대적으로, 아니면 느낌으로라도 좀 낫겠다고 생각되는 현재의 직거래단체에서 취급하는 육류나 가공식품을 구입하면 될 것이다.

  그 다음 문제는, 그 많은 급식품목들을 누가 어떻게 취합해서 학교까지 납품할 것인가 하는 유통문제다. 사실 이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어떤 지역의 조례에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도와 시 단위의 광역자치체와 농민단체, 시민단체가 공동출자하되 운영은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학교급식지원센터'의 설립을 명문화시키기도 했다. 또 어떤 이들은 군·시의 기초단체 단위의 '학교급식물류센터' 설립이나 현재의 생협과 유사한 학교급식을 위한 새로운 물류조직의 창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 운용에 필요한 재정갹출 문제와 함께 이질적인 민·관이 조화로운 합의를 도출하기에는 너무 많은 문제가 있어 현실성이 거의 없다.

  그보다도 이런 새로운 기구 창설은 생산농민과 도시학생·학부모들이 직접 만나 신뢰를 쌓고 더 나아가 하나의 새로운 삶의 공동체를 지향하고자 하는 직거래운동의 이념에도 크게 어긋난다. 말이 부드러워 '학교급식지원센터'나 '학교급식물류생협'이지, 만일 그것이 설립되면 그것 자체가 직거래 마을과 급식재료 선택 및 물류·재정 등을 관장하는 또하나의 막강한 권력과 기득권이 될 것이다. 시장을 극복하는 대안으로서의 새로운 기구가 다시 농민 위에 군림하는 또다른 시장권력이 될 것이다. 새로운 기구가 생기면 생길수록 복잡해지고 전문가란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불투명과 속임수가 많아진다. 단순해야 투명하고, 투명해야 속임수가 발붙이기 어렵다.

  이런 문제는 농축수산물의 생산과 가공뿐만 아니라 그 유통까지도 그 농촌공동체에 맡기면 오히려 쉽게 풀릴 수 있을 것이다. 자기 마을에서 생산하지 못하지만 당장 꼭 필요한 급식재료는 마을에서 자체 생산할 때까지 다른 곳에서 구입하는 유통도 그 농촌마을 공동체에 맡기면 된다. 초기에는 어려움이 있을지 몰라도 농민들도 스스로 조직화하고 또 얼마든지 배워서 잘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 밥상이 오염·저질화로 불신을 받고, 이토록 농촌공동체가 처참하게 파괴된 원인이 바로 농민에게는 부가가치가 전혀 없는 식품원료 생산만 맡기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가공은 가공식품업체가, 유통은 시장의 상인이 모두 빼앗아갔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농사와 먹거리에 관련한 모든 것은 이제 본래의 주인이었던 농민에게 돌려줄 때다. 우리가 농민을 못 믿고 우리 농촌공동체를 어찌 살리겠는가. 정 못 믿겠다면 못 믿는 사람 자신이 농촌에 돌아가 그 모든 일을 스스로 하면 된다. 요즘 대학출신 청년실업자가 얼마나 많은가. 이들이 농촌에 돌아가 농사지으며 이 일을 만들어가면 골치아픈 청년실업 문제도 얼마든지 해결될 것 아닌가.

  이렇게 말해도 여전히 농민들을 못 미더워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 스스로 참여하지 않고 세상에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급식재료의 직거래만 하란 것이 아니라 도시 학부모와 학생과 직거래하는 농촌마을이 하나의 삶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라고 하는 것이다. 쌀까지 개방되어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오늘의 우리 농민들은, 농촌에서 농사짓고도 큰 걱정 없이 먹고살게 해주는 직거래 도시 식구들이 수시로 마을을 방문해서 격려도 해주고, 농사일도 도와준다면 굳이 친환경농산물을 요구하지 않아도 자기 먹을 것을 농사지을 때처럼 저농약 또는 유기농산물로 생산해줄 것이다. 자기 생계를 책임져주는 도시 식구들, 특히 직거래를 통해 이미 낯익은 눈망울이 똘망똘망한 학생들의 밥상에다 사람 못 먹을 오염된 식재료를 올려놓을 농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시장에서든 어디에서든 좋은 급식재료만 구입해서 학생들의 급식질만 향상시키면 되었지, 왜 우리 농업과 농민, 농촌문제를 학교급식개선과 함께 끌고 들어오느냐고 할 수도 있다. 실지로 '학교급식 조례안 대구시민 토론회' 때 그런 의견을 내놓은 사람이 있었다. 내 개인적으로는 같은 소리를 녹음기처럼 거듭 반복하다 보니 지겨울 지경이지만, 다시 또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자치·민주의 기본, 소농두레

  먹을거리의 중요성에 대해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먹을거리는 생활필수품 중에서도 제일의 생필품이기 때문에 먼저 그 수급이 안정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안정된 수급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생명과 관계된 것이므로 그 질이 안전해야 한다. 맛있다고, 영양가가 높다고, 기름지다고 다 안전하고 좋은 먹거리가 아니다. 다같이 쌀을 주식으로 하는 민족이면서도 우리보다 쌀 소비량이 훨씬 적고 따라서 식생활이 우리보다 한발 더 기름진 서구식화한 일본에서는 지금 아이들의 아토피성 질환으로 난리를 치르고 있다. 쌀 소비의 격감과 함께 그 난리는 우리 땅에도 이미 건너왔고, 식품시장의 완전개방으로 그 난리는 정도를 더해갈 것이다.

  먹거리는 육체적 생존과 건강만 담보해주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정서와 정체성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우리의 말이나 고향이 우리의 정서와 영혼의 집인 것처럼 먹거리도 우리의 육체적 건강과 함께 인격과 자기정체성을 규정해주는 중요한 삶의 조건이다.

  잘 살려면 잘 먹어야 한다. 그러나 잘 먹는다는 것은 영양가나 기름기가 높은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고 사랑과 정성, 그리고 믿음이 들어간 음식을 뜻한다. 가장 안전하게 잘 먹는 음식은 내 텃밭에서 손수 가꾼 음식재료로 자신이나 자신과 가까운 혈육인 어머니가 만든 음식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사랑, 정성, 믿음이 들어가지 않은 대형집단급식을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만, 이미 올 때까지 와버린 학교급식제도를 되돌려보낼 수도 없다.

  기왕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학교급식이라면, 앞에서 말한 가장 안전한 어머니 밥상과 가장 유사한 급식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내 텃밭은 아니지만 내 학교와 가장 가까운 농촌지역에서, 내가 지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이 지은 농산물을 급식재료로 하여, 그 운영과 조리에 학부모가 참여하는 급식이라면 집에서 만드는 어머니 밥상 자체는 아닐지 몰라도 그와 가장 유사한 밥상이 아니겠는가.

  급식재료의 질도 그렇지만, 그 안정적 수급 측면에서도, 국내시장도 믿기 어려운데 어찌 얼굴도 국적도 생판 모르는 다국적기업의 세계시장을 믿고 우리의 미래이자 희망인 아이들의 밥상을 맡길 수 있겠는가.

  지구 기후의 변동, 인구의 증가, 산업화와 세계화와 정보화로 인한 소비와 낭비의 폭증, 고가 에너지시대와 에너지위기 등으로 식량위기는 반드시 온다. 설사 식량생산의 한계는 첨단기술로 한동안 유예할 수 있을지라도 유통독점에 따른 유통위기는 언제 올지 모른다. 중국산 쌀값이 우리쌀값보다 설사 5분의 1로 싸다고 해도, 중국의 폭발적인 경제성장과 그에 따라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인건비로 5년 안에 현재의 우리쌀값을 능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보장해줄 것인가. 지금 자동차, 핸드폰 팔아 돈 좀 벌 수 있다고 WTO, FTA 등을 넙죽 받아먹다가는 정말로 큰코 다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무엇이건 독점과 예속은 반민주다. 분산과 균형이 민주의 기본이다. 그런데 지금 이 땅에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 권력과 경제가 더 중앙독점화되고 있다. 소수정파에서 나온 대통령이라서 그런지, 스스로 약자라는 피해의식에 젖어있는 그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도 온 나라의 백성들이 휘둘리고 있는 곳이 이 땅이다. 같은 평수의 아파트가 7억원 하는 서울에 사는 사람과 1억원도 안되는 시골에 사는 사람을 같은 땅, 같은 나라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중앙독점적인 권력은 자본의 중앙독점과 함께 모든 기술을 중앙독점적으로 거대화한다. 가난했지만 아주까리기름의 심지불로 불 밝히며 자립하고 자유로웠던 우리는, 중앙독점적 거대자본의 거대기술인 전기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전기의 노예, 기술의 노예가 된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남은 먹거리의 자급마저 다국적기업의 세계시장에 넘겨주고 나면 우리는 무엇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갈 것인가. 먹거리에 대한 자립·자치권마저 포기하고 우리 목숨이 다국적기업 식품에 예속된다면, 그것은 그 기업과 자본이 생산해주는 사료로 사육되는 가축과 다를 것이 없다. 실지로 획일적인 세계시장체제 속의 현대인은 먹고살기 위한 피고용노동을 하고, 그 돈으로 이미 만들어진 인스턴트 식품들을 사먹고 사는 한에서 그 기업이 기르는 가축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그 사료가 기름지다 보니 가축은 가축이되 옛날에 논밭에서 사역되던 가축과는 달리 오늘날의 산업적 비육우나 비육돈같이 살진 가축인 것이다.

  이제 와서 모두가 농사꾼으로 돌아가 살기에는 영 글러버린 세상이다. 그러나 지금보다는 좀더 많은 젊은이들을 농촌에 돌아가게 해서 소농공동체를 만들고 우리 먹거리의 의존을 그들에게 분산시켜야 한다. 소농공동체야말로 인간의 생존권을 다국적 세계시장 권력의 독재로부터 해방시키고 자립·자치 민주주의를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다. 소농공동체만이 소농 자신뿐 아니라 고추 한포기 안 심고도 잘 먹고 잘 사는 도시사람들도 다국적기업의 살진 가축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모든 지역으로 번지고 있는 학교급식조례제정운동이 단순한 음식재료의 질 향상 운동에 그치지 않고, 자치민주주의의 뿌리인 소농공동체 부활운동의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지금 수준의 유기농 직거래운동으로 소농공동체와 그 농사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전망은 결코 밝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지금 전개되고 있는 학교급식조례제정운동과 같은 보다 큰 규모의 공동체운동을 위한 일종의 예행연습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예행연습이 있었기에 학교급식의 직거래운동과 같은 새로운 전망이 가능했던 것이다. 만일 내게 한평생 동안 걸어온 농민·농사 경험과 오랜 세월의 농산물 직거래 경험이 없었다면 학교급식재료의 직거래를 통한 새로운 지역공동체운동을 전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모든 직거래단체들의 축적된 경험과 지혜와 기득권은 학교급식 직거래를 원하는 농촌마을에 되돌릴 때가 된 것 같다. 그리하여 그것이 학교와 농촌 간의 공동체운동에 그치지 않고 그 학부모와 농촌 간의 공동체, 더 나아가 모든 도시지역과 각 지역농촌 간의 지역 도농 공동체운동으로 확산되고 우리 소농을 되살리는 커다란 기폭제가 되기를 바라고 기원한다.


  천규석 ― 대구한살림 이사. 학교급식조례제정 대구운동본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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