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제70호 2003년 5-6월호    

 

  질문과 답변

                                                                                                             특집1―미국과 세계평화

 

박병상(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대표)  아까 오다(小田) 선생님께서 한국의 자생적인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씀해 주셨는데, 감사한 생각도 듭니다만, 그 민주주의가 얼마나 안정성이 있겠는가 하는 데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동아시아 공동의 집' 이야기도 나오고 했습니다만, 이것도 참 공감을 하면서도 역시 주변정세 등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현실성이 있겠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오다 마코토  민주주의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문제는 그 안정성을 저해하는 요인, 특히 미국을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가령 일본과 미국과의 관계는 '평화조약'이 아니라 군사조약인 '안보조약'에 의해 맺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강요한 조약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과 미국은 군사조약을 맺고 있습니다. 두 나라가 미국과 맺은 군사조약은 미국이 제 뜻대로 행동할 수 있는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제가 미국유학을 한 뒤 왜 반미, 반전운동을 하기 시작했느냐 하면, 군사조약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진정한 평화 관계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일어난 미군 장갑차 사건을 보더라도, 이런 사건은 오키나와에서는 흔히 볼 수가 있습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이런 유사한 사건이 앞으로도 계속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군사조약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바른 관계를 맺자면 바른 조약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각자가 속해 있는 사회 속에서 각자가 안고 있는 모순과 갈등을 넘어서려는 노력을 통해서 민주화는 가능한 것이며, 그런 노력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날 때에 세계평화는 이룰 수 있습니다.

이수열(경북대 학생)  반전평화 운동을 하더라도 제대로 된 언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과를 이룰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평화운동과 언론의 관계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정현백  작년에 촛불시위가 두달 만에 참여인원이 크게 줄고 사그라들었는데요. 솔직히 저희는 어느정도 예측을 했어요. 두달이면 분명히 대중적인 열기는 식을 것이다. 지금은 촛불시위에 2,000명도 모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촛불시위 사례에서도 드러났지만, '조중동' 같은 보수언론이 대단히 강력한 건 사실이라고 해도, 최근 새롭게 등장한 인터넷신문 같은 대안적인 언론의 역할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덕분에 이라크 파병안을 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한 날, 파병반대 여론비율이 55%까지 올라갔고, 전쟁반대는 80%까지 올라간 거라고 봅니다. 반공주의의 영향을 오랫동안 받아온 남한사회에서 이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인데, 저는 이것이 대안적인 언론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언론의 민주화를 위한 노력도 해야 되는데, 한가지 명심해야 될 것은 언론의 민주화는 언론 자체만 개과천선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국민의 수준이 높아져야 되는데, 국민들이 과연 민주적인 언론을 만들어낼 수준이 되느냐가 중요하고, 그렇게 되기 위한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더글러스 러미스  전쟁 때 신문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것은 아주 위험천만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특별한 기술이나 전략이 필요합니다. 보통 신문을 보면 첫 페이지에 큰 제목이 있고, 제일 중요한 것이 첫번째 헤드라인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무엇이 중요한지는 여러분 스스로가 결정해야 됩니다. 가령 첫 페이지가 아닌 신문의 마지막 페이지, 제일 하단의 작은 칼럼 속에 들어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일 때도 있습니다.

  또하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나간 사실을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아프간 침략 이후 미국의 신문들은 탈레반 정권이 오사마 빈 라덴을 부시 정부에 넘겨주는 것을 거절했다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죠. 전쟁이 시작되기 전까지 신문에서는, 탈레반 정권이 계속해서 파키스탄 정부에 대사를 보내, "빈 라덴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면 그를 넘겨주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국제적인 관례일 뿐만 아니라, 증거만 있으면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부시 정부는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증거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전쟁이 시작되고 나서부터 모든 신문들은 독자들이 이 사실을 잊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탈레반 정부가 빈 라덴을 넘겨주는 것을 거절했다"라고만 보도함으로써 사실을 왜곡했습니다. 또하나의 예는, 신문에서 날마다 보도하기를 이라크가 대규모 살상무기를 가지고 있어서 폭격을 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전쟁이 시작되면서 부시 정부에게 대규모 살상무기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고, 그러자 이것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다른 것이 보도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도 역시 우리가 신문을 똑바로 읽어야 되는 하는 이유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 스스로가 신문을 제대로 읽고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채형복(영남대 교수)  염무웅 선생님께서 북핵 문제와 관련해, 한반도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다자적인 틀'이 필요하다고 쓰신 칼럼을 봤습니다만, 과연 그것이 미국의 힘을 억지하는 효과가 있을까요?

염무웅  다자적인 보장의 길이 가장 바람직하다기보다는 현재 그것밖에 유효한 길이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사실 1971년 대통령선거 때, 당시 대통령후보였던 김대중씨가 제기한 것이 바로 "한반도 평화를 4대국(미국, 일본, 중국, 당시 소련)이 보장하자"는 '4대국 보장론'이었고, 지난 '국민의 정부' 시기 김대중 정부의 일관된 '햇볕정책'의 바탕에 깔려있는 것도 그러한 다자적 보장을 모색하자는 것이 아니었는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볼 때, 가령 북한이 미국과의 양자회담만을 끝까지 고집하다가 요즘 중국을 포함하는 3자회담을 받아들였습니다만, 저로서는 북한이 왜 그렇게 양자회담을 고집하는지 납득이 잘 안됩니다. 미국이 물론 세계최대의 패권적 강자로서 조약이라든가, 선언이라든가 가시적인 형식으로 북한체제의 안정을 보장해준다면 좋겠지만, 설사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약속한 것을 언제든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는 것이 미국 아닙니까. 콜럼버스 이후 500년 동안 미국이 일관되게 이어온 것이 바로 그런 '약속파기의 역사'입니다. 그런데도 미국하고 북한하고 조약을 맺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순진하고 뭔가 착각이 아닌가. 착각이라면 좀 심하지만 하여간, 북한으로서는 미국이 설사 지키지 않을 때 안 지킬망정 문서라도 하나 받아놓으면 나중에 들이밀 근거가 있으니 그것도 필요할지 모릅니다만.

  어쨌든 저로서는 중국이나 일본, 러시아, 이런 나라들이 같이 남북의 화해를 지켜보고, 최소한 전쟁이 한반도에서 일어나지 않는 데 협력할 수 있다면 그 정도만이라도 우리로서는 지금 당장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지역적 평화체제가 아시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세계 여러 곳에서 생겨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구적 연방제'라든가, 그런 식으로 이름을 붙여본 것인데요. 그것이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미국 단극체제, 제국체제를 대신할 수 있다면 좋겠다 하는 것입니다.

최성각(작가, 풀꽃평화연구소 소장)  러미스 선생님께 먼저 여쭙겠습니다. 과거에 미 해병대원으로서 근무하셨던 오키나와에 다시 돌아가 평화운동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아는데요. 한국에도 미군들이 많이 와있습니다만, 왜 한국에는 선생님 같은 분이 없으신지 안타깝습니다. 특별히 오키나와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으신지, 그리고 어떤 활동들을 하고 계신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고 오다 선생님께 여쭙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미국만큼이나 일본에 대한 불안도 큽니다. 특히 이시하라 신타로 같은 작가들을 비롯한 일본 지식인들의 우경화 문제를 저희는 매우 우려스럽게 보고 있는데요. 일본사회의 우경화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더글러스 러미스  오키나와에 살게 된 것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은 아니고, 그곳이 내 아내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웃음) 오키나와에서 하고 있는 활동에 대해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오키나와에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데, 이것은 참 끔찍한 일입니다. 저와 동료들은 몇달 전 60여쪽 분량의 영어로 씌어진 팜플렛을 제작해 이것을 오키나와에 와있는 미군병사들에게 나누어준 적이 있습니다.

  팜플렛의 맨 하단에는 미국에 전화를 걸 수 있는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는데, 그 전화는 미군병사들에게 군인으로서의 의무 ― 미군 병사들은 대부분 돈 때문에 군대에 간 것입니다 ― 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안내전화입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영어로 된 팜플렛을 만들어 이것을 돌림으로써, 한국에서도 '또다른 더글러스'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기는 대학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제 영어를 잘 알아들으시는 것 같은데요. 설사 영어를 잘 못한다 하더라도, 부족한 영어만으로도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다른 예를 들자면,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유엔 무기사찰단이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를 조사하러 파견되었는데요. 그때 오키나와에 있던 몇몇의 내 친구들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오키나와에도 지금 미군기지가 있는데, 여기에도 틀림없이 대량살상무기가 있을 것이므로 오키나와에도 감시단을 파견해달라, 여기에도 만약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면 제거해달라, 하고 주장하는 편지였습니다. 이런 일들은 여러분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다 마코토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서 질문하셨는데요. 이시하라 신타로 이야기가 나왔는데, 여러가지 기회로 제가 잘 아는 사람입니다만, 제가 알기로 그는 일본의 수상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그다지 현실성은 없는 꿈입니다.

  저는 이시하라 같은 이는 그렇게 무서울 게 없다고 봅니다. 사실 더 무서운 것은 따로 있습니다. 새로운 정치가, 새로운 세대인 30-40대들입니다. 그들은 전쟁을 겪지 않은 이들입니다. 말하자면 전쟁의 위험성, 공포, 불합리성, 추악함 같은 것을 전혀 모르면서 그저 '정의를 위한 전쟁'은 정당하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기 시작했고, 그런 정책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그룹들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 더 무섭습니다.

  일본에 가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동경 시내에서는 우익 그룹들이 트럭 위에 올라서서 반공선전을 공공연하게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일본 우익들의 힘은 결코 무서운 게 아닙니다. 이시하라 신타로가 결코 무섭지 않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중간에 있는 세력, 지금 식으로 말하면 신보수주의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예전에는 우익적인, 반공적인 소리를 공공연하게 말할 수 없었는데, 조금씩 조금씩 그것을 용납하게 되면서 사회의 축이 조금씩 조금씩 우측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런 현상이 지금 일본에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신보수주의 30-40대들, 상당수는 유학을 하고 돌아온, 머리도 좋고 겉보기도 그럴듯한 스마트한 사람들이 신보수주의가 되어서 우측으로 넘어가는 게 무서운 것입니다.

  저에게 하신 질문과 직접 관계가 없지만, 시민과 시민과의 연대, 시민과 시민이 구축하는 새로운 평화체제를 위해서 저희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17년 전에 독일에 인연이 있어 2년 동안 살았습니다. 그때 독일에서 살면서 왜 독일과 일본이 닮은 역사를 걸었을까, 작가로서 아주 깊은 사색에 잠겼습니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일·독 평화포럼'이라는 것입니다. 이 이름으로 지금 하고 있는 일 가운데 하나가, 독일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일본에 있는 사회복지 시설에서 받아들여 사회봉사를 하도록 한 것입니다. 일본과 독일의 외무성과 교섭해서 실시한 지 3년째가 됩니다.

  일본과 독일은 같은 역사를 걸으면서, 해방 후 독일은 평화와 민주주의를 주창하면서 사회복지국가를 만들었습니다. 또 일본은 평화헌법을 가질 만큼의 평화주의를 갖게 됐습니다. 그런 두 나라의 역사와 토대 위에서 새로운 젊은이들간의 평화의 연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것을 제안하게 된 것이지요.

황준호(인터넷신문 프레시안 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되기 전 미국에 대해 '노'라고 말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당선된 이후 실제로 한번도 미국에 대해 '노'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이라크전 파병도 서둘러 결정했고요. 한국 정부의 대미외교와 관련해서 러미스 선생님이 조언을 하신다면.

더글러스 러미스  저는 실제로 한국의 정치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노무현 정권의 외교정책에 대해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만, 대신 미국의 정책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한반도의 문제가 지금 미국 손에 넘겨져 있는데 이것이 가장 위험한 문제입니다. 부시 정부는 자신들이 북한을 선제공격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동북아시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부시 정부에 대해 어떠한 형태로든 '노'라고 답할 수 있는 자세입니다. 특히 부시 정부가 북한을 침략하는 것에 대해 단호하게 '노'라고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채형복  국가간의 조약이나 외교적인 노력 못지않게, 결국은 경제적인 힘 없이는 평화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봅니다. 경제와 평화의 관계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정현백  아주 중요한 지적을 하셨다고 봅니다. 사실 저희가 파병 반대운동을 하면서도 가장 고민했던 것인데요. 파병안에 찬성했던 사람들은 '한 . 미 동맹의 유지'니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니 운운했지만, 사실 저희가 전해들은 바로는 정부의 경제관료들이 가장 강력하게 파병안을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경제문제라는 것이지요.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이라크 전쟁은 석유만을 위한 싸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유로화와 달러화의 싸움입니다. 후세인은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모든 석유대금 결제를 유로화로 전환했습니다. 북한도 작년부터 유로화로 결제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후복구 사업이 있기 때문에 한국의 경제관료들이 그 이익을 챙기자고 강력하게 파병안을 주장했던 거죠.

  이것은 무슨 얘깁니까. 한국이 이 '따라잡기 경제성장'이라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환경파괴도 피할 수 없고 평화도 가져올 수 없다는 근본적인 사실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평화와 경제를 어떻게 연결하느냐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대안사회', '대안경제'에 관해 얘기해야 됩니다. 대안경제의 틀이 뭔가를 구체적으로 찾아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선도적으로 하고 있는 반세계화 운동가들, 가령 마리아 미스 같은 사람들의 반세계화와 대안경제 이야기는 아직도 추상적이고 이상적입니다. 이제 분야별로 학자들이 구체적으로 연대해서 데이터와 실증적인 자료를 놓고 대안경제를 모색해야 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하는 작업이 우리에게 필요한데, 그 길이 너무나 멀고 요원해서 막막할 때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 길을 찾아내는 것이 결국은 평화운동과 다른 운동이 함께해야 되는 지점이라고 봅니다. 궁극적으로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논리와 평화운동이 연결되어야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변홍철(녹색평론 편집장)  노무현 정부가 '국익'을 위해 파병해야 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결국 '경제발전'이라고 하는 국익의 논리를 말한 것이라고 봅니다. 미국 중심의 세계화체제 속에서 한 나라가 경제발전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는 살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평화를 위한 자주적인 길을 찾는 것은 불가능할 텐데요. 그런 의미에서 "경제발전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러미스 선생님이 제기하신 '대항발전(counter-development)'의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와 관련해서 저희에게 조언을 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더글러스 러미스  '대항발전'에 대해 물으셨는데요. 이 모든 문제, 예를 들면 가난한 '남'과 지나치게 부유한 '북'의 갈등, 강력한 힘을 가진 국가권력의 문제, 관료제와 군사력의 문제, 여기서 초래되는 모든 환경문제 … 이 모든 문제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유토피아적인 계획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런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모든 문제를 일으킨 지금까지의 '경제발전'이라고 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 동안, 수세기에 걸쳐 이루어진 경제발전의 결과 이런 모든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대항발전'이라고 하는 저의 생각도, 앞으로 수세기에 걸쳐 현실화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단숨에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대항발전' 개념은 제가 새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이미 세계의 많은 NGO들이 여러 곳에서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공정무역거래 운동'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난한 나라에게 특히 중요한데, 국가간의 경계를 허물고 문화적, 경제적 차이를 극복해서 우리는 이런 일을 해야 합니다. 즉 가장 싼 물건을 가장 저렴한 값에 수입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 아니라, 가난한 나라에서 그들의 생활에 필요한 만큼의 '정당한' 돈을 주고 물건을 수입하자는 운동입니다. 주류의 '경제발전' 논리에 저항할 수 있는, 또다른 의미에서 '새로운 경제'를 만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김종철(사회자)  서면으로 들어온 질문 가운데 하나를 읽겠습니다. "어리석은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도대체 왜 미국은 세계제국이 되려 하는 걸까요?" 러미스 선생님이 답변해 주시겠습니까?

더글러스 러미스  저도 모르겠습니다. (웃음) 그러나, 이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하긴 어렵지만, 미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미합중국은 초기에 두가지 생각이 양립했습니다. 미국 헌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미국이 어떤 나라로 가야 할지를 사람들이 모여 논의했는데, 그중의 일부 사람들은 '작은 나라'를 선호하면서 농업에 기초를 둔 지역정부와 지역경제를 주장했습니다. 군대도 없는 그런 작은 정부를 선호한 사람들이 있었던 거지요. 또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정부를 선호했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과 같이 미국이 제국으로 뻗어나가게 되는 확장주의의 가장 중요한 충동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처음부터 확장주의적 요소가 미국 헌법에 있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사실 미국 헌법이라는 것은 동부에 있던 13개 주의 대표들이 모여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모든 미국 사람을 대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후 미국이 서쪽으로 끝까지 가서 서부개척이 완전히 끝나고 난 다음에는 ― 물론 서부개척의 과정도 아메리카 원주민을 정복하고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아리조나와 뉴멕시코와 캘리포니아 지역을 약탈하는 과정이었지만 ― 거기에 바다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어서 스페인과 전쟁을 일으켜 푸에르토리코와 필리핀을 얻었습니다. 이처럼 미국은 처음부터 제국적인 야심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김종철  끝까지 경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로서는 오늘 이 모임이 큰 소득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미진했던 여러 생각들이 좀 정리가 되는 것 같고, 또 내가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서면으로 제출된 질문 중에 제일 많았던 것도 "그러면 도대체 이 상황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하는 것인데요. 저도 사실은 그랬습니다. 오늘 여러 선생님들과의 토론을 통해서 그 질문에 대한 암시나 힌트를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믿습니다. 어쨌든 상황은 절망적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부정적인 자기암시를 하고 있어서는 절대로 희망이 없겠죠. 그래도 뭔가 될 것이다, 하는 긍정적인 자기암시를 부단히 스스로에게 하면서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발표하신 선생님들이 맺음말을 한말씀씩 해주시지요. 오늘 가장 많이 나온 질문,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데 대한 답도 좋겠고요.

오다 마코토  일본에서 모임을 열어도 똑같은 질문이 제일 많습니다. 엊그제 미국에서도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아마 유럽도 그럴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자기 주변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큰 사상이나 이데올로기를 거론할 게 아니라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또 자기자신이 발 딛고 있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부터 시작해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아까 독일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과 일본 젊은이들의 교류를 예로 들었습니다.

  끝으로 한마디 보태겠습니다. 우리처럼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끼리 자주 만나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 우리보다 훨씬 자주 만나고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못 만나고 있지 않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만난 것도 오늘이 처음이지 않습니까. 이건 좀 이상하죠. 그러니까 평화가 자꾸 늦어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더글러스 러미스  여러분은 대학생이니만큼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이때 공부라는 것은 단순히 수업에 들어가서 노트필기를 한다거나 숙제를 한다거나 하는 그런 차원의 공부가 아닙니다. 자유롭게, 지금 어떤 상황이 전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지, 무엇이 중요한지를 여러분 스스로 탐구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시간과 기회와 충분한 자유가 있으므로, 이것을 낭비하지 말고 공부해야 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기회가 없으므로 반드시 지금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는, 우리는 서로 다른 관심과, 서로 다른 개성과, 서로 다른 피부색을 갖고 있습니다. 서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다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한가지 알맞은 것은 없습니다. 무엇인가 각자 삶의 방식에 맞는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선례가 없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미국 정부를 봅시다. 저들은 이전의 역사에는 한번도 없었던 일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마찬가지로 선례가 없는 어떤 일을 해야 합니다. 신문에다가 편지를 쓴다거나, 대통령에게 전화를 한다거나, 아니면 팜플렛을 만들어 배포한다거나, 자기 나름대로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화적인 저항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염무웅  시작할 때 김종철 선생이 저를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으로서 이 자리에 불렀다고 하셨는데, 직함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저는 문학공부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어떤 이름으로 부르건 문학이 점점 사람들 관심사에서 멀어지고 있는 건 사실인 거 같아요. 제가 소속돼 있는 독문과뿐 아니라 다른 과도 마찬가지겠지만,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해보면 젊은 시절에 마땅히 읽었어야 할 작품들을 거의 읽지 않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그러니 무슨 작품을 예로 들어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예를 들지 못하니 이야기가 진행이 안됩니다. 그런 어려움을 가끔이 아니라 매일같이 경험합니다. 이렇게 문학이라는 것이 우리 삶으로부터 멀어져도 되는 건지. 이건 단지 문학을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이처럼 반(反)문학적이고 문학이 주변화되는 상황이 어쩌면 우리시대의 황폐화, 불모성, 결국은 전쟁으로 갈 수밖에 없는 현실과 일맥상통하는 게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각자 자기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는 앞의 두 선생님 말씀의 취지에 공감하면서, 이 시대에 문학이 어떤 존재인지를 저 나름대로 좀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도 틈틈이 시를 읽고 문학을 접하시기를 당부드립니다. 문학공부가 단순히 문학공부가 아니라, 곧 세계평화를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씀드리면서 끝내겠습니다.

정현백  아까도 촛불시위 얘기를 했는데요. 지난 가을에 전국적으로 젊은 세대들이 촛불시위를 할 때 저는 참 희망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이에 대학이 얼마나 탈정치화되어 있었습니까. 그러나 두달도 가지 않아서, 여러분도 그 논쟁을 인터넷 등으로 보셨겠지만, '앙마'라는 친구가 "촛불시위를 주도하는 범대위가 마음에 안 든다, 갈라지겠다" 해서 갈라졌어요. 그 친구를 만나 도대체 왜 그러느냐 하고 물어봤더니, 뭐 문화적인 이유는 좀 있는데 우리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도저히 합리적으로 납득이 안되는 이유를 대더라구요. 다시 얘기하면, 지금 젊은 세대들이 전반적으로 탈정치화되어 있으면서 상당히 문화적인 코드로 움직이는데, 지난 가을에 보였던 젊은이들의 반전의식이나 평화운동이라는 것이 대단히 '휘발성'이 강하고 변덕스러웠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대학이 어떻게 이 심각한 탈정치화를 벗어나느냐 하는 것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한총련 합법화와 관련한 토론회에서나《한총련 이야기》라는 책을 낼 때에도 제가 언급했지만, 우리 기성세대가 정말 무서워해야 할 것은 일부 과격하고 정치의식화된 학생이 아니라, 대학 캠퍼스에 흐르는 이 탈정치화의 분위기다, 사실은 기성세대가 이것을 염려해야 된다고 얘기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현실성 있는 정치화'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총련의 일부가 했던 '비현실적인 정치화'가 가져온 이 오랜 기간의 후유증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제 우리 현실이 요구하는 정치화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런 운동이 평화운동으로 연결되어 대학에서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부탁드립니다.

  다음으로 평화운동과 관련해서, 저는 대학에서 '평화학'이라는 과목이 개설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미 독일 같은 나라들은 중 . 고등학교 과정에 평화학 과목이 있지만, 이제 우리도 대학에서부터라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나서서 평화학을 개설하기 위한 운동, 커리큘럼 개설운동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외에도 캠퍼스에서 여러분이 평화운동을 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저희 단체가 요즘 이라크 난민돕기 모금운동을 하고 있는데, 모금이 정말 안되고 있거든요. 이런 운동은 한편으로는 휴머니즘의 차원에서 돕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국제적인 연대 움직임을 보여야지 정말 우리가 어려울 때, 가령 북핵으로 한반도 전쟁위험이 커질 때, 국제 평화세력의 지원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이런 구체적인 일들도 성심껏 해달라고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인데 오늘 대구경북 여성단체연합 회장도 저기 와있습니다. 가능하면 지역에서 이런 여성단체들을 많이 지원해 주십시오. 후원금도 내주시고, 우리 학생들은 자원봉사도 해주시고요. 물론 남학생들의 자원봉사도 적극 환영합니다.

김종철  고맙습니다. 부시라는 이상한 사람 때문에 오늘 우리가 여기 모여 장시간 중요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조그만 선물을 드리고 싶은데, 제가 좋아하는 아메리카 인디언 이야기입니다.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에게 이야기합니다.
  내 마음속에는 두마리 늑대가 늘 싸우고 있다. 한 늑대는 사랑과 친절과 평화의 늑대다. 또 한 늑대는 탐욕과 이기심과 증오와 두려움의 늑대다.
  그러니까 어린 손자가 묻습니다.
   "할아버지, 그럼 어느 늑대가 이길 건데요?"
  할아버지 대답이
  "내가 매일 먹이를 주고 키우는 늑대가 이길 것이다."

  우리가 상황이, 객관적인 상황이 어둡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결국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으니까. 우리자신 속에 있는 사랑과 친절과 평화의 늑대를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특집1 ― 미국과 세계평화

  아메리카와 지금 어떻게 사귈 것인가 … 오다 마코토
  '팍스 아메리카나'의 도전 … 더글러스 러미스 
  지구적 제국체제의 해체를 꿈꾸며 … 염무웅
  여성과 '평화 만들기'… 정현백


  평화포럼 <미국과 세계평화>
  영남대인문과학연구소, 2003년 5월9일 

  오다 마코토 - 일본작가, 평화운동가
  더글러스 러미스 - 정치사상가, 평화운동가
  염무웅 - 문학평론가,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영남대 교수
  정현백 -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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