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제70호 2003년 5-6월호    

 

  삼보일배 ― 망상을 깨는 기도의 힘

   변홍철

 

  새만금 갯벌과 온 세상의 생명·평화를 위해

  "문규현 신부님, 수경 스님, 김경일 교무님, 이희운 목사님, 힘 내세요!"  4백여명의 천안 시민들이 간절한 마음을 모아, 단상에 오른 네분 성직자들께 큰 소리로 외친다. 네분 성직자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그 자리에서 시민들에게 큰절로 화답한다. 누가 누구에게 절을 한다는 말인가. 시민들은 순간 당황하고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멈칫했다가, 그저 뜨거운 박수로 다시 인사를 올릴 수밖에 없다.

  5월 3일, 땅거미 지는 천안역 광장, 천안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삼보일배 수행으로 여기까지 온 성직자들과 도보순례단을 환영하고, "새만금 방조제 공사 즉각 중단"을 바라는 염원을 다시금 모으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지난 3월 28일, 아직도 찬 바닷바람이 매섭던 부안의 해창갯벌을 출발한 지 37일째가 되는 날이다. "새만금 갯벌과 온 세상의 생명 . 평화를 염원하며" 그동안 이 성직자들은 하루 5-7km, 세걸음에 한번씩 온몸을 땅에 던지는, 필설로 그리기 어려운 고행으로 200여km를 온 것이다. 전북 부안, 김제, 군산을 거쳐 충남 서천, 보령, 홍성, 예산, 아산을 지나온 그 길 위에 이분들이 뿌린 땀방울이 얼마나 될 것이며, 육신의 고통을 참아내느라 안으로 삼킨 눈물이 얼마나 될 것인가.

  잠시후 천안역 광장 한켠에 걸린 대형 스크린에 삼보일배 37일간 고난의 기록이 영상으로 비쳐진다. 이라크 땅에서 제국주의 군대가 첨단무기로 사람과 땅을 살육하고 유린하는 동안, 그리고 새만금 갯벌에서 하루라도 빨리 방조제 공사를 마무리지어 갯벌의 숨통을 막아버리겠다고 밤낮으로 트럭들이 돌을 실어나르는 동안, 그리고 이 땅 곳곳에서 국가와 자본이 합세해 산을 자르고 터널을 뚫으며 생명의 터전을 짓밟는 동안, 이 성직자들은 그 모든 생명파괴의 만행이 하나의 뿌리, 곧 우리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참회의 고행'을 해온 것이다.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새만금 방조제 공사를 즉각 중단시키기 위한 가장 극단의 '투쟁'이면서도, 이미 첫걸음부터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어리석고 죄 많은 인간의 참회와 구원을 위한 가장 간절한 '기도'였던 것이다. 또 그것은 정부를 비롯한 '개발과 파괴'의 세력을 향한 엄중한 '꾸짖음'이자, 그것을 넘어 우리 모두에게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는 진리를, "우리 모두가 한 뿌리"임을 지금 우리가 발딛고 있는 이땅에서 깨달아야 한다고 안타깝게 일러주는 '가르침'인 것이다.

  그 기도와 가르침의 길을 걷고 절하며 오는 동안, 날씨는 20도를 웃도는 초여름의 날씨로 바뀌었고, 수경 스님은 제대로 걸음을 떼기도 어려울 만큼 무릎이 상했다. 다른 성직자들도 체력이 급격히 쇠약해졌고, 외모는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 이제 한낮의 아스팔트는 한여름을 방불케 할 만큼 뜨거운 열기를 뿜어대고, 서울에 가까워질수록 자동차들이 내뿜는 매연 또한 지나온 구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남은 100여km의 길은, 따라서 지나온 길에 비해 몇배나 힘겨운 길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자벌레와 갯지렁이의 길

  5월 4일 일요일 아침, 전날 밤에 천막을 치고 묵었던 천안시의회 근처에서 38일째 삼보일배 수행이 시작되었다. 이날부터 성직자들은 수행의 강도를 더욱 높여 '묵언(默言)'에 들어가기로 했다. 물론 지금까지도 이분들은 언론과의 인터뷰 등 공식적인 발언은 일절 삼가왔지만, 이날부터는 사적인 대화까지도 완전히 침묵 속에 묻어버리고 더욱 매섭게 스스로를 채찍질하기로 한 것이다.

  세걸음에 절 한번, 세걸음에 절 한번 … 지리산의 이원규 시인은 이분들의 수행을 '해창갯벌의 갯지렁이', '지리산의 자벌레'의 몸짓에 비유한 적이 있다. "자벌레의 길/갯지렁이의 길이 아니라면/이 세상의 모든 길은/더이상 길이 아니다"라고 시인은 노래했던가. 스스로를 이토록 낮추어 대지의 소리를 듣고, 상처받은 대지를 어루만지듯이 가는 저분들의 고행을 오늘도 다만 뒤를 따르며 지켜보면서,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직립보행'을 통해 인간이 비로소 인간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면, 이제 우리가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 모든 생명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 다시한번 '진화'하기 위해서는 저 성직자들의 몸짓, '자벌레와 갯지렁이'의 길을 마땅히 따라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어쩌면 저분들의 '삼보일배'는 우리가 자연의 일부로 거듭나, 비로소 생명다운 생명으로 살아가기 위한 '통과 제의'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오전 10시쯤이 되자 도보순례단은 150명 정도로 불어났다. 아이들 손을 잡고 멀리서 찾아온 분들, 각 종교의 신자들, 학생들이 무리를 이루었다. 사람의 수는 늘어나도 조용하기만 하다. 세걸음에 한번 절을 하는 성직자들 뒤에서, 그분들이 절을 할 때마다 허리를 깊이 숙여 따라 절하며 걸어가는 고요한 '몸짓'만이, 설명할 수 없는 기운을 이루어 퍼져나간다. 그 기운 때문일까. 왕복 2차선 도로의 한쪽을 차지하고, 나머지 한쪽으로만 차들을 교대로 통과시키느라 차들이 길게 줄을 잇고 정체가 되어도 항의하는 운전자들은 보기 어렵다. 지난 30여일 동안 간혹 욕설을 내뱉고 지나가는 난폭한 운전자들이 있기는 했지만, 실무자들은 오히려 그런 이들에게 더욱 깊이 머리숙여 양해를 구했다. 그런 사람들보다는, 속도를 늦추어 차창을 내리고 "힘 내세요!"라며 소리치는 이들이 더 많다. 이날도 이런 격려의 외침을 여러차례 들을 수 있었다.

  천안 인근의 주민들이 놀란 눈을 하고 나와서 삼보일배 수행을 지켜보고 있다. 실무지원단이 나누어 주는 유인물을 읽고 설명을 들으며, 이렇게 하며 부안서 예까지 왔느냐며 놀라는 이들, 고생이 많다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격려하는 이들, 생수병이며 격려금이며를 실무자들 손에 쥐어주고는 끝내 이름도 안 밝히고 달아나는 이들을 이날 하룻동안에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천안시 성환읍 부근 어느 공사장 인부들이 일손을 놓고, 어눌하게 삼보일배의 취지를 설명하는 내 얘기를 귀기울이고 듣더니, 깊이 고개를 끄덕이며 "기도하시는 바가 꼭 이뤄지기를 우리도 빌겠다"며 정중하게 격려인사를 한다. 뙤약볕 노동으로 거칠어진 손과 얼굴의 인부들이 건네는 이토록 품위있는 인사! 우리 민초들끼리는 이토록 단순하게 와닿는 생명과 평화의 메시지가 어째서 권력과 자본을 쥔 자들, 그들에 빌붙어 사는 소위 '전문가들'의 귀에는 아직도 들리지 않는 것인가.
 

  어리석은 자의 분노  

  "저는 차라리 그네들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진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도보순례단에 이미 여러차례 참여했다는 한 여성은, 새만금 방조제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보고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 엄청난 규모의 기획을 감히 할 수 있는 인간의 불경스러운 상상력이 두렵다고도 했다. 그리고, 그것을 두고 '세계 최대'니 '인간의 위대한 업적'이니 하며 떠벌이는 개발주의자들의 무지와 탐욕이 차라리 불쌍하다고 했다. 그것이 어찌 새만금만의 문제이겠나. 이라크의 양민들을 학살한 부시와 제국주의자들,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전세계 풀뿌리 민중의 삶과 자연을 거덜내고 있는 야만 세력의 무지와 탐욕이 결코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삼보일배 수행은 그런 무지로 눈먼 이들의 구원을 위한 기도이자, 그들의 죄를 대신 값기 위한 '대속(代贖)'의 기도인가.

  그러나 어리석게도 나는, 성직자들께서 그토록 간절히 떨쳐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삼독(三毒) 가운데 '성냄'의 격랑에 또다시 휩싸이고 만다. 어떻게 '저들'은 이 목숨을 건 ― 이것은 결단코 수사(修辭)가 아니다 ― 고행의 대열이 여기까지 왔건만, 자신들의 과오를 뉘우칠 줄 모르는가. 왜 '저들'은 아직까지도 아스팔트 위에 엎드린 이 성직자들 앞으로 달려와 참회의 눈물을 흘리지 않는가. 왜,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하늘의 뜻'을 위해 성직자들은 자신의 생명을 던져야 한다는 말인가. 예수를 체포하러 온 대제관의 종의 귀를 칼로 잘라버렸던 시몬 베드로의 '분노'가 오늘은 어리석은 내 몫이 되는구나, 한숨을 내쉰다.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40일째 삼보일배 소식이 이메일로 들어왔다. 40일째인 5월 6일, 새만금사업의 주무부처인 농림부 김영진 장관이 찾아왔다는 소식이 보인다. 김 장관은 "오늘 아침 국무회의에서 새만금 이야기가 나왔는데, 노무현 대통령도 성직자들의 삼보일배에 대해 마음 아파하며 건강에 대해 걱정하시더라"면서, "그러나 농지가 필요한 상황이니만큼 새만금 갯벌을 간척해서 친환경적으로 개발할 테니 삼보일배 고행을 멈추시라"고 말했단다. 또다시 안타까움과 분노가 치민다. 이것은 지난 2월 노 대통령이 '농지조성'이라는 애초의 목적이 유효성을 상실했다고 한 말과도 모순될 뿐더러, '친환경적 개발' 운운하는 저들의 궁색하고 상투적인 어법을 참회의 마음 없이 되풀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친환경적'으로 '경제에 도움이 되는' 골프장이라도 만들겠다는 것인가. 아무튼 김 장관은 딴소리 할 것 없이 지금 당장 새만금사업에서 농림부와 농업기반공사가 손을 떼고 방조제 공사를 즉시 중단하겠다고, 새만금의 온 생명 앞에 머리 조아려 고해야 한다.)
 

  '하나의 믿음' 과 우정

  앞서 가는 성직자들의 땀방울이 아스팔트를 적시고 있다. 20여분 수행 후에 10분 이상 쉬어야 할 만큼, 날씨와 도로사정은 힘겹고, 이분들의 고통은 심해졌다. 그러나 그런 극심한 고통에도 성직자들의 표정은 놀랍도록 온화하고 평화롭다. 게다가 성직자들을 감싸고 있는 다정하고 우애로운 분위기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언제나 뭉클하게 한다. 쓸데없는 말이지만, 이분들 사이에 종교의 차이라는 것은 이미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은 가장 낮은 곳으로 몸을 던진 사람들끼리 통하는 진한 '우정'일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가령 휴식시간에 문규현 신부가, 누워있는 수경 스님의 배를 베고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드러누워 쉬는 모습이나, 하루 일정이 끝난 뒤 서로를 다정하게 끌어안으며 등을 다독거리는 것을 볼 때, 함께 목숨을 걸고 싸우며 기도하는 이들의 거룩한 형제애를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어쩌면 이분들의 고행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 중 가장 큰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희운 목사가 삼보일도 ― 개신교의 전통상 이희운 목사는 절을 하는 대신, "세걸음에 한번 무릎을 꿇고 기도를 바친다"는 의미에서 '삼보일도'라고 이름을 붙였다 ― 를 위해 들고가는 십자가에는 "창조의 하나님, 부활의 예수님, 능력의 성령님, 새만금 생명을 구원하소서. 2003년 3월 28일. 문규현, 수경, 경일, 이희운"이라고 적혀 있다. 종교를 뛰어넘은 '하나의 믿음'과 우정의 서약인 셈이다.
 

  '바다도시안'에 대하여

  점심식사 후 성직자들은 천막 아래에 누워 쉬고 있다. 여기저기서 새만금 문제와 관련된 토론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김석철 교수의 '바다도시안'도 잠시 거론된다. "그런 '대안'을 내놓으면 일단 방조제 공사를 막을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인데, 나는 설령 이 단계에서 방조제 공사가 중단되어도 우리가 이런 식으로 살면 갯벌은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고 봐요. 어민들의 삶, 지역주민들의 삶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방조제 공사를 우리가 여기서 막는다 해도, 결국은 우리 어민들, 주민들이 서서히 바다와 갯벌을 죽이고 말 거예요. 지금과 같은 어업 방식, 강과 갯벌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이런 삶의 방식으로는 결국 다 오염을 시켜버리고 말 거라는 거지요. 그러니 그런 '바다도시안' 같은 걸 정부에 내밀어서, 정부에게 '명분'을 주고 설득해서, 일단은 방조제 공사를 중지하고 보자는 생각은 현실성이 없어요. 우리 생각이 '근본적'이라서 현실성이 없는 게 아니라, 그런 지식인들의 생각이 오히려 현실성이 없어요. 가장 중요하고 '현실적'인 것은 우리가 우리 삶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거 아닐까요?" 부안 주민 신형록씨의 '현실론'이다.

  "그동안 '죽어있던' 황해를 이번 참에 살리고 새로운 황해문화권을 만들자, 교역과 물류의 중심지로 만들자, 뭐 그런 취지로 '바다도시안'을 지지하는 지식인들도 있는 모양인데, 아니, 도대체 황해가 언제 죽어있었다는 거예요? 인간이 이윤을 위해 사용하지 못한다고 바다가 죽어있었다니, 이런 생각이야말로 '바다도시안'이 인간중심의 또다른 거대 개발계획이라는 걸 증명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 '큰 그림'만을 좋아하는 지식인들의 눈높이에서는 수억조의 바다 . 갯벌 생명체들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게 안 보인다는 얘기 아니겠어요?" 또다른 이가 이렇게 일갈한다.

  어찌되었건, 지금 이 시점에서 새만금과 관련된 '명분'이든 '대안'이든, 무언가를 모색하는 사람들이라면, 우선은 이 삼보일배의 현장을 찾아와 저 성직자들의 고행을 지켜보고, 함께 허리를 굽혀 기도하는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갯지렁이와 자벌레'의 자리로 몸을 숙이고,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참회와 겸손의 마음이 우선되어야, 그로부터 참으로 현실성 있는 지혜도 만날 수 있지 않겠는가.

  다른 쪽에서는 '새만금 갯벌 생명평화연대' 워킹그룹(전문 연구자들의 그룹)에서 최근 '새만금사업 경제성 평가'에 동참했던 최미희 박사(생태경제연구소 소장)가, 사람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현재 우리의 평가 보고서를 회람하며 마지막 검토를 하고 있어요. 검토가 끝나는 대로 워킹그룹 전체의 뜻을 모아 어떤 방식으로 이것을 발표하고 활용할지 결정하게 될 텐데요. 요컨대, 지금 즉시 방조제 공사를 중단하는 것이 공사를 강행하는 것보다, '경제성' 면에서도 월등히 유리하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입니다."
 

  새만금의 망상을 허물어뜨리는 힘

  오후 일정이 다시 시작되었다. "막지만 않는다면" 이 길로 개성, 평양을 거쳐 신의주까지 곧장 갈 수 있다는 1번 국도, 멀리 평택과 수원 쪽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인다.

  (방금 받은 5월 7일자 소식에 따르면 앞으로의 일정은 다음과 같다. 경기도 송탄(5월 10일), 진위면(11일), 오산시(12일), 수원시(15일), 의왕시(19일), 안양시(20일), 과천시(22일), 서울 사당동(23일), 여의도(25일), 광화문(5월 31일). 여러 사정으로 일정이 다소 변경될 수도 있겠지만, 이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5월 21일 서울 구간 진입때부터는 일반 시민들도 성직자들과 함께 삼보일배 기도수행에 동참할 수 있다고 한다. 진행소식과 사진 등은 '새만금 갯벌 생명평화연대' 홈페이지 www.3bo1bae.or.kr에서 볼 수 있으며, 참가문의와 신청도 여기에서 할 수 있다.)

  시속 100km 내외로 자동차들이 내달리는 아스팔트 국도 위에서 시속 1km의 속도로 서서히 북상하는 이 느리고 고요한 몸짓은, 일회성 '이벤트'도 '퍼포먼스'도 '시위'도 아니다. 그러나, 이 삼보일배가 단순한 '시위' 행위가 아니라 할지라도, 정부와 기득권 세력, 개발주의자들에게 지금 이것만큼 두려운 '도전'은 없을 것이다. 이 대열이 서울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그 '압박'은 강도를 더해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도 비폭력적인 도전이며 압박이다.

  풀이 자라는 움직임을 우리는 볼 수가 없다. 그러나 그렇게 느린 속도로 풀은 콘크리트의 작은 틈이라도 뚫고나와 마침내 제 꽃을 피우고 다시 씨를 퍼뜨린다. 풀이 자라는 소리를 우리는 들을 수 없다. 그러나 풀은 그렇게 조용하게 거대한 제방에도 균열을 내고 마침내 그것을 깨뜨리며 풀뿌리의 생명과 평화를 증명할 것이다. 그것은 총으로도 돈으로도 영원히 막을 수 없는 '생명의 폭발'이다.

  이제 이 소리없는 생명의 폭발음, 하늘의 목소리에 청와대와 농림부, 농업기반공사의 책임자들은 겸허히 귀를 기울일 때다. 그리고 하루속히 '방조제 공사 즉각 중단' 결정으로 화답해야 한다. 그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삼보일배 기도수행과 도보순례를 통해, 전세계를 휘몰아치고 있는 이 '악마적인 과정'을 중단시킬 수 있는 힘이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모두가 깊이 깨닫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문규현 신부님, 수경 스님, 김경일 교무님, 이희운 목사님의 건강을 다시 한번 간절히 기원하며 …


  변홍철 - 녹색평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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