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제65호 2002년 7-8월호    

 

  공예 및 생활기술에 대하여

   후쿠이 테쓰야

 

  공예-생활기술에 관한 우리의 관심은 실제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생활인’의 시점에서 자본제 바깥으로 나가기 위한 ‘초출적 투쟁’과 ‘내재적 투쟁’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고찰, 연구, 실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기서 실천하려고 하는 것은 공예와 그 생활기술을 통해서 하나의 어소시에이션(연합체)의 모습을 탐구하는 것, 즉 저(低)엔트로피 및 인간성을 소외시키지 않는 노동방식으로 미적인 일용생활품을 생산하는 생산자=‘대항 공예가들’에 의한, 인터넷 및 LETS(지역통화)를 기초로 한 어소시에이션을 도입할 수 있는 하나의 구체적인 가능성에 대한 추구이다.

  구체적인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뒤에서 가능한 한 쉽게 이해되도록 설명하기로 하고, 우선 그 상징적 존재의 한사람인 위대한 인물 ― 모한다스 간디, 애칭 ‘마하트마(위대한 혼)’ 간디 ― 의 활동을 들어서 그 공예가로서의 측면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대항 공예가 ― 간디

  간디는 현재로서는 보이콧이라는 ‘내재적 투쟁’에 의해서 대영제국으로부터의 독립, 자치를 쟁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자본주의에 맞선 대항운동가로서 또하나의 측면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수공업자 및 농민들을 조직하여, 생산-소비협동조합=어소시에이션을 조직화해서, 그 운동의 초기부터 시도한 것은 자본주의에 맞서는 그의 대항운동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이 운동은 ‘초출적’ 측면의 싹이라고 할 수 있다.

  대영제국의 인도에 대한 식민지 지배는 맑스도 말한 바와 같이 증기력에 의한 기계화에 성공한 영국의 섬유산업=자본제 기업에 의해 수행되었다. 그 결과 인도의 직물업 전통은 본래 기교적으로도 극히 정치(精緻)하면서, 그 중심지 다카 시(현재의 동부 벵갈)는 번영의 극치를 누리고 있었지만, 자본제 기업의 침입으로 급속도로 파괴되고 말았다. 대영제국이 인도를 완전히 지배하기 위해서 유럽시장에서 인도의 목면제품을 쫓아내고, 인도를 완전한 단작(單作)의 원료공급 기지의 지위로 격하하면서, 증기기관에 의한 기계제 섬유공업의 압도적인 생산력을 통해서 극히 값싼 섬유제품을 눈사태처럼 인도로 역수출함으로써 고도의 기술을 가진 인도의 가내수공업적인 섬유산업을 해체시켜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도의 민중뿐만 아니라 기계화로 인해 ‘노동의 기쁨을 빼앗겨버린’ 영국의 하층 노동자계급(그들은 노동소외의 문제, 세계 최초의 공해문제에도 시달렸다)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일이었지만, 간디는 이와 같은 현상의 해결책을 기계제로 인한 노동소외의 문제를 예리하게 고찰했던 러스킨의 사상에서 구했다.

  “스스로의 손으로 스스로의 생활을 만들어내는” 세계 ― 이것이 러스킨이 제창한 ‘손으로 하는 일’이 중심이 된 유토피아이다. 자본의 축적이 발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영제국과 같은 공업화를 수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던 당시의 인도에서, 이와 같은 사상은 경제적 노예상태에서 벗어나고, 인도가 다시 국가로서 자립하기 위해서라는 소극적인 의미를 갖기도 했지만, 간디 자신에게 있어서는 훨씬더 중요한 ‘적극적’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기계제 공업이 가져온 노동의 소외화라는 현상을 ― 그로 인한 인간성의 황폐화라는 근대적 문제를 ― ‘손으로 하는 일’을 통해서 회복하려는 매우 절실한 소망을 실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늘 차르카(물레)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간디에게 ‘공예가’라는 면이 있었다고 말해도 빗나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 기록에 의하면, 원탁회의에 출석하기 위해서 런던의 슬럼가에 숙소를 정했던 간디는 하루 수면시간이 2시간도 안되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반드시 매일 160야드(약 146미터)의 실잣는 일과를 빠트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 자신의 자서전에도, 특별히 ‘카디(손으로 짠 천)의 탄생’이라는 절(節)이 있고, 거기에 다음과 같이 씌어있다.

 

  물레는 내 방에서 붕붕 즐거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붕붕 하는 소리가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는 데 적지않은 역할을 했다. 이렇게 말해도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나로서는 육체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정신적인 효과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인색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간디에 관해 꽤 정신주의에 경도된 ‘도덕적 인간’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그의 이러한 발언은 그와 같은 이미지와는 다른, 나날의 격렬한 정치활동 가운데서 소박하게 ‘손으로 하는 일의 기쁨’을 찾는 인간적인 일면을 부각시켜준다.

  물론 21세기의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입장에서 간디가 행한 독립운동을 검토하면 여러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운동의 정신적 지주가《바가바드기타》라는 힌두의 성전을 정점으로 한 극히 ‘도덕적’인 것이었다는 점, 대영제국의 식민지라는 상태로부터 이탈하기 위해서 민족주의에 호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 상대적으로 자본제의 폐해를 해결하기 위해서 생산-소비협동조합인 코뮨 건설에 계속 종사하였지만, 결국은 근본적으로 “자본제의 바깥으로 나가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점 등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까지 차르카(물레)를 손에서 놓지 않고 스스로 뽑은 실로 짠 천을 몸에 걸치고, 코뮨에서 생산된 조악(粗惡)한 식품이나 야크의 젖을 양식으로 해서, ‘인도의 독립’이라는 20세기 아시아에서 가장 가열한 대항운동을 성공시킨 그의 위대함은 오늘날에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NAM의 관점에서 간디를 평가한다면, 자본제에 의존하지 않고도 사람들이 생활할 수 있는 ‘초출적’(그것이 아무리 소박한 것이라 하더라도) 코뮨을 지향하여 그것을 어느정도 실현시켰다는 점은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어떤 의미에서 ‘혁명의 미학적 접근’을 완수한 간디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불가사의하게 사람들의 마음에 호소하는 바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그를 상징적인 ‘대항 공예가’로서, 깊이있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째서 지금 공예-생활기술인가   

  오늘날 고도로 발달한 정보=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엇 때문에 특별히 ‘공예’와 같은 아날로그에 속한 것을 말하는가 하고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공예의 의의를 a. 환경문제를 고려하면서 생활필수품을 생산한다는 점, b. 고도 자본주의 상황에서 발생하는 인간성의 소외문제, c. 자원낭비를 막기 위해서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일용생활품을 생산해야 할 필요성 ― 생활 자체를 ‘미적’인 것으로 만드는 일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a. 오늘의 환경문제가 이미 한계점에 이르렀다는 인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이제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물자가 넉넉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고, 고도 경제성장 시대에 들어와서도 아직 환경문제가 심각하게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생산력의 끝없는 상승으로 모든 사람들이 풍요롭게 된다는 ‘신화’를 무비판적으로 신봉하는 게 가능하였다. 그러나, 이제 매우 심각한 환경문제에 직면하게 된 현대의 우리들에게는 그러한 신화를 계속하여 경솔하게 신봉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최근 10년 남짓 동안 공통한 인식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b. ‘기계제 생산으로 인한 노동의 소외’도 러스킨이 살았던 시대 이후 줄곧 문제가 되어왔지만 오늘날까지 한번도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못했다. 고도 경제성장 시대에는 그 축제적 분위기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물질적 풍요로 들떠 있었던 우리들은 “문제를 직시하는” 일에서 도피해왔을 뿐이다. 거품경제 붕괴 후, 다른 아시아 여러 나라에 비해본다면, 그렇게 극적으로 물질적 생활수준이 곤두박질하지는 않았음에도(실은 거품경제 붕괴 후에도 일본에서는 물질적 생활수준이 거의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경제학자들에 의해 지적되어왔다) 많은 일본 사람들이 ‘무력감과 황폐감’에 싸이게 된 사실에서 이 점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오늘의 위기적 상황에서는 사회의 ‘물질적 생산규모’를 축소하지 않으면, 지금 악화되고 있음이 틀림없는 환경문제 때문에, 우리 인류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가 위기상황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래도’ 우리는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우리의 산업을 ‘환경친화적’인 것으로 방향전환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하게도, 우리가 사는 일본에서는 이러한 ‘환경친화적’인 산업의 존재방식이 이미 에도(江戶)시대에 확립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공예에 관해 말한다면, 농업폐기물인 짚을 태운 재가 있다. 그것을 ‘회옥(灰屋)’이라고 불리는 업자가 농가에서 비료로 사용하는 양만큼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구입한다. 그것을 물에 섞으면 알칼리 성분의 잿물이 떠오르는데, 그 잿물을 염색하는 장인들에게 염료의 ‘정착제’로서 판매한다. 그 잿물을 떠낸 후의 회(灰)는 더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그것이 도예에 쓰이는 최고의 유약(釉藥)의 원료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농업과 공예는 밀접한 관계에 있었고, 그 사이에는 에너지 효율성으로 보더라도 매우 뛰어나고,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순환형 사회의 ‘지혜’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지혜를 부활시키는 것이 오늘날 ‘환경친화형 산업’을 창출해내는 데 극히 중요한 일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사회의 물질적 생산규모를 축소하면서 인간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찰나적 ‘소비형’ 사회에서 크게 방향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에, a와 b의 문제를 동시에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유기농 농가와 공예가나 장인들로 이루어진 자유롭고 평등한 어소시에이션=생산-소비협동조합의 설립을 통한, 소재(素材)와 직접 대화하지 않으면 안되는 ‘손으로 하는 일’의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얼른 보아서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생각될지 모르지만, 나와 같이 도예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는 사람들이 ‘손으로 하는 일’에 대한 굶주림을 ― 특히 나이든 사람들일수록 ― 느끼고 있다는 것을 나날이 실감하고 있다. 실제로 오늘날 어떤 도예교실도 대성황을 누리고 있지 않은 데가 없다. 내가 일하는 곳에도 작품 구입보다도 오히려 도예교실에 관한 문의가 훨씬 많은데, 사람들의 ‘손으로 하는 일’에 대한 욕구=노동소외의 해소욕구가 날이 갈수록 커져가는 게 아닌가 하고 한사람의 공예가로서 나는 느끼고 있다.

  10년 아니 5년 전이었다면, 이러한 ‘손으로 하는 일’에 종사하는 생산자들로 이루어진 자급적 어소시에이션은 정보가 닫혀있기 쉬운 전통적인 촌락공동체의 ‘음습한’ 분위기를 띠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인터넷이라는, 쿠텐베르그의 활판인쇄술 발명 이래 정보 인프라에서 일어난 패러다임의 변화 덕분에 “자립적인 개인들인 독립생산자들”로 이루어진 “열린 어소시에이션”으로서 건설될 수 있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c에 관해서 설명하면, 이것은 큰 의미에서는 a에 포함되어 있는 것인데, 특히 공예의 ‘미적 측면’을 강조한 것이다.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정된 자원, 에너지를 가능한 한 아껴 써야 한다는 것은 필수적이지만, 손으로 이루어지는 공예품들은 극히 낮은 엔트로피의 생산과정을 거친다. 거기에 덧붙여, 천연소재와 대화를 계속하면서 생산된 개개의 작품에는 만든 사람의 ‘생각’과 ‘미의식’이 반영되어, 극히 개성적이고 아름다운 것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처럼 하나하나에 ‘만든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공예품’은 자연히 사람들이 소중하게 다루게 된다.

  이렇게 해서 자원 낭비가 결코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생활과 노동 자체를 ‘미적’인 것이 되게 한다”는 것은 정신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 것임이 틀림없다.

  지금까지 말해온 바와 같이, 어째서 공예인가라는 물음은《NAM의 원리》에서 말하는 ‘초출적 투쟁’에 속하는 접근방법이지만(뒤에서 말하겠지만, 공예가와 유기농가들로 이루어진 코뮨을 조직하는 것만으로는 ‘상대적으로’ 자본의 바깥으로 나가는 데 불과하며, ‘절대적으로’ 자본의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자기증식을 하지 않는 화폐”인 LETS를 통한 경제권의 확립이 필요불가결하게 된다), 동시에 지금 여기에서 자본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쉼없는 자본의 운동을 조금이라도 억제하기 위한 ‘내재적 투쟁’의 하나로서 ‘생활기술’을 탐구하는 것이 불가결하다. 그것은 구체적으로는 “자본주의적 상품인 물건을 사지 않는” 일을 “어떻게 ‘미적으로’ 또 ‘즐겁게’ 행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고찰하는 것”과 “일상생활에서 자본과 에너지의 낭비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는 것” 두가지 점에 집약된다.

  전자에 관련해서, 구체적인 이미지를 생각하는 데 매우 유용한 암시를 주고 있는 인물이 있다. 그것은 ‘농문협(農文協)출판’을 통해서 ‘부엌의 구조개혁’에 관한 연재물을 출판하고 있는 우오쓰카 진노스케(魚柄仁之助)라는 인물이다.

  그가 제안하고 있는 일련의 ‘요리-생활기술’은 매우 독특해서, 물건을 헛되이 하지 않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위한 창조적 암시를 풍부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자신 지금까지 절약해온 이유를 “자유롭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자본제 경제가 가져온 인간성의 소외로부터 탈출하여 참되게 풍요로운 삶을 획득하고자 하는 NAM의 이념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가 제시하는 방법의 뛰어남은 “재미있지 않으면, 즐겁지 않으면, 계속하지 못한다!”라는 원칙에 철저함으로써 진부한 정신주의에 빠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와세다대학 이공학부에서 개발되어 ‘키친 사이언스 클럽’을 통해서 판매되고 있는 ‘박사 솥’의 활용이다. 이 솥은 최신의 열역학에 기초해서 개발된 매우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는데, 처음 몇분 동안만 불 위에 올려놓았다가 다음에는 불에서 내려두면 저절로 맛있는 음식이 되는 매우 우수한 물건이다.

  후자에 관련해서는, 환경문제의 중요한 원인의 하나로서 오늘날 우리들이 “자본주의적 중앙집권적 에너지 시스템”에 완전히 의존해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시스템에 의해 생산된 에너지를 사지 않는다=사용하지 않는다=철저하게 절약한다”라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 점에서도 우오쓰카(魚柄) 씨는 매우 독특한 ‘생활술’을 풍부하게 제안하고 있다. 그러한 그가 제공하고 있는 생활술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그와 동시에 대체 에너지원으로서 각 가정에서 이용 가능한 분산형 에너지(태양, 풍력, 바이오매스 등)의 연구와,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실천을 시도함으로써 자본제에 의존하지 않는 생활을 실현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위와 같은 ‘공예’와 ‘생활기술’을 이어주는 선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디까지나 실제 삶을 영위하는 ‘생활인’ 자신이다. ‘공예’라는 것은 일용생활품을 미적 의식을 가지고 만들어내는 행위이며, ‘생활기술’이라는 것은 “자본제에 의존하지 않고, 또 자원 ·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의미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자유롭고 평등한 독립생산자=공예가와 유기농가들에 의한 생산협동조합”이 실현되고, 사람들이 세련된 ‘생활술’을 고안해내어, 저(低)엔트로피의 미적인 생활이 실현된다면, 그것으로 ‘자본제’의 폐해는 완전히 해소되는 것일까? 유감스럽지만,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생활이 만일 실현된다면, ‘상대적으로’ 자본제의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가능할지 모른다. NAM을 통해 창출이 기대되는 코뮨이 비록 그것이 ‘소량’이라도 현행의 화폐 ― 자기증식하는 화폐 ― 에 계속 의존한다면 결코 자본의 숨통을 끊지 못하며, 글로벌 머니(화폐)의 횡포를 비롯한 자본의 폭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도피한다 하더라도 그 폭력을 결코 뿌리뽑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면, ‘미적’이면서 동시에 ‘저(低)엔트로피’의 코뮨을 진실로 자본제의 바깥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무엇이 필요한가? 그것은 “자기증식을 하지 않는 화폐”를 통한 순환형 경제권의 창출 ― LETS 경제권의 확립이다.

 

  순환형 사회 ― LETS 경제권의 확립

  NAM에서는 자본을 양기(揚棄)하기 위해서 LETS라는 전혀 새로운 유형의 화폐의 유통을 제안하고 있다. LETS에는 여러가지 특징이 있지만, 간단히 몇가지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a. 물물교환으로서는 폐쇄적으로 되는 교환체계를 “화폐이면서도 화폐가 아닌 화폐”인 LETS를 도입함으로써 개방적인 교환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b. 이자(利子)가 붙지 않으므로, 투기적 행위가 의미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자본’으로 전화(轉化)하여 폭력을 휘두를 일이 없다.

  c. 각 개인에게 ‘적자 발행’이 인정되므로, 가진 것이 전혀 없어도 “필요한 것을 가질 수 있다” ― 즉, 사회보장제도를 내장하고 있는 셈이다.

  d. 자본제에서는 유통이 어려운 서비스와 물건을 유통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LETS 도입의 의의를 알기 쉽게 말하기 위해서 여기에서 나 자신의 체험을 말해본다면, 나 자신은 공예가를 목표로 할 때부터 “자본제의 바깥에서 살아간다”는 적극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일상생활의 경비를 억제하고(=내재적 투쟁), 적게 벌어서 적게 쓴다 하더라도,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한, “엔을 사용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단 하루도 가능하지 않다.

  나도 자본제 하에서 살고 있는 한, 번 돈이 얼마 안되더라도 ‘금리’라는 게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을 은행에 예치하지 않을 수 없다.(그러지 않으면 서서히 가치가 떨어지고 말기 때문에.) 그러면 내가 은행에 예금한 돈은 이윤을 확실히 얻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운용’된다. 일본 국내에서는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하는 건설공사에, 또는 가난한 서민을 괴롭히는 고리대금업에 유입된다. 그러한 자본의 폭력은 국내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 머니라는 괴물로 전화하여 제3세계 국가들을 경제적으로 짓밟는 데로 나아간다 …

  NAM의 활동을 알기 전에 나는 아무래도 소극적 투쟁밖에 알지 못했다. 즉, 일상생활에서 “가능한 한 물건을 사지 않는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과 함께 고육지책으로 생각한 것은 공예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의 ‘바터-교환’ ― “기술은 있는데 돈이 없는” 사람들이 물물교환을 통해서 가능한 한 금전을 개입시키지 않고 생활필수품을 얻는 시도 ― 이었다.

  그런데, 물물교환이라는 방법은 극히 폐쇄적이어서, 상호신용이 상실되면 한번에 끝나버린다! 그러한 때에 내가 만난 것이《NAM의 원리》였다. 그 가운데서 이야기되고 있는 LETS라는 시스템은 정말로 내게 지적 충격을 주었다.

  LETS는 물물교환과 달리 일반적인 화폐와 마찬가지로 ‘개방된 교환체계’를 구축할 수 있으면서도 자기증식을 하지 않기(이자가 붙지 않기) 때문에 투기적 행위가 불가능한 시스템이다. 즉, LETS를 통한 유통이 이루어짐으로써 비로소 “어디까지나 자유롭고 평등한 독립생산자=공예가와 유기농가들에 의한 생산협동조합”은 “자본의 바깥으로 절대적으로 초출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사회주의운동 200년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노동-인간소외를 해결하고, “자본을 완전히 양기(揚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발견된 셈이다. 그것은 이 말기적 상황에 처해서 우리가 찾아볼 수 있는 ‘최후의 희망’인지도 모른다. 


  후쿠이 테쓰야(福井哲也) ― 공예가. 일본 和歌山縣에서 도예공방 칸진샤(閑人舍)를 운영하고 있다. 이 글은 NAM의 인터넷 홈페이지(www.nam21.org)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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