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제61호 2001년 11-12월호    

 

  제발 그만 죽이십시오

  권정생

 

  '위대한 백인의 승리'란 영화를 주말 명화극장 시간에 본 기억이 납니다. 흑인 권투선수 챔피언을 백인들이 온갖 치사한 방법을 동원해서 아예 세상에서 매장시켜버리는 '치사한 백인의 승리'를 그린 영화였습니다.

  지금 그런 치사한 백인의 승리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오사마 빈 라덴이란 마흔살짜리 사나이를 잡기 위해 정의의 기치를 앞세워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마구잡이로 폭격하고 있습니다.

  얄궂게도 이런 때 유엔과 코피아난 사무총장님의 노벨평화상 수상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나는 순진해서 그런지 노벨평화상 받는 사람은 절대 전쟁을 안할 거라 생각했는데,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신 우리 대통령각하가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노벨평화상금이 어마어마하게 큰돈이라는데 주최측에서 그 상금을 돌려달라고 하지는 않을까요?

  하기야 노벨상금이란 것 자체가 무시무시한 폭발물을 만들어 장사해서 번 돈이니 그다지 도덕적이지도 않고 평화적이지도 않습니다.

  8 . 15 해방 직후에 모든 사람이 자유를 찾느라 복잡한 시대를 지냈습니다. 어느 참봉댁 머슴이 보따리를 싸들고 그 집을 나섰습니다. 이유는 참봉 어르신네가 다 큰 머슴을 보고 "이놈! 저놈!" 하는 것이 심사가 비틀린 거지요. 보따리를 둘러메고 머슴이 대문을 나서자 다급해진 참봉님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머슴의 뒷덜미를 붙잡았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소리가 "이놈아! 다시는 이놈 소리 안할 테니 가지 마라, 이놈아!"

  습관이란 건 몸에 배어버리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더욱이 권력을 누리고 있던 인간이야 제 버릇 어떻게 버리겠습니까.

  영국과 미국은 자기네들이 세계의 영원한 제국인 줄 알고 있나 봅니다. 화가 루오의 그림 속에 나오는 어느 임금님처럼, 돈 많은 아줌마처럼 하느님께 특별허가증이라도 받아놓은 것같이 자신만만한 모양입니다. 미국 국민의 90퍼센트의 지지를 받고, 이슬람 근본주의자인 극단 테러리스트만 빼놓고 전세계가 이 전쟁에 동참하고 있는 것처럼 대대적으로 선전을 하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테러집단 응징에 동참하지 않으면 모두 적으로 본다니까 약소국가들은 어쩔 수 없이 초등학교 1학년생처럼 "예! 예!" 손을 드는 거지요.

  그런데 일본이란 나라는 한술 더 뜨고 나서는 게 가관입니다. 세계서 둘째가는 경제대국이 훈도시까지 다 벗은 꼴이어서 민망스럽습니다. 권력이라는 것이, 돈이라는 것이, 저런 것이구나 생각하니 삼국지 백번 읽는 것보다 세상이 명백해집니다.

  아이들의 영원한 친구 피터팬과 앨리스의 동화가 있는 나라, 셰익스피어와 스쿠루지의 찰스 디킨즈가 있고 정직했던 대법관 토마스 모어가 있는 나라, 이런 영국이 삽시간에 악마가 되어버렸습니다.

  대영박물관 역사유물들이 모두 전쟁으로 약탈해다 놓은 것처럼 영국은 문화예술도, 동심도, 정의도, 그렇게 약탈해다 전시만 해놓는 나라인가요?

  선진국이란 그런 것입니다. 그들에게 언제 평화가 있었습니까. 혹시 그들만의 평화는 있었을지 모르지요. 수많은 약소국을 식민지로 만들어 노동과 자원을 착취하고 정신까지 뺏아간 그들은 안락의자에 앉아서 평화를 선전하면서 한번도 반성도 참회도 안했습니다.

  인디언들과 그곳 수많은 동물을 학살하고 자연을 파괴하고 먼 곳 아프리카인들까지 끌고 가 노예를 삼아 거대한 부자가 된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하느님마저도 독점을 했고 다른 나라 종교는 모두 이단이라 미신이라 왜곡시켰습니다. 그렇게 학살과 파괴와 능멸 위에 세워진 거대한 모든 것을 선진이라 했고, 평화라 했고, 정의라 했고, 도덕이라 했고, 예술이라 했습니다.

  작년인가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어딘가 조사를 했다는데 뜻밖에도 가장 가난한 나라 방글라데시였다지요. 반대로 가장 자살자가 많은 나라는 최대 복지국가인 선진국이었다니 어째서 그들은 죽고 싶을 만큼 불행했을까요.

  흔히 폭력적인 인간은 미개하고 가난한 나라 국민이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온몸으로 밭을 갈고 김을 매고 등짐을 지고 사는 사람들은 폭력을 일삼을 기운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바보 이반은 임금이 되고도 노동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몸으로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어떻게 무시무시한 핵무기를 만들며 세균으로 무기를 만들겠습니까.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언젠가는 모두 죽습니다. 그냥 제 명대로 살다 죽는 것도 죽을 때는 서러운데, 왜 비참하게 전쟁으로 산 목숨을 죽이는지 그것만은 절대 지지해서는 안됩니다.

  노벨평화상을 1년에 한명씩 뽑아 준다고 세상이 평화로 지켜지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노벨상 재단이 가지고 있는 많은 돈을 차라리 한맺힌 사람들, 강대국에 의해 학살당하고 빼앗기고 쫓겨난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냥 나눠주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지난날 전쟁으로 약탈해다 부자가 된 나라는 모든 걸 되돌려줘야 할 것입니다. 전쟁으로 죽은 사람까지 살려내지는 못하지만 뺏아간 건 돌려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단에 제물을 바치기 전에 먼저 원한을 산 이웃과 화해하라고 성경책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문화충돌이란 말도 안됩니다.

  미국은 뼈속까지 아프게 반성해야 합니다. 인디언들에게 저지른 만행에서 아프리카에서 행한 노예사냥, 그리고 아시아에서 일으켰던 모든 전쟁과 최근 코소보 전쟁까지, 미국은 수백년간 전쟁으로 시작된 전쟁의 역사였지 평화와 정의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헐리우드 영화의 폭력은 그런 역사가 만들어낸 미국만의 폭력문화입니다. 서부활극에서 마피아 영화까지 미국은 온 세계에 이런 폭력을 퍼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무역센터 비행기 폭파사건도 미국이 저지른 폭력이 부메랑처럼 되돌아간 것이지 다른 누가 일방적으로 저지른 건 절대 아닙니다. 지금 탄저균 살포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미국인들을 보고 있자니 한심스럽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만주에 있던 일본군 731부대에서 인간생체실험용으로 만들었던 화학무기가 패전 후 고스란히 미국으로 옮겨진 것으로 압니다. 그중 일부는 한국전쟁시 휴전선 근처에 뿌려졌고, 80년대 이란 이라크 전쟁시엔 화학무기로 사용되었지 않습니까. 미국이 이라크에 제공했던 세균무기로 걸프전 때 미군 다수가 피해를 입었고, 이번엔 결국 미국 본토까지 탄저균 소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과학문명은 인류에게 좀더 나은 삶을 위해 많은 과학자들이 일궈낸 성과물임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과학은 우리 인류의 바람과는 다른 악마의 모습으로 불행을 가져왔습니다. 히로시마, 나가사끼의 원폭피해는 과학의 이중성을 똑똑히 보여주었습니다.

  뉴욕 맨하탄의 비행기 테러는 슬픈 일입니다. 1백십층짜리 건물만 무너진 게 아니라 사람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함께 살고 있던 가족들이, 아들 딸이 죽고, 아버지가 죽고, 형제가 죽고, 친구가 죽었는데 왜 가슴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미국은 알아야 합니다. 오사마 빈 라덴이란 테러리스트를 만든 건 미국이 저지른 여태까지의 잔인하고 더 큰 테러입니다. 빈 라덴을 잡기 전에 미국이 쌓아놓고 있는 어마어마한 전쟁무기를 폐기처분할 생각은 없을까요. 그러지 않고는 빈 라덴이 잡혀 죽은 뒤에도 똑같은 오사마 빈 라덴은 계속 생겨날 것입니다.

  무기를 만드는 그 엄청난 비용을 평화를 위해 사용하면 누가 미국을 미워하겠습니까. 만약 그리 하고도 못된 테러리스트가 있다면 그때는 정말 온 세계가 나서서 응징할 것입니다. 지금 세계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미국의 행동을 하나하나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자연을 봅시다. 자연은 말이 필요없습니다. 땅 위로 하늘과 물 속에서 뭇 생명은 자연스레 자신의 삶의 터전 그 자리에서 너무도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하나가 자신만을 위해 자신의 동족만의 제국을 만들지 않습니다. 커다란 코끼리에서 조그만 개미까지 서로 조금씩 희생하면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백인들이 미개인이라 불렀던 인디언들은 대지는 모든 목숨들의 것이라 생각하여, 사지도 팔지도 소유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이슬람이나 기독교의 하느님 뜻대로 살아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자연대로 태어나 자연대로 살다가 자연대로 죽는 것이 진정한 종교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욕심내어서는 안됩니다. 조금씩은 배고프고 춥고 불편하게 사는 게 평화로운 삶이 됩니다.

  뉴욕 맨하탄 테러로 희생된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이번에 겪은 참상이 가슴아픈 일인지 알았다면, 지난날 미국인과 영국인이 저질러온 수백년간의 폭력으로 지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참혹하게 죽어갔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얼마나 또 슬프게 고통스럽게 살아왔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모두가 또다른 테러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아있는 것에 대한 사랑을 행동으로 옮겨 살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미국은 스스로 자멸하고 말 것입니다.

  제발 좀 그만 죽이십시오.

2001년 10월 25일      
1866년 미국의 셔먼호 침략 이래      
백년이 넘도록 시달리고 있는 한국에서      


  권정생 ― 작가. 동화《강아지똥》, 수필집《우리들의 하느님》, 소설《몽실언니》《한티재하늘》등 많은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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