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제158호 2018년 1-2월호  인쇄용  

 

  공론조사 시민참여단 참가기

  윤지영

9월 1일, 휴대폰에 기다리던 번호가 떴다. 발신자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언론보도로 알고 있던 번호였다. 공론화위원회는 울산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에 대해 전화로 1차 공론조사를 실시한 후, 응답자 중에 500명의 시민참여단을 최종 선정할 계획이었다. 시민참여단은 대통령에게 국민 의견을 최종 권고할 터였다. 전화를 받고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늘 쓰는 전기, 늘 내는 세금 그리고 늘 감당하던 위험. 그럼에도 핵발전은 소수 전문가들과 관료들에게만 맡겨져 있었다. 그런데 이제 국민에게 의견을 묻는다고 하니 세상이 바뀌었다는 실감이 들었다.

시민참여단은 어떻게 구성되었나. 19세 이상 4,250만 명 중에 전화를 받은 사람은 3만 9,919명. 이 중에 설문조사에 응한 이가 2만 6명(50.1%)이었다고 한다. ‘한국리서치’라고 밝힌 면접원에게 내 번호를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다. 면접원은 이동통신 3사로부터 무작위로 받은 번호이며, 가상 번호로 받았기 때문에 내 실제 번호는 모른다고 설명했다. 내가 더 조사해본 바로는, 공론화위는 가상 번호들을 성별, 5개 세대별, 16개 지역별로 구분해 160개 군으로 만든 후 대상자를 정했다고 한다.

문제는 각 군마다 대상자 수를 정할 때 인구비례 기준을 따랐다는 것이다. 그 결과, 참여단은 서울·경기가 47.4%였던 반면 울산은 1.4%인 7명에 불과했다. 연령대도 50대와 60대가 각각 22.4%, 23.2%로 가장 많았다. 20대는 15.2%로 가장 적었다. 핵발전 위험을 가장 오래 안고 살아가야 하는 세대임에도 말이다. 이는 분명히 불공정한 일이다. 사안의 성격을 고려하지 않은 기계적 배분이라는 문제의식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시민참여단이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가, 이는 공론화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다. 다음번에는 보다 섬세한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화 면접원은 다섯 가지 질문을 했다. 공론화위원회의 출범을 알고 있는가, 공사 중단 혹은 재개에 대한 의견, 그런 입장을 갖는 이유, 원자력 확대/유지/축소에 대한 의견, 마지막으로 시민참여단에 참가할 의사가 있는지 물으며 일정과 사례금(85만원)을 안내했다. 참가하겠다고 하자 지역, 연령, 직업, 지지하는 정당에 대해 묻고 조사를 마무리했다(지지 정당을 묻는 이유는, 현행 규정상 선거조사인 경우에만 이동통신사로부터 가상 번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민참여단 참가 의향을 밝힌 이는 2만 6명 중에 5,981명(29.8%)이었다. 9월 12일, 드디어 500명의 참여단의 한 명으로 최종 확정됐다는 전화를 받았다. 무려 8만 5,000분의 1의 확률.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을 맞은 기분이었다. 역사적 자리에 참가한다는 설렘이 밀려왔다.

 

촛불혁명의 빛을 품은 ‘작은 대한민국’

9월 16일 오리엔테이션 날, 서울역에서 전세버스를 타고 충남 천안 산기슭에 자리한 연수원에 도착했다. 경찰이 외부인 출입을 통제했고, 참여단은 이름이 적힌 명찰을 목에 걸고 다녀야 했다. ‘경청’과 ‘숙의’가 크게 적힌 휘장이 걸린 본회의장. 참여단을 마주하니 이곳이 ‘작은 대한민국’인 것만 같았다. 지역, 세대, 계층뿐 아니라 ‘팟캐스트’를 듣는 사람부터 MBC 뉴스를 보는 사람까지 정치적 성향도 다양했다.

단 하나 같았던 건 열의였다. 오리엔테이션 참석률은 95.6%. 한 달 뒤 합숙토론도 참석률 98.5%. 세계 유례가 없는 기록이라고 한다. 식순인 애국가도 다들 얼마나 열심히 부르는지. 2차 설문조사, 공론화 안내교육, 건설 중단 및 재개 쪽 전문가들의 발표와 질의응답이 진행됐다. 예정에 없던 김지형 공론화위원장과의 대화시간도 있었는데, 시민들은 마치 신생 민주공화국의 민회처럼 느껴질 만큼 상세한 제안을 쏟아냈다. 양쪽 전문가가 자기주장만 하는 토론방식이면 안된다, 조별 토론 진행자는 편파성이 없어야 한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사용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라, 신분이 노출되면 안전은 어떻게 보장할 것이냐, 반드시 백서를 만들어야 한다 등. 한 젊은 청년은 휴회시간에 정치적 발언을 하는 시민들을 봤다며 자제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한 시민은 나에게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서 모두가 사례금의 30%를 기부할 것을 제안해볼까 상의했고, 다른 시민은 실제로 탈핵단체에 사례금을 모두 기부하겠다고 말했다.

오리엔테이션 이후 참여단은 한 달 동안 각자 자택에서 자료집과 동영상 강의를 보았다. 10월 13일 다시 같은 장소에 총 471명의 시민들이 모여 2박 3일간의 합숙토론을 시작했다. 첫날 진행한 3차 설문조사에서는 한 달 동안 생각이 바뀌었냐고 묻는 항목이 있었다. 분임토의장으로 이동해 조원들과 인사도 나눴다. 총 48개 조 중에 나는 8조였다. 조원은 총 10명으로 성별은 절반씩이었고, 연령대도 고른 편이었다. 진행자는 ‘한국리서치’ 직원이었다.

둘째 날부터 토론이 시작됐다. 주제별로 양쪽 전문가 발표를 먼저 듣고, 조별로 토론한 뒤 질문 2개를 만들었다. 공론화위는 중단 및 재개 쪽에 던질 질문을 각각 10개씩 추렸고, 시민들은 선정된 질문을 직접 물었다. 질의응답이 끝나면, 전문가들끼리 반론과 재반론을 주고받았다. 이 과정을 하루에 2번, 총 4차례 반복했다. 한 주제당 3시간 반에서 4시간이 걸렸다. ‘질문 주차장’이라는 게시판에 메모지로 붙여 놓은 질문들을 추려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도 따로 마련됐다.

시민들이 토론에 임하는 자세는 시종일관 진지했다. 긴 시간 동안 몰입했으며, 날카로운 질문으로 박수를 받은 시민도 있었다. 빽빽한 메모와 신문 스크랩이 가득한 자료집을 갖고 있는 시민도 보였다. 휴회와 식사 시간에도 끊임없이 대화를 나눴고, 새벽 3시까지 일대일 토론을 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현장의 열기는 참여단에게도 놀라운 화제였다. 시민들은 “촛불혁명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모여 열심히 했을까?”라고 얘기하며 공감했다. 지난겨울 촛불광장이 거대한 민주주의 학습장이었음을, 시민참여단은 생생히 증명해 보였다. 대표로 소감을 밝혔던 80대 할아버지는 “(군대) 제대 하루 전보다 더 설레었다”고 말했고, 제주도에서 온 시민은 “태풍을 뚫고 왔지만 힘들지 않았다”고 했고, 한 대학생은 “대한민국을 이끌 20대의 책임감으로 왔다”고 했다. 나와 같은 조였던 시민들도 “나랏일 하러 왔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윗사람들끼리 결정해버리면 안되지”, “나한테도 의견을 묻는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런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고 소감을 나눴다. 이처럼 공론화 현장은 시민들이 시민으로서 자기 존엄을 확인하고 성장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너무 짧았던 ‘숙의’, 실망스러운 전문가들

준비된 시민들이었다. 일각에서 제기한 ‘비전문성’에 대한 우려는 기우였다. 다만 두 가지가 아쉬웠다. 우선 숙의 기간이 짧았다. 자택학습부터 합숙토론까지 33일이라는 숙의 기간은, 탈핵을 수십 년간 공론화한 독일을 생각한다면 성급했던 것이 아닐까. 질의응답 때 전문가들에게 배정된 답변 시간은 불과 1~2분이었다. 답변에 대한 재질문은 할 수 없었다. 분임토의도 불과 20여 분. 충분한 토론을 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다. 공사 현장을 직접 가보지 못하고 동영상으로만 시청한 것도 아쉬웠다.

그리고 전문가 윤리 실종 사태가 심각했다. 정보 독점과 은폐가 심각한 핵발전 분야에 있어서 정보의 투명성은 필수다. 그러나 양쪽 전문가는 상반된 ‘사실’을 제시할 때가 많았고, 시민들이 이를 검증할 방법은 없어 혼란이 컸다. 공사 재개 쪽 전문가는 상대 쪽에 인신공격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참여단은 조별로 〈시민참여단 규칙〉을 낭독했다. 토론의 예의를 지키자는 약속이었다. 앞으로의 공론화에서는 전문가들의 공개 선서 자리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정보를 제시하는 데 대한 책임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공론화위원회에도 아쉬운 점은 있었다. 많은 인원을 사고 없이 이끌어준 노력은 고마웠다. 하지만 전문가 양쪽의 서로 다른 ‘사실’을 검증한다든지, 시민과 전문가의 개별 접촉 등 반칙행위를 바로잡는 것과 같은 적극적인 역할이 보이지 않았다. 10대 아이들의 토론을 동영상으로 보여주면서, 중단 입장이 다수였다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은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질의응답 시간에 한 시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큰소리를 냈을 때에도 상황을 진정시킨 것은 시민들이었다. 공론화위원회가 분란을 무마하기에 급급하며 기계적 중립을 지키기보다, 원칙을 엄정하게 집행하는 권위를 보여줬다면 시민들의 신뢰는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값비싼 전기, 핵 참사보다 더한 공포

10월 20일, TV 생중계로 공론화위의 최종 발표를 보았다. 참여단 결정은 공사 재개 59.5%, 중단 40.5%. 참담했다. 하지만 예상했던 바였다. 합숙토론 당시, 건설 재개 쪽이 좀더 많다는 조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토론 때는 박수 소리 크기도 달랐다. 그런데 원전에 대해서는 축소 의견이 53.2%였다. “원전은 축소해야 하지만 신규 원전은 지으라”는 모순된 결정이다. ‘상생의 해답’, ‘절묘한 현명함’이라는 의견이 많았지만, 현장에서 토론을 지켜본 내 생각은 다르다. 저 모순된 결정의 본질은 핵발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정직하게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내 조는 중단 입장이 4명, 재개가 5명, 보류가 1명이었다. 재개 입장 시민들 중에는 “부산에서 원자력발전소를 직접 견학했는데 안전하더라”, “정권 바뀌었다고 뒤집으면 안된다”며 주장이 확고한 분들도 있었지만, “안전만 생각하면 원자력은 하지 말아야지”,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걱정은 된다”며 마음이 흔들리던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분들은 결국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핵발전을 필요악,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도 했고, “이번만 짓고 다음부터는 짓지 말자”고도 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필요악인가? 결국은 ‘경제’다. 재개 쪽 전문가들은 핵발전이 가장 안정적으로 값싼 전기를 대량으로 공급하는 방식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이는 제조업 중심인 국내 산업에 큰 도움이 되며, 공사를 멈추면 원전 수출에도 지장이 생긴다고 말했다. 2조가 넘는 매몰 비용도 강조했다. 안전 우려에 대해서는 신고리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원전이라며 ‘전문가를 믿으라’고 말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위세를 떨친 경제성장 우선주의와 핵발전 안전 신화는 강고했다. 핵발전소 사고는 최악의 재앙이고, 핵폐기물은 처리 방법이 없으며, 핵발전소 건설과 운영 과정은 도시민의 지역민에 대한 폭력이라는 명확한 ‘사실’들은 힘을 잃었다. 나는 핵발전의 강력한 주술에, 촛불혁명으로 빛을 발한 민주주의가 ‘다수결’로 동원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중단 쪽에도 경제카드는 있었다. “원자력은 사양산업이다, 대안이 있다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대안은 신재생에너지였다. 기술발전으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단가가 급격하게 하락해 ‘애플’과 ‘구글’도 뛰어든 유망 산업이 됐다며, 에너지 전환은 ‘새로운 산업 경쟁력 창출에도 필수’라고 주장했다.

시민들의 마음이 흔들리던 찰나, 공사 재개 쪽은 “신재생에너지가 원자력 발전량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인가?”라는 반론을 펼쳤다. 아직 때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신재생에너지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 원자력 축소분만큼 수입 에너지 LNG발전이 늘어나 전기요금이 폭등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단 쪽은 전기는 지금도 충분해 그럴 일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전력수요 예측에 대한 공방이 벌어졌고, 결국 “미래에 대해서 어떻게 확신하나, 일단 짓는 게 낫다”는 공감 속에 재개 쪽 전문가들이 승기를 붙잡았다.

이처럼, 원전을 반대하면 원전과 동등한 전력 생산량의 ‘대안’을 요구한다. 그런 대안이 있기 전까지는 탈핵은 먼 미래의 일로 유보된다. 전기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는 공포가 그만큼 큰 것이다. 이는 우리가 에너지가 끊임없이 공급돼야 하는 도시에서 기계 중심의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송배전에서 전기 낭비를 줄이고 사용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이 있다고 해도, 내가 직접 체험하기 전에는 그것은 현실이 아니다. 게다가 핵발전의 폐해는 피해 당사자가 되기 전까지는 실감하기 어렵다. 내가 만난 중단 입장의 시민들이 태양열발전을 하고, 농사를 짓고 벌을 치며 환경변화에 민감하고, 울산에 살다 몸이 아파 이사하고, 한수원에서 일하다 그만두는 등 자기 삶과 체험에 핵발전을 반대하는 근거가 있는 분들이 많았다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공론화해야 할 진짜 이야기

불길한 예감 속에 최종 설문조사를 앞두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손주 예쁜 줄 알면 핵폐기물은 안돼”라던 70대 농부 어르신은 홀로 앉아 한참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내면의 외침이 응어리가 되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이 있다. 한 시민이 “안전하다고 생각되면 원전을 서울에 짓는 것이 어떠한가”라고 질문했다. 재개 쪽 전문가의 답변에 시민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서울은 땅값이 비싸서 안된다, 이것은 상식이다.” 그는 분명 ‘상식’이라고 답변했다. 10만 년을 보관해야 하는 핵폐기물도 “땅속에 깊이 묻고 잊어버리자는 것이 기본입장”이라고 답했다. 원전 주변 주민들의 암 발병은 ‘우연’이라고 답했다. 저런 발언들이 스치듯 지나갈 때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항의하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만 했다.

타협할 수 없는, 가치관의 영역이 불거지면 토론은 불가능해졌다. 마지막 날에는 말싸움이 벌어진 조가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시민들의 대화를 들어봐도, “내 돈 나가는 건 다들 싫어한다”, “소수의 피해 때문에 안된다면 군대도 만들면 안되지”, “원자력 전문가들 덕분에 우리가 마음 놓고 전기를 쓰는 거다”라는 말들과,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원전보다 나은 기술이 왜 불가능한가”, “나 좋다고 다른 사람 아픈 건 생각 안하면 쓰나”, “안전은 절대 안심할 수 없다, 도대체 몇 명이 죽어야 멈출 건가”, “원전 비리가 얼마나 심각한데 어떻게 저들을 믿나”라는 말들이 같은 공간 속에서 부딪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시민들은 ‘평행선을 달렸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냉랭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뒤따라오던 말― “우리는 생각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다르다’고 넘어가면, 현실을 지배하는 것은 주류 다수의 논리다. 공사 재개 결정이 난 데에는 보류 입장이었던 20~30대의 변심이 크게 작용했던 것에서 보듯이 말이다.

나는 이번 공론화 과정에 참여하면서, 핵발전을 반대하는가 아니면 찬성 혹은 허용하는가 하는 판단은, 사실과 논리의 수평적 대결로만 결정되지 않으며, 오랫동안 뿌리내린 가치관과 삶의 방식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는 진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어떤 전기를 쓰는 삶을 살 것인가? 어떤 가치가 다름의 문제가 아닌 옳고 그름의 문제가 되어야 하는가? 핵발전에 있어 우리가 공론화해야 할 진짜 이야기는 아직 남은 것이다.

최초라는 의미의 무게만큼, 이번 공론화는 한번의 이벤트로 끝나면 안된다. 탈핵과 민주주의에 대한 숙의, 깊이 생각하고 의논하는 일은 계속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 결과에 대한 승복만을 강조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갈등 봉합의 수단으로 축소하는 게 아닐까.

재개 결정 이후 언론이 주로 주목한 것은 지난 3개월 동안 공사가 중단되면서 손해를 입은 이들에 대한 보상문제였다. 그러나 나는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어도, 재개 결정을 내 일처럼 아프게 받아들였을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포항 지진 때도 ‘원전’이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오를 만큼, 많은 이들은 핵발전의 안전에 대해 안심하지 못한다. 이들에게도 충분한 발언권을 주는 일은 민주주의의 성숙에도 꼭 필요한 일이다. 전문가들에게 내맡겼던 핵발전에 대해 우리가 정보를 제공받고, 질문을 던지고, 토론을 하는 공론화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오랫동안 고독하게 현장에서 싸워온 사람들 덕분이 아닌가. 이번 공론화를 계기로 눈물이 흐르지 않는 전기, 진정한 에너지 민주주의를 꿈꾸는 이들의 목소리가 더욱 널리 나눠지기를 바란다.


윤지영 ― ‘나눔문화’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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