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제157호 2017년 11-12월호  인쇄용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방안

  이재봉

2017년 7월부터 미국과 북한 사이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북한이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과 28일 미국 본토까지 날아갈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8월 8일 북한이 “불과 분노(fire and fury)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 군부는 8월 9일 미국령인 “괌도 포위사격 방안을 심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대응했다.

미국과 남한이 8월 21일부터 31일까지 북한을 겨냥해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했다. 북한은 이에 맞서 8월 26일과 일본이 조선을 병합했던 국치일인 29일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상공 넘어 태평양으로 미사일 ‘발사훈련’을 했다. 미국은 31일 ‘죽음의 백조’라는 별칭을 가진 B―1B 전략폭격기 2대와 F―35B 스텔스 전투기 4대를 동시에 한반도에 출격시켜 남한의 F―15K 전투기 4대와 연합 항공차단 작전을 펼치며 정밀유도폭탄(smart bomb) 투하 훈련을 실시했다. 김정은 집무실 등 북한 핵심 시설을 가정한 표적을 겨냥해 지하 벙커까지 관통할 수 있는 미사일로 타격하는 공격훈련이었다고 한다.

북한이 9월 3일 대륙간탄도미사일 장착용 수소폭탄 시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세계 도처에서 강권과 전횡을 부리며 행성의 절대군주처럼 행세하는 미국도 감히 범접 못 하는 핵 강국, 대륙간탄도로케트 보유국”이 되었다는 주장을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9월 7일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이 확실히 하나의 옵션”이라고 밝혔다. “나는 군사적 경로를 선호하지는 않지만 그런 일이 확실히 일어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그걸 북한에 사용한다면 북한에 매우 슬픈 날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전쟁을 피할 수 없다’거나 ‘피할 수 없는 것은 없다’는 주장도 곁들인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에 북한은 “우리는 그 어떤 최후 수단도 불사할 준비가 다 되어 있다. 우리가 취하게 될 다음번 조치들은 미국으로 하여금 사상 유례없는 곤혹을 치르게 만들 것이다”라고 대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9월 19일 유엔총회에서의 첫 연설을 통해 “미국이나 동맹국들을 방어해야 한다면, 북한을 전적으로 파괴하는(totally destroy)”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러자 김정은 위원장은 22일 자신 명의의 첫 성명에서 “그에 상응한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조치 단행을 심중히 고려할 것”이라며, “국가와 인민의 존엄과 명예 그리고 나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우리 공화국의 절멸을 줴친(떠든) 미국 통수권자의 망발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받아낼 것이다.(…)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를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다”라고 맞받았다.

미국은 말폭탄에 이어 위협적 무력시위도 펼쳤다. 9월 18일 B―1B 전략폭격기 2대와 F―35B 스텔스 전투기 4대가 군사분계선 인근까지 날아갔다. 9월 23일 밤엔 B―1B 전략폭격기와 전투기들이 북방한계선(NLL) 북쪽까지 들어갔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처음”으로 “휴전선 가장 북쪽으로 비행”한 것이었다고 한다. 조선로동당 창건 기념일인 10월 10일엔 트럼프 대통령이 매티스 국방부장관과 북한에 대한 군사적 방안을 논의한 데 이어 B―1B 전략폭격기 편대가 동해뿐만 아니라 서해에서도 폭격훈련을 벌였다. 이즈음 미국 해군 최신 공격형 핵추진 잠수함들이 남한을 들락거리고 있다. 그리고 10월 중순엔 핵추진 항공모함과 핵추진 잠수함, 이지스 구축함과 미사일 순양함 등이 모두 출동해 남한 해군과 동해와 서해에서 고강도 연합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다.

트럼프의 ‘미치광이 전술’과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이 마주치는 ‘겁쟁이 경기(chicken game)’에서는 북한이 이기기 마련이다. 배짱이나 깡다구가 세고, 가진 게 적어 맞부딪치더라도 잃을 게 적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처럼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에 수치와 모욕을 안겨준 나라는 없다. 예를 들어, 1968년 1월 원산항 앞바다에서 미국 해군정보함 푸에블로호를 나포해 80여 명의 장병을 거의 1년이나 억류하다 미국의 사과를 받고 풀어주었다. 미국 해군 역사상 그런 수모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다. 그리고 1969년 4월엔 비무장지대 상공에서 미군 정찰기를 격추해 30여 명의 장병을 몰살시키기도 했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에 묶여 전선을 확대할 수 없었기에 당하고만 있었다.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이 없던 시절에도 그렇게 ‘통 크게’ 맘껏 ‘도발’했다.

‘겁쟁이 경기’에서 북한이 이겼다고 미국이 진 것은 아니다. 트럼프 정부는 몇 가지 실익을 이미 얻었거나 앞으로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북한과의 군사적 위기 속에서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 때문에 대통령 탄핵까지 거론되던 여론을 잠재울 수 있었다. 둘째, 2018년 국방예산을 대폭 증액시킬 수 있었다. 미국의 2017년 국방예산이 6,200억 달러였는데, 9월의 의회 예산심의에서 10월 1일부터 시작되는 2018 회계연도 국방예산이 무려 13%나 증액된 7,000억 달러로 통과된 것이다. 셋째, 한반도에서 군사적 위기가 조성되면 미국은 남한과 일본에 비싼 첨단 무기를 쉽게 팔 수 있다. 넷째, 북한의 ‘도발’을 빌미로 중국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거나 제재하는 데 북한만큼 좋은 구실은 없다.

 

순탄하지 않은 미국의 선택지

그렇다면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이른바 ‘북핵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쉽지 않은 게 문제다. 북한은 늦어도 1990년대 초부터 핵무력을 개발해왔다. 2013년엔 헌법에까지 “핵보유국, 무적의 군사강국”이라고 명시했다. 북한은 2013년부터 군사 건설과 경제 건설을 함께 발전시키겠다는 ‘병진로선(竝進路線)’을 채택해오고 있는데, 2017년 10월 조선로동당 창건 기념일을 앞두고 열린 당회의에서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의 병진노선”을 철저하게 관철할 것을 재확인했다. 앞으로도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멈추거나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북한 핵무기를 무시하며 방관한다. 북한 핵무기는 많아야 수십 개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10~20개로 추정하고,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30~40개까지 부풀려 추정한다. 미국은 계속 줄여왔어도 7,000개 이상 가지고 있으니 기껏해야 200분의 1 수준의 북한 핵무기를 신경 쓸 필요 없다. 북한이 자멸을 원치 않는 이상 미국을 먼저 공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 핵무기를 인정하면 핵 물질과 기술을 가진 일본이 가만있을 리 없고, 남한이나 대만도 핵무기를 개발하려 할 것이다. 미국 군사력에 의존적인 일본, 남한, 대만 등이 핵무기를 갖게 되면 미국의 군사적 통제에서 벗어나 ‘자주독립’을 추구할 수 있는데, 미국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둘째, 북한을 봉쇄하고 제재하며 붕괴로 이끈다. 지금까지 유엔을 통하거나 일본과 남한을 앞세워 제재해왔지만, 중국 때문에 효과를 거두기 어려운 게 문제다. 미국을 비롯한 온 세계가 북한을 제재하더라도 중국이 이에 적극 동참하지 않으면, 북한은 크게 잘살지는 못해도 그럭저럭 체제를 유지할 수는 있을 것이다. 미국은 1953년 7월 휴전협정 이후 줄곧 북한을 제재해왔다. 북한이 2006년부터 2017년까지 핵실험을 여섯 번 하고 다양한 미사일 시험 발사를 수십 번 하는 동안, 미국은 유엔을 통해 10여  차례 최대의 압박과 최고의 제재를 가해왔다. 그런데도 북한이 붕괴되기는커녕 연평균 3~4%의 경제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모양이다.

참고로 미국과 남한은 중국이 북한에 강도 높은 경제제재를 해주길 바라지만, 중국은 소극적으로 응하거나 반대할 수밖에 없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북핵 문제가 ‘북한과 미국 사이의 모순’이라는 인식이다. 중국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 폭격이나 전쟁 위협이 없었다면 북핵 문제는 이미 해결됐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힘쓰는 것은 미국의 위협 때문이므로, 북한에 대한 미국의 안전보장을 통해 북핵 문제를 풀어야지, 북한에 대한 중국의 경제제재를 통해 해결하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북미 양국의 동시 행동을 강조한다. 이른바 ‘쌍중단(雙暫停)’과 ‘쌍궤병행(雙軌竝行)’이다. 미국과 남한의 연합 군사훈련과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동시에 중단하고, 한반도 비핵화 과정과 평화협정을 동시에 협상하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 자신의 안보를 위해서다. 중국은 북한의 지도자들이 맘에 들지 않고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이 못마땅해도 자신의 안보를 위해 북한에 대해 강력하게 제재하기 곤란하다. 만에 하나 중국의 원유공급 중단을 포함한 경제제재로 북한이 무너질 위기에 놓이게 되면, 중국으로 유입될 난민으로 중국도 커다란 혼란을 겪을 것이다. 나아가 북한이 붕괴되면 북중 관계를 상징하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는 말이 가리키듯, 이(齒)를 지켜줄 입술(脣)이 없어지는 것처럼 중국의 안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태평양 건너 10,000km나 떨어져 있는 남한의 존폐가 미국 안보에 미치는 영향보다는 압록강―백두산―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1,500km를 접하고 있는 북한의 존폐가 중국 안보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더 크지 않겠는가.

셋째, 북한의 핵시설을 폭격하거나 침공한다. 미국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200번 정도 다른 나라를 폭격하거나 침략했다. 그러나 북한과의 전쟁은 쉽지 않다. 북한은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등과 달리 남한과 일본의 미군기지뿐만 아니라 미국령 괌과 미국 본토까지 공격할 수 있는 보복능력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 등 북한 주변 강대국들까지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넷째,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한다. 북한이 요구하고 제안해온 대로 불가침조약이나 종전협정 또는 평화협정을 맺거나 국교정상화를 이루며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하는 것이다. 가장 바람직하지만 쉽지 않은 게 문제다. 주한미군 철수와 연계될 수 있기 때문이다. 1950년 6월 시작된 한국전쟁은 2017년 10월까지도 끝나지 않고 1953년 7월 맺은 정전·휴전 협정으로 멈추거나 쉬고 있을 뿐이다. 북한은 1970년대부터 적극적으로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해왔지만 미국은 한사코 거부해왔다.

미국은 1991년 소련이 해체된 이후부터 급속도로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하면서 주한미군을 ‘전략적 유연성’을 지닌 ‘신속 기동군’으로 전환해왔다. 주한미군의 역할은 본디 1953년 조인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북한의 남침을 저지하는 것이었지만, 1990년대부터는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주한미군 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하고, 군항을 제주에 건설하며,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성주에 배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터에 미국이 북한과 불가침조약이나 종전·평화 협정을 맺으면 주한미군을 계속 유지할 법적 명분이 사라지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데 구멍이 뚫리게 된다. 거꾸로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려면 주한미군이 있어야 하고, 주한미군을 유지하려면 북한을 악마로 남겨두어야 하며, 북한을 악마로 유지하려면 전쟁을 끝내지 않고 정전·휴전 협정을 고수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 미국이 주도적으로 또는 적극적으로 북핵 문제를 풀기는 어렵다. 무시와 방관, 봉쇄와 제재, 폭격과 전쟁, 협상과 타협 등 어느 하나도 선택하기 쉽지 않다. 북핵 문제가 1990년대 초부터 20여 년 넘게 해결되지 못하고 머잖아 풀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이유다.

 

자주적 인식과 균형외교로 주도적 역할을

그러기에 남한의 역할이 필요하다. 한반도에 종전협정이나 평화협정이 맺어지도록 적극적으로 나서고 북한과 미국 사이에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지도록 주선하는 것이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7월 독일에서의 연설을 통해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담대한 여정”을 시작하겠다며 평화협정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북한이 2017년 9월 대륙간탄도미사일 장착용 수소폭탄을 시험하기 전이었지만, 남한 대통령의 평화협정 언급 자체가 획기적이다. 그러나 구체적 과정은 말하지 않고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완전한 비핵화’가 북한만의 핵무기 완전 폐기를 뜻한다면 비현실적이라 생각한다. 북한은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하며 주한미군 철수 없이는 핵무기를 폐기할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과정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제안한다.

제1단계로, 미국은 남한과의 합동군사훈련을 비롯해 북한에 대한 폭격위협을 멈추고,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멈춘다. 북한이 제안했고 중국과 러시아도 제안했다. 미국이 거부하는 게 문제다.

여기서 남한의 주도적 역할이 꼭 필요하고, 이를 위해 북한에 대해 역지사지 자세를 가지는 게 바람직하다. 미국은 각종 핵무기와 미사일로 북한을 위협해왔다. 남한에 핵우산을 제공하며 핵무기를 실은 다양한 함정을 한반도 주변 해역에 배치해놓았다. 1993~1994년엔 북한을 폭격할 뻔했다. 2000년대엔 핵무기로 북한을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협박하기도 했다. 2016년부터는 김정은의 목을 베겠다는 이른바 참수작전을 포함한 대규모 군사훈련을 남한과 합동으로 실시해왔다. 이런 터에 북한이 미국에 맞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북한은 주한미군 같은 외국 군대를 두고 있지 않다. 중국이나 러시아의 핵우산도 받지 않고 있다. 미국은 남한과 해마다 수십 차례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벌이지만, 북한은 중국이나 러시아를 끌어들여 단 한 번도 합동군사훈련을 갖지 않는다. 북한 국방비는 많이 잡아도 남한의 10분의 1을 넘지 못하고 미국의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재래식 군비 경쟁을 도저히 할 수 없기에 핵과 미사일 개발에 매달리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멈추게 하려면 북한에 대한 미국의 위협을 먼저 중단하도록 하는 게 현실적이다.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포기해야 대화와 협력을 시작할 수 있다고 할 게 아니라, 핵무기와 미사일을 포기하도록 이끌기 위해 대화와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제2단계로, 미국은 주한미군을 유지하고 북한은 핵무력을 보유한 상태에서 우선 한국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평화협정을 맺는다. 평화협정이 맺어지면 주한미군이 철수될 것을 우려하는 미국과 주한미군 철수에 불안감이나 두려움을 가질 남한 보수층을 배려하는 과도기 조치다. 1950년 6월부터 1953년 7월까지 3년간 싸운 뒤 60여 년이나 지나도록 ‘정전’이나 ‘휴전’이라는 어정쩡하고 불안한 상태를 지속해오고 있는 비정상으로부터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제3단계로,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북한은 핵무력을 폐기한다. 그리고 남한과 북한은 군사력을 비슷하게 감축한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를 이루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미동맹이 약해지거나 폐기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에 이를 미리 준비하는 게 바람직하다.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에 관해 다시 생각해본다. 남한은 안보를 위해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강화하며 주한미군에 의존해왔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남한 대외정책의 목표가 되어버린 듯한 경우가 적지 않다. 미국이 북한을 인정하지 않고 적대정책을 지속하며 평화협정을 거부하는데, 한미동맹에 매달리면 남북 관계는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중국에 대한 견제와 봉쇄 정책을 펴는데 한미동맹을 강화하면 한중 관계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한미동맹이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통한 평화와 통일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고, 남한의 경제성장과 번영에 방해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2009년부터 한중 교역량은 한미 교역량의 두 배를 넘는 가운데 무역으로 먹고사는 남한이 중국으로부터 얻는 무역흑자는 전체 무역흑자의 90% 안팎이기 때문이다.

국제관계에는 영원한 우방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엔 적이 되고 오늘의 적이 내일엔 친구가 되는 게 현실이다. 국제관계에서 영원한 것은 국가이익밖에 없다. 국익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다. 냉전시대엔 미국과 남한의 국가 목표나 이익이 같거나 비슷했다. 반공을 국시로 삼아 소련, 중국, 북한 등을 적대시하는 게 안보를 위하고 국익을 꾀하는 길이었다. 탈냉전시대엔 미국과 남한의 국가 목표나 이익이 달라졌다. 미국은 북한을 적으로 삼으며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데서 국익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남한은 북한과 화해하고 협력하며 평화와 통일을 추구하고, 중국과 교류를 확대하며 경제번영을 이루는 게 국가 목표이자 이익이다.

남한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목표를 위해 미국에 대해서는 언젠가 헤어질 수 있는 동맹이라는 자주적 인식과 북한에 대해서는 앞으로 반드시 껴안아야 할 동포라는 민족적 시각을 지녀야 하지 않을까. 이와 아울러 미국과 중국 사이의 패권 경쟁에서는 국익을 위한 균형외교를 펼치는 게 바람직하다. 1950년대 중반부터 소련과 중국이 갈등과 분쟁을 벌이기 시작할 때 북한이 두 강대국 사이에서 국익을 추구하며 펼쳤던 ‘등거리 외교’도 배울 만하고, 노무현 정부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시도했던 ‘동북아 균형자’ 정책도 다시 검토해볼 만하다.



이재봉 ― 원광대학교 교수, 정치학·평화학 전공. 저서로 《두 눈으로 보는 북한》, 《이재봉의 법적 증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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