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제157호 2017년 11-12월호  

  석유가 민주주의를 가로막았다

  하승우

 티머시 미첼 지음,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옮김
탄소 민주주의―화석연료시대의 정치권력》(생각비행, 2017년)

 

인간이 쓰는 에너지는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개인적인 생활을 위한 에너지의 양은 예나 지금이나 크지 않고 그것이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웠다. 에너지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엄청나게 강해졌고, 에너지가 인간의 일하고 생활하는 방식을 결정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 이후의 풍요를 만든 건 화석연료였다. 인류는 엄청난 양의 화석연료를 불태워서 근대 민주주의의 불을 밝혔다. 산업‘혁명’이 아니라 산업의 전환이었다면 그 영향이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산업혁명은 지난 150년 동안 엄청난 양의 화석연료를 사용했다. “인류는 1860년대에 현대적 석유산업이 등장한 이래로 약 2조 배럴의 석유를 소비했다. 처음 1조 배럴을 태우는 데 약 130년이 걸렸고, 그다음 1조 배럴을 태우는 데는 겨우 22년이 걸렸다.”(390쪽)

화석연료가 만들어지려면 긴 축적의 시간과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1kg의 소고기를 생산하려면 7kg의 사료와 10만 리터의 물이 필요하다는 점을 신경 쓰는 사람이 없듯이, 석유 1리터를 만들려면 25톤가량의 고대 해양생물이 필요하고 우리가 1년 동안 태우는 화석연료를 생산하려면 지상의 식물과 동물이 400년 동안 만들어내는 양의 유기물질이 필요하다는 점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미국에서는 1칼로리의 먹거리(곡물)를 만들기 위해 10~15칼로리의 화석연료가 사용되고, 미국인 한 사람을 1년간 먹이려면 1,500리터(약 9.4배럴)의 석유가 필요하다는 점도 무시된다. 약 159리터(1배럴)의 석유에너지가 약 2만 5,000시간의 인간노동에 해당하고, 한 사람이 1주에 40시간씩 12.5년간 일한 노동량에 가깝다는 점도 마찬가지이다. 자본의 축적은 이 시간과 공간의 가치와 의미를 지워버렸고, 지금의 풍요가 지속되려면 미래의 가능성을 박탈해야 한다는 점은 체계적으로 무시되었다.

그런데 티머시 미첼은 인류사회에 미친 석탄과 석유의 영향력이 달랐다고 주장한다. 미첼은 이 영향을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접근하는데, 석탄을 이용한 산업화가 민주주의를 강화시켰다면 석유를 이용한 산업화는 민주주의를 약화시켰다고 주장한다. 석탄, 석유라는 에너지원의 특성과 그것이 생산되고 운반되는 방식, 판매를 통해 만들어지는 이윤, 이해관계를 가진 기업이나 국가 등이 민주주의에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초반의 대중정치로 인해 복지민주주의가 특정한 장소와 특정한 시기에 달성되었는데, 그러한 대중정치의 출현이 석탄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면, 현대 민주주의 정치의 한계는 석유와의 관계 속에서 규명될 수 있다. 결국 보다 민주적인 미래의 가능성은 화석연료시대의 종말에 대응할 정치적 수단에 달려 있다.”(382쪽)

석탄을 생산하는 광부들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탄광의 생산이 멈추면 공장과 사무실, 가정, 교통수단 등 연계된 모든 것이 함께 중단되었다. 그래서 광부나 노동자들이 생산설비와 운송수단을 파괴하거나 지연시키는 사보타주는 효과적으로 사회적인 영향력을 만들 수 있었다. 미첼은 “에너지의 흐름과 집중은 광부들의 요구를 다른 사람들의 요구와 연결시키고, 그들의 주장에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기술적 힘을 부여했다. 파업이 효과적이었던 것은 탄광이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반대로 땅속의 탄광을 공장과 사무실, 가정 또는 증기나 전력에 의존하는 운송수단 등 모든 곳으로 연결시키는 탄소의 흐름 때문이었다”(41쪽)고 주장한다. 연결된 한 과정을 끊어내거나 지연시키는 것만으로도 노동자들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었고, 일부의 사보타주가 전체 시스템을 마비시킬 수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석탄은 정부와 기업이 노동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만들면서 보편적인 정의를 강화시키는 도구가 되었다.

 

석유산업의 이해관계가 지배하는 세계

반면에 석유는 어떨까? 중동의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많은 강대국들이 전쟁을 불사한 개입을 해왔고, 세계를 주름잡는 몇몇 초국적 석유회사들이 유가시장에 개입해왔다는 점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미첼에 따르면, 석탄과 달리 석유는 인간이 아니라 펌프의 힘으로 생산되었고 액체 상태라 운송에도 사람의 손을 덜 탔으며 “송유관은 에너지의 흐름을 방해하는 인간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한 수단으로 발명되었다.”(61쪽) 이렇게 석유는 민주적인 기구를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화석연료 네트워크를 재조직했고 민주주의는 점점 약해졌다.

그리고 석탄에서 석유로의 전환이 자연스럽지도 않았다. 여기서 등장하는 익숙한 이름이 바로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다. 처칠 같은 주요 정치인들은 ‘앵글로―페르시안오일’ 같은 석유 독점기업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했다. 영국의 제1대 해군장관에 임명된 처칠은 해군을 강화시키면서 해군의 주요 에너지원을 석탄에서 석유로 바꿨다. 단순히 전함의 에너지원만 바뀐 게 아니라 석유를 비축할 대형 급유소, 석유 수입을 위한 유조선 선단 등이 필요했다. 그만큼 군사기구는 에너지원에 더욱더 의존하게 되었고 석유회사들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우리의 상식과 다르게 탐욕스런 초국적 석유 독점기업들의 목표는 “중요한 신규 유전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개발을 지연시키는 것”(88쪽)이었다. 석유기업들은 석유의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석유의 개발을 억제하려 했고, 이를 위해 석유 생산지를 통제해야만 했다.

미첼은 민족자결의 원칙, 민족자결권, 피치자의 동의와 같은 언어들이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식민지를 유지하기 위한 언어였다고 본다. 이 주장 자체는 새롭지 않은데, 흥미로운 점은 미첼이 이 점을 석유산업과의 연관성을 통해 증명한다는 점이다. 서구의 석유기업들은 석유의 생산을 제한하고 석유산업의 발전을 늦춰서 석유시장과 경제를 통제하려 했기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식민지를 계속 통치해야만 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마셜플랜을 통해 유럽 국가들도 대부분 석탄을 석유로 대체하는 에너지 네트워크를 수립했다. 그러면서 식민지와 본국 모두에서 민주주의는 약화되었고 석유산업의 이해관계가 전후의 국제통화체제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첼의 표현을 빌리면, “전후의 국제통화체제를 둘러싼 전투는 송유관의 경로와 직경 경쟁을 통해 벌어지고 있었다.”(184쪽) 그리고 이 과정에서 ‘경제’의 정치학이 등장했다.

석유가 전세계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네트워크의 기반일 뿐 아니라 전 지구적 화폐 흐름의 기반이 되면서, 막대한 석유가 매장된 중동은 각축장이 되었다. 중동에 대한 무기 판매와 석유산업의 관계는 점점 더 밀접해졌다. 석유 판매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비민주적인 중동의 집권세력들은 이를 투자할 곳이 필요했고, “무기는 실제 필요나 소비 가능성 따위에 제한받지 않고 대량으로 구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석유달러가 점점 더 많이 중동으로 흘러들면서, 고가의 무기 판매는 이러한 달러 리사이클링에 특별한 장치를 제공했다. 그것은 여느 상업적 제약과 무관하게 확장 가능한 것이었다.”(237쪽) 특히 “통치자의 가족과 인척, 정치적 동맹자들은 이런 역할을 하기에 좋은 위치에 있었고, 석유로부터 나오는 수입의 일부가 무기 구매로 환류되어 개인 재산을 엄청난 수준으로 축적할 수 있었다.”(238쪽) 석유와 무기산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동력이었고 서로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에너지 시스템

특히 미첼은 최근 몇십 년간의 석유와 민주주의의 문제가 ‘이슬람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석유 독점기업들은 석유 생산량을 억제하는 반시장적 질서를 통해서만 자신들의 이윤을 보장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런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이슬람 종교세력을 지원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사우디아라비아를 지배하는 이븐 사우드 왕가이다. 이런 “종교질서는 새로운 국가의 도덕적·법적 질서를 창출했고, 피지배 인구를 규율하고 정치적 반대를 억압하는 엄격한 사회체계를 부과했다.”(318쪽) 그런 점에서 미첼은 “이슬람운동 세력은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석유의 정치경제학의 내재적 요소가 되었다”(321쪽)고 보면서, 이를 ‘맥지하드’라는 말로 요약한다. ‘맥도날드’라는 첨단 자본주의와 ‘지하드’라는 이슬람 종교세력은 서로 대립하는 힘이 아니고, “외견상 비자본주의적 사회세력에 의존하는 질서를 통하지 않고서는 방대한 석유이윤의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맥지하드’는 드러낸다.(322쪽)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석유 가격을 약 4배 정도로 올렸던 1973년과 1974년의 석유위기는 금본위제로 불리던 국제 금융관리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듯 보였지만, 신자유주의가 이 위기를 활용하면서 민주주의는 더욱더 약화된다. 이 시기에는 생태계 위기에 대한 관심이나 석유 매장량의 한계에 대한 의심도 생기기 시작했지만, 약화된 민주주의는 이런 고민을 중요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2005년과 2008년 사이에 유가가 1973년과 1974년처럼 4배로 급등하면서 주택담보대출상품 붕괴와 전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유가 인상은 기초 식료품 가격을 2배로 뛰게 만들었고, 미국 내에서 비재래식 석유(오일셰일이나 오일샌드처럼 암석과 모래에서 추출된 석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렇지만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원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작업이다. 인류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화석연료를 사용해왔고, 이 속도가 늦춰지지 않는 이상 우리는 대체 수단을 찾기 어렵다. 그리고 피크오일(석유 생산 정점)과 화석연료 연소로 인한 기후변화는 인류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

석탄과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의 뒤를 이를 에너지원은 무엇이 될까? 핵발전이 대안일까, 아니면 태양열, 풍력, 지열 같은 재생에너지원이 대안일까? 미첼은 에너지원의 성격이 그것의 민주성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고 본다. 즉 재생에너지라고 해서 그것이 자동적으로 민주적인 사회를 지원하는 것은 아니다. 외려 대기업들이 이런 에너지원을 통해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인류세(人類世)’라는 지질학의 개념은 인류가 지구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산업혁명을 기준으로 잡는다. 이 시기는 인류가 화석연료를 고갈시킨 시대일 뿐 아니라 “이 짧은 시간대의 주체가 영향을 끼쳐 앞으로 감당하게 될 긴 시간대를 표현”(391쪽)하기도 한다. “지난 100년 동안 대규모로 발생했던, 그리고 1945년 이래로 그 밀도가 가속화되었던 집단적 생활양식은 다음 1,000년 동안의, 어쩌면 다음 5만 년 동안의 지구를 결정짓고 있다”(391쪽)는 식으로 말이다. 인류에게는 어떤 선택이 가능할까?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흔히 한국은 천연자원이 부족하고 석유를 100% 수입해서 쓰는 나라라고 한다. 그래서 한쪽에서는 핵발전소를 많이 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첼의 논리를 따른다면, 핵발전은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파괴한다. 핵발전의 에너지는 강력하지만 계획부터 운영, 사용 후 처리까지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민주적인 절차도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핵발전소의 사고는 나라 자체를 파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위협은 더욱더 근본적이다. 그러나 신고리 5·6호기 건설에 대한 공론화가 진행 중인 지금도, 에너지원이 부족하니 핵발전소를 더 지어야 한다는 주장은 여전히 지지를 받고 있다.

저자는 결정론을 비판하지만 자신의 논리에서도 결정론적인 시각이 드러나고, 특히 노동운동이나 사회운동의 주체적인 전략은 이 책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탄소 민주주의》는 화석연료를 태우며 만들어진 근대 민주주의가 처한 현실의 문제를 드러내지만 그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어떤 에너지로 어떤 삶을 일궈갈 것인지는 결국 우리의 선택이다. 지금은 전면적인 ‘에너지 민주주의’를 실현할 시점이다.


하승우 ―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저서로 《민주주의에 反하다》, 《시민에게 권력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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