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제155호 2017년 7-8월호  인쇄용  

 

  책을 내면서

  김종철

정부가 바뀐 것이 실감 나는 날들이다. 민주적 열망에 의해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최근 잇달아 내놓는 새로운 결정과 선언을 보면서 우리는 정치 현실과 관련해서 참으로 모처럼 흔쾌한 기분을 맛보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을 들자면, 고리원전 1호기의 폐쇄를 결정하면서 동시에 신규 원전 건설을 그만두겠다는 ‘탈핵선언’이다. 길고 복잡하게 설명할 것도 없이, 원전은 이미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었고, 따라서 이제는 끝내야 한다는 것은 세계의 상식이 된 지도 오래되었다. 그럼에도 여기에는 뿌리 깊은 기득권세력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역대 어느 정권도 이 문제를 명쾌히 정리할 의도가 없었고, 설사 의도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럴 만한 용기와 능력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여타 정권과는 다르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 보여주고 있다. 출범한 지 불과 한 달을 조금 넘긴 시점에서 곧장 ‘탈핵선언’을 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이 정부가 자신이 무엇 때문에 어떤 경로로 집권을 하게 되었는지를 잘 이해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이 정부는 진실된 의미에서 ‘민주정부’를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정부란 무엇인가? 다수 시민들의 상식과 생활감각을 공유하는 정부, 혹은 그 시민적 상식을 무엇보다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실천하는 정부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이른바 ‘4대강사업’의 진상규명을 다시 할 것을 결정한 것도 마찬가지다. 원래 4대강사업이란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극”이었다. 기가 막힌 것은 그 사기극이 선거를 통해서 집권한 ‘합법적인’ 정부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점이다. 4대강사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기초적인 상식마저 철저히 무시하며,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온갖 국내외의 반대여론을 외면하고 억누르면서 일방적으로 자행된 참으로 어이없는 국토 유린 행위였다. 그렇게 해서 결국 “세계에서도 드물게 아름답고 좋은 강들”이라고 외국인 하천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감탄해마지 않던 우리의 강과 그 유역 생태계가 참혹하게 파괴되고 만 것이다.

물론 이제 와서 재조사를 하고 이 ‘사업’의 진상을 정확히 규명한다고 해서 처참하게 망가진 강과 그 생태계가 원상대로 복원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갈수록 흉측한 모습을 드러내며 더러운 수로와 물웅덩이로 변해가는 강 생태계의 더이상의 악화를 막고, 최소한도로나마 강으로서의 기능을 살리려면 지금이라도 진상규명과 그에 따른 현실적으로 가능한 적절한 조치가 시급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행하는 데에는 복잡한 일이 필요 없다. 그냥 상식을 회복하면 되는 것이다.

생각하면,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몰상식이 지배하는 나라에 살면서, 상식과 진실에 굶주려왔던 것인가? 나라의 운영으로부터 개인들의 일상적 관계에 이르기까지 이 사회는 도처에서 횡행하는 거짓말로 더럽혀져왔고, 이 분위기는 미세먼지 못지않게 이제 우리 모두의 회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여겨져왔다. 그러나 민주정부가 들어서자 이런 분위기가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우리가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간 보람이 여기에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을 추하게 하고, 사회를 근원적으로 파괴하는 것은 ‘거짓말의 일상화’를 당연시하는 풍조이다. 그리고 그러한 풍조의 일차적 책임은 정치에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낙관을 허용하지 않는다. 민심을 완전히 배반한 전 정권과 함께 마땅히 엄정한 심판을 받았어야 할 구(舊) 여당은 여전히 국회의 상당수 의석을 차지한 채 신정부가 하려는 일마다 방해하고, 재계, 언론, 학계, 군부를 철통같이 지배하며 오랜 세월 고질적인 반민중성과 비민주성을 체화해온 기득권세력은 민주정부의 출현과 더불어 대두하기 시작한 ‘혁신’의 분위기에 끊임없이 찬물을 끼얹으며, 역사를 퇴행시키려 온갖 책략을 쓰고 있다. 이러한 방해와 저항은 물론 예견된 것들이다.

원래 평범한 사람들의 자유로운 삶이 보장되는 세상, 즉 참다운 민주주의를 향한 싸움은 험난하기 마련이다. 이제는 생태적 위기상황을 감안하더라도 공생의 논리가 아니면 세상이 더이상 존속할 수 없다는 것이 명확해진 오늘날에도 기득권세력은 자신의 특권적 지위를 조금도 양보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은 비극이고 재앙이지만, 우리가 불가피하게 부딪쳐야 하는 현실임에 틀림없다. 이런 현실을 좀더 깊게 이해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다운 세상을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열어갈 수 있을지를 모색하기 위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많다. 그중에서 지나간 날의 다양한 사회개혁의 움직임과 그 경로들, 그중에서도 ‘혁명’의 전개과정을 음미해보는 것은 오늘의 상황에서 매우 필요한 일일 것이다.

마침 금년은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현대사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의 전 역사를 통해서 가장 중요한 ‘혁명’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러시아혁명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여러가지 각도에서의 해석과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확실한 것은 러시아혁명에 대한 공정하고 깊이 있는 이해는 모처럼 민주정부를 성립시켰으나 온갖 방해와 저항에 직면해 있는 오늘날 이 나라 개혁파 지성들의 시야를 열어주는 데도 적잖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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