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제152호 2017년 1-2월호  인쇄용  

 

  시민의회, 왜 필요한가

  김상준

시민의회란 국회 밖의 또하나의 국민적 합의기구다. 시민의회는 국회가 해결해야 함에도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국가의 주요 쟁점 사안들을 대안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법적 제도다. 시민의회는 이러한 방식으로 국회의 기능을 보완한다.

필자가 이런 생각을 시작한 것은 2003년부터다. 부안 핵폐기장 문제로 해당 지역이 소위 민란 수준으로 뒤집어진 즈음이었다. 그 문제만이 아니었다. 그 이전 새만금 개발을 둘러싼 갈등도 심각했다. 또 그 이전 의약분업 사태는 어떠했던가. 김대중, 노무현 연이은 민주정부 시절이련만 봉합되지 않는 대형 사회갈등은 심각했다. 이러한 사태에 정부는 무력했다. 국회는 더 심각했다. 사실상 부재(不在)했다. 자기 당, 또는 국회의원 각자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정략적 ‘립서비스’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국회의원 누구도 팔 걷고, 공적·정치적 소명·생명을 걸고 나서지 않았다.

고심의 첫 결과는 2004년 발표한 ‘성찰적 합의체제’였고, 2005년에는 이를 발전시켜 ‘시민의회’라는 법적 제도를 제안하게 되었다. 이후 2008년 광우병 사태까지를 보면서 나는 그 소회, 또는 시민의회 제안의 취지를 다음과 같이 썼다.

새만금 개발, 의약분업 문제, 위도 핵폐기물 처리장 문제, 대통령 탄핵 문제, 광우병 관련 촛불집회 등의 경과는 현재 우리사회 공공정책과 정치적 결정 과정에 많은 문제가 잠재할 뿐 아니라, 이들 문제가 충격적이고 돌발적인 방식으로 터져 나옴을 말해준다. 잠재한 문제들은 일상적 시기에는 어떠한 표현의 통로도 없다가 일단 문제가 제기되면 예기치 못한 방식과 경로를 통해 한꺼번에 분출하고, 이렇듯 분출한 흐름들은 상황의 압력 아래 잠정적으로 무마되거나 고형화한다. 하지만 그 귀결에 대해서는 문제의 당사자 어느 쪽도―‘진’ 쪽만이 아니라 ‘이긴’ 쪽도―진심으로 승복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진정한 토론도, 합의도, 승복도 찾을 수 없다. 법에 의한 강제적 합의나 결정은 승복이 아니라 오히려 원한의 무거운 찌꺼기들을 더 깊이 침전시키기만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문제들의 발생, 진행, 귀결을 돌이켜볼 때, 사회운영의 양대 축이라 할 효율과 정의 모두 우리사회에서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미지의 민주주의》(2011년 증보판), 아카넷, 196쪽, 315쪽(2009년 초판 183쪽, 290쪽).

2004~2005년 새로운 제도 구상을 고심하면서 가장 큰 참고가 되었던 선례는 덴마크 시민합의회의였다. 주로 과학기술이 공공생활에 가져다주는 예상치 못한 결과(위험)에 대해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미리 검토하고 그 결과(관련 분야 예비 법안)를 의회에 제안하는 법적 기구였다.

내가 구상한 시민의회의 핵심 원리인 ‘무작위 추첨 선발’은 주로 이 제도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나왔다. 민주주의 정당성의 두 기초는 선거와 추첨, 양 축에 있음을 정치사상사와 철학 공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국회는 선거에, 시민의회는 추첨에 그 정당성의 근거를 두고 있다. 국회와 시민의회는 두 정당성에 기초해 병립할 수 있다.

그 당시 한국에서도 유사한 소규모의 실험이 있었다. 1998년과 1999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유전자조작식품의 안전과 생명윤리에 관한 합의회의’와 ‘생명복제기술 합의회의’를 열었다. 2001년 주요 시민단체들은 ‘개인 유전정보 데이터베이스의 유용성에 대한 합의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덴마크 시민합의회의와 한국의 합의회의들을 연구하면서 나는 같은 방법과 원리를 정치 분야, 즉 공공정책과 정치개혁에도 확장 적용할 수 있다고, 아니, 해야만 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2005년 시민의회는 헌법기구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형태의 시민의회가 이후 여러 나라에서 실제로 법제화되어 소집되었다. 이들 시민의회가 다루었던 의제는 크게 둘이다. 하나는 선거법 개정(캐나다, 네덜란드, 호주 등), 다른 하나는 개헌(아이슬란드, 아일랜드)이다. 현실적으로 이 두 문제 모두 국회가 스스로 해결하기 어렵다. 중이 제 머리 깎을 수 없는 원리와 같다. 선거법으로 당선된 국회의원들이 그 선거법을 제대로 고칠 리 없다. 한국을 봐도 마찬가지다. 지역주의와 대량 사표(死票)를 유발하는, 그토록 말 많았던 망국적 선거법이 의연히 건재하고 있다. 놀랐던 것은 과거 노무현 정부 탄핵정국 이후 여당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을 때조차도 선거법은 고쳐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당시 제대로 된 문제제기조차 없었다. 선거에서 이긴 이상, 자신을 국회로 보내준 그 선거법의 수혜자인 여당 그리고 여야 막론 국회의원 개개인 모두가 선거법을 발본색원 고칠 생각을 할 수도 없고, 할 리도 없다. 개헌 역시 마찬가지다. 혁명 또는 혁명에 준하는 극히 비상한 상황이 아니면 국회에서 제대로 된 개헌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우리가 세계 역사에서 보는 혁명적 개헌이란 기존 국회를 타도하거나 해산시킨 후, 혁명적으로 수립한 제헌의회에서 새로운 헌법을 채택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시민의회라는 제도적 통로를 통해 혁명적인 또는 준혁명적인 변화를 지극히 평화적인 방식으로, 더 나아가 가장 공정하고 공개적이며 이성적인 방식으로 이루어낼 수 있다. 내가 애초에 고심했던 시민의회의 궁극적 기능이 그러한 것이었고, 실제 시행된 외국의 사례들을 보면서 그것이 현실에서 가능함을 알았다. 그러나 지금껏 그 생각은 우리나라에서는 ‘가능하다’에 머물러 있었다. 과연 이 나라 이 땅에서 그것이 실제로 가능할 것인가? 현실이 될 수 있는가?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난 알 수 없었다. 그저 깜깜하고 차가운 땅 속에서 간신히 숨 쉬고 있는 한 알 씨앗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 한 달 동안 난 알게 되었다. 그것은 가능하다. 지난 10월 26일(나는 ‘제2의 10·26’이라 부른다) 이후 불과 한 달 10여 일간, 모든 잠재성이 현실성으로 바뀌었다.

 

촛불로 나타난 국민적 주권의지

이 놀라운 사태변화의 핵심, 이 변화를 낳은 ‘실재’의 힘은 오직 하나다. 급격한 변화의 여러 현상에 헷갈려 이 점을 놓쳐서는 안된다. 현재 여러 사태변화의 유일한 근거, 근원적 힘, 여기에 주목하고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여러 복잡한 부차적 사태변화에 속지 않는다. 그것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듯, 그토록 거대하면서도 그토록 평화로웠던, 지금까지 세계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진실로 특이한 ‘주권적 국민’의 출현이다. 이 거대한 몸체는 오직 한곳에 집중했다. 국가의 핵심 문제, 국가권력의 문제, 주권 문제다. 대통령의 권력 행사, 여기에 주목하고 집중했다.

지금껏 수없이 강조돼온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언명은 사실 지극히 추상적이다. 선언일 뿐이다. 지금까지는 고작 대통령 뽑고, 국회의원 뽑는 데 국한된, 그걸로 끝나는 권력이었다. 그것이 어떻게 자신을 표현하는가, 그것이 어떻게 자신을 형상화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다. 그러나 동시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동시에 무소불위의 위력을 가지는 언명이기도 하다. 그 무소불위, 천수불의 의미를 이제 현실로 보여야 한다. 구현해야 한다.

지난 한 달 10여 일, 우리가 여실히 목도하고 동시에 그 일부가 되어 함께했던 것은 일몰의 어두운 지평선에 허리를 펴고 일어서는 거인의 모습, 그 측량할 수 없는 몸뚱이였다. 지구를 딛고 우주를 받치는 것만 같았던, 그 거대한 허리를 서서히 그러나 아무도 저항할 수 없을 것 같은 위력으로 쭉 펴고야 말았던, 바로 그 몸체였다. 우리는 400년 전의 한 사람, 겁 많았던 영국인 토마스 홉스가 상상했던 그 바다괴물, 리바이어던으로서의 국가주권의 담당자, 절대적 권력자·독재자로서의 왕권·주권이 아니라, 그 세포를 이루는 모든 국민이 생생하게 살아 우뚝 선 주체가 되는, 권력자가 되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주권의 출현을 우리 눈으로 생생히 보았다. 한 방울의 피도 없었다.

세계사를 돌아보자.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홉스 리바이어던의 국가주권의 역사는 실은 피와 정복의 역사, 폭력과 지배의 역사였다. 그러나 지난 한 달여 이 땅에서 우리 온몸으로 배운 새로운 주권의 역사는 깨어 있는, 평화의, 놀라운 위력의 역사였다. 이 대비는 현저하다.

지난 한 달여 이 땅에서 일어난 모든 변화의 중심, 실로 ‘유일한 실재’는 바로 이것이다.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이 힘을 믿고 가야 한다. 국회 탄핵 의결도, 헌재 판결도, 그 후의 일정도 마찬가지다. 국회 탄핵 의결만 해도 그렇다. 탄핵안 가결이든 부결이든 상관없었다. 가결, 그것도 압도적 가결이 되어 국회가 살았지만, 만일 부결되었다면 국회는 그 순간 날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가짜 국회가 아닌 진짜 국회, 전혀 새로운 국회가 섰을 것이다. 헌법재판소 역시 똑같다. 탄핵안을 기각시키면 이번에는 헌재가 날아간다. 헌재의 헌법적 정당성이 공중 분해된다. 황교안 대행 체제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현란한 플레이를 펼치고 싶은 모든 정치인, 정파, 정치세력도 꼭 마찬가지다. 이 ‘유일한 실재’에 충실하지 않으면 모두가 사라진다.

엄동설한이 왔다고 내심 기뻐하는 이들, 그래서 촛불은 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두려워해야 한다. 여야 마찬가지다. 이미 일상은 당신들이 생각했던 세계가 아니다. 지극히 특별한 순간이다. 오직 하나의‘유일한 실재’에 충실해야 한다. 그래야 살 것이다. 그 유일한 실재가, 우리 헌법 1조 2항의 그 추상적인 존재가 현실의 몸체가 되도록 하는, 그 길에 나서는 개인·세력·집단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이러한 순간에야말로 추상적인 말은 필요 없다. 감상과 감흥도 일순이다. 그 ‘유일한 실재’를 현실화하는 구체적인 경로와 방법이 중요하다. 국민적 주권의지가 현실로 될 몸뚱이, 뜻만 아니라 몸통과 손발과 힘을 가진 현실의 실체가 될―반드시 그렇게 만들어야 할―그 경로와 방법이 무엇일까? 모두 이것 하나만 생각하고, 여기에 충실해야 한다.

 

사회개혁기구와 시민의회

그 경로와 방법 역시 그‘유일한 실재’가 결정할 일이다. 그렇게 될 것이다. 그것을 나는 모른다. 다만 보잘것없는 필자가 우둔한 머리로 지금 생각해보는 것은 다음과 같다. 우선 ‘사회개혁기구’를 범정파적으로 출범시켜야 한다. 유력한 야권 대선 주자들이 손을 잡고 앞장서주면 좋겠다. 실제로 한 야권 유력 후보가 제안했던 것이기도 하다. 다만 크게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고 조그맣게 자신 없게 말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지 않다. 이 안은 이 나라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한다.

신망 있는 시민사회 지도자들이 먼저 정치지도자들에게 권고하고 동참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이번 탄핵에 ‘가(可)’ 표를 던진 소위 ‘비박’의 양심 있는 국회의원들이라면, 그들의 지도자들이라면 왜 그 일에 빠지겠는가. 다가오는 대선은 수백만 촛불 민의로 현전(現前)한 ‘국민적 주권의지’의 선택에 의해 결판난다. 그 의지 앞에 가장 깨끗하고 충직한 심장을 열어 보이는 자가 선택될 것이다.

87년 개헌이란 결국 개헌특위 여야 8인 간사의 밀실 타협의 결과였다. 이번엔 그럴 수 없다. 주권적 국민의 의지는 우선 범정파적 사회개혁기구에서 첫 번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의지에 몸체를 주는 기도(祈禱), 공덕(功德)의 제1 단계다. 새 나라 어젠더 설정이라 해도 좋다. 범정파의 논의를 통해 헌법상의, 또는 하위 법률상의 시급한 주요 개혁 항목들이 정리될 것이다(필자가 생각하는 서넛의 굵직한 축이 있지만, 여기서 그것을 늘어놓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기구 내에서 정리될 문제다).

사회개혁기구에서 제기된 어젠더들은 각 항목마다 두셋 정도의 입장들로 정리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범정파와 시민사회의 의견이 다채롭게 제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들 들어, 대통령제 4년 중임이냐, 내각제냐, 아니면 프랑스식 이원제냐는 식의 선택지다. 또는 선거제도에 관해서는 우선 대통령 결선투표제 문제의 가부가 있겠고, 어쩌면 그보다 중요할 국회 선거법에 관해서는 현행 소선거 다수 득표제냐, 독일형 연동 비례대표제냐, 아니면 또다른 대안적 제도(예를 들어 단기이양식 투표제도와 같이 많은 정치학자들이 이상적인 선거제도로 생각하는 경우들)냐 같은 선택지가 주어진다(참고로 또다른 예를 들자면 시민의회를 헌법적 기관으로 둘 것이냐 아니면 법률적 제도로 둘 것이냐와 같은 선택지도 있다).

마지막 남은 문제는 이렇게 나열된, 각 주요 사항마다 복수로 제출된 그 어젠더들을 어떻게 최종 결정하여 그것을 현실로, 법안으로, 제도로 구현할 것인가의 문제다. 현실화시킬 구체적인 방법의 문제다. 기존 의회제도는 이 마지막 단계에서 늘 주저앉았다. 우리 국회도 마찬가지다. 내부, 각 당 그리고 각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말만 무성할 뿐 결국 결정할 수가 없다. 개헌적 사항이 반드시 포함될 이 결정은 개헌선의 3분의 2 다수를 반드시 요청한다. 과연 현재 국회의 이합집산·동상이몽으로 보아 그 수준의 합의를 이루어낼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반드시 통과해야 하지만 현재 국회의 내적 특성상 해결하지 못할 이런 상황을 타개할, 현재로는 유일하게 실현 가능한 경로가 시민의회다. 사회개혁기구에서 정리한 어젠더의 심의를 국회가 소집한 시민의회에 부치는 것이다. 이미 여러 사례를 통해 공통적으로 확인된 시민의회 심의과정의 두드러진 강점은, 초기에는 여러 의제가 경쟁하다가 중반에는 둘로, 종국에는 하나로 절대다수가 모아진다는 점이다. 또한 시민의회의 논의과정은 공정하고, 공개적이며, 이성적이다. 이미 입증되어 있다.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미지의 민주주의》(2011년 증보판) 9장, 10장 참고). 국민이 믿고 동의할 수 있다. 이렇게 모아진 합의는 국회의 심의·결정에 부쳐질 것이다. 개헌에 관한 사항은 3분의 2의 합의가 필요하다. 그렇게 모아진 합의에 국회는 부수적 보완(국민, 여론이 동의할)은 할 수 있겠지만, 부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개헌에 관련된 사항은 모여서 개헌안이 될 것이고, 이는 최종적으로 국민투표에 부쳐진다.

이 시나리오는 대선과 상충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선을 정말 대선답게 만들 것이다. 국민이 후보를 바라보는 대선이 아니라, 대선 후보가 국민을 바라보는 대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대선투표 이전에 완료될지, 그리하여 차기 대선이 새 헌법에 따라 치러질지 아니면 대선 이후까지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어느 경우든 상관없다. 어떤 경우든 대선은 현 상황에서 오직‘유일한 실재’, 즉 국민적 주권의지의 강력한 몸체 속에서 치러질 것이기 때문이다.

 

보론

시민의회는 이미 세계 헌법사, 헌정사의 주요 개념의 하나가 되어 있을 만큼 충분히 검증된 제도다. 국회의원과 동수의 시민의회 의원을 지역·성별·연령을 고려한, 층화 후 무작위 표본 추출로 뽑으면 된다. 시민의회의 본체는 물론 무작위 선발된 시민의원단이다. 여기에 정당, 시민사회단체의 지도적 힘을 적절히 배합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 시민의회는 국회를 보완한다. 국회 내부에서 원만하게 합의하기 어려운 선거법이나 헌법상의 권력구조 개편 문제에 대해 시민들의 합의를 가장 공정한 방법으로 모을 수 있는, 이미 확실하게 검증된 방법이다. 시민의회는 국회가 발의하여 소집되는 기구이니만큼 국회의 긴밀한 협력과 지지 위에서 진행된다. 시민의회 소집 기간 국회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원은 시민의회의 성공을 위한 필수적 조건이다.

시민의회 소집은 지금의 기만적 개헌 논의를 원천 봉쇄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길 수 없다. 개헌 논의는 시민의회로 넘겨라. 그럴 때 연막용 개헌 논의는 사라지고 실효 있고 내실 있는 개헌 논의가 차분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또 그래야 대통령 탄핵 이후의 만만치 않은 정치일정이 기만적 개헌론에 휘말리지 않고 힘차게 나갈 수 있다. 또하나의 큰 부수 효과를 예상할 수 있다. 시민의회 소집에 대한 동의를 얻는 과정, 법률 입안과 통과 과정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정당, 국회, 시민사회를 포괄하는 정치적 연대가 형성될 것인데, 그렇게 형성된 연대는 민주적 차기 정부의 태반이자 등뼈 역할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정당과 시민단체는 시민의회 앞에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개헌 방향을 최선의 방식(시나리오 워크숍 같은)으로 제안하라. 시민의원들과 한 몸이 되어 같이 토론하라. 정제된 차분한 토론이 최선의 방법을 찾는다. 그렇게 모아진 합의를 국회는 받아서 심의, 의결하면 된다. 이로써 국민 속에서 국회는 한 단계 높은 형태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야 3당과 새누리 회개파가 시민의회를 발안해주기 바란다. ‘시민의회법’ 법안 마련은 국회와 학계, 시민사회의 몇 사람만 모여 머리를 맞대면 금방 할 수 있다. 이미 여러 나라에 참고할 시민의회법들이 여럿 존재한다. 시행착오들과 그에 대한 해법도 이미 충분히 나와 있다. 우리 사정에 맞게 약간의 창조적 추가나 변형만 가하면 된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유형의 시민의회가 소집되었고(캐나다, 네덜란드, 브라질, 인도, 중국 등, 주로 선거법 개정을 위해), 개헌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사례도 있다(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세계사상 유례없는 성격의 거대하고 평화로운 주권적 국민의지가 매주 출현하고 있는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을 볼 때, 지금까지 존재했던 어떤 시민의회보다 더 높은 수준의 시민의회가 이 땅에 탄생할 것을 예상해본다.

 


김상준 ― 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 저서로 《미지의 민주주의》, 《진화하는 민주주의》, 《맹자의 땀 성왕의 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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