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제146호 2016년 1-2월호  인쇄용  

 

 '햇빛세상', 바보들이 만든다

  박승옥

세상의 모든 일과 사물은 보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그리고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제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195개국이 합의한 파리협정을 놓고도 그렇다. 이번 협정을 주도한 국가의 대통령과 수상 등 정치가들의 평가는 ‘균형 잡힌 합의’, ‘전환점’, ‘생명줄’ 등의 표현을 동원해 긍정 일색이다. 국제 환경단체들도 유보를 달긴 했지만 대체로 이른바 ‘비판적 지지’ 견해를 보이고 있다(물론 비판적 지지의 결과가 어떠한 것일지는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을 인민의 힘으로 무너뜨리고 직선제 대통령을 뽑았던 1987년 한국 대선의 결과를 놓고 잠시 생각해보면 된다).

한편 1988년 미국 의회 연설을 통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처음으로 전세계 국가와 기업, 인민들에게 강렬하게 부각시켰던 제임스 핸슨의, ‘사기’라는 정반대 평가도 있다. 핸슨의 주장은 간단하다. 화석연료의 생산과 사용을 금지 또는 감축하는 구속력 있는 강력한 실행계획 없이 말잔치뿐인 약속은 기만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파리협정 전문 어디에도 ‘화석연료’란 단어는 아예 없다. 국제 석유메이저와 월가의 금융마피아들을 비롯 화석연료 거대 기업과 이들의 대리인들인 정치가들의 강력한 로비 덕분이다.

기후변화의 주범이 온실가스이고 그 온실가스의 3분의 2 정도가 석탄, 석유, 가스 등을 불태운 결과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그런데도 전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서 수만 명이 모여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자고 약속하면서도 ‘화석연료’ 자체를 연도별로 감축한다든지 그것에 세금을 부과한다든지 하는 정책은 없고, 온갖 종류의 거창한 숫자만 난무할 뿐이다. 화석연료 기업의 국가와 미디어에 대한 막강한 로비력과 영향력을 다시 한번 실감하지 않을 수 없는 국제 기후정치의 한바탕 쇼가 파리 기후변화 총회였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이 지점에서 우리는 곰곰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기후변화는 누구의 책임이고, 온실가스 감축을 실현할 수 있는 의지와 실행력을 갖고 있는 책임 있는 주체는 누구인가? 국가인가? 기업인가? 사기를 친 국가지도자와 장관들은 누가 뽑았고, 그런 정부에 에너지 주권을 위임한 사람들이 누구인가? 그런 괴물 자본가들에게 누가 이윤을 갖다주었는가?

기후변화를 일으켰고, 동시에 온실가스 감축을 실천에 옮겨야 할 주체는 거칠게 말하면 셋이다. 첫째, 국가와 정부, 둘째, 기업, 셋째, 에너지 주권자인 인민. 이 세 주체 모두 기후변화의 주범들이다. 무엇보다도 기후변화의 책임은 지난 수백 년 동안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화와 경제성장, 발전을 추구한 이른바 선진국과 오직 이윤만을 추구했던 기업들에 있다. 자본주의국가건 사회주의국가건 시꺼먼 석유국가였던 것은 매한가지였다. 김일성도 박정희도 공장 굴뚝에서 울컥울컥 괴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시꺼먼 매연을 보고 희열을 느낀 무지한 독재자들이긴 마찬가지였다. 1970년 4월, 박정희는 포항제철 기공식장에서 “완공된 공장의 하늘을 굴뚝에서 솟구치는 검은 연기로 뒤덮이도록 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영국과 유럽 대륙에서 유래한 산성비 피해로 발칵 뒤집힌 상태였고, 바로 그해 5월에 스웨덴 사민당 정부는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 간 협력을 도모하는 국제회의를 제안했는데도 말이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또 있을까. 1972년 6월 ‘오직 하나뿐인 지구’라는 주제로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제1차 유엔인간환경회의는 산성비가 만든 강요된 선물인 셈이었다.

교토의정서를 무력화시킨 것도 미국을 필두로 한 국가와 기업들이었다. 무한성장, 무제한의 이윤을 추구하는 맘몬으로 기후변화라는 사실 자체까지 부정하며 온갖 시꺼먼 흑색선전과 여론 조작을 일삼는 국제 화석연료 카르텔의 행태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문제는 인민 자신들이다. 기후변화의 책임은 명백히 에너지 주권자인 인민 스스로에게 있다. 기업이 불태우는 화석연료를 용인한 것은 누구이며, 기업이 생산한 값싼 화석연료를 아무런 자각도 없이 물 쓰듯이 소비한 당사자가 누구인가? 화석연료가 갖다준 전무후무한 풍요를 누리면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일상의 소비생활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국가와 기업의 책임을 외면하고 희석시키자는 얘기가 아니다. 국가와 기업을 비판하고 책임을 묻고 국가와 기업을 바꾸는 힘을 갖고 있는 주체는 당연히 인민들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상식을 이제는 정면에서 되물어야 한다. 국가권력, 기업권력, 구조악, 법, 제도, 체제 등등의 단어 뒤에 숨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외면하는 축소 지향의 에너지 주권의식으로는 결코 기후재앙의 지옥문을 닫을 수 없다. 인민이 생각을 바꾸고 삶의 방식을 바꿔 에너지 주권을 행사하고 세상을 바꾸지 않으면 국가와 기업도 바뀌지 않고 기후변화도 바뀌지 않는다.

일찍이 간디가 했던 뼈아픈 자성은 기후변화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영국이 인도를 뺏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도를 바친 것이다. 영국인들이 자력으로 인도에 살고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영국인들이 살도록 만들어준 것이다.…그 회사(동인도회사) 사람들을 도운 것은 누구였던가? 회사 사람들의 돈을 보고 유혹을 당한 것은 누구였던가? 회사의 상품을 누가 사주었던가?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바로 우리들이 그 모든 것을 했던 것이다.…우리가 영국인들에게 인도를 바치고, 영국인들에게 인도를 지배해달라고 한 것이다.(C. 더글러스 러미스, 김종철 옮김, 《간디의 ‘위험한’ 평화헌법》, 녹색평론사, 2014, 43쪽에서 재인용)

기후변화에 대응해서 국가와 기업에 현명한 노아의 방주 건설을 맡긴다는 것은 연목구어나 다름없다. 지금은 인민 스스로 기후재앙에서 생존해나갈 구조선을 만들어나갈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시기이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파리협약은 어쨌든 그나마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간 전진이다. 문제는 다시 우리들 자신이다.

 

한국의 에너지 시민운동을 돌아보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핵과 화석연료 에너지 중심에서 해, 바람, 물, 바이오 등 새로운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전환하는 방법은 사실 의외로 간단하다. 첫째, 온실가스는 줄이고, 둘째, 재생에너지는 늘리고, 그리고 셋째, 핵과 화석연료 발전소는 없애면 된다. 단 없애는 것 중에 핵발전소 폭발은 포함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체제 전환 이전에 신속하고도 혁명에 버금가는 에너지 절약이 최우선이라는 말이다. 햇빛발전소, 바람발전소, 바이오가스발전소 등을 짓는 건설사업 이전에 공장과 건물, 주택을 에너지 절전소로 만들고, 자동차 대신 두 발로 걷고 자전거를 타는 등의 에너지 절약과 삶의 방식 전환이 우선인 것이다. 고에너지 투입의 산업체제를 에너지 투입 제로에 가까운 적정기술 산업체제로 바꾸는 에너지체제 전환은 모든 인민들이 의지를 갖고 동의한다면 금방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늘 그렇게 녹록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역사상 풍요의 최극단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석유사회의 한없이 편리한 일상생활을 하루아침에 포기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석유 이후의 삶으로 인민들이 스스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루아침에 생각을 바꾸고 깨달음을 얻는 것은 극히 예외의 경우에나 가능한 일이다. 붓다도 생활 자체를 완전히 바꾸는 출가를 통해 몇년 동안의 고행과 수행과 구도 끝에 중도의 진리를 얻었다.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거나 또는 번갯불을 맞고 갑자기 머릿속에서 음악이 샘물처럼 솟아나는 ‘뮤지코필리아’와도 같은 정신질환의 경우라면 혹 모르지만 말이다(올리버 색스, 《뮤지코필리아》). 라파누이(이스터)섬 원주민들은 울창했던 원시림의 마지막 나무 하나가 잘려나가는 그 종말의 시점까지 나무 자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최초의 도시국가인 수메르는 에너지원이자 생존의 근거인 울창한 삼나무 숲을 모두 벌채해버리고는 사막으로 변해버린 도시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라파누이와 수메르 도시국가 인민들의 숲 파괴는 우리 자신의 자화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끔찍한 거울이다. 라파누이 주민들이 건설한 모아이 석상 문화 이후의 삶이 전쟁과 식량 부족으로 인한 생존의 식인문화였다는 사실은 석유문명 이후의 우리의 미래를 가늠케 한다.

우리는 부모와 자식 사이, 피를 나눈 형제자매 사이에서조차 어떤 견해나 생활방식에 대해 설득해서 기존의 견해나 생활방식을 바꾸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면서 산다. 하물며 온실가스 감축의 일상생활과 정치권력을 바꾸는 정치·경제·사회 체제 전환의 문제는 더 말할 나위조차 없다. 그래서 강제로 체제 자체를 바꾸기 위해 법과 제도를 개정하는 방식이 훨씬 더 강력하고도 실현 가능한 선택인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선거민주주의를 적극 활용, 이미지 좋은 정치인을 내세워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전략이 세상을 바꾸는 훨씬 쉬운 지름길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소수의 기획력 있고 머리 좋고 유능한 엘리트들이 여기저기서 대선캠프를 차린다. 그래서 무력혁명을 통한 사회변화 대신 선거혁명이란 말이 즐겨 사용된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의 시민사회운동이 지난 30여 년 동안 대체로 그런 길을 걸어왔다고 할 수 있다. 법과 제도를 바꾸고 권력자를 바꿔 에너지 전환을 꾀하는 방식은 물론 실제로 의미도 있고 실효성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근본의 에너지체제 전환을 가져올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있다. 권력자와 지도자와 국가와 기업에 맡겨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인민들이 뼈아프게 자각하고 있다. 자유인들이 직접 스스로 나서서 에너지 주권을 행사하는 패러다임 전환의 기후행동, 자유인들의 연대운동으로 펼치는 에너지전환운동으로 방향을 바꾸어야만 한다는 현실인식이 급속히 확산되어가고 있다. 빵과 자유를 약속하고 억압과 착취로부터의 해방을 공언했던 사회주의 엘리트 권력자들이 인민들에게 도대체 무엇을 주었던가. 해방은 착각이었고 체제 전환은 잔인한 살육과 도로아미타불이었다. 에너지 전환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시민운동이 본격 시작된 것은 2000년 10월 5일 환경운동연합 부설 기관으로 에너지대안센터가 설립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그 이전 1998년 결성된 에너지대안포럼의 활동과 훨씬 더 이전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치하에서 1982년 공해문제연구소를 효시로 시작된 한국 환경운동의 가시밭길과도 같았던 전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보다 몇달 전인 2000년 6월에는 2002년까지 에너지 절약 10%를 목표로 전국의 거의 모든 환경·소비자·여성 단체들이 연대해서 에너지절약시민연대(2001년 에너지시민연대로 개칭, 현재 250여 개 환경·소비자·여성 단체로 구성)를 출범시켰다. 이 또한 10여 년이 넘는 시민사회운동의 성과였다.

에너지대안센터를 비롯한 시민사회운동의 뚜렷한 법제도 개선 활동 가운데 하나가 2002년 3월 25일 개정된 ‘대체에너지 개발 및 이용·보급 촉진법’이다. 이 법을 통해 민간의 재생에너지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국가가 의무 구입하는 발전차액지원제도(FIT)가 가능해졌다. 1992년 독일 중서부의 작은 도시 아헨에서 세계 최초로 도입된 재생에너지 기준가격 의무 구매 제도가 독일 중앙정부의 정책으로 채택된 것이 2000년이었다. 독일에 비해 결코 늦지 않았고, 시기로만 보면 전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이었다.

이후 시행령 개정 등 법제도 정비와 한전 계통연계 연구용역 등을 거쳐 2005년 민간 재생에너지 발전소의 시대가 비로소 열리게 되었다. 2005년 4월, 이미 2003년 5월에 준공을 마치고 전력 판매 시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한국 최초의 재생에너지 민간 햇빛발전소인 부암동 시민발전소 1호가 전력 판매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2005년 6월 10일에는 에너지대안센터를 기반으로 한국 최초로 시민 주체의 민간 재생에너지 발전회사인 ‘유한회사 시민발전’이 문을 열었다. 6월 10일을 창립일로 정한 것은 1987년 군사독재정권을 무너뜨린 6월항쟁의 역사를 이어받아 에너지 주권자의 연대와 연합을 통해 에너지 독재시대를 끝내자는 염원의 표시였다. ‘시민발전’은 에너지대안센터의 시민발전소운동을 이어받아 시민 출자로 소형 햇빛발전소를 건설하는 운동을 벌여나갔다. 그리고 주민들의 힘으로 핵폐기장 건설을 막아낸 부안의 생명평화마중물 사무실, 부안성당, 원불교 부안교당 등에 소형 시민햇빛발전소를 지으면서 부안시민발전소의 설립을 돕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발전차액지원제도는 곧바로 좌초하고 만다.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이 제도 자체가 폐기되어버린 것이다. 에너지대안센터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대와 항의는 간단히 묵살되었다. 애초에 500MW 한도 내에서만 국가보조금을 지원하기로 한 한계용량의 설정 자체가 노무현 정부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발전차액지원제도에 무지하거나 무관심했던 재벌들이 햇빛발전소가 국가에서 고수익을 보장해주는 수지맞는 황금알 장사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뒤늦게 메가와트 단위의 대규모 햇빛발전소를 건설하면서 정부에 대한 로비를 통해 간단히 500MW 한계용량을 늘려버리고, 제도 시한까지 연장하는 힘을 발휘한 것은 노무현 정부의 실체를 확인시켜준 씁쓸한 후일담이다. ‘시민발전’이 결국 청산 절차를 밟게 된 것은 이처럼 소형 시민햇빛발전소 사업 자체가 불가능한 법과 제도의 변화된 상황이 주요인이었다.

신자유주의를 수용한 이른바 민주정부 10년의 법과 제도 개선이 얼마나 허망한 물거품이었는지는 재생에너지 제도와 정책의 역사만 간단히 살펴보아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지금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1%도 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주권자인 인민이 스스로 정치와 통치에 직접 나서서 권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결국은 엘리트 귀족정이나 민주주의를 가장한 독재로 귀결되고 만다. 한국의 대의제 위임 민주주의는 이 같은 사실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살아 있는 증거이다.

 

연대운동으로 에너지 전환을

2012년 정부의 새로운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정책인 공급의무화제도(RPS)가 시행되기 시작하였다. 때마침 2011년 말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고 2012년 12월부터 발효를 앞두고 있었다. 서울시는 2012년부터 야심 차게 중앙정부의 정책과 전혀 다른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하고 나섰다. 햇빛발전협동조합은 이런 상황변화에 맞추어 에너지 주권자들이 스스로 나서는 새로운 에너지전환운동을 지향하며 출발하였다.

햇빛발전협동조합은 이전의 시민발전소 활동을 거울삼아 출자금을 모으는 데 초점을 두지 않고 명확히 사람을 모으는 조직사업에 제일의 우선순위를 두고자 했다. 풀뿌리 인민들이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자유인들의 연대가 확립되어야만 비로소 법과 제도도 확실하게 바뀌고 에너지 전환도 가능해질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온실가스 감축을 실천하는 것은 결국 인민 자신이며, 협동조합의 조합원 민주주의가 제대로 서야 주권자 민주주의도 가능하게 된다는 통렬한 인식 때문이었다.

자본주의가 자본을 중심으로 한 경제체제라면, 사회주의는 노동자계급 중심의 생산수단 사회화라는 과제를 중심으로 한 경제체제였다. 반면에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경제는 사람을 중심으로 한 경제체제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최대 목표가 자본이윤의 극대화이고, 사회주의의 최대 목표가 생산력 발전의 극대화라면, 사회적경제의 최대 목표는 더 많은 사람의 협동과 경제적 편익 극대화이다. 자본주의 영리회사가 돈으로 노동자와 기술과 공장을 사고 돈으로 광고를 해서 제품과 서비스를 팔아 돈벌이를 추구하는 기업이라면, 협동조합은 사람을 모아 사람의 연대와 신뢰를 바탕으로 사람을 위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나누는, 사람 위주의 지역공동체 호혜·순환 경제를 추구하는 기업이다.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은 한국 최초의 에너지협동조합으로 2012년 1월 발기인대회를 거쳐 3월에 창립총회를 열고 출발했다. 서울햇빛조합의 출범 초기에 햇빛발전소 사업을 어떻게 확대해나갈 것인가를 놓고 두 가지 주요한 방식에 대한 검토가 있었다. 하나는 조합원의 출자금이건 기업의 기부건 정부의 예산이건 기금을 마련해서 햇빛발전소를 더 많이 짓는 것이 에너지 전환을 하루라도 앞당기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었다. 다른 하나는 그런 방식을 배제하지는 말되, 협동조합의 주요한 사업 방식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합원을 모으고 함께하는 학습과 교육을 통해 협동과 연대의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즉 돈이 아닌 사람의 힘으로 햇빛발전소를 짓는 것이 에너지 전환을 앞당긴다는 의견이었다. 몸과 마음, 육체와 정신처럼 인적 결사와 사업이라는 협동조합의 두 측면에 대한 강조점의 차이였다. 이것은 사실 인적 결사를 바탕으로 사업을 하는 협동조합에서는 늘 상호 갈등과 긴장을 일으키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은 2012년 6월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내의 학교와 공공기관 건물 지붕에 햇빛발전소를 짓겠다는 서울시, 서울시교육청 등과 3자 협약을 맺었다. 당시 서울햇빛조합의 계획은 2012년 안에 적어도 10곳 이상의 학교와 공공기관에 전부 합해서 1MW 이상의 협동조합형 시민햇빛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출발부터 시민햇빛발전소는 암초에 부딪쳐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었다. 그것도 하나의 암초가 아니라 아예 지뢰밭과도 같은 수많은 암초투성이와 마주쳐야만 했다. 예컨대 학교와 공공기관의 지붕 임대료 문제 하나만 들어보자. 국공유재산법에 따라 1,000분의 10 이상의 임대요율과 임대료 산정 기준을 공시지가로 하면 서울시내의 경우 임대료가 전기 판매수입의 수십 배를 초과해버린다. 햇빛발전소 설치 자체가 아예 불가능한 조건이다. 임대료 문제는 서울시 조례 제정을 통해 설치용량에 따라 1kW당 연간 2만원으로 임대료를 정하면서 해결되었다.

2012년부터 최근까지 3년 동안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은 이런 제도 개선에 시간을 소비하면서 정작 시민햇빛발전소는 세우지도 못하고 근 1억원에 가까운 부채를 질 수밖에 없었다. 2014년 하반기 서울시의 새로운 보조금 사업인 미니태양광사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은 비로소 부채를 갚기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15년에는 상근자 15명에 매출액 10억원 정도를 달성해 초기 부채를 갚고 비로소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금 에너지협동조합은 전국에 걸쳐 50여 개가 넘게 창립돼 있다. 서울에는 금천, 강남, 은평, 노원 등의 지역 협동조합과 서울환경연합 회원들이 만든 ‘우리동네’, 원불교에서 만든 ‘둥근’ 등의 비지역 협동조합 등 모두 8개 협동조합이 서울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를 결성해서 제도 개선과 공동의 교육·홍보 등 연대활동을 펼치고 있다. 경남, 안산, 인천, 시흥, 부천, 수원, 성남, 거창, 부산, 전남 등 전국의 햇빛발전협동조합들이 연대한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유사 의료생협 현상과 비슷한 유사 에너지협동조합도 속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서울연합회는 회원 조합의 가입조건을 탈핵과 에너지 전환을 분명한 목표로 정하고 명확히 협동조합 7원칙에 맞게 운영하는 조합으로 한정하고 있다. 협동조합형 햇빛발전소는 지역주민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해서 조합원 연대의 결과물인 조합원 출자금으로 건설하는 햇빛발전소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학교햇빛발전소 또한 지지부진을 멈추고 각종 장애물이 어느 정도 해결된 2015년 중순부터 서울시, 서울시교육청, 서울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 등 3자협의체 구성을 통해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현재 30여 개 학교햇빛발전소가 추진위를 구성하고 있거나 추진위 구성을 협의하고 있는 중이다. 학교햇빛발전소가 이렇게 급속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배경은 주요하게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100kW 이하의 소형 햇빛발전소에서 생산되는 햇빛전기에 대해 100원/kWh을 보조해주는 서울형 발전차액지원제도이다. 다른 하나는 소형 햇빛발전소를 몇십 개 묶어 한꺼번에 시공사를 공개 입찰로 선정함으로써 설치비를 대폭 낮출 수 있었던 협동조합의 공동구매 방식 활용이다.

 

멈춤을 실천하자

이제 기후재앙은 돌이킬 수 없다. 사람들은 서서히 가열되는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가열에 익숙해져 기후재앙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사실조차 매 순간 잊고 지낼 뿐이다. 그나마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더이상 악화되는 것을 멈추는 실천뿐이다.

베네딕도회 수도원에는 ‘스타치오’라고 부르는 전통이 있다. 성전에 들어가기 전 잠시 멈춰 서서 호흡을 가다듬고 자신을 성찰하는 행위를 말한다. 불가의 참선수행에서도 멈추고(止) 단지 바라보기만 하는(觀) 일은 현실을 직시하고 진리를 깨닫기 위한 핵심 방편이다.

멈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중단을 의미하지 않는다. 멈춤은 성찰이자 되돌아봄이고 지혜의 축적이자 용기이다. 멈춤은 새로운 삶과 새로운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이며 새로운 기운을 축적하는 행위이다. 그런 새로운 기운이 없으면 파국을 극복하는 비상구나 탈출구는 결코 찾아낼 수 없다. 가장 중요한 멈춤은 앞만 바라보던 시선을 옆으로 돌리는 시선의 전환이다.

이웃과 손을 잡는 이웃관계의 회복, 내가 살고 있는 자연과 손을 잡는 것, 그것이 내 삶을 바꾸고, 기후변화에 적응해 생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다. 이웃과의 우애와 환대야말로 가장 귀중한 재화이며, 가장 안전하고도 강력한 사회안전망이다. 그리고 생태계 파괴와 인간 파괴, 공동체와 사회 파괴를 멈출 수 있는 가장 힘 있는 무기이다. 수많은 노동노예들이 제각각 다람쥐 쳇바퀴에 갇혀 열심히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한 파편화되고 개별화, 원자화된 모래알들의 사막사회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인민이 모두 권력과 재물의 태산과 바벨탑에 가는 것을 멈추고, 거기 가서 밭농사 논농사도 짓지 말고, 넘치고 넘치는 상품 만드는 일도 하지 말고, 거기 가서 시장도 보지 말고 그러면 바벨탑의 컨베이어벨트는 돌아가지 않고 멈춰 설 수밖에 없다. 그러면 체제는 저절로 멈출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그저 즐겁게 이웃의 티끌과 바보들과 함께 스스로 집밥 만들어 나누어 먹고, 함께 일하고, 기쁘게 놀면 된다.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000명의 무리를 배불리 먹였다는 예수의 오병이어 기적은 이런 멈춤의 지혜와 우애공동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이다.

붓다도 예수도 공자도 전태일도 바보들이었다. 권력과 부에 눈먼 자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을 때 멈추고 홀로 눈을 떠 세상을 제대로 직시한 바보들이었다. 눈먼 권력자와 바벨탑의 광풍에 휩쓸려 들어가는 인민들의 그 눈먼 시각으로 보면 바보들이었다. 그러나 이들 바보들은 그가 본 인민의 모습을, 그가 뜬 눈으로 본 세상의 실상을 인민들에게 설파한 선각자들이었다. 권력과 부에 눈멀지 말고 자신의 삶을 제대로 보라고, 눈을 떠 이 기적 같은 세상의 삶을 누리라고 소리쳤던 대자유인들이었다.

멈춤이야말로 수탈당하는 노동노예들, 힘없는 바보들과 티끌들의 최상의 지혜이다. 멈춤과 동시에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공동의 집’(프란치스코 교종의 생태회칙 참고) 건설은 다시 현업 복귀를 전제로 하는 파업과는 근본에서부터 전혀 다른 평화롭고 따뜻한 ‘햇빛세상’의 전략이다.

한국의 생태적 전환 운동은 무엇보다도 남과 북, 보수/진보의 적대적 공존 체제라는 질곡을 벗어나야 한다. 인민 스스로의 평화와 따뜻한 햇빛으로 녹여버려야 한다. 남과 북의 적대적 공존 체제에서 남북한 인민에게 가장 필요한 생각 바꾸기는 이웃은 결코 적이 아니라는 발상의 전환이다. 상대방을 때려죽여서라도 타도하고 근절해야 할 적으로 삼는 진보/보수 진영논리는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의 논리가 전혀 아니다. 누군가를 죽여야만 내가 산다는 생각은 결국은 공멸과 자멸로 가는 전쟁의 논리이자 끝없는 죽임의 논리일 뿐이다. 우리는 이제 이런 상대방을 죽이는 살벌한 배제와 살육의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력으로 국가와 기업, 권력자와 재벌들과 군산복합체와 국제 금융마피아들을 물리칠 가능성은 아예 없다. 그러나 바보들이 착취당함과 억압당함을 멈추는 그 순간 돈과 권력은 힘없는 휴지 조각이 되고 만다. 티끌들이 자유인이 되고 바보가 되어 자유의 삶을 이웃과 누리는 것, 그것이 저 권력과 부를 허무는 지름길이다. 신자유주의를 이기는 가장 슬기롭고 즐거운 비법이다. 그리고 기후변화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민의 최상의 지혜이다.

이제 인민들은 그런 능력이 있다. 단지 멈추기만 하면 된다. 학교햇빛발전소를 학부형들과 학생들, 교직원들과 지역주민들이 잔치 벌이듯이 떠들썩하게 짓는 것, 그것이 멈춤과 ‘우리의 공동의 집’을 짓는 연대의 힘이고 이웃의 기적이다. 기후변화는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는다. 햇빛 또한 보수햇빛 진보햇빛이 따로 없다.

 


박승옥 ―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 상임이사. 저서로 《잔치가 끝나면 무엇을 먹고살까》, 《상식:대한민국 망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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