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제141호 2015년 3-4월호  인쇄용  

 

  책을 내면서| 원점에서 생각하는 민주정치

  김종철

2015년 3월 말에 퇴임하는 우루과이 대통령 호세 무히카는 무척 흥미로운 인간이다. 지난 5년간 대통령 재임 중, 그는 오늘날 세계의 정치엘리트들과는 전혀 딴판의 언행과 자세를 보여주었고, 그럼으로써 라틴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수많은 언론의 끊임없는 주목을 받아왔다. 그의 이색적인 언행 중 가장 자주 언급된 것은, 대통령 관저를 노숙인들의 거처로 내주고 자신과 아내는 수도 근교의 작은 농가 오두막에서 거주한다는 것, 대통령으로서 받는 봉급의 대부분을 시민단체나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나머지 얼마 안되는 돈(한국 돈으로 월 약 170만원)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운 생활을 한다는 점 등등이다. 우루과이 국민들, 특히 고등교육을 받은 중산층 중에는 이러한 대통령의 생활방식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꽤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무튼 그의 남달리 단순·소박한 생활은 지독한 소비주의문화가 창궐하고 있는 세상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런 점 때문에 언론들은 종종 그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혹은 가장 철학적인 대통령으로 불러왔다. 그러나 무히카 대통령은 자신이 가난한 게 아니라고 항변한다. 정말로 가난한 이는 물질이 부족한 게 아니라 탐욕 때문에 ‘자유’를 잃은 사람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것은 물론 라틴아메리카의 빈민가(바리오)에서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고투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는 무엇보다 빈곤과 억압에서 해방된 사회를 꿈꾸며 군부독재에 맞서서 청년시절에는 무장(武裝) 게릴라 활동에 투신하였고, 그 때문에 14년 동안 옥살이를 하고(그중 7년간은 독서마저 일절 금지된 가혹한 독방 감금이었다), 출옥 후에는 총을 잡는 대신에 정치에 뛰어들어 결국은 2009년 겨울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런 인물이 오늘의 세계에서 희귀한 정치가로 부각된 것은, 물론 그의 파격적인 생활모습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그가 소수파·약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파악하는 데 익숙한 지도자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한 자질은, 예를 들어, 국내외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동성애자의 결혼과 임신중절수술 그리고 마리화나 사용의 합법화를 관철시킨 데서 전형적으로 표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마리화나 문제는 현대 국제정치, 특히 미국과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예민한 사회·정치문제가 된 지 오래이다. 그것은 음성적 지하 마약조직과 정치의 은밀한 결탁에 의해 온갖 사회적 부정과 정치적 부패가 조성되는 범죄의 온상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보통 정치가들은 이 문제를 섣불리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무히카 대통령의 접근방식은 명쾌했다. 그는 우선, 오랫동안 심한 단속의 대상이 돼왔지만 마리화나가 근절되기는커녕 갈수록 애용자·중독자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주목했다. 그러므로 가장 합리적인 해법은 ‘합법화’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암시장을 통해 거래되는 비위생적인 마리화나를 피우기 마련인 저소득 중독자들의 건강문제는 국가기관이 돌볼 수 있고, 또한 지하경제의 큰 부분을 형성하고 있는 마리화나 관련 수익은 국가의 정당한 수익으로 전환하여 복지예산을 크게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게 무히카 대통령의 논리였다.

이런 예에서 보듯이, 그의 입장은 ‘급진적’ 체제변혁을 꾀하기보다는 오히려 매우 합리적인 사고, 건강한 상식에 충실한 모습이다. 아마도 이런 모습 때문에 우루과이의 상당수 좌파 지식인들은 무히카 대통령에게 실망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우루과이의 서민과 빈민들에게는 거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아왔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그는 엘리트 정치가들이 결여한 능력, 즉 풀뿌리 민중의 생활현실의 심부(深部)를 들여다보는 본능적 능력과 체질의 소유자이다. 예를 들어, 빈민가 가정을 방문할 때, 무히카 대통령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것은 그 집 아이들이 자기만의 매트리스를 갖고 있는가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루과이의 서민과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무히카는 자신들의 생활 내면을 가장 잘 이해하는 지도자로서 계속 존경과 사랑을 받아왔던 것이다.

실제로 무히카 대통령의 모습에서 위안과 희망을 느끼는 것은 우루과이 사람들뿐만이 아니다. 오늘날 전 지구적인 파국이 임박했음에도, 거의 모든 정치세력은 근시안적인 이해관계에 매몰되어 위기를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다. 이 상황에서 건강한 상식과 합리적인 판단력에 따라 장기적인 시야로써 행동하는 정치지도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나와 같은 한국인에게도 큰 위안과 기쁨이다.

게다가 그는 세계가 지금 직면한 위기의 본질을 명료하게 적시하고 주저 없이 발언하는 통찰력과 용기를 보여주었다. 2013년 가을 유엔총회에서 행한 그의 역사적인 연설은 흔해빠진 상투적인 정치연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그가 사심을 초월하여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을 더 오래 하고 싶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자신이 ‘공화주의자’임을 강조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점에서 그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과도 상당히 다른, 보다 합리적인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알다시피 매우 급진적인 개혁정책과 민주적 신념에도 불구하고, 차베스 대통령은 거듭된 연임을 통한 장기집권으로 인해 생전에는 물론, 사후에도 온갖 음해와 비난의 대상이 되어왔고, 지금도 그 후유증으로 베네수엘라의 민주정치는 반동세력으로부터의 엄청난 공격과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인상적인 발언이 하나 있다. 그것은 퇴임을 앞두고 어떤 기자와 나눈 대담 중 무히카 대통령이 한 말이다. 유엔연설 등 기회 있을 때마다 그가 환경위기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해온 것에 대해서 기자로부터 질문을 받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실은 지금 세계에는 생태적 위기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통치(governance)의 위기죠.”

하기는 지금 우리가 생태적 위기를 비롯하여 갈수록 심화되는 사회적 격차와 불평등, 교육과 문화의 비인간화, 고용 및 복지문제 등등 온갖 난제들이 어떻게 생겨나고, 또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인지를 곰곰 생각하다 보면, 모든 문제의 근원은 결국 정치라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단순히 개개인이 욕망을 억제해야 한다는 허망한 소리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숙명적으로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이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틀, 즉 ‘자기통치의 기술’로서의 정치를 긴급히 쇄신하는 일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정치의 쇄신이란 무히카 대통령과 같은 특출한 개인에게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것일 수는 없다. 아무리 비범한 인물이라 하더라도 어차피 그는 예외적 인간이며, 또 어떤 경우에도 일인의 능력과 지혜에 의존하는 정치란 매우 위험하고, 지속가능한 민주적·합리적 정치를 결코 담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우리가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은,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이다. 물론 아테네 민주주의는 여성과 노예를 제외한 ‘자유시민’들만의 민주주의였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볼 때, 아테네 민주주의는 특정 인간집단을 배제하거나 착취함으로써만 성립할 수 있는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자유시민들은 대부분 노예들 못지않게 일하는 농민들이었고(아테네 도시국가는 정치집회 참가에 대한 대가로 궁핍한 시민들에게 돈을 지불했다), 실제로 참정권 유무를 제외하고 일상 생활공간에서는 노예들과 자유시민들 사이에 눈에 띄는 차이는 별로 없었다. 노예들은 장사도 하고, 문학적 활동에도 종사할 수 있었다. 다만 참정권만은 허용되지 않았다. 자유시민이란 간단히 말해서 민회, 평의회, 민중법정 등 핵심적인 정치공간에서 ‘발언’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잊어서 안될 것은, 노예제의 존속과 여성차별은 고대사회의 역사적 한계이지 아테네 민주주의의 원리적 결함이 결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또 소규모 도시국가였기 때문에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했다는 흔히 듣는 주장도 아테네 민주주의의 원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지적 태만의 소치이다. 거의 모든 공직자를 제비뽑기로 뽑고, 짧은 임기, 윤번제 등등, 인류사회 최초로 민주주의를 발명한 고대 그리스인들의 국가운영 시스템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경탄스럽다.

고대 아테네인들은 인간이란 누구나 자기통치의 능력이 있다는 믿음, 그리고 무엇보다 “권력의 유혹에 끝까지 저항할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겸허히 수용하고, 그 바탕 위에서 역사상 최량의 정치시스템이라 할 수 있는 제비뽑기민주주의를 우여곡절 끝에 구축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문화적·예술적 활동도 그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궁극적 목적에 겨냥되어 있었고(아테네 제1 시민 페리클레스의 말을 빌리면, 아테네 도시국가 전체가 민주주의의 학교였다), 그 결과 200년 이상 고도의 문명적인 시민생활을 향유했다.

불합리한 정치, 양심적인 정치의 부재로 수많은 사람이 쓸데없는 고통과 시련을 강요당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에 슬퍼하고 절망할 게 아니라, 이럴수록 민주주의의 원점으로 되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거기서 얻은 영감으로 정치의 근본적 쇄신을 숙고해보는 것만큼 지금 생산적인 일도 별로 없을 것이다.


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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