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제136호 2014년 5-6월호  인쇄용  

 

  서평| 전기는 문명의 빛이 아니다

  고영직

 밀양구술프로젝트 지음
《밀양을 살다》(오월의봄, 2014년)

 

 벼랑에 내몰린 대한민국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자기의 땅에서 추방되어 서러운 눈물을 짓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열외지역에 사는 슬픈 국민으로서의 운명을 강요당한 채 하루하루를 온몸으로 살아내고자 한다. 이들은 지금의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평범한 ‘일상(日常)’의 회복이라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하루하루 일상을 잘 살아내는 것 자체가 전쟁 상태와 다를 바 없는 비상사태의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갖은 형태의 국책사업이 추진되는 지역의 주민들은 예외 없이 열외지역의 비(非)국민으로 간주되어 일상의 파괴를 맨몸으로 감내해야 한다. 2013년 12월 기록노동자, 작가, 인권활동가, 여성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한 밀양구술프로젝트가 지은 《밀양을 살다》는 765kV 송전탑이 앗아간 밀양 주민들의 부서진 일상과 인생 그리고 포기할 수 없는 꿈을 생생히 증언하는 구술집이다.
‘밀양이 전하는 열다섯 편의 아리랑’이라는 부제를 단 구술집 《밀양을 살다》는 밀양 주민 17명의 인생 고백록이면서 우리시대 국가폭력을 웅변하는 증언록이다. 책에서 밀양 주민들이 고백하고 증언하는 것은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목소리만이 아니다. 고단했던 인생역정을 술회하고, 가족의 소박한 일상을 염원하며, 인간적 존엄의 가치와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들을 만날 수 있다. 《밀양을 살다》를 제대로 읽어내려면 분명한 어조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미처 다 발화되지 못하고 잡음처럼 들려오는 음색을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소위 밀양 할매·할배들의 그런 음색에서 진짜 이야기를 만나게 되리라는 점을 당신 또한 실감하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밀양을 살다》에 등장하는 밀양 주민들이 말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다른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자립과 자치와 자연의 삶 자체이다. 이들은 그런 삶은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식의 당위적 원리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온몸으로 고백하고 증언하고 있다. 이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게 될 때, 밀양 주민들의 이야기를 읽고 느끼고 공명(共鳴)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한전―경찰―국가가 저 신화에 나오는 키마이라(Khimaira)처럼 합체가 되어 밀양에 건설하려는 765kV 송전탑이 파괴한 것은 할매·할배들의 삶 자체였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자체였으며, 마을공동체였음을 비로소 실감하게 될 것이다.
이 점에서 《밀양을 살다》는 한전―경찰―국가 동맹의 비인간적인 목소리들에 맞서 삶을 재구성하고, 관계를 재구성하며, 사회(마을)를 재구성하려는 지극히 인간적인 목소리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의 전기문명이 밝히는 빛이 계몽의 빛이 될 수 없음에 동의하게 되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밀양 주민들은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예찬하고, 자급과 자립의 경제를 지지하며, 자치의 정치학을 구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송전탑을 반대하는 투쟁 과정에서 밀양 할매·할배들이 ‘언제나 의문을 품는 사람’(프란츠 파농)으로 단련되었고, 이 책은 그런 정당한 의문을 품는 사람들의 생생한 육성의 기록이라고 말해도 좋으리라.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밀양의 주민들은 누구보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예찬한다. 무려 100m 높이에 달하는 초고압 765kV 송전탑 건설 예정지의 나무들을 벌목하는 한전 측 용역들에 맞서 가슴 가득 손과 발로 나무를 끌어안는 할매들의 모습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 어쩌면 그 장면이 송전탑 문제의 본질이 아닐까. 그 장면은 한전―경찰―국가 동맹체가 죽임과 파괴의 정치경제학을 추진하려 한다면, 밀양의 할매·할배들이 원한 것은 생명과 살림의 정치경제학이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표상한다고 보아도 좋을 법하다.

 

'터의 무늬'를 지키며 살아가고자


팔순의 이사라(83) 할머니의 사연이 퍽 인상적이다. 바다에서 남편을 잃은 이사라 할머니의 지친 몸과 마음을 품어준 것은 밀양 화악산의 자연이었다. 마음공부를 하고, 염소를 키우며 일상을 살아온 이사라 할머니가 ‘개옻나무 이파리’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장면은 진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개옻나무는 땔거리도 안되고, 아무 쓸데도 없는 그 나무 이파리가 나를 그렇게 품어주더라니까.”(107쪽) 자연이 주는 선물에 기쁨의 웃음을 짓는 이사라 할머니가 시정(詩情) 넘치는 표현을 하고, 흥(興)의 힘을 깊이 신뢰하는 것은 당연하다. 당신 생을 소설로 쓰면 ‘풍년’이라는 제목으로 하고 싶다는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리라.
밀양의 자연은 구미현(65) 할머니의 몸과 마음을 살렸다.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태어난 구미현 할머니는 50대의 나이에 이주해 자연치유의 힘으로 심신의 건강을 회복했다. “저 사람이 이 동네에 죽으러 왔구나” 하던 마을사람들도 이젠 그녀를 진짜 용회동 사람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그녀가 자기 문제만 보려 하지 않고, 자기 바깥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사회의 끈은 어떻게든 엮여서 이 송전탑 줄을 따라서 내한테 또 따라왔어요”(223쪽)라고 말하는 구미현 할머니가 원전반대와 연대투쟁에도 열심인 이유이다. 삶 자체가 바뀐 것이다.
밀양 주민들이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예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터의 무늬’를 지키며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하는 것 같다. 터의 무늬가 없는 삶이야말로 얼마나 ‘터무니없는’ 삶이던가. 근대사회의 저주가 장소성의 상실에서 비롯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밀양 주민들은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물리적인 자연에 직접 반응하는 생생한 감각을 되찾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의 육성에서 진보는 신화일 뿐이며, “우리는 장소(place)이다”라는 위대한 선언을 확인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17명 구술자들의 육성에서 그런 상상력과 비전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특히 안동 권씨 양반집 며느리인 덕촌댁 희경(79) 할머니가 벌목 부지에 ‘127번 꽃동산 프로젝트’를 조성하려고 즐거운 상상을 하는 장면을 보라. 100m 높이의 거대한 흉물 같은 쇠붙이들로 인해 파괴된 땅에 한 그루의 ‘희망 꽃나무’들을 심고자 하는 사람들이 아직 남아있는 한, 우리는 희망을 저버려서는 안된다. ‘알지만 행하지 않는’ 냉소주의 시대를 극복하는 방법은 “우야면 좋노”라는 체념에 있지 않다. 그것은 “우째겠노, 또 해봐야제”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어쩌면 그것이 나와 우리의 삶에 ‘숨구멍’ 같은 다른 형식의 삶을 만드는 마음의 습관이고 태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한전―경찰―국가가 일방으로 추진하는 송전탑 건설은 밀양 사람들의 자급과 자립의 경제적 토대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렸다. 대형마트 입점으로 슈퍼마켓이 망한 경험이 있는 곽정섭 할머니가 법정에서 한 말이 여전히 귓전에서 맴도는 것만 같다. “소 한 마리 30만원 주면 사람 한 마리는 얼마 주는교?”(147쪽) 자급과 자립의 토대는 철저히 파괴되었다. 국회에서 송변전설비주변지역지원법(송주법)이 통과되었지만, 몇푼 되지도 않는 보상금 때문에 마을 인심이 더 흉흉해진 것을 생각하면 기막힐 따름이다. 농협에서 4억 8,000만원 대출을 약속받은 이종숙(72) 할아버지는 송전탑 이야기가 나오자 한 푼의 대출도 받지 못했다. “돈한테는 안되는가 봐요, 힘듭니다”라는 말을 달고 다니는 것도 이해가 된다. 선진영농 셈법을 포기하고 진짜 농부의 마음으로 성실히 살아가는 권영길(76)―박순연 부부의 자립경제 또한 더 불투명해졌다. 그래서 밀양 할매·할배들이 일체의 보상 따위를 바라지 않고, 지금 이대로 살아가겠다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송전탑이 건설되면 삶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다 울력으로 삽니더


밀양 송전탑 건설은 2000년 8월 765kV 계획이 처음 확정된 이후 십여 년이 지났다. 싸움 과정에서 희생자들도 여럿 나왔다. 특히 2013년 5월 이후 하루 3,000명에 이르는 경찰 공권력이 투입되면서 희생자들이 속출했다. 고소·고발은 애교 수준이고, 재산가압류 조치도 잦았다. 이치우 어르신과 유한숙 어르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도 2013년 5월 이후였다. 밀양 사람들은 지칠 대로 지쳤으나, ‘저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임을 알기에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도리어 국가의 거짓말에 대항해 사람이 할 도리와 의리를 잊지 않으려 한다. 사람이 할 도리야말로 스스로 다스림[自治]의 원리가 구현되는 좋은 사회의 근간이 아니겠는가.
미수(米壽)의 조계순 할머니가 “사람은 다 울력으로 삽니더”라고 한 말은 너무나 소박해서 차라리 깊은 울림이 있다. ‘세상만사 울력으로 되는 것’이라는 선언은 인간의 말이기에 누구도 쉽게 부정할 수 없으리라. 상식이 붕괴하고, 몰상식이 창궐하는 지금 여기의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이 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런 인식과 마음은 투쟁 현장에 참여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유하고 있었다. 129번 움막을 지키는 김사례(86) 할머니는 다른 할매들과 ‘한집이 되어 사는’ 일의 벅찬 기쁨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상동면 여수마을 김영자(58) 부녀회장은 “나는 이웃이 최고라예”라며 이웃이야말로 자동충전의 원천이라고 역설한다. 서로 생면부지였던 구미현과 김옥희는 투쟁 현장에서 만나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안영수(59)―천춘정(55) 부부 또한 돈을 먼저 계산하는 것보다 인간의 윤리와 도리를 먼저 생각하려 한다. 이들이 투쟁 과정에서 국책사업의 본질이란 “생명을 담보로 한 비리”(성은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챈 데에는 지식이 필요하지 않았다. 투쟁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언제나 의문을 품는 사람’으로 상호작용한 결과라고 보아야 옳을 터이다.
실제 송전탑 투쟁은 주민들의 자발적 자치 능력을 실험하는 ‘땅의 정치’의 무대였다. 밀양 토박이 이종숙 할아버지는 이장―면장―시장으로 이어지는 행정관료 시스템에 대항해 이장에 출마해 당선되어 봉사를 했으나, 관(官)은 ‘반대대책위 지시를 따른다’는 이유로 이장에서 해임했다. 송전탑 건설로 “이 쪼그만 동네가 열두 쪼가리”가 되었다는 이종숙 전(前) 이장의 말이 씁쓸하다. 그런데도 돈의 정치에 맞서 진짜 ‘땅의 정치인’으로 성장한 경우도 있다. 위양마을 권영길 이장의 경우가 그렇다. 송전탑 건설이 중단되는 날 ‘마을잔치’를 열겠다는 권 이장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지는 싸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권 이장은 자신의 책임을 다하려고 한다. “나는 몰라도 내 전화번호 알고 연락 오는 사람이 아직꺼정 많거든예. 그런 분들도 생각해서 나는 이기 괴롭다 하더라도 끝까지 가야 한다고 이래 봅니다.”(200쪽) 권 이장의 이 마음은 젊은 축에 속하는 박은숙(42)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포기할 수 없지예, 우리가 끝은 아닌 것 같으니까.”
송전탑 투쟁이 이루어지는 밀양의 현장(現場)은 혹자의 말처럼 ‘사건의 시·공간’(고병권)이라고 할 수 있다. 밀양 할매·할배들은 투쟁 현장에서 국가란 국민/비국민을 나누는 배제와 분리를 존재 방식으로 삼는다는 암묵지를 터득했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법하다. 책의 맨 앞에 등장하는 김말례(87) 할머니의 사연이 특히 그러하다. 한국전쟁을 전후해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남편을 잃었고,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큰아들이 허리 부상으로 돌아온 김말례 할머니의 곡절 많은 사연은 이 땅에서 ‘국민’으로 사는 일의 가혹한 운명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런 김말례 할머니가 “이 전쟁이 제일 큰 전쟁이다”라고 말한다. 더이상 역사의 희생자로서가 아니라 삶의 주체이고 싸움의 주체로서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표라고 보아야 하리라.
대한민국에 사는 누구든 간에 국가(state)의 상태(state)에 따라 국민/비국민이 되곤 하는 국민국가의 존재와 상태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아마도 글쓴이들이 책 제목을 ‘밀양에 살다’가 아니고, ‘밀양을 살다’라고 정한 까닭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서문에서 글쓴이들이 이 책이 “관심과 지지의 의무”가 아니라 “성찰과 연대의 권리”로 읽혀졌으면 하는 소망을 피력한 것도 그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누구나 자연, 자립, 자치의 삶을 살고자 하지만, 그것이 근본적으로 위협받을 때 우리네 삶과 관계와 공동체 또한 필연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지금의 침통한 현실을 바꾸는 힘은 결국 “말이, 생각 자체가 희망”(성은희, 346쪽)이라고 한 말을 잊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리라. 그런 말과 생각이야말로 삶의 형식을 바꾸는 작은 변화의 출발이 되지 않겠는가. 절대로 지치는 법이 없는 국가의 힘에 맞서 밀양 할매·할배들의 이야기 또한 멈출 줄을 모른다. 이야기가 희망인 이유이다.


울리히 벡(Ulrich Beck)  ―  독일 사회학자. 《위험사회》의 저자. 이 인터뷰의 출처는 Tagesspiegel 온라인판 2006년 11월 30일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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