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제135호 2014년 3-4월호  인쇄용  

 

  "실업은 축복이다"

  울리히 벡

― 울리히 벡 교수님, 모든 사람을 위한 무조건적 기본소득이라는 테마는 기독교민주당(헬무트 콜과 앙겔라 메르켈의 정당) 내에서도 토의되고 있습니다. 투링기아주(州)의 수상은 ‘연대 시민 화폐’를 도입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시민들에게 도움이 될까요?

모든 사람이 연령에 관계없이 고정된 액수의 돈을 받게 되면 시민들의 실존적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적 상황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생존을 위한 기초적 욕구에 대한 모든 걱정이 한꺼번에 사라질 것입니다.

― 금액은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할까요?

600유로에서 1,500유로까지 다양한 견해들이 있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월 800유로가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18세가 될 때까지는 부모들이 자녀들의 기본소득에 대하여 관리자 역할을 해야 하겠지요.

― 이 아이디어는 유토피아적인 게 아닌가요?

네, 결코 몽상적인 것이 아닌 현실적인 유토피아입니다. 우리사회가 여전히 꿈꾸고 있는 완전고용은 망상입니다. 경제를 자극함으로써 누구든지 다시 일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고실업률에 대처하고자 하는 20년 동안의 투쟁이 무위로 그친 이후, 우리는 다시금 물어봐야 합니다. 사람이 일자리 없이 의미 있는 삶을 누리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실업상태는 좌절이 아니라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높은 생산성 덕분에 최소한의 인간노동의 투입으로 번영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완전고용 대신에 자유로움이 대안이 되었습니다.

― 기본소득이 도입되었다고 할 때, 그럼 과연 누가 일을 하겠습니까?

다수 사람들은 평생 처음으로 고용주가 일방적으로 결정해준 임금을 받아들일 필요 없이 독립적으로 협상을 할 수 있는 처지에서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기본소득이 있으므로 위험에 처할 염려가 없을 것입니다.

― 아무도 일하기를 원치 않는 ‘싸구려’ 일자리는 어떻게 될까요?

그런 일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면 급료가 올라갈 것입니다. 굶주림을 면할 정도의 임금을 받고는 누구도 일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겠죠. 기본소득이 특별히 중요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기본소득 덕분에 피고용인은 한 사람의 기업가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그동안 힘들고 불유쾌한 일을 해왔던 사람들 말입니다.

― 더이상 일을 하기 원치 않는 사람들은 어떨까요?

확실히 몇몇 사람들은 바보상자 앞에서 그냥 앉아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존재합니다. 기본소득 때문에 그렇게 된다는 인과적 관계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 대대수가 그렇겠지만 ― 오늘날보다 더 자유롭고 더 자기결정적인 방식으로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 어떤 사람들은 ‘하르츠IV’ 프로그램을 예비적 형태의 기본소득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입니다. ‘하르츠’ 개념은 퇴행적입니다. 그것은 일에 대한 통제를 확대하는 것이며, 핵심적인 질문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즉 엄청난 자동화의 가능성과 창조적 인간노동이 발전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질문 말입니다.

― 하지만 사람들은 일자리가 없으면 고통을 당합니다.

문제는 실업이 아니라 돈이 결핍된 상태입니다. 오늘날에는 일과 소득이 결합되어 있으니까요. 임금노동은 사람들에게 거의 아무런 의미도 제공하지 않고, 경제적 안전성도 별로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생존을 위하여 내키지 않는 일을 강요당하지 않는다면, 기꺼이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일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교육, 훈련, 환경 관련 활동 같은 것 말입니다. 기본소득은 우리들을 두 가지 방식으로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즉, 강제된 일로부터의 해방과 의미 있는 일로의 해방이죠.

― 어째서 정치가 이러한 도구를 포착하지 않는 걸까요?

임금노동이야말로 유일하게 의미를 주고 우리의 생존을 보장한다는 상투적인 생각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모든 게 임금노동 중심입니다. 하루의 시간 리듬, 훈련 그리고 사춘기로부터 성인으로 들어가는 것 등등 모든 게 그렇습니다. 개인은 스스로를 임금노동을 통해서 규정하고, 따라서 자신을 거기에 맞추려고 합니다. 만약에 이러한 자신에 대한 압력이 불필요한 것이 된다면, 우리는 더이상 자유를 통제하지 못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일이 없어지면 일을 중심으로 편성된 사회의 많은 권력자들은 그들의 권력의 토대를 잃게 될 것입니다.

― 정치가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잃게 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일까요?

불행하게도 그런 것 같습니다. 다수 인구를 게으르고 의지가 박약한 존재라고 보고 있습니다. 기본소득은 자본주의에 적합합니다. 그것은 엄청난 경제적 유동성과 생산성과 창조성을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생산과정을 크게 지체시키는 많은 장애물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 신자유주의 사상가들은 이것을 원치 않습니까?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큰 연합을 이루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최근에 작고한 밀턴 프리드먼, 사회주의자 앙드레 고르, 대표적 자유주의자 다렌도르프 경 그리고 동베를린 사회학자 볼프강 엥글러가 모두 여기에 포함돼 있습니다. 그들은 일이 소득으로부터 독립되고 자기규정적인 것이 될 때 자본주의가 여하히 사회적인 것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 기본소득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 것일까요?

경제의 새로운 정당성의 근거가 창출될 것입니다. 오늘날의 기업들은 역설적인 상황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경제적으로 행동하면 그것은 국가와 국민에 대해서 반역적인 행동을 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 반대도 진실입니다. 경영자들의 애국심에 호소해 봤자 소용없습니다.

― 기본소득의 재원은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요?

나는 보편적 소비세 모델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자본주의는 장려됨과 동시에 길들여질 것입니다. 상품이 판매될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디서든 사람들은 세금을 회피하려고 합니다. 보편적 소비세를 도입하면 기업가들은 한시름 놓을 것이고, 공공의 이익 증진에 동참할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부가적인 직접세를 지불해야 합니다.

― 사업가 괴츠 베르너는 다르게 보는데요. 소비세로 충분하다고 그는 말합니다.

나는 너무 일찍 내 입장을 드러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이 토론을 막 시작한 단계에 있습니다. 어떻든 비임금 노동 비용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것이 첫출발이 될 것입니다.

― 정치적으로 기본소득이 도입될 가능성은 어느 정도로 보시는가요?

나는 녹색당과 자유민주당 쪽에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물론 자유민주당은 이상하게도 완전고용 개념에 매달려 있긴 합니다만. 사회민주당은 어렵다고 봅니다. 사회민주당은 임금노동 세력이 자신들의 권력 기반이기 때문에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위험에 처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민주당 내에는 쿠르트 비덴코프와 같은 몇몇 이질적인 존재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소극적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종전의 방식을 계속한다면, 우리는 사회의 하위 3분의 1 계층을 절망과 범죄 그리고 폭력으로 내몰게 될 것입니다. 가진 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도 그러한 상황은 달가운 게 아닐 것입니다.(김종철 옮김)

 


울리히 벡(Ulrich Beck)  ―  독일 사회학자. 《위험사회》의 저자. 이 인터뷰의 출처는 Tagesspiegel 온라인판 2006년 11월 30일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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