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제134호 2014년 1-2월호  인쇄용  

 

  밀양 송전탑의 어떤 하루

  이계삼

12월 15일, 아침에 눈을 뜨다. 며칠 계속 유한숙 어르신 분향소에서 노숙을 했더니 몸살 기운이 번져서 간만에 집에서 잠을 청하다. 11시 20분 서울 가는 기차를 탈 때까지 《녹색평론》 원고를 조금이라도 써놓아야지 싶어서 노트와 볼펜을 꺼내보지만 좀처럼 글이 나가지 않는다. 글 쓰는 일은 지금껏 늘 힘겨웠지만, 그건 공부가 짧거나 생각을 갈무리할 만한 힘이 없을 때의 이야기였고, 송전탑 싸움 이후는 좀 다른 경우였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말들이 닥쳐왔지만,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랬지만, 결국 옮겨놓고 보면 권력에 대한 분노, 시국에 대한 한탄, 어렵게 싸우는 주민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 이 범주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세상은 이미 이런 언어들을 충분히 알고 있다는 듯 무심하게 흘려 넘길 것 같았다.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을 말로 옮기는 것도 힘겹지만, 그 말이 별다른 공명을 일으킬 수 없으리라는 생각은 사람을 몹시 외롭게 한다. 주민들은 맨몸의 육성을 내지르고 공권력은 원시적인 폭력으로 말한다. 그 사이에 ‘말’이 설 자리는 없다. 한국전력은 주민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숨 쉬는 것 빼고는 다 거짓말’인 집단이고, 그러면서도 그들은 “우리의 진정성을 믿어주십시오!” 따위 역겨운 수사들을 남발한다. 정치권이든 언론이든 그들은 자신들이 그어놓은 한계치를 넘어서는 이 맨몸의 말들에는 철저히 귀를 막는다.
결국 한 줄도 나가지 못한 채, 11시 20분 기차를 타려고 씻고 준비하는 중에도 여기저기서 전화가 온다. 유한숙 어르신의 맏아들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왔다. 오늘 밀양시청으로 유족들이 시장 면담을 하러 가기로 했다. 벌써 두 번째다. 어떻게 알았는지 경찰병력과 공무원들이 겹겹이 에워싸고 있는 모양이다. 내게 어찌하면 좋을지를 묻는다. 면담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최대한 버텨보시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밀양 사람들

그들의 아버지 고(故) 유한숙 어르신은 향년 74세로 세상을 떠났다. 밀양 삼랑진 출신으로, 해병대를 나와 젊은 시절에는 소방관으로 근무했고, 건설현장 소장으로 중동에도 다녀왔다 한다. 중년의 기로에서 그는 타향살이를 접고 처가 근처에 있는 상동면 고정리에서 양돈 농장을 시작했다. 그 28년 동안 그는 세 남매를 공부시켰고, 결혼까지 시켰다. 노년을 즐기며 황혼을 바라보는 시절에 그에게 닥쳐온 횡액은 다름 아닌 765kV 초고압 송전탑이었다. 해병대 후배였던 이웃 마을 주민 백영민 씨에게 그가 종종 되뇌곤 했다는 지론은, “국가는 국민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국민이 국가에 똑같이 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상동면 고정마을이 송전선로 경과지라는 사실은 진작에 알았지만, 그는 지난 8년간의 송전탑 싸움 내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마을 전체 모임 때 농장의 돼지를 후원하는 정도로 찬조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지난 11월 초 한국전력 과장이라는 사람과 전자파를 전공했다는 교수 한 명이 집으로 찾아왔다. 그렇게 자신의 집과 양돈 농장이 118~119번을 지나는 송전선에서 불과 300m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집과 농장이 주택 매수 범위인 180m에서도 벗어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 것이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그때부터 그는 도곡저수지에 차려진 인근 4개 마을 주민들의 농성장에 매일처럼 드나들기 시작했다. 병력 교대 중인 경찰차량들을 막아서거나, 작업하러 올라가는 한전 인부들을 붙잡아놓고 드잡이를 하는 용맹한 할머니들 곁에서, 그런 일에는 체질적으로 익숙지 않았던 유한숙 노인은 모닥불을 피워놓은 저수지 둑방길 위에서 소주를 마셨다. “765, 그거 들어오면 나는 몬 산다. 내는 다 살았다. 한전 놈들 직이뿌릴 기다. 저거를 우째 막겠노.” 두 병, 세 병. 만취해서 집으로 들어올 때도 있었다. 서둘러 1,300평 집과 농장 부지를 내놓았지만 보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12월 2일 밤 8시, 농장일을 함께 하는 큰아들이 시내에서 김장 양념거리를 사서 돌아왔을 때 유한숙 노인은 아들을 주방 식탁으로 불렀다. “그동안 못해줘서 미안하다. 너는 유한숙의 아들이라는 사실, 그 하나만을 기억해라.” 그 말을 남기고 컵에 이미 따라놓은 제초제 그라목손을 순간적으로 들이켰다. 깜짝 놀란 아들이 제지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리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나흘간 장기가 녹아나고 굳어가는 고통 속에서 그는 서서히 숨져갔고, 12월 6일 새벽 3시 53분, 세상을 떠났다.
12월 4일, 유한숙 노인은 딸에게 “대책위 사람이 보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대책위 공동대표인 김준한 신부와 곽빛나 간사가 병실에서 그를 만났고, 유한숙 노인은 자신이 송전탑 때문에 음독하였음을 밝히며, “송전탑이 들어오면 나만 죽는 게 아니라 다 죽는다, 그런데 왜 저게 들어오느냐”, 실낱같은 목소리로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이야기하면서 그는 가끔 피를 토했고, 곁에 섰던 이들은 땀에 흠뻑 젖었고, 병실을 나온 뒤 모두 울었다.
그러나, 그가 사망하고 나서부터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경찰은 응급실로 찾아와 고인이 자신의 입으로 음독한 이유를 밝힌 것을 녹음까지 해 갔고, 그 모습을 고인의 딸도 지켜보았지만, 같은 시간 수사관들로 하여금 무려 네 번이나 그의 집을 찾아가게 하여 ‘집안 식구들 사이에 불화는 없었는지, 돈 문제는 없었는지’를 집요하게 캐물었다. 남편의 음독으로 거의 심신상실 상태에 놓인 고인의 부인에게는 너무나 잔인한 처사였다. 황망한 와중에 제대로 된 답이 있을 리 없었고, 경찰은 그 당시 고인의 부인이 송전탑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돼지값 하락, 음주’ 등의 복합적 이유로 자살에 이르게 되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죽음에 직접적 책임이 있는 한국전력은 지금 이날까지 고인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사과 표명도 없고, 공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밀양시는 경찰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인용하며 시민분향소 설치까지 불허하였고, 경찰에 시설보호요청을 했다. 결국 시내 곳곳이 경찰버스와 수백 명의 병력으로 틀어막히게 되었고, 장소를 구하지 못한 주민과 유족들은 결국 시내 체육공원 입구에 분향소를 차리려 했다. 12월 8일이었다. 천막을 치자마자 경찰이 새카맣게 달려들어 천막을 찢고 부숴버렸다. 할머니 한 분은 웃통을 벗고 항의했고 경찰 누군가는 그에게 발길질을 했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노천에서 버티다가 밤이 되어 이슬이라도 피하려고 비닐 한 장을 치려 하니 그것도 막아섰다. “니들이 인간이냐” 눈물겨운 절규로 겨우 비닐 한 장이 허용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비닐 포장을 친 움막 같은 분향소가 유지되고 있다.
그 사이 억울함이 겹겹이 쌓인 유족들은 이제 기자들을 대동하고 밀양시청으로 가 시장을 만나려 한다. 좀 있으니 유한숙 어르신의 둘째 딸로부터 전화가 온다. 자신도 입구에서 막혀서 오빠를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대학병원 간호사를 하다가 결혼 후에는 은행 다니는 남편과 어린아이를 뒷바라지하는 평범한 주부로 살다 졸지에 이 험악한 싸움판에 뛰어들게 된 딸의 목소리는 다급한 분위기 속에서도 물기가 묻어 있다. 오빠의 위치를 이야기해주고, 기운 내시라고 전하고는 전화를 끊는다.
밀양역에 도착하니 다시 KBS와, 우리가 ‘관제 찌라시’라고 부르는 인터넷신문 한 군데서 전화가 온다. 받기도 싫지만, 일부러 받지 않는다. KBS를 비롯한 공중파 방송들은 이번 밀양 사태에는 지독하리만치 침묵과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 어딘가 컨트롤타워가 있을 것이다. 종편 MBN에서는 보도국장이 한전 편으로 보도하라는 지침을 내렸고, 거기에 따르지 않는 기자들이 있었는지, 전담 취재팀을 사회부에서 경제부로 교체시켜버린 일이 〈미디어오늘〉에 의해 폭로되기도 했다. 이 사태에 침묵하거나 한전 편을 노골적으로 드는 언론사는 거의 이런 식일 것이라 짐작한다. 그런 저들이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은, 며칠 전 권아무개씨 음독자살 기도 관련한 취재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어떤 입장으로 보도를 하려는지 의도를 알고 난 뒤에 취재에 응할지 말지를 결정할 작정이다. 아니나 다를까, 곧이어 권씨의 남편에게서 전화가 온다. KBS에서 연락이 왔다고, 취재에 응할지 말지를 묻는다. 알아서 판단하시되, 개인적인 이야기를 물으면 답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고, 이미 우리가 보도자료로 폭로하기도 했던 사고 당시 경찰의 어이없는 행태와 관련한 질문이라면 답하시는 게 좋겠다고 했다.
권씨와 남편은 6년 전, 이곳 단장면 동화전마을에 집을 샀다. 매도자도, 중개인도 이 집이 765kV 송전선로 경과지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전원주택 삼아 몇년 동안 주말에만 다녀가다가 작년 초에 이곳으로 완전히 이주했다. 동화전마을은 작년 여름까지는 반대운동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던 곳이었다. 작년 여름, 마을 뒷산에 95번, 96번 송전탑 공사가 들어오고서야 실체를 깨닫게 되었다. 아내 권씨는 자기 상식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자행되는 것을 좀처럼 견디지 못하는 성품이었고, 바지런히 무언가 일을 하고 싶어 했다. 매일처럼 마을 농성장에 나와 살다시피 하면서 농성장에 드나드는 할머니들의 밥을 했다. 경찰에게 폭행당한 동네 주민이 해당 경찰관을 고소했던 일이 있었다. 그때 함께 고소인으로 참여한 권씨는, 경찰이 고소인 조사를 하면서 적반하장 격으로 “육하원칙에 맞게 답하라”며 시비를 걸고, “마을 대책위 조직도를 가져오라”는 둥 납득할 수 없는 소리를 하자, 수사관 교체를 요구하여 끝내 관철시켜내기도 했다.
그런데 1년 남짓 마을의 반대투쟁을 이끌던 마을 이장이 올해 10월 어느 날부터 찬성 입장으로 돌변하면서부터 마을이 분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전이 주민들 한 명 한 명을 각개격파할 요량으로 던진 ‘개별 보상금 지급’ 카드가 주민들에게 먹히기 시작하면서, 권씨를 비롯한 반대 주민들은 더욱 고립되었다. 가구별로 지급하는 개별 보상금 이백몇십만원을 12월 31일까지 수령하지 않으면 마을 공동자금으로 돌려버린다는, 유치하면서도 잔인한 술책에 주민들이 흔들린 것이다. 120가구 중에 20가구 남짓 남았다. 마을 뒷산 95번 철탑은 이미 조립을 시작해서 탑신이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있고, 경찰은 진입로를 막아선 채 주민들이 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원천봉쇄하고 있다. 권씨는 12월 13일 오전 11시경, 96번 공사 현장에 있는 황토방 농성장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이미 얼굴을 잘 아는 주민임에도 경찰은 주민등록증을 요구하고, 채증을 해댄다. 경찰과 대판 싸우고 황토방으로 올라간 권씨는 유서를 남겨놓고 병원에서 처방받은 두 달치 약 50~60알을 소주와 함께 털어 넣었다. 그때가 오후 2시께였다. 2시 13분경 권씨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남편은 마을 후배 한 명과 함께 산 아래 진입로로 달려갔다. 그런데 역시나 경찰은 주민증을 요구했고, 긴장과 분노로 다리가 풀려버린 남편은 주저앉아버렸다. 동네 후배가 올라가려는 데도 역시 주민증을 요구했다. 트럭까지 달려갔다 오느라 또 시간이 지체되었다. 내가 연락을 받은 것은 2시 20분경, 마침 국가인권위 조사관들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 사람들과 서둘러 동화전 현장으로 차를 몰았다. 들것을 든 구급대원 두 사람이 산 아래 진입로에서 주춤주춤하고 있었다. “술만 마셨고 약은 안 먹었다”고 해서 경찰이 올라가지 말라고 해서 그러고 있노라고 했다. 노인 한 분이 정신없이 야단을 쳤다. “약을 먹었다고 하잖느냐, 잘못되면 니들이 책임 질 거냐”면서 어서 올라가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 서슬에 구급대원들도 우리 뒤를 따랐다. 경찰 저지선을 뚫고 정신없이 산길을 올랐다. 입구 아래쪽에서 경찰이 “술만 마셨고, 약은 먹지 않았다”고 하는 이야기를 나도 똑똑히 들었고 그래서 적이 안심했지만,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황토방 입구에 도착하니 권씨는 울부짖고 있고, 황토방으로 들이닥치니 여기저기 찢어진 약봉지가 흩어져 있고, 유서까지 있다. 꼭지가 확 돌았다. “병원 안 갈 거다, 여기서 죽겠다”며 울부짖는 권씨를 들것에 억지로 태우고 산길을 타고 내려왔다. 밀양병원으로 달려가서 위세척을 두 차례 했지만, 영 미덥지 않았다. 창원 삼성병원으로 옮겼다. 수면제만으로는 사망에 이르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후유증이 남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행히 음독한 약을 분석하니 생명에 지장 없는 약이 상당수 있다고 해서 그때서야 안심을 했다. 중환자실에서 권씨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앞으로 우리들 앞에 무슨 일이 닥칠 것인가. 힘든 하루였다. 병원 가족대기실에 있는 컴퓨터로 〈대국민 호소문〉을 작성해서 보도자료로 전송했다. 이튿날 아침 곧장 남편과 주변분들의 진술을 종합해서, 그날 보여준 경찰의 어이없는 행태 ― ‘주민증 제시 요구, 채증, 구급대원 진입 거절, 약 안 먹었다는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넣었다. 검찰에 고발해 봤자 검찰은 다시 경찰에 이첩을 시킬 것이고, 고양이에게 맡긴 생선을 그들이 어떻게 처리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지금껏 경찰청을 담당하는 국회 안행위 소속 야당 의원실에 이야기를 넣어보았지만 “경찰은 야당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답만 돌아온다. 민사소송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겨우 국가인권위 진정이다.
남편은 중환자실에 격리된 아내와 면회를 마친 뒤에 병원 앞 식당에서 아구탕으로 늦은 저녁을 먹고 병원으로 돌아오면서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나에게 보여주었다. 복권이었다.
“이거 사는 바람에 이리 된 게 아닌가 싶네요. 이것만 맞으면 동화전 집 내삐리고, 고마 다른 데로 갈라 캤는데…. 내가 괜히 그런 맘을 먹는 바람에…”라며 희미하게 웃었다.

국회에서

이제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탔다.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는 계속 이어지지만, 잠시 전화를 꺼놓고 눈을 붙인다. 내가 오늘 서울로 가는 이유는 국회 법사위에서 18일 송주법을 처리할 거라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대책위에서 국회 법사위원장인 박영선 의원과 야당 법사위원들과 면담하고 법사위 나머지 의원실을 방문해서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려 한다. ‘송·변전설비 주변지역 지원법’, 줄여서 송주법이라고 부르는 이 법은 한동안 ‘밀양법’이라고 불려져왔다. 밀양 주민들은 보상에 반대했고, 765kV 송전탑으로 주민들이 입게 될 재산과 건강의 피해를 보상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으니, 보상 대신 송전선로를 지중화하든지, 기존 선로의 용량을 높여서 보내든지, 아니면 원전을 더 짓지 말라고, 그러니까 보상이 아닌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했다. 그것은 8년간 한 번도 변치 않고 지속된 밀양 주민들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그러나 저들은 결국 쥐꼬리만한 보상을 더 얹어 주는 길을 찾았다. 어떤 연유인지 야당 의원들이 먼저 법안을 상정했다. 민주당 김관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송주법은 그러나 그 자체로 너무나 허술하여 법안 공청회에서 여야 모두에게서 지적을 받았고, 그래서 우리는 안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가 어느 틈엔가 새누리당 의원까지 새로 발의한 두 법안을 묶어서 정부 입법안을 만들었고, 해당 상임위인 국회 산업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전격적으로 그리고 기습적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잘 짜놓은 각본처럼 국회 산업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몇 사람의 반대가 있었지만, 중과부적이었다. 의원들은 그동안 한전이 자체 내규로 법적 근거도 없이 임의로 보상금을 집어 주던 것에 비하면 상당한 진전이라고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
송주법은 송전선로 갈등을 ‘얼마 되지 않는 쥐꼬리 보상’으로 틀어막으려고, 그러니까 주민들이 입을 피해를 덜어주거나 갈등을 예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송전선로를 더 쉽고 원활하게 깔려고 만들어진, 철저히 한전과 정부의 이익을 위하여 입안된 것이다. 저들은 보상의 기초가 되는 주민들의 재산피해와 건강피해에 대한 실태조사 없이 자기들이 임의로 선을 죽죽 그었다. 765kV 송전선로의 경우 ‘직접보상은 송전선로 좌우 3m에서 33m로 확대, 간접보상 1km 이내 마을 지원금, 주택 매수 송전선로 좌우 180m 이내 주택’으로 정했다. 직접보상 33m, 간접보상 1km, 주택 매수 180m로 설정된 근거가 없다. 주민들의 피해 정도가 아니라 한전의 손익관계가 기준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밀양 송전탑을 계기로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초고압 송전선에서 발생하는 소음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서산시 팔봉면을 지나가는 345kV 송전선로 200m 이내에 사는 주민들 세 명 중에 한 명이 암으로 죽거나 투병하고 있다는 끔찍한 뉴스가 있었지만 송전선의 전자파 문제는 여전히 빙산의 일각만이 드러나 있다. 100m가 넘는 위압적 철탑이 그 곁에 사는 주민들의 심리에 미치는 경관피해도 예사롭지 않다. 그런데 송주법에는 이러한 건강권 문제가 완전히 빠져 있다. 명색이 지원법이라면서도 피해 지원을 주민들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방안도 적시되어 있지 않다. 이렇게 되면 매년 마을로 돌아가게 되어 있는 간접보상금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주민 간의 갈등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질 것이다.
이 법이 이미 국회 산업위를 통과해서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그러나 수많은 법안들을 다루는 법사위원들이 이 내용을 잘 알 리 없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법사위원장과 야당 법사위원들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국회의원회관에 도착하자마자 송주법 문제점의 핵심만 간추린 유인물과 송주법 관련 자료집을 들고 법사위 소속 의원실을 돌았다. 익숙한 풍경. 바삐 일하는 의원실에 노크하고 들어가서 “밀양에서 왔다”고 소개를 하고, 보좌관에게 5분 정도 시간을 내달라고 부탁하고, 보험상품을 설명하는 세일즈맨처럼 주섬주섬 설명을 늘어놓는다. “의원께 잘 좀 전해달라”고 부탁하면 보좌관은 “노력해보겠다”고 답한다. 거기에 한두 마디 덧붙는 이야기들도 비슷하다. “법사위는 법안의 체계와 자구를 심의하는 곳이다. 내용을 다룰 수 없다. 이미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을 수정할 권리가 없다.” 우리도 비슷한 대거리를 한다. “우리도 알고 왔다, 너무 절박하니 이렇게 온 것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한전은 이제 모든 상황이 종료된 것처럼 선전들을 해댈 것이다, 그 사이 두 사람이 목숨을 끊었고, 새롭게 한 사람이 더 목숨을 끊으려 했다, 이 법이 이렇게 졸속으로 통과되면 전국 곳곳에서 결국 밀양 같은 싸움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법은 송전선로 갈등을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더 키우고 구조화시킬 것이다” 운운. 그러나 이 말이 그들에게 잘 먹히지 않을 것임을 안다. 나도 알고, 보좌관들도 안다. 도덕적 당위와 합리성이 아니라, 주어진 틀의 완강함이, 힘의 관계가 구조화시켜놓은 압도적인 완력이 작동하는 것이 오늘날의 한국 정치다. 그들은 정치인이 아니라 ‘힘의 운반자들’일 뿐이다.
국회 본청으로 들어가 법사위원장실로 향한다. 면담자는 그 사이 합류한 김준한 신부와 나, 문정선 의원이다. 법사위원장실에는 박영선 위원장과 박지원, 신경민, 진선미 의원이 와 있고, 좀 이어 박범계 의원이 들어온다. 내가 약간 떨면서 10분 정도 브리핑을 했다. 이미 한전 사장이 먼저 찾아왔다고 한다. 의원들은 우리의 설명을 잘 이해하고 공감하는 듯하지만, 이미 법사위까지 와버린 상황에서 되돌리기 어려운 사정들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한전과 한번 더 대화할 것을 권고한다. 당장 18일로 예정된 법사위 통과는 유예될 것 같지만, 그 뒤는 기약할 수 없을 것 같다. 한전이 얼마나 완강하게 나오는지가 느껴지는 대목들이 있다. 여당 의원들은 법안의 내용들을 이미 다 알고 법사위 회의에 임하더란다. 그리고 한전은 지금도 한 명 한 명 집요하게 접촉들을 하는 모양이다. 박영선 위원장과 의원들은 그래도 힘내시라고 위로해준다. 마음은 누그러지지만, 달라질 것은 별로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든다. 법사위 소속도 아닌데 함께 배석했던 진선미 의원이 우리에게 차를 한잔 대접하겠다며 국회 본청 내 식당으로 우리를 이끈다. 국회를 상징하는 커다란 돔이 올려다보이는 넓은 홀을 지난다. 나라가 위급한 순간에는 바로 저 돔이 열리며 마징가제트가 나온다고 했던가. 어린 시절 들었던 빛바랜 유머가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마징가제트는 바라지도 않는다. 우리 편이 되어줄 한 사람의 국회의원에 갈급할 따름이다.
진선미 의원은 소속된 안행위에서 경찰의 행태를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해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야당 의원을 겁내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정권은 무력과 불통으로 똘똘 뭉쳐 있고, 어떤 견제도 양보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확고하다. 80일 사이에 56명의 노인이 병원으로 실려갔고,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초법적인 공권력이 제멋대로 준동했지만, 그들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았다. 따뜻한 차와 빵을 대접해준 진 의원은 “미안하다, 힘 내시라”면서 먼저 자리를 떴다.
그 자리에 장하나 의원이 연락을 받고 찾아왔다. 서른여섯의 청년 비례대표 초선 의원, 밀양에 몇 번이나 찾아와 주민들과 함께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자리를 지켰다. 지금은 대선 불복 선언으로 집중포화를 받고 있지만, 별로 주눅 들어 보이지는 않는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 한마디를 못해서 다들 속병이 들어가는 시절에 터져 나온 젊은 국회의원의 패기 있고 씩씩한 선언. 그런데 그 한마디로 국회의원직에서 제명하겠다느니, 릴레이로 전국 규탄집회를 한다느니, 한심한 꼬락서니가 우습지도 않다. 그는 밀양 송전탑 일을 여러가지 방식으로 정말 성심껏 도와주었다. 지난 5월 공사 강행 당시에 전쟁 같은 상황에 놓인 주민들을 만나러 밀양에 왔을 때, 그는 어르신들 앞에서 “제발 죽는다는 말씀은 하지 마시라”며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을 이어갔다. 국회의원의 눈물이 우리에게는 위로가 되었다. 우리를 위해 울어주는 국회의원이 있다는 사실, 국회의원이란 이런 오갈 데 없는 폭력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대신 울어주라고 뽑아놓은 ‘곡쟁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국회의원의 진심 어린 행동은 이제 매우 낯설고 예외적인, 그러니까 젊은 치기이거나 제스처거나, 어쨌든 뭔가 비정상적인 것으로 치부된다. 그러면서도 정치하는 자들은 ‘미래’와 ‘희망’이라는 수사를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현실 속에서 싸우거나 아픔에 함께하지도 않으면서, 미래를 위해서 희망을 위해서 참담한 오늘과 단절할 용기도 의사도 없으면서도, 말은 언제나 ‘미래’와 ‘희망’이다. 지금, 밀양은 정치의 사각지대에서 다만 벼랑까지 내몰린 자들의 절규만으로 지탱하고 있다. 장하나 의원이 몇몇 동료 의원들과 밀양 송전탑 공사 중단 촉구 결의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100명을 목표로 한다는데, 말씀만으로도 눈물겹게 고마웠다.

함께 손을 잡자

장하나 의원과 헤어져 국회에서 걸어 나오면서 나는 다시금 이 거대한 건물들과 바삐 오가는 사람들을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외로움을 느꼈다. 지난 2년 동안 수십 번 국회를 오가면서 한 번도 이런 감정 속에 빠지지 않은 적이 없었다. 우리는 너무 약하고, 초라하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고통과 눈물의 사연들을 익숙한 방식대로 ‘처리’하고 ‘소화’해버리는 이 괴물 같은 공간에서 우리는 외롭지 않을 수 없었다. 저들은 저렇게 번듯하지만, 그러나 저들도 실은 무력하기 짝이 없는 ‘힘의 운반자’일 뿐인 것을, 우리는 결국 다시 터덜터덜 이곳을 떠난다. 밀양 송전탑 일만 아니라면 쳐다보고 싶지도 않다. 근처에도 오기 싫다.
서울시청 앞에 마련된 유한숙 어르신의 분향소에 잠시 들르고 싶었지만 동행한 문정선 시의원의 몸 상태가 몹시 안 좋아 보여 서울역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작년 여름 동화전마을 공사 현장에서 공사용 장비를 점거하고 며칠을 노숙했고, 헬기 이륙을 막으려고 뛰어들어간 헬기장 입구에서 인부들에게 한 시간 가량 내리눌리는 폭력을 당해, 어깨 인대가 끊어져 몇 달을 입원해야 했다. 밀양이라는 극보수의 도시에서 유일한 야당 시의원으로, 그것도 여성에, 비례대표라는 약점이라는 약점은 모두 짊어지고, 거기다 송전탑 일로 이렇게 뛰어다니니 그를 향한 시선이 고울 리 없다. “나댄다, 주민들 선동한다, 무책임하다”는 악담까지 들어가며 지난 2년을 버텨와야 했다. 문 의원뿐이겠는가. 그런 소리는 아마도 나에게도 그리고 대책위 대표인 신부님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울역 식당에서 죽을 좀 포장해서 기차를 탔다. 문 의원은 피곤한 듯 눈을 붙이고 있고, 나는 후루룩 죽을 먹는다. 늘 이런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현장에서 주민들과 함께 있을 때가 차라리 행복했고, 좋았다. 싸움은 깊어질 대로 깊어졌고, 싸움판은 커질 대로 커졌다. 그리고 저 공권력과 언론과 정치권의 합작으로 조성된 압도적인 완력에 밀려 이 싸움은 조금씩 기울어져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껏 버텨온 게 기적이라고 이야기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싸움을 벗어날 수 없고, 마지막까지 버티는 주민들과 함께해야 한다. 내 삶이 송전탑 싸움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음을 나는 조금씩 느끼고 있다.
밀양 송전탑 싸움은 분명 이 사회에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막무가내의 원전 증설과 그에 따른 장거리 송전선로가 야기하는 불의하고 모순에 찬 구조가 폭로되었다. 대기업을 위해, 도시생활자들의 맹목의 소비생활을 위해 누가 어떤 고통의 맷돌 속으로 내던져지는지를 밀양 송전탑 싸움은 대낮처럼 드러내 보여주었다. 탈핵운동의 지평이 송전선까지 넓어졌다. 송전선을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원전 증설이 억제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도 되었다. 누군가들은 밀양 송전탑 싸움으로 에너지정책이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직 달라진 것은 없다.
무엇이든 남긴 남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 싸우는 것은 아니다. 이 불의한 힘 앞에서 굴복하지 않고,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이다. 서로 손을 놓아서는 안되는 분명한 이유는 누군가가 손을 놓아버린다면 또다시, 좌절과 우울을 견디지 못한 다른 누군가의 죽음이 예비될지도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것을 잃었고, 또 놓쳤지만, 우리는 지금껏 정말로 온 힘을 다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남은 시간도 그러할 것이다. 이 싸움을 통해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 그들은 모두 약한 사람들이었고, 또한 마음이 가난한 소수자들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노동자, 사랑 깊은 종교인,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엄마, 세상일에 분노하는 청년 학생, 인권운동가, 정의의 편에 선 소수의 법조인·의료인·지식인들, 결코 이 사회의 주류이거나 다수에 속할 수 없는 이들이 밀양과 함께했다. 그리고 지금껏 130차례의 촛불집회와 수많은 마을 단위의 행사, 수십 차례의 상경집회와 연대행사를 치러냈고, 지금도 분향소에 계시는 어르신들의 밥을 매일처럼 해 나르는 우리 너른마당 조합원 식구들과 제 발로 밀양에 찾아온 자원봉사자들은 지금껏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걸어갈 것이다.
의롭고 고통받는 자를 돕는 힘을 나는 믿는다. 함께 손을 잡자. 우리 어르신들의 손을 누군가가 잡아다오. 같이, 손을 놓지 말고 함께 걸어가자! 살아있으라. 누구든, 살아있으라.


이계삼 ―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 사무국장.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감물생태학습관 교사. 저서로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삶을 위한 국어교육》, 《변방의 사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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