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제131호 2013년 7-8월호  

  좌담| 모두에게 존엄과 자유를 ― 기본소득, 왜 필요한가

  강남훈 · 곽노완 · 김종철

  김종철  자, 그럼 시작을 해볼까요. 바쁘신 분들인데 시간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좌담의 테마는 ‘기본소득’입니다. 기본소득에 관해서는 《녹색평론》에서도 그동안 관심을 가지고 여러 차례 자료들을 소개하고, 또 제가 몇몇 강연에서 산발적으로 이야기한 것을 게재해왔습니다. 그러나 짜임새 있게 체계를 갖추어 소개했다고는 할 수 없고, 그래서 조만간에 좀 이걸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장을 마련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꾸 급하게 대응해야 할 문제들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경황이 없다 보니 미루어져왔습니다. 강남훈, 곽노완 두 선생님은 진작부터 기본소득에 관해서 집중적으로 연구를 하시고, 또 공론을 주도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뒤늦게나마 두 분을 모시고 이런 좌담을 갖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은 대부분의 독자들이 기본소득이 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 있다고 가정하고 논의를 시작했으면 합니다. 아주 기초적인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여 기본소득이라는 게 무엇이며, 왜 이것이 중요하고, 나아가서는 한국사회에서 실현 가능한가, 실행 가능하다면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가, 이런 순서로 진행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쨌든 기본소득에 관련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고,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들을 가급적 폭넓게 기탄없이 말해주시기 바랍니다. 제 욕심은 이 좌담이 우리사회에서 기본소득 논의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에도 두 분은 《진보평론》을 비롯하여 여러 학술지나 학술모임을 통해서 이 문제에 대해 꾸준히 발언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차에 인정하지 않을 수 없듯이 그것은 매우 협소한 독자층, 한정된 청중을 상대로 해왔기 때문에 대다수 일반 시민들은 물론이고 식자층에게도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는 여전히 낯선 게 사실일 것입니다. 물론 《녹색평론》도 작은 잡지이지만, 학술지들에 비해서는 비교적 열려있는 잡지이기 때문에 오늘 좌담이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를 확장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자, 그러면 먼저 두 분이 어떤 계기로 언제부터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개인적인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강남훈 선생님부터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강남훈  아니 저보다 기본소득은 곽 교수님이 먼저 제안하셨으니까….

  김종철  제가 잘못 알았군요. 저는 그냥 강 교수님이 연배가 위니까 먼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웃음) 그럼 곽 교수님부터 말씀해주세요.

  곽노완  일단 저는 학생시절부터 운동을 하면서, 한국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1990년대에 진보운동이 굉장히 약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진보운동을 다시 희망을 갖는 운동으로 만들어갈 수 없을까 하는 고민과 연관해 기본소득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 도중에 90년대 중반부터 녹색당이나 녹색운동에 대해서도 눈을 뜨게 됐고요. 그리고 1990년대 중·후반부터 신자유주의가 극한으로 치달으면서, 물론 신자유주의는 그 전부터 있었습니다만, 나타난 특이한 현상 중 하나가 젊은 세대들에게 희망이 없어지고 ― 땅값이 올라서건 집값이 올라서건 아니면 사회복지 축소로 인해서건 늙은 세대들이 어린 세대들을 수탈한다고 할까요 ― 젊은 세대들이 많은 기회를 잃고 흔히 말하는 삼포세대로 빠져드는 현상을 목도하면서, 이 젊은 세대들과 어린 친구들 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에게 지속가능하고 희망을 주는 사회를 만드는 쪽으로 노동운동과 녹색운동을 포함한 사회 진보세력이 결집할 수 있는 어떤 어젠다나 정책 혹은 비전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과거 구좌파나 현실사회주의의 문제점들을 생각했어요. 거기엔 실제적으로 서유럽보다 살기가 안 좋았다는 점과 더 민주적이지 못했다는 점도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현실사회주의 사회가 사람들에게 정확히 무엇을 줄 수 있는지가 굉장히 모호했고, 실제로 자본주의보다 더 협소한 부분이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삶의 기회, 즉 개인들이 자기의 ‘끼’를 발산하고 잠재력을 키울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게 중요한데 그렇지 못했다는 거죠. 근데 제가 맑스를 전공했는데, 맑스 안에 ‘기본소득’이란 언어는 없지만 기본소득과 유사한 대목이 나옵니다. 그런 부분을 재구성하면 바로 지금 얘기되고 있는 기본소득이 됩니다.
  저는 가처분 GDP 중 50%까지는 모두에게 똑같이 돌아가게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당장에는 작은 규모로 시작하지만 종국적으로 그 수준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로 치면 1인당 가처분 GDP가 연간 2,000만원 정도니까, 종국적으로 1인당 1,000만원 수준까지 돌아갈 수 있다는 거죠.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기본적인 기회를 어느 정도 평등하게 갖게 될 수 있겠죠. 개별적으로 더 열심히 일하거나 성과를 많이 내서 더 많이 가져가는 것은 굳이 통제하지 않더라도 기본적인 것은 똑같이 나눈다 ― 그것이 맑스를 재구성하는 길이고, 녹색운동을 재구성하는 길이기도 하고, 미래세대에게 희망을 주는 길이라고 생각해서 기본소득운동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종철  그러니까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는 구체적으로 독일 유학 중에 아시게 된 거죠? 그때 처음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을 접했을 때 그 느낌이랄지 소감이 어땠습니까?

  곽노완  기본소득을 주창하지는 않았지만 옆에서 지지했던 사람인 안토니오 네그리의 이론을 통해서 처음 접했어요. 그런데 명칭이 기본소득은 아니었어요. 내용은 기본소득인데. 기본소득을 처음 주장한 사람이 누구인가 거슬러 찾아보니까, 물론 그 전에도 있지만 현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시작한 사람들로 앙드레 고르, 판 파레이스를 빼놓고 이야기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 충격이 컸습니다. 현실사회주의가 좌파와 진보의 희망이 되기보다 거대한 악몽이 되어버렸는데, 기본소득이라면 이런 상황을 단숨에 넘어서서 적어도 비전의 차원에서 다시 희망으로 전환시킬 수 있겠다 싶었죠. 기본소득이야말로 진짜 맑스주의나 진보적 가치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가 불분명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이걸로 설명이 될 것 같았어요. 다시 선명한 희망을 가질 계기가 되겠다는 생각에 굉장히 충격이었습니다.

  김종철  거기에 대한 부연설명은 좀 있다가 말씀해주시고, 이제는 강남훈 선생님 개인사를 좀 듣고 싶군요.

  강남훈  저는 여기 계신 곽노완 교수의 논문 발표를 들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2006년이나 2007년 정도일 겁니다. 노동운동단체에서 엠티를 가서 세미나를 했는데 곽 교수의 발표를 듣고 신선하게 느꼈습니다. 그때 저는 우리사회를 바꾸려는 운동들이 힘을 잃고, 사람들한테 꿈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현실정치를 하시는 분들이 중산층을 겨냥해서 진보와 보수의 중간쯤 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도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기본소득 정책은 충분히 시도해볼 만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본소득에 쉽게 공감하게 된 데는 개인적으로 집안문제가 있다는 점도 솔직하게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어느 집안에나 형제나 사촌 중에서 잘 안 풀려서 힘들게 사는, 부모들 보시기에 마음 아픈 말썽꾸러기 자식이 하나쯤 있잖아요. 형제들이 도와주는 데는 한계가 있고, 그것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끝이 없지요. 그런 문제로 부부 간에 갈등하는 경우도 많고요.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친척들 도움 없이도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비슷한 예로, 저는 초등학생 때부터 길거리에서 동냥을 하는 사람을 보면 돈을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해왔습니다. 불쌍해서 주고는 싶은데 저 사람이 계속 구걸을 하면 어쩌나 이런 고민입니다.(웃음)
  곽노완 교수의 발표에 깊은 인상을 받고 몇 년이 지난 뒤에 2008년 겨울, 급진적으로 사회를 바꾸는 정책과 대중적인 진보정당운동이 함께 갈 수 있다는 요지의 글을 학술대회에서 발표했습니다. 거기서 저는 급진적이면서 대중적인 정책의 예로 기본소득을 들었어요. 그때 토론자로 나왔던, 당시 민주노총에서 근무하고 있던 이수봉 씨가 저한테 연구만 하지 말고 기본소득운동을 같이 하자고 제안해서 기본소득운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2009년 곽노완 교수, 이수봉 원장, 금민 선생과 함께 정파와 노선을 떠나서 기본소득을 찬성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운동을 위해서 기본소득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주로 연구와 발표 위주로 운동을 했는데, 이제 4년이 넘었네요.

  김종철  결국 한국 기본소득운동의 개척자들이신데, 알고 보니 곽 선생님이 원조네요.

  곽노완  아닙니다. 저보다 먼저 글을 쓰신 분들이 있습니다.

  김종철  저는 1996년부터 《녹색평론》 지면을 통해서 지역통화운동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자료를 소개하는 도중에 이런저런 관련된 문제들, 예를 들어, 금융통화문제나 영국의 클리포드 더글러스가 제창한 사회신용(Social Credit)운동 등을 알게 되고, 그런 과정 속에서 기본소득을 발견한 셈인데요. 언제 기회가 있으면 지역통화문제는 따로 자리를 마련하여 두 분 선생님하고 의견교환을 했으면 좋겠는데, 사실 저는 처음에 지역통화(local currency)운동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아마 한 달 동안은 완전히 흥분상태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도구만 있으면 앞으로 좋은 세상 만드는 거 문제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순진한 흥분상태에 있었지요.
  그리고 두 번째로 놀란 게 기본소득입니다. 이런 아이디어가 있었구나. 알고 보니까 앙드레 고르나 에릭 프롬도 벌써 수십 년 전부터 기본소득을 언급했더군요. 저도 젊었을 적에는 그분들의 책을 꽤 읽었는데, 그때는 책에 그런 이야기가 씌어있다는 것을 전연 의식하지 못하고 넘겨버렸어요. 관심이 없으니 보이지 않았던 거죠. 요 며칠 전에 에릭 프롬을 다시 찾아보니까 이 문제에 관한 독립적인 논문도 있더군요. 〈보장된 기본소득의 심리학적 측면〉이라는 제목으로 1965년에 발표된 글입니다. 그것을 저는 근 50년 만에 발견했으니 한심하죠.
  개인적인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요. 아까 강 선생님이 가족 이야기를 하셨는데, 저도 마찬가집니다. 가족이나 친척들 중에 멀쩡한 젊은이들이 노동시장에 들어가서 정규 임금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주눅이 든 채 음울하게 지내는 걸 보면 말할 수 없이 답답합니다. 우리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경제가 한창 고도로 성장을 계속하는 시대라면 어디선가 일자리가 자꾸 튀어나오니까 기다려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잖아요. 그러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출구가 있는가, 있다면 무엇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를 접했으니까 번쩍 눈이 떠진 거죠. 현실적인 활로를 발견한 셈이니까요.

  강남훈  에릭 프롬의 재발견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기본소득운동을 하면서 일본의 야마모리(山森亮)라는 교수가 쓴 기본소득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거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학생들에게 물어봅니다. 너희들 마틴 루터 킹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나? 훌륭한 사람입니다. 뭐가 훌륭하냐? 흑인들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신 분입니다. 무슨 좋은 일을 했냐? 여기까지 질문하면 대답하는 학생이 한 명도 없다는 거예요. 솔직히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야마모리 교수의 글을 읽고 나서 찾아보니까, 마틴 루터 킹이 죽기 직전에 계획했던 운동이 ‘빈자들의 행진(Poor People’s Campaign)’이었는데요. 이 운동의 핵심 요구사항은 흑인을 포함해서 백인까지 모든 미국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킹 목사의 마지막 연설문에는 “오늘날 사람을 달에 보내는(1960년대 당시 아폴로 우주선이 인간을 태우고 달에 갔잖아요) 세계 최고의 부자 나라에 하느님의 자녀들을 지구상에 두 발로 서게 만들 만큼(기본소득을 보장할 만큼) 충분한 돈이 있다”는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빈자들의 행진’은 CIA에서 행진을 계속하면 죽인다고 경고를 했다고 해요. 죽더라도 이 행진을 하겠다고 결심했으니까, 어떻게 보면 마틴 루터 킹이 목숨하고 바꾼 운동이 기본소득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김종철  확고한 신념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네요. 그러면 우리가 여태까지는 기본소득을 다 아는 것으로 생각하고 말했는데, 곽 선생님께서 기초적인 설명을 좀 해주시죠.

 

기본소득의 논리

  곽노완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에 소개된 말로 표현하면, 모든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생계에 필요한 돈이나 현물급여(무상급식이나 건강보험 같은 것이 되겠죠)를 조건 없이 지급하라는 요청이고, 원칙입니다. 그럼 여러가지 관련된 문제가 제기되겠죠? 왜 줘야 되느냐, 주는 게 과연 정의로우냐 하는 철학적인 문제부터, 줄 돈이 있느냐, 또 왜 일하지 않는 자들에게도 줘야 되느냐, 왜 부자들에게도 줘야 하느냐 등등 많은 문제가 있을 텐데, 얘기하면서 차근차근 짚어보지요.
  한 가지 먼저 강조하고 싶은 건, 왜 줘야 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일단 생태운동을 하는 분들에겐 쉽게 이해될 텐데 지구와 생태계는 인류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자기의 노력과 무관하게 주어진 것이죠. 토지도 그렇고. 근데 자연적인 선물도 있지만 선조들이 남겨놓은 사회적인 선물도 있습니다. 거대한 사회적·지적 유산일 수도 있고, 구체적인 물건, 건물, 유적의 형태, 제도의 형태일 수도 있습니다. 또 자기의 노력 없이 주어지는 동시대의 동료들이 주는 선물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선물들을 현재 누가 차지하고 독점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땅값이 오르면 이득을 보는 사람은 땅을 많이 소유한 사람이고, 경제가 성장하면 이득을 제일 많이 갖는 사람들은 소수의 대주주 내지 한국의 경우엔 재벌이 되겠죠. 인구가 늘면 정치권력의 영향력이 커지는데, 그때 인구가 느는 효과로 이득을 보는 것은 정치적 권력자, 돈이 많은 사람이나 자원이 많은 사람 아니면 땅을 많이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거대한 자본소득이나 투기소득의 형태로 모두가 만들어내는 선물, 선조가 만든 선물, 자연이 만들어낸 선물을 독점하는 것은 굉장히 정의롭지 못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노력의 결과가 아닌 것, 즉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것에 대해서는 적어도 인류 모두가 평등한 권리를 갖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토지나 자연자원에 대해선 그런 생각을 누구나 비교적 쉽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실제로 알래스카에서 금액이 많지는 않지만 연간 3,000달러 내외의 기본소득을 주고 있어요. 석유기금에서 나온 수익을 알래스카에 1년 이상 거주한 사람들, 외국인에게도 기본소득으로 주고 있어요. 자연자원에서 나온 이익이라는 점에서 비교적 쉽게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죠. 이렇게 보통 자연자원이 선물이라는 데는 사람들이 쉽게 공감하는데, 사회적 혹은 역사적인 선물에 대해서도, 이미 법적으로 누군가의 사적인 소유로 되어있다 하더라도 원리적으로 모두에게 평등한 접근권을 주어야 한다는 것은 잘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나 자연자원이나 자연생태계와 똑같이 사회적 혹은 역사적인 자원도 지속적으로 누구나 같이 평등하게 누려야 할 선물임이 분명합니다. 그런 생각으로 접근하면 거기에서 나오는 이익을 n분의 1로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기본소득의 권리로서 갖게 해야 할 이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김종철  평등성의 관점에서 공동체의 공통한 자산에 대해서 그것을 평등하게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은 윤리적·사회적인 측면에서의 논리이겠는데, 경제학적 논리로도 기본소득을 실시해야 할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강남훈  먼저 복지를 실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봅시다. 사회적으로 불평등이 너무 심해지고 가난한 사람들이 더욱더 가난해져서 많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게 되겠죠. 그러면 돈이 많은 사람들도 편안하게 살 수 없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돈이 많은 사람은 집에 전기철조망을 쳐야 하고 사설경비원을 고용해야 하고 애들을 학교에 보낼 때 경호원을 붙여야 한다면, 그런 사회에선 부자들도 행복하게 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난한 사람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사회 전체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 됩니다. 그래서 복지라는 개념이 생겼죠.
  그런데 가난한 사람을 골라내서 필요한 것들을 최소한으로 제공하는 형태의 복지, 즉 선별복지방식엔 많은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현금을 지급하는 경우엔 문제가 더욱 심각해집니다. 정작 필요한 사람이 못 받는 경우가 생긴다는 문제도 있고, 선별에서 제외된 사람의 소득이 선별된 사람의 소득보다 적어지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래서 차상위계층(기초생활수급자보다 약간 더 잘사는 사람) 중에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선별복지로 인해서 사실상 소득이 역전되는 불공정한 결과가 생기는 것입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면 일자리가 생겨도 일을 하지 않는 편이 유리하다고 합니다.
  또하나 경제학자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행정비용입니다. 누가 가난하고 누가 자격이 있는지를 가려내는 데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듭니다. 무상급식처럼 밥 한끼 주는 정책의 경우에도 행정비용이 적지 않은데, 현금을 지원하는 정책의 경우엔 굉장히 많은 행정비용이 들어요. 그래서 그럴 바에야 구별하지 말고 누구에게나 다 주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는 경제학자들이 생기는 겁니다. 세금을 조금 걷어서 가난한 사람들만 선별해서 보조금을 주는 정책과, 모든 사람에게 다 보조금을 주면서 부자들로부터는 세금을 더 걷는 정책은 최종적인 분배에 있어서는 동일한 결과가 되지만, 그러나 행정비용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나요. 세금 걷는 행정에 필요한 정보는 잘 수집되어 있지만, 보조금을 주는 행정에 필요한 정보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까 에릭 프롬과 마틴 루터 킹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만, 그 시절(1960년대)부터 경제학자들 중에는 좌·우파를 막론하고 기본소득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어요. 밀턴 프리드먼이나 제임스 뷰캐넌 같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보수 경제학자들도 기본소득(또는 기본소득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마이너스소득세)을 주장했습니다. 물론 진보 경제학자들의 지지가 훨씬 많습니다. 제임스 미드는 기본소득과 협동조합에 기초한 새로운 이상사회를 꿈꾸면서 평생 기본소득에 관한 저술을 했어요. 토빈세로 유명한 제임스 토빈은 젊었을 때부터 쭉 기본소득을 옹호해왔고요.
  지금까지 70명쯤 되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 중에서 기본소득을 지지한 사람들이 10명이 넘어요. 경제학계가 전체적으로 매우 보수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높은 비율입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사람들 중에 기본소득 지지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이유는 아마도 행정비용 때문일 것 같습니다. 경제학자들은 보수건 진보건 효율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김종철  이야기가 벌써 핵심으로 들어가는 것 같네요. 가난한 사람들이나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을 줘야 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할지라도 재벌들에게도 줘야 되느냐는 질문은 누구라도 할 수 있죠. 곽 선생님도 조금 해명을 해주셨고, 강 교수님도 경제학적 논리로 볼 때 그것이 훨씬 간단하고 행정비용이 적게 든다고 설명하셨는데, 물론 그것은 합리적인 설명이라고 생각됩니다만, 대중적으로 좀더 이해하기 쉽게 설득할 수 있는 논거가 없을까요? 모든 시민에게 기본소득을 일률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재산의 과다나 직업 유무를 불문하고 다 줘야 한다, 특히 부자들에게도 다 줘야 한다고 하면 아무래도 석연치 않게 생각할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곽노완  강남훈 선생님께서는 무상급식을 주창하신 분이니까 그걸 사례로 설명해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무상급식 논리와 다르지 않으니까요.

  김종철  경제적인 문제도 있을 것이고 철학적인 문제도 있을 것이고, 여러 차원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것만 제대로 설명한다면 우리가 한 고비는 넘어갈 것 같은데요.

  강남훈  아까 말씀드렸듯 원래 경제학자들은 행정비용을 따져서 부자들에게도 혜택을 주고 부자들로부터 세금을 더 걷는 게 낫다고 보았습니다. 행정비용은 경제학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중요한 비용입니다.
  경험적으로 말씀드리면, 예를 들어 보육료 지원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적으로 보육료를 지급하겠다고 공약했지만(실천을 제대로 할지 지켜봅시다), 그 전에는 하위 70%까지 선별해서 20만원 정도의 보육료를 지원한 적이 있어요. 그때(2011년) 한 사람이 서류로 신청하면 처리기간이 60일이 걸렸어요. 소득은 세무서에 자료가 있고 토지는 등기부 등본이 있으니까 조회하면 바로 나오죠. 이 두 가지만 조사하면 그렇게 시간이 안 걸려요. 그런데 공평하게 하려고 금융자산까지 조사했어요. 금융자산에는 은행예금, 증권투자금, 보험가입금 등이 있고, 또 부채도 있으니까 그런 것들을 다 조사하자니 엄청난 시간이 걸렸던 거죠. 또 사람들이 자신이 하위 70%에 속하는지 80%에 속하는지, 90%에 속하는지 모르고, 밑져야 본전이니 웬만하면 일단 신청을 해보는 거예요. 그러니 행정비용이 더 들게 되었지요. 게다가 단순한 행정상 문제를 넘어서 도덕적 해이 문제까지 생겼어요. 자기 예금통장에 예금이 수천만원 들어있으면 그 돈을 빼내서 시집 안 간 여동생 계좌로 옮겨놓고 보육료를 신청하는 거예요. 예금이 있으면 선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회주의적인 행동을 했기 때문에 선별적 무상보육정책이 실패한 것입니다.
  무상급식 말이 나왔으니까 정치적 측면에서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기본소득이 선별복지에 비해서 행정비용 차원에서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정치적 지지를 받는 데도 유리할 수 있어요. 무상급식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무상급식은 액수가 적지만 정책교과서에 실릴 만한 정책이었어요. 그런데 무상급식은 제가 처음 제안한 것이 아니고, 2009년에 김상곤 교육감 선거캠프에서 누군가가 낸 아이디어입니다. 경상남도에서 하고 있었나요?

  곽노완  ‘도’까지는 아니고 ‘군’ 차원이었어요.

  강남훈  그때는 제가 이미 기본소득 공부를 하고 있던 때여서 부자들에게 왜 무상급식을 줘야 하느냐 이런 싸움이 생기면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확신을 했어요. 한 달에 3~4만원 정도의 급식비를 모든 학부모에게 지원하는 정책이 30%의 가난한 학부모에게만 지원하는 정책에 밀릴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무상급식은 2009년 선거 당시보다 김상곤 교육감이 당선되고 난 뒤, 보수당이 주도하고 있던 도의회에서 격렬한 공격을 받으면서 정치 쟁점으로 부각되었습니다. 욕설이 오가는 탄압 속에서도 김상곤 교육감이 꿋꿋하게 버티면서 조금씩 무상급식을 실천해나가자 대부분의 국민들이 무상급식을 알게 되었고, 대다수가 지지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2010년 지방자치선거에서 야당은 무상급식 공약을 가지고 압승했지요.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상급식에 도전하다가 시장 자리까지 잃어버렸고요.
  무상급식이 성공한 뒤, 반값등록금이 정치적 이슈로 등장했습니다. 2012년 대선이 시작될 무렵에는 여당은 하위 30% 학생들만 선별해서 주겠다는 입장이었고, 야당은 모든 학생들에게 반값등록금을 실시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당도 이미 무상급식이 유권자들에게 갖는 정치적 효과를 목격한 상태였어요. 그래서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국가장학금 수혜 대상을 계속 늘리는 공약을 발표했고, 선거일에 임박해서는 하위 80% 대학생까지 국가장학금을 주겠다고 공약했습니다. 문재인 후보의 공약도 단순한 반값등록금을 넘어서 전문대학을 무상으로 한다는 정도까지 발전했었죠. 박근혜 후보는 모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겠다고 공약하지는 않았는데, 그건 대학생이 자신의 주요 지지계층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예요. 주요 지지계층인 노인층을 위해서는 100% 노인에게 20만원씩 기초노령연금을 주겠다고 공약했죠. 이 공약은 박근혜 후보의 당선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모든 노인에게 소득에 관계없이 20만원씩 준다는 공약은 노인기본소득이라고 할 수 있어요(당선 이후 원래의 공약에서 크게 후퇴하고 있습니다만). 무상보육도 마찬가지입니다. 박근혜 후보는 부자들에게도 보육료를 보편적으로 지원하겠다고 공약했어요.
  이렇게 기본소득은 비록 명시적인 이슈가 된 것은 아니지만 정치권에서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무상보육, 기초연금 등에 숨겨진 채로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입니다. 행정비용 측면이나 정치적 측면 이외에도 부자에게 기본소득을 주어야 하는 데에는 또다른 논리들이 있을 텐데 곽노완 교수님이 더 설명해주시죠.

  곽노완  결론부터 얘기하면, 부자에게도 줄 때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학술적으로 ‘복지의 역설’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국민기초생활보장의 경우를 보면 전체 국민 대비 3%가 받고 있는데, 그러면 97%는 주는 사람, 3%가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죠. 그럼 97%의 다수가 복지를 줄이려고 하게 됩니다. 정치인도 다수의 표를 얻으려니 마찬가지 입장을 취하죠. 복지 대상의 숫자도 줄이지만 금액도 줄이려고 노력합니다. 그게 복지의 역설입니다. 드는 돈은 적지만 자꾸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한편, 모두에게 복지혜택을 주면 내는 것과 받는 것을 계산할 때 받는 게 더 많은 사람들이 아무래도 다수가 됩니다(강 선생님과 제가 짠 기본소득 모델에 따르면 최소한 90% 이상, 냉정하게 평가하면 95%까지도 순수하게 이득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다수가 복지를 확장하는 쪽으로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런 입장에서 정치적인 투표도 하게 되죠. 그렇게 되면 가난한 사람들도 더 많은 혜택을 받는 쪽으로 기운다는 겁니다. 물론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는 문제가 있지만 그건 또다른 문제이고, 다만 원리적으로 그렇게 작동하게 되므로 오히려 재원을 더 마련해가면서도 복지를 확대하는 쪽으로 가게 된다는 게 복지의 역설입니다.
  또하나는 삶의 태도와 관련된 것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복지가 취약하다 보니 불안정성이 높기 때문에 사람들이 창의적인 재능이 우수한 편이면서도 그걸 잘 발휘하지 못해요. 부자들도 마찬가집니다. 예를 들어,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성공 가능성이 있으면 도전을 해야 하는데 잘 안하려고 하죠. 망하면 제로가 되니까요. 근데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즉 실패하더라도 굶어 죽을 염려는 없다, 아이들 교육시키는 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주거도 보장된다는 믿음이 있으면 삶의 태도가 용감해지고 창의성을 억누르지 않고 마음껏 발산하게 되겠죠. 물론 실패하는 사람도 생기지만 성공하는 사람이 더 많이 생겨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보든 문화적으로 보든 사회가 풍요로워진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소득의 철학은 지금의 자본주의체제에서처럼 돈이 없고 생활이 불안정해서 사람들이 재주나 잠재력 혹은 ‘끼’를 발휘 못하는 게 아니라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해서 더 풍요롭게 인류의 능력을 향유하자는 겁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당연히 부자들에게도 주는 게 맞죠.

  김종철  사실 가난한 사람들만 불안한 게 아니라 부자들도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지요. 더 불안할지도 모릅니다. 스케일이 더 크니까 크게 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오히려 부유층일수록 더 나쁜 짓을 저지르고 변칙적인 활동을 하는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곽노완  현대 자본주의체제에서는 자기 돈으로 사업하는 사람이 거의 없죠. 빚을 내서 합니다. 그래서 부자들이 빚이 많고 기업이 빚이 더 많은데, 그런 상태에서 매출 10%가 줄어들면 이익이 10% 줄어드는 수준이 아니라 빚 상환이 어려워지니까 재산이 제로가 되고, 파산에까지 이르죠. 그러니까 기업들은 제로냐 지금 가진 걸 보존하느냐 하는, “All or Nothing”이라는 굉장히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본소득이 확립되고 부채에 기초하지 않은 경제시스템을 우리가 지향하고 실현할 수 있다면, 훨씬 건전한 기업활동이 가능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강남훈  부자들이 사업에 실패하면 단순히 돈만 잃는 게 아니라 감옥에 가거나 자살까지 하는 일도 있죠. 재미있는 실화가 있습니다. 성함은 못 밝히지만 기본소득운동을 지지하고 후원해주시는 중소기업 사장이 한 분 계신데요.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풍족하게 쓰고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돈이 대충 계산하면 100억 원쯤 될 것 같다. 상속세를 정직하게 내면 상속세율이 50%니까 남는 게 50억 원인데, 그걸 주면 자식이 잘 살까? 아마 다 탕진하고 빚지고 감옥 가면 행복하지 못할 거다. 그래서 자식에게 50억을 물려주는 거보다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물려주는 게 낫다.”(웃음)

  김종철  그건 웃을 일이 아니라 맞는 얘기예요. 자식에게 남겨줘야 된다고 생각하면 인생이 참 고달픕니다. 지금 다만 얼마라도 재산을 모아가지고 내 자식 살아갈 경제적인 토대를 마련해주고 죽어야지,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잖습니까? 그래서 온갖 무리한 욕심에 시달리면서, 있는 놈이나 없는 놈이나 늘 편치 않은 인생살이잖아요. 내 자식도 기본소득 받고 내 자식의 자식도 기본소득 받는 세상에서 살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산다면, 상속 같은 거 전혀 생각할 필요도 없이 살 수 있잖아요. 재산을 쌓을 필요가 없잖아요. 있는 그대로 쓰다가 죽으면 되니까.
  실은 그런 점에서 기본소득은 가난뱅이들보다 부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자고 해야 할 제도입니다. 겸허한 마음으로 자기들이 살아가는 꼴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거죠. 만날 상속문제 때문에 온갖 추한 꼴을 다 드러내고 사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 것을 보면 재벌이 우리보다 더 괴로운 인생을 산다고 할 수 있어요. 자기도 자기 아버지한테서 상속받아서 그걸 키워서 큰 재산이 됐는데, 자기 자식이라고 해서 자기처럼 재산이 더 불어난다고 아무도 장담 못해요. 감옥에나 안 가면 다행이지요. 그러니까 정말로 좋은 인생이 뭔지 깊게 생각한다면, 기본소득은 누구나 환영할 만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됩니다.

 

  탈성장시대와 기본소득

  김종철  그리고 두 분 선생님도 말씀하셨듯이, 행정비용 등을 감안하면 특별히 새로운 추가적인 재원이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죠. 선별적으로 하는 것보다 전체적으로 볼 때는 경제적으로도 훨씬 이익이라는 거죠. 그렇다면 일반 시민들이 이것을 이해하기만 하면 선거에서 이길 수밖에 없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지금 이걸 실제로 선거공약으로 들고 나와서 재미를 본 정치세력이 아직 세계 어디에도 없지 않나요?

  곽노완  최근 유럽에 좀 있는 거 아닙니까? 일단 세 군데 예를 들고 싶은데요. 하나는 독일의 해적당. 아주 크지는 않지만 적어도 베를린 주선거에서 작년, 재작년이었던가요, 재작년에 8.9%를 얻었는데, 그 전 2%에서 8.9%로 약진을 했어요. 주의회에서 의원을 많이 배출했어요(지금은 인기가 약간 줄었습니다만). 두 번째로 그리스 ‘시리자’ 같은 경우 제2당이 됐지 않습니까? 옛날 공산당에 있던 사람들이 나와서 주축이 돼서 좌파연합을 만들고, 그 좌파연합이 주축이 돼서 시리자를 만들었는데 주요 공약 중 하나가 기본소득입니다. 금액은 많지 않고(우리 돈으로 월 30~40만원 수준이었던가요?) 최소보장소득이란 말을 쓰긴 했지만, 내용적으로 기본소득입니다. 그것이 신생 정당이 정치적으로 급속도로 성장하는 데 큰 힘이 됐어요. 그리고 김종철 선생님도 지난번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소개해주셨지만, 이탈리아의 베페 그릴로가 이끄는 오성(五星)운동 그룹이 지난 총선에서 25% 지지를 얻어 제3당이 되었죠. 신생 정당이 급속도로 높은 지지를 얻게 된 배경에는 기본소득이 공약에 들어가 있었다는 거죠. 그러니까 기본소득은 선거에서 재미를 못 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최근에는 빠른 속도로 재미를 보는 어젠다가 됐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종철  그렇군요. 그런데 그게 배경이 뭘까요? 예를 들어, 앙드레 고르는 이미 1980년대 초부터 얘기해왔고, 저는 잘 모르지만, 벨기에 철학자 판 파레이스도 오래전부터 말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럽 기본소득네트워크’도 형성된 지 10년이 넘었죠? 그러던 것이 최근에 와서 유럽사회에서 괄목할 만한 주요 선거공약으로 등장하고 큰 호응을 얻고 있는데, 이제 와서 급격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 원인이랄까, 사회경제적 배경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강남훈  시장만능주의가 1980년대부터 한 30년 동안 자본주의경제의 지배적인 정책·사상이 되었는데요. 그러다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붕괴하면서 금융위기가 닥치고, 실업률이 높아지고 유럽 여러 나라에 재정위기가 닥치게 되었죠.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대안적인 모델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습니다. 기존의 정책이나 제도로는 안되니까 기본소득 같은 새로운 제도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우파적인 복지 관념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게 가장 큰 복지라고 주장합니다. 물고기를 주면 안되고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죠. 그러나 요즈음 가난한 사람들한테 일자리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웃음) 일자리를 안 주면서 일자리를 주는 게 최선의 정책이라고 말만 합니다. 시장만능주의 시대와 겹쳐서 정보(IT)혁명이 진행되고 있는데, 정보혁명이 일자리를 줄이는 속도는 놀랄 만합니다. ‘취업계수’라는 개념이 있는데, 10억 원어치 물건을 만드는 데 몇 사람이 필요한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1980년 우리나라 제조업 취업계수는 10.31이었는데 2010년엔 1.27로 줄었어요. 이렇게 일이 필요 없어지고 있는데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건 진짜 거짓말입니다. 고용이 줄어드는 시대에 기본소득은 아주 중요한 대안인 것 같습니다.

  김종철  제가 생각해도 그게 제일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이게 지금 누구도 확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일은 아니겠지만,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 낮은 고용수준이 언젠가는 과거 70년대나 80년대 수준으로 회복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라고 생각됩니다. 강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강남훈  불가능한 일이죠.

  곽노완  저는 이중적일 수 있다고 봅니다. OECD 국가 내지 중진국 이상의 경우와 저개발 국가의 상황은 다를 거라 생각합니다. 한국을 포함한 OECD 국가들의 경우엔 지금과 같은 조건에서 어느 정도는 몰라도 아주 혁명적인 변화 없이는 일자리 증가는 불가능하겠죠. 일자리가 늘어나자면 노동시간이 30% 단축된다든지 하는 변화가 있어야 해요. 그렇게 되면 일자리가 15~20% 정도 늘겠죠. 그렇지 않으면 힘들지 않을까요?

  강남훈  새로운 기술이 도입될 때 일자리가 늘어나느냐 줄어드느냐 하는 것은 경제학에서 오랫동안 굉장한 쟁점이었어요. 정보혁명 이전에는 주로 기계의 도입을 두고 논쟁을 했습니다. 대체적인 결론은 기계를 만드는 분야는 일자리가 늘고, 기계를 사용하는 분야의 일자리는 주는데, 줄어드는 것을 상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산업혁명 당시에 비하면 평균 노동시간이 16시간에서 8시간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에 고용이 유지될 수 있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역사의 흐름입니다. 옛날처럼 장시간 일했다면 기계 때문에 일자리가 절반으로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보혁명도 산업혁명 이상으로 일자리를 줄이고 있습니다.
  하나 예를 들면, 미국에서 IT기술을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사업체 중에 일자리를 가장 많이 제공하는 것이 유통업체, 월마트 같은 곳입니다. IT기술을 이용해서 계산대에서 그냥 바코드를 스캔해서 계산하는데, 누구나 그날 가면 바로 일을 할 수 있는 단순한 일자리입니다. 그런데 지금 바코드 대신 ‘RFID’라는 칩을 이용하는 실험을 몇몇 매장에서 하고 있습니다. RFID는 우리나라 버스카드 같은 거예요. 마라톤 대회에서도 사용하죠. 수백 명이 한꺼번에 라인을 통과해도 찌릭찌릭 하면서 하나하나 전부 다 인식합니다. RFID가 도입되면 손님이 카트를 밀면서 계산대를 지나가면 순간적으로 찌릭찌릭 하며 상품들을 인식하고 가격이 합산이 되고, 손님은 카드를 긁어 계산하고 나가면 됩니다. 이제 카드를 긁는지 안 긁는지 감시하는 카메라만 하나 있으면 되겠지요. 이런 시스템이 도입되면 또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겠죠. RFID 칩을 만드는 회사의 일자리는 좀 늘겠지만 월마트에서 줄어들 일자리 수에 비교할 게 아니지요.
  또하나 IT기술 때문에 미래에 사라질 직업이 운전사라고 해요. 가장 먼저 사라질 게 택시운전사가 아닐까요? 이미 네바다주와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무인자동차 운전면허가 발급되었어요. 구글이 만든 무인자동차는 인간보다 더 정확하고 사고 없이 시내를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김종철  한때는 제조업에서 줄어드는 일자리는 서비스업에서 보충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젠 그 말도 안 통하네요. 요새 무인호텔도 있다면서요?

  강남훈  이미 전철은 무인전철이 있잖습니까. 용인, 의정부 경전철도 그렇지만, 박원순 시장과 요금인상 문제로 부딪쳤던 신분당선도 무인전철입니다.

  김종철  승무원이 한 사람도 없어요? 기가 차네. 무서운 세상으로 가고 있네요. 일본이나 다른 나라도 그렇습니까? 우리나라는 서두르지 말아야 할 것을 하도 서두르는 나라가 돼서….

  강남훈  외국에도 경전철은 무인이 많습니다. 경전철은 비교적 일정한 궤도를 천천히 달리니까요. ‘구글’ 자동차가 문제인데, 처음엔 복잡한 시내 교통신호를 읽고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데 시속 10km 속도밖에 안 나왔답니다. 속도를 올리려면 10년은 걸릴 거라고 예상했는데 2~3년 만에 시속 80km가 실현됐어요. 사람이 운전하는 것과 같은 속도로 목표점에 도착한 거죠. 졸지도 않고 음주운전도 안하는 운전사, 엄청난 기술입니다.

  김종철  글쎄 기술의 발달은 말릴 수도 없는 건데. 돈이 된다 하니까 하는 거 아니겠어요?

  강남훈  아까 정치 이야기가 나왔지만, 택시기사들이 자영업자 가운데 보수적이면서도 영향력이 큰 자영업자들인데, 만약에 무인택시가 나온다면 이 사람들을 기본소득 지지자로 만들 수 있는 기반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웃음) 정치 이야기를 좀 해보지요.

  곽노완  제가 직접 얘기한 것은 아니고, 강남훈 선생님과 다른 분들이 몇몇 진보적 성향의 국회의원에게 기본소득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답은 당장은 부담스럽다는 거였어요. 원칙적으로 반대한다기보다 지금 이 시기에 이것을 이슈화해서는 표가 늘어나기보다 줄어들 것 같다는 거죠.

  김종철  ‘또라이’ 취급 받는다는 거겠죠.

  곽노완  예, 어떤 의원이 바로 그런 식으로 말했다고 합니다. 비교적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 사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대체로 재원이 막대하게 든다, 잘못하면 허황된 공약이라고 오해를 받아서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식이었어요. 저희는 적어도 진보정당 내지 소수정당한테는 이게 먹혀들 줄 알았어요. 정책이나 공약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원칙적으로 동의하더라도 표를 깎아먹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는 것을 들었을 때는 충격이었습니다. 아니 3% 내외의 정당이 깎일 표가 뭐가 있는지.(웃음)
기본소득은 해적당이나 그리스 시리자도 그렇고, 이탈리아 오성운동 그룹 같은 신생 정당 내지 소수정당이 도약을 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정책이거든요. 처음에는 제3당으로 시작할지 모르지만 이것으로 정치적으로 큰 힘을 갖게 될 수 있어요. 겨우 3% 지지를 받고 있는 상태에서 이런 걸 적극적으로 이슈화해서 자기 존재를 알리면 좋을 텐데, 그렇게 못하는 게 안타깝습니다.
  지금 좌파나 진보적 정당은 오히려 보수진영보다 자기혁신을 하지 못하는 구태의연한 세력으로 외부에 인식되고 있습니다. ‘진보의 보수성’이라 할까요. 이럴 때 기본소득을 들고 나오면 신선한 혁신으로 비쳐지고, 실제로 젊은 세대의 공감도 폭넓게 얻을 수 있을 건데요. 글쎄요. 현재의 3% 지지자 중에서 0.5~1%를 잃게 될지 모르지만 잘 맞아떨어지기만 하면 15~20%를 추가로 얻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이걸 당연히 주장해야죠. 원칙적으로 옳다고 생각만 한다면요. 그러면서 중·장기적으로 꾸준하게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정당으로서 일관성을 지키면, 지속가능한 진보적 정치운동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오히려 소수정당인 진보정당 또는 진보 정치인이 이걸 받아들이기를 주저하는 것은 사실 수수께낍니다.

  김종철  진보의 보수성이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해주셨는데, 사실 지금은 좌파든 우파든 보수성이라는 점에서는 공통하다고 할 수 있어요. 기본소득을 선뜻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그 보수적인 낡은 공식, 즉 일을 안했는데 어떻게 돈을 주느냐 하는 생각 때문일 겁니다. 노동에 대한 대가로서의 소득만 생각하는 거죠. 그 점에서는 좌파나 우파나 똑같은 고식적인 사고방식에 붙들려 있는 거죠. 정치인들이나 이른바 엘리트들은 어떻게 보면 대중들보다 감각이 더 늦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대가 벌써 20년, 30년 전의 상황과는 전연 달라졌는데 그걸 파악 못하고 있으니까 그렇죠. 포드식 공업사회, 산업노동 중심의 사회는 이미 지나갔는데, 그 시대의 논리를 가지고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지금도 산업노동자를 변혁을 추동하는 핵심적 주체세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미 그런 상황은 아니잖아요. 오히려 지금 우리나라의 대규모 사업체의 정규노동자는 사실상 특권계급이 되어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궁금하게 여기는 것은 기본소득을 민주노총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상황에서는 어차피 기득권자일 수밖에 없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기본소득을 실시하면 자기들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죠. 어쨌든 자기들은 일단 안정된 일자리를 갖고 있고, 자식들에게까지 자기 자리를 물려주겠다고 하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이게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라 상황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이 보수적으로 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하는 상황 말입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작년 연말 대선에서 새누리당이 재집권했기 때문에만 그런 게 아니라, 지금 좌파 내지는 진보진영 쪽 사람들이 완전히 무력감에 빠져있지 않습니까? 저한테는 그렇게 보이는데, 두 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무력감에 빠져있고, 일반 대중들도 진보진영에 대해서는 더이상 신용하지 않는 분위기죠. 그렇기 때문에 ‘안철수 현상’이라는 기이한 사태가 전개되고, 기왕에 정치나 사회운동 혹은 노동운동 등 어떠한 경험도 업적도 없는 인물이 난데없이 유력한 새 정치지도자로 부상해서 아직 정당도 만들지도 않았는데 엄청난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잖아요.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가 힘든 기현상이란 말이에요.
  이런 기묘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물론 여러가지 요인 탓이겠지만, 저는 현재 진보진영 쪽 사람들이 대중들에게 설득력 있는 논리를 제시하지 못하는 게 제일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못하느냐. 한마디로 말하면, 시대는 변해서 고도의 경제성장이 계속적으로 진행되던 시대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되어버렸는데도 그 성장시대에 가능했고, 또 그때 지배적이었던 논리를 가지고 사회변혁을 꿈꾸는 게 문제죠. 그러니까 현실성도 없고, 설득력도 없지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즘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협동조합운동이 본격화되는 분위기입니다. 협동조합운동은 하나의 새로운 대안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는 어차피 경제는 축소균형의 시대로 간다고 생각할 때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자기들의 삶을 자치적·협동적으로 꾸려나가는 방법밖에는 활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이 협동조합운동이 활성화되고 전면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도 기본소득이 실현되어야 할 것 같아요. 협동조합과 같은 결사체는 어디까지나 자유로운 개인들이 아무런 거리낌이나 두려움 없이 어느 때든지 자발적으로 가입하거나 탈퇴를 할 수 있어야 비로소 진정한 결사체라고 할 수 있는데, 최소한의 생활보장이 돼있지 않으면 ‘자유’라는 것도 없는 것이니까 기본소득이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주어져야 된다는 것이죠.

 

 “사람은 누구나 예술가”

  김종철  그런데 뭐가 문제냐 하면요. 저도 사실은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를 처음 접했을 때 얼른 든 생각이 그랬습니다.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돈을 준다는 아이디어를 사람들이 쉽게 납득할까. 실제로 주변 사람들의 첫 반응들도 마찬가지였고요. 이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게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성경에서도 “일하지 않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했잖아요. 저는 이 관념의 장벽을 쉬운 논리로 깰 수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또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혹시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독일 사람들이 만든 〈문화충동으로서의 기본소득〉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인터넷에서 봤는데 재미있더군요. 거기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제작팀이 거리를 오가는 행인에게 접근해서 기본소득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고 소감을 물어보면, 대개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기본소득이 실시되면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을 것 같다”라고 말합니다. 거의 십중팔구 그런 반응입니다. 그러면 다시 묻습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으냐? 기본소득 받는다고 직장을 그만둘 것 같으냐?” 이렇게 물어보면, 자기는 일을 계속할 거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80%가 넘습니다. 자기는 괜찮은데, 다른 사람은 일을 안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타인들에 대해서는 철저한 불신감을 갖고 있는 거죠. 이것은 독일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고 봅니다. 아마 지금 자본주의사회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강남훈  사실 저도 설문조사를 해본 적이 있어요. 한신대 학생들에게 기본소득이라는 게 이런 거다 설명을 하고 설문지를 돌렸어요. 그리고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솔직하게 말해보라고 했더니,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대답하는 학생이 있었어요. “내 옆에 있는 쟤들은 기본소득 받으면 일 안할 애들입니다. 기본소득 주면 안됩니다.” 그런데 자기는 기본소득을 받으면 일을 더 잘하겠대요.
  ‘일’이라는 것은 철학적으로도 경제학적으로도 따져봐야 할 개념입니다만, 그 전에 이에 관련된 사회적 실험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마틴 루터 킹이 기본소득을 주장하고 난 뒤에 미국사회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폴 사무엘슨이 주창해서 1,200명의 경제학자들이 대통령에게 기본소득을 실시하라는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김종철  그때 닉슨하고 붙었던 맥거번이 일종의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내걸었잖아요?

  강남훈  맞습니다. 1972년 대선에서 그랬습니다. 맥거번은 1인당 1,000달러의 소득을 보장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그러나 맥거번은 국민들이 패배감을 느낄 수 있는 월남전 종전 방안을 제시했고, 정신병력이 있는 인물을 부통령에 임명하고, 캠페인 과정에서 여러가지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국민의 신뢰를 잃고 닉슨의 재선을 막는 데 실패합니다.
  그런데 그 이전 1969년에 닉슨이 이미 마이너스소득세 형태의 기본소득 정책안을 제출한 바 있습니다. 가구당 연간 1,600달러를 보장하는 안이었어요. 그러니까 그 시절엔 민주당, 공화당 구분 없이 기본소득 보장을 추진했던 것이죠. 닉슨의 법안은 의회에서 두 번 논의되었는데, 두 번 다 하원에선 통과되고 상원에서 부결되었어요. 상원에선 공화당만 반대한 것이 아니라 민주당 일부도 반대했습니다. 민주당의 좌파들이 이거 너무 약하다고 반대한 거예요. 역설적이죠. 공화당은 너무 세다고 반대했고요. 양쪽 반대가 합쳐져서 부결되었어요. 만약 통과되었다면 오늘날 미국은 전혀 다른 나라가 됐을 것입니다.
  그렇게 기본소득운동이 좌절되고 나서 정치인들이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사회적 실험을 해보자. 그래서 대규모의 실험을 합니다. 미국에서 네 군데, 캐나다에서 한 군데를 정해서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어서 기본소득을 보장하면 사람들이 과연 일을 안하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했습니다. 각각 800~1,800가구 사이의 규모로, 대조군과 실험군을 나누고, 지급액은 기초생활비가 1.0이라면 어떤 지역은 0.7을 주고, 다른 지역은 1을 주고, 또다른 지역은 1.3을 주는 식으로 했습니다.

  김종철  얼마 동안 했는데요?

  강남훈  3년 동안이요. 미국의 기본소득운동은 사회적 실험으로 끝났습니다. 실험이 끝날 때쯤 되니까 시장만능주의 시대가 시작되었거든요. 실험결과는 다 묻혔습니다. 그 당시에는 기본소득의 효과를 정확하게 분리해서 확인할 수 있는 통계기법이 없었는데, 최근에 계발된 기법을 적용해보니까 당시에 해석했던 것보다 결과가 훨씬 좋게 나왔어요. 노동시간이 줄긴 줄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덜 줄었어요. 일을 하다가 안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요. 다만 일하는 시간이 줄었어요. 특히 어린아이를 가진 여성들이 노동시간을 많이 줄였어요. 이건 나쁜 일이 아니잖아요? 여기까지가 미국에서의 사회적 실험입니다. 후진국에서는 나미비아와 인도에서의 실험이 있습니다.

  김종철  저도 그 자료들은 봤습니다. 그런데 설명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미비아도 그렇고, 지금 미국에서 했다는 실험도 그렇고 일정한 기간 동안 한 거 아닙니까? 일정한 기간 동안의 실험이라면 그것은 원래 기본소득의 취지에서 조금 벗어난 게 아닌가 싶어요. 무슨 말이냐 하면, 자기자신의 평생뿐만 아니라 자손들에게까지도 영구히 기본소득이 주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경우와는 달리 기본소득이 일시적으로 주어진다고 생각할 때는 사람들의 심리에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아까 제가 말씀드린 상속문제도 그렇죠. 기본소득이 오래오래 계속될 거라는 확신이 있어야 자식에게 재산을 남겨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일정기간 동안만의 실험 가지고는 안되죠. 그런 실험도 의미가 없지는 않지만, 질적 차이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특정한 지역은 선정해서 하되 기간만은 제한하지 말고 영구적으로 해본다든지 그런 실험을 해보는 게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강남훈  알래스카가 영구기금제도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말씀 더 드리자면, 미국의 실험에서 노동시간이 약간 줄었다, 특히 아이를 가진 여성들이 노동시간을 줄였다고 할 때의 노동 혹은 일이라는 것은 자본주의적 임금노동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성서에서 말했을 때, 그 일이라는 건 자본주의적 임금노동을 뜻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땐 자본주의도 없었으니까. 가사노동도 일이고, 사회봉사도 일이고, 예술도 다 일이니까 기본소득을 지급받으면 일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못하던 일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요?

  김종철  아주 속이 후련한 설명을 해주시네요.

  강남훈  노래를 부르고 싶은 사람은 노래를 부르고, 봉사활동을 하고 싶은 사람은 사회봉사 일을 하게 되겠지요. 특히 기본소득이 지급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해보고 싶어할 일이 친환경 농사인 것 같아요. 지금도 자기 돈 들여서 텃밭 가꾸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잖아요?

  김종철  귀농을 꿈꾸는 젊은이들 중에는 최소한의 생계만이라도 일정하게 보장되면 결행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게 보장이 안되니까 망설이는 거죠.

  곽노완  저도 보완하고 싶은데,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면서 이견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생각은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많은 사람들이 일을 안할 것이고, 따라서 기본소득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일을 안한 결과로 경제적 생산물이 절반 혹은 10분의 1로 준다든가 하면, 기본소득의 재원도 고갈되니까 지속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경제가 점점 축소되면서 지금 북한처럼 궁핍한 사회로 변해갈 것이라는 우려이겠죠.
  거기에 대해서는 여태까지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기본소득을 옹호하는 측에서 사고실험을 거쳐서 대략적인 하나의 답을 제출한 게 있습니다. 뭐냐면, 어차피 아무것도 없는 데서 재원을 마련해서 기본소득을 줄 수는 없어요. 사회적으로 생산된 것, 즉 자본주의적이건 아니건 경제적으로 생산된 부의 일부를 기본소득으로 나눌 수밖에 없습니다. 선조들 덕분이든 동시대인들의 현재의 노동에서 생산된 것이든 그로부터 절반이면 절반, 3분의 1이면 3분의 1을 기본소득으로 주는 겁니다.
  그런데 절반이라고 해봅시다. 이게 풍족해서 사람들이 좀 힘이 드는 경제적인 노동을 절반으로 줄인다고 가정하면(쉽게 얘기해서 GDP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거죠), 그러면 기본소득의 재원도 절반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이듬해에는 기본소득도 종래의 절반밖에 못 받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그 정도의 기본소득 가지고는 만족스러운 생활을 할 수 없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다시 자본주의적 노동이건 그렇지 않은 노동이건 경제적 부를 생산하는 노동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다시 GDP가 증가하고 기본소득의 재원도 늘어납니다. 이런 식으로 역동적인 균형이 이루어질 거라는 것이죠.
  기본소득이라는 것이 한번 주고 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구성원들이 합의에 의해서나 스스로 기본소득의 변화에 맞추어 자기 행동을 조절하게 될 거라는 것입니다. 기본소득이 사회적으로 생산된 부의 50%가 될지 30% 혹은 60%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예를 들어서 15%에서 시작했다가 열심히 일해서 더 많이 나누고자 한다면 30%, 나아가 50%까지 늘릴 수도 있고, 결국 역동적 균형을 찾아가게 되기 때문에, 얼른 봐서 유토피아적이고 실현 불가능한 것 같아도 적어도 경제논리로 본다면 가장 지속성이 높은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종철  그 설명도 아주 그럴듯하군요. 기본소득의 지속가능성이라는 문제를 생각할 때 상당히 설득력 있는 논리인 것 같네요. 그 문제는 조금 있다가 다시 논의하기로 하고, 아까 강 선생님이 말씀하신 자본주의적 노동의 문제에 대해서 약간 첨언하고 싶습니다. 보통 우리가 노동이라고 하면 임금이 지불되는 일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예를 들어,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노인을 돌본다든지 하는 일은 굉장히 중요한 일인데, 임금이 지불되지 않기 때문에 정당한 일로 대접도 못 받고, GDP에도 계산되지 않죠. 기본소득을 실시하면 상황이 달라지겠죠. 여태까지 일로 인정받지 못하고 천시되었던 수많은 가사노동이나 ‘그림자 노동’이 합법적인 지위를 획득하게 될 테니까요.
  그리고 에릭 프롬도 그 점을 강조했지만, 기본소득이 있으면 사람들이 일을 하기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결국은 지금까지의 임금노동이라는 것이 대체로 비인간적이고 소모적인 노역 이상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적 임금노동에 사람들이 지쳐있기 때문에 일에 대해서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일할 사람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실제로 이 세상에는 다양한 일들이 있잖아요. 개미가 먹이를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것만 일이 아니라 베짱이의 노래도 베짱이 나름의 중요한 일인 셈이죠. 베짱이의 노래가 없는 여름날을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삭막한 세상이겠어요. 베짱이의 노래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에 크게 공헌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본소득이 실시되면 일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은폐되고 그늘에 가려져왔던 일들이 당당하게 복권될 뿐만 아니라 사람마다 지닌 독특한 개성적인 재능들이 여태까지 우리가 몰랐던 다양한 일의 형태로 표현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저도 어떤 진보 정치인에게 기본소득에 관해 말해본 적이 있는데, 대뜸 그것보다는 전통적인 사회복지제도를 견고하게 하는 게 더 낫다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그런데 국가가 복지시스템을 강화하는 것도 좋지만, 복지시스템 속에서는 방금 말한 ‘임금이 지불되지 않는 노동’ 혹은 ‘그림자 노동’이 당당히 공인되고 존중받는 그런 상황이 조성되지는 않습니다. 또 개인들 속에 잠재되어 있는 다양한 재능들이 충분히 발휘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로서는 계속해서 국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데서 오는 심리적 불편, 열패감이나 혹은 적어도 자존심이 상하는 경험만 늘어날 가능성이 크죠. 아까 말씀하신 행정비용 문제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갖는 이런 기분, 감정도 반드시 고려돼야 할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강남훈  일이라는 게 인간이 자연을 변화시키는 것이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인간 자신을 변화시킨다는 유명한 구절이 있잖아요? 자기실현의 과정이라는 표현이 나오지요. 자아의 실현으로서의 일이라고 한다면 임노동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보람 있고 꼭 필요한 것들을 모두 포함하겠지요.
  조금 전에 가사노동이라든지, 친환경 농업 이런 예를 들었지만, 저는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시간강사 문제를 말하고 싶습니다. 대학교 강의의 거의 절반을 시간강사가 맡고 있는데, 시간강사들의 평균 수입이 연간 800만원 정도입니다. 연간 2,000만원이라도 보장이 된다면 마음 놓고 행복하게 공부를 할 텐데요. 예술분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홍대 앞에서 음악을 하는 예술가들을 만나봤더니, 예술계통이 비정규직도 가장 많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자살한 사람도 있지요. 기본소득으로 예술분야에 많은 사람들이 종사하면 사회가 더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또하나 우리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게 있습니다. 종사자들이 너무나도 고통받고 있는 분야 중의 하나가 사실은 정치입니다. 정치에 뛰어들면 보스 밑에서 무급으로 일하면서 젊은 시절을 보냅니다. 국회의원이 되거나 국회의원 보좌관이라도 되면 정말로 운이 좋은 편이지요. 사회개혁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정치를 시작하지만, 수십 년 동안 월급 없이 보스가 가끔씩 던져주는 돈으로 살다 보니까 결국 재벌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변절의 길이 시작되는 거죠. 국회의원이 될 때쯤에는 이미 상당히 타락한 상태가 되어있습니다. 이러니까 훌륭한 정치인이 나와서 세상을 바꿀 거라는 기대를 하기 힘들게 되는 것이죠. 똑똑하고 인간관계에 뛰어나고 사명감에 넘치는 사람들이 재벌의 돈을 받지 않고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면 정치가 얼마나 맑아질까요?

  김종철  기본소득을 실시하면 정치도 맑아지겠네요. 그건 틀림없죠. 핵발전소 문제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핵발전소 반대를 위해서 피켓도 들고, 거리에 나가서 소리도 질러야겠지만 원천적으로 좋은 방법은 저는 기본소득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원전을 서울에 짓지 못하니까 꼭 시골 벽지에 짓는데, 시골사람들이라고 해서 원전의 위험과 폐해를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결국은 받아들이는 것은 돈 때문입니다. 원전 건설을 용인한 대가로 주어지는 돈이라도 있어야 생존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지방경제가 극도로 피폐해져 있으니까요. 그걸 정부와 원전업계가 이용하는 거죠. 그리고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끝까지 반대하는 지역민들도 반드시 존재하니까 지역사회에 갈등이 고조되고, 결국 공동체가 엉망진창으로 분열돼버립니다.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죠. 하기는 원전뿐만 아니라 유해 산업시설이나 골프장처럼 환경과 지역사회를 파괴하는 대규모 시설이 들어설 때도 마찬가지 현상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만약 기본소득이 실현된다면 시골사람들에게 생존의 여유가 생기니까 핵발전소나 유해 시설물들이 간단히 들어설 수는 없을 거란 말입니다. 지역공동체가 분열되고 인심이 파괴되는 그런 비참한 일도 더이상 일어나지 않을 거고요. 그러니까 가장 효과적인 반핵운동은 기본소득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죠.
  강 선생님이 시간강사 얘길 하셨지만, 교육문제도 그래요. 저는 우리사회가 교육이라는 이름 밑에서 아이들의 성장기를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망가뜨리고, 정신적·신체적·지적·도덕적 발달과정을 근원적으로 왜곡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이 나라에 정말 미래가 있을까 매우 회의적입니다. 교육문제는 이대로 둬서는 안된다고 벌써 몇십 년 동안이나 논쟁을 하고 있지만 전연 개선될 가망이 없잖아요. 제도를 바꾸면 바꿀수록, 새로운 정책을 내놓으면 내놓을수록 오히려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있단 말이에요. 결국은 일류 대학을 나와야 번듯한 직장도 얻고 사람노릇 제대로 하면서 살 수 있다는 풍토가 조장하는 극심한 입시경쟁 때문인데, 이런 풍토에서는 대학입시 전형방법을 약간 수정한다고 될 일이 아니죠(그냥 입학생 전원을 제비뽑기라는 아주 래디컬한 방법으로 모집한다면 모를까). 제도가 바뀌면 사람들은 또 새로운 제도에 필사적으로 적응하려고 합니다. 매춘을 해서라도 자식의 사교육비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머니들이 있다는 사회가 우리사회입니다. 학부모들도 이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낙오자가 될까 봐 불안하니까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거죠.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는 대학 나와 봐야 취직자리가 없다는 것도 모르지 않지만, 그래도 자기 자식만은 예외일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겁니다. 결국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사회 전체가 절망적인 수렁에 빠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걸 어떻게든 끊어야 되는데 해법이 뭐냐 하는 거죠. 교육부장관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교육감의 능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잖아요. 서울대학 없앤다고 될 일도 아니고요. 그러나 결국은 대학에 가든 안 가든 인간다운 생활이 보장만 된다면 이 모든 게 하루아침에 해소될 수 있겠죠. 지금처럼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이유가 없어지니까요. 정말로 특별한 전문가나 연구자를 지망하는 사람들만이 대학에 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 대학도 교수나 학생이나 진짜 공부가 좋아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공간, 즉 원래 의미의 대학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고요.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현실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기본소득 말고는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독일에 여러 해 계셨으니까 잘 아시겠지만, 요셉 보이스라는 유명한 미술가가 있잖아요. 백남준 씨와도 친하게 지냈다는 사람이죠. 요셉 보이스는 예술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발언을 많이 남긴 인물입니다. 그가 한 말 중에 “사람은 누구나 예술가이다”라는 말이 유명하죠. 생각하면 조금도 과장된 말이 아닌 것 같아요. 원래 인간은 저마다 독특한 예술가적 소질을 갖고 태어났지만, 생활에 시달리다가 자신의 타고난 자질과 재능을 망각해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기본소득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소득이라는 것은 개개인이 예술가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고, 그것에 잡념 없이 몰입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하니까요.
  생각하면 보통사람들로서는 가장 바람직한 생활방식이 프리랜서로 사는 게 아닌가 싶어요. 지금 상황에서는 프리랜서라면 늘 생활이 불안정하지만,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안심하고 자기가 선택한 일을 하면서 보람 있게 지낼 수 있지 않겠어요? 노동자도 프리랜서가 되는 거죠. 자신이 보기에 비윤리적인 경영을 하거나 환경에 유해한 생산물을 만든다고 생각되는 기업에 취직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길 테니까. 그러면 기업도 노동환경을 좀더 인간적으로 만들고, 윤리적인 경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겠죠. 쓸데없는 법령으로 기업이 윤리적 경영을 하도록 강제하려고 하는 것보다 훨씬 현명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아무튼 기본소득이라는 것은 굉장히 혁명적인 아이디어입니다. 정치·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와 문화를 뿌리에서부터 변화시킬 수 있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소득으로 과연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고, 어떤 세상이 도래할까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공부가 될 것 같습니다.
  사실 기본소득은 좌파도 찬성하고 우파도 찬성하는 프로그램이면서, 동시에 좌파도 반대하고 우파도 반대한다는 점에서 참으로 특이한 사회적 기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좌파 쪽에서는 죽어가는 자본주의를 살리자는 것 아니냐, 우파 쪽에서는 기본소득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들을 무책임한 존재로 만들 것이다, 그런 논리로 반대하는 거죠.

 

  기본소득, 노예노동의 종식

  곽노완  예,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좌·우파를 가로질러 지지자도 있고 또 좌·우파를 가로질러 반대도 있습니다. 실제로 불과 몇년 안되는 짧은 역사지만 한국에서도 기본소득은 자본주의를 살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좌파에서 나왔고, 답변도 많이 했습니다. 세계적인 차원에서도 그에 대한 답변은 충분히 되어있습니다. 그래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납득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살리는 거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선 이렇게 답합니다. 기본소득은 시장주의 논리 비슷하게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하는 것 같지만(물론 현물도 지급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이게 자본주의적 시장만능주의에 대항할 힘을 키워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동자들한테는 일종의 파업기금 역할을 할 것이고, ‘끼’ 있는 사람들에게는 중장기적으로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걱정 없이 자기의 ‘끼’를 발휘할 기회를 만들어줄 것입니다. 지금은 소질이 있는 사람 100명 중 한 명만 뜨고 대다수는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이 안돼서 중도에 포기하고 있는데, 이런 사람들 열 명 중에 한 명만 ‘서태지’가 나와도 사회는 풍요로워지겠지요.
  어쨌든 자본에 대항할 수 있는 힘, 자본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돈의 논리에 대항할 수 있는 힘 그리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할 힘을 주기 때문에, 기본소득은 자본주의를 살리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의 약한 고리를 가장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대안사회를 훨씬 더 용감하게 설계하고 기획해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줍니다. 결과적으로 기본소득이 실시되면 무엇보다 자본주의를 넘어서서 대안사회를 만들어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열 배, 백 배로 늘어날 거라고 생각해요. 녹색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겠지요. 지금은 마음이 있어도 생계 때문에 못하는 분들이 많으니까요.
  그런데 이보다 더 강한 좌파의 반론은, 자본가에게서 받아내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나눠 줘야 할 것을, 왜 자본가나 일하지 않는 사람들한테까지 주느냐는 질문입니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은 좌·우파를 불문하고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이데올로기입니다.
  그동안 저는 이렇게 대답을 해왔습니다. 지금 인구구성을 보면 남한 인구가 5,000만 명인데 정규직, 비정규직 합쳐서 1,800만 명 정도 된다고 보면 노동인구가 전체의 과반이 안됩니다. 자영업자까지 합쳐도 대충 2,500만 명 미만일 겁니다. 더구나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에 고위관료, 국회의원, 대통령도 포함되어 있어요. 정몽준이나 이건희, 이재용도 자본가이면서도 부분적으로는 노동자입니다. 월급을 받고 일하거든요. 이사나 상무들도 노동자로 잡혀있기 때문에 통계상의 노동자 숫자는 과장돼 있다고 봐야 합니다. 통계상의 약 2,500만 명 노동자 중에 실제로 자본가 편에 설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500만에서 1,000만 명 정도 된다고 봅니다. 우리가 임노동자라고 부르는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는 2,000만 명 미만, 과반수가 안될 겁니다. 그런 기준으로 보면 우리사회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과반수가 넘는 것이죠.

  김종철  아까 그 독일 사람들이 만든 다큐멘터리에서도 독일에서 실제로 노동소득으로 사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40%밖에 안된다고 설명하던데요.

  곽노완  어쨌든 과반수가 일하지 않고 있는데, 일하는 사람이 다 갖겠다고 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60%의 이익에 반하니까요. 따라서 일하는 사람에게도 이득이 되고, 일하지 않는 사람이나 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동시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 일하지 않는 사람들, 연소자와 학생들, 은퇴자들, 가사노동 종사자들, 사회운동가들 등의 지지를 받고, 정치적으로 지지층의 폭이 넓어지겠죠. 그렇기 때문에 기본소득은 다른 어젠다에 비해서 좀 색다른 데가 있는 정책이에요. 노동하는 사람에게만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는 논리는 맞는 것 같지만, 지속가능성이라는 점에서도 타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대답을 듣고도 수긍하지 않는 사람들은 좌파든 우파든 어느 쪽에든 있을 겁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우리가 사회적으로 이것을 실현하려면 다수의 주체와 함께 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일단 과반수까지 가는 게 목표죠. 100% 동의를 얻겠다는 건 안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사람을 죽이면 벌을 받아야 한다 같은 명명백백한 일이 아닌 이상 100%가 찬성한다는 건 있을 수 없으니까요. 기본소득을 실시하는 문제 같은 것은 95%에게 혜택이 돌아가도 95% 전부가 동의하지 않아요. 과반수 지지를 얻으면 큰 성공이겠죠. 그렇게 시작해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면 점점 지지층이 넓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좌파든 우파든 지지자를 많이 확보하는 게 중요합니다. 저희는 모든 사람을 다 설득하는 것은 포기했습니다. 물론 당장 전국적으로는 3~10% 정도의 지지를 목표로 해야겠지만요.

  김종철  저는 시간문제일 뿐 결국은 실현될 프로그램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지금 유럽이나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해서 세계 각국에서 본격적으로 토론되기 시작했으니까요. 일부는 부분적으로 이미 실시를 하고 있고요. 세계적인 추세가 그런 쪽으로 가고 있는데 언제까지 외면할 수는 없지요. 선진국에서 한다면 결국은 모방하려고 할 겁니다.(웃음) 문제는 뒷북치지 말고, 약자들이 더 희생당하기 전에, 사회가 더 절망적인 상황으로 떨어지기 전에 슬기롭게 채택했으면 좋겠다는 거죠.
  곽 선생님도 말씀하셨지만, 진보진영 사람들 사이에 기본소득 논리를 쉽게 수용하지 못하겠다는 분위기가 있다면, 기본소득이라는 것도 결국 시장지향 논리지 않느냐 하는 의심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자본주의를 넘어서 새로운 대안적인 사회로 가자면 시장 논리가 철폐되어야 한다는 신념 말입니다. 그런데 저도 가끔 느끼지만, 시장이란 개념에 대해서 협소한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아요. 경제학 하시는 분들 앞에서 제가 공자님 앞에서 문자 쓰는 격이지만, 원래 시장이라는 것은 고대에서부터 존재했던 것이죠. 문제는 자본주의적 시장이란 말이죠. 그러면 자본주의적 시장이란 뭐냐. 간단히 폴라니식으로 말하면, 본래 상품이 되어서는 안될 세 가지 요소, 즉 토지와 노동력과 자본을 상품화한 기반 위에서 돌아가는 근대적 제도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가 기본소득의 의의를 여러 측면에서 얘기해왔지만, 핵심은 역시 기본소득이라는 게 근본적으로 노동력의 탈상품화에 기여하는 프로젝트라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당장에 그렇게 안되더라도, 적어도 노동력 상품화의 정도를 확실히 완화시킬 수는 있겠죠. 저는 이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노동력이란 결국 인간을 말하는데, 인간을 상품화한다는 점에 자본주의의 극악한 비인간성과 비윤리성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좌파들이 지향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이런 의미의 인간해방이라고 한다면, 기본소득이야말로 얼마나 확실하고 간단한 방책입니까? 피를 흘릴 필요도 없고, 그냥 사회적 합의만 되면 실행할 수 있는 거죠. 번잡스러운 행정도 없고, 정해진 날짜에 전 시민들의 통장에 일정한 금액을 일률적으로 넣어주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러면 국가기관의 업무도 굉장히 간소해질 것이 분명합니다. 아마 재정경제부, 교육부, 보건복지부를 포함해서 종래의 주요 국가기관들이 전혀 불필요한 기관이 될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노동력의 탈상품화를 통해서 사람이 노예노동을 안할 수 있게 된다는 것처럼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폴라니가 말한 나머지 요소, 즉 토지와 자본의 상품화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재원문제를 얘기할 때 덧붙여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도 낡은 텍스트에서 익힌 지식에 근거하여 시장이라면 무조건 나쁘다는 고정관념에 매달려 있다면 참 곤란하다는 생각입니다.

  강남훈  아주 좋은 지적을 해주셨네요. 기본소득이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주의를 살리는 거 아니냐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그럼 당신은 자본주의를 죽이기 위해서 뭘 하십니까? 이렇게 물어보면 대개는 하는 일이 없어요. 어떤 분들은 노동운동을 해야지, 그럽니다. 노동운동의 하나인 노동조합을 예로 들어보면, 노동조합도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주의 살리는 역할을 합니다. 노동조합이 처음 형성될 때 극좌파들은 노동조합은 자본주의를 살리는 역할을 하니까 하면 안된다고 했잖아요. 지금은 그런 좌파들이 없어졌지요. 맑스가 노동조합을 승인했으니까. 노동조합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주의를 개선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힘이 될 수도 있는 조직입니다. 기본소득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소득은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주의를 개선하는 역할을 하지만,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줍니다. 기본소득이 자본주의를 죽이는 정책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은 맑스 당시에 노동조합을 반대하던 좌파 수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다른 일부 맑스주의자들은 돈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지 돈을 왜 주느냐 혹은 시장이 없어져야지 시장을 왜 키우냐는 식으로 비판하는데요. 맑스가 분명히 이야기했지만 자본주의는 생산양식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고, 생산양식의 핵심은 임노동과 자본 사이의 생산관계입니다. 그래서 임노동의 존재 여부가 자본주의를 판별하는 핵심 기준인 것이고요. 시장이나 돈은 부차적인 기준입니다. 기본소득은 임노동의 성격을 약화시키는 정책입니다. 노동을 판매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게 만들어주니까요. 즉 자본주의의 가장 본질적인 성격을 약화시키는 정책이지요.
  아까 좌파의 보수성에 대해서 언급하셨는데, 30년 전에 소비에트 교과서를 읽으면서 외웠던 미래 사회의 모습을 소비에트도 망하고, 정보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이 시점까지 하나도 업그레이드시키지 않고 있는 셈입니다. 저는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이 보장되는 사회에서 살게 된다면, 그것이 당신들의 분류에 따라서 자본주의가 되든 사회주의가 되든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민중들의 입장에서 지금보다 훨씬 나은 사회가 아니냐고.

  곽노완  김 선생님 말씀하신 대로 분명히 노동력의 탈상품화까지는 다 수긍할 겁니다. 거기에 대한 반대논리를 제출하기는 어렵죠. 논리적으로든 현실적으로든. 근데 이것이 소유관계는 건드리지 않는 것 아닌가, 분배만 건드리려 하고, 자본의 독점적 소유라든가 토지의 독점적 소유는 건드리지 않는 거 아닌가 하는 비판이 좌파 쪽에서 나왔던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꾸준히 답을 했는데, 아예 이해하지 않겠다는 사람 이외에는 대충 수긍을 합니다.
  실제로 기본소득 지지자에는 극좌파에서 얼마 전에 논란도 되었던 일본의 하시모토(橋下徹) 같은 극우파까지 있을 수 있습니다. 좌파 중에는 노동력 탈상품화, 파업기금과 같은 플러스 논리와 자본의 사회적 공유화, 토지의 사회적 공유화 혹은 여타 생산자원의 사회적 공유화를 결합시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실제로 프리오라는 프랑스 학자가 그런 주장을 하고 있는데요. 기존의 사적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적 자원들을 점차 사회적 공유로 전환시키는 것과 기본소득이 결합되어야 한다는 거죠. 그 사람의 용어는 기본소득이 아니라 ‘평생임금’이었는데, 평생임금도 일하지 않아도 받는 거 아닙니까? 은퇴 후에도, 일을 시작하기 전 학생시절에도 받는 거니까 기본소득이랑 사실상 똑같죠.
  재원은 처음에는 투기소득, 불로소득을 환수해서 마련하지만, 투기나 불로소득은 기본소득제도가 계속되면 점차 줄어들 거예요. 중과세를 하니까. 그러면 어디서 재원이 나오느냐. 기업을 공유화해서 기업의 수익을 사회적 기금, 사회적 공유로 만들어서 그중의 일부는 노동자들에게 일한 것에 따라 주고 나머지 일부를 모아서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삼자는 거죠. 일단 재벌기업을 사회적 공유로 전환시키는 것과 연결된 기본소득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중장기적으로는 그래야 안정적인 재원이 형성되거든요. 그렇게 가자는 것인데, 저도 몇년 전부터 계속 그런 주장을 해왔습니다.
  어쨌든 분배에 집착하고 소유관계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분들은 기본소득을 반대할 것이 아니라 소유관계의 변화까지 포괄하는 기본소득을 제안해야 맞는 거예요. 그 수준에서 같은 운동의 동지가 되고, 그래서 적어도 어느 정도는 우파까지 포함하여 다수를 이루면 정치적인 힘으로 관철해낼 수 있는 날이 오겠죠. 그 이후에는 더 급진적으로 가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분리될지 모르지만, 같이 가는 데까지는 동행하는 그런 연대와 협력을 통해서 정치적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소득 재원 ― 정치적 의지의 문제

  김종철  그 문제만 하더라도 하실 말씀이 많을 것 같습니다만, 벌써 두 시간이 지났네요. 재원에 관한 이야기를 안할 수 없기 때문에 이제부터 이 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집중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재원문제는 두 분 생각이 비슷합니까? 간단하게 설명해주십시오.

  강남훈  네. 같이 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재원에 관해서는 우리나라처럼 석유 같은 천연자원이 없는 곳에서는 결국 조세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조세부터 부과하느냐가 문제인데요. 일단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조세 수준이라는 게 얼마나 되겠느냐 하면, 대략 이렇게 계산하면 됩니다. 우리나라 2013년 국민총생산이 1,300조 원 정도 될 것 같은데요. 우리나라 국민의 총 조세부담률은 세금과 연금 부담금을 합쳐서 넓은 의미의 조세, 즉 국민부담률이라고 하는데, 그게 25%를 조금 넘습니다. 스웨덴이나 북유럽 국가들의 국민부담률은 47.8%까지 됩니다. 간단히 50%라고 보면, 세율을 50%로 해도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북유럽 국가들이 보여주고 있으니까, 우리는 25% 정도 세금을 올릴 수 있다고 가정합시다. 1,300조 원의 25%는 300조 원이 넘습니다. 그 돈을 5,000만 명에게 나누어 주면, 1인당 1년에 600만원이 나옵니다.

  김종철  월 50만원이네요. 어린아이까지 다 포함해서?

  강남훈  그렇죠. 어디에다 세금을 부과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토지세는 훌륭한 재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김종철 선생님께서 《녹색평론》을 통해서 ‘사회신용’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이것도 상당한 재원이 될 수 있습니다. 국가화폐나 지역화폐 다 같은 맥락입니다. 이것은 금융국유화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금융국유화는 그리스의 ‘시리자’나 이탈리아의 그릴로가 공통적으로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화폐주조권 또는 신용창조권은 주권에 속하는 것인데, 그것을 지금은 민간은행들에게 공짜로 나누어 주고 있는 꼴입니다. 그걸 되돌려 받아서 재원으로 삼자는 뜻이지요.
  또하나 《녹색평론》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부분은 생태세입니다. 저는 최근에는 생태세를 가지고 기본소득을 시작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길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30조 원 정도의 생태세를 걷어서요.

  김종철  결국 대기업이 부담하는 거죠?

  강남훈  그렇죠. 1인당 5만원 정도의 소액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거예요. 그걸로 먹고살라는 뜻은 아니고,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왜 생태세를 거둬야 하는지 설득하기 쉬워진다는 뜻이지요.

  곽노완  재원을 조세만으로 하면 수혜자는 과반수 이상 되겠지만 전체적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의 비율이 높게 나오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어요. 누진세 방식으로 한다 하더라도 최대한 모델을 짰을 때 95%까지 수혜자가 될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렇게 되긴 어렵다고 생각해요. 금액도 키우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기본소득 논자들이 많이 주장하는 것이지만, 재원이 조세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조세가 아닌 재원이 3분의 1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경제학자 밀롱도가 최근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 쓴 글에서 주장한 것은 약 3분의 1 정도는 기왕에 사회보장용으로 걷은 돈을 재조정해서 기본소득으로 전환시키자는 거예요. 선진국의 경우엔 이 부분이 많습니다. 조세부담률이 높으니까요. 우리나라는 얼마 안됩니다. 기본소득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것들에, 어르신들께 드리는 기초노령연금, 아동들에게 주는 수당 그리고 국민기초생활보장 등이 있는데, 이것들을 합쳐도 우리나라의 경우엔 3분의 1까지는 안됩니다. 사회복지가 워낙 규모가 작아서요. 그리고 기존의 연금, 즉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 등을 기본소득으로 전환시킬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놔둘 것인가 하는 것은 논란이 될 수 있어요. 강 선생님과 제가 처음에 모델을 짰을 때는 기본소득으로 전환시키는 쪽으로 가는 거였어요.

  김종철  생각이 달라졌습니까?

  곽노완  고수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기존의 연금 가입자가 반대할 우려가 많기 때문에 그것을 그대로 놔두고 기본소득 비중을 올려가면 나중에는 결과적으로 대체하는 효과가 서서히 나타지 않을까 합니다.

  김종철  기왕에 받고 있는 사람들의 기득권을 인정하더라도 그 제도 자체는 폐지할 필요가 있잖아요.

  곽노완  완전히 폐지하는 과정은 복잡합니다. 예를 들어, 사학연금이나 공무원·군인연금을 매년 3,500만원 정도 받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의 가족이 3명이라고 합시다. 기본소득으로 1인당 600만원씩 3명 몫으로 1,800만원 받는 대신 연금 받지 말라고 하면 반대할 게 뻔하잖아요. 그때는 선택하게 한다든가 아니면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연금을 약간 깎아서 총액은 늘어나게끔 한다든지….

  김종철  기왕 받고 있는 사람은 내버려두고 신규는 없애면 되잖아요.

  곽노완  근데 그게 복잡해요. 가령 20년 후에 받을 것으로 예정되어 있으면….

  김종철  연금제도가 보험식이라서 그렇죠. 그것을 세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면 제도 자체가 바뀌니까 신규 가입자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겠죠. 중간과정은 있어야겠지만….

  곽노완  어쨌든 기존 가입자가 손해를 보지 않게 해야 동의가 될 테니까…. 부분적으로 여기서도 전환 금액이 나오는데, 조세만이 아니라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세금 아닌 형태, 예를 들어 현재의 가용 자원 중에 국공유지가 많이 있으니까 거기에 주택이나 상가건물을 잘 지어서 정당한 임대료를 받으면 그것도 수익이 될 수 있습니다.
  사회신용도 생각해볼 수 있는데, 그러나 우리나라는 미국과 화폐제도가 달라서 사실상 화폐를 국가가 한국은행을 통해 발행하고 있거든요. 여기서 나오는 화폐주조 차익도 있지 않습니까? 그중 최소한 20~30%라도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할 수 있는 거죠. 100억 원을 발행하면 100억이 자산이자 부채로 잡힙니다. 그런데 이 부채 부분에 대해서 사회구성원 누구도 갚으라고 하지 않아요. 사실상 국민 모두의 순 자산이나 마찬가지죠. 발행비용이 10억 원이면 실질적으로 90억 원의 주조차익이 생기는 셈인데, 그것의 일부만이라도 기본소득의 재원을 삼아 국민들이 n분의 1로 나눠 갖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사회신용과 실질적으로 같은 것이 됩니다.

  김종철  지금 곽 선생님 아이디어는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 국공유지에서 임대료를 받겠다는 것인데요. 지금 재벌이나 부유층이 갖고 있는 토지는 토지보유세를 받아야 하잖아요? 현실화시켜야 할 것 아닙니까? 지금은 어느 정도로 받습니까?

  강남훈  재산세의 실효세율은 토지 가격의 0.1% 정도일 것입니다.

  김종철  말도 안되는 거 아닙니까?

  강남훈  미국의 경우 재산세의 실효세율은 1%가 넘습니다.

  김종철  일반 국민들에게 우리나라는 좁은 땅인데 이 땅을 사적 이익을 챙기는 수단으로 방치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계속 설득할 필요가 있어요. 원래 토지라는 것은 공유자산이니까요. 해방 후의 토지개혁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과감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출구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자꾸 말해야죠. 토지가 없는 대다수 국민들이 그동안 토지 때문에 사회 전체가 유린되어왔다는 것을 거의 다 알고 있으니 설득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그리고 기본소득과 함께 설명하면 훨씬 설득하기가 용이해지지 않을까요? 기본적으로 토지라는 것은 소유권은 인정하지 말고 사용권만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야죠.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폭력성과 비윤리성을 제거하자면 아까 얘기한 노동력 상품화를 극복하는 것과 동시에 토지와 자본의 상품화도 극복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토지의 공유화는 절실한 과제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자본의 탈상품화라는 숙제도 하루라도 빨리 해결되지 않으면 안될 긴급한 문제죠. 방금 곽 선생님이 화폐주조권에 따른 이익, 즉 ‘시뇨리지’에 대해서 말씀하셨지만, 저 같은 문외한의 입장에서 볼 때 제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뭐냐면 화폐와 금융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공동체의 원활한 경제생활을 돕기 위한 공공적 도구이자 시스템인데, 어째서 그런 금융시스템의 운용에 의해서 획득된 수익이 공익을 위해 사용되지 않고 민간업자와 투기꾼들의 사복(私腹)을 채워주는 데 바쳐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요즘 미국에서는 2008년 월스트리트 금융파산사태 이후 금융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분위기 속에서 사회운동가들 사이에 공립은행(public bank) 설립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운동이 시작돼야 하는 게 아닐까요? 사실 보통사람들은 우리나라 은행들이 거의 대부분 민간 주주, 그것도 외국인 주주들의 손에 장악돼 있다는 사실도 잘 모르고 있잖아요. 만약에 은행을 공유화한다면 거기서 나오는 천문학적 수익만으로도 기본소득 재원은 충분하지 않을까요?
  저는 경제전문가가 아니라서 계산은 엄두가 안 나지만, 한 가지 궁금한 게 왜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이 이 금융공공화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얘기를 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토지공유화에 대해서는 헨리 조지의 이론을 근거로 몇몇 학자들이 꾸준히 발언하고 있는데, 금융의 공공화 문제는 비판적인 경제학자들도 왜 발언하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강남훈  토지의 경우에는 토지세를 중시하는 ‘조지스트’들이 비교적 활발하게 활동해왔는데, 금융에 관해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금융은 토지보다 복잡하고, 화폐공급 구조도 이해하기 쉽지 않지요. 또 박정희 시절 관치금융의 폐해도 영향을 주었죠. 금융이 국유화돼서 나쁜 게 아니라 대통령이 독점한 게 나쁜 것인데.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종부세 정책 실패(정권 재창출 실패)로 인해서 정치인들이 세금 인상에 더 겁을 먹게 된 것 같습니다. 노무현 정부 나름대로 좋은 아이디어를 냈는데, 종부세로 걷은 돈을 중앙에서 안 쓰고 지방정부로 내려보내서 사회복지 재원으로 쓰도록 했어요. 예를 들면, 지방의 무료급식소에서 노숙자들에게 제공하는 점심값이 종부세에서 충당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정권이 바뀌더라도 종부세를 못 깎을 거라고 예상했던 거죠.
그런데 당시 인터넷에 떠돌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보수언론 기자가 급식소에서 줄을 선 노숙자와 인터뷰를 했다고 합니다 ― 요새 살기 어떠세요? 아주 힘듭니다. 왜 힘들어요? 그놈의 종부세 때문에. 종부세 때문에 밥을 공짜로 먹는 노숙자가 종부세를 비판한다는, 조롱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김종철  악랄하네요.

  강남훈  저는 종부세를 작게 부과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나눠 준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노숙자가 종부세로 인해 공짜 점심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지요. 만약 토지세를 진짜 과감하게 2% 정도로 인상하고(0.5% 올리나 2% 올리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 돈으로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면서 한번 붙어보자고 나갔더라면 성공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김종철  노무현 정권이 선의를 가지고 일했음에도 실패한 것은 결국은 그 소심함 때문이지요.

  강남훈  노무현 정부 때 또하나 아쉬웠던 것은 토지소유 정보공개입니다. 토지 등기부 전산화사업이 이미 완성되어 있었는데, 그것을 주민등록과 연결시키면 가구당 토지 보유 실태가 바로 컴퓨터에 뜨거든요. 사람 이름은 가리고 5% 정도만 임의 표본을 추출해서 학자들에게 제공했더라면, 국민들이 부동산 보유 실태가 얼마나 불균등한지 알게 됐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종부세가 쉽게 무너지지 않았을 거예요. 과감한 정보공개, 과감한 조세징수, 조세수입을 기본소득같이 눈에 확 띄는 방식으로 재분배하는 것, 이런 것들이 필요했습니다.

  김종철  용기가 없었죠. 아니면 무지했거나….

 

  재벌이라는 장벽, 관건은 민주주의

  곽노완  금융공공화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짧게나마 ‘공공화’와 제가 사용한 ‘공유’라는 표현을 구분하고 싶습니다. 기본소득 원리에서는 중대한 차이가 있거든요. 공공화라고 하면 영어로 ‘public’ 개념이고, 공유라고 하는 것은 ‘share’에 가까운 개념입니다. 일부러 공공화라는 용어를 피한 것인데요.
  기본소득은 복지국가에 대해 비판적입니다. 케인즈주의적이라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복지국가란 것은 국가의 범위, 외연을 크게 하고 역할도 크게 하는 것인데, 이걸 누가 관리하느냐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어차피 통치자가 관리하는 것이고, 그러면 결국 북한처럼 통치자가 국가 전체를 사유화하는 상황으로 갈 수도 있어요. 1인 내지 1가족만 자본가인 그런 국가로 말이죠. 공공화의 함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한편 공유는 n분의 1로 나누는 것이기 때문에 관리자인 최고통치자도 그 이상의 몫을 주장하지는 못해요. 얼핏 보면 사유화와 시장주의의 반대인 것처럼 보이는 공공화가 극단적으로 갈 경우 1인 내지 1가족 중심의 실질적인 사유화로 귀결될 가능성도 농후하다는 겁니다. 공공화의 역설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건 개발독재나 현실사회주의의 문제 중 가장 큰 부분이기도 했고요. 기본소득이 공공화와 구분되는 공유화 내지 n분의 1을 핵심 원칙으로 하는 개별적인 지급을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함정을 벗어나기 위함입니다.

  김종철  그렇군요. 제가 용어를 수정하겠습니다.

  강남훈  보충하면, 그 개념을 확실히 구별한 사람이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입니다. 차베스의 헌법 개정안에는 ‘국가적 소유’와 ‘사회적 소유’가 구별되어 있습니다. 국가적 소유는 국가가 소유하는 것이고, 사회적 소유는 현재 및 미래의 민중의 소유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소비에트 교과서와 다른 거죠. 소비에트 교과서에서는 국가적 소유와 사회적 소유를 동일시했습니다. 차베스가 그걸 비판한 것이지요.

  김종철  헌법에 그렇게 되어있습니까?

  강남훈  차베스가 개정하려고 했던 헌법 개정안에 들어있습니다. 이것은 소비에트사회주의에 대한 중요한 비판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종철  아주 중요하네요. 정말로 러시아혁명보다 한 걸음 더 나갔군요.

  곽노완  기본소득 논리는 공유화(share)에 가깝다는 거죠. 통치자가 눈에 드는 사람에게 떡 하나 더 주는 식으로는 안되는 거죠. 이명박의 4대강 개발이 그렇지 않습니까?

  김종철  제가 용어를 바꾸겠습니다. 그런데 기본소득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국가권력이 중립을 지키지 않고, 자기 정파의 승리를 위해서 선거용으로 이용해먹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기본소득을 담당하는 독립기구를 만들어 정파적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도록 설계하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곽노완  그렇죠. 기본소득에 대한 권리는 모든 국민이 n분의 1로 갖기 때문에 어떤 통치자가 들어서도 건드릴 수 없는 형태로 되어야죠. 또 기본소득은 정치적으로는 직접민주주의의 최대한의 확대와 연동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은행의 공유화도 n분의 1의 권리가 국민들에게 있다는 논리로 설득할 수 있습니다. 은행의 주인이 우리들 자신이라고요. 혜택이 확실히 모두에게 돌아온다는 게 선명해질 수 있고, 그러면 그것도 기본소득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죠.

  강남훈  금융부분이 좀 어려운데,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미국이 달러를 발행하면서 차지하는 이득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미국의 무역적자가 매년 6,000억 달러 정도라고 하면, 미국은 그것을 달러를 찍어서 메우고 있습니다. 미국이 그만큼 공짜로 이득을 보는 겁니다. 6,000억 달러를 60억 인구로 나누면 1인당 100달러가 되지요? 만약 달러를 기축통화로 쓰지 않고 유엔 같은 데서 국제화폐를 만들었다면, 전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1인당 연간 100달러의 기본소득을 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엄청난 금액이 되겠지요.

  곽노완  지금 재벌들이 차지하는 환차익이 크다고 생각됩니다. 거기에 세금을 부과하기보다 아예 법률적·제도적으로 환차익을 공유한다는 원칙을 세우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경우 최근 몇 년간 순이익을 15조 원 이상 계속 유지해왔고, 작년에는 30조 원 정도 이익을 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무역흑자를 올리고 있는데도 원화가치가 낮았고 그 덕에 수출이 잘되었기 때문입니다. 기업은 똑같이 100달러에 팔아도 이익이 더 많이 남고, 그럴 여력이 생기니까 국제가격을 낮춰서 팝니다. 그럼 더 잘 팔리고, 이득이 커지는 거죠.
 근데 환율은 제로섬게임입니다. 반대로 국내 소비자들은 엄청나게 손해를 봅니다. 석유가격이 안 그래도 높은데 원화 약세니까 수입가격으로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니까요. 물가가 뛰는 이유엔 유가 상승도 있었지만 원화가치 하락 때문에 이중으로 물가가 급등했죠. 결국 국민들의 손해를 담보로 해서 이 불경기에도 재벌기업들의 수출은 신장되었고, 순이익도 5년간 연속적으로 좋았던 것이고 작년엔 최고를 기록했단 말이에요. 그 환율정책엔 정부랑 은행이 상당부분 개입하고 있습니다. 시장논리로만 한다면 원화가치가 높아야 됩니다. 대충 1달러에 700~800원밖에 안돼야 해요. 그러니까 지금 1,100원이라면 모든 국민들이 30% 이상을 뺏기고 있는 셈인 것입니다. 국민의 손해를 담보로 수출기업이 이익을 보는 구조입니다. 따라서 은행 혹은 금융 공유화와 더불어 환차손익도 공유화한다면, 삼성이 올리는 30조 원의 이익 중에서 절반 정도에 달하는 환차익은 사회공유자원으로 환류될 것 아닙니까? 그렇게 된다면 조세 이외에 거기서도 추가 재원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김종철  그렇겠네요. 지금 재벌 이야기까지 나왔는데, 문제는 재벌이라는 장벽을 어떻게 뛰어넘죠?

  강남훈  그 부분에 관해서도 곽노완 교수도 논문을 쓴 게 있고, 저도 기본소득을 설계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그런데 우리한테는 큰 무기가 있습니다. 바로 국민연금입니다. 국민연금 재정추계는 자주 이루어지는데, 그중에 2040년경에 국민연금기금이 4,000조 원으로 피크에 도달하고, 그 이후 급속히 줄어들기 시작해서 2060년경부터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는 추계가 있어요. 현재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이 1,300조 원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2040년이 되면 국민연금이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모든 주식을 다 사고도 남는다는 얘기죠. 스웨덴의 LO(노동조합)에서 구상했던 노동자기금도 그런 아이디어였습니다. 국민연금이 대기업의 주식을 많이 사들여서 대기업의 대주주가 될 수 있는데, 그래도 모든 기업의 경영권을 당장에 뺏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경제민주화에 역행하거나 상속이나 탈세하는 기업이 있으면 얼마든지 CEO를 갈아치울 수 있겠지요.
  그런데 국민연금법을 보니까 국민연금심의위원회 구성에서 가입자 대표가 과반수 이하로 되어있어요. 또 국민연금 가입자는 대부분이 근로자들인데,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수로 들어가 있습니다.

  김종철  안전장치를 해놓았군요.

  곽노완  일단 현재 축적된 국민연금 자산은 400조 원쯤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 주식의 3분의 1을 사들일 수 있는 돈이에요. 물론 현금으로 있는 게 아니라 토지에 대한 권리, 주식, 채권, 이렇게 분산되어 있는데요. 어쨌든 정치적 의지만 있다면 주식으로 다 몰아서 산다고 할 때 현재 주식의 3분의 1을 살 수 있단 뜻입니다. 현실적으로 그 정도면 기업이 가진 주식도 흡수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주식시장의 과반수 이상을 지금도 사들일 수 있다는 이야기죠.

  강남훈  그래서 저희 몇몇이 대선을 앞두고 냈던 책에서, 재벌개혁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국민연금을 가지고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하는 생각을 펼쳤습니다. 국민연금법을 고쳐서 가입자 대표가 심의위원회에서 다수가 되게 하고, 진보적인 공익위원을 임명하면 재벌개혁을 말썽 없이 추진할 수 있습니다.

  김종철  재벌 쪽에서 모를까요? 다 알겠죠. 결국 정부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귀결되겠군요. 민주정부가 들어서느냐 마느냐, 관건은 여기에 있는 것 같군요. 선거를 잘해야 되겠어요. 선거 잘해서 민주정부를 갖기 위해서도 기본소득을 주요 무기로 삼을 필요가 있고….

  강남훈  앞에서 얘기했지만 2012년 대선에서 후보들은 노인기본소득, 아동기본소득과 유사한 공약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공약들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의 주요 요인들이었습니다. 특히 노인 부분에서요. 당선되고 나선 공약을 잘 안 지키려고 하는데, 어찌 될지 두고 봐야 하겠죠. 우리 정치에서도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등 기본소득과 유사한 요구와 정책들이 점점 확대되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김종철  그러니까 우선 이 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각 방면의 사람들에게 좌우간 기본소득과 이런 국민연금 문제 등, 다양한 관련 의제들에 관해서 널리 알리고, 이해를 구하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하겠습니다. 선생님들이 앞으로 좀더 애를 쓰셔야겠어요.

  곽노완  거꾸로 제안을 드리고 싶은 것은, 녹색운동 하시는 분들도 기본소득운동을 같이 하고, 저희가 녹색운동에도 힘을 보태고, 이런 식으로 새롭게 진보의 정치적인 주체들이 힘을 모아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종철  ‘기본소득당’으로 통합할까요?(웃음) 오늘 충분히 이야기를 하지 못한 게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오늘은 더 얘기할 시간이 없고,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보강했으면 합니다. 하나는 기존 진보진영에서 얘기하고 있는 보편적인 복지시스템과 기본소득이 어떻게 연결되고, 어떤 점에서 차별성이 있는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에콜로지와의 관계입니다.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생태위기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겠는가, 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연유로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생태세 도입 말고는 이 문제에 관해서 오늘 얘기를 별로 하지 못했습니다.
  하기는 기본소득이 실행된다면 사람들이 심리적 여유가 생기니까 에콜로지 문제에 자연히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될 것은 확실합니다. 생활에 쪼들리는 사람들에게 환경문제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먹고사는 게 급하니까요. 기업도 마찬가지죠. 사회 전체가 어느 정도 안정돼야 환경의식이 고조됩니다. 그런 점에서 기본소득은 에콜로지 문제에도 요긴한 해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하나는, 지금 세계 전역에 걸친 생태적 위기상황은 결국 지난 200년, 혹은 더 좁게 보면 지난 반세기 동안 끊임없이 계속된 경제성장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본소득이 하나의 제도로서 확립되면 경제성장에 대한 압력이 크게 줄어들 것이 분명합니다. 경제성장을 계속해야 하는 일차적인 이유는 고용문제 때문인데, 기본소득이 실시되면 더 많은 일자리 창출의 필요성 자체가 줄어들 테니까요. 그러면 경제성장에 대한 압력도 약화되고, 그만큼 환경파괴와 환경오염이 줄어든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합니다. 이렇게 보면, 생태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기본소득은 하루빨리 도입해야 할 과제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다양한 측면에서 우리가 왜 기본소득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오늘 흥미로운 얘기 많이 나눴습니다. 결론은 역시 민주주의의 중요성이군요. 기본소득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도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또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을 하자면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어느 정도의 실질적인 경제적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본소득과 민주주의는 상호보완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분 선생님께 오늘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앞으로도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좋은 활약 기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정혜진 녹취)


강남훈 ― 한신대 교수, 경제학. 기본소득네트워크 한국 대표.
곽노완 ― 서울시립대 교소, 경제철학. 기본소득네트워크 학술위원장.
김종철 ― 평론가.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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