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제129호 2013년 3-4월호  인쇄용  

 

  우리 도시농업의 역사와 현황

  안철환

도시농업이 우리 삶의 새로운 유행이 되고 있다. 이 속에는 우려와 희망이 동시에 섞여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 빠르고 화끈하다. 뭘 하나 해도 조금 해놓고서 마치 큰일이나 이뤄놓은 것처럼 꽤나 시끄럽다. 도시농업도 그렇다. 지금의 들뜬 분위기로 봐서는 세계 최고의 도시농업을 구가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도시농업으로 유명한 캐나다의 밴쿠버 예를 들어보자. 밴쿠버는 2010년 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도시 내에 2,010개의 도시텃밭을 조성했다. 뉴욕만 해도 800~ 900개에 달한다. 그런데 박원순 시장이 들어서서 도시농업이 활성화되고 있는 우리 수도 서울의 도시텃밭은 과연 몇 개나 될까? 90년대부터 있어왔던 서울 외곽지역의 주말농장까지 합쳐서 잘해야 100여 개 남짓한 정도이며 박 시장 취임 이후 조성된 농장은 고작 20여 개 정도인데, 우리 도시농업은 농사 아닌 활동이 꽤나 많다. 작년 전국도시농업박람회에서부터 매년 박람회 행사가 많은 도시에서 열리고 있고, 지난해에 도시농업 심포지엄과 세미나도 서울에서만 10여 차례나 열렸다. 농사짓자고 하는 일인데 농사 안 짓는 일이 더 많은 것 같은 회의가 일 정도로 각종 회의도 많았다.

농사 외적인 일이 많다고 해서 농사를 잘 짓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서든 농장을 개장하여 농사지을 회원모집 땅 분양 공고를 하면 바로 만원매진이다. 보통은 10배 이상의 신청자가 몰린다. 땅이 없어 상자에 흙 담아 키우는 상자텃밭도 분양 공고를 내면 장사진을 이루기 십상이고, 코딱지만한 자투리땅만 있으면 고추고 상추고 모종 사다 꽂아 키워 먹는 일이 다반사다. 가히 농경민족의 후예답게 지금 우리사회에는 농사열풍이 불고 있음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서울과 수도권 및 광역시마다 열리고 있는 도시농부학교에는 농사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문제는 도시에 농사짓고자 하는 사람들은 넘쳐나는데 땅이 없다는 사실이다. 농사 열기를 담을 땅이 없으니 농사 외적인 행사가 많은 것은 자연스런 일일지 모른다. 그럼 땅이 턱없이 모자란 도시에서 왜 이렇게 농사열풍이 불게 된 것일까?

 

배경에는 수입자유화로 인한 농업붕괴가 있다

도시농업의 바람이 직접적으로 불기 시작한 것은 2008년 미국 광우병 소고기 수입파동으로 일어난 촛불시위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소고기 수입을 촛불시위는 막지 못했지만 그로 인해 우리 밥상에 대한 위기의식은 촛불시위 이상으로 번져갔다. 초기에는 밥상에 대한 불안감이 친환경유기농산물의 소비를 촉진시키더니, 급기야 내가 먹을 것은 내가 직접 키워 먹겠다는 도시농업의 의지로 확산된 것이다.

그럼 우리 밥상은 왜 불안해진 것일까? 농약 때문에? 물론 그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미국 소고기에 대한 불안감이 상징하듯이, 내가 알지 못하는 농부가 내가 알 수 없는 농사 방식으로 키운 농산물이 먼 타국에서 알 수 없는 과정을 거쳐 내 밥상에 올라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숱한 농약과 농약보다 더 무서운 처리과정을 거친 음식물이 내 입으로 들어올 것을 생각하니 불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수입농산물에 대한 불신을 더욱 키운 것은 중국에서 건너오는 농산물이었다. 끝없이 불거지는 중국산 불량 농산물에 대한 뉴스 등으로 수입 중국 음식물은 ‘나쁜 음식물’의 대명사가 되었다. 덩달아 중국뿐 아니라 미국산도 포함해서 수입농산물을 믿지 못하는 풍조로도 확산되었고, 역시 국내산 음식물이 우리에게는 최고라는 신토불이 사상을 뿌리내리게 했다. 물론 그중에도 친환경유기농산물이 최고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국내산 농산물이면 믿을 만하다는 인식이 퍼져간 것이다.

다음으로 도시농업 열풍에 더 불을 댕긴 것은 2010년 가을 배추파동이었다. 배추 한 포기 값이 1만 5,000원까지 급등하자 배추가 ‘금추’가 되었고, 서민들은 비싼 배추를 사 먹을 엄두를 못 내 직접 키워먹겠다는 의지를 불사른 것이다. 이렇게 우리 도시농업의 배경에는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자급의지가 있었다. 물조차 돈 주고 사 먹는 완벽한 소비도시에서 한 줌의 자급운동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한국 도시농업의 특징을 이루는 큰 계기였다.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의 도시농업은 이와 사뭇 달랐다. 도시농업의 역사가 제일 긴 영국의 경우 산업화와 도시화의 부작용이라는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 얼라트먼트(allotment)라는 영국 도시농업은 도시 슬럼화로 인해 증가한 빈곤층의 먹거리를 해결해주는 식량 복지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도시로 밀려든 빈곤층 대부분이 농부 출신들이어서 먹거리를 무료로 공급해주기보다는 스스로 농사지어 자급하게 하는 복지정책을 펼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영국에서도 자급운동의 측면이 엿보이기는 한다. 아마 자급이야말로 농사의 근본이기 때문일 것이라 보여진다.

하지만 우리와는 사정이 완전히 달랐다. 우리는 식량자급률이 20%대에 불과하여 대부분의 먹거리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 자급운동을 불러일으킨 반면, 영국은 자급률이 100%가 넘기 때문에 그 배경이 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영국의 얼라트먼트에서는 친환경유기농사라는 성격이 우리처럼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들은 밥상의 불안감 때문에 농사를 지었다기보다는 밥상의 빈곤 때문에 농사를 짓게 되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식량자급률이 높은데도 밥상이 빈곤한 것은 계급의 양극화로 인하여 사회적 빈곤층이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매우 낮은 우리의 식량자급률을 언뜻 보면 밥상의 ‘빈곤’이 더 큰 문제이지 않겠냐 하겠지만, 저가의 저질 농산물이 끝없이 수입되어 우리 밥상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질 않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 밥상에는 음식물이 넘쳐나서 문제였다. 다만 믿을 수 없는 음식물이 탈이었다. 그래서 우리 도시농업 열풍의 배경에는 수입자유화로 인한 농업의 붕괴라는 엄연한 현실이 근본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것이 서구 선진국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었다.

 

한국 도시농업운동의 역사

도시농업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전사(前史)로서 주말농장이 있었다. 1992년 서울에서 시작된 주말농장은 꽤나 시민들에게 각광을 받았다. 서울시농업기술센터가 주도한 주말농장은 농업기술센터의 새로운 정체성의 근거가 되었다. 농지가 사라져가고 있는 서울에 웬 농업기술센터인가라는 근거로 센터를 없애려 했던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의 정책을 무산시킨 것에는 주말농장의 확산이 한몫했다.

그러나 주말농장은 곧 한계에 부딪혔다. 서울 내에 농지가 부족하자 인근 경기도의 농지에 대규모 주말농장을 조성해 시민들에게 분양했는데, 주말이면 교통정체로 인해 농장의 접근성이 매우 좋지 않았던 것이다. 더불어 주말농장에선 친환경유기농 원칙이 확립되어 있지 않아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고자 했던 시민들의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공무원들이 주도했기 때문에 애초부터 운동성을 가지기 힘든 한계도 빠뜨릴 수 없었다. 아마도 주말농장이라는 이름 자체의 의미가 현실 개혁보다는 현실 안주성을 띠고 있어 그 한계를 스스로 드러낸 것일지도 몰랐다.

바야흐로 도시농업이 도시를 바꿔가는 새로운 녹색운동, 자급운동으로 시작된 것은 민간에서였다. 2004년 (사)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귀농 실습지로 시작한 도시농업이 바로 그것이었다. 처음엔 분명 도시농업이라는 이름을 내걸지 않고 소박하게 귀농 실습지로 시작했다. 경기도 안산과 군포와 고양에서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정작 실습지에서 지속적으로 농사를 지은 사람들은 귀농하지 않고 도시에서 농사짓고 싶어 하는 도시사람들이었다. 귀농자들은 조금만 배우고 금방 시골로 떠났다. 5~10평의 조그만 땅이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농사가 절실한 사람은 귀농자보다는 도시사람들이라는 얘기다. 귀농자들이야 농지가 넘쳐나는 농촌으로 내려가면 바로 농사욕구를 해결할 수 있지만, 점점 농지도 사라지고 녹색도 사라지고 온통 시멘트 콘크리트로 덮여 생명이 사라지고 있는 도시야말로 농사가 더욱 간절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때 우연히 만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이라는 쿠바의 도시농업에 대한 책을 보면서 “아, 바로 이거다. 도시농업!” 하며 손뼉을 쳤다. 바야흐로 도시농업이라는 개념이 태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2005년 봄 처음으로 도시농부학교를 열었다. 그동안 귀농운동본부에서 진행해온 귀농학교의 노하우가 큰 힘이 되었다. 그렇지만 철학과 교양에 치우친 귀농학교와 달리 철학도 겸하면서 구체적인 재배법이 중심이 된 도시농부학교가 당장의 농사욕구를 채워주는 큰 역할을 했다. 이 도시농부학교에서 배출된 사람들이 우리 도시농업의 주역들이 될 것이라고는 당시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당시에는 귀농한다고 하면 ‘루저’로 보던 시절이라 민간단체에서도 변방에 불과했던 귀농운동본부라는 조그만 단체에서 그것도 너무나 낯선 도시농업을 한다고 하니 얼마나 돈키호테처럼 보였을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천천히 귀농운동본부의 도시농업은 발전해갔다. 시민농장도 경기도 군포, 안산, 고양에서 시작한 것이 퇴계원, 수원, 시흥으로 확대되면서 이후 도시농업 열풍의 기초를 조용히 닦아갔다. 이 조용한 도시농업 바람에 처음으로 가세한 단체가 있었으니 바로 인천의 도시농업네트워크였다. 인천의 도시농업네트워크는 참으로 우리 도시농업운동의 한 기둥을 받쳐오는 역할을 든든히 했다.

변방의 운동에 불과했던 도시농업이 대중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바로 ‘상자텃밭’ 보급사업 이후였다. 땅이 없는 도시에서 농사는 무슨 농사냐, 씨알도 먹히지 않는 얘기 하지 마라 하던 시절에 상자텃밭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처음 대학로에서 시작한 상자텃밭은 우리도 예상치 못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줄지어 세웠다. 그리고 상자텃밭 보급 전국 투어를 광역도시 중심으로 전개하면서 도시농업을 전국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 일은 당시 토지공사의 초록사회만들기 프로젝트 기금을 받아 시작된 일이었는데, 토지를 다루는 공사에서 토지가 없어 상자를 보급한 것도 지금 생각하니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이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재)서울그린트러스트라는 민간단체와 결합해 상자텃밭을 시민단체와 시민들에게 보급하게 함으로써 도시농업의 불길을 댕겼다. 그리고 상자텃밭은 마치 도시농업의 아이콘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게 되었다. 조그만 자투리 공간이면 어디든 갖다 놓고 작물을 키울 수 있는데다 옥상에 비싼 돈 들여 녹지를 조성하지 않고도 상자텃밭을 늘어놓고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으니 그 파급력은 대단했다.

그러나 상자텃밭은 도시농업을 확대한 일등공신이면서도 도시농업의 방향을 왜곡시키는 부정적인 역할도 했다. 상자로 쓰인 용기들이 대부분 플라스틱인데다 흙 대용으로 쓰는 피트모스, 펄라이트라는 인공흙들이 죄다 수입한 것들이어서 에너지와 비용 낭비, 탄소 배출의 산물들이었다. 농사도 잘되질 않고 생산물의 맛도 떨어져 자칫 쉽게 농사를 포기하게 만들어 쓰레기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았다. 자칫하면 도시농업의 무덤이 될지도 모를 만큼 그 위험성은 보급되는 만큼 커져갔다.

 

관의 참여

2009년 농촌진흥청에 도시농업팀이 신설되고 같은 해 가을 농진청이 주도하여 (사)한국도시농업연구회가 창립된 이후 관의 도시농업 참여가 매우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도 도시농업팀을 설치하여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전국 각 지역 특히 도시지역 농업기술센터에서도 도시농업팀이나 업무를 두어 활발하게 관주도형 도시농업을 이끌고 있다. 경기도처럼 특히 도시화가 가속되어 관내의 농업인보다 도시인이 더 많아지게 되자 농업기술센터가 농업인보다 도시민 대상의 농사교육을 통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관의 참여는 도시농업 지원 조례 제정이 큰 계기가 되었다. 경기도 광명시에서 최초의 도시농업 조례가 만들어진 이후 수원시, 서울 송파구, 전라도 광주로 이어져 2012년 현재 25개의 조례가 전국 각지에 골고루 제정되었다. 급기야 2011년 가을에는 국회에서 도시농업 육성 법률이 만들어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민간의 운동이 제도의 개선 및 창출로 이어진 것이다.

아마 관 주도의 도시농업이 더욱 힘을 받은 것은 도시농업에 적극적인 의지를 가진 단체장의 등장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 강동구였다. 강동구는 구청장의 적극적인 환경정책 의지로 매우 앞선 환경도시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2009년 말 강동구 공무원 중 예비 은퇴자를 대상으로 한 귀농교육을 (사)전국귀농운동본부 텃밭보급소(이하 텃밭보급소)가 맡게 되었는데, 이때 텃밭보급소는 농지가 많이 남아있는 강동구야말로 도시농업의 적지임을 강동구에 제안하게 되었다. 농지도 많이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적극 환경정책을 추진하고 있던 차에 구청장은 이 둘을 결합해 강동구를 친환경 도시농업 도시로 만들 의지를 천명하고, 2010년 봄 둔촌동에 서울 최초의 도시텃밭을 도심 주택가 한복판에 개설했다. 반응은 말 그대로 폭발적이었다. 분양 공고가 인터넷에 뜨자마자 단 5분 만에 매진되었다. 본격적인 도시농업, 도시텃밭으로는 서울 최초만이 아니라 전국 최초의 일이었다. 말이 관주도이지 강동구의 도시농업은 정확히 말하면 민간과 관의 결합이 낳은 산물이다. 그리고 강동구 바로 옆 송파구에서 2010년 가을 도시텃밭을 열면서 도시텃밭의 바람을 이어갔다. 이 또한 서울그린트러스트라는 민간단체와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결과다.

2011년 재보선으로 등장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도시농업정책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2012년 광화문 한복판에서 상자 논을 만들더니 한강 노들섬에서 5,000여 평의 노들텃밭을 만들어 도시농업 바람을 주도해갔다. 2012년은 노들텃밭만이 아니라 곳곳에서 도시농업 지원 조례에 근거해 도시텃밭이 만들어지는 해였다. 마포구의 상암두레텃밭과 금천구의 시민텃밭에서부터 도봉구, 성북구를 거쳐 최초의 농업공원이 은평구 갈현습지공원에서 조성되기에 이르렀다. 바람은 계속 이어져 경기도 광명시에서 LH 땅을 임대하여 조성한 시민주말농장이 광명시민들의 환호와 함께 개장되었다. 이 또한 광명에서 도시농업 조례를 주도하고 근교에서 도시농업을 이끌어온 광명텃밭보급소가 협력해 이뤄진 것이었다. 경기도의 도시농업 바람은 사실 서울보다 더 컸음에도 언론의 주목은 덜 받으며 이어갔다. 경기도 안산에선 규모로는 단연 최대인 2만 평의 부지에다 도시텃밭 주말농장을 개설했으며 수원시, 김포시, 부천시에서도 처음으로 시민농장이 개설되기 시작했다.

지방에선 수도권만큼 그 바람이 주목받진 않았으나 역시 도시의 새로운 유행으로 각광받으며 지방의 도시농업 붐을 이어갔다. 대전과 대구, 부산 그리고 전주와 광주로 확산되어간 것이다. 여기에는 관의 지원도 적지 않았지만 역시 지역의 환경·풀뿌리 민간단체들의 힘이 컸다. 이런 힘들이 2012년 총결집하여 전국적인 도시농업 협의체 창설을 이끌게 되었으니 가히 2012년은 한국 도시농업의 큰 분수령이었다 할만했다.

 

민간단체들의 활동

2012년 3월 8일 서울에서 도시농업시민협의회라는 도시농업 관련 단체들의 전국 협의체가 창설되었다. 서울을 중심으로 경기도, 대전, 부산, 광주 등에서 환경단체, 시민단체, 풀뿌리 공동체 단체, 귀농단체들이 참여하였다. 도시농업시민협의회에 가입한 단체만 31개에 이르렀고 여기에는 텃밭보급소를 비롯해 서울그린트러스트,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여성일과미래, 여성환경연대, 서울환경운동연합에서부터 대전도시농부학교, 대전도시텃밭연대, 대구녹색소비자연대, 대구사회연구소, 부산도시농업시민협의회와 부산귀농학교, 광주귀농학교 등이 참여하고 있다. 부산은 11개의 지역 시민, 환경, 공동체 단체가 참여하여 2011년 말에 전국 최초의 지역협의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경기도에서도 2012년 5월 23일 도시농업육성법 발효일에 맞춰 11개 단체가 참여하여 경기도도시농업시민협의회를 창설했다. 도시농업은 민간단체들이 나서서 민간주도로 이끌어가겠다는 의지의 천명이었다.

도시농업시민협의회는 우리 도시농업운동의 성격을 창립선언문을 통해 분명히 천명했다. 그것은 한 모금의 물과 밥조차 외부에 철저히 의존해야 하는 사막 같은 도시에서 농사를 통해 생명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다해 도시를 자립하고 순환하는 공동체로 복원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리고 그 의지는 각자의 지역에서 활발히 농부학교를 열어 농부들을 길러내고 도시의 버려진 땅, 쓰레기와 콘크리트로 숨 막힌 땅, 생명이 없는 학교와 옥상에서 생명의 텃밭을 일구는 운동으로 전개되어갔다. 한 해 숨 가쁘게 곳곳에서 호미와 낫으로 생명을 일구던 도시농부들은 급기야 대선을 치른 다음 날 대구 벌에 모여 최초의 ‘도시농부 전국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온 국민이 홍역 앓듯 큰일을 치른 다음 날이어서 축하를 하는 사람들이나 ‘멘붕’을 겪은 사람들 모두 별 관심이 없을 줄 알았던 대구 대회는 전국에서 150여 명에 가까운 도시농부들이 모여 대회를 성황리에 치르게 되었다. 20여 개의 도시농업 사례 발표는 대회의 절정을 이루었다. 다양한 곳에서 온 사람들로부터 자기와 같은 고민과 자기와 다른 선진 경험을 들으면서 많은 감동과 배움을 겪었다.

 

식량자급과 공동체문화의 복원

우리의 도시농업은 쿠바나 제3세계의 생계형 도시농업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또한 유럽 선진국의 취미나 여가를 즐기는 농업과는 더더욱 달라야 한다. 어떻게 보면 20%대 이하로 추락할 위험이 다분한 우리의 식량자급률을 볼 때 생계형 도시농업을 부러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경제적으로 잘살게 되었다고 우쭐거리며 고상한 취미나 여가를 즐길 때가 아닌 것이다.

우리의 도시농업은 다가올 식량위기, 에너지위기, 기후변화로 인한 잦은 자연재해를 대비하는 노아의 방주 운동이어야 한다. 지금처럼 자유무역, 신자유주의가 번성해 농업이 붕괴하게 되면 우리 농촌에서 먹을거리가 사라질 것이다. 핸드폰, 자동차, 컴퓨터 팔아 돈 주고 사 먹으면 되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은 정말로 위험한 발상이다. 식량위기는 우리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식량수출국들이 지금처럼 변함없이 식량을 팔 것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큰 오산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기려니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지금처럼 철저히 소비만 하는 도시는 너무나도 위험천만이다. 철저한 비자립 도시였던 로마의 멸망을 교훈 삼아야 한다. 또한 쓰레기를 대량 양산하는 도시는 진짜 나쁜 도시다. 이제 도시를 자립하는 도시, 쓰레기를 순환하고 재생하는 도시, 그래서 생명이 살고 공동체가 복원되는 도시로 바꾸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너무나 어둡기만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요즘 이상한 도시농업이 유령처럼 우리 주변을 떠돌고 있다. 바로 ‘식물공장’이 그것이다. 땅이 없다는 명분하에, 제일 안전한 농산물이라는 괴변하에 엄청난 재정과 에너지를 쓰고 탄소를 배출하는 식물공장이 도시농업의 상징인 양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암중모색하며 양지로의 등장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자연 환경과 천적을 철저히 배제하고 무균실에서 인공조명과 화학적인 양액으로 재배하는 것이 농사일 수는 없다. 농사란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면서 자연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실천이며 그것을 통해 뭇 생명이 함께 공동체로 살아가는 삶이자 문화이다. 이런 농사의 다원적 기능을 철저히 무시하고 오로지 입에 들어가는 먹을거리로만 여기는 농사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다행히 우리 친환경농업육성법에 따르면 식물공장의 먹거리는 유기재배·무농약 농산물로 인정받을 수 없게 되어있으니 한계는 뚜렷하다.

하여튼 식물공장은 우리 농업을 살리는 것도, 농민을 위한 것도, 도시사람을 위한 것도 아니다. 오직 건설업체, 전기·화학제품 업체를 위한 것일 뿐, 그것이 도시 환경을 생태적으로 바꿀 리 만무하고, 도시에 공동체를 복원할 리 만무하고, 나아가 우리 농업을 살리는 데 기여할 리도 만무하다. 오직 남극 같은 극한상황에서나 불가피하게 지어 먹는 농사형태이지, 멀쩡한 햇빛을 가리고 인공조명으로, 멀쩡한 흙과 거름을 팽개치고 화학적인 양액으로 재배해서 먹는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아마 무균실에서 키울 것이니 깨끗하기는 할 것이다. 그렇게 깨끗한 것에 집착을 하면 사람도 무균실에서 사는 게 나을지 모르겠다. 한마디로 “왜 사나요?” 물어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농경민족의 후예인 것을 증명이나 하듯 곳곳에서 농사열풍이다. 아마도 거기엔 좋은 것을 먹겠다는 의지도 있겠지만 더 깊은 내면에는 흙을 밟고 살고 싶은 귀소본능의 열망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어디 흙을 밟고만 싶겠는가? 만지고 비비고 그리고 뭔가 심어 먹으며 흙과 함께하고 싶은 원초적 본능이 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리라. 중앙아시아 초원지대에 가보면 빈 땅에 무엇이라도 심어 먹는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 교포들이란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경작본능이 유전자로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도시에 땅이 없다. 방치된 땅은 많은데 법과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아 농지로 활용할 방법이 없다. 지금 그나마 확산되고 있는 도시텃밭들은 거의 다 불법 임대 땅이거나 임시로 쓰는 땅들이다. 단체장이 바뀌어 정책이 바뀌면 금방 다른 용도로 전용될 땅들이다. 그렇다고 법과 제도가 바뀌길 멍하니 기다릴 수만은 없다. 다시 한번 힘을 모아 땅 찾기, 땅 살리기 운동을 벌여야 한다. 땅과 함께 건강한 농부 되기 운동을 벌이면서…. 2013년은 분명 우리 도시농업운동의 새로운 질적 도약기가 될 것이라 기대하며 글을 맺는다.


안철환 ―도시농업시민협의회 상임대표, 텃밭보급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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