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제126호 2012년 9-10월호  인쇄용  

 

  대안적 삶, 세계 협동조합

  김현대

연말 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1%의 독점을 극복하자는 경제민주화 요구는 재벌과 대기업의 전횡을 제한하는 각종 법제도적 규제로 표출되고 있다. 대형마트의 영업일수를 제한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사회적 안전망을 효과적으로 구축해 사회적 약자가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하자는 복지 요구도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규제는 기껏해야 많이 뺏긴 것을 덜 뺏기게 하는 것이지, 내가 정당하게 가져야 할 몫을 충분히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장치가 아니다. 복지는 도덕적 해이와 무임승차의 부작용을 수반할 수 있다. 무엇인가가 빠져있다. 99%의 경제적 약자들 자신에게서 나오는 새로운 동력이다. 경제적 약자들의 최대 무기는 공동행동이다. 공동행동의 힘을 조직해 대기업과 시장에서 경쟁해 이겨내려는 자발적인 욕구를 분출시켜야 한다. 협동조합의 힘은 생산적인 복지를 작동시키고, 대기업 규제의 효과도 배가한다.

《협동조합, 참 좋다》는 경제민주화를 이끌고 경제위기의 안전판 구실을 하고 있는 전세계 협동조합의 현장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척박하지만 싹을 틔우는 우리 협동조합의 사례도 더듬었다. 책은 3부로 구성됐다. 다른 나라의 앞서 나가는 협동조합 이야기로 시작했다. 행복한 협동조합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과의 대화도 최대한 풍성하게 다뤘다. 2부에서는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았다. 언론인의 상상력을 동원해 실생활에서 협동조합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도 고민했다. 3부에서는 우리의 눈높이에서 세계적인 협동조합 전문가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었다.

무엇보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내놓으려 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사실, 협동조합을 알려고 해도, 협동조합을 하려고 해도, 나침반으로 삼을 만한 우리말 ‘교과서’가 없는 실정이다. 국내에 이미 출간된 상당수 서적들은 외국 협동조합을 ‘직역’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혹은 생각과 문장이 난삽해, 오히려 협동조합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이 책이 언론인 3명의 ‘협동’의 산물이라는 점에도 자부심을 느낀다. 몇 개의 소주제로 나눠 책 내용을 요약해 전달한다.

 

왜 협동조합인가

“우리는 오랫동안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잊고 살았다. 특히 경제와 기업의 세계에서는 혼자 빨리 뛰는 것 이외의 길은 없다고 굳게 믿는 세상에서 살아왔다. 이 책은 그러한 고정관념이 진실도 사실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작업의 첫걸음이다. 두 가지 메시지를 담았다. 세상에는 협동조합이라는 다른 형태의 기업이 있다는 것, 또 협동조합이 다른 나라 시장에서는 150년 이상 경쟁력을 발휘해왔다는 것이다. 협동조합은 역사적으로 보편적인 기업형태로 우리사회와 경제에서도 작동할 수 있다.”

“한 발짝만 바다 바깥으로 나서면 ‘다른 경제’와 ‘다른 기업’이 널려 있는데도, 우리는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다. 여러 사람의 ‘협동’으로 꾸려가는 기업이 시장에서 작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못했고, 그렇게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다. 주주 이익 극대화를 숭배하는 자본주의 기업만이 유일한 기업인 줄 알았다. 적자생존과 승자독식이라는 필요악에 순응했으며, 한 명의 천재가 거액연봉을 독차지하는 세상을 자연스럽게 여겼다. 외눈박이 마을에서는 모든 사람이 눈 하나만 달고 사는 줄 안다.”

머리글과 여는글에 이렇게 적었다. 그렇다. 협동조합은 시대착오적 기업형태가 아니라 사회와 경제라는 두 날개로 비상하는 선진적 기업이다. 승자독식이 아니라 서로 나누는 호혜의 방식으로 작동하는 협동조합으로도 얼마든지 기업활동을 잘할 수 있다. “협동조합기업은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잘 이겨냈다. 시장경제에서도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지속 가능한 기업형태다.”

협동조합은 우리시대를 살아가는 경제적 약자와 젊은이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열어주는 기업이기도 하다. 학교 친구, 뜻 맞는 동업자, 농민과 소비자가 힘을 모아 ‘우리를 위한 우리의 기업’을 세울 수 있다. 다른 나라 협동조합에서 행복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책의 곳곳에서 소개했다. “덴마크의 메르쿠르라는 협동조합은행에서 만난 메테 튀센은 ‘우리 협동조합에서는 가치가 급여의 일부’라는 감동적인 말을 했다. 영리 은행보다 고위직의 급여는 낮지만 일에서 느끼는 보람이 크다는 뜻을 그렇게 표현했다. 이탈리아 최대의 우유생산 기업인 그라나놀로 협동조합의 클라우디아 실바니는 ‘그전 직장에서는 경쟁이 무척 심했는데, 여기에서는 열심히 일하면서도 서로 협력한다’고 협동조합의 기업문화를 자랑스러워했다. 클라우디아는 ‘야후 이탈리아’에서 7년가량 일하다가 옮겨 왔다.”

메테와 클라우디아처럼 협동조합기업을 기꺼이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을 젊은 세대에게 남겨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일어난다. ‘가치가 급여의 일부’라고 자연스럽게 말하는 우리 청년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

 

협동조합, 무엇인가

우리사회에서는 협동조합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 자체가 참 어렵다. 협동조합에서 직접 일해본 사람도, 협동조합기업과 거래를 해본 사람도 참 드물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협동조합을 배운 적도 없다. 농협과 수협은 무늬만 협동조합이어서, 대부분의 조합원과 직원들 스스로도 협동조합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잘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잘할 수 있겠는가? 《협동조합, 참 좋다》에서는 협동조합을 쉽게 설명하는 데 많은 정성을 쏟았다.

논리는 간명하다. (다른 모든 비용이 0이라고 가정할 때) 자본주의 기업에서는 노동자 임금 75유로를 지불하고 100유로의 자전거를 생산해 판매한다. 이렇게 해서 25유로를 남기면 자본가가 투자이윤으로 가져가는 구조이다. 사회적협동조합에서는 자본주의 영리기업과 달리 장애인을 추가로 고용한다. 기존 노동자들에게는 75유로의 임금을 그대로 지불하고 자전거값 100유로를 유지한다. 유일하게 달라지는 것은 자본가의 몫이다. 투자이윤 25유로가 통째로 0으로 줄어든다. 그렇게 절약한 25유로가 장애인 노동자들의 급여로 지급된다.

소비자협동조합, 생산자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노동자협동조합의 운영원리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각 협동조합의 성격을 규정짓는 열쇠는 25유로의 행방이다. 25유로를 판매가격 인하분으로 돌려 소비자들에게 골고루 나눠 준다면? 소비자들이 조합원인 소비자협동조합일 것이다. 농민들의 생산자협동조합이라면, 25유로를 농산물 값을 더 비싸게 사주는 쪽으로 쓸 것이다. 노동자협동조합은? 노동자들의 급여나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재원으로 돌릴 것이다. 신용협동조합에서는 대출금리를 낮추거나 예금금리를 높이는 쪽으로 25유로를 쓰게 된다.

이러한 협동조합의 운영원리는 철저히 1인 1표의 민주주의에 뿌리를 두게 된다. 주주들이 주인인 자본주의 기업에서는 많은 돈을 투자한 이들에게 돌아가는 몫을 극대화하는 것이 기업의 존재이유일 것이다. 민주주의의 협동조합에서는 다수의 소비자와 생산자 및 노동자들이 주인이고, 그들에게 ‘최선의 가격’을 제공하는 것이 기업의 존재이유이다. 자본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인 기업이다.

 

세계 굴지의 협동조합, 참 많다

이탈리아의 에밀리아로마냐는 익히 알려진 것처럼, 협동조합의 천국이다.

‘시장(마트) 간다’는 말을 ‘꼽(협동조합의 이탈리아어 발음) 간다’고 한다. 협동조합이 일상생활에 실핏줄처럼 녹아들어 있다. 우리의 이마트에 해당하는 최대 소매업체가 소비자협동조합이고, 건설사와 은행은 물론이고 박물관도 공연장도 협동조합으로 운영되고 있다. 에밀리아로마냐에서 전체 경제의 30%를 지탱하는 또하나의 주류 경제이다.

“스위스에는 미그로 키즈(kids)와 코프 키즈가 있다.” 미그로와 코프스위스(코프는 협동조합의 독일어 발음)는 스위스 소매시장의 40%을 분점하는 양대 소비자협동조합이다. 스위스의 어린아이들은 거의 예외없이 부모가 가입한 협동조합에 따라 ‘미그로’ 아니면 ‘코프’ 매장을 드나들면서 자라난다. 스위스 사람들의 협동조합 사랑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동쪽 앞바다로 5km가량 달려 나가면 거대한 풍력발전기 20대가 줄을 지어 하늘을 가른다. 이 풍력발전기의 주인은 미들그룬덴 발전협동조합이다. 발전소 설립자금을 출자한 8,600명의 코펜하겐시민 조합원들이 풍력발전기를 건설했다.

미국을 자본주의 기업의 천국이라고만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협동조합의 뿌리가 깊다. 고급 오렌지의 대명사인 썬키스트는 118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협동조합기업이다.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의 6,000여 감귤 생산농가가 힘을 합쳐,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글로벌 경쟁시장에서 해낸다. 세계 4대 통신사로 꼽히는 미국의 AP 또한 협동조합기업이다. 캐나다에서는 인구의 10% 이상을 조합원으로 보유한 등산장비협동조합 MEC가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협동조합기업들은 소매업과 금융 및 농업 분야에서 활약이 두드러진다. 스위스뿐 아니라 이탈리아와 독일, 프랑스, 영국 등지의 소비자협동조합들은 그 나라 소매업계의 선두권을 차지한다. “협동조합은행의 영업 규모는 이미 유럽 전체의 20% 이상을 점유한다. 프랑스 최대 은행인 크레디아그리콜과 네덜란드 1위인 라보뱅크가 대표적이다. 두 은행은 농민들을 상대로 한 신용사업에서 출발해 세계적인 규모로 성장했다. 독일의 데체트방크도 협동조합은행이다.”

선진 농업에서는 ‘농업〓협동조합’이라는 등식이 자연스럽다. “선진국의 농업은 협동조합과 한몸이다. 농업을 끌고 가는 기관차는 자본주의 기업이 아니라 협동조합 기업이다. 유럽 최대의 청과물 도매회사인 네덜란드의 그리너리, 덴마크 양돈 산업의 90%를 장악한 데니쉬크라운, 이탈리아 최대의 우유생산업체인 그라나놀로, 이들 브랜드의 공통점은 원예농가, 양돈농가 또는 낙농가들의 공동출자로 세운 협동조합기업이라는 점이다. 농업 개혁의 모범국이라는 뉴질랜드의 농업을 이끌고 있는 폰테라(낙농업체)와 제스프리(키위 수출업체) 또한 자국 농민이 출자지분의 100%를 보유한 협동조합기업이다.”

 

우리에게는 원주와 생협이 있다

국내 협동조합의 토양은 척박하다. 공룡 농협을 빼고 나면, 세계적 협동조합과 맞세우기에 거리가 너무 멀다. 그래도 국내 협동조합의 메카로는 원주지역이 꼽힌다.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소처럼 뚜벅뚜벅 ‘한국형 협동조합 생태계’의 새로운 역사를 열어나가고 있다.” 원주의 협동조합운동을 이끄는 구심점은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이다. 다수가 중복 조합원이지만 네트워크에 소속된 회원이 3만5,000명에 이르고, 19개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의 2011년 총매출이 184억원이고 고용인원은 388명이었다. “신용협동조합, 의료생협, 한살림생협, 공동육아와 생태건축 협동조합들이 네트워크에 참여해 있다. 원주에서 협동조합원이 되면 먹을거리를 사고, 아플 때 치료받고, 아이를 맡기고, 필요한 돈을 빌리는 일을 ‘네트워크’ 안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다.” 물론, ‘네트워크’ 전체를 합쳐 봐야 유럽의 작은 협동조합 1개 규모에 그치지만, 우리에게는 지난한 숙성의 단계를 밟고 있는 소중한 싹이다.

어느 정도 기업의 면모를 갖춘 국내 협동조합을 꼽으라면 단연 생협이다. 한살림과 아이쿱, 두레생협, 여성민우회생협이 5,000억원대의 매출규모를 갖췄으며, 1만5,000원 배추파동 때도 2,000원 아래의 평소 가격으로 배추를 내놓아 소비자의 신뢰를 한몸에 받기도 했다. 농민에게는 좋은 값으로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판로, 소비자에게는 무조건 믿고 살 수 있는 농산물 가게로 생협은 이미 안정적인 위상을 굳혔으며 나름의 독보적인 시장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협동조합의 심장이 뛰지 않는 농협’에 대해서는 비판의 칼을 들이댔다. “가장 나쁜 것은 협동조합의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농협은 편리할 때만 협동조합의 가면을 쓴다. 2012년에 금융사업과 경제사업(농산물 판매사업)을 분리하면서, 농협은 5조원에 상당하는 자본금 확충을 정부에서 지원받았다. 막강한 정치권 로비력을 총동원해 더 많은 정부지원을 압박했다. 그렇게 스스로 관치농협의 정체성을 붙잡으려 한다. 협동조합은 자립이 생명이다. 그래야 자율을 내세울 수 있다. 자립을 하지 않으면서 자율을 달라고 한다면, 정직하지 못할뿐더러 협동조합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농협은 ‘그들만의 리그’이다. 농협중앙회는 이미 시골의 조합원들에게는 아득히 멀고 높은 곳에 있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회원조합장들이 주인 구실을 대신할 수 있는 길은 사실상 막혀있다. 농협은 소수 거물급 조합장들과 중앙회 직원들의 좋은 직장, 정부 공무원들의 요긴한 통제장치로 전락했다. 농협중앙회장은 말만 비상근이고 명예직이지, 고액연봉과 권력을 한 손에 다 쥐고 있다.”

농협 개혁의 희망과 대안도 제시했다. “농협이 잘못한다고 농협을 버릴 수는 없다. 협동조합 없이 농업이 잘된 나라를 보지 못했다. 농협이 다시 관치로 돌아갈 수 없다면, 선택은 외통수이다. 이제부터라도 협동조합의 정체성과 원칙을 찾아야 한다. 협동조합이다!”

“농민조합원의 대리인에 불과한 농협중앙회의 기득권 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자금과 인사를 모두 틀어쥐고 하향식으로 군림하는 지금의 농업중앙회를 폐지하겠다는 결단이 요구된다. 농민조합원들이 주인임을 인식하고 주인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지배구조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 농협중앙회는 지역조합의 이익을 대변하는 연합회 조직으로 전환하고, 중앙회가 보유하고 있는 농협금융지주의 출자지분을 조합원의 소유로 돌려야 한다는 대원칙을 다시 새겨야 한다.”

 

한국의 협동조합을 상상하다

협동조합은 기업이다. 협동조합을 한다는 것은 사업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한 사람이 사업에 뛰어든다는 것은 모든 것을 던진다는 뜻이다. 월급쟁이가 사업을 하기 위해 사표를 내겠다고 하면, 일단은 말리고 본다. 협동조합기업을 하는 것은 일반 기업보다 더 어렵다. 사업목적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적 원칙이니 지역사회 기여니, 고상해 보이는 협동조합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돈을 많이 벌기만 하면 협동조합이 아니다. 또 협동조합은 ‘협동’을 해야 한다. 항상 의논해서 공동의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1인 1표 원칙이다. 두 사람이 동업을 하기도 어려운데,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모아야 하는 ‘협동’ 사업을 잘해낼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협동조합 사업을 하자면, 꼭 해야 하는 절박성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승자독식의 시장만능주의가 가장 고착화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만큼 협동조합이라는 다른 경제와 다른 기업에 거는 기대가 크다. 협동조합은 자유와 신뢰, 경제민주화, 공동선, 다양성 같은 미래의 가치와 부합한다. 고정관념의 둑은 언젠가 터지고 만다. 다만, 생소한 길이기에 그 첫걸음이 더디고 어색할 뿐이다. 언론인의 직관으로 우리 주변에서 시작 할 수 있는 행복한 협동조합의 상상도를 그려보았다.

행복한 상상 1 : 인구 10만 명마다 빵집 협동조합

커피전문점은 재벌 기업의 자식들이 뛰어들 사업이 아니다. 소상인 자영업자들의 등골을 빼먹는다. 커피전문점과 마찬가지로 빵집 사업은 협동조합 방식에 어울린다.

인구 10만의 도시마다 협동조합 빵집과 커피전문점을 세우자. 그 지역의 동네가게 주인들이 조합원이 된다. 바가지 없는 식재료 공급으로 협동조합 가맹점의 수익성을 높인다. 여러 도시의 협동조합들을 묶어, 전국 빵집협동조합 연합회를 조직한다. 협동조합 빵집과 커피전문점은 우리밀을 많이 쓰고 공정무역 커피만을 판매한다. 로컬푸드와 유기농 식재료를 사용한 신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한다.

이웃에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아파트협동조합이 있다면 더 좋겠다. 빵집에서는 아파트 주민들에게 할인혜택을 주고 주민들은 그 빵집의 단골이 된다.

행복한 상상 2 : 협동조합 치킨집의 경쟁력

기존 프랜차이즈 가맹점 매출의 20~30%는 본사로 빠져나간다. 그래서 가맹점주들은 늘 불만이다. 대기업인 본사에 뜯긴다고 생각한다. 공급받는 식재료 값이 비싸고, 본사에서 정해주는 인테리어 비용도 터무늬없다.

모든 프랜차이즈 사업이 협동조합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취급 품목이 단순해야 한다. 그래야 공동구매 곧 협동의 힘을 극대화할 수 있다. 사업 내용이 지역사회 기여라는 가치에 부합하면 더 좋다.

치킨집이 딱 맞다. 동네 치킨집들이 지역 단위로 공동출자해 뭉치면 된다. 브랜드 관리와 마케팅, 구매업무를 전담하는 협동조합기업을 세우는 것이다. 일관된 로컬푸드 원칙을 세운다. 가까운 지역 도계장에서 닭을 공급받고, 소스에 들어가는 마늘, 양파, 고춧가루를 모두 가까운 농협이나 농촌에서 공급받는다. 콜라 대신 식혜나 수정과를 제공하는 것도 아이디어이다.

행복한 상상 3 : 원순 씨는 아파트협동조합 이사장

박원순 서울시장은 협동조합 찬양자이다. 박 시장의 10년 뒤 모습을 상상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주민들과 함께 협동조합을 결성하고, 서울시내 아파트협동조합들의 전체 연합회를 구성해 이사장을 맡으면 어울릴 것 같다.

아파트의 입주자대표자회의가 1인 1표의 민주적 방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긍정적인 점에 주목하자. 기초공동체 단위로 작동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협동조합을 결성하면 무엇이 달라지나? 우선 관리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

아파트라는 생활공간을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은 무궁무진하다. 집 안의 화장실이나 전등 등의 작은 수리를 도맡아 처리하는 홈서비스 사업은 아파트협동조합이 하기에 딱 맞는 사업이다. 단지 내 장터 개설이나 재활용수거업체 선정 과정에서 상당한 이권이 발생한다. 협동조합은 그러한 이권을 훨씬 공정하고 유익하게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행복한 상상 4 : 도시 바꾸는 아파트협동조합

앞으로 더 나가자. 텃밭 관리를 하는 노인들이 의기투합해 어르신 협동조합을 설립한다. 근처 학교와 관공서를 찾아가 자투리 텃밭 공간을 확보하고, 가장 안전한 유기농산물을 생산한다. 동네 생협에 판매를 맡기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을 것이다.

아파트 내 택배사업에 뛰어들 수도 있다. 동네 어르신이 직접 물건을 배달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택배회사 입장에서는 추가 비용 들이지 않고 고객만족도 높일 수 있는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부녀회를 생협조직으로 전환한다. 관리사무소의 공간을 활용하거나 상가의 가게를 임대하면 된다. 2,000가구 아파트에서 가구당 3만원씩 출자한다면, 금세 6,000만원의 뭉칫돈이 모아진다. 생협사업이 활성화하면, 어린이집과 유치원 사업으로 판을 키운다.

아파트협동조합은 핵폭탄급 위력을 발휘한다. 여러 아파트협동조합들이 함께 모여 서울시내 아파트협동조합 연합회, 또 전국 연합회까지 결성한다고 생각해보라. 공동체를 살리고 생활민주주의를 싹 틔우는 건강한 토양이 될 것이다.

행복한 상상 5 : 마을버스는 협동조합 사업

마을버스는 서민의 발이다. 그런데 버스사업자는 노선만 잘 잡으면 손쉽게 큰돈을 번다. 서울의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에서 서울대 후문으로 들어가는 마을버스를 보자. 언제나 만원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황금알 낳는 마을버스 독점 노선을 영리사업자가 운영하는 것이 정당한가?

정부가 독점의 폐해를 바로잡지 않으면, 방법은 하나다. 주민들의 자력으로 마을버스 협동조합기업을 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버스사업자 한 사람이 손쉽게 챙겨가던 목돈을 주민들에게 고루 나누자. 협동조합에 출자한 조합원들에게 100원 할인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 연말에 잉여금이 발생하면 또 조합원들에게 배당한다.

서울시는 주민들의 협동조합이 마을버스 사업의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할 것이다. 협동조합은 지역사회 공헌 프로그램 등으로 좋은 평가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행복한 상상 6 : 이동통신소비자협동조합의 힘

2011년 4월, 인천시민들이 통신소비자생활협동조합을 세우겠다고 90명의 발기인을 모집했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첫째, 단말기 가격과 통신요금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것, 둘째, 소비자가 거대기업과 일대일로 계약하는 상황을 바꿔야 한다는 것, 두 가지이다. 협동조합 설립이 그 대안이다. 전국에서 100만 명의 조합원만 모집한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본다. 직접 통신사업에 뛰어들어 요금을 떨어뜨리고, 20만원대의 단말기를 개발하도록 제조회사를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이동통신 소비자들의 동질성이 높고 독과점가격에 대한 불만이 높기 때문에, 이런 협동조합의 성공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대학생들이 이동통신소비자협동조합을 설립해, 대학 구내에 이동통신 대리점을 운영한다는 아이디어도 현실성이 엿보인다. 전국의 대학생 300만 명이 협동조합으로 단결한다면 SKT와 삼성전자도 무릎을 꿇을 것이다.

행복한 상상 7 : 웨딩사업이 대학생협동조합?

상조사업 자체가 독점은 아니지만, 상조서비스 가격은 독점의 성격을 띠고 있다. 평생 한두 번 거래가 이뤄지는 데다 장례의 엄숙함 때문에 소비자가 가격의 적정성을 따지기는 어렵다. 따라서 가격정보의 비대칭이 극심하다.

웨딩사업의 성격이 상조사업을 꼭 닮았다. 가격 횡포가 이만저만 아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나면 다시 얼굴 볼 일이 없기 때문이다. 손쉽게 바가지를 씌우고 신랑신부는 그런 줄 알면서도 대충 넘어간다.

미래를 준비하는 대학생들이 모여 웨딩사업협동조합을 세워보자. 이동통신소비자협동조합이 이미 결성돼 있다면, 새 협동조합 만들기가 한결 수월할 것이다. 조합원들은 상조회비를 납입하듯이 결혼 때까지 매달 얼마씩 부어나가면 된다. 결혼하면 자동탈퇴가 된다. 촬영과 드레스 대여 같은 부대사업으로 시작했다가, 조합원이 많아지면 직접 예식 공간을 임대하거나 인수할 수 있을 것이다.

행복한 상상 8 : 출판인들의 노동자협동조합

영세 출판사는 사무실 임대료 내기가 벅차다. 이름이 없으니 신간을 발행해도 신문 서평란에 잘 실리지 않는다. 유통과 광고에도 힘을 쏟을 수가 없다. 대박 한건 터질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천수답’ 사업이다.

10명의 출판인들이 모여 출판노동자협동조합을 설립한다. 모두 1,000만 원씩 똑같은 금액을 출자한다. 공동으로 사무실 공간을 마련하고, 서점 유통을 전담할 직원도 1명 채용한다.

출판처럼 동질성이 높은 지식산업은 노동자협동조합을 세우기에 아주 적합하다. 뜻을 모으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설계사와 건축사는 건축노동자협동조합을, 미술관과 박물관 큐레이터도 그들의 노동자협동조합을 세우면 된다. 택배기사와 대리운전기사들은 노동자협동조합을 세우거나, 아니면 개인사업자의 지위로 사업자협동조합을 세울 수도 있다. 홍대의 가난한 인디밴드나 가수들은 음악인협동조합을 결성해, 공동으로 음원 출원과 음반 판매사업을 벌일 수 있다.

행복한 상상 9 : 주식회사에서 협동조합으로

지역농업네트워크라는 농업컨설팅 회사가 있다. 2001년에 최초 발기인 8명이 똑같이 420여 만원씩을 출자해 설립자본금 5,000만원의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법 근거가 없어 주식회사의 틀을 빌렸지만, 언제나 노동자협동조합임을 자부했다. 40여 명의 직원들도 모두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협동조합의 가치가 희미해졌다. 증자 때마다 ‘가난한’ 주주들의 실권이 이어졌고, 3명의 주주에게 60% 이상의 지분이 집중됐다. 주주총회가 유명무실해지고, 직원들도 ‘말로만 협동조합’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지역농업네트워크는 올해 초 주주총회에서 노동자협동조합으로 전환하기로 의결했다.

‘화평동 왕냉면’ 브랜드를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기업 해피브릿지도 노동자협동조합 전환 방침을 확정지었다. 2012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는 대로 협동조합 등록을 마친다는 방침이다. 해피브릿지는 주식회사이지만 실질적인 노동자자주기업으로 운영돼왔다.

행복한 상상 10 : 대안학교 그리고 농촌학원

대안학교가 협동조합의 법인격을 취득하면 재산의 사유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로 인한 불필요한 갈등의 소지를 없앨 수 있다. 학교의 모든 재산이 협동조합법인에 귀속되기 때문이다. 사회적협동조합으로 등록하면 기부금도 받을 수 있다.

농촌의 교육은 도시 이상으로 심각하다. 도시에서는 사교육의 과잉이 문제라면, 농촌에서는 사교육의 부족이 문제이다. 농민들이 도시로 떠나는 이유도, 귀농자들이 다시 도시로 유턴하는 이유도, 첫번째가 나쁜 교육 여건이다. 농촌에서 협동조합 학원을 운영해보면 어떤가? 건강한 사교육 공간을 농촌의 중고생들에게 제공하자. 학부모들의 출자를 받아 학원교육소비자협동조합을 설립하는 상상을 해본다. 취지를 잘 설명하면 마을회관이나 농협 건물의 여유 공간, 또는 학교 건물을 무료로 빌릴 수 있을 것이다. 강사로는 그 지역 출신자나 근처의 대학생을 고용한다.

 

두 가지 경쟁

이탈리아 볼로냐대학의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의 말이다. “경쟁에는 두 가지가 있다. 지위경쟁(positional competition)과 경쟁적 협력(competitive cooperation)이다.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이 왜 행복하지 않은가? 경쟁이 너무 심하고 ‘너 죽고 나 살기’ 식의 지위경쟁에 매몰돼 있다. 그런 경쟁은 단기적으로는 괜찮을 수 있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번에는 내가 도와줄 테니 네가 하고, 다음에는 내가 하자’, 이런 식으로 협력하면서 경쟁하면 더 나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어떤 것을 선택하겠나? 서로 도와가면서 행복하게 살지 않겠나?”


김현대 ― 〈한겨레〉 선임기자. 한국농업기자포럼 대표. 이 글은 필자가 세계의 다양하고 활발한 협동조합 사례들을 취재하여 최근 펴낸 책 《협동조합, 참 좋다》(공저)(푸른지식, 2012년)를 요약 소개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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