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제123호 2012년 3-4월호  인쇄용  

 

  누구를 위한 송전탑인가

  이승희

 

결국, 밀양 땅에서 한 사람이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운동권에 있던 사람도 아니고, 혈기 왕성한 젊은이도 아니고, KBS 9시뉴스가 세상의 진실인 줄 알고 살았던 일흔넷 노인이었다. “오늘 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되겠다”는 할아버지의 한마디 말은 그대로 절절한 유언이 되었다. 7년째 이어오던 송전탑 반대투쟁 끝에 급기야 산꼭대기 공사현장에 새벽부터 저녁까지 오르내리며 맨몸으로 공사 막기를 두달 반. 그러다가 마침내 또다른 철탑부지로 정해진 자신의 논에 중장비가 들어오고, 아무 사정없는 젊은 용역들에게 하루 종일 시달렸는데 내일 또 온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가지게 되는 절망의 깊이가 어디까지일지 상상해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날 저녁 이치우 할아버지는 마을회관 앞에서 온몸에 기름을 부었다. 그리고 자신의 논 가까이 가서 라이터불을 붙이고 말았다. ‘펑’ 소리와 함께 기름에 푹 젖은 옷은 순식간에 타올랐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달려들어 불을 끄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돌아가시고 말았다.

이치우 할아버지는 보라마을에서 이장을 15년 넘게 하면서 일을 바르게 잘해 인심이 두터웠다. 특히 형제 간에 우애가 깊어 다른 마을 사람들도 알아줄 정도였다. 말 그대로 ‘의좋은 형제’였다. 아흔이 넘은 어머니를 잘 모시려면 자신이 건강해야 한다며 새벽 4시면 일어나 1시간씩 마을길을 걸으며 운동을 해왔다. 102번 철탑이 들어설 자리는 이치우 할아버지 삼형제 논 한가운데다. 철탑은 동생 이상우 할아버지 논에 들어서게 계획되어 있는데 시가 4억5,000만원 하는 1,800평 중에, 철탑부지 150평과 전선이 지나가는 자리 400평만 감정가로 계산해 보상금이 7,200만원이다. 그 논과 붙어있는 또다른 동생 이장우 할아버지 논 600평은 시가 1억5,000만원인데 선하지 보상금이 1,500만원이다. 또다른 쪽 옆에 있는 이치우 할아버지 논 370평은 시가가 9,000만원인데 보상금은 0원이다. 철탑과는 겨우 80m 떨어져 있어 팔리지도 않는 땅이다.

이렇듯 일흔 넘은 노인들이 전 재산을 그대로 빼앗길 형편이다. 이게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인가? 사람이라면 이래 놓고 법대로 했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설 수 있는가? 국민 기본권조차 무시한 법을 앞세우고 대책은 하나도 없이 밀어붙이는 이 국가폭력 앞에서 아무 힘 없는 주민이 저항할 수 있는 것은 몸뚱이 하나뿐이다. 주민을 설득시키지 못한 채 ‘국책사업’이라는 이름표만 단 송전선로 건설사업은 주민들의 삶을 통째로 짓밟고 있다.

 

필요없는 765kv 송전선

우리나라는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66kv와 154kv 송전선로를 사용하였고, 1976년 들어서 처음으로 345kv 송전선로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1999년 들어서는 초고압 765kv 송전선로를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송전전압을 높이게 되자 송전용량은 늘고 전력손실은 줄어 한전은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챙겼다. 반면에 송전선로 주변 지역의 자연환경은 더 많이 파괴되었고, 주민들의 막대한 재산피해와, 초고압 송전선에서 발생하는 전자파에 대한 불안감도 더욱 커지게 되었다. 하지만 한전은 그동안 송전전압만 계속 높여왔을 뿐 주변 지역주민들의 보호대책은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송전선로 갈등 문제가 갈수록 많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765kv 송전선로는 대용량의 전력(154kv 송전선로의 약 18배, 345kv 송전선로의 약 5배 전력 수송)을 장거리인 수도권까지 보내는 것이 목적이다. 2005년 8월 주민설명회에서 한전은 765kv를 통해 수도권으로 전력을 공급한다고 했다. 그러다가 2009년 밀양시민연대와의 간담회에서 “765kv 송전선로는 영남지역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건설하는 것으로서 수도권으로 보낼 계획은 없다”고 말을 바꾸었다. 수도권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영남지역이 피해를 봐야 하는 부당함을 주민들이 파고들자 임기응변으로 계획을 바꾼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정말 영남권에만 보낼 것이라면 영남지역 전력자립도는 190%를 넘는 실정이라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1~6호기는 과잉설비로 개발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또한 신고리에서 북경남까지는 장거리가 아니니 765kv(1만4,500MW 송전능력)가 아니라 154kv(900MW 송전능력)나 345kv 송전선로(4,300MW 송전능력)가 필요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또 말을 바꿔 영남권이 아니라 대구권으로 모두 보낸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동발전소에서 대구권으로 들여오던 전력량을 대폭 줄이고, 중부권으로 1,400MW의 전력을 보내도록 만든 전력 흐름도를 내놓았다. 2022년까지 대구권에 필요한 전력수요 증가량은 넉넉잡아 807~1,250MW. 이런 곳에 7,600MW나 되는 전기를 보낸다니. 이것은 사실이 아니거나 사실이라면 이것 또한 과잉공급이다. 그리고 하동 화력발전소에서 잘 활용하고 있던 345kv 송전선로를 포기하면서까지 새로운 765kv 송전선로를 건설하려는 한전의 주장은 상식에 비춰도 타당성이 없다.

한 나라의 장기적 전력배분계획이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이리저리 바뀌어도 되는 것인지. 근본을 따지고 드는 주민들을 설득할 원칙이나 논리는 조금도 없고, 이 길이 막히면 저 길, 저 길이 막히면 다시 다른 길로 가려는 꼴이다. 정말로 북경남까지만 보내느냐고 따지는 주민들에게 갈등조정위원회 한전 간부는 “전기는 어떻게든 흐르게 되어있지요”라는 애매모호한 말을 남겼다. 만약 공익을 위해 765kv 송전선로가 반드시 필요하다면, 주민들로서는 억울한 마음은 들지만 정당한 보상을 받고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동안 갈등조정위원회를 통해 밝혀진 사실을 살펴보면 765kv 송전선로는 굳이 건설할 필요가 없으며, 한전은 꼭 필요하지 않은 사업을 억지로 추진하려고 하니 말을 바꿔가며 지역주민들을 속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사업 필요성 못지않게 정부와 한전이 주민을 몰아붙이는 단골 명분이 ‘시급성’이다. “이번 사업은 원자력발전소 건설과 맞물려 불가피하게 시행해야 하는 사업으로, 반드시 2010년 12월까지 공사를 끝마쳐야 한다”(〈전력경제〉 2008.8.11.), “765kv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의 건설이 지연되면 대체 송전선로가 없으므로 하루에 28억원의 막대한 국가적 손실이 발생한다(2008년 765kv 건설공사 추진계획서)는 협박성 발언을 수도 없이 들었다. 하지만 밀양 주민들의 반대로 공사가 진행되지 못하자 주민들 몰래 신고리원전 1호기에서 만든 전기를 보내고 있었다. “765kv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가 건설되지 않아도 기존의 345kv 송전선로를 이용하여 신고리원전 1,2호기의 발전력을 수송하겠다.”(2010.8.26. 한전 보도자료) 당초 신고리원전에서 만든 전력을 765kv 송전선로로 공급할 계획이었으나, 765kv 송전선로 건설이 차질을 빚자 고리원전의 345kv 송전선로로 보내 공급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당초 신고리 1,2호기의 발전력을 송전하겠다는 계획을 신고리 3,4호기(각각 2013년, 2014년 말 준공)로 변경했다”(〈부산일보〉 2010.6.9.)는 보도처럼 신고리 1,2호기의 발전력을 765kv 송전선로로 보내겠다는 계획을 바꾸어 신고리 1,2호기의 발전력은 기존의 345kv 송전선로를 통해 보내고, 신고리 3,4호기 발전력만 765kv 송전선로로 보내겠다는 것이다.

대체할 송전선로가 없다느니 송전탑 세우는 게 늦어지면 하루 28억원씩 손실을 본다고 주민들을 윽박지르더니, 이제는 “신고리―고리 간 연결 송전선로를 만들어 신고리 1,2호기 발전력 수송에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볼 때, 신고리 3,4호기 때문에 765kv 송전탑 건설이 급하다는 말도 당연히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한전이 어떤 이유를 들어 ‘사업의 시급성’을 주장하더라도 이제는 아무도 믿지 않게 되었다. 주민들은 신고리원전 1,2호기처럼, 신고리원전 3,4호기의 발전력도 이미 세워진 345kv 송전선로 전선을 ‘증용량 전선’으로 교체하면 ‘우회 송전’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물론 3,4호기를 증용량 전선으로 보내려면 선종 교체에 따른 문제점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문제점은 한전이 해결해야 할 몫이지 안된다는 이유는 안된다. 한전은 언제나 이런 식이다. 주민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기는커녕 있는 사실조차 숨기기 바쁘고 왜곡시키려 한다.

이제 남은 문제는 신고리원전 5,6호기. 한전은 이것을 염두에 두고 송전탑을 세우려는 것이다. 그러니 송전탑은 핵발전소에서 뻗어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5,6호기는 아직 승인이 나지 않았고, 영남권이나 대구권에는 5,6호기 없어도 전력이 충분하다. 따라서 신고리원전 5,6호기는 세울 필요가 없고 그러면 765kv 송전탑도 저절로 없어진다. 한전 간부도 국회의원 앞에서 분명하게 말했다. 신고리원전 5,6호기 없으면 765kv 송전선 필요없다고. 우리가 핵발전소를 막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또하나, 초전도케이블이라는 대안이 있다. 초전도케이블은 환경파괴나 전자파 피해가 전혀 없고, 많은 전력을 멀리 보내도 전력손실이 없어 ‘꿈의 전선’이라 불리는 것이다. 2011년 3월에 이미 한전과 LS전선은 원자력발전소 1기에 맞먹는 전력을 보낼 수 있는 154kv 1GVA급 초전도케이블 개발을 끝냈고, 2016년이면 미국으로 수출할 계획이라고 한다. 마침 올해 함양―울산 간 고속도로 공사가 시작될 예정인데 그 공사 때 초전도케이블을 넣을 관로를 미리 함께 묻는 방법도 있다. 그렇게 한다면 비용을 좀더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불법으로 이어진 사업 추진

한전은 2000년 10월에 이 사업을 계획하고, 2001년 1월 4일에 경유지 선정에 들어갔다. 한전 계획대로라면 밀양에는 5개 면에 평균 높이 100m인 송전탑 69기가 500~600m 간격으로 세워진다. 그런데 송전선로 경유지를 선정하면서 신고리에서 변전소 예정부지인 창녕까지 직선코스로 가지 않고 이리저리 방향을 틀었다. 나중에 이를 알게 된 주민들이 마을을 피해 돌아가달라고 하자 돌아가기 위해 철탑을 더 세우면 돈이 더 들어 안된다고 대답했다. 한전 입맛에 맞게 꼬불꼬불 돌아가면서 돈을 쓰는 것은 괜찮고, 사람 사는 마을을 피해 돌아가라는 요구에는 돈이 많이 들어 안된다고 하는 이 이상한 경제논리에 누가 수긍할 수 있을까?

그 후 2005년 11월에 산자부에 승인 신청을 하기까지 한전은 한 번도 주민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다. 우리 상동면만 해도 2005년 8월에 면사무소에서 송전선로 경유지 마을 이장을 중심으로 주민 38명(당시 상동면 인구 3,536명) 모아놓고 홍보와 다름없는 설명회를 여는 게 처음이었다. 이런 중요한 사업은 마을마다 공고문을 붙여 주민들에게 알리고 선정 과정에 주민 의견을 듣고 모아서 참고하는 것이 마땅하고, 사업설명회도 참석 여부와 상관없이 주민 전체에게 내용을 알려야 하는데, 주민들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우리 마을 이장도 마을 간부 몇 사람과 주민설명회에 참석했지만 전혀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 그저 흔히 보는 철탑 몇개 들어서는 것쯤으로 여겼다.

우리 여수마을에는 철탑 6개가 동―남―서 방향으로 주욱 이어지게 계획된 것을 우연히 알게 된 주민들은 ‘송전탑 건설 저지 여수마을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정부와 언론사에 민원을 내는 일을 시작했다.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한전 밀양 지사 앞에 가서 반대집회도 열었다. 추운 겨울날, 마을 노인들이 머리띠를 두르고 한전 지사 앞 차가운 시멘트바닥에 앉아 낯선 구호를 서툴게 외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날 저녁, 주민들은 마을회관에서 저녁밥을 함께 먹으며 “할매들이 출세했다, 데모도 다 해보고” 이렇게 웃으며 서로를 위로했다. 그때 누가 알았을까, 이 싸움이 이토록 힘들고 오래갈 줄을. 정부가 승인하고 거대자본이 추진하는 사업에 감히 맞서는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걸. 그걸 알았더라면 그렇게 순진하게 시작할 수 있었을까? 한전은 여수마을이 반대운동을 벌이자 그때서야 주민설명회를 하겠다면서 찾아와서, “철탑이 마을에서 700~800m 떨어져 있으니 전자파 문제는 없다, 조망권이 문제라면 철탑을 하늘색으로 칠해서 눈에 덜 거슬리게 해주겠다, 이 마을 처지를 생각해 앞산 뒤로 돌아간다면 경부선 KTX 열차에서 많이 보여 안된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고개만 들면 앞산이 코앞에 덩그렇게 마주하는 이 산골마을에서 수치로만 나타나는 700~800m는 얼마나 우스운 숫자놀음인지, 하늘색 페인트를 칠하면 주민들이 하늘과 철탑을 구분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참 어이가 없다.

그 뒤로 이 싸움은 밀양 전체와 변전소가 들어설 창녕으로 번져나갔다. ‘밀양―창녕 공동대책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창녕과 밀양 5개 면이 힘을 합치게 되었다. 하지만 2007년 11월 당시 산업자원부는 결국 이 사업을 승인하고 말았다. 승인 나기 전, 국민고충위원회는 우리가 보낸 민원에 대해 “승인이 나지 않은 사업에 대해 관할할 수 없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승인 나기 전에 사업의 부당성이나 위법성을 알아봐야 할 텐데, 승인 결과를 기다려보란다. 이런 책상머리 발상 앞에서 그저 말문이 막힐 뿐이다.

밀양―창녕 공동대책위원회는 ‘국토를 사랑하는 범밀양시민연대’로 바뀌어 새출발하면서 ‘갈등조정위원회’를 제안하게 된다. 문서나 간담회 형식으로는 언제나 정해진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한전과 대화를 할 수가 없어, 책상 놓고 서로 마주 앉아 갈등의 원인과 해결방법을 제대로 따져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6개월 동안 갈등조정위원회가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갈등조정위원회가 열리는 기간 내내 한전은 시간 때우기 식 태도로 불성실하게 응했다. 내놓는 자료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억지 끼워맞추기 식이었고, 주민들이 그 허구를 철저하게 파헤치면 다음 회의에 다른 거짓을 가져와 메꾸는 식이었다. 한전은 사석에서 주민들이 어떻게 이렇게 많이 알고 있느냐며, 한전 고문으로 모셔도 되겠다며 혀를 내둘렀다. 뿐만 아니라 한전은 주민들이 요구하는 자료는 문서가 없다며 버텼다. 공기업으로서 문서기록이나 보관이 그렇게 허술할 수가 없었다. 더이상 둘러댈 수 없는 막다른 지점에서 주민과 약속을 하면, 그 약속은 절대 문서로 남기지 않으려 했다. 약속은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회의 때마다 번번이 판정패하고도 갈등조정위원회가 끝나자마자 한전은 마치 통과의례를 마친 듯 공사를 시작하려고 했다. 사업의 필요성, 재산권 피해, 전자파 피해 같은 항목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그나마 보상이 미흡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하여 ‘제도개선위원회’를 두고 합리적인 보상방법을 찾기로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또 서로 갈라지는 것이, 한전은 공사가 시급하니 공사를 하면서 제도개선위원회를 이어가자고 하고, 주민은 적절한 보상방법을 마련한 다음 공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적절한 수준으로 보상한다면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은 뻔한 일인데, 공사 다 마치고 과연 보상을 제대로 이행할 한전인가? 더구나 한전 직원은 공사를 막는 주민들에게 제도개선은 절대 안되는 일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 이렇게 맞서던 중에 ‘국익’을 등에 업은 한전은 공사를 시작하겠다며 달려들었고, 힘없는 주민들은 맨몸으로 막는 수순에 다다르고 말았다.

 

주민을 희생양으로 한 국책사업

밀양시 단장면 사연리 주민 양아무개(75세)씨는 30년 전 경사가 심해 버려진 산을 샀다. 부부는 내 땅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 괭이로 땅을 파고 돌을 골라내며 톱과 낫으로 잡목을 걷어내어 거기에 밤나무 묘목을 심었다. 거기서 나온 밤을 팔아 버는 돈은 1년에 700~800만원. 다른 수입 없이 그 돈으로 먹고사는데 그 주변에 97번 철탑이 설 계획이고 그 땅 위로 전선이 지나갈 형편이다. 한전은 이 부부에게 보상금 154만원을 찾아가라고 연락했다. 한전은 철탑부지만 보상하고, 철탑부지 둘레에 있는 토지에 대하여는 단 한 푼도 보상하지 않는다. 송전선 근처 땅이나 집을 사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려고 해도 담보로 써주지를 않는다. 손톱이 뭉그러지게 일구어낸 자식 같은 땅. 값을 제대로 받고 팔아도 속이 쓰릴 판인데 한전은 겨우 154만원 주고 빼앗아가려고 한다. 이것은 주민들의 재산으로 사업을 하겠다는 것과 똑같다. 법대로 한다고 한전은 늘 말하지만 이것이야말로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한 헌법을 어기는 것이다.

서민들 재산이 대개 그렇듯, 농촌사람들 재산도 평생 땀흘려 일해 모은 것이다. 논과 밭은 직장이기도 하고 퇴직금이자 보험금이다. 그런데 이런 생존 토대를 제대로 보상하지 않고 망가뜨리며 국책사업을 하겠다는 게 정부와 한전이다. 교통 불편하고 문화시설 빈약해도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던 마을, 적게 벌고 적게 먹어도 마음 편하고 따뜻하게 살아가는 농민들에게서 초고압 송전선로는 갑자기 들이닥친 쓰나미마냥 모든 것을 앗아가게 생겼다. 나라에서 하는 일이면 그저 다 옳은 줄 알고 살던 주민들이 송전탑 건설반대를 외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한전의 답변은 녹음기처럼 똑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송전선로 건설사업과 관련하여 심려 끼쳐드린 점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하오며, 송전선로 건설사업은 국가공익사업임을 감안하시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넓은 이해와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지식경제부와 한전은 “초고압 송전선로를 833mG 이하로 안전하게 건설하겠다”, “송전선로 주변의 전자파는 833mG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말한다. 밀양시 단장면 사연마을 재판에서 “환경영향평가 때 833mG 기준을 적용한다”는 증인 안아무개 박사(서울대학교 기초전력연구원 책임연구원)의 증언이다.

재판장 “지금 전기설비기술 기준이 제시하고 있는 833mG는 실생활에서는 어떤 전자방출 물체가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 방출하는 전자파 정도인가요.”

증인 “저희가 현재 수행하는 국가기획과제에서 실제 345kv 송전선로에 계측기를 갖고 올라간 적이 있는데, 약 30m 떨어진 지점에서 재보니까 약 500mG가 나왔습니다. 일반인은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수치입니다.”

재판장 “전기설비기술기준에서 마련한 기준이 833mG이고, 그것이 일반인이 거의 접할 수 없는 기준이라면 그런 기준을 채택한 의미가 있나요? 그렇다면 그 기준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요?”

증인 “일반인들이 접할 수 없다고 해도 기준이 없는 것보다는 어느 수치라도 있는 것이 낫다고 봤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기준(833mG)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던 판사가 정작 판결은 “자계강도(833mG)를 초과하지 않는 이상, 이 사건 경과지 선정이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고 내렸다. 우리나라 전기설비기술기준에서 마련한 전자파 기준은 833mG인데, 이 기준은 단기간 고노출에 적용되는 국제비전리방사선보호위원회(ICNIRP)의 가이드라인인 833mG를 가져와 정한 것이다. 국제암기구(IARC)와 세계보건기구(WHO)가 발암 가능물질로 분류한 자계기준 3~4mG에 견주면 833mG는 그야말로 아주 잠깐이라도 노출되어서는 안되는 수치라서 기준으로서 의미가 전혀 없다. 한전 주장은 833mG만 넘지 않으면 24시간, 1년 내내, 평생 동안 노출되어도 인체에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살인적인 833mG만 들이대면 한전은 아무리 높은 송전전압이라도 어디로든 보낼 수 있는 무한정 권한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한전은 주민들이 송전선로의 전자파에 대하여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지만, 송전선로의 전자파는 일반 가전제품의 전자파보다 적거나 같은 수준이기 때문에 안심해도 좋다고 말한다. 주민들의 민원 답변서에도 765kv 송전선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휴대전화나 헤어드라이어보다 낮다고 말했다. 가전제품에서 나오는 전자파는 그 물건과의 거리, 또 자주 쓰는 정도에 따라 그 영향을 줄일 수 있지만, 집과 논밭을 주로 오가며 생활하는 농촌에서는 1년 365일 내내, 아니 평생을 전자파 아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단순 비교해서 안심하라고 하는 것은 주민들을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쟁이로 얕잡아보는 행태다. 고압 송전선로의 전자파는 일반 가전제품과 달리 거리가 벌어져도 줄어드는 양이 아주 적은 특성이 있어 먼 거리에서도 상당히 높게 나타난다.

 

살인적 송전방식을 바꿀 역사적 기회

그동안 주민들은 너무나 외로웠다. 세상의 무관심 속에 싸움은 지루하게 이어지고, 싸움의 중심에 선 사람들은 일상생활과 몸이 거의 망가졌다. 합의 보고 끝내자며 포기하는 사람이 생겨나고, 그들을 설득하는 일도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대책위 사람들은 말한다. 한전과 싸우는 것보다 공무원들 설득하는 게 더 힘들고,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주민들 마음을 한데 모으는 것이라고. 한전은 끊임없이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그래봤자 소용없다는 패배의식을 심었다. 끝 모를 싸움으로 지칠 대로 지친 주민들에게 한전 직원의 한마디는 그대로 가슴을 파고들었다. 거기다 공사방해 손해배상을 청구하여 주민들을 겁주었다. 보통 손배소에 다 무너지는데 밀양은 신기하다고 한전 스스로 말할 정도였다. 마을마다 다니며 마을과 마을을 이간질하기도 한다. 다른 마을은 합의 보기로 했다는 둥, 빨리 합의하지 않으면 합의금이 적다는 둥. 허울뿐인 마을발전기금을 마치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것처럼 말하고 다녔다. 그게 한전이 50년 동안 익힌 사업추진 전략이다. 그런 방법으로 마을주민의 저항을 무너뜨리며 지금까지 전력계통사업을 해오고 있다. 약자로서, 불안하고 두려운 주민들은 그런 속임수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 밀양시의 외면 속에 주민들이 이만큼 버텨온 것이 기적이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 마음을 모아가며 단식투쟁을 하고, 여름 땡볕 아래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 앞 담벼락 밑에서 노숙투쟁도 하며 지금까지 버텨왔다. 그것으로 모자랐을까? 결국 분신 자결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어쩌다 지역 언론에 이곳 사정이 기사로 나가면 어김없이 “그 동네는 전기 안 쓰나?” 같은 냉소 담긴 댓글이 따라 붙고, 다른 곳에 사는 지인들은 가끔 전화로 “그거 아직도 안 끝났나?” 물어왔다. 세상은 전력예비율을 따지며 생산량에만 관심을 가질 뿐, 그 전기가 수백km를 지나면서 얼마나 많은 곳을 폐허로 만들어버리는지 알려 하지 않았다. 우리 마을만은 안된다는 지역이기주의가 아니다. 765kv 송전사업 자체가 필요없는 것이라고, 속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라고 외쳐도 사람들은 보상금 더 받으려는 속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보상체계의 실상을 알게 되면 그런 말도 못할 것이다. 설사 정당한 보상을 받는다 하더라도 날마다 아파트 40~60층 높이의 초고압 송전탑을 바라보며 살기란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다. 정부와 한전은 대도시의 편리와 안락을 위해 전기를 무한정 공급하기만 할 뿐, 언제 한번 발전과 송전 과정에 있는 주민들이 겪는 치명적 위험과 희생을 국민들에게 있는 그대로 알린 적이 있던가? 물 쓰듯 펑펑 낭비하는 국민들에게 전기를 아껴 쓰자고 진정으로 말한 적이 있었던가?

이제 바깥에서 더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게 되자 할아버지, 할머니들 스스로 희망을 만들려 나섰다. 고질병 무릎관절과 허리 통증을 견디며 공사현장을 지켰다. 추운 겨울날 이른 아침마다 똑같은 모자, 똑같은 마스크, 똑같은 윗옷을 입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아직도 어둠에 싸인 산길을 기어올라갔다. 점심때 먹을 밥과 김치, 따뜻한 물이 든 보온병을 등에 매고서. 공사인부들보다 먼저 현장에 닿은 열댓 명 노인들은 불을 피우고 앉아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공사인부들을 기다린다. 엔진톱 들고 나타나면 그때부터 긴장이다. 말을 하면 사진 찍기는 물론, 목소리까지 녹음해 공사방해로 고발하기 때문에 말없이 나무 베는 톱이나 굴삭기 앞에 가서 선다. 한전은 주민 116명을 공사방해로 고소·고발하였다. 점심은 김치에 찬밥을 보온병 물에 말아 먹는다. 공사인부들이 안 나타나는 날도 있지만 주민들은 날마다 오후 5시까지 지키다가 내려온다. 내려올 때는 배낭에 넣어온 비료포대를 꺼내 엉덩이에 깔고 살살 미끄러지면서 내려온다. 여수마을 주민들 모습이다. 다른 마을에 견주면 우리 마을 공사현장은 덜 치열했던 편이다.

부북면 위양리 화악산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철탑 설 자리 바로 밑에 아예 움막을 지었다. 3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노인들이 천막 하나에 의지해 밤낮을 교대로 24시간을 지켰다. 공사인부들에게 시달리고, 추위에 시달리느라 안 아픈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가 움막에 온돌을 놓았다. 불 지필 나무는 얼마든지 있으니 이제 추위 걱정은 안해서 좋았다. 어두우면 촛불 켜고, 물은 말통에 실어와 쓰면서 그곳에서 먹고 자고 버텼다. 공사인부들은 점점 노인들을 데리고 놀다시피 했다. 할머니들이 베려는 나무에 먼저 가서 나무를 끌어안으면 인부들은 다른 나무로 가서 엔진톱을 들이대면서 할머니들을 보며 “워리, 워리!” 하고 강아지 부르듯 놀려댔다. 할머니가 넘어지면 그 자리에 바로 불을 놓아 태우면 되겠다며 낄낄거렸다. 지난해 11월 25일, 윤여림 할아버지는 소나무를 베지 못하게 막다가 엔진톱에 다리를 잘릴 뻔하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몸으로 막으니 엔진톱을 할아버지 몸에 갖다 대는 바람에 솜바지가 떨어져나갔다. 조금만 더 깊이 들어왔으면 다리가 잘렸을 위험한 순간이었다.

산외면에서는 더 위험한 사고가 있었다. 지난해 11월 10일 산외면 희곡리 108호 송전탑 현장에서 약산사 법성 스님이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듣고 성폭력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공사장에서 주민들과 인부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고, 이 스님도 나무 베는 것을 막는 과정에서 공사인부 3명이 합세해 스님이 얼굴을 가리기 위해 쓰고 있던 모자를 억지로 벗기려다가 스님을 쓰러뜨리고 입에 담지 못할 성 폭언과 폭력을 가했다. 음부를 주먹으로 치기도 하고 발로 짓밟기도 했다. 곁에 있던 할머니들이 그런 심한 욕은 처음 듣는다며 통곡했다. 스님은 지금까지도 교정치료를 받고 있고, 정신과 약을 먹고 있다. 이런 사실을 주류 언론에서는 단 한 줄도 싣지 않았다.

설날을 며칠 앞둔 1월 16일, 그날은 새벽 4시부터 마치 대규모 군사작전 펴듯 산외면 보라마을 공사현장에 20대 용역 50명이 들이닥쳤다. 여태껏 공사인부들과 달랐다. 최고급 승용차를 여러 대 타고 와 논길에 주루룩 세워두고 용역들은 송전탑 공사현장을 차지하고 주민들을 막았다. 젊은 용역들과 몸싸움을 벌이던 주민 20여 명이 탈진하기도 하고 발목에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날 저녁 이치우 할아버지가 절망 끝에 몸을 불사르고 말았다.

작은 체구에 순박한 얼굴인 이상우 할아버지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초등학교 문 앞에도 못 가봤습니다. 평생을 흙만 까디비고 살았습니다. 만약에 송전탑이 들어오면 나도 죽을 겁니다. 형님이 죽는데 나는 와 못 죽겠습니까? 나는 우리 형님처럼 혼자 안 죽고, 90 넘은 우리 엄마하고 같이 죽을 겁니다.” 듣고 있던 사람들 모두 목이 메였다. 이 말을 또다른 유언으로 만들고서야 이 무자비한 폭력이 사라질 것인가? 밀양 송전탑은 결코 밀양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이 50년을 이어온 살인적인 송전방식을 고치고, 핵발전소를 막을 수 있는 역사적 기회다. 시골 구석 작은 마을, 아무 힘없는 한 할아버지가 마지막 목숨을 내놓으며 이 나라에 던져준 숙제다.


  이승희 ―밀양 상동초등학교 교사, 밀양 상동면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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