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제119호 2011년 7-8월호  인쇄용  

 

  탈원전과 언론의 역할

  임재경

 

일본 후쿠시마 원전 재앙 3개월 만인 6월 12일, 일본 아사히(朝日)신문 인터넷판은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었다.
 

도쿄전력은 12일 후쿠시마 제1원전의 지하수와 주변의 해역 다섯군데에서 방사성 스트론튬을 검출했다고 발표했다. 바다에서는 스트론튬 기준 농도의 240배에 달하는 지점도 발견되었다. 스트론튬―90은 반감기가 약 29년 정도에 달하며 일단 사람 몸 안에 들어가면 뼈 속 깊이 잔류하여 골수암을 유발한다.
지금까지 원자력발전소 부지 내의 토양에서 검출된 적은 있지만 지하수에서 스트론튬 방사성물질이 보인 것은 처음이다. 지난 5월 18일 채취한 1호기 부근의 지하수로부터는 스트론튬―89가 1입방센티미터에 0.022베크렐, 스트론튬―90은 6.3베크렐이었다. (…)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인하여 방출된 다음 빗물과 더불어 공기와 지표로부터 땅속과 바다에 흘러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한겨레〉 6월 14일자(15면) 참조
 

후쿠시마 원전 참사가 사람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하여 바로 이웃나라 한국의 교양계층이 아는 정도란, 일본정부의 발표내용이 고작이다. 일본정부가 조직적으로 “정보를 차단한다(disinformation)”는 여론이 정착한 지가 꽤 오래됐으므로 한국의 정보기술 선진화도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후쿠시마 원전 2호기, 3호기의 원자로 노심융해가 사고 후 100시간 안에 일어났는데 일본정부는 두달이 지난 뒤에야 그 사실을 공개했다.

“핵 위험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무지해서”, “원자력발전소 실상에 대하여 무관심해서”, “전세계 원전 보유국 정부가 관련정보를 감추기 때문에” 등등, 그 이유는 여러가지인데 모두 일리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저널리스트인 필자는 신문과 방송, 즉 매스컴이 원전에 관련된 뉴스, 특히 지난 3개월 동안 후쿠시마 원전 재앙에 관련된 것을 축소하여 보도하거나 아주 묵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던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믿는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 원자력발전이 내포한 여러 문제를 탐사 보도하는 경우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아주 드물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 굳이 〈아사히신문〉 기사를 인용한 것은, 이른바 주류 매스컴이 십중팔구 보도하지 않을 것 같아 작심하고 한 짓이다. 기록을 위해서라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한국 매스컴의 단순한 업무 태만, 아니 기본책무의 망각 사례 한가지를 여기서 소개해야겠다.

바닷물로 후쿠시마 원전의 중추 시설들을 냉각시키는 데 성공하느냐 못하느냐를 두고 전세계가 손에 땀을 쥐며 일본에 시선을 집중했던 지난 4월 중순, 지구에서 다섯번째로 원자력발전소를 많이 보유한 한국사회가 불안해진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나라 안에서 전례 없던 동요가 일어났다. 그런데 정작 한국 국민 대부분은 그것을 모른다.

 

한국 매스컴은 원전 관련기사를 보도하지 않는다

한국의 원전 소재지 5개 지역의 수장(首長)들이 4월 26일 경주에서 모여, 한국이 원전을 건설한 이후 처음으로, 원전사고에 대비한 철저한 안전대책 수립과 관련정보의 공개를 정부에 요구하는 의견서를 채택했다. 한국 최초의 원전이자 고장으로 인해 가동을 중단한 고리 원전 1호기가 소재한 기장군이 앞장서 나온 의견서이다.
의견서에서 원전의 설계수명 30년을 넘은 고리 1호기를 재가동할 경우 그 결정 근거가 되는 평가보고서를 공개하도록 한국의 5개 지방자치 단체장들이 요구한 것은, 한국 원전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오규석 기장군수는 “국내의 기술자만이 아니라 국제기관의 점검을 받은 다음이라야 국민이 안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는 같은 날, 4월 중순 후쿠시마에서 조사한 시민단체의 현지 상황 보고 모임이 열렸다. (…) 원전 현장으로부터 약 27킬로미터 거리에 사는 환경운동연합 이상홍 씨(36세)는 “후쿠시마에서 눈에 보이지 않고 냄새도 맡을 수 없었지만 방사능 공포를 느꼈다. 한국에서도 사고 시의 피난대책을 세워 인근 주민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아사히신문〉 4월 27일자
 

지방신문은 확인해보지 않아 단언하기 어려우나, 서울에서 발행하는 신문과 전국 네트워크의 방송은 국내에서 나온 이 뉴스를 보도하지 않았다. 환경운동가 몇사람과 환경전문기자 둘은 어느 매체를 통해 그런 뉴스를 접했는지를 도리어 내게 물어야 하는 희극이 벌어졌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이 직결된 정보를 매스컴이 묵살하였다면 그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저널리스트의 감으로 일본정부를 뺨치는 정보 차단이 우리나라 원자력발전 분야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기력이 쇠잔한 필자가 저널리즘 일선에 뛰어든다는 것은 무리지만 핵문제와 원자력발전에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동기다. 우선 국내외 인터넷뉴스를 점검하여 국내 매체에 보도되지 않는 것을 최대한 수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가운데 후쿠시마 재앙 1주일 뒤인 3월 18일,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州) 지방선거에서 녹색당이 대승을 거두었다는 소식이 날라왔다. 원자력발전의 폐절을 유권자 다수가 찬성한 나라를 찾아가 거기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원전 폐기를 포함한 환경 이슈를 내걸고 의회와 행정부에 진출한 성공사례를 찾자면 무엇이라 해도 독일의 녹색당이 대표적인 경우다. 1980년에 창당한 녹색당은 2002년 고색창연한 좌파 정당인 사회민주당(SPD)의 동반자로 연방정부 구성에 참여했고, 이어 사민당과 연립으로 몇군데 주정부를 장악했다. 지방분권의 오랜 역사와 자치 전통이 강한 독일의 주정부는 미국 주정부와도 성격이 다르며, 한국의 시·도 지방자치단체보다는 정책의 수립 및 추진력이 훨씬 강하다. 녹색당은 사민당과의 연립정부에서 여태까지는 주니어 파트너(junior partner)였던 사정으로 인하여 독자적 환경정책 과제들을 실천에 옮기는 데는 제약이 많았고, 따라서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요직을 사민당과 나누어 갖는 정도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 새로 출범한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녹적’(녹색당은 녹색(綠)으로 사민당은 붉은색(赤)으로 지칭하는 관습에 따른 것) 연립정부는 녹색당(24퍼센트)이 사민당(20퍼센트)보다 득표수가 많았던 까닭에 그 위치가 바뀌어 군소정당에서 명실공히 수권정당으로 발돋움한 독일 정당사상 획기적 변화를 뜻한다.

벤츠와 포르쉐로 상징되는 고급 승용차 생산지로 이름을 드날리는 바덴뷔르템베르크는 2차대전 이후 줄곧 보수 정당(기민당)이 정권을 장악한 몇 안되는 터밭(Stammland)인데다 바이에른주와 더불어 주민의 소득수준이 상대적으로 높고 가톨릭신자가 절대 다수인 고장이다. 기민당―사민당 보수 연립정권의 인기가 저미한 덕에 녹색당이 기층 민중에 더 가까워지는 반사이익을 누린 것은 부인하기 힘들지만, 녹색당이 약진할 수 있었던 데는 후쿠시마 원전 재앙의 충격 덕을 톡톡히 보았다. 녹색당 약진의 장본인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지사 크레츠만 자신도 “우리는 후쿠시마로부터 분에 넘치는 선물을 받았다”고 실토한 적이 있다. 녹색당의 대중 인기는 바덴뷔르템베르크 선거 승리 이후 상승일로다. 5월 22일에 실시된 브레멘 정부 선거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녹색당이 제1당의 위치를 차지했다. 고쳐 말하면 독일의 좌우 양대 국민 정당인 기민당과 사민당을 녹색당이 누른 것이다. 브레멘이 독일에서 인구가 제일 작은 주이긴 하지만 9월로 예정된 수도 베를린시 선거의 향방을 가리키는 의미있는 신호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바덴뷔르템베르크와 브레멘 선거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원전 폐지에 대한 찬성이 80퍼센트를 오르내리자 기민당 소속의 연방정부 수상 앙겔라 메르켈은 2022년을 목표로 하여 원자력발전소를 완전히 폐쇄한다는 정책을 공식 채택했다.

1주일간의 독일 여행 중 뇌리를 떠나지 않는 의문은 한국에서 독일의 녹색당 같은 정당이 가능할까 하는 것이었다. 환경문제 이론가인 이필렬 교수는 녹색의 깃발을 내건 정당이 없는 것과, 에너지소비 증가율이 높은 두가지 점을 한국에서 원전 폐기의 전망을 어둡게 보는 근거로 삼았다. 원전 폐기는 법률적 뒷받침과 막대한 재정 투입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입법부의 적극적 이해와 동의가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녹색당의 깃발이 나부끼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녹색당이 선거에서 어느 정도의 득표력을 발휘하느냐에 있다고 할 것이다. 미국 정치판의 상투적 표현방식을 빌린다면, ‘원전 폐기’ 브랜드의 녹색정당이 한국에서 선을 보이고 나서 정치시장에서 과연 매기(買氣)를 창출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전망을 내리기가 매우 조심스럽다.

 

원전의 경제성·효율성 신화는

독일의 관문인 프랑크푸르트공항에서 나를 마중한 70대 중반의 친구 L은 독일 쾰른대학 화학 박사로서 오랜 연구소 생활을 했는데 돈독이 오를 대로 오른 자연과학자 부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승용차 앞좌석에서 핸들을 쥔 L박사는 내 입에서 “녹색당이 지방선거에서…”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원전을 폐기하면 전기요금이 올라간다고 했다. 독일로 출발하기 전날 서울 종로에서 탔던 택시의 기사도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원전 폐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공교롭게도 같은 대답이었다. 원전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원전을 없애면 전기요금이 지금보다 두세배 뛸 터이니 당장 원전을 폐기하는 데는 반대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우리사회만이 아니라 전세계에 널리 퍼져있음을 확인한 것은 유쾌한 일은 못되더라도 여행에서 얻은 소득의 하나다. 후쿠시마 이후, 원전이 전기를 값싸게 쓸 수 있게 해준다는 허황된 소리를 글자 그대로 믿는 사람 숫자가 줄긴 했으나, 기만적인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효율성 신화로부터 벗어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대화 〈일본 원전사고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창작과비평》 2011년 여름호와 〈핵이라는 괴물을 어떻게 할까〉 및 좌담 〈핵발전, 무엇이 문제인가〉, 《녹색평론》 2011년 5―6월호 참조)

전기요금 고지서의 발급자 명의가 다를 뿐이지 원자력발전소의 계획―건설―운용―관리―폐기에 투입되는 총체적 비용이 종국에는 납세자 부담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그날그날 생활에 쫓기는 사람들은 의식하지 못한다. 이런 요금과 상품가격에 대한 착시현상은 비단 원전에 국한된 일이 아닐 테지만, ‘원전 기득권층’(일본에서는 원자력촌(村)이라는 비속어가 통용되는데, 원자력발전회사의 고급사원 및 대주주, 관련 행정부서의 고급관료, 의회의 유력인사, 어용학자, 어용매스컴 등을 지칭한다)의 일상화된 프로파간다와 로비가 먹혀든 결과다. 석유를 연료로 하는 화력발전이 우리나라에 보급된 60~70년대 초반 15년간 원유가격이 열배로(배럴당 1달러에서 10달러로) 폭등했고, 그 뒤 20년 만에 다시 열배(배럴당 10달러에서 100달러)로 폭등한 것처럼 원전의 주 연료인 우라늄도 한정된 매장량으로 인하여 가격이 인상추세인 현실에 대하여 원자력 패거리는 입을 봉한다.

독일 유권자들이 원전의 경제성 운운에 더이상 속아넘어가지 않는 것을 전적으로 녹색당의 공로로 돌리는 것은 무리다. 우선, 독일의 주요 신문들이 원전의 경제성을 들어 그 존속을 주장하지 않는 것은 일본이나 한국 신문과는 판이하다. 동서독 통일 직후 1년(1992~1993년) 가까이 체험한 바로는, 중도 보수 논조에다 대기업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이너짜이퉁〉(FAZ, 고학력·고소득층을 주 독자로 삼는 독일 유력 일간지의 하나)은 녹색당의 원전 폐절 주장을 ‘아이들 장난 같은 소리(kindisch)’라 논평할 정도였다. 이번 독일 여행 중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나는 이 신문을 읽었다. 정치 노선을 전반적으로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FAZ의 녹색당 관련기사 취급과 논평은 매우 공정하다고 느꼈다. 독일의 원전 폐절과 녹색당의 약진은 독일 주류 언론의 공정성 확보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 인쇄부수를 자랑하는 한국의 주류 신문들이여, 눈이 있거들랑 배우라!

3시간 반이 걸리는 프랑크푸르트―베를린 간의 고속열차 안에서 나는 운 좋게 귀동냥할 말상대를 만났다. 베를린자유대학에서 경영학을 강의한다는 50대 학자는 독일식 억양 없는 영어를 구사했다. 원전에 관한 질문을 지루할 만큼 여러 번 던졌는데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경영학 교수가 일반적으로 그런 것처럼, 그는 특정 정당에 가입하지 않았으며 정책에 따라 선거 때마다 지지 정당을 바꾼다고 말했다. 지난번 연방의회선거에서는 보수 기민당을 지지했노라며, 전기요금이 인상된다고 하여 원전 폐절을 반대할 수는 없다고도 했다. 미국이나 한국의 경영학 교수를 기준으로 삼으면 경악불금의 급진파에 속하는 셈이다.

“원자력발전은 ‘교량 에너지’(Brueckeenergie, 영어 ‘bridge energy’를 독일어로 직역한 것 같은데, 연결융자(bridge loan)를 떠올리면 이해에 도움이 될 듯하다)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건 도로와는 다른 것이기 때문에 안전한 길은 아니지요. 아무리 안전하게 건설했다 해도 자동차가 계속해서 다리 위를 달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다리는 짧을수록 좋은 겁니다”라는 게 그의 답변이었다. 독일 신문에서 ‘Brueckeenergie’란 용어를 본 적은 있으나 이 경영학 교수님의 비유와는 조금 다르게, 단순히 ‘과도기 연료(transitional energy)’라는 뜻으로 쓰는 경우였다.

 

‘청정에너지 원전’이란 말은 없다

독일 여행을 떠나기 전 한국에서 인터넷판 독일 신문들을 훑으며 영미 신문들과의 차별을 감지했다면, 후쿠시마 원전의 사고현장을 묘사하는 형용사로서 ‘지옥 같다’(hoellisch, 어원적으로는 영어 ‘hellish’와 친연관계에 있지만 악마적이라는 분위기를 강하게 풍긴다)란 어휘가 자주 등장함을 느꼈다. 원전의 가공할 위험성을 생생하고 긴박하게 전달하려는 의욕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상대적으로 높은 생활수준과 복지조건을 누리는 독일 저널리스트들은 후쿠시마 원전 재앙 앞에서 독일 지식인 특유의 ‘불안’(Angst, 심리적 강박을 수반하는 상태)에 빠진 것은 아닐까 하는 해석을 해본 적도 있다. 어찌 되었건 간에 미국과 일본 그리고 거기에 충실하게 뒤따르는 한국의 원전 패거리들이 만들어낸 ‘청정에너지〓원전’이라는 등식은 지금 이 시점의 독일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독일은 그런 초급과정은 졸업한 지 10년은 좋이 됐나 보다.

베를린의 새로 단장한 의사당 청사 부속건물에 위치한 의원 사무실에서 녹색당 원내대표 보좌역과 비공식이란 조건하에 커피를 나누게 되었다. 비싼 돈을 들여 찾아온 머나먼 베를린길에 차 한잔 마시고 간다는 것은 비록 늙은 몸이긴 하지만 저널리스트의 자존심이 허용하지 않았다. “독일이 원전을 폐절하면 청정에너지의 중요 원천을 포기하는 것인데 그 대안은 무엇인가”라고 운을 뗐다. 저널리즘에 발을 들인 지 5~6년차 기자가 마감시간에 쫓긴 나머지 허겁지겁 던질만한 투박한 질문이다. 태양열, 풍력으로 시작되는 재생에너지 목록이 나열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독일에는 원전이 청정에너지라는 말은 없습니다”라는 간단한 답변과 함께, 저만치 책상 위에 널려있는 녹색당 선전 책자를 주섬주섬 챙겨주는 거였다. 영어로 된 것은 없지만 독일어로 된 것이라도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했다.

이야기가 빗나가는데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무렵(6월 중순) 공히 환경운동연합 회원이자 나와 친숙한 사이인 언론인 신홍범(전 한겨레신문 논설주간), 불문학자 최권행(서울대 교수) 그리고 나 셋은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과 남종영 〈한겨레〉 환경담당 기자, 최영애 〈경향신문〉 환경담당 기자를 초치하여 저녁을 나누었다. 이 자리에서 후쿠시마 원전 재앙과 그 밖의 세상 돌아가는 일에 한참 열을 올렸다. 한겨레신문 창간 준비가 한창이었을 때인 1987년 겨울, 신홍범은 해직기자 가운데서 가장 적극적인 친환경론자였고 그의 일관된 주장으로 결국 한국 언론사상 처음으로 편집국 안에 환경문제를 전담하는 독립된 부서를 두기에 성공했다. 그리하여 환경문제 전담부서인 생활환경부장에 지영선(환경운동연합 상임공동대표)을 〈동아일보〉로부터 스카우트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신홍범과 나는 〈한겨레〉 창간 이후 23년 동안 한국에 원자력발전소가 열개 이상 건설되었으니 어떻게 된 것이냐며 서로 혀를 찼다. 후쿠시마가 터지는 순간까지 우리 모두 “원전은 CO2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라는 소리에 신들린 사람마냥 멍하고 있었던 몰골이다.

 

휴머니즘·현실참여파 프랑스 지식인은 지금 어디에

파당적 혹은 상업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프로파간다를 일삼는 사람들은 타자(他者)와 자신에게 동시에 최면을 걸지 않으면 안된다. 파탄에 이르는 날까지 자신을 속이고 타인을 속이는 행위는 계속되는 법이다. “원전은 싼 전기를 공급한다”, “원전은 깨끗한 에너지다”에 이어 제3의 프로파간다는 “원전은 안전하다”는 주장이다. 대형 원전사고를 당한 나라들, 이를테면 미국, 러시아, 일본은 이 제3테제의 꼬리를 내리고, 경제성과 ‘청정에너지’ 선전에 주력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그런데도 막무가내로 원전은 안전하다고 우기는 나라가 프랑스와 한국이다.

앞에서 한국이 다섯번째로 원전이 많은 나라라고 했는데 원전 보유 순위대로 꼽자면 미국(104기), 프랑스(58기), 일본(55기), 러시아(32기), 한국(21기) 이렇게 나간다. 미국 스리마일·러시아 체르노빌·일본 후쿠시마 급의 대형 참사는 아니더라도 프랑스와 한국 역시 수백건의 원전사고를 냈다. 되풀이하거니와 국민은 잘 모르거나 건망증에 빠졌다. 이 대목에서 한가지 음미할 것은, 큰 원전사고를 격지 않은 프랑스와 한국의 통계적 특징이 돌출된다는 점이다. 프랑스는 인구 1인당 원전 수가 제일 많고, 우리나라는 국토 단위면적당 원전 비율이 제일 높다. 원전의 밀집도가 높은 곳에서는 불안감을 상쇄하는 자기위안의 논리와 노랫가락이 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된다.


임재경 ― 언론인. 전(前) 한겨레신문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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