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제119호 2011년 7-8월호  인쇄용  

 

  우애의 경제를 위하여

  김종철

 

일본에서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지 석달이 되었습니다. 이번 사고는 단순한 산업재해가 아닙니다. 거의 묵시록적 파국이라고 해야 할 사건이죠. 저는 그렇게 느낍니다. 실은 요즘은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요.

생각해보면, 일본제국은 1945년에 히로시마로 끝났고, 그 후 66년 만에 후쿠시마로 끝난 것은 일본주식회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로시마 원폭투하로 패망한 일본제국은 군사력을 통해서 아시아의 패권을 꿈꾸었다면, 지금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그 근본적인 허구성이 여지없이 드러나버린 일본주식회사는 그동안 경제력을 통해서 대국을 꿈꾸어왔습니다. 이 둘은 대국을 몽상했다는 점에서 공통합니다. 방법이 다를 뿐이죠. 하나는 군사력이고 하나는 경제력이죠. 근대국가는 언제나 군사력과 경제력의 크기로 강대국과 약소국을 나눕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근대국가가 강한 국가가 되고자 필사적입니다.

그러나 이 근대국가의 욕망은 근본적으로 부질없는 것입니다. 아니, 단순히 허무한 몽상이 아니라, 결정적인 파국을 가져다줄 뿐이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 사건이 이번 후쿠시마 사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역사적인 의미를 잘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나 또 게으른 정신들은 이 중대한 역사적 의미를 간과하고, 별일 아니라는 듯이 지나쳐버릴지도 모르지요. 그렇게 된다면 미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는 예전 같지는 않고 세상이 질적으로 달라질 것이라는 예감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냥 당장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더라도, 우선 경제가 예전처럼 돌아가진 않을 게 분명합니다. 대지진과 원전사고의 피해를 복구하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들어갈 것입니다. 일본경제가 여차하면 전면적인 파탄상태가 될지도 모릅니다. 일본경제가 파탄하면 지금 벼랑끝에 있는 미국의 달러경제가 붕괴될지 모르고, 한국경제도 마찬가집니다. 지금 달러경제가 매우 위험한 상태에 처해있다는 것은 여러분들도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미국이 프랑스, 영국과 함께 지금 리비아를 침공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달러 때문이에요. 물론 독재국가의 민중에게 독재의 압박에서 벗어나려는 강한 열망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모두 개입해왔습니까? 미국은 오히려 독재자들을 두둔하는 게 오랜 관행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민중의 욕구를 지지해서 미국이 개입한 적은 없어요. 실제로 미국은 거의 언제나 독재자의 편이었거나, 독재자가 미국의 이익을 위협할 때만 그 독재자를 제거하기 위해 개입했습니다. 사담 후세인이 그렇고, 카다피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카다피는 근년에 아프리카의 독자적인 통화를 구축하려고 기도해왔습니다. 이게 바로 미국이 카다피를 제거하려는 결정적인 이유예요. 그대로 내버려두면 미국달러의 위상이 급격히 추락할 게 확실하니까요. 사담 후세인을 학살하고 이라크를 침공한 것도 마찬가집니다. 석유 때문에 침략했다는 설명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사담 후세인이 석유 결제수단을 달러에서 유로로 교체하려고 했기 때문이에요. 미국경제가 지금 버티고 있는 것은 주로 세계의 기축통화인 달러를 발행함으로써 얻는 이익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달러의 지위가 추락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날로 미국은 망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다급할 수밖에 없죠.

일본에서는 이번의 재해를 원발진재(原發震災)라고 부르고 있는데, 지진과 쓰나미에다가 원전사고가 겹쳐져 일어난 복합적인 대재앙이라는 뜻이죠. 이 ‘원발진재’ 수습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을 조달하려면 일본은 더이상 미국 국채를 사들일 여유가 없어요. 중국과 일본이 미국 국채를 사들였기에 지금까지 미국의 달러경제가 버티어왔는데, 이제는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 못지않게 미국이 지금 급해졌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군대를 철수 안할 수 없게 되었어요. 이제 예전과는 상당히 다른 풍경이 전개될 것입니다.

 

“욕심을 크게 가져라”

지금은 소위 문명세계가 역사상 유례없는 총체적인 파국 국면에 들어서 있습니다. 그런데도 한국사회는 이 세계적인 위기상황에 대한 긴장된 의식이 없는 것 같아요. 요즘 우리사회의 화두는 내년 선거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선거와 관련되어 나오는 복지국가 이야기입니다. 이런 얘기들이 저한테는 별로 실감이 나지 않고, 그냥 공허하게 들립니다. 물론 선거도 중요하고,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죠.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망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절박한 상황입니다. 좀더 근원적인 질문과 사색이 필요한 때입니다.

무엇보다도, 지금 복지국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음 선거에서 어떻게든 이겨보겠다는 혹은 적어도 몰락을 면해보겠다는 책략 이상의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사회가 복지국가를 실현할 수 있는 물질적·정신적 기초를 갖추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또 복지국가가 과연 무엇인지, 그게 반드시 좋은 것인지, 깊이있는 철학적 토론도 없이 무조건 복지국가가 지고지선인 것처럼 얘기되고 있는  분위기도 매우 불안합니다.

실은 이런 분위기는 작년 6월 지방선거 때 무상급식에서부터 시작된 흐름이죠. 저는 욕 얻어먹을 소린 줄 알지만, 우리나라에서 진보를 지향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욕심이 작을까”라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왜 진정한 민주주의사회를 만들자는 얘기를 하지는 않고 늘 변죽만 울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헌법에 적혀있는 대로 주권재민, 인민주권의 원칙에 충실한 민주공화국을 실제로 실현하자는 얘기를 왜 못하느냐는 거예요. 여기 걸려있는 박노해 시인의 사진작품은 아마 중남미 전통 부족사회의 어떤 마을회의 장면을 찍은 것 같은데, 이것은 직접민주주의의 현장입니다. 중남미뿐만 아니라 부족사회는 대체로 이렇습니다. 구성원들이 모두 모여 자기 발언을 당당히 하고 전원이 합의에 이를 때까지 시간이 아무리 걸려도 진지하게 의논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민주주의를 못할까요. 왜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고 지레 포기해야 할까요?

한번 투박하게 물어봅시다. 우리가 지금 사는 게 불행하고 재미없는 것이 정말 국가복지시스템의 미비 때문일까요? 물론 부분적으로는 그게 이유일지도 모르죠. 그러나 근본적으로 우리 각자가 불행을 느끼는 것은 내 운명을 결정하는 권리를 내가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로 살고 있기 때문에 불행한 거예요.

우리는 대부분 헌법에 보장된 자주적인 정치적 권리를 한번도 제대로 향유하지 못하고 그냥 몇십년 살다 죽습니다. 그러는 동안 몇몇 잘난 ‘엘리트’들이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정치적 결정권을 독점하면서, 사람들 위에 군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불행과 좌절의 핵심은 여기에 있어요. 자주적인 결정권이 나에게 없다는 것 말이에요. 그런데 왜 우리가 이렇게 욕심이 작을까요? 얼마 전에 신문에도 나왔죠. 지금 정규직 노동자들의 꿈이 뭐냐면, 자기 자식이 나중에 자기가 일하는 그 자리에 정규직으로 취직하는 것을 보장받는 것이라죠. 일자리 세습제예요. 이게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꿈이에요. 기가 막힐 일이죠. 욕심이 이렇게 작아서는 그 작은 욕심마저 절대로 실현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를 꿈꾸지 않는데 어떻게 민주사회가 되겠습니까?

일본 근대사상사를 보면, 메이지 초기부터 ‘소일본주의’라는 흐름이 있었습니다. 메이지유신에 성공한 일본이 어떤 근대국가를 만들 것이냐를 두고 토론이 있었는데, 대국이 아니라 소국으로 가야 한다는 입장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입장이 역사적으로 비주류로 몰리고 패배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일본사회 저변에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소수파지만 그 흐름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왔습니다. 대표적인 사상가로 이시바시 단잔(石橋湛山)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1920년대 초에 〈동양경제신보〉라는 주간신문의 주필을 했던 사람이에요. 기본적인 성향은 사회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아닌 자유주의자예요. 전쟁 후에는 맥아더 사령부의 점령통치가 끝난 얼마 후 자민당 일당체제로 굳어지기 전에 잠깐 총리직에 있었던 분이에요. 그러나 총리직에 취임하자마자 건강문제로 두어달 만에 사임했습니다. 저는 이분이 좀 오래 총리직을 수행했다면 일본사회가 아마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굉장히 생각이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1920년대는 세계경제가 전반적으로 어려웠습니다. 농촌도 황폐했죠.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승승장구하는 것 같았지만 서양제국들에 의해 압력을 받고,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있었습니다. 일본이 아시아의 맹주가 되겠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하게 됐고, 민중은 살기 고달팠죠. 당시 이시바시 단잔은 일본사상사에서 기념할만한 몇가지 논설을 남겼는데, 핵심적인 주장은 일본이 소국주의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일본의 근본적인 화근은 바로 소욕(小欲)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굉장히 인상적인 말이죠. 그러면 그가 말한 대욕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일본이 조선과 대만과 만주를 포기하는 것이다. 조선과 대만을 식민지로 하고, 만주를 점령하고 중국을 침략하겠다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정당하지 않고, 장기적으로는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는다. 일찍이 제국주의 역사상 자진해서 식민지를 포기하고 군인들을 거두어들인 국가가 없었는데, 일본이 그것을 실행한다면 서구제국주의 열강들도 놀랄 것이고, 국제무대에서 일본의 발언권도 강해져 세계평화를 주도해나갈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석유 한 방울도 나지 않는 나라가 어떻게 군사주의 노선을 확장하고, 전쟁을 계속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이 근본적인 상식을 어기고, 막강한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하는 데까지 갔습니다. 얼마나 무모한 일입니까.

《논어》에 보면 이런 문답이 나옵니다. 공자께 제자가 묻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사람한테 3군의 장수를 맡기겠습니까?” 공자님이 대답합니다. “나는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겠다거나 깊은 강을 배도 없이 건너겠다는 사람한테는 절대로 3군의 지휘권을 주지 않겠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걸핏하면 정신력으로 해보자는 사람, 근본적으로 비합리적인 사고에 젖어있는 인간은 안된다는 겁니다. 짧은 한순간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전쟁을 가미가제로 합니까? 공자님 말씀은 그런 미친놈에게 지휘권을 맡겨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거죠.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런 미친놈들이 늘 지도자로 군림해왔어요. 지금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죠.

욕심을 크게 가지자는 것은 결국 생각을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후쿠시마 사태도 따져보면 이성적인 사고가 결여된 게 근본원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원자력발전이라는 것은 어디서든 말이 안되는 프로젝트입니다.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사고가 안 난다 하더라도, 핵폐기물을 처분할 방법이 없다는 거예요. 지금 세계 전체에 440기의 원자로가 존재하지만 고준위폐기물을 보관할 수 있는 데는 하나도 없습니다.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한 핵연료나 수명이 다한 원자로를 폐기할 때의 고준위방사능 물질들을 보관·처분할 수 있는 곳이 한군데도 없어요. 그러면서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하고 있는 거예요. 기가 막힌 일이죠. 단 한군데 지금 핀란드에서 공사를 하는 중입니다. 지하 500미터 깊이의 견고한 암반에 터널을 뚫는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지질학적으로 십만년 이상 한번도 움직인 적이 없다는 암반입니다. 그러나 공사를 하고 있는 전문가들에게 그게 장기적으로 과연 안전하겠느냐고 질문을 하면, 대답이 “모른다(We don’t know)”예요. 〈영원한 봉인〉이라고 다큐멘터리 영화에 그런 장면이 나온답니다. 한국이나 일본의 전문가라면 얼마든지 거짓말을 하겠지만, 그곳은 핀란드입니다. 그러니까 정직하게 답하는지 모르죠.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중저준위 방사성물질 처분 때문에 지금 경주에 건설 중인 방폐장 공사장에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파보니까 그 자리가 수맥이에요. 수맥의 힘이 얼마나 센데 어떻게 콘크리트가 견뎌내겠습니까? 콘크리트는 인간이 사용한 지 100년도 안되고, 아무리 견고하게 짓는다 해도 수명이 천년만년까지 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수십만년 동안을 보관해야 하는 핵쓰레기를 콘크리트로, 그것도 수맥이 통과하는 자리에 공사를 강행하고 있어요. 이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이것은 과욕도 아니고, 완전히 미친 짓입니다. 이 미친 짓을 국가적 사업으로, 세금을 가지고 하고 있습니다. 4대강 공사와 똑같은 짓이죠.

 

‘복지국가’가 아니라 ‘복지사회’를

요즘 한국사회의 주요 화두가 복지국가이지만, 저는 복지국가가 아니라 복지사회를 건설하는 게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복지국가와 복지사회는 다른 개념이죠. 국가와 사회가 기본적으로 다른 것이니까요. 복지국가는 국가적 시스템으로 시민들을 보호하겠다는 것이고, 복지사회는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우리들 자신이 자주적으로 상호 연대하고 협동함으로써 만들 수 있는 사회입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 당장에 실현 가능할 뿐 아니라, 확실한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틀입니다.

여러분, 지금 세계 일류의 복지국가라고 하는 덴마크에서는 당연히 무상급식을 하고 있다고 다들 생각하시겠지요? 놀랍게도 덴마크 학교에서는 무상급식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물론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무상급식이 당연히 필요하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아무리 이 사회가 고약한 사회라 해도 밥을 굶거나 눈칫밥을 먹는 아이들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이 사회가 인간사회로서 성립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입니다. 그러나 덴마크의 경우를 보면, 사회적 성격이나 질적 수준에 따라 무상급식 그 자체가 절대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지금 스웨덴이나 덴마크에서도 옛날처럼 경제가 잘 돌아가지 않고 실업자도 늘고 해서 국가적 복지시스템이 흔들릴 조짐이 보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분적으로 기왕의 복지혜택이 축소되거나 상당히 수정되고 있다고 하죠. 그러나 저는 이 북유럽 국가들에서 국가적 복지시스템이 설령 무너진다 하더라도 별 지장이 없을 것 같아요. 특히 덴마크가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덴마크는 국가적 복지시스템 이전에 지역적 차원에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해온 협동적 생활구조의 전통이 매우 뿌리가 깊어요. 무상급식이 문제가 아닙니다. 덴마크는 개인들의 자립적 역량과 자기책임을 무엇보다 강조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덴마크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스스로 도시락을 싸야 합니다. 부모가 싸주지 않아요. 6살짜리 아이가 자기가 먹을 샌드위치 도시락을 직접 준비합니다. 아이들을 굉장히 강인하게 키우는 나라예요. 혹시 늦잠 자거나 게으름 피우다가 도시락 못 싸고 학교에 가더라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선생님도, 친구들도 도와주지 않아요. 어렸을 때부터 철저히 강조하는 게 자립과 자기책임, 그리고 협동정신이에요.

심지어 덴마크의 어떤 지방에서는 마약중독자들에게 공공기관에서 공짜로 주는 마약을 사용하든지, 치료소에 들어가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답니다. 공짜로 주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값비싼 마약 때문에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철저한 자기책임이 강조되는 사회입니다. 탁아소나 유치원에서 어린아이들 낮잠을 재우잖아요. 기온이 섭씨 영하 15도로 내려가지 않으면 아이들을 옥외에서 재운다고 합니다. 물론 옷을 두툼하게 입혀서요. 지독한 사회예요. 그냥 세계 제일의 복지국가라고 할 때 우리가 떠올리는 피상적인 이미지와 많이 다른 게 느껴지지 않아요? 튼튼한 사회란 튼튼한 개인들이 이룩하는 사회라는 철학이 여기에 엿보입니다. 아이들을 건강하게, 강인한 인간으로 키워야 한다는 거죠. 요즘의 한국 부모들이라면 자기 아이를 추운 바깥에서 재우는 것을 용납할 수 있겠어요? 사실 지금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식을 어떻게 키울지 아무 생각이 없잖아요. 지금과 같은 한국식 양육이나 교육방식을 통해서는 나약하고 이기적인 인간밖에 나올 수가 없어요. 덴마크사회는 아이들을 양육하는 과정에서부터 우리사회와 엄청난 차이가 있어요. 복지국가를 운위하기 전에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예요.

그런데 150년 전에 덴마크는 굉장히 비참한 나라였습니다. 독일과의 전쟁에 패해서 국토의 절반, 그것도 가장 비옥한 토지를 빼앗겼습니다. 남은 국토는 유틀란트반도와 몇몇 섬밖에 없었는데, 대부분 황무지였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덴마크인들은 희망을 찾아냈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의 하나는 그보다 좀 전에 프랑스혁명의 여파로 유럽의 봉건체제가 흔들리던 와중에서 덴마크의 왕이 현명한 결단을 내려 농노들을 해방시켰던 일입니다. 당시 덴마크의 절대 다수 인민이 이렇게 해서 독립 소농의 지위를 획득했던 것이죠. 그럼으로써 피를 흘리는 혁명을 거치지 않고, 계몽군주의 영단에 의해서 덴마크는 근대국가로 성장할 준비를 했던 셈입니다.

만일 대다수 인민이 농노신분으로 전쟁을 하고, 국토의 절반을 잃는 비참한 상황에 빠졌다면 덴마크는 회복할 수 없는 절망적인 사회가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각자가 소규모지만 자기 토지 소유가 가능한 독립 농민들이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땅을 살리거나 확보하기 위해서도 나라의 재건에 헌신했던 거죠. 예나 제나 농민에게는 자기 땅보다 더 소중한 게 없습니다.

게다가 전쟁터에서 돌아온 제대군인 중에 달가스라는 열렬한 애국자가 있었어요. 그는 덴마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안으로 유틀란트반도의 광범한 녹화를 제창했습니다. 달가스는 수십년 동안 죽을 때까지 나무심기에 온몸을 바쳤습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기후풍토에 맞는 수종을 찾아내는 데에 결국 성공을 했고, 그 결과 유틀란트반도 전역이 푸른 숲과 목장과 기름진 밭으로 변모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라의 인민이 자유인으로 존재하면, 그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도 극복해낼 수 있다는 전형적인 예를 덴마크는 보여준 것이죠. 인민이 자유인으로 산다는 게 이렇게 중요합니다.

더욱이 그 무렵 덴마크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상가이자 교육자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 출현합니다. 그룬트비라고 아마 여러분도 들어보셨을 거예요. 그룬트비는 원래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신학교육을 받고, 영국유학까지 갔다 온 사람으로, 다방면에 걸쳐 뛰어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종래 덴마크 교회에서 성직자들이 설교를 라틴어로 하던 관습을 깨고 농민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토박이 덴마크말로 하기 시작했고, 교육도 철저히 평민교육을 중시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이 성경의 문자 속에 있는 게 아니라 교회에 예배를 보러 오는 가난한 민중들 속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연히 기성 제도권 교단과 끊임없이 마찰을 일으키고, 대결하지 않을 수 없었죠. 그렇게 하면서 그룬트비가 옹호하고자 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다수 민중의 이익이었던 거죠. 그는 덴마크어로 직접 시를 쓰고, 찬송가를 짓고, 스칸디나비아의 옛 전설, 민담, 신화를 열심히 수집하고, 그것을 책으로 엮어내 보급했습니다.

우리는 덴마크라고 하면 대개 안데르센이나 키에르케고르를 떠올리지만, 지금도 덴마크 사람들은 그룬트비를 제일 중요한 역사적 인물로 기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 그룬트비의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국민고등학교’라는 농민교육기관의 설립입니다. 이 학교는 시험도, 자격증도 없고, 다만 배우고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이 몇개월이든 모여서 생활을 같이 하면서 농사에 관한 실습 이외에 철학과 문학과 역사를 배우는 선구적인 성인 자유학교였습니다. 이 ‘국민고등학교’ 운동은 많은 호응을 얻어서 덴마크 전역으로 확대되었는데, 여러 면에서 덴마크 복지사회의 기초를 다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국민고등학교’를 통해서 덴마크 사람들은 왜 사느냐,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끊임없이 창조적인 실험을 했습니다. 덴마크가 지금 풍력발전으로 유명하잖아요. 풍력발전을 처음으로 생각해낸 곳도 바로 ‘국민고등학교’였어요. 오래전에 벌써 에너지문제를 생각한 거예요. 1970년대 초 오일쇼크 이후에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국민고등학교’에 모여서 생활과 학습을 같이 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전통적인 풍차를 돌려 전기를 생산해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나온 거죠. 모든 것을 자기들 힘으로 해보겠다는 생각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덴마크 사람들은 귀리와 보리, 잡곡을 심고, 돼지를 키우며 자급하며 살았습니다. 열심히 농사를 짓다 보니 잉여가 생겨나고, 그것을 다른 유럽국가에 수출을 했습니다. 하지만 신대륙에서 값싼 곡물이 유럽으로 쏟아지니까 경쟁상대가 안돼요.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국민고등학교’에 모여서 같이 고민을 하고 의논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해답이 협동조합입니다. 소규모 경영으로는 국제 농산물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을 재빨리 이해한 농민들이 각자의 독립성은 철저히 유지하면서 서로 연합하여 협동조합을 만들어 공동생산·공동구매 활동을 함으로써 자신들의 생활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터득한 거죠. 그래서 처음에 돼지사육 농민들부터 시작해서 전국 곳곳에 축산협동조합 운동이 일어나고, 점차로 다양한 협동조합이 생겨났습니다. 사실 저도 어렸을 적부터 덴마크라고 하면 협동조합의 나라라고 익히 듣고 자랐어요. 협동조합이란 소규모 독립 생산자들의 자주적 연합조직입니다. 그 조직에는 상전과 하인이 따로 있을 수 없고, 참가자 누구나 대등한 자격으로 민주적 권리와 책임을 나누어 가지는 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연합의 정신이 중요한 거죠.

 

사회주의는 ‘래디컬 데모크라시’이다

저는 맑스―레닌주의가 사회주의의 가장 좋은 전통을 훼손시킨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주의가 무엇입니까? 흔히 사회주의라고 하면 생산수단의 국유화 내지는 공유화를 생각합니다. 사유재산을 폐기하는 게 사회주의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실제로 생산수단을 국유화하고 사유재산제까지 폐기했던 사회가 어떻게 되었어요? 깨끗하게 망했잖아요. 생산수단의 국유화는 국가에 의한 인민의 노예화를 가져왔을 뿐입니다. 소련이 망한 것은 혁명 초기에 활기를 띠었던 소비에트 민주주의가 패퇴한 데에서도 큰 원인이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집단농장시스템을 강제로 밀어붙인 데서 시작됐다고 저는 봅니다. 농민들의 정서와 심리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고 할 수 있어요. 오랜 세월 동안 농노로 살아온 농민들이 혁명에 의해서 자유인이 되고, 자기 소유의 땅을 가지게 되었다는 기대를 갖는 순간에 그 땅을 뺏고, 집단화를 강요한 것은 자멸적인 정책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땅에 대한 농민들의 애착은 만년 이상 뿌리내려온 거의 본능적인 것입니다. 농민에게는 자기 땅이 아니면 농사짓는 게 신명이 날 턱이 없습니다. 거의 강제노동일 뿐이죠. 그러면 결국 국가적 생산성은 형편없이 낮을 수밖에 없죠.

일반적으로 사유재산제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자신의 소유에 대해 갖는 애착을 완전히 부정하는 사회운동은 실패하게 마련입니다. 물론 사유재산의 규모는 제한해야 하고, 소유에 있어서 개인적 격차는 일정한 한도 이상으로 벌어져서는 안됩니다. 사회적 양극화는 도덕적으로도 용납되기 어렵지만, 반드시 사회적 안정성을 파괴합니다. 예를 들어,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의 수입이 생산직 노동자들의 임금보다 백배 천배 이상 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에요. 사회정의를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정치라면 이것만큼은 분명히 바로잡아야죠. 그러나 사유재산 제도 그 자체의 존립은 전혀 다른 얘깁니다. 사유재산제를 철폐하면 자유로운 삶은 불가능합니다. 사유재산제도와 시장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기본적인 조건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는 시장에서 자유롭게 물건을 사고 팔 수 있어야 자유로운 개인으로 살 수가 있어요. 시장과 자본주의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일반적으로 시장과 자본주의를 혼동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사회주의라고 하면 대개 시장을 폐기한 계획경제를 떠올립니다. 실제로 계획경제란 굉장히 문제가 많아요. 예를 들어, 예전에 소련에서는 관리들의 철제책상의 판 두께가 몇십센티미터나 되었다는 얘기가 있어요. 무슨 말이냐 하면, 계획에 따라 철강생산을 했는데, 그 철강을 사용할 데가 없다는 거죠.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무겁고 두꺼운 철제책상을 만들어내는 희극적인 일이 벌어지는 거죠. 물자의 공급과 수요는 계획적으로 어느 정도 예측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반드시 차질이 있게 마련입니다. 시장 기능을 무시하는 경제는 원활하게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철제책상의 판 두께가 몇십센티나 되는 기괴한 현상이 나타나고, 이런 몰상식한 짓이 계속되면 결국 망하지 않을 수가 없죠.

사회 전체의 경제를 위해서도 시장이 중요하지만, 자유로운 시장 기능이 살아있어야 개인이 인격적인 자립과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확실해요. 그렇다면 무엇이 진짜 사회주의인가? 저는 ‘래디컬 데모크라시’가 바로 사회주의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의 철저화’가 사회주의예요.

서양의 부르주아계급이 봉건체제에 대항하여 시민혁명을 일으켰을 때, 그 명분은 만인의 자유와 평등과 우애, 즉 ‘민주주의’였습니다. 실제로 특권계급의 철폐를 요구하는 밑바닥 민중으로부터의 급진적 압력이 없었다면 시민혁명은 꿈도 꾸지 못했을 거예요. 그러나 일단 시민혁명에 성공한 다음에는 부르주아계급은 혁명의 성과를 독점해버리죠. 소위 정치적·시민적·법적 권리는 명목상으로나마 인정하면서도 실질적인 사회적·경제적 권리는 자기들이 독점하고 민중들을 배제하잖아요. 경제적인 민주화가 이루어져야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어요. 단지 명목상의 정치적·시민적 권리만으로 민주주의사회가 되는 게 아닙니다. 민주주의란 기본적으로 인민의 자기통치를 뜻합니다. 따라서 핵심은 내가 주체적으로 공동체의 정치적 토의에 참여하느냐 못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어요. 누군가에게 내 정치적인 권리를 위임해서는 절대로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현대의 역사적 과제는 부르주아계급이 독점해버린 시민혁명의 성과를 사회구성원 전부가 고르게 나눌 수 있는 사회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철저히 추구함으로써만 모든 사람이 실질적으로 인간다운 위엄을 누릴 수 있는 ‘사회주의’ 사회가 성립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래디컬 데모크라시’를 오늘날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하는 거죠. 고대 도시국가도 아니고, 이렇게 많은 인구로 구성된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해야 모든 개인이 실질적인 민주적 권리를 누릴 수 있을까요? 답은 협동조합이에요.

주식회사에서 결정적인 발언권은 대주주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협동조합에서는 1인 1표예요. 협동조합의 조합원은 스스로가 경영자이자 동시에 종업원이에요. 모든 조합원은 발언권이 동등해요. 모든 결정이 민주적인 토의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지금과 같은 현대사회에서 만인이 민주적인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은 협동조합적 틀밖에 없어요. 독립적 개인 혹은 소규모 단체가 모여서 협동적 결사체를 만들고, 또 그 대표들이 모여서 더 큰 결사체를 형성할 수 있겠죠.

간디는 일찍이 독립된 인도국가는 70만개의 자율적인 기층 마을이 모여서 횡적인 유대관계를 형성한 토대 위에 건설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국가의 실질적인 권력은 중앙정부에 있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나하나의 기층 마을에 있어야 하고, 중앙정부란 기층 마을들이 파견한 대표자들의 협의체 같은 것이 돼야 한다는 게 간디의 생각이었습니다. 간디는 그게 제국주의시대를 제대로 극복한 진정한 민주주의와 평화가 보장되는 정치체제라고 보았던 것이죠. 저는 간디의 견해에 전적으로 찬동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단순한 농경사회가 아니므로 간디가 말했던 마을중심 민주주의를 문자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현대식 해석이에요. 현대식으로 말하면, 간디의 마을들은 시민들에 의해 자주적으로 형성된 협동적 결사체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자주적 협동체에서는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정당정치, 즉 부르주아 의회민주주의는 형식상의 민주주의에 불과할 뿐, 다수 민중의 진정한 정치적·사회적·경제적 권리를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우리가 협동조합이라는 토대 위에서 훌륭한 복지사회를 만들어온 덴마크와 같은 나라의 역사를 주의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국이나 미국 혹은 프랑스와 같은 소위 ‘대국’들은 전쟁과 혁명 그리고 공업화를 통해서 근대적 정당정치를 발전시켜왔지만, 그 정당정치는 다수 민중을 배제하는 사실상 소수 엘리트에 의한 지배시스템을 구조적으로 강화해왔습니다. 하지만 덴마크 사람들은 일찍부터 풀뿌리 차원에서 협동적 결사체들을 광범하게 형성하고, 그럼으로써 실질적인 민주주의사회를 발전시켜왔습니다. 이런 의미의 협동적 결사체를 누구보다 강조했던 사람이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사회주의 사상가였던 프루동입니다. 프루동의 유명한 말에 “All associated and all free”라는 말이 있어요. “모든 개인은 자발적으로 협동적 결사체에 참여함으로써 자유로운 인격체가 될 수 있다”는 얘기죠.

 

최고의 복지는 풍부한 인간관계다

우리가 자유인으로 살고자 한다면 생활 속에서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향유해야 합니다. 덴마크 사람들은 일찍부터 ‘국민고등학교’ 등을 통한 자주적 학습경험에 힘입어 이 원리를 체득하고 살아왔어요. 우리는 대체로 국가나 국민이라는 말을 들으면 혐오감을 느끼잖아요. 나라 국(國) 자가 이렇게 역겨운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가 겪어온 역사와 오늘날의 정치현실 때문이죠. 그러나 덴마크 사람들은 국가나 국민이라는 말에 대해 별 위화감을 느끼지 않아요. 덴마크 사람들은 심지어 자신이나 가족의 생일날에도 집에 국기를 게양합니다. 굉장히 신기하게 들리죠? 덴마크 사람들에게는 국가가 바로 살아있는 공동체입니다. 국왕이 경호원도 없이 코펜하겐 시내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나라입니다. 국왕이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데 경호원이 왜 필요해요? 시민들 전체가 경호원이잖아요. 2차대전 때 나치가 덴마크를 점령했을 때의 유명한 일화가 있어요. 닐스 보어라는 양자물리학자의 회고록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독일 점령군 사령부가 덴마크에 살고 있는 유태인들을 색출하기 위해서 덴마크정부에 몇날 몇시부터 유태인들이 전부 노란색 완장을 차도록 조치할 것을 명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시각이 되자 덴마크 국왕부터 완장을 찼어요. 그걸 보고 모든 국민이 전부 완장을 차버렸어요. 독일군이 얼마나 당황했겠어요. 그 사이에 덴마크정부는 유태인들이 스웨덴으로 피신하도록 도와주었고, 그 덕분에 닐스 보어도 살아났습니다. 그런 국왕이니까 국민들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지요.

‘국민고등학교’라는 용어도 그렇습니다. 한때는 저도 이 학교 이름을 ‘민중고등학교’나 ‘인민고등학교’로 부르는 게 올바른 번역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덴마크에 관해 공부를 해보니까 ‘국민고등학교’가 틀린 번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적어도 덴마크에서는 국민과 인민이 별 차이가 없어요. 우리나라에도 ‘국민고등학교’는 꽤 오래전부터 알려져왔죠. 1920년대에 일본의 저명한 기독교 평화주의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라는 분이 그룬트비의 사상에 공명하여 일본에서 ‘국민고등학교’를 처음 세웠는데, 몇몇 조선의 기독교 사상가들이 바로 우치무라 선생의 영향을 많이 받은 분들이었거든요. 김교신 선생, 함석헌 선생이 그런 분이죠. 그리고 김교신 선생의 제자에 이찬갑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바로 홍성의 풀무학교를 세운 분이에요. 그러니까 족보를 따져보면 홍성 풀무학교는 덴마크의 ‘국민고등학교’와 같은 혈통이라고 할 수 있어요.

중요한 것은 각자가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협동적인 연대조직에 참여하는 겁니다. 지금 우리는 개인적으로 고립된 채 일대일로 국가와 상대하고 있죠. 가정도 붕괴하고 있어요. 이웃 간의 친밀한 관계가 다 깨진 상태에서 고립된 개인들이 돈 없으면 살아갈 수 없으니까 국가를 향해 반값 등록금제를 실시하라, 무상급식·무상의료를 하라고 요구하는 거죠. 따로 의지할 데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복지국가가 유지되려면 반드시 경제성장이 계속돼야 한다는 대전제가 있습니다. 국민들이 높은 세금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최대한 고용문제가 해결돼야 하고요. 이게 모두 지속적으로 경제성장이 안되면 해결될 수 없는 문제예요. 그러나 앞으로는 갈수록 경제성장이 어려워질 게 틀림없습니다. 세계경제는 구조적으로 성장을 더이상 할 수 없게 돼있어요. 일자리도 더이상 만들어내지 못하게 돼있습니다. 왜냐하면 현대경제는 기본적으로 값싼 석유에 의존해온 시스템입니다. 석유는 비단 에너지뿐만 아니라 현대적 문명생활에 필요한 온갖 기초재료를 제공해온 마법의 물질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 마법의 물질이 값싸게 공급되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성장도 가능했던 거죠. 하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지금 이 순간은 값싼 석유시대의 마지막 국면이라고 봐야 합니다. 앞으로 10년 이상 지속되기 힘들 것입니다. 그렇다면 준비를 해야죠. 전혀 다른 세상을 대비해야죠.

요즘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어든다고 다들 걱정이 많죠. 소위 진보진영에서 더 걱정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부질없는 걱정이에요. 앞으로의 세상은 지금과는 다른 세상입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 같은 사회는 아닙니다. 또 이런 식의 세상이 계속돼서도 안됩니다. 그러면 세상은 완전히 망합니다. 생태적인 조건으로 봐서도 인구는 줄어들어야 마땅합니다. 노동인구와 소비인구가 줄어들고, 건강보험이나 연금 불입 인구가 줄어들면 산업사회를 유지하는 것도, 사회보장제도를 유지하는 것도 어려워질 거라고 다들 걱정하지만, 그것은 앞으로 전개될 세상도 지금 세상의 단순한 반복·확대일 것이라고 전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태의연한 생각으로는 전혀 대응할 수 없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어요.

그러나 새롭다고 해도 전혀 낯선 세상은 아닐 겁니다. 새로운 세상은 오히려 옛사람들의 지혜로 돌아감으로써 열릴지도 모릅니다. 지금 그런 조짐들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어요.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보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대국주의가 아니라 소국주의의 논리가 새로운 세상의 원리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덴마크 같은 사회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적 제도 개혁 이전에 시민들 자신의 자주적·협동적 결사 운동이 활발했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의 자주적 결사체가 활발해져야 국가도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고, 건강해질 수 있어요. 원래 근대국가의 논리는 그대로 두면 폭력이 되기 쉽습니다. 국가는 국민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원합니다. 반면에, 우리가 국가나 자본의 폭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단결하고 연대하는 방법밖에 없어요. 단, 개인들이 자신의 독자적 인격과 자립성을 유지하면서 연대하는 것이죠. 우선 나 자신이 강인한 인간, 실력 있는 인간이 돼야 합니다. 그러자면 끊임없이 인간관계를 통해서 단련을 해야 합니다. 타인이야말로 내가 가진 가장 큰 재산이라는 진리를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가장 훌륭한 복지는 제도가 아닙니다. 풍요로운 인간관계입니다. 물론 그 인간관계는 민주적인 관계여야 하죠. 자기 혼자 잘나서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자유인들끼리 형성되는 결사체 속에서의 자립적인 인간. 이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장 바람직한 삶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 대목에서 돈 이야기를 안할 수 없군요. 돈은 그 자체 절대로 나쁜 게 아닙니다. 돈은 우리들의 자유로운 삶을 가능하게 하고, 인간관계를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시장에서 우리가 돈을 가지고 물건이나 서비스를 교환하는 것은 단순한 상행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의식을 넓히고, 삶을 윤택하게 하는 생명활동이기도 합니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불가결한 게 돈입니다. 우리는 돈 문제를 기피해서는 안됩니다. 돈이 무엇인지 그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에 따라 돈을 합리적으로 활용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어요.

한때는 저도 돈에서 벗어나야 좋은 삶이 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법정 스님이 무소유를 강조했지만, 그것은 종교인으로서 할만한 발언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얘기예요. 돈 없이도 유일하게 가능했던 문명사회가 역사적으로 딱 하나 있습니다. 잉카제국이에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 보면 잉카제국에서 사람들이 물자를 어떻게 구했는가 하는 게 그려져 있습니다. 《유토피아》는 단순한 픽션이 아니라 신대륙을 탐험하거나 방문했던 초기 여행자들의 견문록을 바탕으로 쓰여진 작품입니다. 잉카제국에서는 모든 생산자들이 자기가 생산한 물건, 옥수수나 감자나 호미나 짚신을 마을의 공동저장고에 갖다 놓습니다. 그러면 짚신이 필요한 사람은 짚신을 갖다 쓰고, 감자 먹고 싶은 사람은 감자를 가져갑니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쓰는 문자 그대로의 공산사회죠. 물론 이렇게 되면 좋죠. 복잡한 문명생활은 안되겠지만, 웬만큼의 문명적 생활이 가능합니다. 도시도 건설할 수 있죠. 다들 이런 식으로 사는 데 동의하면 그렇게 살아도 좋습니다.

그런데 잉카제국은 희귀한 예외일 뿐입니다. 다른 모든 문명사회는 공동물품창고 대신에 시장이라는 시스템을 이용하여 화폐를 사용한 교환을 통해서 사회를 유지해왔습니다. 그러나 이 시장제도와 화폐제도가 오랜 세월에 걸쳐 계속되는 동안에 왜곡이 일어납니다. 돈이 단순한 교환수단을 넘어서 축적수단이 되고, 부를 독점적으로 차지하는 게 가능해지고, 강자에 의한 약자의 노예화라는 비참한 상황이 벌어진 거죠. 가장 악질적인 형태가 오늘의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경제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끊임없는 시도가 계속되어온 것도 사실입니다. 혁명운동이 그렇고, 협동조합운동도 모두 이 상황에 대항하기 위한 운동이죠. 그런데 화폐문제를 직시함으로써 비인간적인 자본주의 논리를 극복하려는 시도들도 여기저기서 행해져왔습니다. 이것은 주목할만한 운동입니다. 예를 들어, 독일에는 발도르프학교라는 특이한 자유학교가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발도르프학교를 창안한 루돌프 슈타이너는 20세기 초의 현인 중의 현인이었죠. 18세기에 괴테가 있었다면 20세기는 슈타이너라고 할 수 있어요. 굉장히 선견지명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20세기 초에 이미 근대적 농법 때문에 장차 세계 전역의 토지가 피폐하게 될 것을 내다보고 어떻게 하면 땅을 보존하면서 지속적인 농사가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분이에요. 농업문제뿐 아니라 종교, 교육, 의료, 경제, 금융, 과학기술 등등 온갖 방면에 걸쳐 풍부한 대안적 구상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한 자신의 철학과 사상을 인지학(人知學)이라는 이름으로 종합했지요.

그 슈타이너의 이론 중에 사회삼층론(社會三層論)이라는 게 있어요. 뭐냐 하면, 우리가 인간다운 생활을 하자면 그 사회는 기본적으로 세가지 영역이 제대로 기능을 해야 한다는 거죠. 그 세가지 영역이란 첫째 인간의 물질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경제생활, 둘째는 법과 정치, 즉 국가라는 테두리 속에서 영위되는 생활영역, 셋째가 인간의 정신생활, 즉 개인의 창조적 정신과 상상력이 발휘되는 문화, 예술, 학문, 교육활동이 이루어지는 영역입니다. 그런데 슈타이너는 이들 영역이 제대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각 영역에 고유한 원리가 있다고 합니다. 경제생활의 원리는 우애, 법〓정치의 원리는 평등, 정신생활의 원리는 자유라는 거죠. 물론 이것은 프랑스혁명이 내건 이상입니다. 그런데 흔히 부르주아 정치사상가들에 의하면, 프랑스혁명의 이 이상은 실제로 실현 불가능한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유와 평등은 현실적으로 서로 양립하기 어려운 이상이기 때문이라는 거죠. 뿐만 아니라, 우애라는 것도 현실사회에서는 보편적으로 성립하기 어려운 이상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부르주아 정치사상가들이 자본주의사회를 영구불변의 절대적인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슈타이너가 사회삼층론이라는 이론을 제시한 것은 자본주의사회를 넘어선 진실로 인간다운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을 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슈타이너는 그가 말한 사회의 세가지 기본영역이 실제로는 독자적으로 작동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상호 침투,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습니다. 가령 인간의 정신생활은 국가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또 경제의 제한을 받음이 없이 자유롭게 영위되어야만 인간에게 고유한 정신적 기량이 활짝 피어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동시에 정신생활의 자유가 보장됨으로써만 인간의 잠재적 소질이 마음껏 발휘되고, 따라서 경제도 국가도 활력을 띠고,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 세 영역은 어느 것도 경시될 수 없는 유기적 관계를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중에서 일차적인 중요성을 갖는 것은 역시 우애의 원리에 의한 경제생활이라고 슈타이너는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좋은 사회란 무엇보다도 우애의 정신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런 슈타이너의 철학에 따라서 지금 독일의 일부 인지학회 회원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흥미로운 경제공동체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각자의 직장이나 일터에서 얻은 소득을 개인적으로 챙기지 않고, 공동계좌를 만들어 거기에 자신들의 소득을 모두 예치해 놓고, 개인적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꺼내서 쓰는 방법입니다. 마치 잉카제국의 공동물품저장고 같은 방식이죠. 누가 번 돈인지 따지지 않고, 소득 일체를 공동의 재산으로 간주하고, 공동체에 속한 개인들이 자유롭게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이게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자료를 읽어보면, 자신이 애써 번 돈을 다른 사람이 고급 자동차를 사는 데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게 힘들다고 고백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공동체에 계속 참여하는 것은 우애의 정신을 강조한 슈타이너의 사상에 깊이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방적인 자기희생을 강조하는 사상운동은 지속적인 확대가 어렵습니다. 사회변혁운동이 개인들의 희생을 계속해서 강조한다면 그 사회운동은 실패하게 마련입니다. 물론 사람은 각자 자신의 인간적인 성숙을 위한 수련은 부단히 해야 하지만, 개인적 이기심의 전면적 부정은 인간본성에 맞지 않습니다. 하기는 뜻이 맞는 이들끼리 자발적으로 재산을 공유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말릴 이유가 없지요.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최고의 복지시스템이 되겠지요. 그러나 ‘우애의 경제’를 이런 예외적인 소공동체를 넘어서 좀더 의미있는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하자면, 역시 어느 정도의 제도적인 틀이 필요합니다.

그 제도화된 금융시스템이 바로 지금 독일을 비롯하여 유럽 여러 지역에서 수십년 전부터 실험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사회적 은행’이란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세계경제든 지역경제든 경제에 있어서 금융시스템보다 더 중요한 게 없어요. 2009년에 미국 월스트리트 금융 파산 이후에 현대적 금융제도라는 게 근본적으로 사기협잡이라는 게 밝혀졌죠. 투기로 망한 금융회사와 그 CEO들을 배불리는 데 미국 국민의 세금이 1조달러나 들어갔습니다. 금융파생상품이니 뭐니 하면서 서민들의 재산을 강탈해간 사기꾼들을 살리는 데 말이죠. 워낙 덩치가 크다 보니까 당장의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막자면 그 사기꾼들을 살리지 않을 수 없다는 논리가 지배했기 때문이죠. 아무튼 그런 현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현대금융제도의 허구성을 깨닫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사회적 은행’이 유럽에서 새삼스럽게 더 주목을 받고, 고객도 급격히 늘어난 것 같아요.

‘사회적 은행’이라는 것은, 간단히 말해서,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목적보다도 금융시스템이 좀더 윤리적이고, 생태적으로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 돼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설립·운영하고 있는 금융협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이자가 매우 낮은 은행이에요. 그런 은행으로 전형적인 게 독일의 GLS은행(대부와 증여를 위한 공동체은행)이라는 겁니다. 물론 유럽의 ‘사회적 은행’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GLS은행은 슈타이너의 아이디어에 따라 설립된 은행입니다. 그래서 이 은행에 예금을 하는 사람들은 이자가 낮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들의 돈이 공익을 위해 사용된다는 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 은행에는 은행 운영진과 주요 고객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가 있어서 대출금이 어떤 목적과 용도로 사용될 것인지 면밀히 검토한 뒤에 싼 이자로 돈을 빌려주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무상증여를 해줍니다. 좀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원칙이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대체로 우리가 은행에 저금한다고 할 때, 우리는 이자가 한푼이라도 더 많은 은행이나 저축형태를 택하는 경향이 있죠. 하지만 생각해봐야 할 더 중요한 문제가 있어요. 그것은 내가 예금한 돈이 어떻게 이용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서민들의 저금액은 물론 약소하겠지만, 그게 한푼 두푼 모이면 막대한 금액이 될 수 있잖아요. 그 돈이 악덕 기업이나 부패한 정치가들에게로 건너가서 아동과 여성과 사회적 약자를 착취하는 데 사용되고, 강과 숲을 파괴하고, 무기를 생산하는 데 쓰일지 모르는 것입니다. 아니, 단기적으로 고수익을 내는 사업일수록 대개 사회적 약자와 자연을 파괴하는 사업이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모르게 내가 결과적으로는 비윤리적인 범죄의 공범이 되고 마는 거죠. 이런 것을 생각하면 몇푼의 이자를 더 많이 받는 것보다는 내 돈이 좀더 가치있게 쓰이기를 바라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사회적 은행’이라는 게 굉장히 소중하죠.

그러나 이 은행도 수익을 전혀 도외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운영을 계속하자면 최소한의 이익이 있어야죠. 그래서 3P원칙이라는 것을 늘 강조합니다. Profit, People, Planet, 즉 이익을 내되 사람을 위하고, 지구를 위한다는 원칙입니다. 놀랍게도 이 은행은 1970년대에 시작되어, 지금 독일의 웬만한 도시에 지점들이 있고, 현재의 은행 총자산 규모는 독일 최대 은행이라는 도이체방크의 약 1/1,000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순수한 서민들의 금융협동체로는 굉장한 실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런 것을 보면 독일 시민들의 수준이 느껴져요. 이번에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태에 대해서도 가장 이성적인 반응을 보여준 국가가 독일이잖아요. 원자력발전을 조만간 모두 폐기하겠다는 결정을 국가적 차원에서 과감하게 내렸잖아요. 메르켈 수상이 선거가 무서워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그렇게 단순하게만 볼 수 없습니다. 시민적 성숙성이라는 기반이 없으면 불가능한 결정이죠. 독일에서 녹색당이 왜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겠어요? 열렬히 호응하는 시민들이 있기 때문이죠. 지금 우리나라에도 녹색당을 만들어보겠다는 그룹이 있는데, 당분간은 어려울 거라고 봅니다. 녹색당 창당이 가능하자면, 보다 기초적인 작업이 선행돼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단 하나라도 ‘사회적 은행’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운영해보는 게 중요합니다. 이런 협동체운동이 전국적으로 활발히 전개될 때 녹색당은 자연스럽게 생겨납니다.

 

노예의 돈에서 자유인의 돈으로

‘사회적 은행’의 경우는 현재 통용되고 있는 국가화폐를 가지고, 그것을 선용하는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역화폐운동은 기왕의 국가화폐가 아니라, 아예 화폐 자체를 지역공동체 자신이 독자적으로 만들어 사용하자는 아이디어입니다. 말하자면 돈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자는 거죠. 화폐발행권익이라는 게 있습니다. 화폐를 발행하는 주체가 화폐를 발행한다는 사실 자체로 인해 저절로 갖는 특권적인 이익을 말합니다. 이것을 ‘시뇨리지’라고 합니다. 지역화폐라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이 ‘시뇨리지’를 지역이나 공동체 자신이 차지하자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서 우리가 보통 돈이고 할 때는 대개 한국은행권을 말합니다. 그러면 ‘시뇨리지’는 한국은행이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돈 중에서 한국은행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낮아요. 지금부터 20~30년 전에는 전체통화량 가운데 30~40퍼센트쯤 됐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3~5퍼센트 정도일 거예요. 실제로 요즘 현금 가지고 다니면서 쓰는 사람 드물잖아요. 대개 일상생활에서 신용카드 쓰고, 송금할 때에도 현금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그냥 거의 전부가 전자부호로 결제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쓰는 이 전자부호로 표시된 돈은 결국 어디서 나온 겁니까?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입니다. 신용카드를 한번 생각해보세요. 내가 상점에서 물건을 사면서 카드를 내면 상점 쪽에서 전자기기를 통해 금융망에서 그 카드의 유효성을 확인합니다. 확인이 되면 결제가 됩니다. 결제가 되는 순간 그 이전까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돈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돈이라는 것은 은행이 고객에게 대부를 해주는 순간 창조됩니다. 내가 가진 예금계좌에 들어있는 돈에서 꺼내어 은행이 내게 돈을 주는 게 아닙니다. 결제하는 순간, 새로운 화폐가 창조되는 것입니다. 카드의 경우는 상점 쪽에서 수수료를 지불합니다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는 대출받은 고객이 이자를 물게 돼있죠. 여하튼 은행은 수수료든 이자든 대출을 해준 대가를 챙깁니다. 그것이 ‘시뇨리지’입니다. 우리가 흔히 시중은행이라고 부르는 민간은행들이 매일매일 개인이나 기업에 대출을 해준 대가로 챙기는 이자는 전체적으로 엄청난 금액입니다.

게다가 근대적 은행제도에서는 은행이 자기가 갖고 있지도 않은 돈을 대출하는 게 관행입니다. 그것이 부분준비제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은행이 100원을 가지고 있으면 1,000원을 대출해줄 수 있는 제도입니다. 그 비율은 스위스에 있는 국제결제은행의 규정에 따라 변동될 수 있고, 각국의 사정에 따라 중앙은행이 정한 규칙에 따라 다양합니다. 심지어 은행이 한푼도 없어도 얼마든지 돈을 대출할 수 있는 나라도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돈이 지금 우리가 실제로 사용하는 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돈은 사람들이 은행에 빚지고 있는 부채입니다. 은행에서 대부받은 돈은 반드시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에 원금에 이자를 붙여서 돌려줘야 하죠. 은행은 자기가 갖고 있지도 않은 돈을 빌려주고 거기다가 이자까지 붙여서 먹습니다.

한국은행이 지폐와 동전을 발행함으로써 얻는 이익도 물론 ‘시뇨리지’이지만, 그것은 지금 전체통화량 가운데서 미미한 비중밖에 차지하지 않습니다. 한국은행은 어쨌든 국가의 공공기관이니까 공공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민간 상업은행은 오로지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하여 운영되는 영리기관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시뇨리지’를 통한 막대한 이익을 민간은행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통화라는 것은 원래 국가면 국가, 지역이면 지역의 경제순환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전기나 수도나 철도처럼 국가가 국민의 안정된 생활을 위하여 최소한의 사용료를 받고 제공해야 할 공공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금융시스템은 그런 공공성에 대한 고려는 거의 없고, 민간금융업자와 자본가들의 사적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구조 속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언제나 서민들은 돈이 없고,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부채 때문에 망하고 자살하는 개인과 중소기업이 속출하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경제가 전반적으로 매우 불안정하고, 연방정부든 지방정부든 극심한 적자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흑자를 내는 주(州)가 하나 있는데, 노스다코타주입니다. 노스다코타는 재작년 이후 금융위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림 없이 튼튼한 재정을 유지하고, 실업률도 미국에서 최하위라고 합니다. 그렇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뭐냐 하면 노스다코타가 주립은행 시스템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19세기 말에 가난한 농민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신용조합이 발전하여 주립은행이 되었는데, 노스다코타주의 모든 공공회계, 공적기관의 재무출납 등이 모두 이 주립은행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해서, 가령 노스다코타의 주정부 예산 전체가 노스다코타주립은행에 예치되면, 부분준비제도의 원리에 의해 그 예산액보다 훨씬 많은 대출금, 즉 새로운 통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주에서는 민간 상업은행들이 차지하고 있는 ‘시뇨리지’를 노스다코타주에서는 노스다코타주립은행이라는 공공 금융기관이 차지하고 있는 셈이죠. 그 결과로 은행이 얻는 막대한 수익이 그대로 주의 다양한 공공사업에 필요한 자금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 그 돈으로 학교와 병원을 짓고, 아이들과 노인, 실업자를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도로와 다리를 만들고, 서민과 농민들을 지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노스다코타의 경우는 은행이 공공기관으로 역할을 하면 그 공동체의 삶이 얼마나 안정되고 풍요로워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주를 포함해서 여러 주에서 주립은행 신설운동이 시민운동 차원에서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노스다코타의 예가 큰 자극제가 된 거죠.

그런데 공공은행도 물론 중요하지만, 실은 가장 래디컬한 자주적 금융스템이자 우리가 당장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지역화폐입니다. 지난 2월에 제가 잠시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지역화폐에 관한 최근의 자료들을 보다가 일본 나고야 근교에서 한 젊은이가 세계 최초의 쌀본위제 지역화폐를 발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좀 자세히 알고 싶어서 급히 비행기를 타고 갔습니다. 30대 청년이더군요. 나고야대학을 다니다가 재미가 없어서 도중에 그만두고 몇년 동안 배낭 하나 메고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다가 돌아와서 지역화폐운동을 시작한 거예요. 이 젊은이는 지금은 일주일에 사나흘은 시내에서 일하고 나머지는 집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있어요. 일본사회의 희망은 유기농 농사에 있다고 믿고, 어떻게 하면 유기농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될까를 생각하다가 지역화폐운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유기농 농사를 하는 근처의 몇몇 농민들과 협약을 맺었습니다. 작년 봄에 쌀농사가 시작될 때 지역화폐 1만장을 발행했어요. ‘오무스비’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우리말로 옮기면 ‘연대’라는 뜻도 되고, ‘주먹밥’이라는 뜻도 있어요. 아무튼 지폐 한장이 유기농 현미 반홉에 해당되도록 설계를 했습니다. 농민들이 농사지어서 가을에 그 지폐를 쌀로 바꿔주면 되잖아요. 농사를 시작할 때 농민들에게 지역화폐를 주고, 농민들은 이것을 가지고 농사철 동안 논밭 일을 도와주러 오는 사람들에게 답례로 주기도 하고, 농민들과 그 지폐를 가진 사람들은 미리 약정된 인근 협력 상점들에서 이 지역화폐를 사용했습니다. 협력점은 카페나 식당, 구멍가게, 마사지점, 미장원, 이발소 등등 소규모 상점들 중심으로 30개쯤에서 시작했습니다. 상당수 사람들이 취지에 찬동해서 기꺼이 동참했습니다. 협력점 사람들은 장사에 별로 도움이 되는 것 같진 않지만 아이디어가 재미있어서 받아들인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 협력점으로 음식도 팔고, 차도 파는 가게에 제가 가보았습니다. 이 지역화폐를 들고 오는 사람은 많지는 않았지만, 자기들은 굉장히 재미있게 생각했고, 내년에도 계속 협력업체로서 참가할 생각이라고 하더군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오무스비’라는 지역화폐에는 쌀이 뒷받침이 돼있다는 사실이죠. 요즘은 미국달러이건 한국은행권이건 금은(金銀)이 뒷받침되어 있지 않아요. 그냥 국가가 보증하는 신용화폐일 뿐이죠. 그러나 지금 나고야에서 한 일본 청년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오무스비’라는 지역화폐는 엄연히 쌀이라는 인간생활에 매우 긴요한 물건이 뒷받침을 하고 있습니다. 신용이라는 점에서 이보다 더 확실한 신용이 없죠. 저는 기존의 지역화폐운동 중에서도 이 쌀본위제 지역화폐가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화폐는 협소한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서 비교적 광범위하게 활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 죽어가는 농사와 농민과 농촌을 되살릴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어요. 국가의 중앙은행이 발행하거나 기존의 민간은행이 발행한 화폐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서 우리가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뜻있는 시민단체가 농민들과 제휴를 해서 지역화폐를 만들어 널리 사용할 수 있는 조건과 분위기를 만들면 되는 거죠. 쌀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에 그냥 신용에 의존하는 지역화폐운동보다는 훨씬더 쉽게 확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고야의 이 쌀본위제 화폐는 작년 10월에 농사철 마지막에 총 1만장 중에 7,000장이 회수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미 쌀과 교환되었다고 합니다. 대단한 성공이죠. 이게 좀더 확산되면 사람들이 국가나 기존 금융시스템에 의지하지 않고, 얼마든지 자주적으로 이웃사람과 함께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일본 청년과 헤어질 때 제가 그랬어요. 나도 한국에 돌아가면 쌀본위제 지역화폐라는 아이디어를 널리 알리고 실행해보겠다고, 그래서 동아시아 쌀본위제 통화 네트워크를 함께 만들어보자고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런 운동이 확대되면 우리나라도 희망이 생길 것입니다.

제가 ‘사회적 은행’이라든지 지역화폐라든지, 기존의 금융제도를 벗어난 통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는 이유는 우리 각자가 주체적인 자유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점도 있지만, 이대로 기존의 통화제도가 우리 삶을 지배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대로 가면 얼마 안 가서 세상은 반드시 망하게 돼있습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금융통화제도는 경제성장을 강요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근대적 통화제도에서 화폐는 기본적으로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 즉 부채입니다. 그런데 은행은 대출을 해줄 때 고객에게 이자까지는 주지 않습니다. 원금만 대부해주는 거죠. 모든 사람이 은행으로부터 원금만 대부받습니다. 은행에 상환할 때 필요한 이자는 은행에서 발행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은행에 돈을 갚을 때 물어야 하는 이자는 어디서 나옵니까? 다른 사람들로부터 빼앗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극심한 경쟁을 할 수밖에 없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그 이자를 마련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경제규모를 확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성장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뜻이죠. 오늘날 국가적으로 경제성장이 필요한 것은 사람들의 추상적인 탐욕 때문이 아닙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은행에서 대출받은 원금에다가 이자를 갚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대로 그러한 경제성장이 계속된다면 조만간 세상은 끝장납니다. 그러므로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경제성장을 멈추고, 지속가능한 생활방식을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경제성장을 멈추려면 금융통화제도부터 고쳐야 합니다. 이 제도를 그냥 두고 아무리 성장 없는 경제에 대해서 말해봤자 헛일입니다.

그런데 기존의 금융통화제도를 국가적 차원에서 개혁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이미 이 제도 때문에 막대한 이익을 보는 강력한 기득권 세력이 있고, 그들이 국가권력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습니다. 세계경제도 마찬가집니다. 달러 지배체제가 붕괴하면 붕괴했지, 달러체제로 엄청난 이익을 취하고 있는 기득권 세력이 통화제도의 발본적 개혁을 지지하거나 묵인할 리가 없습니다. 결국은 풀뿌리 차원에서 이러한 지배적인 금융통화제도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자주적인 삶의 공간을 구축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그것이 지역화폐운동입니다. 자연환경을 살리는 것도, 농촌을 살리고 지역사회를 살리는 일도 결국은 지역화폐와 같은 자주적 협동운동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역화폐운동이 필요한 것은 지구의 장래만이 아니라 우리들 각자가 자유인으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들끼리 협동하고 연대를 하면 만사가 해결됩니다. 기존의 금융지배자들이 던져주는 푼돈에 매여서 하루하루 노예처럼 살아갈 이유가 없습니다. 돈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그 정체와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리하여 자본가와 은행업자들이 차지하고 있는 ‘시뇨리지’를 우리 자신이 차지하자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 자신이 자주적으로 살고,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살리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방책입니다.


김종철 ― 본지 발행인. 이 강연기록은 지난 6월 2일 ‘평화나눔아카데미’에서 했던 얘기를 정리, 보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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