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제116호 2011년 1-2월호  인쇄용  

 

  전쟁의 원인

  클리포드 더글러스

 

전쟁이라는 문제의 진실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먼저 전쟁이 무엇인지 확실히 해야 할 것이다. 기술적으로 정의하면, 전쟁은 나 자신의 의지를 적(敵)에게 덮어씌우거나 적이 나에게 자기의 의지를 덮어씌우지 않도록 취해진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정의에서 중요한 고려사항은 전쟁의 방법이 아니라 동기임을 우리는 알아차릴 수 있다. 오늘날 전쟁의 동기를 제거하는 데보다도 전쟁의 방법을 개선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가 바쳐지고 있다. 이 사실을 인식한다면, 우리가 누리는 게 결코 평화가 아니라, 다만 전쟁의 형태가 변할 뿐이라는 사실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군대를 동원한 전쟁은 국가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진술은 우리가 국가를 없애면 전쟁을 없앨 수 있다는 순진한, 그리고 내 생각에는, 명백히 잘못된 생각의 근거가 되어있다. 이것은 마치 세무서를 없애면 세금을 낼 필요가 없어진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경계를 확장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전쟁의 원인은 모든 마을 하나하나 속에 있다.

국가의 운명을 이끌어나간다고 하는 정치가들의 문제를 살펴보면 우리는 전쟁의 주된 원인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정치가들은 자신들의 일차적 문제가 국민들을 위한 고용 확대, 상업적 번영이라는 데에 동의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 중 이것을 달성하는 첩경이 해외시장을 장악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국제무역에 관한 이 흔한 이론에 동의할 때, 우리는 전쟁으로 가는 길에 이미 발을 들여놓은 셈이다. ‘장악’이라는 말은 다른 나라로부터 무엇인가를 약탈하려는 욕망을 드러낸다. 완전고용 상태가 아니고는 번영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약탈적 욕망과 결별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하여 상대편에게 자신의 의지를 덮어씌우고자 하며, 그 결과 경제적 전쟁이 일어나고, 그것은 언제나 군사적 충돌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른바 전쟁의 심리적 원인들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원인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못마땅한 일들에 대한 반응일 뿐이다. 사람들이 못마땅한 일에 시달리다보면 누구나 싸우게 된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들을 괴롭히지 말라는 경고이지, 인간성 자체에 대해 언급하는 게 아니다. 경제적 전쟁을 유발하는 것은 심리적 고통이 아니며, 경제적 전쟁이 심리적 고통을 준다. 군사적 전쟁은 경제적 전쟁이 강화된 것으로, 경제전쟁과 오직 방법상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원리는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무기(武器)산업은 그것이 고용주들에게 이윤을 가져다주는 만큼 고용과 고임금을 제공해준다. 그런 경우 고용주의 죄와 피고용인의 죄 사이에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무기산업에 아무 이해관계가 없지만, 대기업 활동에 대해서는 꽤 익숙한 편이다. 나는 무기산업에 관련해서 우리가 흔히 들어온 뇌물과 부패 문제가 다른 산업분야보다 이 분야에서 더 심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실업상태의 제거가 위정자의 일차적 목표이며, 해외시장 장악이 이 목표를 달성하는 첩경이라는 사실에 우리가 동의하는 한, 우리에게는 군사적 전쟁으로 이어지는 경제적 갈등요소가 언제나 갖추어져 있고, 그것도 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왜냐하면 생산은 동력기계의 사용을 통해서 팽창하고, 미개발 시장은 축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불충분할 뿐만 아니라 줄어들고 있는 시장을 차지하려고 서로 경쟁하고 있는 두개의 식료품가게를 가진 마을은 어떤 마을이든지 전쟁의 경제적 원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비근한 사례가 된다. 그 상황은 실제로 경제적 수단에 의한 전쟁상태이다.

 

나는 어떤 나라 혹은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전쟁의 사악함과 끔찍함에 관해 설교를 하고, 군사적 전쟁이나 무기 거래를 철폐하도록 선의(善意)를 발휘해줄 것을 요청한다는 것은 별로 현명한 일이 못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마을 식료품가게 하나가 식료품 영업 전체를 장악하고 나머지 가게와 그 종업원들이 고통을 받게 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한, 그것은 무의미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무역 전체를 장악하면 이렇게 장악을 당한 나라 사람들은 실업상태에 머물게 되고,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은 심한 고통을 겪을 것이다.

인간성이 가장 극심한 시련을 겪게 만드는 것은 빈곤과 경제적 불안정성이다. 이 진술은 자살 통계를 기업 불황과 파산 통계와 비교해보면 쉽게 입증될 수 있다. 자살은 전쟁 동안에는 상대적으로 드문데, 그것은 사람들이 전쟁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전쟁 동안에는 돈이 더 많이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상업거래가 활발할 때 자살 발생 건수는 줄어든다.

그러므로 전쟁이 필연적인 것인지 여부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는 첫째, 전체 인구가 반드시 고용되어 있지 않더라도 모든 사람이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을 만큼 진정한 부(富)가 존재하고 있는지, 둘째,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이러한 부의 분배를 방해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를 알 필요가 있다. 첫째 질문에 대한 대답에 대해서는 어떠한 의문도 있을 수 없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지금 모두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에 익숙해지고 있다. 즉 지난 십년간의 위기는 물자의 과잉으로 인한 위기이지 부족(不足)으로 인한 위기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지금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위기 동안에 빈곤은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그렇게 된 것은 실업이 만연돼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완전고용이 우리에게 필요한 부를 생산하는 데 필수적인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적 증거를 갖고 있다. 완전고용이 필요한 것은 오직 임금의 분배라는 전혀 다른 목적 때문이다.

따라서 둘째 질문에 대한 답변도 명확하다. 즉 사람들이 빈곤에 허덕이는 것은 물자의 부족이 아니라, 그것을 구매할 수 있는 돈의 부족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제도 밑에서 오늘날 돈은 일차적으로 고용상태에 따라서 분배되고 있다. 그런데 물자 과잉 상황이 보여주고 있듯이, 일자리는 많은 경우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하지도 않고, 혹은 심지어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전쟁의 원인과 ‘풍요 속의 빈곤’의 원인은 동일하며, 그것은 화폐 및 임금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대체로 말해서, 빈곤에 대한 치유책과 전쟁의 원인 제거는 그냥 화폐제도만 교정(矯正)하면 된다고 할 수 있다. 내 생각에, 이 교정은 국민배당(National Dividend)이라는 형태를 취하여, 분배할 수 있는 부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그 누구도 돈이 없어서 물자를 확보할 수 없는 일은 없게 해야 한다. 이미 밝혀졌듯이, 오늘날 돈은 농사나 산업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은행시스템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은행에 관한 항목은 “은행들은 허공에서 지불수단을 만들어냄으로써 돈을 대출한다”고 명확히 진술하고 있다.

‘국민배당’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산업 시스템에 의해 생산된 물자들을 구매할 힘을 부여할 것이다. 그런데 이 국민배당 제안이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사회주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확실히 하는 것은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사회주의의 주요 아이디어는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정부기관에 의한 그 운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제안이 갖는 장점이 무엇이든 그것은 우리가 지금 고려하고 있는 어려움에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배당의 실시는 단지 시민 각자의 손에 배당이라는 형태로 지금 국가부채(National Debt)라고 알려져 있는 것을, 이미 개인들의 손에 들어있는 것은 몰수하지 않고, 분배하는 것을 말한다. 국민신용(National Credit)은 오늘날 개인들에게 수입을 제공하고 있는 국가부채 몫보다도 실제로 훨씬 더 크다.

국민배당이 가져다줄 실제적인 효과는 첫째, 개인들에게 안정된 소득원을 제공할 것이다. 개인들은 노동에 종사함으로써 이 배당액을 더 늘리는 게 바람직하겠지만, 그러나 이 배당금만으로도 자존감과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구매력을 갖게 될 것이다. 국민배당은 우리의 생산 시스템에 일정한 수요를 유지시킴으로써 산업 조건을 안정화하고, 생산자들에게 안정된 국내시장을 확보해줄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러한 시스템의 단초를 다양한 연금제도와 실업보험 등에서 보고 있지만, 그러나 이런 제도는 과세 제도에 연관되어 제공되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이 갖는 이점(利點)들이 상쇄돼버리고 만다는 결함이 있다. 지금과 같은 화폐시스템에서는 이것은 불가피하지만, 기본적으로 공공적 성격을 가진 화폐시스템이 정당하게 인식된다면 그것은 더이상 불가피한 것이 되지 않을 것이다. 화폐제도는 당연히 공공성을 가진 것이지만, 이 사실을 아직 은행가들은 시인하지 않고 있다.

국민배당의 실시가 영국 쪽의 공격적 전쟁의 주된 동기를 제거한다고 할지라도, 어째서 그것이 다른 나라가 우리에게 전쟁을 걸어오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다는 것인지, 당연히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나는 여기에 대한 답변은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약한 나라가, 특히 그 나라가 부유할 경우, 평화를 만들어내는 요인이 된다고 보는 것은 감상적인 생각이라고 나는 믿는다. 실은 정반대일 것이다. 그렇게 보는 것은 은행이 종이로 된 벽을 갖고 있다면 털리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치에 맞지 않다. 국제 은행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비무장을 옹호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은행에 고용된 직원들은 이 나라의 민간기업 종사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권총으로 무장돼 있고, 은행 건물들은 근대적 군사 요새(要塞)와 비교될 정도로 견고히 방비되어 있다.

공격을 위한 동기가 없다면 강한 힘은 평화를 위한 요인이 될 수 있다. 현존 금융시스템의 근원적인 개혁을 통해서 경제적 분열로부터 해방된 강하고 통합된 국가를 세우는 게 가능할 것이다. 그러면 그 나라는 그 힘에 의해서 공격적 전쟁에 대한 강력한 억지력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둘째, 기꺼이 무역을 하려고 하되 실업문제 때문에 무역전쟁에 내몰리는 일은 없을, 안정되고 번영하는 나라는 진정한 진보라는 게 무엇인지 세계에 보여주는 전범이 되고, 도처에서 그것을 모방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개혁이 왜 이루어지지 말아야 하는가?

은행가들이 전쟁을 부추기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진실은 그 반대일 것이다. 은행가들도 전쟁을 싫어한다. 다만 그들이 전쟁보다 금융시스템의 변혁을 더 싫어한다는 게 문제이다. 현행의 금융시스템에 대해서 그들은 공동체의 구성원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완전히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김정현 옮김)


클리포드 더글러스(Clifford Douglas, 1879―1952) ― 엔지니어. 1920년대에 영국에서 시작된 사회신용운동의 개척자이다. 그의 사회신용론에 대해서는 본지 113호(2010년 7―8월)에 상세하게 소개된 바 있다. 이 글은 1934년에 BBC 라디오 방송에서 행한 강연기록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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