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제113호 2010년 7-8월호  인쇄용  

 

  더글러스의 사회신용론

  억눌려온 대안

  마이클 로우보섬

 

클리포드 더글러스 소령은 1920년대 영국에서 시작된 ‘사회신용’운동의 창시자였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수년간 더글러스는 화폐개혁에 관한 논의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19세기 동안 은행에 관한 많은 논쟁이 있었고, 은행의 권력과 정부의 직무유기에 대해 많은 비판이 행해졌었다. 그러나 더글러스는 이런 수준을 넘어서서 부채에 기반을 둔 금융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화폐개혁의 정치적 의미를 예리하게 분석하여 보여주었다.

더글러스는 자기 분야에서 탁월한 엔지니어였다. 그는 직업적 문필가도 아니었고, 훈련받은 경제학자도, 대학교수도, 정치철학자도 아니었다. 그의 첫 저서 《경제적 민주주의》는 1919년에 《새 시대》에 연재되었다. 《새 정치가》의 전신(前身)인 이 잡지는 당시 지도적 문예 및 정치 저술가들을 위한 포럼이었다. 실무적인 지식과 경험을 가진 엔지니어일 뿐 저술가로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사람에게 그러한 잡지에 자신의 견해를 표명할 기회가 제공된 것은 그 자체 괄목할만한 일이었다. 그 무렵 정치와 경제는 여전히 문필가들의 주제였다. 그러나 《새 시대》의 편집자, A. R. 오레이지는 더글러스가 자신이 다루는 문제에 관해 독특한 이해를 갖고 있으며, 독자적인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임을 알아보았다. 오레이지는 더글러스의 작업이 응당 누려야 할 주목을 받게 해주었고, 그 결과 《경제적 민주주의》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반응은 통렬한 매도와 미심쩍음이 섞인 오해, 그리고 열광적인 환호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더글러스는 종래의 금융시스템이 근원적으로 불안정하며, 경제를 지탱하기에 부적당한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금융시스템 때문에 경제가 끊임없는 새로운 투자와 성장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끊임없는 성장이 없다면 경제는 슬럼프에 빠지고 결국 붕괴될 것이었다. 더글러스는 그러한 금융시스템과 돈을 만들어내는 금융권력을 비판했다. 그러나 그의 분석은 경제가 은행신용에 의존함으로써 어떻게 잘못 기능하는지 그 방식에 집중되었다. 그는 특히 기업이 갖고 있는 부채에 관련하여 기업활동에 수반하는 비용이 발생하는 방식과 이러한 비용의 결과로서 가격이 정해지는 방식에 주의를 환기하였다. 여기에 드러난 것이 구매력의 결핍현상, 즉 소비자 쪽에서 경제의 생산물을 살 수 있는 능력의 부족이었다. 실제로, ‘구매력 결핍’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든 사람이 바로 더글러스였다.

 

더글러스의 금융분석

기업의 비용과 가격 책정에 관한 더글러스의 분석은 ‘A+B 정리(定理)’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정리의 핵심은 경제에서 가격이란 늘 소득분배보다 더 큰 비율로 생성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구(電球)를 생산하기 위해서 설립된 새로운 기업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한번 보자.

새 전구회사 설립을 위한 투자에서 돈이 배분된다. 나중에 전구가 시장에 나오게 될 때 그 전구의 가격은 이 투자된 돈을 회수할 필요성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투자된 돈은 ‘제(諸)경비’에 포함되어 기업의 비용에 반영될 것이다. 이 사실이 뜻하는 것은 그 전구들의 총가격은 기업에서 지불되는 임금과 샐러리의 총액보다도 더 높다는 것이다. 기업은 과거에, 즉 투자기간 동안에 배분된 돈을 회수하고자 한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그 돈을 이미 써버렸을 것이기 때문에 그 돈을 더이상 갖고 있지 않다. 그 회사는 자신이 생산한 모든 전구를 구입할 만큼 충분한 소득을 분배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회사들에 의해 분배된 구매력을 ‘포획’하는 데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들 다른 회사들도 역시 투자시에 빚으로 제(諸)경비를 지불하였으므로 그들 역시 자신들의 상품들을 살 수 있는 충분한 소득을 분배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어떤 순간이건 모든 상품의 총가격은 소비자의 총구매력보다 훨씬더 높을 수밖에 없다.

시장에 나와 있는 모든 상품이 팔릴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은 또다른 기업, 예컨대 조반용 시리얼 제조회사가 창립되는 것이다. 이 새로운 공장설립에 따른 투자가 새로운 대출금을 경제 속으로 주입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그 회사의 새로운 상품이 시장으로 나오기 전에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이 추가적인 돈이 저 전구회사를 포함한 다른 기업들에 의한 구매력 결핍을 메워줄 것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조반용 시리얼이 시장에 나오기 시작할 때, 그 기업주 역시 자신의 대출금을 갚기 위한 가격을 책정할 것이다. 그러면 다시 동일한 과정이 되풀이된다.

이것은 하나의 정해진 패턴이 되었다. 즉, 현재의 상품판매는 늘 더 많은 대출금, 생산활동을 시작하기 앞서서 돈을 분배하는 새로운 기업들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 패턴이 깨진다면, 즉 경제가 끊임없이 성장하고 확장되지 않는다면, 현재의 생산시스템 속에서의 구매력 결핍 현상은 뚜렷하게 드러나 팔리지 않는 상품들이 쌓이기 시작할 것이다. 팔리지 않은 상품이란 어디선가 누군가가 ― 공장, 도매상 혹은 가게주인이 빚을 지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생산물들을 살 수 없는 점점 갈수록 불편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 결과, 경제는 불황의 고통을 겪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새로운 투자에 의해서만 회피할 수 있다.

더글러스는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경제는 재화와 서비스의 분배를 위해 성장을 하지 않을 수 없음을 지적하였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늘 어제 생산된 것을 사기 위하여 오늘 일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시장에 나와있는 상품을 사는 데 충분한 임금을 분배하기 위해서라도 성장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불경기 상황에서, 이러한 분석은 엄청난 현실성을 띠었다. 그 분석은 상품의 잉여, 일반대중의 구매력 결여, 그리고 무거운 빚에 시달리는 기업의 현실을 상호연결해서 설명할 수 있게 해주었다.

 

공격받는 경제학

이것은 금융시스템에 대한 강력한 공격일 뿐만 아니라 경제학자들의 근본가정들에 대한 공격이기도 했다. 더글러스는 경제가 그 상품들의 분배에 관련하여 위기에 이르렀음을 지적하였다. 더글러스에 의해 하나의 주요한 경제적 논점이 터져나왔고, 이것은 단순히 학술적인 논쟁거리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당대의 정치적 토의를 지배했으며 하나의 중요한 대중운동을 출현시켰다.

오늘날에도 많은 교과서의 첫 부분에서 발견되는 고전경제학의 중심가정의 하나는 사람들이 충분한 상품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경제학은 희소 자원에 관한 연구 ― 그러니까 본질적으로 ‘갈등’에 관한 연구라는 것이다. 더글러스는 이 기초적인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풍요 속의 빈곤현상을 지적하였다. 현실에는 분배되지 않은 풍부한 물자가 있고, 게다가 실업이라는 형태의 불평등하게 분배된 여가가 있었다. 물론 갈등이 존재하고 있지만 그것은 희소 자원에 기인하는 게 아니었다. 갈등은 ‘분배의 실패’에 기인하는 것이지, 생산의 결핍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분배의 문제를 ‘고용’이라는 해결책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잘못이었다. 고용의 추구는 초점이탈이며, 더 많은 생산에 의해 분배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분배문제의 회귀를 불가피하게 한다.

더욱이, 더글러스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더 많은 전구나 조반용 시리얼을 필요로 하는지 어떤지 하는 문제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소득을 분배해야 할 필요성에 대하여 부차적인 것이 되었음을 강조했다. 현재의 경제 생산능력, 그리고 사람들이 실제로 경제성장을 원하는지 여부와 그러한 성장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관한 고려는 점점 갈수록 무시되고 있었다.    따라서 더글러스는 전후(戰後) 불황의 타개책으로서 고용에 매달리는 것을 비판하였다. 불황은 고용의 결여가 아니라 금융시스템에 의해 발생한 것이었다. 더글러스는 더 나아갔다. 고용의 추구는 잘못일 뿐만 아니라, 기술의 발전에 비추어 볼 때 위험한 정책이었다.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경제의 노예가 되어가는 위험에 처해있었다. 끊임없는 투자에 의존하는 경제가 발전되어가는 기술과 고용의 추구에 결합되면 발전이 가속화되는 시대가 될 것이며, 거기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잉여적인 존재가 되고, 보다 향상된 진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재고용되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었다. 그 결과 과잉생산, 수출잉여, 저질 상품, 그리고 아무도 실제로 원치 않는 상품들이 필연적으로 쏟아질 것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더글러스는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이미 지난 50년간 우리 시대의 특징이었던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예견했다. 경제성장은 많은 혜택을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엄청난 사회적·환경적 대가를 치르게 했고, 굉장한 낭비를 동반하였다. 사실상 ‘쓰고 버리는 사회’는 약 80년 전에 더글러스에 의해 예언되었던 것이다!

희소성이라는 문제를 건드림으로써 더글러스는 고전경제학의 중심적 신조에 위협을 가했지만, 그러나 그는 경제붕괴의 책임이 금융에 있다고 봄으로써 자기 시대의, 그리고 우리 시대의 가장 강력한 체제에 위협을 가했다. 그는 정신이상자라는 비난에서 경제적 반역자라는 비난에 이르기까지 온갖 욕을 먹었지만,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시스템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지, 인간이 시스템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의견을 명확히 표명했다.

그런데 현대의 금융시스템은 사람에게 봉사하는 하인이 아니라, 사람을 지배하는 독재자였다. 그러나 가장 큰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은 경제시스템의 전반적 목적에 관한 더글러스의 예리한 통찰이 아니라, 경제학자들과 ― 특히 금융분야에서 ― 맞붙을 수 있는 그의 능력이었다.

공황은 경제학을 혼돈에 빠트렸다. 왜냐하면 고전경제학에 의하면 그러한 대불황은 일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기업에 대한 은행융자가 구매력 결핍을 발생시켰다는 더글러스의 논리는 경제학의 저 근본적인 명제, 즉 ‘세이의 법칙’을 완전히 매도하는 것이었다. ‘세이의 법칙’에 의하면, 상품생산의 과정은 생산된 모든 상품을 살 수 있는 충분한 구매력을 자동적으로 분배하는 것이었다. 더글러스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말한다. “오직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사람들과 … 괴짜들만 달리 믿는다. 모든 고명한 경제학자들은 생산으로부터 언제든 생산된 것을 살 만큼 충분한 구매력이 흘러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고명한 경제학자들은 더글러스의 구매력 결핍 논리와 그의 A+B 정리(定理)를 공격하기 위하여 대거 개입했다.

일반 경제학자들이 더글러스의 분석에 대해 되풀이하여 그것이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한 것은 경제 전체를 통해서 기업들이 상이한 발전단계들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어떤 기업은 투자를 하고, 어떤 기업은 생산을 하며, 어떤 기업은 문을 닫는다. 그리하여 다양한 국면들이 상호균형을 맞추게 된다. 투자 기업이 생산활동 개시 이전에 분배한 임금은 다른 기업들의 필요에 당연히 기여한다. 즉, 그 기업들은 과거의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서, 생산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소득으로 분배되는 것보다 더 많은 가격을 매겨야 할 필요에 직면한다. 더글러스는 이것이야말로 정확히 자신의 논리의 핵심이라고 말하였다. 즉, 단지 그러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투자와 성장이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일반 경제학자들이 안정적인 역학을 본 것에서 더글러스는 불안정한 역학을 보았다. 양자의 차이는 금융시스템에 관한 더글러스의 통찰에 기인하였다. 오늘날 금융시스템에서 대부분의 돈은 부채로서 만들어지고 유통되고 있으며, 이 금융시스템 위에 모든 경제가 구축되어 있다는 통찰 말이다.

경제가 부채를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빚―돈을 사용하는 발전이 시작되면 그 발전은 순식간에 더글러스가 묘사한 바와 같은 투자와 ‘시간간격’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더글러스의 분석은 실제로 매우 역동적이고 정확한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의 생산물을 사기 위하여 현재의 임금이 필요하다고 하는 ‘시간간격’ 개념은 오늘날 주택 모기지(mortgage) 제도 속에 전형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사람들은 수십년 혹은 어쩌면 수세기 전에 건축된 주택에 대한 값을 지불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현재의 소득을 20년간이나 파먹어야 하는 것이다.

더글러스가 저술활동을 하고 있을 때, 지금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막대한 소비자 부채는 존재하지 않았다. 화폐공급에 관련된 부채의 대부분은 기업부채이거나 정부부채였다. 소비자들이 ― 구매력 결핍 때문에 ― 감당할 수 없는 물가에 직면해있다는 더글러스의 논리는 오늘날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수없이 많은 형태의 ‘구매를 위한 차입’에서 가장 확실히 증명되고 있다. 하지만 더글러스와 그의 추종자들에게는 그러한 확실한 증명이 아직 주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더글러스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많은 다른 증거가 존재했고, 그와 그의 지지자들은 되풀이하여 그 증거를 가리켰다.

A+B 정리(定理)는,

구매력과 가격이 모두 하나의 흐름으로 간주된다면, 구매력은 가격에 필적할 수 없다는 주장이며 … 사보타지에 관한 문헌들에는 그 풍부한 예들이 나와있다. 예를 들어, 팔리지 않거나 가격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수확한 밀을 연료로 불태운다든지, 수백만개의 커피 자루를 파괴한다든지, 아르헨티나의 들에서 송아지들을 총으로 쏘아 죽인다든지, 고무 채취를 억제한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제 소비재들의 적체(積滯) 문제는 반(半)휴업상태에 있는 공장들, 대규모 실업 혹은 경작지 축소로 대변되는 광대한 미사용(未使用)의 생산력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 그러므로 현실적 혹은 물리적 관점에서 볼 때, 세계는 실제로는 부유하고, 실제의 재화 및 서비스의 면에서 지금보다 휠씬더 부유해질 수 있으며, 따라서 경제적 궁핍이란 시대착오적인 현상이라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고 우리가 보는 것은 정당하다. … 하지만 정부 대변인들은 우리가 매우 엄혹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고, 금융경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 명백히, 이 두개의 그림은 양립할 수 없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동시에 부유하면서 궁핍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하여, 금융시스템은 물리적·경제적 생산시스템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사실과 논리가 우리가 부유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데, 금융시스템은 우리가 빈곤하다고 한다면, 결핍된 것은 구매력이지 상품이 아니라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즉, 시장에 나와있는 상품들의 총가격은 그 상품들을 살 수 있는 구매력을 능가하고 있는 것이다. ― 더글러스, 《신경제학과 구경제학》, 1973

더글러스의 분석은 되풀이되는 호황과 불황에 대한 설명을 제공해주기도 하였다.

우리들 ‘사회신용론자’들은 현재의 화폐제도가 사실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반대파는 반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여러분의 상식에 맡기고자 한다. 1929년에 거의 열병처럼 번영한 것처럼 보이던 세계가 1930년에 그토록 가난해졌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그처럼 순식간에 너무도 근본적으로 변하여 모든 조건이 역전되고, 세계가 비참할 만큼 궁핍해진다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1929년 10월 특정일과 그 후 불과 수개월 사이에 세계가 부유한 세계에서 궁핍한 세계로 변했다고 생각하는 게 이치에 맞는 일인가? 분명히 그렇지 않다. ― 더글러스, 《현실에의 접근》, 1966

공황 당시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세이의 법칙’을 지지하였고, 공황의 원인이 소비되지 않은 저축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달리 말하면, 저축을 경제 속으로 되돌려놓을 투자의 결핍이 상품이 판매되지 않는 원인이라는 것이었다. 더글러스는 저축 수준과 은행예금이 불경기 동안 급격히 떨어졌음을 지적할 수 있었다. 저축이 공황의 원인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실제로 그러한 주장은 명백히 오류였다. 뿐만 아니라, 더글러스는 은행대출시스템이란 한사람이 저축한 돈을 다른 사람이 투자를 위해서 빌려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였다. 대출은 새로운 돈을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은행대출제도에 의한 화폐의 창조라는 사실은 그 당시 널리 인정되고 있지 않았다. 더글러스 때문에 금융경제학자들이 ‘쫓기고’ 있었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게 온건한 말이다. 그는 그 분야의 많은 경제학자들보다 사태의 진상을 더 정확히 알고 있었다.

1928년의 ‘맥밀란위원회’는 불황에 관련하여 금융제도를 조사하고, 더글러스 등이 제기한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 만들어진 의회조사기구였다. 더글러스 자신이 위원회에 소환되어 증거를 제출하였지만, 권력자들 사이에서 더글러스의 동조자는 거의 없었다. 그의 분석과 개혁안은 거부되었다. 그러나, 은행이 돈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에 대한 공개적인 시인(是認)이 최초로 거기에서 이루어졌다. 위원회의 보고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대부분의 예금은 은행업 그 자체로부터 나온다. … 은행은 창조된 신용 혹은 구매된 투자가 애초의 현금으로 된 예금액의 아홉배가 될 때까지 대출 혹은 투자구매를 계속할 수 있다. ― 《현실에의 접근》

그 보고서에는 또한 더글러스의 논리에 대한 암묵적인 승인도 들어있었다. 왜냐하면 맥밀란위원회는 경제가 투자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불황기 동안에는 민간투자가 절망적일 정도로 저조하기 때문에 정부가 공적 부채로써 경제를 재부양시켜야 한다고 보고서는 권고하였다. 하지만 정부는 그 권고를 무시하였다.

 

‘국민배당’― 기본소득론

더글러스 저술의 주요 난점의 하나는 그의 개혁안을 제출하는 방식에 있었다. 그는 보통 계획안을 제시하기보다 원리를 논의하기를 즐겼고, 어떤 것이라도 특정 개혁은 목적에 이르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라고 늘 강조했다. 그러나 여러해에 걸쳐서 더글러스는 일련의 구체적인 조처들의 대강(大綱)을 제시하고, 다양한 계획안을 내놓았다. 거기에는 두가지 되풀이되는 테마가 있었다. 첫째는 구매력과 가격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소득분배 때문에, 그리고 경제불황을 막기 위하여 새로이 투자하거나 경제를 확장할 필요없이 시장에 나와있는 상품을 구매할 수 있어야 한다. 두번째 원리는 은행시스템이 만들어낸 부채를 상쇄하기 위하여 정부가 부채로부터 자유로운 돈을 창조하고 공급할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두개의 원리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었다.

더글러스가 제안한 최초의 개혁은 기업에 대한 가격보조금이었다. 그는 그것을 ‘정당가격’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이 시장에 나와있는 상품들을 살 수 없는 이유는 상품가격이 현재의 소득보다 높기 때문이다. 돈을 만들어 그것을 기업에 보조금으로 제공함으로써 정부는 가격저하를 보장할 수 있고, 그 결과로 사람들이 상품을 살 수 있는 능력을 더 갖추게 되며 기업은 자신의 비용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이었다. 이 제안은 더글러스가 결코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다른 개혁안 때문에 빠른 속도로 그 중요성이 감소되었다.

그 다른 개혁안이란 보편적 기본소득제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더글러스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주로 이 개혁안 때문이다. 더글러스는 기본소득 혹은 ‘국민배당’을 지급할 것을 제안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의 권리로 지급되어야 할 소득이다. 이 기본소득은 금융제도의 결함을 보완하고, 또한 그에 관련된 실업문제에 기여하도록 고안된 개혁조치였다. 실업은 현대적 기술의 도래와 함께 끊임없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더글러스는 보았다.

기본소득은 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화폐로 지급되어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 화폐는 어떠한 때든 구매력과 물가가 맞아떨어질 만큼 충분히 공급되어야 할 것이었다. 이 화폐는 시민배당의 형태로 모든 사람들에게 지급되어, 개인이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벌든 그의 소득을 뒷받침해줄 것이었다. 그 덕분으로 상품에 대한 구매력이 높아지고, 실업으로 인한 빈곤을 경감하며, 실업자가 일자리를 찾거나 자기 사업을 마련하는 동안 재정적 토대를 제공해주게 될 것이었다. 그러한 기본소득이 모든 사람들에게 지급되기 때문에 취업 중인 사람들도 특정한 고용주에게 의존할 필요가 줄어들며, 그들의 지위도 크게 개선될 것이었다. 그것은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개혁안이었다.

더글러스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경제를 위해서도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기본소득을 실시해야 할 사회적 및 경제적 근거가 있고, 그것은 모두 강력한 것이었다. 금융제도의 결함을 고려할 때, 기본소득은 ― 경제에 명백히 필요한 ― 부채로부터 자유로운 화폐를 경제 속으로 투입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제공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정부화폐로써 지급되는 것이다. 그것은 은행제도가 만들어낸 부채를 상쇄하도록 고안된, 빚과 무관한 돈이다. 만약 그러한 돈이 직접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경제 속으로 투입된다면 은행제도로 인해 유발된 구매력 결핍현상을 벌충하게 될 것이었다. 기본소득액은 부채를 기반으로 한 성장이 계속될 필요없이 상품이 팔릴 수 있을 만큼 구매력을 촉진하도록 조정될 것이었다. 이 돈은 소비자들에 직접 분배되는 것이므로 기업을 우회하고, 따라서 비용을 끌어올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물가상승 없이 구매력이 높아질 것이고, 따라서 인플레와 부채 발생은 회피될 것이었다. 이렇게 된다면 경제는 재정적으로 안정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할 사회적 근거 역시 강력한 것이었다. 사람들에게는 어떤 종류의 소득이 기본적인 권리로서 필요한 법이다. 그들은 생활필수품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기본소득과 실업수당을 완전히 구별짓는 두개의 근본적 요소가 있다. 첫째,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른 소득이 있건 없건, 지급되는 것이다. 둘째, 그것은 실업수당처럼 다른 사람들이 번 소득을 재분배하는 게 아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을 위한 기본소득 ― 사람들이 노동을 통해서 번 임금을 보충하고 그것을 토대로 생활을 뒷받침할 수 있는 소득 ― 은 모든 사람들의 공통한 재정적 토대를 제공한다. 일자리를 구했다고 해서 기본소득이 철회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기본소득은 건설적인 방식으로 실업상태를 지원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취업 중인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줄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에 그들의 일자리가 위협받거나 고용주가 그들을 부당하게 착취하려고 할 때 기본소득은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예비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본소득은 경제구조와 고용주와의 관련에서 노동자들의 지위를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다. 사람들은 더이상 재정적으로 취약한 처지에 놓여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글러스는 또한 인간노동이 기계 혹은 테크놀로지로 대체되어온 상황을 기본소득이 반영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기본소득은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따른 혜택을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은 더글러스가 명명한 ‘문화적 유산’ 때문이다. 이 테크놀로지의 발전이라는 현실을 진실되게 반영하여 기본소득은 강제된 노동을 줄여줄 것이다. 기본소득은 또한 사람들이 생산자는 아닐지라도 소비자로서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줄 것이다. 그리하여 진보의 결과가 실업자들에게 소득의 상실이라는 재앙을 안겨주는 게 아니라 그 혜택을 나눌 수 있게 하는 하나의 피드백 메커니즘으로서 기본소득이 역할하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본소득은 개인별로 지급되기 때문에 육체노동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게 될 것이었다. 그래서 좀더 노동집약적인 일들이 고도로 기계화된 사업과 경쟁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었다. 결국 기본소득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상품의 질을 보증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노동방식도 보증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더글러스가 제창한 것은 정적(靜的)이고 비타협적인 개혁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사회적 역학의 창조였다. 그는 기본소득제를 통하여 하나의 새로운 선택이 출현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 선택은 사람들이 경제로부터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며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싶어 하는가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 것이었다. 종래의 임금의존 방식에 비교할 때, 완전히 새로운 힘의 균형이 거기에 관여하게 될 것이다. 그 균형은 경제가 제공할 수 있는 선택들 전부 가운데서 사람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허용할 것이다. 이러한 균형은 보통의 임금소득자뿐만 아니라 사업가와 고용주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상품에 대한 적당한 판로를 보다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경쟁이 치열한 강요된 성장에 끊임없이 매달려야 할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완전고용과 성장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것보다 엄청나게 합리적이다. 실제로, 완전고용과 임금의존이라는 정책은 이에 비하면 매우 조잡하고 잔인한 것이다.

더글러스는 기본소득에 역사적 차원을 부여하여, 그 맥락에서도 그것을 정당화하였다. 사람들은 토지로부터 유리되고, 따라서 스스로의 식량을 기를 기회로부터 단절됨으로써 모든 경제적 독립성을 잃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거의 전면적으로 임금에 의존하여 살지 않을 수 없게 된 생존조건이 기본소득으로 완화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본소득은 수세기 동안 광범위한 빈곤을 유발하고, 임금의존계급에 대한 착취를 허용해왔던 근원적인 사회적·경제적 불균형에 대응하는 것이다. 더글러스의 제안은 수세기에 걸쳐 점점 갈수록 가속화하는 경제성장의 끝에 좀더 민주적인 경제발전이 시작되고, 임금노예가 종식되어,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경제적 독립성을 회복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였다. 여기서 제안된 민주주의는 모든 점에서 정치적 민주주의만큼 중요한 것이다. 더글러스는 그것을 ‘경제적 민주주의’라고 정의했다.

요약컨대, 기본소득론의 강력한 근거를 제공하는 많은 논리가 있다.

1. 안정된 돈, 즉 부채로서 만들어지지 않은 화폐가 있어야 할 실제적 필요성.
2. 구매력과 물가가 균형을 이루어야 할 필요성.
3. 성장과 발전이 진정한 필요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경제가 현 수준에서 적절히 기능해야 할 필요성.
4. 실업자를 위한 건설적인 토대 제공의 필요성.
5. 전적으로 임금에만 의존하며, 따라서 고용주들의 착취에 속수무책인 취업자들을 위해 어느 정도의 재정적 독립을 제공할 필요성.
6. 누구든지 어느 정도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예전 세대들에 의해 전승되어온 사회의 문화적 유산에 대한 인정.
7.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현재 식량을 자급할 토지나, 기타 생존을 유지할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 따라서 오늘날의 경제가 충분히 제공해줄 수 있는 기초생필품에 대하여 어느 정도 직접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의 인정.

더글러스는 그의 ‘국민배당’을 여기서 내가 했듯이 설명하지는 않았다. 그의 첫번째 저서는 ‘정당가격’을 상당히 세부적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더글러스는 그가 발견한 것이 하나의 ‘결함’이라고만 믿었다. 즉, 일단 문제가 철저히 논의되면 시정될 수 있는, 금융제도상의 실수 혹은 의도되지 않은 결함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두번째 책을 쓸 무렵에 더글러스의 접근방식은 전적으로 달라졌다. 더글러스나 그의 지지자들에게는 지금 그들이 맞서고 있는 것이 금융시스템의 의도되지 않은 결함일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것은 경제에 대한 조잡한 중앙집중적인 통제정책을 편리하게 뒷받침하고 있는 결함이라는 게 명백해졌다. 정부와 금융계 인사들은 불균형한 금융시스템의 조작을 통해 자신들이 경제성장의 방향과 속도에 엄청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을 변경하고자 하는 의사가 전혀 없었다.

1923년 이후 더글러스의 저술은 정치적인 성격이 짙어졌다. 그의 분석이나 제안들은 어느 것이나 좀더 심층적인 고려사항들과 얽혀있다. 즉, 금융시스템에 관련된 권력구조, 영구적 노동 지향 경제와 재화 및 서비스 공급 지향 경제 사이의 은밀한 철학적 차이, 임금노예 경제가 제기하는 도덕적 문제, 그리고 근대적 정부의 본질 등등.

더글러스는 경제시스템의 목적이 끊임없는 고용을 제공하고, 점점 갈수록 필요하지도 않은 생산품을 끝없이 공급하는 것이라면 현행의 시스템을 능가할 것이 없다는 데 기꺼이 동의했다. 그러나 경제학의 목적이 상품이 필요한 때와 장소에서의 상품의 생산과 분배를 허용하는 것이라면, 새로운 금융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우리는 금융시스템이 시장에 나와있는 상품을 사들이기에 충분한 구매력을 분배하지 않고 있다고 하는 것은 명백히 어리석은 말이라는 얘기를 흔히 듣는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현재의 화폐시스템 밑에서, 소비상품의 분배를 위한 충분한 구매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본재와 수출용 상품을 과도히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 지금 당신에게 선반(旋盤)이 필요하지도 않고, 넉넉한 빵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선반제조회사의 종업원들은 선반을 만들지 않으면 빵을 얻을 수 없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미 넉넉하게 있는 빵을 얻기 위하여 선반을 만들고, 포탄을 만들고,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다. ― 더글러스, 《과세에 의한 독재》, 1936

더글러스는 고용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를 문제삼았다. 그의 시대는 사람들이 일하기 위해 존재하고, 보통사람은 운명적으로 불유쾌한 환경에서 쥐꼬리만한 보수를 위해 장시간 노동하도록 되어있다는 생각이 의심없이 받아들여진 시대였다. 더글러스의 기본소득론은 이러한 노동윤리를 폭로하는 것이었고, 또한 이 노동윤리를 의심하거나 훼손하는 것은 경제적 반역행위와 같은 것이라고 두려워하는 심리를 건드린 것이었다. 더글러스는 강제적인 노동을 축소하는 것이 노동의 필요성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는 또한 자신의 개혁안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자신들의 재산 덕분에 강제적인 노동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그러한 사람들이 ‘국민배당’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람들에게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는데 무엇인가를 준다”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글러스는 기본소득이 필요한 것은 분배를 요구하는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즉, 현행의 금융시스템으로는 분배가 불가능한 재화와 서비스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무엇인가를 나누는 것”은 신용(信用)의 창조 외에 ‘아무런 일도’ 한바 없이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은행가들의 속임수에 비하여 훨씬더 정당한 것이었다.

더글러스는 여하한 화폐개혁안이라도 그 배후에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의 화폐시스템 뒤에도 어떤 철학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화폐시스템은 철학적인 원리가 아니라 수세기 동안 제어되지 않은 힘, 즉 은행신용이 성장을 강요하는 메커니즘에 의해 존재해왔지만, 그래도 거기에는 은밀히 작동하고 있는 철학이 있다. 이 성장을 둘러싸고 일련의 가정과 편견들이 발전되어 왔고, 사람들은 논리와 증거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무의식적인 것일 수 있지만, 기본소득을 반대하고, 금융시스템의 변화를 거부하는 태도의 배후에는 거의 철학의 수준에 가까운 편견과 가정들의 집합체가 있다. 더글러스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현행 시스템의 목적은 개인이 언제나 경제적 의존성에 갇혀있어야 한다는 아이디어에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기반을 두고 있다.”

금융시스템의 효과적 정책은 의존과 통제의 철학을 유지하는 것이다. 실업자를 위해 여분의 일자리를, 고의적인 적자를 통하여, 만들어내는 것 ― 그리하여 그들이 이미 넉넉히 존재하는 물품과 서비스를 획득하게 하는 것 ― 은 정부에 의한 거의 노예노동에 가까운 착취 형태이다.

지금까지 목표가 되어온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를 꼼짝없이 지키고 앉아있어야 하는 피라미드적인 노예시스템이다. … 그 정책은 개인적으로 또 집단적으로 우리들에게 부채를 안겨줌으로써 우리들을 영구히 빚쟁이의 노예로 삼으려는 것이다. 돈을 구해 빚을 청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빚쟁이들은 빚을 갚는 데 필요한 돈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권력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더글러스, 《과세에 의한 독재》

우리의 외관상의 풍요함에 관련된 한 논평에서 더글러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풍요 속의 빈곤의 근절은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사람들이 배부른 노예로 사는 것도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 이 섬나라 사람들이 지금과 같이 완전히 노예화되어버린 것은 수천년래 처음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노예 신세를 특징짓는 주된 요소는 나쁜 대우가 아니다.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정책에 아무런 발언을 할 수 없는 게 노예의 주된 특징이다. ― 더글러스, 《‘선민을 위한 토지’소동》, 1943

금융시스템을 개혁하지 않음으로써 정부는 의존적 대중에 대한 통제권을 계속 유지하고, 막강한 정치권력을 계속 유지해왔다. 거침없고 솔직한 태도로 더글러스는 자신의 분석과 제안들을 제출하였다. 더글러스의 저술과 공개연설은 근대적 정부의 운영방식뿐만 아니라 그 동기에 대한 놀랄만한 공격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그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극단적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더글러스의 분석과 예리한 관찰이 현대정치의 핵심을 찌르고 있다고 확신했다.

 

결정적인 도약

더글러스의 많은 추종자들 사이에는 기대에 찬 진지한 분위기가 있었다. 즉, 인간의 사회적·문화적 발전을 향한 결정적인 도약이 이루어지느냐 마느냐 하는 역사적인 순간에 그들이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뜻밖에도, 고명한 금융계의 핵심인물들이 은행시스템에 관한 계시적인 논평을 하기 시작했고, 더글러스의 제안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일도 벌어졌다. 게다가, 그들은 더글러스의 비타협적인 용어들을 흔히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잉들랜드은행의 전(前) 총재 레지날드 매케나는 이렇게 말했다. “내 생각에 일반대중은 은행이 돈을 창조하고 파괴한다는 말을 듣기 싫어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는 덧붙여 말했다. “나라의 신용시스템을 통제하는 사람들이 정부정책을 좌우하며, 자신들의 손아귀에 국민의 운명을 쥐고 있다.” 잉글랜드은행의 또다른 총재였던 빈센트 비커스는 화폐개혁의 확고한 제창자가 되었는데, 로버트 아이슬러의 책에 부친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현행의 화폐제도는 우리의 현대문명에 적합하지 않으며, 세계에 대해 갈수록 위협이 되고 있다. … 나는 대중에게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즉, 오늘날 이 나라의 화폐시스템이 가장 과학적이고, 현대 경제학자들에게 알려져있는 최신의 방법에 따라 일하는 ‘공인된 화폐 전문가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고 믿는다면 완전히 잘못이다. … 잉글랜드은행은 더이상 현대 경제학자들의 노력을 질식시키지 말아야 하며, 모든 ‘화폐개혁자’를 자신의 권위를 찬탈하려는 무례한 참견꾼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 … 공동체의 큰 부문에서 화폐개혁을 열렬히 요구하고 있는 이때, 정부는 다른 곳에서 조언을 구하고 공개적인 토론을 장려해야 한다. … 우리의 실업과 불확실성의 근본원인은 새로운 기계설비를 갖춘 ‘생산적 기업’이 아니라, 낡은 메커니즘으로 움직이고 있는 ‘금융’에 있다. ‘금융’은 현대의 필요에 적응하는 데 실패했다.

아마도 가장 위대한 변신은 또 한사람의 전(前) 잉글랜드은행 총재 조시아 스탬프 경(卿)의 경우일 것이다. 자신의 소책자 《과세에 의한 독재》의 서두에서 더글러스는 스탬프 경이 그 무렵 했던 발언을 인용하고 있다.

불과 몇년 전만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규모의 세금이 혁명을 동반하지 않고 영국 국민들에게 부과될 수 있으리라고 믿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교육과 홍보를 통해서 이 규모가 매우 괄목할만하게 끌어올려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더글러스는 스탬프 경과 그의 제안을 철저히 조롱하면서, 정부가 화폐공급에 실패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세란 합법화된 도둑질이며, 불필요하고 낭비적이고 전제적(專制的)인 것”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 몇주 내에 스탬프 경은 은행과 재산획득과 노예제의 의미에 관련해서 놀랄만한 발언을 했다. “우리가 노예가 되기를 원하고, 이 노예제에 드는 비용을 지불하기를 원한다면, 은행이 돈을 만들어내도록 하면 된다.” 이것은 더글러스가 끼친 영향 때문이었다. 더글러스의 영향을 받은 많은 사람들은 금융시스템에 관한 그의 분석의 중요성뿐만 아니라, 그 분석이 매우 중대한 정치적 문제를 드러내고 있음을 알아보았다.

이러한 매우 정치적이고 철학적인 맥락에서 더글러스는 자신의 후기의 제안을 내놓았던 것이다. 그는 자기의 여러 권고안이 오직 시사적(示唆的)인 제안으로 의도된 것임을 되풀이하여 강조했다. 근본적인 것은 금융시스템의 변경 필요성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개혁 원칙의 윤곽을 그리는 것을 선호했고, 구체적인 세부의 문제에서는 벗어나 있었다. 예를 들어, 《사회신용론》에서 그는 ‘국민배당’에 관한 제안을 설명하는 데에 한 단락 이상의 문장을 소모하지 않았다. 임금이 현재의 상태에 머무는 한,

배당이 [있어야 한다]. 배당은 전체적으로 지금 ‘생산하는’ 사람들의 생계유지에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생산된 생산물 전부를 구매할 수 있게 할 것이다. … 그러한 조건 밑에서 모든 개인은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되어온 문화적 유산의 혜택을 정당하게 향유할 만큼의 구매력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사회신용’은 세계 전역에 걸쳐 중요한 정치적 운동이 되었다. 캐나다 앨버타주에서는 사회신용정부가 선거에 의해 성립되었다. 그러나 더글러스의 아이디어에 입각하여 그 정부가 금융시스템을 개혁하려고 한 모든 시도는 캐나다 중앙정부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제2차 세계대전은 성장하고 있던 사회신용운동의 동력을 완전히 좌절시켰고, 나중에 앨버타 정부는 ‘영웅들에게 적합한 땅’을 약속했다. 그리하여 마을과 도시의 재건을 위한 새로운 중앙집중화된 프로그램이 시행되어, 막대한 융자금이 주입되고 수많은 일자리가 제공되었다. 전쟁 직전까지의 금융시스템의 거대한 실패는 전후의 호황 속에서 잊혀졌다. 경제적 민주주의의 문제는 ‘새 예루살렘’ 건설이라는 전후의 분위기 속에서 간단히 무시되었다.

그 후, 더글러스의 아이디어는 대체로 간과되었다. 그것은 무시되거나 현대 복지국가체제 속에서는 낡은 생각이라고 규정되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에 거점을 둔 ‘사회신용사무국’은 더글러스의 저작을 계속해서 출판해왔고, 정치 및 경제 이슈에 관해 논평하는 정기잡지를 발간해왔다. 하지만 매스미디어는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지금 70세 이하의 사람 누구에게든지 클리포드 더글러스나 ‘사회신용’에 대해 언급을 하면, 사람들은 아마도 “누구요? … 뭐라고요?”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더글러스는 당대에는 엄청난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었으며, 세계무대에서 활약한 주요인물이었다. 그는 세계 전역에 추종자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영국, 일본, 캐나다, 뉴질랜드 및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수없이 열렸던 공식적 조사회의에 증거를 제출하였다. 20세기의 가장 명석하고 집요한 경제·금융제도 비판자였던 더글러스의 이름이 현대의 경제학사 교과서에서 빠져있다는 것은 충격적이고 우려할만한 일이다. 이것은 더글러스 자신의 논평을 상기시켜주는 사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금융이 세력을 행사하는 것은 … 보통의 개인들이 금융의 본질에 대해 무의식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이 무의식은 1952년 더글러스가 죽은 뒤에 계속하여 더 성장해왔다.

 

자본주의/사회주의를 넘어서

더글러스의 호소력은 계급장벽을 뛰어넘는다. 그의 추종자들은 보통의 노동자들 외에 기업가나 사회의 부유층 속에서도 나왔다. 그것은 그의 아이디어가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것은 부자가 부유하기 때문”이라고 하는 낡은 생각을 꿰뚫고, 현대의 빈곤은 금융시스템에 기인하고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더글러스는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의 필요를 위해 잠재적으로 넉넉한 생산물이 갖추어져 있으며, 실업과 진보에 내포된 잠재적인 여가를 모두가 향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글러스는 ‘희소화폐’에 의해 만들어진 빈부 간의 감정적 간극을 메웠고, 기업가와 종업원 간의 갈등의 골을 메웠다. 균형잡힌 경제의 작동에 모두가 공통의 이해(利害)를 갖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피상적인 계급차보다도 훨씬더 강력한 공통적인 매일매일의 실제적인 이해였다. 이런 의미에서, 더글러스는 맑스나 레닌보다도 훨씬더 예리했다. 왜냐하면 그는 계급문제는 본질적으로 실제적인 문제의 근원으로부터 초점을 이탈시키는 추상적 논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화폐가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과정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실제로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이론 어디에서도 결여되어 있고, 그러한 이론들의 본질적 오류는 더글러스의 분석에 의해 폭로되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어느 것이나 금융시스템에는 기본적으로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가정 위에 구축되어 있다. 더글러스는 금융시스템에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을 뿐만 아니라, 바로 그것이 사회주의/자본주의 논쟁의 배후에 있는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분열의 원인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모두의 핵심적 결함은 임금의존 인구의 피착취적 지위, 그리고 그에 따른 사기업 혹은 정부기관을 통한 자본가나 사회주의 엘리트의 지배력이다. 이에 대한 대안은 기본소득과 금융권력의 탈중심화 및 균형에 의해 대변될 수 있다.

좌익과 우익의 도그마는 어느 것이든 사람들을 갈라놓는 것처럼 보이는 (그러나 그렇게 될 필요가 없는) 경제적 갈등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인한 반응이다. 사회신용론은 사람들의 공통한 이해관계에 집중하고, 이 이해관계들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주목하면서, 사회주의의 선의(善意)와 자본주의의 생산성을 결합하여 사람들이 상호이익을 위하여 일할 수 있도록 시도하였다. 정치적·경제적 이론의 견지에서 말한다면, 사회신용론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억압된 대안’으로 묘사될 수 있다.

프란시스 허친슨은 최근에 더글러스의 아이디어를 재평가하고, 그것이 오늘날의 상황에서 갖는 의미를 분석하였다(Frances Hutchinson, The Political Economy of Social Credit, 1997). 그녀의 연구는, 대중적 눈으로 보면 더글러스가 마치 마른 하늘의 날벼락처럼 출현한 존재였을지라도 실은 그는 세기 전환기의 ‘길드 사회주의’운동에서 정점을 이룬 오랜 사회비평의 전통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의 금융에 관한 아이디어는 새로운 것이었지만, 그의 철학은 좀더 이전의, 그리고 당대의 개혁가들의 철학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 허친슨은 사회신용론을 있었던 그대로, 또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즉, 20세기의 가장 래디컬하고, 가장 건설적이며, 가장 수미일관된 경제적·사회적 분석으로서 말이다.

클리포드 더글러스는 놀라운 혜안의 소유자였다. 그는 경제적 진보, 불안정, 뼈아픈 개인적 시련 가운데서 광범위한 물질적 번영과 사회적 내용을 위한 기회가 내포되어 있음을 알아보았다. 오늘날 더글러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거의 80년 전에 내놓은 경고와 예언들은 새롭고 무서운 현대적 형태로 다시 돌아와서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대규모의 폐기물, 오염, 과로, 실업, 소외, 그리고 제3세계의 처참한 빈곤과 불안정 등등. 더글러스의 분석과 그의 제안은 ‘풍요 속의 빈곤’에 시달리던 그의 당대보다도 오늘날 훨씬더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김종철 옮김)


마이클 로우보섬(Michael Rowbotham) ― 영국의 독립 저술가이자 화폐의 역사에 관한 연구가. 이 글의 출전은 Michael Rowbotham, The Grip of Death: A Study of Modern Money, Debt Slavery and Destructive Economics(1998, 4th edition 2009)의 한 장 “Lincoln and Douglas: the suppressed alternative”의 더글러스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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