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제111호 2010년 3-4월호  인쇄용  

 

  통화개혁과 '국민배당'
  
경제위기의 해결을 향하여

  리처드 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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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리처드 쿡이라고 하며, 32년간 공직에 있다가 2007년에 퇴직한 연방정부의 분석가였다. 이 32년 중 21년 동안은 워싱턴에 있는 재무성에서 근무했다. 역사를 가르친 적도 있고, 농장을 경영한 일도 있지만, 지금은 저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내가 쓴 책의 하나인 《챌린저호에 대한 폭로》는 내가 나사(NASA)에 근무하고 있던 당시에 있었던 우주왕복선 참사에 관한 내부로부터의 보고인데, 과거 20년 동안 우주비행 관련 서적으로 가장 중요한 책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내 전문분야는 국가재정이다. 나는 토머스 제퍼슨의 모교인 윌리엄앤드메리대학을 졸업했다. 제퍼슨과 마찬가지로 나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원칙을 반영하여, 생명, 자유 및 행복의 추구라는 가치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정부야말로 유일 합법 정부라고 믿는다. 크나큰 경제위기의 한복판에서 많은 사람들의 희망과 열정이 위협받고 있는 지금 우리는 이 이상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이 비디오 강연에서 나는 미국과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엄청난 경제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안하려고 하지만, 여러분이 이러한 해결책을 들어본 적은 일찍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전문가나 언론, 정부 관리들을 포함한 친체제 인사들은 대부분 파탄난 제도를 어떻게든 봉합하려고 할 뿐이다. 발본적인 개혁을 제창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러나 나와 세계의 많은 개혁자들은 그러한 방책을 제안하고 있다. 나는 국가재정에 종사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지, 공화·민주당 정치가에게 접근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금융계에 근무한 사람은 아니다. 나는 있는 그대로를 말하면서 종래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사태를 생각하려 한다.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미국의 경제 및 통화제도를 중심으로,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의 원인은 무엇이며, 이 제도를 바꾸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파탄난 것은 미국의 통화제도로, 이 제도야말로 개혁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여기서 핵심적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즉 현존하는 통화 전부가 사실상 은행에 의한 대출, 즉 이자를 붙여 갚지 않으면 안되는 대여금이 그 원천이 되어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은행업계와 정부운영을 가능케 하는 외국은행으로부터의 차입금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요컨대 금융제도가 실제로는 거대한 차금(借金)의 피라미드로 구성돼 있음을 가리킨다. 돈은 어째서 이런 식으로 만들어져있는가. 그것은 이 제도가 건국 이래 우리 정부에 끊임없이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던 금융계에 의해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래 경제가 그런 식으로 운용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공공복지의 증진을 위한 통화는 은행이 좌우하고 있는 통화공급 방법 이외에도 존재한다. 실제로, 재무부의 분석가였던 나는 의회의 승인이 있으면 정부는 차입(借入)에 의존하지 않고, 또 훨씬 적은 징세(徵稅)로써 국가에 필요한 통화 전부를 얻을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은행이 운영하고 있는, 부채를 기초로 한 통화제도야말로 오늘의 위기상황을 초래한 근본원인이기 때문에 이 제도의 변경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 위기는 정치적, 사회적, 윤리적인 위기이기도 하다. 그것은 이 나라를 누가 관리하고, 관리를 통해서 누가 이익을 얻는가라는 문제이다. 우리나라는 소수 금융엘리트들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우리 인민이 행복하게 생활하는 장(場)인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한 관건은 우리의 통화제도이다. 민주당 대통령과 의회 양원에서 민주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지금도 미국은 여전히 금융업자들에게 유리한 제도를 갖고 있다. 이들 금융업자는 이 제도를 확고히 유지하기 위해 수십억달러를 선거헌금으로 사용했다.

이 얘기를 하기 전에 강조해두고 싶은 게 하나 있다. 부채를 기초로 한 이 통화제도가 가져오는 문제들은 우리가 무역적자와 재정적자 때문에 부채를 외국에 수출할 때 다시 증폭된다는 사실이다. 2009년 2월 24일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경제부흥에 대한 단호한 결의를 표명하였다. 그의 계획은 정부가 재무부 채권을 사는 사람들에게 원금과 이자 변제를 약속하고, 자금을 조달한다는 것이다. 미국 국민이 더이상 돈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그 계획의 성공여부는 중국이 미국 재무부 채권을 계속 구입해주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계획이다. 깊이 부패한 이 제도 밑에서 하나의 차금(借金)은 다시 새로운 차금을 초래하게 된다. 그러므로 오바마의 계획으로는 이 나라에서 장기적인 번영을 기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우리와 우리의 자손들의 생활의 질은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재난의 중심적 요인이 파탄난 금융제도임은 명백하다. 파탄난 것은 금융제도이며, 미국의 생산경제가 파탄난 것은 아니다. 미국과 세계경제는 모든 사람의 생활에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미국은 영국의 은행업자들이 주도하는 통화제도에 대한 저항을 통해 창설되었다. 1750년경 벤자민 프랭클린은 이 지구상에 우리보다 “행복과 번영을 누리는 인간집단을 보기란 불가능하다”고 썼다. 펜실베이니아를 대표해서 영국을 방문했을 때 프랭클린은 영국에는 빈궁자들이 널려있는데 식민지가 저토록 번영하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질문을 받았다. 프랭클린의 대답은 이러했다. “간단합니다. 식민지에서 우리는 독자적인 돈을 발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제품이 생산자로부터 소비자에게 쉽게 갈 수 있도록 적정한 비율로 돈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자신을 위한 지폐를 만들어 구매력을 제어하면서, 어떠한 사람에게도 이자를 지불하지 않습니다.”

그 후 1764년 영국 금융업자들은 영국의회에 압력을 넣어 통화에 관한 법률을 가결시켰다. 이 법률로 식민지는 독자적인 화폐발행을 금지당하고, 통화량은 반감되고 말았다. 프랭클린은 썼다. “겨우 1년 만에 상황은 완전히 반전되어 번영의 시대가 끝나고 불황이 시작되었다. 그 불황은 혹독하여 식민지의 거리는 실업자들로 넘쳐날 지경이었다.” 그 후 10년간의 경제적 쇠퇴를 거쳐서 혁명전쟁이 시작되었지만, 그 계기가 된 것은 역사교과서가 가르치는 것처럼 인지세법이나 차(茶)에 대한 과세가 아니라 가혹한 통화 압제였다. 프랭클린에 의하면 “영국의 금융업자들이 식민지의 빈곤을 초래하고, 영국에 대한 식민지인들의 증오감을 부추겨 혁명전쟁을 시작하게 하지 않았더라면, 식민지는 차와 같은 물품에 과해지는 소소한 세금 부담을 쾌락했을 것이다.”

미국 독립선언을 기초하고, 1801~1809년 동안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의 말도 기억할만하다. 제퍼슨은 재무장관 앨버트 가라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은행제도는 우리들의 자유에 대해서 상비군보다도 위험한 것이라고 마음 깊이 믿고 있습니다. 만일 미국 국민이 처음에는 인플레에 의해, 다음에는 디플레에 의해, 민간은행이 통화발행을 조작하는 것을 허용하는 사태가 일어나면 그들 둘레에서 살쪄가는 은행이나 기업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온갖 재산을 계속 박탈할 것입니다. … 통화 발행권은 은행으로부터 되돌려 받아 그 정당한 보유자인 국민에게 반환해야 합니다.” 이 몇마디 속에는 굉장히 많은 의미가 들어있다. 제퍼슨은 통화를 발행하는 권한에 대해 말하고 있다. 미국헌법 제1조가 통화제도에 관한 권한은 의회에 속한다는 취지를 표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퍼슨이 대통령에 선출될 무렵까지 이 권한은 민간의 은행조직에 부여되어 있었다. 제퍼슨은 또 인플레와 디플레가 되풀이되는 현상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내가 이 비디오에서 수도 없이 언급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얘기하고 싶다. 제퍼슨 뒤를 이은 미국 대통령으로서 그의 친구이기도 했던 제임스 매디슨도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역사는 환전상들이 온갖 형태의 부정, 음모, 기만 그리고 온갖 가능한 폭력적 수단을 써서 화폐와 그 발행을 통제함으로써 정부에 대한 지배를 계속해온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제퍼슨도 매디슨도 우리의 통화제도를 통제하는 게 은행업자들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국민을 대표하는 선출된 의원들이어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 실제 이것은 당시 주요 정치문제였다.

일찍이 1791년에 워싱턴 정부 최초의 재무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은 의회를 설득하여 제1합중국은행 설립을 위한 법률을 제정하였다. 이 은행은 잉글랜드은행을 모델로 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제퍼슨이 단호히 반대했던, 사적으로 소유된 중앙은행이 통화발행 권한을 갖게 되었다. 제1합중국은행에 주어진 특허가 만료된 1811년에는 제퍼슨과 그의 당이 정부를 운영하고 있었던 탓에 특허 갱신은 되지 않았다. 그들은 민간 소유의 중앙은행이 가장 효과적으로 자치를 파괴하는 장치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1817년이 되면 국가의 자금부족사태에 직면하여 의회는 또하나의 은행, 즉 제2합중국은행을 설립하게 된다. 

또다시 민간에 의한 통화공급권이 나라를 통제하는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고, 그 힘이 엄청난 것이었기 때문에 1828년에 대통령이 된 앤드류 잭슨은 이것을 배제할 결의를 굳혔다. 그는 “만일 국민이 우리의 통화와 금융제도의 이 엄청난 부정을 알게 된다면 곧바로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1834년 잭슨은 제2합중국은행에 예탁돼 있던 연방정부의 돈을 모두 인출하였고, 그 결과 이 은행도 과거의 것이 돼버렸다. 제퍼슨과 잭슨이 제1합중국은행과 제2합중국은행을 문제삼았던 것은 민간이 소유하는 중앙은행의 방식 때문이었다. 정부에 돈을 대부하여, 거기에 이자를 붙여 변제하는 의무를 국민에게 지우는 방식 말이다.

은행은 부분준비제도에 의해 실제로 예탁된 예금보다 훨씬더 많은 돈을 대출한다. 국립은행은 일정액의 국채를 구입, 그것을 ‘기본준비금’으로 삼아 이 방식을 행한다. 은행은 기본준비금을 일단 확보하면 다액의 현금을 아무 근거도 없이 무(無)에서 만들어낸다. 그러고는 그들은 일반에게 대출하여 화폐의 유통량을 증가시키고, 다시 이자를 거둬들인다. 거액의 국가부채가 늘 중앙은행제도에 수반되는 것은 은행이 재무부 증권을 구입하는 게 바로 정부에 대부하여 이자를 징수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국가가 전쟁 중이거나 거대한 군용기지를 운영하거나 할 때 국가의 부채가 빠르게 불어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제퍼슨은 중앙은행에의 협력을 거부함으로써 8년 동안 연방정부 예산이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앤드류 잭슨은 국가의 부채를 완전히 갚을 수 있었다. 은행에 아무런 부채가 없었기 때문에 이들 초기 지도자들은 은행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여기서 유럽의 유명한 금융귀족의 창시자인 암셀 로스차일드의 말을 들어보자. 1790년에 로스차일드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알려져있다. “국가의 화폐를 내가 발행하고, 지배하기만 하면, 누가 법률을 만들건 상관이 없다.” 19세기 동안 로스차일드가(家)와 금융계 패거리들은 서유럽의 군주들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었다. 제퍼슨과 잭슨이 중앙은행제도를 저토록 강하게 반대했던 것은 로스차일드가 했던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편을 든 보수파와 공화제를 주창한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주로 이 점에 있었다. 그러나 은행업자들이 공화국까지도 지배하려고 하는 데 이르러 상황은 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수십년 후 1861년부터 1865년에 걸쳐 일어난 남북전쟁에 시계바늘을 맞춰보자.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통령에 취임한 1861년, 연방정부에는 이 전쟁의 전비를 조달할 자금이 부족했다.

링컨 대통령은 거액의 자금을 신속히 구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뉴욕의 은행업자들에게 손을 벌렸는데, 영국과 유럽의 동업자들과 긴밀히 제휴하고 있던 은행업자들은 정부에 돈을 빌려주는 것은 좋지만 적어도 25~35퍼센트의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터무니없는 요구에 의회는 급진적인 행보로 반응했다. 링컨 정부에 지폐의 인쇄, 지출, 유통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그 결과, 금과 직접적인 태환성이 없는 4억5천만달러의 ‘그린백’ 지폐가 의회의 승인을 얻어 창출되었다. 이 ‘그린백’으로 정부는 은행돈을 빌릴 필요가 원래 없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남북전쟁 동안 ‘그린백’ 이외에 정부는 세금을 올리고 전시(戰時)공채를 직접 국민들에게 매각했지만, 이 모든 게 은행 중심의 금융제도를 완전히 우회해서 행해졌다.

링컨 대통령의 통화정책은 1865년의 상원 문서 제23호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통화의 창출과 발행에 관계되는 특전은 정부에 속하는 최고의 특권일 뿐만 아니라 정부가 창조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최대의 기회이다. 이 원칙을 채택함으로써 납세자들은 막대한 금액의 이자, 할인이나 교환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공익사업에 대한 자금조달, 안정된 정부와 질서있는 진보의 유지는 정부운영의 과제이다. 인민은 안심할 수 있는 통화를 얻는 게 가능하다. 민주주의는 금권 위에 군림하게 될 것이다.” 링컨의 정책은 대의정부에 의한 통화발행이야말로 경제적 민주주의의 열쇠임을 가리키고 있다. 이 제도가 국가재정의 기반으로 충분히 실시되었다면 미국 역사는 극히 훌륭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링컨 대통령의 선한 의도는 좌절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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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 중에 미국정부가 ‘그린백’이라는 지폐를 인쇄, 지출, 유통시킨 것은 혁명적인 일이었다. 1865년 〈런던타임스〉는 마치 인민을 위해 정부가 통화를 지배해야 한다는 링컨의 생각에 대한 답변인 양 이렇게 썼다. “만일 북아메리카에서 시작된 이 유해한 금융정책이 고정화된다면 정부는 자기 통화를 아무 비용을 치르지 않고 공급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더이상 부채가 없는 나라가 된다. 통상교역에 필요한 통화를 전적으로 자력으로 마련하여 세계역사에서 유례없는 번영을 누리게 되고, 다른 나라의 두뇌와 부가 북아메리카로 유출되게 될 것이다. 저 나라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지 않으면 저 나라는 지구상의 모든 군주제도를 파괴할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언설인가! 이것은 미국을 은행의 족쇄로부터 해방시킨 ‘그린백’이 얼마나 강력한 것이었던가를 시사해주고 있다. 잉글랜드은행의 모국인 영국은 남북전쟁 때 남부 쪽에 동정적이었다. 링컨 대통령은 1865년 4월 14일 존 윌크스 부스에 의해 암살되었는데, 부스는 그 직전에 영국이 지배하고 있던 몬트리올을 방문했다. 거기서 부스는 남부연합의 스파이에게서 돈을 받았다. 독일재상 비스마르크는 링컨이 암살된 12년 후 1876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합중국이 동등한 힘을 가진 두개의 연방으로 분할된 것은 유럽의 유력한 금융가들이 남북전쟁 훨씬 이전에 결정했던 일이다. 이 은행가들은 경제적, 재정적으로 독립한 단일 국가 미합중국 때문에 그들의 세계적인 금융지배가 곤란에 처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남북전쟁에서 북부가 승리하자 유럽의 금융세력은 좌절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복수를 기약하였다.

은행가들이 아니라 인민을 대표하는 정부가 통화공급의 통제권을 가질 필요성을 이해한 또하나의 대통령은 1880년에 대통령에 선출되어 1881년에 암살자의 흉탄에 쓰러진 제임스 가필드이다. 그는 호황과 불황의 주기가 화폐현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가가 올라가면 은행의 이자수입이 늘어나 은행은 이익을 챙기고, 물가가 내려가면 개인이나 기업이 파산하여 은행이나 부자들은 파산자의 자산을 헐값에 사들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린백’과 같은 제도를 통해 통화를 제어함으로써 정부는 재정위기를 완화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남북전쟁 후 은행가들은 의회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그린백’을 회수하려 하였다. 그러나 의회는 ‘그린백’이 최선의 통화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지폐는 인플레를 일으키지 않고, 부채의 부담 없이 전쟁비용을 마련해주었다.

그리하여 ‘그린백’은 대법원의 합헌판결을 얻어 계속 유통되었다. 1900년에도 ‘그린백’은 미국에서 유통되고 있던 통화의 거의 1/3을 점하고 있었다. 19세기 후반은 폭발적으로 미국경제가 성장하던 시기였지만 중앙은행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린백’에도 불구하고 은행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강력했다. 1863년과 1864년의 국립은행법에 의해 그들은 정부로부터 구입한 재무부 증권을 바탕으로 일반에게 대부를 하는 새로운 국립은행제도를 확립하였다. 아직 단일한 중앙은행으로 조직화되지는 않았지만, 바로 제1합중국은행이나 제2합중국은행과 같은 제도였다. 19세기 나머지 기간 동안 은행의 힘은 증대되었다. 은행권은 국채와 함께 계속 불어났고, 법률에 의해 그 양이 고정되어 있던 ‘그린백’을 서서히 대신하게 되었다. 은행은 기업에 대출을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부동산의 저당권을 획득한다든지, 농민들의 파종과 수확기에 필요한 비용을 대출해주고, 철도나 철강 등 산업을 지배할 수 있는 주식을 획득하기 시작했다.

가필드가 경고했듯이 은행업자들은 때때로 신용공여를 제한함으로써 담보 자산을 차압하거나 파산을 통해 농가나 기업을 장악하고, ‘공황’을 만들어냈다. 그중에서도 최악의 경우는 1873년과 1893년의 공황이다. 이 공황을 거치는 동안 은행은 연방정부보다도 강력한 제도가 되었다. 그래서 19세기 후반 동안 통화제도를 둘러싼 투쟁이 광범위하게 벌어졌다. ‘그린백’의 유지와 확대를 목표로 한 ‘그린백당(黨)’이 결성되었다. 통화발행의 증대는 이 기간에 결성된 또하나의 정당인 인민당의 목표이기도 했다.

그러나 은행가들이나 산업가들은 공화당의 정치적 승리를 도왔고, 공화당은 대기업과 거대금융을 위한 당이 되었다. 통화수축으로 인한 공황은 20세기에 와서도 되풀이되었는데, J.P. 모르건을 포함한 금융업자들과 영국 및 유럽의 은행과 결속돼 있던 독점적 산업가들은 1913년 은행제도의 안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연방준비은행법안을 통과시키도록 의회에 압력을 넣었다. 이 법률에 의해 제정된 연방준비제도는 사적으로 통제되는 중앙은행에 다름 아닌 것이었다. 표면상으로는 연방준비은행권 형태로 통화를 발행하여 재무부 채권을 매매하고, 미국의 재정자금을 예치해놓은 까닭에 마치 정부기관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 식으로  재무부의 ‘대리인’인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1935년 이래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대통령이 임명해왔다. 그러나 지방은행 12개를 포함한 각지의 연방준비은행은 가맹은행 소유이며, 그 가맹은행들은 사익을 추구하는 민간인 소유이다. 그리고 선출된 공인도 아닌 금융엘리트들이 지금도 연방준비제도의 정책을 좌우하고 있다.

나중에 유명한 비행사가 된 인물의 부친이었던 찰스 린드버그 2세는 1913년 연방준비은행법이 성립될 당시 하원의장이었다. 그는 “연방준비은행 시스템이 사적인 것이며, 타인들의 돈을 가지고 최대의 사익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하고, 이 은행 설립을 허가한 법률을 입법부에 의한 최악의 범죄행위로 단정하였다. 그리하여 1913년 이래 부와 권력을 독점한 과두정치가 미국을 지배해왔고, 그 지배는 주로 연방준비이사회를 비롯한 민간은행조직을 통해서 이루어져왔다. 공황은 되풀이되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늘 이 과두정치에 동조해온 것은 아니다. 그 예외로서 가장 저명한 인물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인데,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과두정치의 지배자들은 루즈벨트를 계급의 배신자라고 불렀다.

루즈벨트는 대공황이 한창인 1932년에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연방준비이사회와 협력하고 있던 잉글랜드은행은 광란의 20년대에 투자거품을 일으킨 다음에 돌연히 이자율을 올려 뉴욕주식시장에 투기된 화폐량을 축소시켜, 공황을 초래했다. 주식시장은 1929년에 폭락한 후, 연방준비이사회가 자신의 금을 대량으로 영국으로 인도한 1932년에 다시 폭락하였다. 금의 충분한 뒷받침이 없어진 미국의 통화공급은 1929년의 공황으로부터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연히 축소된 것이다. 이 사태는 연방준비제도와 은행조직이 화폐의 흐름을 마음대로 제어하는 터무니없는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루즈벨트 대통령은 뉴딜에 의해 고용을 창출, 연방정부기관들을 활용하여 기업과 농민 및 가족용 주택에 싼 신용을 공여함으로써 나라를 부활시켰다.

루즈벨트 대통령 하에서 연방준비이사회는 정부와 협력하여 국가경제가 다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충분한 양의 통화를 공급했지만, 1950년대까지 월스트리트는 그 지배를 재확립하려 하였다. 은행금리는 재무부가 1951년에 연방준비제도가 예전처럼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승인한 후 상승을 시작, 세계대공황의 실마리가 되었다. 1960년대에 존 F. 케네디는 미국경제에 대한 증대하는 월스트리트의 지배력을 수용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1963년에 암살되고 말았다. 신용을 공적으로 지배하여 위대한 산업민주주의를 이룩한 뉴딜정책은 1960년대에 서서히 쇠퇴하였다. 1970년대로 되면 금융업자들은 다시 세력을 키워 경제를 지배하기 시작했는데, 이 결과가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2008~2009년의 공황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금융제도뿐만 아니라 실업계 전체를 통어하는 금융엘리트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나라이다. 이 금융업자들이 초래한 경제파탄은 미국을 끝장내는 실마리가 될지 모른다.

오바마 정부는 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몇몇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그 이상의 일을 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핵심적인 것은 화폐에 대한 지배권을 금융과두제로부터 탈환하는 일이다. 이 지배권은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에 인도되어, 국민의 이익을 위해 행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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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미국이 어떻게 금융엘리트들이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은행시스템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나라가 되었는가를 보았다. 이 은행시스템은 다른 나라 은행시스템과 연동되어 있어서 그 영향력도 국제적이다. 글로벌화라는 것은 좋든 나쁘든 우리들이 경제적으로 완전히 연동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중국이 미국의 채권자가 되어 미국 국채를 계속 매입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들은 그 투자가 없으면 미국인들이 중국 제품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갈수록 불안정해지는 세계에서 이 시스템은 국제은행업자들을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최강의 세력가가 되게 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2009년 현재 직면하고 있는 위기를 간단히 보자. 그 전에 우리는 현대국가가 실제로 두개의 경제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 하나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소득을 주는 생산경제이다. 이 생산경제에는 미국으로 수출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다른 나라의 농장이나 공장도 포함된다. 물론 다른 나라의 농민이나 노동자의 임금은 미국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보다 흔히 적다. 그러나 이 불황의 시기에도 물자와 서비스를 공급하는 세계의 생산능력 그 자체는 조금도 저하되지 않는다. 사실, 생산경제의 효율성이나 생산성은 기술혁신이나 테크놀로지에 의해 늘 성장을 계속해왔다.

위기가 시작된 것은 실은 FIRE라고 불리는 제2의 경제분야이다. FIRE란 금융(Finance), 보험(Insurance), 부동산(Real Estate)을 지칭한다. 은행거래, 신용공여, 투자, 자본형성, 대부 등, 소위 ‘유동성’ 즉 생산경제가 원활하게 기능하도록 운전자금을 제공하는 경제이다. 그러나 근년에 FIRE경제는 생산경제보다도 훨씬더 빠른 속도로 성장해왔다. 이것이 문제의 근본이다. FIRE경제의 불균형한 성장은 인플레나 과잉경비, 폭리와 부패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 그것은 통화제도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부채의 피라미드가 마침내 붕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FIRE경제의 주도자는 주로 금리조작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연방준비이사회이다. 생산경제와 FIRE경제 모두에 유입되는 화폐가 궁극적으로는 은행이자가 붙는 대출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이자율은 극히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은행대출은 쉽게 악용된다. 그리고 이자가 복리인 경우 부채는 비약적으로 늘어나, 생활하는 사람 모두에게 무거운 부담이 된다. 예를 들어, 상품시장에서 업자들이 사용하는 돈의 97퍼센트가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라 은행에서 빌린 자금이다. 주식의 신용매입도 같은 식으로 이루어지며, 투자가 자신의 돈은 소액일 뿐, 나머지는 전부 빌린 돈이다. 주식펀드가 기업을 통째로 매수할 때에도 은행대출금이 사용된다. 이들 전부가 투자가에게는 매우 위험한 것이지만, 은행으로서는 그 대출금은 부분준비제도에 의해 사실상 무(無)에서 창출된 것이므로 그만큼 위험하지는 않다. 채무자가 파산한 경우 은행은 그들의 자산을, 물론 자산이 있다면, 차압할 수 있다.

오늘날 미국의 경제위기는 과도한 FIRE경제에 의해 시작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세계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제위기를 유발한 주택버블의 붕괴가 그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종을 울려왔던 주택버블은 2000~2001년의 ‘닷컴’ 거품 붕괴 후에 연방준비제도가 앨런 그린스팬 하에서 결정한 사태의 결과였다. 조지 부시가 앨 고어를 누르고 대통령이 되었다고 대법원이 판정한 2000년 12월, 주식시장은 대폭락을 하였다. 겨우 1년 사이에 8조 달러의 투자자금이 이슬처럼 사라진 것이다. 2001년 3월 부시 대통령은 대규모 감세안 통과를 의회에 요구했는데, 그것은 주로 최부유층 납세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2001년 말경에는 미국정부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여 9.11 테러에 대한 보복을 감행하고, 이라크에 대한 침공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가 새로이 견인될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연방준비이사회는 뭔가 경기회복을 위해 금리의 대폭 인하(2년간 5퍼센트)를 결정하였다. 그러나 이 금리인하는 산업생산을 위한 게 아니었다. 금융업계는 주택담보 대출을 원하는 소비자에게 대부를 해주었다. 그 결과, 주택 인플레로 주택가격이 급등했지만, 연방 규제기관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주택버블은 팽창하였다. 그런데도 은행은 연방준비이사회의 묵인 하에 전대미문의 규모로 대출을 계속했다. 그들은 갈수록 불량화하는 이 주택 대출을 각종 부동산 담보 증권에 묶어서 패키지화하였다. 그리고 월스트리트는 이들 신제품을 미국과 세계의 투자가들에게 판매한 것이다. 이 금융파생품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경고를 해왔다. 

실제로 많은 금융기관이 합계 수조억달러에 달하는 자신의 최대 투자자금을 기초로 파생품을 거래하였다. 정부도 또하나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증권거래위원회가 이 파생품을 규제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어떠한 버블에도 공통한 게 있다. 그것은 거액의 돈이 궁극적으로는 은행의 대부를 원천으로 하면서, 재화나 서비스 생산자가 실제로 하는 일과는 전혀 관계없이 경제에 투입된다는 점이다. 그런 까닭에, 당연히 인플레가 발생하는 것이다. 주택가격은 사실상 하룻밤 새에 폭등하였다. 연방준비이사회와 정부가 초래한 이 인플레는 이 나라의 일하는 서민들에 대한 범죄이다. 금융업자들의 암약에 의한 이익이 춤을 추며 올라가는 것에 비례하여 소비자의 구매력과 예금액은 동시에 감퇴하였다. 자신의 일로써 충분한 생활비를 버는 게 가능하지 않게 된 소비자는 자기 집을 사실상의 현금자동지급기처럼 취급함으로써 투기적 카니발에 가담한 것이다. 대출 브로커가 일년 간격으로 주택대출 계약을 써준 것은 드물지 않았다. 브로커는 수수료를 받고, 주택소유자는 주택의 이전 가격과 새로운 가격의 차액의 증가분을 수표로 받았다. 주택가격이 급락하기 시작하자 주택소유자는 최대의 패배자가 되었다.

이 버블은 연방준비이사회가 2003~2006년에 이전의 정책을 뒤엎는 금리인상을 함으로써 비롯되었다. 주택가격은 수요, 투기, 매월의 주택 대출금의 변제액을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 금리의 돌연한 대폭인하 등의 요인으로 상승해왔다. 그러나 이제 주택의 시장가격이 장부가격을 밑도는 상황, 즉 주택을 구입한 사람들의 부채액보다도 싼값이 되고 만 것이다. 그 사이에 은행은 사람들이 부채를 갚을 수 없게 된 것을 보고 신용대부를 엄격히 하고, 크레디트카드 등 대부금에 연계된 금리를 인상하여 메우려고 하였다. 리먼브라더즈나 메릴린치 등 거대 금융기관이 파산한다든지 경쟁 상대에게 매수당한다든지 하는 처지가 되었다. 지금 수백만의 사람들이 일자리나 집, 건강보험을 잃고 있다. 매월 50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실업수당을 받는 사람만이 아니라 일자리 구하기를 단념한 사람들이나 파트타임 일밖에 없는 이른바 ‘실의(失意)의 인간’도 포함하면 실질실업률은 20퍼센트를 넘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정부의 세수입도 떨어지고, 중앙 및 지방정부가 공무원의 급여나 업무를 삭감하는 데 따라 실업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실업률은 세계대공황 당시의 수준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이사회는 긴급대책을 통해 FIRE경제를 구제하려 하고 있다. 부시 정권의 불량채권 구제 프로그램으로 수천억달러가 은행으로 들어갔지만, 오바마 정부는 그 액수를 넘는 돈을 넣고 있다. 이 긴급원조는 외국의 투자가들이 더이상 리스크가 큰 미국 증권을 구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게 발단이 되었다. 2008년 10월의 금융붕괴도 그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그러나 은행조직을 통해 새로운 대부나 차금(借金)의 흐름을 재개하는 게 이 경제위기에 대한 답이라고는 할 수 없다. 나라 전체가 껴안고 있는 부채, 즉 우리들 개인이나 가계, 기업, 정부 등 모두의 금융기관에 대한 부채액은 대략 53조달러에 달하고 있고, 매년 3조달러가 추가되고 있다. 주택가격과 주가 하락으로 엄청난 부가 소멸된 탓에 이 부채의 중압감은 지난 2년 동안 극히 가혹한 것이 되었다. 오바마 정부에 의한 7,870억달러의 경제회복 프로그램은 미국 역사에 유례가 없는 최대의 지출법안이다. 그러나 그것은 고용의 창출도, 인프라 정비를 위해서도 유용하지 않다.

오바마 정부의 목표는 2010년까지 350만개의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한가? 현행법이 허용하고 있는 범위에서는 정부가 미국경제가 안고 있는 부채를 제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다시 경제성장을 촉진함으로써 부채 청산이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 이외에는 없다. 그러나 그런 희망이 실현될 전망은 없다. 부채액은 엄청나서, 예컨대 소비자가 절약하고 예전보다 훨씬 많이 저축을 한다 하더라도 도저히 갚을 수 없다. 더욱이 소비자가 그렇게 행동하면 소비가 저하되어 일자리가 다시 사라지고, 수입(輸入)도 감소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에 수출함으로써 생산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의 경제가 급속히 악화될 것이다. 이 경기하강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아무도 모른다.

만일 정부가 이 나라의 통화제도를 통제하게 된다면 어떤 구조적 변혁이 일어날 것인가에 관해서는 아직 논의조차 없다. 그것을 위해서는 우리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요구하는 것밖에는 길이 없다. 참된 통화개혁은 정부가 은행을 불량채권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단순히 은행 주식을 매입해주는 따위에 그쳐서는 안된다. 참된 통화개혁은 은행이 주도하고 있는 부채에 기초한 통화제도를 완전히 배제하여, 금융업자들과 그들의 정치적 지원자들로부터 격심한 저항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개혁은 어떻든 지금 바로 실현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가 경제에서 훨씬더 큰 역할을 하더라도 은행이 화폐를 창출하는 통화제도는 그대로 계속될 것이다. 민간 금융업자들이 통화공급을 담당하는 한, 모든 사람의 생활이 압박을 받고, 마침내는 이 나라의 생활수준이 급격히 하락할 것이다. 이것은 방방곡곡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사태이다. 이것은 또 미국의 소비자들이 외국제품을 살 능력도 붕괴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이다. 사람들 사이에 퍼져가는 절망감은 나날이 증폭되고, 극히 심각한 것이 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오바마 정권은 아직 금융과두제에 도전을 하지 않고 있다. 금융엘리트들은 경제회복을 바란다고 하지만, 그것은 근로자를 이롭게 하는 게 아니라, 은행과 기업의 이익을 소생시키는 경제회복이다. 그러나 우리는 경제의 하강국면에서도 세계의 잠재적인 생산력이 감소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우리들 인민은 지성을 소유하고 있고, 창조적으로 일할 수 있다. 미국을 배반한 것은 금융제도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태는 전부 제퍼슨과 같은 이들이 예견했던 것이다. 금융제도가 원흉인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 3가지 질문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①지구상에서 가장 생산적인 경제가 왜 이렇게 심각한 불황에 빠져,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는가? ②그러한 경제가 왜 530조달러나 되는 부채를 지고 있는가? ③어째서 미국정부가 일을 하는 데 중국에서 돈을 빌려오지 않으면 안되는가?… 지금의 혼돈상태를 발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크레디트(신용)라는 것의 본질을 꿰뚫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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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디트는 경제의 중심적인 개념의 하나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통제하는 주체가 누구여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민간의 은행조직인가,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여야 하는가? 이것은 국제적인 차원에서도 물어야 할 질문이다.

그러나 먼저 부분준비제도(fractional reserve banking)에 관해 좀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 부분준비제도란 케인즈의 말을 빌면 “무(無)에서 돈을 만들어내는” 것, 즉 은행이 실제로는 갖고 있지 않은 돈을 대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방식은 유럽의 금상(金商)들이 자신의 금고에 금을 맡긴 고객에게 영수증을 써준 중세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 후 금상들은 자신의 금고에 보관하고 있던 실제의 금의 가치보다 많은 종이 증명서를 사람들에게 대출하기에 이르렀다. 금상들은 영수증이나 증명서를 가진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금을 인출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상정한 것이다. 경제의 관점에서 볼 때 중요한 것은 유통되고 있는 증명서의 액면가격이 실제의 금보다도 크다는 사실이다. 이 괴이한 방식은 매우 수상쩍은 짓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교역량은 증가하였고, 우리는 그것이 어떤 식으로 통상 활동의 활성화에 기여했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창출된 크레디트는 문학 속에서는 사기의 일종으로 정당하게 인식되었다. 대금업은 부정(不淨)한 직업으로 간주되었다. 고리대금, 즉 빌려준 돈에 이자를 추가하여 되돌려 받는 일은 가톨릭교회에 따르면 불법행위였다. 그러나 크레디트는, 그것이 전혀 금에 뒷받침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도, 그 목적을 달성하였다. 중세 이후 상업이 성행하기 시작했을 때 개발된 근대적 금융이나 회계방식으로 태어나 상인과 제조업자 및 정부 사이에 통용되었던 종이로 된 신용증서도 그 예이다. 이 크레디트는 상품의 실제 움직임을 반영하는 상업거래에 결부하여 화폐를 발행해야 한다고 하는 원칙에 따라 통제되어왔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은 크레디트이다. 즉 나중에 뭔가 가치있는 것으로 지불된다는 약속에 기초해 있는 것이지, 금속으로 만든 경화(硬貨)의 내재적인 가치에 기초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중세인들이 크레디트에서 본 것은 재화나 서비스의 창출의욕을 유발하는 엄청난 힘이었다. 물론 실제의 금은(金銀)도 그러한 효과를 낼 수 있었다. 그래서 일찍이 스페인이 중남미 식민지로부터 유럽으로 가져온 귀금속이 경제를 자극하고, 그 결과 르네상스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그런데 저축이나 당좌예금으로 은행계좌에 쌓여있는 크레디트, 즉 금이나 은의 뒷받침이 없는 크레디트도 마찬가지의 효과를 낳았다.

요컨대 신용, 즉 크레디트가 정말로 가치를 갖고, 나중에 가치있는 뭔가로 지불된다는 것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 근대의 최대 발견의 하나는 크레디트의 무한한 확대 가능성이었다. 이것은 크레디트가 쉽게 악용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크레디트의 악용은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다. 채무자가 채무불이행으로 큰 불행에 빠져, 감옥에 들어가거나 노예가 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다른 한편, 대금업자의 사기나 부정도 형사처벌로 연결되며,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실제, 금상(金商)이 예탁증명서에 기재된 금을 인도하지 못하면 죽음으로 사죄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므로 현재 은행 혹은 국가의 중앙은행이 크레디트를 무책임하게 쉽게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중대한 범죄행위이다.

그럼에도 크레디트의 잠재적인 무한한 확대 가능성에 대한 경제상의 발견은 우주에너지의 무한성에 대한 과학적 발견에 필적하는 것이다. 이 두개의 발견은 우주의 본질이 풍요로운 것임을 가리키고 있다. 경기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이 사실을 상기하는 게 중요하다. 크레디트의 잠재적 에너지를 책임있게 사용한다면 생산성이 경이적으로 증대한다. 크레디트는 자연의 놀라운 힘, 가솔린이나 전기보다도 더 강력한, 원자력도 능가하는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인류의 창조성을 발휘케 하는 힘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크레디트의 지배와 규제를 둘러싼 투쟁, 은행업자와 정부, 민중 사이의 투쟁이 역사를 통해 반복되어왔다. 그러나 오늘날 크레디트로 통제할 수 있는 과학기술의 힘 때문에 그 중요성은 유례없이 높아졌다. 은행은 그것을 인식하고 있다. 상인이나 기업가도 인식하고 있다. 근로자와 그 가족들도 알고 있다. 크레디트가 깨끗한 공기나 물 혹은 전기 등과 같이 불가결한 것인 이상, 그것은 공익사업으로 관리될 수 있고, 마땅히 그렇게 돼야 한다는 견해는 완전히 타당하다. 크레디트는 공유재(共有財)의 하나이다. 공익사업으로서의 크레디트라는 개념은 현재의 경제위기를 해소하는 데 관건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크레디트를 상업적으로 사용하는 데 관련된 관행들은 계약법에 기초하여 법원에서 집행될 수 있는 강제력을 갖고 있다. 이런 식으로 미국 법률은 크레디트가 가장 기본적인 차원에서 공익사업임을 암시하고, 자유로운 시민들이 형성하는 입헌정체인 공화주의 정부의 본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의회는 크레디트를 금융업자들에게 인도함으로써 거의 민영화해버렸다. 최근의 예는 2009년 연방준비이사회가 무(無)에서 돈을 창출하여, 대출을 할 수 없게 된 은행들에게 배분한 것이다. 연방준비이사회는 현행 통화제도의 유지를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하려 한다. 미국 국채(재무부 증권)를 준비금의 기초로 삼는 원칙도 은행 자산인 정부 부채가 한계를 넘은 지금은 방기되고 있다. 의회는 종래와 같이 방관하고 있을 뿐이다. 크레디트의 민영화를 허용함으로써 의회는 ‘우리들 인민’의 국가를 황폐화시켰다. 의회는 은행이 상투적으로 인플레와 디플레의 사이클로부터 이익을 취하도록 무엇이든 허용해왔다. 그러나 이것은 또 크레디트의 힘을 다시 규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민을 대표하는 정부에 신용제도의 관리를 맡기는 것은 가능하며, 또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헌법을 개정할 필요가 없다. 이미 헌법 제1조는 미국이 공화주의 국가임을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국제금융에 대해 살펴보자. 지금 서유럽 각국에서는 세계의 금융시스템 전체를 지금까지 이상으로 국제관리 하에 두려는 움직임이 있다. 국제적으로는 국가 간 크레디트는 주로 타국 정부에 대부를 행하는 국제통화기금(IMF)에 의해 관리되어왔다.

IMF는 이른바 특별인출권(SDR)에 의해 크레디트를 창출하고 있다. SDR은 1970년대에 금본위제가 폐지된 뒤에 생겨났다. SDR의 가치는 4대 통화, 즉 미국의 달러, 유럽의 유로, 일본의 엔, 영국의 파운드를 기준으로 정해졌다. 국내에서 금융업자가 은행에 이자를 지불한다는 조건으로 일반인이나 기업 및 정부에 크레디트 이용을 허용하듯이 IMF도 자신의 주된 고객인 개발도상국으로부터 이자를 징수하고 있다. 이 이자는 결국 IMF를 매개로 돈을 버는 은행에 지불되고 있는데, IMF에 빚진 국가들은 수출로 번 돈에서 그 이자를 지불하고 있다. 더욱이 IMF에 빚진 국가는 글로벌 자본주의에의 개방을 강요받고, 자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각종 정책을 시행하지 않을 수 없다.

근년 개발도상국들 사이에는 더이상 IMF에 기대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있어왔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가 세계적으로 확대됨에 따라 이 움직임도 역전되고 있다. IMF와 은행은 다시 세계 각국에 대한 최후의 구제금융업자가 되려는 움직임을 재개하여, 이들 나라에 식료품 조성 등 서민 지원책을 실시하지 못하도록 경고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건조 현상으로 많은 지역에서 식량부족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이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IMF는 개발도상국의 경제적 주권도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 변제능력을 초과한 과잉대출로 붕괴된 아이슬란드도 바로 그런 경우이며, 동유럽 국가들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지고 있다. IMF의 이러한 사례는 은행제도가 세계경제에 끼치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 도처에서 은행업자들이 끊임없이 인류의 부를 착복하는 게 가능한 것은 크레디트를 이자가 붙은 대부금으로 발행한다는 그 행위 때문이다. 어떤 나라가 풍부한 자원과 국민경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생산능력과 유능한 인재들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방식으로 그 나라를 통째로 지배하고, 황폐케 하는 것이 가능하다. 금융시스템은 신용제도의 지배를 통해 부자들을 더 부자로, 가난한 사람들을 더 가난하게 만들어왔다. 사람들이 자산을 운용하거나 돈을 벌려고 할 때마다 금융업자들은 이자나 각종 요금을 부과하거나 금융버블의 발생과 붕괴를 야기하면서, 혹은 채무불이행으로 저당물을 잃게 된 사람들이나 기업의 자산을 차지함으로써 사실상 세금을 징수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세계의 신용제도가 붕괴되고 있는 양상을 보고 있다. 정보기관들은 신용제도의 붕괴로 인한 사회불안이 법과 질서의 파탄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폭동이 발생하고, 미국도 예외가 아닐 것이라고 경고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사태는 필연적인 게 아니다. 미국정부는 국민을 체포, 구금하려는 준비를 할 게 아니라, 금융업자들로부터 크레디트에 대한 지배력을 되돌려 받아 인민의 이익을 위해 관리해야 한다. 이것을 사회주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벤자민 프랭클린이나 토머스 제퍼슨 혹은 링컨은 사회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들이 믿었던 시스템은 입헌정부였다. 오늘날 의회는 화폐와 신용제도를 인민을 대표하는 정부가 관리하도록 법률을 쉽게 바꿀 수 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5

우리는 과학기술이 세계를 변모시킨 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다. 증기동력, 전기의 이용, 내연기관, 전자통신, 정보기술 등의 힘은 인간정신에 의해서 사회적 자산으로 변화하였다. 생산수단의 사유라는 서구의 관습에 의해 기술혁신이 가져온 이익은 오랫동안 노동자보다도 생산수단의 소유자에게 돌아가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노동자도 소유자도 통화의 공급을 통어하고 있는 금융업자들 밑에서 일하고 있다. 물론 때때로 세제, 노동조합, 사회복지, 규제, 협동조합 등의 제도나 다양한 수준의 공유화나 국유화도 선거나 혁명을 통해서 실시되어왔다. 그럼으로써 일반 사람들도 산업화의 혜택을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유감스럽지만 하나의 경향이 미해결로 남아있다. 그것은 제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자의 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자의 수가 미국에서는 다음 20~30년 사이에 반감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전쟁에서도 로봇이 병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소득이 고용에 의존하고 있는 이상, 산업생산이 보다 효율적으로 되면 될수록 사람들의 생계가 어려워진다는 사실에 대해서 경제이론은 극히 조잡하게 대응해왔다.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감소함에 따라 구매력은 불충분하게 되고, 생산된 것이 모두 소비되는 것은 불가능해지고 있다. 자국의 제품에 대한 고객을 외국에서 구하는 경향이 심화되는 것도 그 결과이며, 그 때문에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전쟁 발생 가능성도 증대되는 것이다. 더욱이 글로벌 자본주의와 자유무역이 무역장벽을 철폐해왔지만, 그 과정에서 노임이나 생산비용이 보다 싼 나라로 일자리가 유출됨으로써 자국민에게 안정된 생활을 보장할 수 없게 된 국민경제는 더욱 곤경에 빠지고 있다. 그리하여 이 고도의 산업시대에 부유한 나라를 포함하여 모든 국가에서 사람들은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상황에 쫓기게 되고 만다.

설사 특정 국가가 노동자들의 불충분한 소득으로 인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복지제도를 강화하려고 해도 세계경제 전체가 쇠퇴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기존의 틀로써 해결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경제학자나 정치가들은 소리 높이 고용창출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이미 생산된 물품의 소비에 필요한 충분한 소득도 제공하지 못하는 경제가 어떻게 더 많은 노동자를 필요로 하겠는가? 우리는 혼미 속에서 살고 있다. 현대의 과학기술이 평화와 번영과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 것은 어째서인가? 과학기술이 초래한 변화에 한결같이 잘 적응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그 적응은 기업이나 사회의 능력을 초월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에게 경제활동의 성과를 더 많이 분배하여 경제적 불공정 상황을 시정하면 될 것인가, 아니면 보다 깊은 뭔가가 작용하고 있는 것인가?

지금 상황에서 정말 필요해 보이는 것은 구매력의 증대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보다 적게 생산하여, 보다 적게 사야 한다. 이제 확실한 것은 고전경제학의 기본적 사고, 즉 “모든 사람의 최대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언제나 자율적으로 규제되는 시장을 창출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고, 그것을 단지 놓아두기만 하면” 운운하는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아직 믿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 생각을 불식시키지 않으면 다수 사람들이 빈곤에 허덕이는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적인 감성을 다소라도 갖고 있다면, 그와 같은 생각에 동조하기란 불가능하다.

경제학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두 사상가는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을 어떤 요인이 타파하는가를 발견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제품이나 서비스에 붙여진 가격과 그것들을 사기 위한 소득 사이에 존재하는 항상적인 간극이었다. 이 사상가 중의 하나인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나드 케인즈(1883―1946)는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를 썼고, 나중에 케인즈경제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졌다. 또하나의 인물은 1930년에 《경제적 민주주의》라는 책을 출판한 뒤, 여생을 ‘국민배당’이라는 개념의 보급에 바친 영국의 엔지니어 클리포드 더글러스(1879―1953)이다. 더글러스의 생각은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의연히 존재하고 있는 사회신용론(社會信用論) 운동의 초석이 되었다.

세계대공황은 주식시장이 붕괴한 1929년에 일어났다. 그러나 저 번영의 20년대에는 거품경제 때문에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과 그것들을 구입할 수 있는 공중의 소득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공황이 되자 공장은 폐쇄되고, 사람들은 물건을 살 수 있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농민들은 가축을 도살하거나 우유를 방목지에 버렸다. 공장이 닫혀 있던 때도 사람들은 일을 할 의지도 능력도 있었지만, 시스템 작동에 필요한 돈이 유통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 같은 물가와 소득 간의 간극에 대하여 케인즈와 더글러스는 공통하게 주목하였다. 기업은 장래의 투자에 대비하기 위해 일정한 금액을 제품가격에 포함시키는데, 이것이 소위 ‘이익잉여금’이다. 나아가 기업 소유자를 포함, 각 개인도 장래를 위해 저축을 한다. 이익잉여금도 개인의 저축도 은행에 예금되는데, 그것은 개인소유로서 직접 사용되기보다 자산의 구입이나 투기목적의 대출금으로 사용될 경향이 크다. 더욱이, 더글러스는 기업이 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기 위해 그것도 기업의 제품가격에 포함시킨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기업의 수익의 일부가 종업원의 건강보험을 포함한 여러 보험이나 퇴직기금에 대한 사업주 부담금으로 충당되고 있다. 이것도 형태를 달리한 저축이다. 아무튼 산업경제에 있어서 물가의 총액은 어떠한 회계 사이클로 계산하더라도 소득의 총액보다도 늘 크다. 그 차액은 상당한 금액에 달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내 계산으로는 지금의 물가총액의 적어도 25퍼센트가 이 범주에 들어간다. 이것은 국내총생산(GDP)과 순소득과의 차액이다. 이 숫자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능가한다. 이 간극이 기업의 소유자, 경영자, 관리자, 노동자 사이의 소득격차로 인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물가와 소득 간의 간극은 구조적 문제이다.

케인즈가 제안한 해결책은 늘 보수주의자들에게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것은 저축을 일반경제에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적자재정지출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계획사업에 자금을 조달해야 할 저축자들에게 적자공채를 발행해야 한다. 그 대신에 과세라는 법적수단으로 저축을 징발하는 방법도 있다. 이 적자공채와 중세(重稅)는 모두 경제회복을 위한 정부 차입이 높아지기 시작하던 1930년대 루즈벨트 정부의 정책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에 소득세는 역사상 최고 세율이 되었다. 루즈벨트 정부는 또 크레디트에 대한 은행의 지배를 부분적으로 약화시켜 부흥금융공사와 주택대부금고의 제휴에 의한 저리(低利)대부를 통해 수요를 가속화시켰다. 루즈벨트와 그의 후임자는 상당한 정도 케인즈경제학을 활용하여 물가와 소득 간의 간극을 통화정책으로 메우려고 하였다. 그러나 케인즈경제학도 완전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문제의 하나는 정부도 개인도 차입금에 대해서 이자를 붙여 변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이다. 오늘날 미국정부의 이자지불액은 매년 5천억달러에 달하고 있다. 이밖에도 개인이나 기업, 주정부 및 지방정부는 대개 2조달러를 지불하고 있다. 케인즈경제학의 문제는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끊임없이 경제성장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이 시스템 속에서는 모든 사람이 단지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도 더 많은 물건을 계속 생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 자원의 소비나 과다한 대량소비, 환경문제도 수습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 감당키 어려운 비용증가를 가져온다. 이렇게 증대된 비용은 재화나 서비스 가격의 상승을 압박하여 물가가 올라가고, 그것이 마침내 제품의 질을 떨어뜨리는 데 이르러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아마도 그 최악의 예가 유전자조작 종자에 의한 단기 식량생산 비용감소일 것이다. 이것은 결국 부채를 기초로 한 화폐제도의 부작용이다.

정부가 물가와 소득 간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실행해온 방법의 하나는 군사비 지출인데, 케인즈경제학도 전쟁과 군산복합체의 창출과 유지에 보조를 같이해왔다. 정부는 통화를 팽창시켜 부채를 극복하려고 한다. 인플레는 납세자를 고소득층으로 밀어올리고, 또 부동산 평가액을 올림으로써 세율을 높인다. 마지막으로 케인즈적 시스템 하에서는 노동자의 총소득이 여전히 불충분하기 때문에 물가와 소득의 간극 중 정부가 차입이나 징세로 채울 수 없는 부분은 오늘날 기업만이 아니라 근로자의 소비를 위해서도 융자하고 있는 은행업계가 메우고 있다. 2006년의 GDP는 13조달러, 국민소득은 9조2천억달러로, 그 차이는 3조8천억달러였다. 그 간극은 대부분 은행돈을 빌림으로써 메워졌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다는 미국경제는 은행대출에 기대어 많은 사람들이 생활하는 경제이다. 결국 케인즈경제학은 이렇게 은행업계에 막대한 이익을 계속 허용하는 타협책이다. 1970년경 닉슨 대통령은 유명한 말을 했다. “우리는 모두 케인즈주의자이다.” 2009년 지금도 우리는 의연히 케인즈주의자이다. 그리고 정부와 금융업자들은 일치 협력하여 역사상 유례없는 부채를 창출하고 있다. 여기서 더글러스가 제창한 해결책을 보자. 그 역시 물가와 노동자 소득 사이의 간극을 산업경제의 중심적 문제로 명확히 포착하였다. 그는 이익잉여금이나 저축이 필요하기 때문에 간극은 불가피하다고 보았지만, 경제시스템이 시간의 경과와 함께 생산성을 높이는 것도 관찰하였다. 경제는 현행의 시설이나 자원의 가치가 하락하여 보상이 필요하더라도 결국은 그 가치를 증대시키는 것이다. 이 가치가 장기적으로 증대한다는 것은 자산이 매각되어 자본으로부터 이익이 얻어지는 때에 명확해진다. 주식시장이 출렁거리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그 가치를 증대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더글러스는 이렇게 경제시스템이 그 가치와 활력을 증대시키면서 성장하고 있는 것을 관찰하였다. 그는 인생을 경제전문가가 아니라 엔지니어의 눈으로 보았는데, 그가 본 세계는 무한한 에너지 및 인간과 자연의 창조성에 뿌리를 둔 풍요의 세계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거의 모든 경제전문가의 눈에 비친 세계는 결핍의 세계, 빈곤을 면하기 위해 끊임없이 일하지 않으면 안되는 세계이다. 더글러스는 내가 ‘배당경제학’이라고 부르는 것을 만들어냈다. 그는 이익잉여금, 저축 및 투자는 정부지출이나 소비자의 부채라는 형태로 화폐화되어야 할 게 아니라, 이익잉여금, 저축금 및 투자금이 겨냥하는 ‘장래의 생산성 신장’에 대한 배당을 사회의 전체 구성원들에게 현금이라는 형태로 화폐화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더글러스가 제창한 현금급부는 두종류인데, 하나는 ‘국민배당’이라고 불렸다. 두번째는 그가 ‘보상가격’이라고 부른 물가보조이다. ‘국민배당’이란 국민 개개인에게 정기적으로 현금을 지급하여, 모든 사람이 근대적 기술이 가져다준 생산적 경제를 정당하게 나누어 갖게 하는 제도이다. 국민배당의 재원은 정부의 공채도, 세수(稅收)도 아니다. 그 재원은 정부에 의한 화폐발행에서 나온다. 즉 재무부가 민간은행이 대출을 할 때 하는 것과 같은 식으로, 무(無)에서 돈을 창출해내는 것이다. 이 제도에서는 정부가 일정액의 돈을 국민들에게 주는 것이지, 은행이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게 아니다. 그 금액은 경제가 장래에 생산할 것으로 추정되는 부에 의거한다. 그것은 정부 주도의 공익사업으로 관리되는 크레디트이다. 그 결과 지금보다 훨씬 공정하고 안정된 경제체제가 생겨난다. 이 배당은 개인이 물건을 사는 데 사용되기 때문에 새로운 경제활동이 창출되며, 은행으로부터 빌린 자금의 많은 부분을 대신한다. 따라서 그것이 인플레를 일으킬 일은 없다. 은행의 투기적 행위를 금하는 법률과 결합된다면 국민배당은 기업의 일상적인 운영과 함께 사업의 혁신이나 확장을 위한 운전자금과 유동성 자금을 제공하고, 그럼으로써 은행을 그 본래의 제한된 역할만 하도록 만들 수 있다. 더글러스의 생각은 1930년대에 세계가 대공황으로 시달리는 상황에서 급속히 확산되었다. 사회신용론 운동은 영국, 캐나다, 호주 및 뉴질랜드에서 정치적 세력이 되었다. 더글러스의 생각은 이태리와 일본에서 진지하게 연구되었다.

사회신용제도가 순수한 형태로 실시된 적은 아직 없지만, 세계는 풍요롭고, 모든 시민들이 그 풍요를 나누어 가질 권리를 갖고 있다는 생각은 많은 나라에서 적극적인 변혁의 힘이 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쯤 세계의 금융시스템은 케인즈경제학을 기초로 구축되어, 은행크레디트는 과잉 사용되고 있었다. 오늘날 금융업자들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현실은 특히 1970년경 미국경제를 산업생산에서 금융 주도의 경제로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굳어졌다. 이 결정은 주로 국제적인 금융엘리트들이 미국의 안보와 외교, 금융계 거물들의 협력을 통해 주도하였다. 닉슨 대통령에 의한 중국과의 국교수립은 미국 기업이 중국의 저임금 노동자들을 이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중국과 여러 나라는 자국 생산품을 미국에 수출하고, 거기서 번 달러로 미국 재무부 증권을 구입함으로써 지금 미국의 무역 및 재정적자를 메우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위험한 상황이다. 오늘날 우리가 중국에 의존하여 재정적으로 연명하고 있는 것은 중대한 안보상의 위협으로 이미 인식되고 있으며, 중국도 이러한 시스템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6

이제 우리는 최후의 목적지에 가까이 왔다. 지금까지 우리는 나라의 통화제도를 민간은행업계가 통제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아왔다. 또 케인즈경제학에도 심각한 한계가 있음을 우리는 보았다. 진정한 대안은 통화제도의 근본적인 개혁과 국민배당의 실시이다. 이것을 좀더 상세히 설명할 차례이다

이 설명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21년간 캐나다 수상을 지내고 1950년에 죽은 근대의 가장 개명적인 정치가에 속했던 윌리엄 매켄지 킹의 명언을 여기서 되새기고 싶다. “통화와 크레디트를 발행하는 지배권을 정부가 되돌려 받는 게 정부의 가장 명백하고도 신성한 책임이다. 이 사실이 인식되기까지는 나라의 주권과 민주주의에 대해 말하는 것은 완전히 공허하고 무익하다. … 일단 국가가 통화와 크레디트에 대한 지배권을 놓치면, 나라의 법률을 누가 만드느냐 하는 것은 하등 중요하지 않다. 폭리를 추구하는 무리가 일단 득세하면 어떠한 나라도 파멸시켜버리고 만다.”

우리가 분명히 이해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민간은행 시스템에 의한 통화는 본질적으로 부채로서 유통되며, 그것이 현재의 위기를 야기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이 시스템에 의해 파탄에 직면해있다. 이 시스템은 인플레와 디플레를 끊임없이 되풀이함으로써 부와 권력을 끝없이 부유층의 수중에 집중시켜왔다. 역사적으로 보면, 케인즈경제학을 실행하는 정부와 일체가 된 이 시스템은 현대의 산업경제를 중세식으로 운영하려는 시도이다. 옛 금상(金商)들의 괴이한 관행이 현대세계를 무대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케인즈적 시스템에서 정부공채가 군사비 조달수단이 되고 있는 것을 보면, 미국이 부채에 허덕이면서도 군사활동을 세계 각처에서 확대해온 주된 원인은 그 통화제도에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은행업자들이 화폐 창조를 독점하고 있는 것은 최악의 민영화이다. 이 시스템은 온갖 곳에서 온갖 사람들의 행동을 결정하고 있다. 개인, 기업, 정부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은행의 화폐발행 메커니즘에서 생겨나는 부채에 쫓기면서 끝없는 경쟁적 질주를 강요당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또 장기적으로 통화의 가치를 감소시킨다. 연방준비은행법이 성립한 1913년 이래 미국 달러가 그 본래 가치의 95퍼센트 이상을 잃어버린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물가에 붙어있는 것은 이자만이 아니다. 시장에서 물품을 판매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라도 자신이 안고 있는 부채를 면하려고 가능하면 물건 값을 올리려고 하는 것이다.

부채를 기초로 한 이 통화제도는 그 희생자인 사회가 죽어서야 행진이 끝날 것이다. 지금 세계 전체가 죽어가고 있다.

은행의 대부에 의해 통화가 창조, 유통되는 방법은 이제 폐기돼야 한다. 인민을 대표하는 정부가 생산경제의 요구나 국민의 수요를 지원하기 위해 통화를 창조하는 시스템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안된다. 크레디트는 공익사업이 돼야 한다. 지금 정부가 취하고 있는 은행구제책이나 경기회복책은 이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다. 정부정책은 전적으로 은행의 화폐 독점을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는 고용을 창출하려고 하는 기도 속에서 부채의 늪에 점점 깊이 빠지고 있다. 은행을 국유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현행 법률 하에서 이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파산 직전의 금융기관을 인계, 관리하려 하고 있다. 물론 유럽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주식이나 헤지 및 파생상품 따위 거액의 투기용 크레디트를 더이상 허용하지 않도록 은행금융제도를 엄격히 규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규제를 강화하더라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바마 정부가 은행구제나 경기회복책으로 내놓는 응급조치 대신에 19세기의 ‘그린백’처럼 차입이나 징세가 아니라 연방정부가 스스로 돈을 만들어 지출하는 능력을 가진다면 사태는 전혀 달라질 것이다. 지금도 의회는 ‘그린백’의 새로운 발행을 승인할 권한을 갖고 있다. ‘그린백’과 같은 지출 방식은 데니스 쿠니치 의원이 주도하는 하원의원의 지지를 얻어 미국통화연구소가 기초(起草)한 미국통화법안의 주요 조항의 하나가 되어있다. 19세기 동안에 그린백당, 인민당, 민주당은 전적으로 그러한 통화 개혁조치를 지지했다. 오늘날 우리는 그린백 지폐를 다시 최우선의 정치적 과제로 삼을 필요가 있다.

물론 은행업계의 옹호자들은 그린백 지폐가 인플레의 원인이 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허언이다. 은행돈을 빌리는 것을 그만두고 ‘그린백’을 사용함으로써 인플레가 된 역사적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사실, ‘그린백’이 사용된 남북전쟁 기간에는 인플레가 거의 없었고, 또 19세기 나머지 동안 실제로 물가는 하락했다. 연방정부 근무 당시 나는 주로 재정을 연구했다. 재무부에 21년간 근무하는 동안에는 미국의 식민지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국가재정의 역사를 깊이 연구하였다. 그 결과, 연방정부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방법은 징세나 차입 혹은 서비스요금뿐이라는 독단적인 정설은 근시안적이고, 멍청하고, 역사적으로 전혀 유례없는 부정확한 사고라는 것을 단언할 수 있다. 사람들이 그러한 잘못된 믿음을 갖게 된 것은 오랫동안 미국을 지배하려고 획책하다가 마침내 1913년에 연방준비법을 감쪽같이 성립시킨 금융계 인물들이 로비활동에서 퍼뜨린 거짓말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미국은 ‘그린백’을 재원으로 함으로써 금융계를 그들의 본래의 장소로 되돌려놓는 게 가능하다.

또하나 폐기해야 할 독단적 정설은 일단 발행된 크레디트는 그 발행처로 상환되어야 하며, 이자와 함께 변제함으로써 소멸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크레디트는 단지 구매력을 제공하는 것일 뿐이다. 관리비나 리스크 분담 비용 이외에 거기서 이자를 인출하는 것은 폭리라고 불리는 강탈행위이다.

‘그린백’을 재원으로 하면 통화의 발행과 크레디트의 사용은 은행에 부채를 갚을 필요나 은행이 부과하는 크레디트 사용 요금이 없어진다. 그러면 그 통화를 뒷받침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금의 부활을 바라는 사람들은 그게 금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금본위제는 사실상 허구이다. 근대산업국가의 통화수요를 지원하는 데 충분한 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린백’ 제도로는 통화공급의 신뢰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족하며, 어떠한 귀금속에 의한 뒷받침이 필요하지 않다. 오늘날 연방준비제도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장래 세대의 생활과 자유를 담보로 하여 나날이 팽창하는 국채이다. 이것은 큰 오류이다. 여하한 통화도 그것을 보증하는 것은 돈 혹은 크레디트에 의해 돌아가는 실체경제이다. 정부는 다양한 형태의 지출로 ‘그린백’을 유통시킬 수 있다. 2009년 2월 19일 현재 10조7,963억달러를 웃도는 국채의 변제에 사용할 수도 있고, 사회보장을 위한 자금조달을 할 수도 있다. ‘그린백’은 또 고령자를 위한 의료비의 보조에 혹은 국민의료개보험을 위한 정부 부담금으로 지출할 수도 있다. 학비대출을 장학금으로 전환하는 데도 사용될 수 있다. 연방정부, 주정부 및 지방자치체의 인프라 개량공사 조성금을 지원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린백’은 군사적 수단으로 경제적 약점을 메우거나 군대를 가지고 케인즈주의적인 고용창출을 시도한다거나 할 필요를 없게 만든다. 또 오바마 대통령이 제안하는 대체에너지연구개발 프로그램에도 사용할 수 있다.

징세는 경제정책을 실시하는 데 편리한 수단이며, 부당한 인플레나 디플레를 방지하기 위해 통화의 공급을 제어할 때에도 소용된다. ‘그린백’에 의한 자금조달은 중앙 및 지방정부가 개인소득의 평균 30~40퍼센트를 세금으로 징수하고 있는 현재의 중세(重稅)에 비해 훨씬 낮은 과세를 가능케 할 것이다. 정부는 긴급을 요하는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거나 저축채권과 같이 국민에게 저축의 기회를 주는 경우를 제외하고 돈을 빌릴 일이 없다. 독립한 주권국가가 은행조직, 외국정부 혹은 자본가적 투자가에게서 돈을 빌릴 이유는 전혀 없다.

참된 통화개혁이 실현되더라도 상업활동에 은행조직은 필요하다. 그러나 은행조직이 부분준비제도를 이용하여 대출을 하는 일은 더이상 가능하지 않다. 이리하여 새로운 화폐를 무에서 만들어냄으로써 은행이 누려온 부적절한 특권은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 은행조직은 훨씬 안정적으로 되고, 비양심적인 은행가들에 의한 악행도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그린백’ 제도는 지체없이 실시할 수 있고, 반드시 실시돼야 한다. 물론 이 제도는 돈을 가진 자들이 민간섹터에서 투자하는 자본시장을 대신할 수는 없다. 다만 그러한 사람들이 주식, 헤지, 파생품 등 범죄적인 다단계 판매방식을 통해서 해온 것과 같은 투기적인 투자확대를 위해 은행의 대출을 이용하는 것은 더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크레디트나 통화를 제어하는 지배권을 연방정부에 주는 것은 안전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누군가가 그것을 제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터무니없는 사익을 위해 우리의 경제를 파탄내고, 모든 국민과 그 자손들을 노예화하는 민간은행보다도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정부가 통화제도를 지배하는 게 훨씬더 낫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선거는 공정하고 정직하게 행해져야 한다. 특수 이익을 겨냥한 로비활동을 제어하고 공개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새로운 입법이 필요하다. 금융계에 의한 선거헌금도 불법화해야 한다. 나아가 지난 십여년간 축적된 부채의 대부분을 말소할 필요도 있다. 이 터무니없는 부채는 은행크레디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미국정부가 1조달러 이상의 납세자의 돈을 은행의 긴급구제에 충당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부채에 기초한 통화제도가 기능부전에 빠졌고, 마땅히 폐기돼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는 시민들이 자력으로 번 돈이나 저축한 돈으로 필요한 것을 구입할 수 있는 제도를 새로이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잃어버린 통화주권을 되돌려 받기 위한 프로그램은 내가 앞서 설명한 중요한 구조적 문제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산업경제체제에 특유한 물가와 소득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올바른 방법을 알아내기까지는 경제가 안정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이 구조상의 불균형은 순수한 자본주의경제로부터 순수한 사회주의경제에 이르기까지 온갖 경제체제 하에서 존재하고 있다. 이 점에서 누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가는 문제가 아니다. 또 과학기술에 의해 생산성이 부단히 향상되고 있는 탓에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현상, 즉 계속적인 실업의 문제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오바마 정권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문제는 정부에 의한 고용창출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렇게 해서는 앞에서 내가 설명한 물가와 소득 간의 간극이나 노동의 진부화(陳腐化)라는 문제에 대처할 수는 없다. 사회의 안정을 확보하고, 시민들에게 대지(大地)의 은혜와 자신들의 노동성과를 공평하게 나누어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은 ‘배당경제학’뿐이다. 먼저 정부가 개개 시민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국민배당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일단 이것이 실시되면 정부에 의한 차입이나 징세 내지는 고용의 창출이 없어도 국민배당 덕분에 새로운 구매력이 생겨난다. 국민배당은 또 보다 많은 제품을 만드는 데 보다 적은 노동자밖에 필요하지 않는 문제도 올바르게 해소시켜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상황에서는 소득이 노동과 분리되기 때문이다.

국민배당이 실시되면 어떤 사람들에게는 일하지 않는 게 이익이 된다. 여기에는 지금 단지 생존하기 위해 일년 내내 하나 내지 그 이상의 일자리에서 일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들이 포함된다. 또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가정 바깥의 일을 그만둔 어버이, 고령자, 학생, 자원봉사활동 혹은 교육이나 예술 등 저임금이라도 중요한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이 부류에 속할 것이다. 우리는 예전부터 이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제 이것을 나라의 경제정책으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생산성에 기초한 배당은 지금까지 실현되지 못한 산업혁명 이래의 꿈이었다. 오늘날 생산성의 배당을 향수하고 있는 것은 큰 부자들뿐이다. ‘그린백’의 지출도 국민배당도 크레디트의 힘으로 만들어진다. 내가 시산(試算)해본 바에 의하면, 2009년의 미국경제에 잠재하는 배당액은 국민 1인당 12,000달러 이상, 총액으로 약 3조6천만달러가 된다. 그런데 이 금액은 지난번 경제파탄 전까지 미국경제가 은행 부채로 매년 계상해온 금액과 거의 같은 액수이다. 크레디트를 공익사업으로 사용한다면 이 부채의 대부분은 회피 가능하다. 이것을 시작하는 한 방법은 내가 설계한 ‘쿡플랜’을 즉각 실행하는 것이다. 이것은 식품, 주택, 수도 및 광열비, 교통, 교육 등 생활필수품에 사용처를 한정시킨 매월 1,000달러 상당의 교환권을 시민들에게 지급하는 제도이다. 아이들에게도 그보다 적은 액수가 지급된다. 이 교환권은 다른 소득과 같이 과세되고, 실업보험이나 사회보험 등 다른 정부급부를 보완하는 것이 된다. 이 교환권은 소비자, 학생, 소기업, 지역의 제조회사 및 자영농가에 대해 1퍼센트의 이자로 대출을 하는 반관반민의 지역 저축은행의 네트워크 속에서 예금으로 수용될 것이다. 현대의 은행조직과 글로벌기업이 파괴해온 지역 풀뿌리 경제의 회복을 돕기 위해 그 융자는 정부의 조성금을 얻어 저리(低利)로 한다. 그것은 밑으로부터 위로 용솟음쳐 오르는 진정한 ‘트릭클업’ 경제라고 할 수 있다.

배당경제학을 보수파들은 ‘공짜밥경제학’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현실에서 ‘공짜밥’의 예는 실로 흔하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자신도 매일같이 이용하고 있다. 산업혁명시대에 증기동력이나 화석식물에서 얻은 가솔린 생산을 통해서 이루어진 태양에너지 이용도 그 일례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들 비약적인 기술진보는 그 후 생산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증대된 주된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의 혜택은 모든 사람에게 배당으로 주어지는 게 당연하다. 제2의 산업혁명인 전기의 발명도 같은 성격을 가진 또하나의 공짜밥이다. 19세기 중엽에 연방정부가 입식자(入植者)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한 공유지도 공짜밥이다. 주간(州間) 고속도로망 같은 공공 인프라 정비도 그러하며, 정부가 개발하여 비즈니스나 통신을 변용시킨 공익사업인 인터넷도 그러하다.

배당경제학에는 이미 하나의 실례가 있다. 알래스카 영구기금이 그것인데, 이 기금은 2008년에 1인당 3,269달러를 배당하였다. 이것은 주(州)가 자원개발에서 얻은 수입 가운데서 지급한 것이다. 이와 같은 배당법안이 2007년에 버몬트주에서도 제출되었다.

국민배당에 의한 구매력의 회복은 미국을 재건할 것이며, 지역경제의 르네상스를 초래할  것이다. 정책결정이나 정치권력의 초점은 밑으로 이동하여 지방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소비자는 자신들의 배당을 자신의 지역사회에서 사용하게 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생활이 개선되어, 예전에는 전혀 수입이 없었던 지역에도 세수입이 생겨날 것이다.

지역사회는 다시 번영할 것이다. 그리고 가족농업이 마침내 애그리비즈니스(거대농기업)의 음습한 압제에 맞설 수 있는 자금을 갖게 된 농촌지역도 다시 번영하게 될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국민배당은 은행융자금에 의존해온 소비를 대신하여 생산을 자극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로 인해 인플레가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실제, 가계나 기업이라는 생산경제 차원에서 보면, 오늘의 미국경제에는 현금이 부족하다. 더이상 은행의 대부와 정부의 부채에 기대지 않고 그린백 지폐와 국민배당을 실시하는 것이 경제가 순조롭게 돌아가는 데 필요한 현금을 공급하는 바람직한 길이 된다.

마지막으로 강조해두고 싶은 게 또하나 있다. 그것은 그린백 지폐와 국민배당이 경기회복을 위한 방책도 아니며, 단순히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긴급조치도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산업경제에 있어서 금융에 수반되는 문제를 공평하고도 정의로운 방법으로, 결과적으로 경제민주주의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항구적인 구조변혁을 의미한다. 이 계획의 실시는, 금융과두제에 의한 위헌적인 통화지배를 배제하고, ‘우리들 인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금융제도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단순한 미국만의 개혁이 아니라, 어떠한 국가에서도 실행해야 하는 정책이다.

이로써 이 긴 여정의 끝에 이르렀다. 이 여행은 내가 카터 대통령 때 백악관에서 근무하던 시절 처음 배당경제학에 대해 알게 된 1979년에 시작되었다. 이 정보를 이렇게 여러분들에게 전할 수 있게 되기까지 30년의 세월이 일과 연구에 바쳐졌다. 이 비디오를 만들고, 지지와 격려를 해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기쁜 일이었다. 여러분이 보신 이 비디오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해주신다면 더할 수 없이 고맙겠다. 시청해주신 데 대하여 감사한다. (김정현 옮김)


  리처드 쿡(Richard Cook)미국인 저술가, 교육가, 통화문제 전문가. 30년 이상 식품의약청, 항공우주국, 재무부 등 미연방정부 기관에서 정책분석가로 일한 경험을 토대로 근년에 통화제도 개혁을 위한 저술 및 강연활동에 헌신해왔다. 이 방면의 대표적인 저서로 We Hold These Truths: The Hope of Menetary Reform(2008)이 있고, 여기 소개하는 것은 2009년 3월 저자 자신이 직접 제작, 인터넷 동영상으로 공개한 비디오 강연내용을, 몇몇 부분을 생략하고,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6부로 구성된 이 비디오 강연의 제목은 The Solution to the Economic Crisis: Credit as a Public Utility이며, 현재 인터넷에서 공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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