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제107호 2009년 7-8월호  인쇄용  

 

  저탄소 사회로 가는 지름길, 자전거

  박용남

 

  파우스티언맨의 변종

  우리는 ‘우주선 지구호’에 탑승하여 취약한 공기나 물과 흙의 공급에 의존하면서 함께 항해해야 하는 운명을 안고 있다. 이것은 인류가 반드시 지구라는 행성 자체의 유한성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전지구적인 관리와 운영에 토대를 두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구축하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난파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는 앞과 뒤를 돌아보지 않고 끝없이 성장을 추진하는 사회 속에 살고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미국 정치학자 린턴 콜드웰 교수의 지적에 의하면, 이 ‘이상 발달사회(hypertrophic society)’는 사회 자체에 자극을 주면서 가속도를 붙여가며 나선형으로 진행하는 순환 속에 존재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래서 개발은 개발을 낳고, 성장은 성장 위에 또 쌓여가고, 발전과 성장의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확대와 변화의 속도는 인간의 적응능력을 훨씬 능가한 상태로 진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증폭장치를 갖춘 ‘이상 발달사회’는 일반적으로 무한한 생산과 소비, 인구성장, 기술개발 등의 증후군이 지배하고, 그 증후군을 조장·확산시키는 기저에는 ‘파우스티언맨’이 자립잡고 있다. 파우스티언맨이란 괴테의 서사시 〈파우스트〉 속에서 “투쟁이 중심이다. 정복하라! 쿵쿵하며 울려퍼진다!”라고 외치며 트럼펫을 불면서 무한한 공간을 향하여 전진을 계속하는 사람을 상징하는데, 현대사회의 결코 만족할 줄 모르는 전투적 인간을 뜻한다.

  최근 들어 이런 파우스티언맨이 지배하던 대량 생산·소비 체계의 한계, 기후변화위기와 자연생태계 파괴에 대한 공포의식이 아주 빠른 속도로 지구촌 전체를 뒤덮고 있다. 그 중심에는 바로 우리가 신주단지처럼 떠받들고 사는 자동차사회가 떡 버티고 서있다.

  이런 자동차사회는 인간이 일찍이 가지고 있던 원초적인 생활방식과 동지애, 형제애에 기반을 둔 공동체를 붕괴시키고, 개인의 삶 자체가 전적으로 자동차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헨리 포드가 최초로 자동차를 대량생산하여 ‘모든 집에 차 한대씩’ 주겠다는 슬로건을 내건 후, 많은 정치가들과 지지자들은 그것을 하나의 신념으로 믿어왔다.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민족 구성원 모두가 자동차 소유자가 되는 ‘자동차 민족공동체’를 약속하면서 최초의 아우토반을 건설하였다. 그리고 프랑스의 조르쥬 퐁피두 전 대통령은 “파리는 자동차에 적응해야 한다. 그것이 어떤 낡은 미학주의의 포기를 뜻하는 것이라 해도”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스웨덴 수상을 지냈던 잉바르 카를센은 “자동차 소유는 인권에 속한다”라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고, 영국 교통부장관을 역임했던 피터 보텀리는 “현재 개인교통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여성, 소수민족, 생활보호자들이 장차 구입하게 될 자동차를 위해 더 많은 도로가 건설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자동차 생산자와 장려자들(정치가도 포함)의 생각이 담긴 예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많다.

  최근 들어 한국사회에는 녹색으로 포장된 변종 파우스티언맨이 갑자기 나타나 우리사회를 태풍의 눈 속으로 거세게 몰아넣고 있다. 2008년 8·15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저탄소 녹색성장이라고 불리는 국가비젼을 발표한 이래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우리는 지금까지 철석같이 믿고 살아왔던 상식을 바꿔야 하는 엄청난 충격을 맞이하고 있다. 필자는 지금까지 철도를 비롯한 대중교통과 자전거를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기후변화와 석유생산정점 위기를 극복하는 데 아주 좋은 교통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국내에서 진전되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볼 때, 대표적인 녹색 교통수단인 철도와 자전거마저 얼마든지 적색의 얼굴을 띨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금 엄청난 충격에 빠져 있다. 그런데도 국내에는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못지않게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철도, 자전거와 관련된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여기서는 지면관계상 수도권 일대에서 현재 진행 중인 대심도 급행철도를 비롯해 철도정책은 논외로 하고, 겉으로 ‘녹색’을 내세우며 ‘토목 페달’을 끊임없이 밟으며 내달리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비상식적인 자전거정책을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세계적인 자전거도시로 손꼽히는 네덜란드의 그로닝겐과 독일의 뮌스터, 덴마크의 코펜하겐 등에서 최근 진행중인 아주 혁신적인 사업을 몇가지 소개하면서 MB정부의 자전거 관련 정책방향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킬 것을 강력히 요구해볼 것이다.

 

  자전거교통의 기본 특성

  적색양식이라 불리는 자동차교통에 비해 녹색양식의 하나로서 자전거 교통은 세계 전역의 많은 마을과 중소도시에서 그 편익에 대한 인식이 증대함에 따라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다. 여기서는 이명박 정부의 자전거정책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교통수단으로서의 자전거의 장점을 먼저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자전거는 환경친화적 교통수단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자동차와는 달리 시동 시 스타트모터의 반복작동으로 인한 비명소리, 주행 시 발생하는 배경굉음과 브레이크 및 타이어의 마찰음 등으로 인한 소음피해를 야기하지 않고, 이산화탄소, 질소산화물, 탄화수소, 납, 먼지, 냄새 등 자동차가 배출하는 해로운 배기가스를 전혀 발생하지 않아 인간 및 동·식물의 건강과 건물에 치명적이고 불가역적인 손실을 입히지 않는다.

  둘째, 자전거는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유연하고 시간 및 에너지 절약형 교통수단이다. 사이클링은 휘발유, 경유 등 대부분 한계자원을 이용하는 자동차와, 동물이 견인하는 교통수단에 비해 역학적으로 더 능률적이고, 일정한 거리 내에서는 3~4배나 더 빠르게 주행할 수 있다. 그로 인해 자전거는 집집마다의 교통을 촉진하는 데 기여하게 되고, 단거리와 5킬로미터까지의 도심통행에서는 다른 교통수단과 균등한 조건 위에서 경쟁한다면 우위를 점유할 수 있다.

  그리고 피크오일 상태에 있는 한계연료를 비능률적으로 이용하는 자가용과 달리 자전거는 인간에너지의 이용을 극대화하므로 보행을 포함한 다른 교통수단보다 승객 마일당 더 적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즉 사이클링은 승객 마일당 35칼로리를 소비하는데, 이것은 보행의 100칼로리, 한 사람이 탄 승용차 1대의 1,860칼로리와는 비교도 안되는 수준이다.

  셋째, 자전거는 통행이나 보관할 때 작은 공간이 필요하고, 노선 역시 기존도로를 변형 또는 축소시켜 설치·운영할 수 있으므로 공간절약형 교통수단이다. 주행 중인 자전거는 자동차보다 약 8배나 작은 공간이 필요한 반면, 주차된 자전거는 자동차에 비해 약 20배나 작은 공간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도시에서 평균 약 1.3명이 타는 자동차 1대가 공간이용을 한다고 할 때 18제곱미터(사람당 약 14제곱미터)가 필요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자유롭게 이동하는 데 사람당 4제곱미터만이 필요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넷째, 자전거는 개인이용자는 물론 공중에게도 모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이클링은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게 해 사람들이 개선된 체력과 인내력, 그리고 적은 피로로 일상적인 과업을 수행하게 만드는 데 아주 적합한 방법이다. 사이클링을 통한 운동은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혈압과 체중을 낮추고, 뼈의 형성을 촉진한다. 그 결과 심장혈관질환과 암의 발생률을 저하시키면서 우울하고 걱정하는 개인의 정신건강에 유익하게 작용하여 정신적 복지에도 상당한 기여를 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다섯째, 자전거는 일부 보행자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다른 도로이용자들에게 위협이 거의 없는 온화한 교통형태인데다, 구매가격이 동력차량에 비해 훨씬 저렴해 비교적 모든 사람들에게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평등한 교통수단이다. 바꾸어 말하면, 한 사람의 사이클링은 다른 사람의 통행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간섭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에너지만으로 이동을 쉽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여섯째, 자전거교통의 촉진은 자동차통행량을 흡수해 도로교통 소통여건의 향상을 가져오고, 도로, 주차장 등 기본시설 건설 시 예상되는 막대한 투자비를 절감시킬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또한 그것이 ‘환경적 교통관리계획’과 가로(街路) 재설계를 촉진시키게 되어 나무 심는 공간은 물론 보행자, 주민,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확대하고, 도시지역에서 생활환경의 질을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를 한다.

  마지막으로, 자전거교통은 이제까지 붕괴되었던 지역사회의 사회적 유대망을 재확립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돈 애플야드가 수행한 샌프란시스코 사례연구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주민들의 프라이버시가 중교통 도로에서 감소되고, 지역주민들의 교제망의 축소와 개인적 영토의 의미가 상당히 제한되고, 나아가 가로를 사이에 둔 자동차교통의 흐름에 의해 주민들의 이해가 단절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동차교통의 자전거교통에로의 흡수는 자동차대중화 시대 이후 죽은 가로의 기능을 공공 공간이자 사적 공간인 다기능적 장소로 복원시키면서 살아있는 가로로 전환시킬 수 있다. 이로 인해 가로에서도 대화, 교제, 집회, 운동 등 지역사회의 원초적 활동이 활성화되면서 사회적 유대망이 한층 강화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자전거교통의 장점은 사이클링의 잠재력이 거의 무한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그렇다고 사이클링 자체가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는 자전거교통의 한계를 간단히 논해보기로 한다.

  첫째, 자전거는 불리한 기후, 특히 눈과 비가 내리고, 강한 바람이 불거나 강추위로 노면이 얼은 때에는 운행이 상당히 어렵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우비, 배낭, 귀싸개, 장갑, 마스크 등이 많이 보급되고 있어 영하 15도의 아주 추운 날씨나 강한 바람이 불고 경량의 비가 오는 경우에도 자전거 운행이 가능하다. 이것은 유럽의 많은 세계적인 자전거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풍경이다.

  또한 미국 미시간의 앤 아버와 같이 동절기에도 제설기, 로터리부러쉬와 염화칼슘을 뿌리는 트랙터를 이용한다면 눈으로 인한 한계는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 실제로 기후조건이 열악한 스웨덴이 영국의 거의 4배의 자전거보유율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녹색양식의 상대적 매력을 결정하는 다른 환경요소들이 존재하고 있거나 보완된다면, 기후는 사이클링을 제한하는 부차적 변수임이 틀림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강풍, 폭우, 폭설과 같은 악천후로 인해 노면이 미끄럽거나 얼어붙어 있는 경우를 생각하면, 확실히 불리한 기후조건은 자전거교통에 중대한 장애요소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다.

  둘째, 지형 역시 자전거 이용을 제한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이 또한 앞의 기후조건에서 본 바와 같이 그 효과가 과장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브라질 내륙지방의 이따비리또의 산악도시의 경우 대부분의 중요한 도로가 계곡에 위치하고 있고, 주요 목적지의 하나가 도시 외곽에 입지한 철강공장에 있었으므로 대다수 사람들이 1단 기어 자전거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전거이용률은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더구나 최근에 개발된 산악용자전거의 광범위한 보급으로 지형이 자전거 이용을 제약하는 큰 장애요소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보다는 저밀도 도시개발로 인해 외연적으로 확산된 정주패턴이 자동차교통의 속도와 양을 증가시키면서 도로를 위험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자전거 이용이제약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설령 이것이 사실일지라도 일반적으로 평탄한 지세를 가진 도시들이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 사이클링 수준은 훨씬 높을 것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셋째, 자전거는 이륜구조를 가지고 있어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불안정하고, 안전성이 매우 낮다는 사실이다. 특히 자전거는 최근 들어 타이어 및 제동장치가 지속적으로 개량되고, 차체 자체가 경량화되는 등 기술개발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포장도로와 결빙된 노면 주행에 매우 취약하다. 이 밖에도 오토바이, 자동차 등과 같이 동력장치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이 가진 체력에너지에 의존하기 때문에 4~5킬로미터 이내의 단거리 통행에만 주로 유효한 교통수단이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자전거동호인들처럼 매니아가 아닐 경우 거리마찰로 인해 보통 사람들은 5킬로미터가 넘으면 주행하길 꺼린다. 따라서 이 거리 이상을 정책목표로 설정하고 자전거교통을 육성할 경우에는, 철도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수단과의 환승에 좀더 섬세한 배려가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교통수단인 것이다.

  위와 같은 요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자전거의 이용을 제약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무엇보다 자전거교통을 제약하는 변수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즉 핀치가 영국을 예로 들면서 언급한 것처럼, 사이클링은 “유행을 따르는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 타기를 원칙적으로 어린시절의 활동으로서 생각하는 ‘반(反)사이클링 문화’가 지배하고 있다면 자전거 이용은 자연스럽게 억제될 수밖에 없다.

  이런 지적에 확실히 동의한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앞으로 자전거교통의 천국으로 가는 길이 훤하게 열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5월 초에 창원시에서 열린 자전거 축전에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참가해 행정안전부 장관과 함께 자전거를 타는 이벤트행사를 연출하며 ‘자전거 타기 활성화’를 공개적으로 약속했고, 국토 전체를 자전거네트워크로 연결하겠다는 중앙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전국의 모든 지방자치단체까지도 경쟁적으로 나서며 국내 최고의 자전거도시 건설을 공언하고 있다. 이렇게 고조된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한다 하더라도 필자가 보기에는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는 ‘저탄소 녹색성장’의 핵심의제 가운데 하나인 자전거정책은 정말이지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부터는 이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기로 하자.

 

  MB정부의 자전거정책

  (후략)


  박용남 ― 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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