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제104호 2009년 1-2월호  인쇄용  

 

  책을 내면서| 희망을 위한 보이콧

  김종철

 

  “이 묘석 아래 에우포리온의 자식이요, 밀밭도 풍성한 시칠리아 땅에서 사라진 아테네인 아이스퀼로스가 잠들다. 마라톤의 숲이 그의 용맹을 말해줄 것이며, 긴 머리를 한 페르시아인들이 이를 증명해줄 것이다.” 이 구절은 희랍비극의 아버지라고 하는 아이스퀼로스(BC525∼BC456)가 직접 쓴 자신의 묘비명이다. 그는 생애 마지막에 시칠리아 섬을 여행하는 도중에 죽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묘비명에서 무엇보다 눈에 뜨이는 것은 그가 자신이 후세 사람들에 의해 비극작가로 기억되기를 전혀 바라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다. 아니, 이 묘비명의 어조로 보건대, 그에게 한 사람의 저명한 비극작가로서의 자기인식이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그는 자신이 누군가의 아들이며, 자기 나라를 위해서 용감하게 싸운 애국자였다는 사실이 특히 자랑스럽고, 길이 기억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임이 분명하다.

  한 위대한 시인이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며, 그 생애에서 가장 중요하고 자랑스러운 업적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싸운 일이었다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것은 아이스퀼로스라는 한 개인의 특별한 자질보다는 (적어도 어떤 시기 동안의) 옛 희랍사회의 근본적인 건강성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아이스퀼로스는 소포클레스나 에우리피데스보다 훨씬 먼저 태어나 활동한 최초의 비극작가로서, 고전 희랍비극의 초석을 놓았던 천재였다. 그런 그가 죽음의 자리에서 가장 중요하게 회고한 것이 극작가로서의 자신의 성공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서 침략군에 맞서 싸운 참전경험이었던 것이다. 아이스퀼로스의 생전에 아테네는 두차례에 걸쳐 페르시아로부터의 침략에 맞섰는데, 그때마다 그는 전사(戰士)로서 참전하였다. 그 중 마라톤에서 벌어진 첫번째 싸움은 아테네가 병력의 절대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대승을 거둔 전쟁이었다. 그 때문에 그것은 아테네인들에게 두고두고 기억할 만한 사건이 되었다.

  실제로 아이스퀼로스의 연극 속에서도 주요 테마는 대개 이 페르시아와의 전쟁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는 전쟁의 의미를 정의와 불의, 선과 악, 자유와 예속 사이의 투쟁으로 보았고, 결국은 인간의 교만을 응징하는 신(神)의 섭리가 관철되는 과정으로 해석하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가 애국자이긴 하지만, 그의 애국심은 덮어놓고 전쟁의 승리에 환호하는 자기도취나 자기만족으로 표현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특히 페르시아와의 두번째 전쟁을 묘사한 비극〈페르시아인들〉에서 현저하게 드러난다.

  마라톤 전쟁 10년 후 다시 페르시아가 침략해 들어왔을 때, 희랍인들은 이번에도 용감하게 싸워 이겼고, 그 결과 페르시아군은 몸소 전투를 지휘하던 군주까지 포함하여 무자비하게 학살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7년 뒤에 상연된〈페르시아인들〉은 전쟁에서 승리한 희랍인들이 아니라, 전쟁에서 궤멸됨으로써 페르시아 사회가 겪는 대재앙을 묘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작가는 자신의 동포들에게 지금은 승리에 도취해 있을 때가 아니라, 패배한 상대방의 비참한 상황이 어떠한지를 상상해보는 게 필요한 시간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희랍비극은 단지 관중을 즐겁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공동체의 안전과 건강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끊임없는 자기교육의 수단이기도 했다. 아이스퀼로스의 연극은 전쟁에서의 승리 때문에 자만심에 빠진다면, 페르시아인들의 비참한 운명은 언제든 희랍인 자신들의 것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처럼 인간사를 일시적인 성공과 실패를 넘어서, 좀더 광대한 시각, 즉 모든 인간은 허약한 운명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누구라도 자만심에 빠지면 액운을 면치 못한다는 관점에서 파악함으로써 아이스퀼로스는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상대화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아마도 인생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덕목, 즉 겸손 혹은 자기억제의 미덕이 갖는 중요성을 동포들에게 설득하려고 했는지 모른다.

  옛 희랍은 물론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었다. 노예제도가 있었고, 여성에 대한 차별이 있었던 사회이다. 뿐만 아니라 희랍이라고 해서 늘 한결같지도 않았다. 독재도 있었고, 문화적 퇴폐의 시기도 있었다. 게다가 희랍인들 자신이 제국주의자가 되어 침략을 일삼기도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랍문화는 기념할 만한 사상적?예술적 업적을 풍부하게 산출하였고, 무엇보다도 인간다운 삶에 있어서 민주주의와 정치가 갖는 중요성을 선구적으로 증명해 보여주었다.

  그런데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막스 베버가 지적했듯이, 이러한 창조적인 업적은 모두 희랍인들이 매우 ‘질박한’ 생활을 영위하던 시기 동안에 달성된 것이었다는 점이다. 최성기(最盛期) 희랍 문화와 예술은 결코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세련된 지반 위에서 산출된 것이 아니었다. 그 문화와 예술은 당대 희랍인들의 극히 검소한 삶의 방식과 생활감정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질박한’ 삶이란 겸손한 마음 혹은 자기절제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아이스퀼로스를 포함한 일급의 예술가?사상가들의 사회적 공헌은 기본적으로 이 ‘질박한’ 삶을 껴안는 정신적 토양을 배양하고, 강화하는 데 있었다. 그리하여 이러한 정신적 토양 속에서 ‘교만’을 경계하는 끊임없는 자계(自戒)의 습관이 형성되었고, 그 토대 위에서 최고의 정치와 사상과 예술이 꽃피어났던 것이다.

 

  수십년간 인류사회를 짓누르던 먹구름이 드디어 걷히는 것일까. 이미 여러해 전부터 예견되어왔던 일이지만, 이른바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시작된 전세계적인 경기침체라는 사태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이제 세계가 근본적인 변화를 맞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임에 틀림없다. 이 변화의 과정이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심각한 고통에 빠트릴 것을 생각하면, 심히 마음이 아프지만, 어쨌든 종래와 같이 ‘신자유주의’ 논리의 절대적인 지배 밑에서 전개되어온 미국식 자본주의 경제는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고, 마땅히 망해야 하는 것이었다. 말이 좋아서 자유주의 경제이지, 이것은 노골적인 약육강식을 합리화하는 극히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논리였다. 나치즘에 의해 희생당한 독일의 문예비평가 발터 벤야민이 했던 말을 빌려 말하면,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큰 재앙은 이 상황이 계속된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생각하면, 문화와 지역의 차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온갖 곳에서 끊임없이 규제철폐, 민영화, 부유세 삭감, 자유무역을 완강하게 주장하며, 기업이 잘되면 모든 것이 잘된다는 논리로 약자들의 처지를 한번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던 이 경제논리가 어떻게 이토록 오랫동안 세계를 지배해올 수 있었는지 불가사의한 일이다.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고용 안정성이 붕괴되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급증하고, 인권과 환경이 끝없이 훼손되는 상황에서도 권력 엘리트들은 계속해서 “미국식 생활방식은 협상 불가능한 것”이라면서, 온갖 사회적 모순과 생태적 위기에 대해서 무감각?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해왔던 것이다.

  과연 ‘미국식 생활방식’이란 무엇인가. 이미 1948년에 당시 국무성 고위관리였던 조지 캐넌이 말했듯이, 그것은 세계 인구의 6.3퍼센트를 차지하는 사회가 전세계 부의 50퍼센트를 소모하는 생활방식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지 캐넌의 견해로는, 이것은 변경되어야 할 현실이 아니었다.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미국식 생활방식’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미국이 세계에 대해 이타주의적인 정책을 실시하거나 윤리적인 행동을 하려는 생각은 매우 순진하고 감상적인 생각이다. 그렇게 하면 지금과 같은 미국식 생활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경우에 따라 다른 나라를 침략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캐넌의 이 발언에 색다른 게 있다면, 그것은 미국이 윤리적으로 행동하거나 평화를 존중하는 나라가 된다면 미국식 생활방식은 유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솔직히 공언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니까 레이건 정부 이래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정책은 별로 새로운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2차대전 이래 일관되게 추진되어온 미국식 방법의 심화ㆍ확대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종래에 대외적인 관계 속에서 추진해왔던 공격적인 자세를 미국 내의 약자들에 대해서도 노골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그리하여 칠레에서 아옌데의 민주정부를 처참하게 파괴하고, 피노체트의 무자비한 철권통치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왔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들은 미국 내의 노동운동을 분쇄하고, 체계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희생시키는 경제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결과, 지난 30년간 미국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사실상 전혀 인상되지 않은 반면에 상위 1퍼센트의 소득은 5배 이상 상승하였다. 더욱이, 세계 최강의 경제ㆍ군사대국이라는 나라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시민이 5,000만명에 이르며, 지금도 300만명은 정부에서 주는 식권(食券)으로 겨우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그리고 미국의 압도적인 영향력 아래에 있는 세계 전역의―민주주의와 인권과 환경이 계속해서 악화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월스트리트의 몰락을 가져온 이번의 금융문제만 해도 그렇다. 그동안 월스트리트 투자금융회사들은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금융기술을 구사하여 막대한 부를 창출해낸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의 선망과 경탄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러한 그들이 고안했다는 금융파생상품이란 극히 복잡한 수학적 계산을 요하는 고도의 금융기술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그처럼 잘 나가던 금융회사들이 파산 지경에 이르러 마침내 그 선진적인 금융기술이라는 것의 정체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것은 간단히 말해서 고도의 사기술(詐欺術)이었던 것이다.

 〈뉴욕타임즈〉 논설위원 토머스 프리드먼은 그동안 신자유주의 경제의 ‘세계화’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대표적인 논객으로 활동해왔다. 그런 그가 이번의 미국 금융파산 사태에 대한 논평에서, 미국 자본주의의 ‘비윤리성’을 강하게 지적하고 나섰다. 그가 보기에도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폭주는 도를 지나쳤던 것이다. “금융회사들은 소득이 연간 1만4천달러밖에 안되는 노동자들에게 75만달러짜리 주택을 살 수 있는 대출(모기지)을 해주고, 이런 모기지들을 묶어서 증권을 만들면, 무디스니 스탠더드앤푸어스 같은 신용평가 기관들이 여기에 최상의 등급을 매겨주었다. 이런 증권들을 전세계 은행들과 연기금에 팔아먹었다. 이것은 피라미드식 사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미국 자본주의는 공산주의에 대해서 더이상 경계할 필요가 없게 되자 미쳐버린 것 같다. 투자은행과 헤지펀드들은 미친 듯 막대한 자금을 빌리고, 미친 듯 보수를 챙겨가고, 특히 최초의 채무자와 최종 대출자를 철저히 분리시킨 금융상품을 고안하여 책임소재를 불분명하게 했다.”(〈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2008.12.17)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금융구제’뿐만 아니라, ‘도덕의 구제’이며, 그리하여 “시장과 윤리와 규제 사이에 균형추를 다시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라고 프리드먼은 말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주류 시스템의 핵심부분에서 이런 비판이 나오는 형편이니, 이 체제를 변호한다는 것은 더이상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이제는 프리드먼과 같은 주류 논객도 인정하듯이, 자본주의 경제란 ‘동물적 탐욕’에 의해서 추동되는 체제이지만, 그 ‘동물적 탐욕’에 적절한 제약이 가해지지 않을 때, 그것은 도리어 그 체제 자체를 잡아먹는 괴물로 둔갑해버린다는 것이 명확히 입증된 셈이다. 사실, 초기 자본주의 경제사상가들이 생각했던 것은 이처럼 완전히 고삐 풀린 탐욕의 질주가 아니었다. 아담 스미스는 자본주의 경제를 움직이는 근원적인 힘이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에서 나온다고 보았지만, 이 욕망은 동시에 동정심이라는 도덕감정에 의해서 제어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는 자본주의 경제란 이기심과 동정심이라는 두개의 바퀴로 굴러갈 때만 제대로 기능을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담 스미스가 말한 것과 같은 ‘도덕적 감정’이 철저히 결여된 경제논리가 지난 수십년간 미국이 주도해온 세계경제의 지도이념으로 군림해왔고, 그 근본적인 허구성과 비윤리성이 드러난 지금에도, 여전히 잔명을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 아담 스미스가 생각했던 ‘자유주의 경제’에서 자유란, 자연인으로서 인간 개개인이 누려야 할 기본권리인 ‘자유’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전통적인 ‘자유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였다.《예종(隸從)으로 가는 길》을 쓴 정치사상가 하이에크가 옹호하고자 했던 것도 기본적으로는 개인의 자유였다. 하이에크가 파시즘과 스탈린주의는 물론, 케인즈주의에 대해서도 적대한 것은 복지국가도 개인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전체주의적 체제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개인이 자신의 인생에 대한 선택권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어야 하며, 그 권리가 국가에 의해서 간섭받거나 훼손되지 말아야 한다는 신념에 철저한 나머지, 국가에 예속되지도, 의존적이지도 않는 자기책임에 근거한 삶의 영위를 강조했던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은 좋고, 옳은 일이지만, 여기서 간과해서 안될 것은 19세기 후반부터 자본주의 경제를 주도하는 생산주체가 개인에서 법인, 즉 기업으로 전환되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적어도 개인의 자유와 기업의 자유를 분간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자들은 이것을 무시하고,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되풀이하면서, 실은 기업의 자유를 위한 규제철폐를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규제철폐 혹은 규제완화 요구는 결국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기업이나 자본가가 돈벌이를 위해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든지 내버려 두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 결과는 지금 보는 것과 같은 금융몰락과 세계경제 전체의 파국이다. 문제는 이렇게 되는 과정에서 이 세계의 보통 사람들의 개인적인 자유가 심각하게 손상당해왔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 상처로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사실, 신자유주의자들의 가장 큰 죄악은 늘 ‘자유’를 부르짖으면서도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자유’에 대해서는 한번도 진지한 고려를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시장 메커니즘에 맡겨둬야 한다는 시장경쟁만능주의를 주장할 뿐, 사회적 불평등이 구조화되어 있는 기본적인 사회현실, 그리고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의 운명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무관심하였다. 나아가서 그들은 비단 경제현상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사에 대해서도 개인적 선택이나 자기책임론을 적용하여, 예컨대 결혼이나 이혼 같은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범죄나 마약문제도 편익과 비용을 저울질하여 선택할 문제라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털끝만한 관심도 없다는 것이 분명했다.

  이에 관련해서, 일본의 원로 경제학자 우자와 히로후미(宇澤弘文)가 들려주는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우자와 교수는 한때,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의 거장이라고 하는 밀턴 프리드먼과 함께 시카고 대학에서 가르친 경험이 있는데, 그때 대학에서 벌어진 한 장면을 오랫동안 기억해왔다.

  1960년대에 한창 흑인문제가 미국사회의 현안이 되어 있던 때, 프리드먼이 대학원에서 강의 도중 흑인문제를 언급하였다. 역시 자기책임론이었다. “미국에서 경기가 나빠지면 대개 흑인들이 먼저 해고되는 것은 인종차별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에 필요한 기술과 기능을 흑인들이 못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흑인들의 이런 사정은 그들이 자랄 때 공부를 하지 않고, 놀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부를 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흑인들 자신의 선택문제이기 때문에 경제학자는 이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해서는 안된다.” 그러자 이 발언을 듣고 있던 흑인학생이 프리드먼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에게 부모를 선택할 자유가 있었다고 보시는지요?” 이 날카로운 질문 한 마디로 매사에 개인 책임론을 들먹이던 프리드먼의 논리는 그 허구성이 일시에 폭로되고 말았다고, 우자와 교수는 회상하고 있다.(內橋克人編,《경제학은 누구를 위해 있는가》 岩波書店, 2001년, 8쪽)

  신자유주의의 허구성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흔히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자율성을 절대적으로 강조하고, 국가기능의 축소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과연 그게 사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신자유주의도 자유주의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으니까, 국가권력으로부터 거리를 취하고 싶어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국가의 역할에 대해서 극히 회의적이었던 자유주의 사상가 하이에크의 입장이 그랬듯이 말이다. 그러나 실제 신자유주의는 그 어떤 경제논리보다도 국가권력에 친화적이고, 심지어 국가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경향을 끊임없이 드러내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와 국가의 근본성격을 고려하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늘 자유를 강조하지만, 실은 그 자유가 기업과 자본을 위한 무제한적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 본질적으로 자기확장의 욕망 덩어리라고 할 수 있는 국가권력은 자신의 욕망충족을 위해서 언제든 자본과 결합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당성이 약한 정부, 국가권력일수록 자본과 손잡고자 하는 욕망은 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계 도처에서 경제성장이라는 이름 밑에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은 자본과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민주주의도, 인권도, 복지도, 환경도 간단히 무시해왔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은 국가권력이 민중의 이러한 기본적 권리를 억압하도록 조언하고, 심지어 요구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렇게 할 때, 그들의 행동은 일찍이 밀턴 프리드먼이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를 옹호하고 그의 반민중적 경제정책을 강력히 지지했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논리와 심리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신자유주의는 실제로는 신국가주의적인 이데올로기로 기능해온 셈이다. 신자유주의로 인해서 국가는 결코 희미한 존재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민중에게 있어서 국가는 좀더 사악해지고, 억압적인 권력이 될 뿐이다. 이것은 지난 수십년 간의 역사에서 분명하게 증명된 사실이다.

  사실, 한국에서도 민주주의는 노무현 정부가 한미FTA 협상을 성립시키는 과정에서 크게 훼손되었다. 한미FTA란 신자유주의 정책 중에서도 가장 반민중적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을 노무현 정부는 민중의 뜻을 거역하면서, 심지어 자신의 정치적 기반까지 무너뜨리면서, 무슨 이유인지, 저돌적으로, 완강하게 밀어붙였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노무현 정권은 자신의 정파는 물론이고, 결과적으로 한국의 민주세력 전체의 몰락을 초래하는 엄청난 정치적 과오를 범했던 것이다. 그 과오는 지금 이명박 정부에 의한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전방위적 공격에서 보듯이, 극단적인 경찰국가의 부활을 위한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시도는 시대착오적이다. 이명박 정부가 신뢰할 만한 도덕적 기반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출발부터 분명한 사실이었고, 게다가 근본적으로 무능한 정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징후는 갈수록 농후해졌다. 도덕적 정당성의 결핍과 정치적 무능은 결국 리더십의 문제로 나타나기 마련이고, 그 예상되는 결과는 강압적 통치의 유혹에 빠져들 것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지금 사태는 예상대로 되어가고 있다. 그리하여 이명박 정부는 이미 완전히 그 허구성이 드러난 신자유주의 논리에 오히려 더 집착하는 이상증세(異常症勢)를 나타내면서, 사회통합에 역행하는 기득권 옹호 일변도의 정책들을 ‘경제 살리기’라는 구호 밑에서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다. 이에 대한 저항을 봉쇄하기 위해서 그들은 지금 방송과 인터넷을 장악ㆍ통제하고,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억압하며, 시민들에 대한 감시체제를 강화하는 데 광분하고 있지만, 성공하든 못 하든 이것이 시대의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극단적인 우행(愚行)이라는 것은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세계경제의 침체가 점점 심각한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사람들은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 경제는 마땅히 망해야 하는 경제였다. 무엇보다도 자원과 에너지의 무한 소비를 강제하는 경제논리의 지배가 이대로 계속되어서는 인류 문명사회 전체의 임박한 붕괴는 필연적이었다. 그런 점에서, 잠시나마 이 체제에 제동이 걸리고, 그 동력이 약화된다는 것은 인류사회의 장래를 위해서는 절호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불황 속에서 석유소비가 불가피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후변화의 속도를 약간이나마 지연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유예기간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인류사회는 기후변화 자체를 막지는 못하더라도, 최악의 상황만은 모면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는 데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희망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미국에서 정권이 바뀌고, 흑인 대통령이 등장한 것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를 위해서 고무적인 일임에 틀림없다. 오바마는 유권자들에게 ‘희망’과 ‘변화’를 약속함으로써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물론 그의 약속은 단순히 선거용 약속으로 끝날지도 모르고, 그 역시 오랜 세월 미국을 지배해온 금권정치의 압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존재로 판명될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미국인의 고질적인 선민의식 때문에 오바마 역시 오만한 제국주의 혹은 적어도 대국주의적 자세를 벗어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의 출현은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불가피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그 변화가 과연 인류 모두에게 ‘희망적’인 변화가 될 것인지 아닌지는 물론 아직은 불확실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것이 희망적인 변화가 되게 하는 힘은 궁극적으로 풀뿌리 민중의 각오와 역량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결국은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은 오늘날 4년 혹은 5년마다 선거를 하고,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대의제 민주주의의 현실에서 선거를 통한 개혁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따져보면, 대의제 민주주의란 기득권 지배구조를 항구화하기 위한 정치적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실제로 미국의 헌법을 주도적으로 기초(起草)했던 ‘연방주의자들’이 별로 숨기지도 않고 인정했던 사실이다. 제임스 메디슨은 미국헌법이 “재산을 가진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고안된” 것임을 공언했던 것이다.

  미국의 정치사상가 셀던 월린이 쓴 책《과거의 현존》에 의하면, 미국의 진정한 민주주의는 정부ㆍ의회라는 대표제 형식이 아니라, 헌법 체제가 확립되기 이전에 풀뿌리 민중이 향유했던 분권적 자치 공동체들 속에 살아있었다. 독립전쟁 당시까지도 존재했던 이러한 분권질서는 미국의 건국과 더불어 헌법체제가 확립되면서 위축되기 시작하였고, 남북전쟁을 통하여 중앙집권적 체제는 일단 완성되었다고 월린은 지적한다. 중앙집권 국가를 지향하는 지배 엘리트들에 의한 이 계속적인 압력은, 다시 월린에 의하면, 레이건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고스란히 반영되었고, 또 그 정책은 중앙집권적 국가를 강화하는 데 기여해왔다. 월린은 신자유주의식 민영화는 국가를 ‘희박화’하는 게 결코 아니며, 오히려 국가기구를 좀더 합리적으로 강화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국가와 자본, 정치와 경제의 결합을 실제로 강화하면서 겉으로는 늘 분권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는 결국 그와 같은 언술행위로 자신의 진정한 정체를 은폐하고 있는 것이다.

  셀던 월린이 지적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문제는 미국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란 풀뿌리 민중이 자신의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지, 이 권리를 대표자에게 위임함으로써 실현되는 게 결코 아니다. 더욱이 대의제 민주주의란 것도 국가권력과 자본의 강력한 결합에 의해서 날이 갈수록 텅빈 껍데기가 되어 가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그렇다면 길은 하나―결국 풀뿌리 민중 자신이 민주주의를 살리기 위해서 투쟁하는 수밖에 없다. 그 투쟁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는 것으로도 표현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국가와 자본의 영향력 바깥에서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의 창조로 나아가야 한다. 물론 당장에 이러한 자립의 공간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러한 방향으로 국가와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나는 길을 모색한다는 게 중요한 것이다. 오늘날 국가를 폐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날이 갈수록 사악해지는 국가권력으로부터 민주주의를 건지고, 우리 자신의 인간다운 존엄성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국가에 대한 비판적인 거리를 확보하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거리의 확보는 우리가 다양한 형태의 소규모 공동체를 만들어, 그 틀 속에서 우애와 상호부조의 원리에 입각한 협동과 자치의 삶으로 전환하는 데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경제 불황에 직면하여 마냥 불안과 두려움 속에 갇혀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 두려움은 권력에 의해서 철저히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 권력은 이 불안과 두려움 속으로 침투해 들어와 ‘경제 살리기’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민중의 자립적 능력과 지혜를 가로막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갖가지 술책을 강구할 것이 분명하다.

  일찍이 간디는 억압적인 권력에 맞서는 가장 생산적인 대응으로 ‘보이콧’이라는 방법을 실천적으로 제시하였다. 간디의 ‘보이콧’은 물론 인도 민중의 자립적 삶을 위한 영국산 직물 수입 반대운동으로 시작된 것이지만, 간디는 이 운동이 단지 외국산 상품 배척운동이나 민족경제 회생이라는 각도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간디의 ‘보이콧’은 좀더 근원적으로 식민주의 및 산업주의 체제, 나아가서는 근대국가 그 자체에 대한 거부였다고 할 수 있다. 간디가 인도의 진정한 독립은 영국의 지배로부터 해방되는 게 아니라, 지배와 피지배라는 구조 자체로부터의 해방이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한 것은 바로 그런 의미였다. 그리하여 간디는 인도국가가 세워지더라도 그 국가는 ‘가능한 한 최소한의 군대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고, 중앙정부는 사실상 조정자의 기능만 해야 하고, 실질적인 통치권력은 인도의 70만개의 자립적 마을공화국에 귀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이러한 간디의 견해에 의거할 때, ‘보이콧’은 단순히 불매운동을 넘어서, 상호부조의 자발적 결사체들을 형성하려는 민중의 다양한 노력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근대국가란 중앙집권적 관료와 상비군과 대규모 산업으로 뒷받침되어 있는 체제이다. 이 체제는 갈수록 비인간적으로 되고, 민중을 적대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크나큰 위협이 되어왔다. 간디는 이것을 간파하고 있었고, 그래서 거대한 군대와 관료기구와 산업체제를 배제한 마을공동체들에 의한 자치적 분권사회를 꿈꾸었던 것이다. 그의 ‘보이콧’ 운동은 결국 그러한 공동체 속에서 영위되는 겸손하고 소박한 삶의 질서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간디가 보여준 것과 같은 ‘보이콧’의 정신과 그 실천이다.


  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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